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어쩌면 그녀를 “오리안”이라 부르지 않음으로써, 그는 그녀와 나 사이에 더 큰 거리를 두고자 했는지 모른다) “매력적인 사람이오, 그대가 짐작했을 그 무엇보다도 훨씬 뛰어나지요. 그러나 결국 그녀는 자기 사촌과는 견줄 수조차 없소. 대공비는, 시장 바닥 사람들이 메테르니히 대공비란 이러이러했으려니 상상할 법한 바로 그런 사람이오, 하기야 늙은 메테르니히는 자기 아내가 바그너를 세상에 알렸다고 믿었는데, 그건 그녀가 빅토르 모렐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게르망트 대공비는, 아니 그보다는 그녀의 어머니는, 그 사람 본인을 알았소. 그것만으로도 남다른 일이지요, 그 부인의 믿기 힘든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오. 게다가 그 에스테르 정원만 해도 어떻고!” “그것을 볼 수는 없나요?” “안 되오, 초대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나서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아무도 초대하지 않소.” 그러나 이 제안이라는 미끼를 나에게 던지자마자 곧바로 거두어들이며, 그는 손을 내밀었으니, 우리가 내 집 문 앞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내 역할은 다 끝났소, 선생, 그저 이 몇 마디만 덧붙이겠소. 어쩌면 언젠가 다른 사람이, 내가 그리했듯, 그대에게 자기 애정을 내밀지도 모르오. 지금의 이 본보기가 그대에게 가르침이 되게 하시오. 그것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오. 애정이란 언제나 소중한 것이오. 이 삶에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혼자서는 청할 수도, 행할 수도, 바랄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것들이 있기에 홀로는 이룰 수 없는 그 일을, 사람은 함께라면 이룰 수 있소, 그것도 발자크의 이야기에서처럼 ‘13인’일 필요도, 삼총사에서처럼 ‘넷’일 필요도 없이 말이오. 그럼 잘 있으시오.”
그는 피곤했던 데다 달빛을 보러 가려던 생각을 접었던 모양인지, 자기 마부에게 집으로 몰라고 일러 달라 내게 부탁했다. 곧바로 그는 마음이라도 바뀐 듯 홱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시를 내린 뒤였고, 더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이번엔 초인종을 울리러 건너갔다, 한 시간 전만 해도 그토록 골몰하던, 그러나 그의 뜻밖의 압도적인 응대에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이야기들, 곧 독일 황제와 보타 장군에 관한 이야기들을 샤를뤼스 씨에게 하려던 참이었다는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은 채로.
방에 들어서면서 나는 책상 위에서, 프랑수아즈의 젊은 하인이 자기 친구 하나에게 써 놓고는 거기 그대로 놓아둔 편지 한 통을 보았다. 어머니가 집을 비운 지금, 그가 서슴없이 누리지 못할 방종이란 없었다. 봉투도 없이 내 앞에 펼쳐진 채, (이것이 나의 유일한 변명인데) 마치 스스로 내 눈앞에 제 몸을 내미는 듯한 그 편지를 읽는 방종을 저지른 것으로 치면, 우리 둘 가운데 더 나무람을 받아야 할 쪽은 나였다.
“친애하는 벗이자 사촌에게,
“이 편지가 자네를 건강히 만나기를 바라며, 젊은 식구들 모두도 그러하기를, 그중에서도 아직 만나 뵙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으나 내 대자인 까닭에 자네들 누구보다 더 아끼는 어린 대자 조제프도 그러하기를 바라네, 마음의 이 유물들 그것들에도 저마다의 티끌이 있으니, 그 축복받은 유해 위에 우리 손을 얹지 마세. 게다가 친애하는 벗이자 사촌이여, 내일 자네와 자네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 사촌인 마리가, 저 높은 곳 돛대에 매달린 뱃사람처럼, 둘 다 바다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처박히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이 삶이란 그저 어두운 골짜기일 뿐이니 말일세. 친애하는 벗이여, 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 내 주된 일거리가, 이것이 자네를 놀라게 하리라 나는 확신하는데, 이제는 시(詩)라는 것을,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그것을 말이네, 사람이란 어떻게든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친애하는 벗이여, 내가 자네의 지난 편지에 여태 답하지 않았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게, 용서 대신 망각이 오게 하세나. 자네도 알다시피, 마님의 어머니께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고통이 어찌나 그분을 지치게 했던지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의사를 보셨다네. 그분의 장례일은 대단한 날이었으니, 나리의 친척이 죄다 떼 지어 몰려왔고 장관도 여럿 왔더라네. 묘지까지 가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이 이야기에 자네들 마을 사람들은 죄다 눈이 휘둥그레질 걸세, 미슈 할멈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결코 그만큼은 해 주지 않을 테니 말이야. 하여 앞으로 남은 내 삶이란 그저 하나의 긴 흐느낌일 수밖에 없네. 나는 요즘 배운 오토바이로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네.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여, 내가 그렇게 느닷없이 전속력으로 레제코르스에 나타난다면 자네들 뭐라 하겠나. 그러나 그 대목에 대해서는 나 더는 입 다물지 않으려네, 슬픔의 광란이 그 이성을 휩쓸어 가 버리는 것이 느껴지니 말이야. 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어울려 지내고 있으니, 우리네 무지한 마을에서는 그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그런 사람들과 말이네. 그러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라신의 작품, 빅토르 위고의 작품, 슈느돌레의 『선집』, 알프레드 드 뮈세의 작품을 보내려 하네, 내가 세상 빛을 본 그 고장을, 어김없이 죄악으로 이끄는 무지에서 고쳐 주고 싶기 때문일세. 자네에게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 긴 날갯짓에 지친 펠리컨처럼, 자네에게, 또한 자네 아내와 내 대자와 자네 누이 로즈에게 나의 지극한 안부를 보내네. 그녀를 두고 이런 말이 결코 나오지 않기를 비네, ‘그리고 로즈, 그녀는 장미가 사는 만큼만 살았네’, 빅토르 위고가, 아르베르의 소네트가, 알프레드 드 뮈세가 한 말처럼, 그 모든 위대한 천재들이, 바로 그 때문에 잔 다르크처럼 활활 타오르는 화형대 위에서 죽어야 했던 그들처럼 말일세. 자네의 다음 편지를 어서 받기를 바라며, 형제의 입맞춤과도 같은 나의 입맞춤을 받아 주게.
우리는 우리에게 미지의 낯선 무언가를 표상하는 모든 형태의 삶에, 아직 깨어지지 않은 마지막 환상에 이끌린다. 그럼에도, 샤를뤼스 씨가 그 신비로운 말들로써 나로 하여금 게르망트 대공비를, 내가 아는 그 누구와도 다른 비범한 존재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해도, 그 말들만으로는 내가 빠져든 그 아연함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았으니, 그 아연함에는 이내, 내가 초대받지도 않은 어느 집 문 앞으로 나를 보내려는 누군가가 꾸민 고약한 장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뒤따랐다, 공작부인과 저녁을 든 지 두어 달쯤 지나 그녀가 칸에 가 있는 동안, 겉모양만으로는 무슨 예사롭지 않은 것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던 봉투 하나를 뜯고서, 카드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말을 읽었을 때 말이다. “게르망트 대공비, 결혼 전 바이에른 공작녀, ○○일에 손님을 맞습니다.” 물론 게르망트 대공비의 집에 초대받는 것은, 사교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공작부인과 저녁을 드는 것보다 조금도 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내 얕은 문장학 지식은 대공이라는 칭호가 공작이라는 칭호보다 위가 아님을 이미 내게 가르쳐 준 터였다. 게다가 나는, 사교계 여인의 지성이란 것이 샤를뤼스 씨가 우겨 대듯 자기 동류의 그것과 그토록 본질적으로 딴판일 수도, 사교계의 다른 어느 여인의 그것과 그토록 딴판일 수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일렀다. 그러나 나의 상상력은, 얼마든지 지니고 있었을 자연법칙에 관한 지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원근의 효과를 그려 내는 일에 몰두한 엘스티르처럼,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 것을, 다시 말해 그 이름이 그것에게 보여 준 것을 나에게 그려 보였다. 그런데 내가 공작부인을 만나기도 전부터, 대공비라는 칭호가 앞에 붙은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마치 어떤 음(音)이나 색이나 양(量)이 그것을 다스리는 수학적 혹은 미학적 기호에 의해 둘레의 값들로부터 깊이 변형되듯이, 이미 내게 전혀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그 칭호를 대하면 사람의 생각은 절로 루이 XIII세와 루이 XIV세 시절의 회고록으로, 영국 궁정으로,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도말 공작부인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나는 게르망트 대공비의 도시 저택을, 롱그빌 공작부인과 대(大) 콩데가 얼마간 드나드는 곳으로 상상했으니, 그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언젠가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일을 몹시 있을 법하지 않게 만들었다.
샤를뤼스 씨가 내게 들려준 많은 것들은 나의 상상력에 세찬 박차를 가했고, 게르망트 부인의 집에서 현실이 나를 얼마나 실망시켰던가를 상상력이 잊게 만들면서 (이 점에서 사람들의 이름은 지명과도 같다), 상상력을 오리안의 사촌 쪽으로 돌려세웠다. 하기야 샤를뤼스 씨가 이따금 사교계 사람들의 상상 속 가치와 다양함에 관해 나를 그르치게 이끈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이 이따금 그르치게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고, 그림도 그리지 않았으며, 무엇 하나 진지하고 철저하게 읽지조차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사교계 사람들보다 몇 등급은 더 뛰어났던 그는, 자기 대화의 소재를 그들과 그들이 펼쳐 보이는 구경거리에서 길어 올렸으되,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해받는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로서 말하는 그가 기껏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교계 사람들의 허울뿐인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 보일 상대는 오직 예술가들뿐이었으니, 그들에 대해 그는 에스키모들 사이의 순록이 맡는 구실을 한다고 할 만했다. 이 귀중한 짐승은 그들을 위해, 그들 스스로는 찾아내지도 이용하지도 못할 이끼며 지의류를 헐벗은 바위에서 뜯어내는데, 그것들은 일단 순록의 몸을 거쳐 소화되고 나면, 저 극북의 주민들에게는 자양이 되는 한 끼 양식이 된다.
여기에 나는 이렇게 덧붙일 수 있으리라, 샤를뤼스 씨가 그려 보이는 사교계의 그림들은 그의 사나운 증오와 격정적인 애정이 뒤섞임으로써 넘치는 생기로 살아 움직였다고. 그 증오는 주로 젊은 남자들을 겨누었고, 그 흠모는 주로 어떤 여자들이 불러일으켰다.
이들 가운데 게르망트 대공비를 샤를뤼스 씨가 가장 드높은 왕좌에 앉혔다 해도, 자기 사촌이 거하는 그 “다가갈 수 없는 알라딘의 궁전”에 관한 그의 신비로운 말들만으로는 나의 아연함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이런 인위적인 확대 속에는, 나중에 이야기해야 할 갖가지 주관적 관점에서 비롯되는 몫이 무엇이든 그것을 접어 두더라도, 이 사람들 저마다에게 어떤 객관적 실재가 있으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남는다. 하기야, 정작 그 이야기가 나오면, 어찌 달리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울려 지내는, 그러면서도 우리 꿈과는 그토록 닮은 데가 없는 그 인간 군상은, 그럼에도 저 회고록에서, 저명한 이들의 서한집에서 우리가 묘사된 것을 보고 알고 싶은 마음을 품었던 바로 그 인간 군상이다. 만찬에서 만난, 도무지 보잘것없는 그 노인이야말로, (1870년 전쟁을 다룬 어느 책에서) 우리가 감동에 젖어 읽었던, 프리드리히카를 공에게 보낸 그 오만한 편지를 쓴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가 만찬 자리에서 지루해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 상상력이 우리와 벗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그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술의 그토록 값진 후원자였던 퐁파두르 부인을 알고 지냈으면 하고 바라지만, 정작 그녀와 함께였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에게리아들 틈에서만큼이나 지루했을 것이다, 그 여인들이 어찌나 시시한지 우리는 그 집에 두 번째로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차이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남는다. 사람은 결코 서로 똑같지 않으며, 이를테면 똑같은 우정의 층위에서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처신 방식은, 끝에 가서는 보상이 되어 주는 차이들을 드러낸다. 몽모랑시 부인과 알고 지낼 무렵, 그녀는 나에게 언짢은 소리 하기를 좋아했으나, 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할 때면, 그것을 실속 있게 얻어 내 주려는 바람에서, 대가를 따지지도 않고 자기가 쥔 신용을 죄다 아낌없이 쏟아붓곤 했다. 반면에 어떤 다른 여인은, 이를테면 게르망트 부인은, 결코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 들지 않았고, 나를 두고는 나를 기쁘게 할 만한 말 외에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도덕적으로 게르망트가의 그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이루던 그 온갖 우정의 표시를 나에게 아낌없이 퍼부었으나, 정작 내가 그녀에게 그 이상으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청했더라면 그것을 얻어다 주려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니, 마치 저 시골 저택들에서 자동차 한 대와 전용 하인 하나까지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서도, 정작 사과주 한 잔은 얻을 도리가 없는 것과 같았으니, 연회 준비에 그런 것은 미리 마련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참된 벗은 어느 쪽이었을까, 늘 나를 성가시게 하기를 그토록 반기면서도 늘 그토록 선뜻 도울 채비가 되어 있던 몽모랑시 부인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 가해졌을지 모를 아주 사소한 결례에도 마음 아파하면서도 나에게 도움이 될 아주 사소한 수고 하나 할 줄 모르던 게르망트 부인이었을까? 인간 정신의 유형이란, 문학에서뿐 아니라 사교계에서도 그토록 갖가지이고 그토록 상반되어서, 서로를 경멸할 권리를 지닌 이들이 보들레르와 메리메뿐인 것은 아니다. 이런 특유함들은 저마다의 사람 안에 태도와 말과 행동의 한 체계를 끊임없이 빚어내는데, 그것이 어찌나 앞뒤가 맞고 어찌나 전제적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 앞에 있을 때면 그의 체계가 우리에게는 나머지 모두의 것보다 우월해 보인다. 게르망트 부인과 함께 있으면, 그녀의 정신 유형에서 정리(定理)처럼 연역된 그녀의 말들이, 나에게는 도무지 달리 할 수 없는 유일한 말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몽모랑시 부인은 어리석으며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온갖 것에 마음을 활짝 열어 둔다고 내게 말할 때, 또는 그 부인의 무슨 심술궂은 말을 전해 듣고서 “그게 바로 자네가 착한 여자라 부르는 거고, 내가 괴물이라 부르는 거지” 하고 말할 때, 속으로는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맞서 있는 이 현실의 폭정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새벽을 더없이 희미한 기억만큼이나 창백하게 만들어 버리는 저 등불빛의 우세는, 내가 게르망트 부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면 사라져 버렸으니, 그럴 때면 어떤 다른 부인이, 자신을 나와 같은 층위에 놓고 공작부인을 우리 둘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것으로 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리안은 정말이지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어,” 또는 심지어 (게르망트 부인 앞에서라면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말,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자신이 그 반대를 그토록 소리 높여 떠들어 대곤 했으니) “오리안은 속물이야,” 하고 말이다. 그 어떤 수학적 절차로도 다르파종 부인과 몽팡시에 부인을 서로 견줄 수 있는 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었던 만큼, 누군가 내게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다른 쪽보다 뛰어나 보이느냐고 물었다 한들, 나로서는 대답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게르망트 대공비의 살롱을 두드러지게 하는 여러 특징 가운데 가장 흔히 입에 오르내리던 것은 어떤 배타성이었으니, 이는 일부는 대공비의 왕족 혈통에서, 그러나 무엇보다 대공의 귀족적 편견이 지닌, 거의 화석처럼 굳어 버린 완고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편견을 두고 공작과 공작부인은 내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비웃곤 했는데, 그런 만큼 오로지 왕족과 공작만을 셈에 넣고, 만찬 때마다 루이 14세 치하였다면 자기가 마땅히 앉았을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동을 벌이던, 게다가 역사와 계보에 관한 방대한 학식 덕분에 그 자리가 어디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던 이 남자가 나를 야회에 초대했으리라고는 그 어느 때보다 있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사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공작 부부를 그 사촌들과 구별 짓는 차이를 공작 부부의 장점으로 돌렸다. “공작 부부는 훨씬 현대적이고 훨씬 총명하지, 저쪽 부부처럼 조상의 문장이 몇 개나 되느냐 따위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집안은 사촌들 집안보다 삼백 년은 앞서 있어”라는 것이 흔히 오가는 말이었고, 그 말을 떠올리자 나는 초대장을 들여다보며 몸이 떨렸으니, 그 말들은 초대장이 어떤 짓궂은 장난꾼이 내게 보낸 것일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공작 부부가 여전히 칸에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받은 초대가 진짜인지를 그들에게 알아보려 했을 것이다. 내가 빠져 있던 이 의심의 상태는, 한동안 내가 스스로 우쭐대며 짐작했던 것과 달리, 사교계 인사라면 느끼지 않았을 어떤 감정, 따라서 작가라면 설령 글 쓰는 일과는 별개로 사교계 계급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철저히 “객관적”이기 위해, 또 각 계급을 저마다 다르게 그려 내기 위해 재현해 두어야 할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바로 며칠 전 어느 매력적인 회고록 한 권에서, 게르망트 대공비의 초대장이 내게 겪게 한 것과 비슷한 망설임의 기록을 우연히 마주쳤다. “조르주와 나는”(혹은 “엘리와 나는”, 지금 그 책이 손에 없어 정확한 대목을 확인하지는 못한다) “들레세르 부인 댁에 초대받기를 어찌나 간절히 바랐던지, 막상 부인에게서 초대장을 받고는 저마다 따로, 우리가 만우절 장난의 희생자가 아닌지 확인해 보는 편이 신중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오송빌 백작(브로이 공작의 딸과 결혼한 바로 그 사람)이고, “저마다 따로” 자신이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다른 젊은이는, 그가 조르주로 불리느냐 엘리로 불리느냐에 따라, 오송빌 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벗 가운데 하나, 곧 다르쿠르 씨이거나 샬레 대공이다.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 야회가 열리기로 된 날, 나는 공작 부부가 막 파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공비의 무도회 때문에 그들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고, 사촌 하나가 위중했던 데다, 게다가 공작은 같은 날 밤 열릴 가장 무도회에 한껏 마음을 빼앗겨 있었으니, 그 자리에서 자신은 루이 11세로, 아내는 바이에른의 이자보로 분장해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침 공작부인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부는 일찍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우선 좋은 감시 초소로 여겨지던 작은 방에서 그들의 마차가 도착하기를 지켜보았다. 사실 내가 고른 관측소는 유난히 잘못된 선택이어서 우리 집 안뜰조차 겨우 알아볼 정도였지만, 대신 여러 다른 집의 안뜰이 들여다보였고, 그것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으면서도 한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가들에게 그토록 매혹적으로 다가온, 여러 집을 한꺼번에 굽어보는 그런 조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베네치아만이 아니다. 파리에서도 사정은 똑같다. 내가 베네치아를 아무렇게나 끌어댄 것도 아니다. 파리의 어떤 가난한 동네들은, 아침이면 햇빛이 가장 선명한 분홍빛과 가장 밝은 붉은빛을 입히는 높다랗고 넓은 굴뚝들과 더불어, 바로 베네치아의 가난한 동네들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그것은 집들 위로 온통 피어나는 하나의 정원이요, 어찌나 갖가지 빛깔로 피어나는지, 도시 꼭대기에 심긴 그 정원을 델프트나 하를럼의 어느 튤립 애호가의 정원이라 부를 만하다. 게다가 집들이 서로 바싹 붙어, 창들이 공동의 안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까닭에, 저마다의 여닫이창은 하나의 액자가 되어, 그 안에서 어느 요리사가 아래 땅바닥을 꿈꾸듯 내려다보며 앉아 있고, 좀 더 멀리서는 한 소녀가, 그늘 속에서 겨우 알아볼 만한 마녀의 얼굴을 한 노파에게 머리를 빗기고 있다. 이렇듯 저마다의 안뜰은, 그 사이의 온갖 소리를 지워 버리고, 창이 닫혀 유리가 끼워진 일련의 직사각형 액자 속에 일련의 소리 없는 몸짓만을 보이게 함으로써, 이웃한 집에게 줄지어 걸린 백 점의 네덜란드 그림을 늘어놓은 전시회를 마련해 준다. 물론 게르망트 저택에서는 그와 똑같은 조망을 얻을 수는 없었으나, 여기서도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으니, 특히 내가 자리 잡은 그 기묘한 삼각측량점에서 그러했다. 그 지점에서 나의 시선은, 가파른 비탈 위, 플라삭 후작부인과 트렘 부인의 저택 앞에 놓인 비교적 어렴풋한 땅뙈기들이 이루어 낸 먼 언덕보다 가까운 그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았는데, 그 두 부인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게르망트 씨의 (가장 지체 높은 부류에 드는) 사촌들이었다. 나와 이 집(그것은 그들의 아버지 브레키니 씨의 집이었다) 사이에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향으로 늘어선 나지막한 건물 덩어리들밖에 없었는데, 그것들은 시야를 가로막지는 않으면서도 비스듬한 원근으로 거리를 더 벌려 놓았다. 프레쿠르 후작이 마차를 넣어 두던 마차고의 붉은 기와를 인 작은 탑은 과연 좀 더 높이 솟은 첨탑으로 끝났으나, 어찌나 가느다란지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고, 산기슭에 외따로 솟아오른 스위스의 그림 같은 옛 건물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 눈이 머문 이 모든 어렴풋하고 제각각인 지점들은, 실제로는 꽤 가까우면서도 알프스 풍경 속에서처럼 허깨비같이 멀어 보이는 플라삭 부인의 집을, 마치 여러 거리나 잇단 산기슭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라도 한 듯 겉보기에 더욱 멀리 밀어 놓았다. 수정 조각처럼 햇빛에 반짝이던 그 집의 커다란 격자창들이 방 안 공기를 갈아 넣으려고 활짝 열리면, 층에서 층으로 옮겨 다니며, 또렷이 보이지는 않아도 양탄자를 터는 모습만은 분명한 하인들을 눈으로 좇으면서, 터너나 엘스티르의 풍경화 속에서 생고타르의 서로 다른 높이에 있는 역마차 여행객이나 안내인을 바라볼 때와 똑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틀어박힌 이 자리에서는 게르망트 씨나 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못 볼 위험이 있었으므로, 오후에 다시 감시에 나설 여유가 생기자 나는 그저 계단에 서 있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마차 문이 열리는 것을 놓칠 리 없었으니, 비록 거리 때문에 자그마해진 하인들이 부지런히 청소하는 모습으로 그토록 사람을 홀리던 브레키니-트렘 저택의 알프스 같은 절경은 그 계단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그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 계단에서의 기다림은 내게 그토록 큰 결과를 가져다주고, 이제는 터너풍이 아니라 윤리적인, 그토록 중대한 하나의 장면을 드러내 보이게 될 터였으므로, 그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그들이 집에 돌아온 것을 안 뒤 내가 게르망트가를 찾아간 이야기를 먼저 끼워 넣는 편이 낫겠다. 서재에서 나를 맞아 준 것은 공작 혼자였다. 내가 들어서는데, 눈처럼 새하얀 머리에 가난해 보이는 행색을 하고, 콩브레의 변호사나 할아버지의 여러 벗들이 매던 것 같은 검고 조그마한 넥타이를 두른,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겁먹은 기색의 작달막한 사내가 나오면서, 내게 깊은 절을 연거푸 하고는, 내가 먼저 지나가기 전에는 한사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공작이 서재에서 그의 등에 대고 내가 알아듣지 못할 무언가를 소리쳤고, 사내는 또다시 절로 대답했는데, 공작에게는 그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절은 벽을 향한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전화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부질없는 미소처럼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는 가성의 목소리를 지녔고, 어떤 장사치의 굽실거림으로 내게 새삼 인사를 했다. 하기야 그는 콩브레 출신의 장사치였을 법도 했으니, 그만큼 그는 그 고장의 소박한 사람들, 그 겸손한 노인들의 시골스럽고 낡고 온순한 풍모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곧 오리안을 보게 될 걸세.” 내가 방에 들어서자 공작이 말했다. “스완이 이제 곧 와서, 몰타 기사단 화폐에 관한 자기 책의 교정쇄를 오리안에게 가져다줄 참이거든. 게다가 더 딱한 건, 동전마다 앞뒤 양면을 다 찍은 어마어마하게 큰 사진까지 찍어 왔다는 거야. 그래서 오리안은 저녁 먹으러 나갈 시간까지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일찌감치 옷을 차려입는 편을 택했지. 집 안에 이미 잡동사니가 산더미같이 쌓여 어디에 다 둬야 할지도 모를 판인데, 대체 이 사진은 어디에 처박아야 하나 나 스스로 묻고 있다네. 허나 내 아내가 워낙 사람 좋고, 남을 기쁘게 하기를 너무 좋아해서 말이야. 스완이 로도스에서 찾아낸 메달의 주인공인 그 기사단 총장들의 초상을 한 장에 나란히 놓고 보게 해 달라고 스완에게 청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 게지. 내가 몰타라고 했던가, 로도스일세, 하지만 다 같은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이지. 실은 아내가 거기에 관심을 두는 건 오로지 스완이 그걸 취미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네. 우리 집안은 그 온갖 내력에 깊이 얽혀 있어서, 오늘날에도 자네가 아는 내 아우가 몰타 기사단의 가장 높은 고위직 가운데 하나라네. 허나 내가 그 얘길 다 오리안에게 해 준들, 그녀는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았을 걸세. 반면에, 스완이 성전기사단을 파고들던 연구가(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연구하는 그 열정이란 참으로 놀랍지) 성전기사단의 뒤를 이은 로도스 기사단의 역사로 그를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리안이 대뜸 그 기사들의 초상을 보겠다고 우기기에는 충분했지. 허나 그들은 우리가 직계로 이어받은 키프로스 왕가인 뤼지냥가에 비하면 참으로 하찮은 무리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여태 스완이 그들을 다룬 적이 없으니, 오리안은 뤼지냥가에 관해서는 무엇 하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네.” 나는 내가 찾아온 까닭을 공작에게 곧바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실리스트리 부인과 몽트로즈 공작부인을 비롯한 몇몇 친척이며 벗들이, 저녁 전이면 흔히 집에 있던 공작부인을 찾아왔다가, 그녀가 없자 잠시 공작 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 부인들 가운데 첫 번째인 실리스트리 대공비는, 수수하게 차려입고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태도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다쳤거나 다리를 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는 더없이 기민했다. 그녀는 공작에게, 게르망트 쪽 혈통은 아니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더욱 지체 높은, 얼마 전부터 위중하던 건강이 별안간 더 나빠진 그의 사촌 형제 하나에 관해 안타까운 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공작이, 사촌의 처지를 몹시 가엾어하며 “가엾은 마마! 그토록 좋은 사람인데!”라고 되뇌면서도, 속으로는 낙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음이 뻔히 보였다. 사실인즉 공작이 참석하기로 된 만찬은 그를 즐겁게 했고, 게르망트 대공비 댁의 성대한 야회도 그를 지루하게 하지 않았으나, 무엇보다 그는 새벽 한 시에 아내와 함께 성대한 야참과 가장 무도회에 갈 참이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는 루이 11세 복장이, 아내에게는 바이에른의 이자보 복장이 채비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작은 이 온갖 흥겨움 한가운데서 갸륵한 아마니앙 도스몽의 고통 때문에 방해받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또 다른 두 부인, 곧 둘 다 브레키니 백작의 딸인 플라삭 부인과 트렘 부인이 그다음으로 바쟁을 찾아와, 사촌 마마의 상태가 이제 아무런 희망도 남기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공작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화제를 바꾸려고 그날 저녁 마리질베르네에 갈 것인지를 물었다. 두 부인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마니앙의 상태를 생각하면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실은 공작이 갈 만찬에도 참석을 사양했다면서, 그 만찬의 다른 손님들을 하나하나 꼽아 나갔으니, 테오도시우스 왕의 아우, 마리아 콘셉시온 왕녀 따위였다. 도스몽 후작이 그들보다는 바쟁에게 더 가까운 친척이었으므로, 그들의 “불참”은 공작에게 자신의 처신을 겨냥한 일종의 에두른 나무람처럼 비쳤다. 그리하여, 비록 그들이 공작부인을 만나려고(아니, 오히려 사촌의 병이 그 친척들로서는 사교 모임 참석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브레키니 저택의 높은 곳에서 내려온 것이었지만,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저마다 등산 지팡이로 무장한 채, 발퓌르주와 도로테는(이것이 두 자매의 이름이었다) 자기네 성채로 돌아가는 험한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나는 포부르 생제르맹의 어느 구역에서는 그토록 흔한 이 지팡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게르망트가에 물어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은 교구 전체를 제 영지로 여기고 삯마차 부르기를 달가워하지 않아, 오래 걷는 버릇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오랜 산책을 위해서는, 사냥에 지나치게 빠진 탓과 그 탐닉의 열매이기 십상인 낙마 탓에 생긴 어떤 묵은 골절이, 혹은 그저 센강 좌안과 오래된 시골집의 습기가 불러온 류머티즘이 지팡이를 필요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구역을 가로지르는 그런 긴 나들이에 나섰던 것이 아니라, 그저 (공작부인의 정원에서 멀지 않은) 자기네 정원으로 내려가 조려 먹을 과일을 따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러 게르망트 부인에게 저녁 인사를 건넸을 뿐, 가위나 물뿌리개까지 부인의 집에 들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작은 그들이 파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내가 찾아온 것에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에게 그 사촌이 정말로 나를 초대한 것인지 알아봐 달라 청하러 왔노라고 내가 말하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게르망트 씨와 부인이 베풀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그런 부탁 가운데 하나를 건드린 셈이었다. 공작은 내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 만약 대공비가 내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녀에게 초대장을 청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 사촌들이 예전에 한 번 자기 청을 거절한 적이 있어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들의 방문객 명단에 간섭하는, 곧 “참견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끝으로, 그날 저녁 밖에서 만찬을 드는 자신과 아내가 그 뒤에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데, 그럴 경우 대공비의 야회에 가지 않은 데 대한 가장 그럴싸한 핑계는, 파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서둘러 알리는 대신 감추는 것일 텐데, 나를 위해 그녀에게 쪽지를 보내거나 전화로 말한다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게다가 십중팔구 대공비의 손님 명단은 지금쯤 이미 마감되었을 터이니 그래 봤자 아무 쓸모도 없을 만큼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자네 그녀와 무슨 틀어진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가?” 그가 미심쩍은 어조로 물었으니,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사교계의 최근 다툼을 미처 전해 듣지 못해, 사람들이 자기네 어깨를 딛고 다시 총애 속으로 기어오르려 드는 것은 아닐까 늘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이다. 끝으로, 공작은 그다지 인정 있어 보이지 않을 법한 결정은 죄다 제가 떠맡는 버릇이 있던 터라, 마치 방금 그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불쑥 내게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자네가 그 얘길 내게 꺼냈다는 것을 오리안에게는 아예 입 밖에 내지 않는 편이 정말 낫겠네. 자네도 그녀가 얼마나 마음씨 고운지 알잖나. 게다가 그녀는 자넬 무척이나 아끼니, 내가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사촌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겠다고 우길 거야. 그러고서 저녁을 든 뒤에 피곤하기라도 하면, 빠져나갈 길이 없어 억지로라도 그 야회에 가야 할 테고. 아니, 아무래도 나는 그녀에게 그 얘긴 한마디도 하지 않겠네. 어차피 자네가 곧 그녀를 직접 만나게 될 테니. 하지만 그 일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말게, 제발 부탁이야. 자네가 그 야회에 가기로 마음먹는다면, 거기서 자네와 함께 저녁을 보내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란,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 믿든 아니든, 그 앞에 그 동기가 내세워진 이로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신성한 법이다. 나는 내 초대와 게르망트 부인이 혹 느낄 피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한지를 한순간이라도 저울질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게르망트 씨가 나를 위해 꾸며 보인 그 자그마한 촌극에 감쪽같이 넘어가기라도 한 듯, 내 방문의 목적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대공비 댁에서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볼 가망이 조금이라도 있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원, 천만에.” 그가 전문가다운 태도로 대답했다. “자네가 말하는 그 이름은 클럽 회원 명부에서 본 적이 있어 알지만, 질베르네에 드나들 부류의 사람은 결코 아닐세. 거기서는 지나치게 점잖고 지독하게 따분한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못 볼 걸세. 몇 해 전에 이미 끊긴 줄 알았던 작위를 이 자리를 위해 되살려 낸 공작부인들, 온갖 대사들, 무더기로 몰려든 코부르크가 사람들, 외국 왕족들 말이야. 하지만 스테르마리아라면 그 그림자조차 바랄 게 못 되네. 질베르는 그런 걸 생각만 해도 앓아누울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