이 사람들이 죄다 이렇게 차려입고, 중산계급 여인들이 그토록 배타적인 자기네 살롱에 들어오는 것을 마다한 것이, 정말로 이런 만찬을 위해서였단 말인가, 이런 만찬을 위해서? 내가 없었더라도 똑같았을까? 그런 의심이 한순간 내 머릿속을 스쳤으나, 그것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소박한 상식만으로도 나는 그것을 떨쳐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만약 내가 그 의심을 받아들였더라면, 콩브레 이래 이미 그토록 격이 떨어진 게르망트라는 이름에 무엇이 남았겠는가?
이 꽃 같은 처녀들은, 이상하리만치, 다른 사람을 기꺼이 반기려 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자기를 반기게 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저녁 내내 내가 두어 마디 무심한 말밖에, 그것도 그 어리석음에 내가 얼굴을 붉혔을 만한 말밖에 건네지 않은 여인들 가운데 하나둘이 아닌 이들이, 살롱을 떠나기에 앞서 굳이 내게 다가와, 그 곱고 어루만지는 듯한 눈길을 내게 고정한 채, 말하는 사이사이 제 가슴의 곡선을 따라 늘어진 난초 화환을 매만지면서, 나와 알게 되어, 또 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말해 주었고, 게르망트 부인과 ‘날을 잡고’ 나서 ‘무언가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만찬 초대를 넌지시 암시하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 꽃 같은 부인들 가운데 누구도 파름 대공비보다 먼저 방을 나서지 않았다. 그 부인의 참석은, 왕족보다 먼저 자리를 떠서는 결코 안 되는 법이므로, 공작부인이 그토록 강하게 나를 붙들었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데, 나는 그 둘 다 짐작하지 못했다. 파름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것은 마치 해방과도 같았다. 부인들은 저마다 대공비 앞에 무릎을 굽혀 절했고, 대공비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자, 그들은 무릎 꿇은 채 갈구하던 축복처럼, 입맞춤과 더불어, 자기네 외투와 마차를 청해도 좋다는 허락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그리하여 현관에서는, 프랑스 역사에 남은 위대한 이름들을 우렁차게 외쳐 부르는 낭송 같은 것이 이어졌다. 파름 대공비는 게르망트 부인이 감기에 걸릴까 염려하여 그녀가 아래층 현관까지 배웅하는 것을 말렸고, 공작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 오리안, 마님께서 허락하셨으니, 의사가 당신한테 뭐라고 했는지 잊지 마시오.”
“파름 대공비께서 자네와 함께 만찬을 드시게 되어 무척 흡족해하셨으리라 믿네.” 나는 그 상투적인 인사말을 알고 있었다. 공작은 그 말을 내 앞에서 하려고, 마치 내게 졸업장을 건네거나 비스킷 한 접시를 권하기라도 하듯, 상냥하고 자상한 낯빛으로 살롱을 가로질러 예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말하며 느끼는 듯한 그 기쁨에서, 또 그 기쁨이 한순간 그의 얼굴에 어찌나 감미로운 표정을 떠올려 놓던지, 이 일이 그에게 뜻하는 그 수고가, 몸이 마비된 뒤에도 여전히 지니도록 허락되는 그런 명예롭고 편안한 자리들 가운데 하나처럼,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기울일 그런 종류의 것임을 짐작했다.
내가 막 떠나려는 참에, 시녀가 살롱에 다시 나타났으니, 게르망트에서 올라온, 공작부인이 파름 부인에게 선사한 그 멋진 카네이션을 가져가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시녀는 얼마간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방금 꾸지람을 들은 참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다른 모든 이에게는 그토록 상냥한 대공비도 제 시녀의 어리석음 앞에서는 조바심을 억누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녀는 꽃을 집어 들고 서둘러 달려갔는데, 태연하고 당당한 태도를 지키려는 듯 지나가며 내게 이렇게 내뱉었다. “대공비께서 제가 당신을 기다리게 한다고 하시네요. 어서 가고 싶어 하시면서 카네이션까지 챙기라시니. 세상에! 내가 무슨 작은 새도 아니고, 어떻게 한꺼번에 두 군데 있을 수 있담.”
아아! 왕족보다 먼저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는 규칙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떠날 수가 없었으니, 또 하나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쿠르부아지에가는 알지 못하는 저 유명한 후함, 곧 게르망트가가 부유하든 사실상 몰락했든 벗들을 대접하는 데서 발휘하던 그 후함이, 로베르 드 생루와 함께 내가 여러 번 겪은 그런 물질적인 후함일 뿐 아니라, 매혹적인 말과 정중한 몸짓의 후한 베풂이기도 했다는 것, 안에 자리한 진정한 보물창고에서 길어 올리는 언어적 우아함의 온전한 체계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것은, 사교 생활의 무위 속에서 쓰이지 못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따금 부풀어 올라, 일종의 덧없는 흘러넘침으로 그만큼 더 강렬한 출구를 찾았으니, 게르망트 부인에게서 그것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으리라 믿게 할 만한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그것을 흘러넘치게 두는 그 순간에는 정말로 그런 애정을 느꼈으니, 그럴 때면 그녀는 마침 함께 있게 된 벗의, 남자든 여자든 그 벗의 곁에서, 어떤 이들에게 음악이 자아내는 것과 비슷한, 조금도 관능적이지 않은 일종의 도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득 제 몸판에서 꽃 한 송이나 목걸이 장식 하나를 떼어, 저녁을 좀 더 함께 이어 가고 싶은 누군가에게 건네주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연장이 결국 부질없는 잡담으로밖에 이어질 수 없으리라는 우수를 느꼈으니, 그 잡담 속으로는 그 신경적 쾌감도, 그 덧없는 감정도, 곧 봄의 첫 따스한 날들이 뒤에 남기는 나른함과 아쉬움의 인상과 비슷한 그것도 스며들 수 없었던 것이다. 벗으로 말하자면, 그가 이 여인들이 내미는 약속을, 그가 여태 들어 본 어떤 것보다도 더 가슴 벅차게 하는 그 약속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이 여인들은 한순간의 감미로움을 그토록 더 강하게 느끼기에,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도무지 지닐 수 없는 섬세함과 고귀함으로 그 순간을 우아함과 선의의 거역할 수 없는 걸작으로 빚어내지만, 다음 순간이 오면 이미 제 안에는 내어 줄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애정은 그것을 불러낸 그 고양보다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 그들을 이끌어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온갖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당신에게 들려주게 했던 그 예민한 마음의 결은, 며칠 뒤에는 마찬가지로 손쉽게 당신의 어리석음을 붙들어, 그것으로 또 다른 손님을 즐겁게 해 주는 데 쓰이게 하리니, 그들은 그 손님과 더불어 그토록 짧디짧은 저 ‘음악의 순간’ 가운데 하나를 마침 누리고 있을 것이다.
눈이 이미 몇 송이 내려 이내 진창으로 바뀌던 터라, 나는 대비 삼아 가져온 방설화를 현관에서 하인에게 청했는데, 그것이 도무지 멋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경멸의 미소에 나는 수치를 느꼈고, 그 수치는 파름 부인이 아직 떠나지 않고 내가 미국제 ‘고무 덧신’을 신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절정에 이르렀다. 대공비가 내게 다가왔다. “어머! 참 좋은 생각이네요,” 그녀가 감탄했다, “어찌나 실용적인지! 저기 분별 있는 분이 계시네요. 마담, 우리도 저런 걸 한 켤레 마련해야겠어요,” 그녀는 제 시녀에게 말을 이었고, 그러는 사이 하인들의 조롱은 존경으로 바뀌었으며 다른 손님들은 내가 대체 어디서 이런 진귀한 물건을 구했는지 물으려고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걸 신으면,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갈 길이 멀더라도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겠어요. 날씨에 매이지 않으니까요,” 대공비가 내게 말했다. “어머! 그런 거라면, 전하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시녀가 다 안다는 듯한 태도로 끼어들었다, “다시는 눈이 오지 않을 거예요.” “마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나요?” 그 훌륭한 파름 대공비에게서 쌀쌀맞은 말이 나왔으니, 그녀만이 유일하게 제 시녀의 두꺼운 낯가죽을 뚫을 수 있었다. “전하께 장담하건대, 다시는 눈이 올 수 없습니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아니 어째서요?” “더는 눈이 올 수 없어요, 그걸 막으려고 필요한 조처를 다 해 두었으니까요, 거리에 소금을 뿌려 놓았거든요!” 그 단순한 부인은 대공비의 노여움도, 나머지 청중의 웃음도 알아채지 못했으니, 잠자코 있는 대신 내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쥐리앵 드 라 그라비에르 제독과는 아무 연고도 없다고 거듭 부인하는데도 아랑곳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요. 이분은 필시 튼튼한 뱃사람 다리를 지녔을 테니까요. 타고난 핏줄이 어디 가나요!”
그러고 나서 파름 대공비를 마차까지 배웅한 뒤, 게르망트 씨는 내 외투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 껍질 속으로 들어가게 도와주지.” 그는 이 표현을 쓰면서 미소조차 거두었으니, 가장 상스러운 말들이 바로 그 상스러움 때문에, 게르망트가가 소박함을 짐짓 꾸미는 취향 덕분에 귀족적인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위적이었기에 그저 우울로만 가라앉는 어떤 고양을, 나 또한, 비록 게르망트 부인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였지만, 마침내 그녀의 집을 나서서 샤를뤼스 씨의 집으로 나를 데려가는 마차 안에서 느꼈다.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두 힘 가운데 어느 하나에 몸을 내맡길 수 있으니, 그 하나는 우리 안에서 솟아나 우리의 가장 깊은 인상들에서 흘러나오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우리에게로 온다. 첫째 것은 자연히 기쁨을, 곧 창조자의 삶에서 샘솟는 기쁨을 함께 지니고 온다. 다른 흐름은, 곧 우리 바깥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그 운동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려 애쓰는 그 흐름은, 쾌감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반작용의 충격으로 거기에 쾌감을 보탤 수 있는데, 그것은 어찌나 꾸며 낸 도취인지 이내 권태로, 우울로 바뀌어 버리며, 바로 여기서 그토록 많은 사교계 인사들의 침울한 얼굴이며, 끝내 그들을 자살로 몰아갈 수도 있는 그 온갖 신경증적 상태가 비롯한다. 그런데 샤를뤼스 씨에게로 나를 데려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이 둘째 종류의 고양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것은 개인적인 인상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고양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그런 인상은 내가 다른 마차들에서 받은 적이 있었으니, 한번은 콩브레에서 페르스피에 박사의 이륜마차 안에서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그려진 마르탱빌의 종탑들을 보았을 때였고, 또 어느 날 발베크에서는 빌파리지 부인의 사륜마차 안에서 늘어선 가로수가 내게 불러일으키던 어떤 추억의 정체를 밝혀 보려 애쓰던 때였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마차 안에서 내 마음의 눈앞에 어른거린 것은, 게르망트 부인의 만찬 식탁에서 그토록 지루하게 여겨졌던 그 대화들이었으니, 이를테면 독일 황제며 보타 장군이며 영국군에 관한 폰 대공의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내면의 입체경 틀에 끼워 넣었으니, 그 렌즈를 통하면,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게 되면, 사교의 정신에 사로잡혀 우리 삶을 오로지 남들에게서만 받아들이려 하게 되면, 우리는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을 도드라지게 부각하게 된다. 제게 시중들던 웨이터에게 애틋한 정을 느끼는 취한 사내처럼, 나는 나의 행운에, 솔직히 말해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행운에 경탄했으니, 빌헬름 II세를 그토록 잘 알고 그에 관해 참으로, 맹세컨대, 재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 사람과 함께 만찬을 든 것이었다. 그리고 대공의 독일식 억양으로 보타 장군의 이야기를 혼자 되뇌면서, 나는 소리 내어 웃었으니, 마치 이 웃음이, 속으로의 감탄을 더해 주는 어떤 종류의 갈채처럼, 그 이야기의 우스운 요소를 확증해 주는 것으로서 이야기에 꼭 필요하기라도 한 듯이. 이 확대 렌즈를 통하면, 게르망트 부인의 발언들 가운데 내게 어리석게 여겨졌던 것들조차도 (이를테면 전차 지붕 위에서 보아야 한다던 그 할스의 그림들에 관한 발언 같은 것) 예사롭지 않은 생기와 깊이를 띠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고양이 이내 잦아들었다 해도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해야겠다. 세상 누구보다 경멸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마침 우리가 사랑하는 처녀와 연이 닿아 우리를 그녀에게 소개해 줄 수 있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에게는 전혀 없으리라 여겼을 두 가지, 곧 쓸모와 만족을 함께 안겨 주는 까닭에, 그와 알고 지내게 되어 반가운 날이 언제든 올 수 있듯이, 어떤 대화도, 어떤 인간관계도, 언젠가 우리가 거기서 얼마간의 이득을 얻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차 위에서라도 보면 흥미로울 그림들에 관해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 한 말은 사실이 아니었으나, 그 속에는 훗날 내게 값진 것이 될 진실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녀의 입에서 인용되는 것을 들은 빅토르 위고의 시구들은, 인정하건대, 그가 한낱 새로운 인간 이상의 무엇이 되기 이전 시기의, 곧 그가 진화의 순서에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당시 존재하던 어떤 것보다도 복잡한 기관을 갖춘 하나의 문학적 종을 밝혀내기 이전 시기의 것이었다. 이 초기 시들에서 빅토르 위고는 아직 사색가이니, 자연이 그러하듯 사색의 양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 그러하다. 그 무렵 그는 자신의 ‘사상’을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공작이 그 낱말을 쓰던 뜻과 거의 같았다. 공작은 게르망트에서 열리는 자신의 큰 모임의 손님들이 방명록에 서명 밑에 철학적이고 시적인 소회를 덧붙이는 것을 시대에 뒤진, 성가신 짓으로 여겨, 처음 온 이들에게 사정하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일러 두곤 했다. “이보게, 이름은 적되, 부디 ‘사상’은 사양하겠네!” 그런데 게르망트 부인이 초기 위고에게서 감탄한 것은 바로 빅토르 위고의 이 ‘사상’이었다 (그 ‘사상’은 Légende des Siècles에서는, 바그너의 후기 작풍에서 ‘가락’이며 ‘선율’이 사라진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온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 시구들은 감동적이었고, 이미 그 둘레에서는, 그 형식이 아직 훗날에야 비로소 얻게 될 깊이를 지니지는 못했음에도, 굽이치는 낱말의 물결과 풍부하게 분절된 운율이 그것들을, 이를테면 코르네유에게서 찾아볼 법한 시구들과는 비할 바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시구들에서는, 띄엄띄엄 나타나고 절제되어 그만큼 더 감동적인 낭만주의가, 그럼에도 삶의 육체적 원천에까지는 조금도 스며들지 못했고, 관념이 잠재해 있는 그 무의식적이고 일반화할 수 있는 유기체를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껏 위고의 후기 시집들에만 나를 가두어 온 것이 잘못이었다. 물론 게르망트 부인이 자신의 대화를 꾸미는 데 쓰던 것은 초기 시집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한 줄의 시구만 따로 떼어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끄는 힘은 열 배로 커진다. 이 만찬 동안 내 마음에 들어오거나 되돌아온 시구들은 이번에는 저희가 자석이 되어, 평소 그것들이 박혀 있던 시편들을 어찌나 세차게 제게로 불러들이던지, 자석이 된 내 두 손은 Orientales와 Chants du Crépuscule가 함께 묶인 그 시집으로 손을 끌어당기는 힘에 마흔여덟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나는 프랑수아즈의 하인이 내 Feuilles d’Automne 한 부를 제 고향 마을에 선물해 버린 것을 저주하며, 한시도 지체 없이 그를 내보내 다른 한 부를 구해 오게 했다. 나는 이 시집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그녀가 그 시구들을 적셔 놓은 빛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르망트 부인이 인용하는 것을 들었던 그 시구들을 문득 마주쳤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이 모든 이유로, 공작부인과의 대화는 어느 시골 저택의 서재에서 우리가 하게 되는 발견들을 닮아 있었다. 시대에 뒤지고, 온전치 못하며, 정신을 길러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거의 다 빠져 있으나, 이따금 우리에게 진기한 정보 한 조각을, 이를테면 우리가 몰랐던 어느 아름다운 구절의 인용을 건네주는 그런 발견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훗날 그것을 알게 된 것이 어느 지체 높은 이의 당당한 저택 덕분임을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발자크가 Chartreuse에 붙인 서문이나, 주베르의 미간행 서한 몇 통을 찾아낸 까닭에, 그곳에서 우리가 보낸 삶의 가치를 부풀려 여기고 싶어지니, 단 하룻저녁의 이 뜻밖의 횡재 때문에 그 삶의 메마른 경박함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교계가 처음 순간에는 내 상상이 기대한 것을 내어 주지 못했고,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그 차이보다는 다른 모든 세계와 공유하는 것으로써 나를 놀라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그럼에도 그것은 차츰차츰 자못 남다른 무엇으로서 내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대귀족은 우리가 농부들에게서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땅에 관한 온갖 것, 오래전 사람들이 살던 방식대로의 저택들, 옛 관습들, 요컨대 돈의 세계가 까맣게 모르는 온갖 것으로 꾸며져 있다. 제 포부에서 아무리 온건한 귀족이라 해도 마침내 자기가 사는 시대를 따라잡았다 치더라도, 그의 어머니며 삼촌들이며 대고모들은, 그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오늘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삶의 조건과 그를 이어 준다. 동시대 어느 주검이 놓인 빈소에서, 게르망트 부인은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것들을 굳이 짚어 내지는 않았겠지만 즉각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녀는 장례식에서, 여자들을 위해 따로 치러야 할 특정한 의식이 있건만 여자들이 남자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관보(棺褓)로 말하자면, 블로크라면 필시 그것이 관에만 쓰이는 것이라 여겼을 텐데, 장례 기사에서 읽게 되는 관보를 받쳐 드는 이들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르망트 씨는 어릴 적에 메이넬 씨의 혼례에서 그것을 받쳐 드는 것을 본 때를 기억할 수 있었다. 생루는 카리에르의 그림들과 현대풍 가구를 사려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신의 ‘가계수’며, 부이용가의 옛 초상화들이며, 루이 XIII세의 편지들을 팔아 버린 반면, 게르망트 씨와 부인은, 예술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 아마도 미미한 몫밖에 하지 못했을, 그리고 그들 자신을 전보다 더 하찮게 만들어 놓은 어떤 정서에 이끌려, 그 놀라운 불 가구를 그대로 간직해 두었으니, 그것은 예술가에게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인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문인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화에 매료되었을 것이니, 그 대화는 그에게, 굶주린 사람은 함께 있어 줄 또 다른 굶주린 사람이 필요치 않은 법이므로, 나날이 점점 더 잊혀 가는 그 모든 표현들의 살아 있는 사전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생조제프 크라바트니, 성모께 바쳐진 아이들이니 하는 것들로, 오늘날에는 스스로 과거의 다정하고 자애로운 수호자를 자처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표현들이었다. 작가가 다른 작가들 사이에서보다 그들 사이에서 더 크게 느끼는 그 즐거움은 위험이 없지 않으니, 그가 과거의 것들이 그 자체로 매력을 지녔다고 믿게 되어, 그것들을 고스란히 제 작품 속으로 옮겨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 작품은 사산된 것이 되어 권태를 풍기는데, 작가는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건 진실이니까 매력적인 거야. 사람들이 실제로 저렇게 말하니까.” 게다가 이 귀족적인 대화들은, 게르망트 부인의 경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프랑스어로 이루어졌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 대화들은, 생루가 즐겨 쓰던 ‘노자성체(路資聖體)’니 ‘우주적’이니 ‘무녀(巫女)적’이니 ‘탁월한’이니 하는 낱말들에 공작부인이 터뜨리는 웃음을, 그의 빙 가구에 대한 웃음과 마찬가지로, 허용될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국 이 점에서, 산사나무 앞에서, 혹은 마들렌 한 조각을 맛보았을 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달리, 게르망트 부인의 집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내게 낯선 것으로 남았다. 그것들에 그저 육체적으로만 사로잡혔던 내 안으로 잠시 들어온 그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질의 것이었기에, 어서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인 듯싶었다. 나는 신탁을 전하는 무녀처럼 마차 좌석에서 몸을 뒤틀었다. 나는 또 다른 만찬을, 거기서 나 자신이 게르망트 부인에게 일종의 폰 대공 같은 존재가 되어 그 이야기들을 되풀이할 수 있을 만찬을 고대했다. 그동안 그 이야기들은, 내가 혼자 그것들을 더듬더듬 뇌는 사이 내 입술을 떨리게 했고, 나는 원심력에 실려 달아나는 정신을 되불러 모으려 애썼으나 헛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차피 대화가 없는 것을 소리 내어 혼잣말함으로써 메우던 그 마차 안에서 그 이야기들의 온 무게를 더 이상 혼자 지고 있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열띤 조바심에 사로잡혀, 샤를뤼스 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할 말을 죄다 미리 되뇌면서 그가 내게 할 법한 말에는 거의 생각이 미치지 않던 긴 독백에 잠긴 채, 하인이 나를 안내해 들인 어느 살롱에서 기다리게 된 그 시간을 온통 보냈으니, 나는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에는 마침 너무나 들떠 있었다. 나는 내가 애타게 들려주고 싶던 이야기들을 샤를뤼스 씨가 들어 주기를 어찌나 절실히 바랐던지, 이 집 주인이 어쩌면 잠자리에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가 나의 말 취기를 혼자 삭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실망했다. 사실 나는 방금, 내가 이 방에서 이십오 분이나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들이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린 참이었다. 이토록 오래 기다렸건만, 나는 그 방에 대해 기껏해야 아주 넓고, 초록빛이 감돌며, 수많은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 것밖에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욕구는 사람에게서 듣는 것뿐 아니라 사물을 보는 것까지 앗아 가니, 이 경우 내 바깥 정경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은 곧 내 내면 상태에 대한 묘사나 다름없다. 나는 누구든 붙잡아 보려고, 아무도 찾지 못하면 현관으로 되돌아가 나를 내보내 달라 하려고 방을 나서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의 모자이크 쪽매널을 몇 걸음 걸었을 때, 하인 하나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남작님께서는 저녁 내내 손님을 맞고 계십니다, 손님,” 그가 내게 말했다. “아직도 여러 분이 뵈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남작님께서 손님을 맞으시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습니다, 벌써 비서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올렸고요.” “아니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남작님과 약속이 있긴 했으나 벌써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오늘 저녁 바쁘시다면 다른 날 다시 오면 됩니다.” “아, 아닙니다, 손님,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하인이 외쳤다. “남작님께서 언짢아하실 겁니다.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샤를뤼스 씨의 하인들과 그들이 주인에게 바치는 헌신에 대해 들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콩티 대공에 대해 그러하듯 그가 대신에게만큼이나 하인에게도 기쁨을 주려 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었으나, 그는 그들에게 청하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일종의 개인적인 은총으로 만드는 재주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밤이면, 그의 시종들이 공손한 거리를 두고 그의 둘레에 모여 서면, 그가 그들을 한 번 죽 훑어본 뒤 “쿠아녜, 촛대를!” 혹은 “뒤크레, 잠옷을!” 하고 말하면, 나머지 시종들은 부러움에 찬 웅얼거림과 더불어, 주인의 총애로 뽑힌 자를 시샘하며 물러가곤 했다. 실제로 서로를 견디지 못하던 두 시종은, 남작이 여느 때보다 일찍 위층으로 올라가면, 그 저녁의 촛대나 잠옷 시중을 맡게 되기를 바라며, 더없이 궁색한 핑계를 대고 남작에게 전갈을 가지고 감으로써 저마다 제 경쟁자에게서 그 총애를 낚아채려 하곤 했다. 그가 어느 한 시종에게 그 직무의 범위를 벗어난 어떤 화제로 직접 몇 마디를 건네기라도 하면, 더욱이 겨울에 정원에서, 제 마부 하나가 감기에 걸린 것을 알고 십 분쯤 지나 그에게 “모자를 쓰게!” 하고 말하기라도 하면, 다른 시종들은 그에게 내려진 그 크나큰 영예를 시샘하여 두 주 동안이나 그 사내에게 다시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십 분을 더 기다렸고, 그런 뒤에, 남작님께서 피곤하셔서 며칠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았던 아주 중요한 분들 여럿마저 돌려보내셔야 했으니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를 받고서, 그들은 나를 그의 앞으로 들여보냈다. 샤를뤼스 씨가 제 둘레에 꾸며 놓은 이 정경은 그의 형 게르망트의 소박함보다 내게는 훨씬 덜 인상적으로 보였으나, 이미 문이 열려 있어, 나는 중국풍 실내복 차림에 목을 드러낸 채 소파에 누워 있는 남작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눈길을 끈 것은, 거울처럼 그 보풀이 번쩍이는 높다란 모자였는데, 그것은 마치 남작이 방금 들어오기라도 한 듯 망토와 함께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시종이 물러갔다. 나는 샤를뤼스 씨가 나를 맞으려 일어서리라 여겼다. 그는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냉혹한 두 눈을 내게 고정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저녁 인사를 했다. 그는 손을 내밀지도, 대답하지도, 내게 앉으라 청하지도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는 무례한 의사에게 묻듯이, 내가 계속 서 있어야 하는지를 그에게 물었다. 나는 아무 악의 없이 이 말을 했으나, 내 말은 샤를뤼스 씨의 얼굴에 어린 차가운 분노를 더욱 돋우기만 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알지 못했으니, 시골의 제 집인 샤를뤼스 성에서, 그가 만찬 뒤에 (어찌나 왕 노릇을 즐겼던지) 흡연실 안락의자에 늘어져서는, 손님들을 제 둘레에 선 채로 두는 버릇이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는 한 사람에게 불을 청하고, 또 한 사람에게 시가를 권한 다음, 몇 분쯤 지나서는 “아니 다르장쿠르, 왜 앉지 않소? 의자를 당겨 앉으시오, 이보게” 하는 식으로 말하곤 했으니, 그들이 앉아도 좋다는 허락이 바로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일깨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세워 두었던 것이다. “루이 XIV세 의자에 앉으시오,” 그는 내게 앉기를 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자기에게서 더 멀리 물러나게 하려는 듯, 위압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나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안락의자 하나를 잡았다. “허! 저것을 루이 XIV세 의자라 부른단 말이지? 참 잘도 배웠구먼,” 그가 비웃으며 소리쳤다. 나는 어찌나 얼떨떨했던지, 마땅히 그랬어야 할 대로 집을 나서지도, 그가 바라던 대로 자리를 옮기지도 못한 채 꼼짝하지 않았다. “선생,” 이어 그가 내게 말했는데, 낱말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으면서, 그중 더 무례한 낱말들 앞에는 자음을 겹으로 얹어 발음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분의 청으로 내가 황송하게도 허락한 이 회견은, 우리 관계의 마지막 지점이 될 것이오. 내 그대에게 숨기지 않겠소, 나는 더 나은 것을 바랐다는 것을! 내가 그대에게 얼마간 호감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아마 나는 낱말의 뜻을 조금 억지로 늘리는 셈이 될 터인데, 그것은, 낱말의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할 때조차, 오로지 제 자신에게 마땅한 존중을 위해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오. 그렇지만 나는,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뜻에서의 호의라면, 내가 느낀 것도, 내가 보여 주려 한 것도 넘어서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나는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그대가 아직 발베크에 있을 때, 그대가 나를 믿어도 좋다는 것을 넌지시 알린 바 있소.” 샤를뤼스 씨가 발베크에서 어떤 욕설의 폭포와 함께 나와 헤어졌는지를 기억하던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라는 몸짓을 했다. “뭐라고!” 그가 분노에 차 소리쳤는데, 과연 경련하며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은, 폭풍우 치는 아침에 여느 때의 미소 짓는 수면 대신 물보라와 거품 속에서 몸부림치는 천 마리 뱀을 보게 되는 바다만큼이나 그의 평소 얼굴과 달랐다, “그대는 나를 기억하라던 내 전언을, 거의 선언이나 다름없던 그것을 받지 못했다고 시치미를 뗄 셈이오? 내가 그대에게 보낸 책 표지 둘레에 장식이라고는 무엇이 있었소?” “무늬를 새긴 장식과 함께 아주 예쁘게 엮인 화환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허!” 그가 경멸하는 태도로 대꾸했다, “요즘 젊은 프랑스인들은 제 나라의 보물을 도통 모르는군. Walküre를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젊은 베를린 사람이라면 무슨 소리를 듣겠소? 게다가 그대는 보고도 못 보는 눈을 가진 게 틀림없소, 바로 그 보물 앞에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고 그대 입으로 내게 말했으니 말이오. 그대가 양식에 대해 아는 만큼이나 꽃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는 걸 알겠소. 양식을 안다고 우기지 마시오,” 그가 분노에 차 새된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대는 자기가 무엇에 앉아 있는지조차 내게 말하지 못하잖소. 그대는 제 궁둥이한테 집정관 양식 chauffeuse를 루이 XIV세 베르제르랍시고 내주고 있소. 그러다 언젠가는 빌파리지 부인의 무릎을 뒷간 의자로 착각할 테고, 그때는 아주 볼만한 꼴을 내겠구려. 이것도 꼭 마찬가지요. 그대는 베르고트 책의 장정에서, 발베크 성당 문 위에 새겨진 물망초 상인방(上引枋)조차 알아보지 못했소. 이보다 더 분명하게 그대에게 이렇게 말할 길이 어디 있겠소, ‘나를 잊지 마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