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산사나무 앞에 머물러, 그 보이지 않고 변함없는 향기를 들이마시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마음 앞에 정돈해 보고, 다시 찾아내려고 잃어버리고, 그 꽃들을 젊음의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배치하며 어떤 음악의 마디처럼 뜻밖의 간격으로 벌려 놓은 그 리듬에 몰입하려 애썼으나 헛일이었다. 꽃들은 다함없이 넘쳐흐르는 똑같은 매력의 끝없는 이어짐을 내게 내밀었을 뿐, 그 이상 깊이 파고들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으니, 수백 번을 연달아 되풀이해 연주해도 그 비밀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는 그런 선율과도 같았다. 나는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돌아오려고 잠시 그 꽃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 눈은 산울타리 밖에서 들판을 향해 가파르게 솟은 비탈을, 무리에서 벗어나 길 잃은 양귀비 한 송이나, 게으르게 뒤처져 여기저기 땅바닥을 꽃으로 장식한 몇 송이 수레국화를 좇아 올라갔는데, 그것은 마치, 이따금 전원의 주제가 얼핏 내비치고 그 주제가 화폭 한가운데서는 당당히 승리를 거두는, 그런 융단의 가장자리 무늬 같았다. 아직은 드문드문, 마을이 가까워졌음을 알려 주는 띄엄띄엄한 집들처럼 서로 떨어진 그 꽃들은, 솜털 같은 구름 아래 물결치는 드넓은 밀밭을 내게 예고했고, 양귀비 한 송이가 그 가느다란 삭구 위로 진홍빛 깃발을 올려 바람에 맞세운 채, 저를 피워 낸 기름진 검은 흙의 부표 위에 떠 있는 광경은, 어느 나그네가 나지막한 땅에서 밑바닥을 메우고 다시 바다에 나갈 채비를 하는 낡고 부서진 배 한 척을 알아보고, 아직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바다다!” 하고 외칠 때처럼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산사나무에게로 돌아와, 잠시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가 보면 더 잘 ‘음미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그런 회화의 걸작 앞에 서듯 그 앞에 섰다. 그러나 눈앞에 산사나무밖에 남지 않도록 손가락을 틀 삼아 오므려 보아도 헛일이었으니, 꽃들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감정은 여전히 어둑하고 어렴풋한 채, 벗어나 떠올라 꽃들과 하나가 되려 몸부림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꽃들 자체는 내게 아무런 깨우침도 주지 않았고, 나는 이 알 수 없는 갈망을 채우려고 다른 어떤 꽃도 불러올 수 없었다. 그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 가운데 이미 아는 것들과는 사뭇 다른 한 점을 볼 때, 아니 그보다도, 누군가 우리를 데려가, 여태 연필 밑그림으로밖에 보지 못했던 그림 앞에 세워 놓을 때, 또는 피아노로만 들어 오던 곡이 관현악의 온갖 장려함과 충만함으로 다시금 귓가에 터져 나올 때 우리가 느끼는 그 황홀을 내게 불어넣으며,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시더니 탕송빌의 산울타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너 산사나무 좋아하지. 이 분홍 꽃 좀 보렴. 예쁘지 않니?”
과연 그것은 산사나무였으나, 그 꽃은 분홍빛이었고, 흰 꽃보다도 더 고왔다. 그것 역시 명절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니, 세속의 명절이 그렇게 정해지듯 축제와는 본디 아무 상관도 없는 아무 날에나 변덕스레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유일한 명절, 곧 종교의 거룩한 날 가운데 하루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다른 것들보다 한층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위아래로 겹겹이, 나무 어디 한 군데 꾸며지지 않은 데가 없을 만큼 촘촘히 매달린 꽃들이, 로코코풍 목동 소녀의 지팡이를 휘감은 술 장식처럼, 하나같이 ‘색깔이 들어’ 있었으니, 콩브레의 미적 기준으로는, 광장의 ‘상점’이나 카뮈네 가게에서 가장 비싼 비스킷이 설탕이 분홍빛인 것들이었던, 그 값의 등급으로 판단하자면, ‘민무늬’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이다. 나 자신도 크림치즈가 분홍빛일 때, 으깬 딸기로 물들이는 것을 허락받았을 때 그것을 더 값지게 여겼다. 그리고 이 꽃들은 바로 먹을 수 있고 맛있는 어떤 것의 빛깔, 아니면 큰 축제를 위한 성장(盛裝)에 곁들이는 어떤 절묘한 장식의 빛깔을 골라 지녔는데, 그런 빛깔은 제가 뛰어난 까닭을 스스로 환히 드러내는지라, 아이들의 눈에 그 아름다움이 가장 또렷이 다가오는 빛깔이며, 그 때문에, 그것이 식욕을 채워 주지도 재봉사가 고른 것도 아님을 아이의 마음이 깨달은 뒤에도, 언제나 다른 어떤 색조보다 더 생생하고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실로, 흰 꽃 앞에서 느꼈던 것을, 이제 한층 더 경탄하며 곧바로 느꼈으니, 이 꽃들의 축제 같은 의도를 드러낸 것은 결코 인위적인 방식이나 사람 손의 어떤 재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신이 (어느 시골 가게 아낙이 무슨 행렬을 위해 길가 제단을 꾸미느라 애쓸 때의 그 소박함으로) 스스로 그것을 표현해, 빛깔이 거의 지나치리만치 황홀한 이 작은 꽃 장식들로, 이 전원풍 ‘퐁파두르’로 덤불을 파묻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종이 레이스 저고리에 화분을 감춘 채, 큰 축제 때면 제단에서 숲을 이루며 솟아오르는 그 자잘한 장미나무들처럼, 높다란 가지 위에서는 무수한 봉오리가 부풀어 벙글고 있었는데, 빛깔은 더 옅으나, 저마다 터지면서 분홍 대리석 잔 밑바닥인 양 핏빛 얼룩을 드러내어, 활짝 핀 꽃보다도 한층 더 강렬하게, 산사나무 특유의 저 억누를 수 없는 자질을, 곧 어디서 봉오리를 맺든, 어디서 꽃을 피우려 하든, 오직 분홍 꽃으로만 봉오리 지고 꽃필 수 있는 그 자질을 일러 주었다. 산울타리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되, 명절 옷차림을 한 소녀가, 집에 틀어박혀 ‘성모 성월’을 맞을 채비를 갖추고 늘어선 평상복의 초라한 아낙네들 무리 속에서 유독 다르듯, 다른 것들과는 사뭇 달랐던 그 분홍 산사나무는, 이미 그 성월의 한 부분을 이루기라도 한 듯, 서늘하고 발그레한 옷차림으로 빛나며 미소 지었으니, 참으로 가톨릭다운 덤불이자,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산울타리 사이로 우리는 공원 안쪽, 재스민과 팬지와 마편초로 가장자리를 두른 오솔길을 언뜻 엿볼 수 있었는데, 그 사이로 비단향꽃무가, 오래된 스페인 가죽처럼 향긋하고도 빛바랜 분홍빛의, 도톰하고 싱그러운 주머니를 벌리고 있었다. 한편 자갈길 위에서는, 초록으로 칠하고 땅을 가로질러 똬리를 튼 긴 물뿌리개 호스가, 구멍이 뚫린 자리마다, 그 구멍이 향기를 들이마시던 꽃들 위로,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미세한 물방울의 수직 부채꼴을 뿜어 올렸다. 문득 나는 꼼짝도 못 하고 우뚝 멈춰 섰으니, 무언가가 나타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우리 눈만이 아니라 더 깊은 종류의 지각이 관여하며 우리 존재 전체를 사로잡을 때가 그러하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듯한, 손에 모종삽을 든, 발그레한 금발의 소녀 하나가, 발그스름한 주근깨가 뿌려진 얼굴을 우리 쪽으로 들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검은 두 눈이 반짝였는데, 나는 그 무렵에도, 그 뒤로도 끝내, 어떤 강렬한 인상을 그 객관적 요소들로 환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이른바 그 색깔의 감각을 따로 떼어 낼 만큼의 ‘관찰력’이 없었던 탓에, 그 뒤 오래도록,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그 빛나는 두 눈의 기억은 곧바로 선명한 하늘빛으로 내게 떠오르곤 했다. 그녀의 살결이 희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만약 그 눈이 그토록 검지 않았더라면, 처음 만났을 때 가장 강렬하게 마음을 친 것이 바로 그 검은 눈이었건만, 나는 그것이 파랗다고 상상하며 이토록 유별나게 반하지는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지 눈이 보내는 전령에 그치지 않고, 그 창가에 온갖 감각이 모여들어, 굳어진 채 애타는 마음으로 몸을 내밀어, 겨눈 그 육체를, 그리고 육체와 더불어 그 영혼까지도, 다다르고 만지고 붙들어 개선의 전리품으로 끌고 오고 싶어 하는, 그런 눈길로. 그다음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언제라도 그 소녀를 알아보고 나를 앞서 달려가게 하여 그녀에게서 떼어 놓을까 봐 어찌나 겁이 났던지) 또 다른 눈길로, 곧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나를 보고 알게 하려는, 저도 모르게 애원이 담긴 눈길로. 그녀는 앞과 옆으로 한번 눈길을 던져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가늠했는데, 필시 우리가 하나같이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던지, 무심하고 경멸하는 태도로 고개를 돌려, 얼굴이 그들의 시야 안에 남아 있는 수모를 면하려는 듯 몸을 물렸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계속 걸어 나를 앞질러 지나가는 동안, 그녀는 우리 사이에 놓인 공간 너머로 내 쪽을 향해 두 눈을 굴렸는데, 이렇다 할 표정도 없이, 나를 본 기색도 없이, 그러나 어떤 강렬함을, 내가 예절에 관해 받은 가르침대로라면 오직 끝없는 혐오의 표시로밖에는 풀이할 수 없는 반쯤 감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은 허공에 무례한 몸짓 하나를 그렸는데, 그것이 낯선 사람에게 남들 앞에서 보내질 때, 내가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던 예법의 작은 사전은 오직 한 가지 뜻, 곧 고의적인 모욕이라는 뜻밖에는 일러 주지 않았다.
“질베르트, 이리 온. 거기서 뭐 하니?” 그 순간까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흰옷 차림의 부인 하나가 날카롭고 위엄 있는 어조로 외쳤고, 그 조금 너머에서는, 역시 내가 모르는, 아마포 ‘덕’ 양복을 입은 신사 하나가,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소녀의 미소는 대뜸 스러졌고, 그녀는 모종삽을 집어 들더니, 다시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순종하는 듯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자리를 떴다.
그리하여 질베르트라는 이름이 내 귀에 실려 왔으니, 그것은 마치, 방금 그 몇 음절이 하나의 또렷한 인격을 부여한 그 소녀를, 어쩌면 언젠가 다시 찾아내게 해 줄지 모를 부적처럼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녀는 어렴풋이 보이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렇게 그 이름은 비단향꽃무와 재스민의 머리 너머로, 초록 물뿌리개 호스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처럼 알싸하고 서늘하게 내게 다다랐다. 그것은 저를 통과한 맑은 공기의 띠를 적시고 환히 밝히며, 그 몇 음절이 지목한 그녀와 더불어 살고 걷고 여행하는 저 행복한 존재들에게 알려진 그녀의 삶의 신비로써, 그 공기를 다른 모든 공기에서 따로 갈라 떼어 놓았다. 그러고는 내 어깨 높이에서 열린 분홍 산사나무의 아치를 통과하며, 그녀와, 그리고 내가 결코 발 들이지 못할 그녀 존재의 저 미지의 세계 온갖 것과 저 존재들이 나누는 친밀함의, 나로서는 그토록 뼈아픈 그 정수를 펼쳐 보였다.
한동안 (우리가 그곳을 벗어나는 사이 할아버지가 중얼거리셨다. “가엾은 스완, 저치들이 그를 무슨 꼴로 부려 먹는담. 글쎄, 저 여자를 그 샤를뤼스와 단둘이 있게 하려고 그를 멀리 쫓아 보내다니. 그래, 저건 샤를뤼스였어. 내 대번에 알아봤지! 게다가 저 어린것까지. 저 나이에 그런 판에 끼어들다니!”) 질베르트의 어머니가 딸에게 던진, 딸은 대꾸도 못 하던 그 전제적인 말투가, 그녀를 남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로, 그러니 결코 온 세상 위에 군림하는 존재는 아닌 것으로 내게 드러내 보이며 남긴 인상은, 내 괴로움을 다소 가라앉히고, 얼마간 희망을 되살리며, 내 사랑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그러나 이내 그 사랑은, 굴욕당한 내 마음이 질베르트의 자리로 솟구쳐 오르려, 아니면 그녀를 제 자리로 끌어내리려 발버둥 치는 반작용인 양, 다시금 내 안에서 끓어올랐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모욕할, 무슨 상처라도 입혀 나에 대한 기억을 그녀 안에 남기게 할 그런 겨를도 영감도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녀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발길을 되돌려 그녀에게 주먹을 흔들며 “넌 흉하고 우스꽝스러워. 진짜 역겹다고!” 하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떠났고, 그때부터 그 뒤로 영영, 나 같은 어린 사내아이에게는 범할 수 없는 어떤 자연의 법칙에 의해 다다를 수 없게 된 어떤 행복의 첫 본보기로서, 손에 모종삽을 들고, 나를 향해 길고도 미묘하며 아무 표정도 없는 눈길을 던지며 미소 짓던, 발그레한 머리에 자잘한 분홍 점이 뿌려진 피부의 그 작은 소녀의 그림을 지니고 걸어갔다. 그리고 벌써, 향의 연기처럼 그녀의 이름이, 그녀와 내가 함께 그 소리를 들었던 분홍 산사나무의 그 아치를 가득 채웠던 그 매력은, 그 이름과 조금이라도 이어진 온갖 것을, 곧 나의 조부모가 알고 지내는 더없는 행운을 누렸던 그녀의 조부모며, 증권 중개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직업이며, 심지어 그녀가 파리에서 살던 샹젤리제의 그 우울한 동네까지도, 정복하고, 뒤덮고, 향유로 감싸고, 아름답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레오니야,”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오늘 오후 너도 우리와 함께 갔더라면 싶구나. 탕송빌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게다. 용기가 났더라면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 분홍 산사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다 주었을 텐데.” 그러고서 할아버지는 고모에게 우리 산책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저 고모를 즐겁게 해 드리려는 뜻이었거나, 아니면 어쩌면 고모가 자극을 받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깥나들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얼마간의 바람에서였다. 예전에는 고모도 탕송빌을 무척 좋아했고, 더구나 스완의 방문은, 이미 온 세상에 문을 닫아걸었을 무렵에도 고모가 끝까지 받아들이던 마지막 방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요즈음 고모의 안부를 물으러 찾아올 때면 (우리 집안에서 그가 만나기를 청하는 사람은 여전히 고모뿐이었다) 고모가, 지금은 피곤해 쉬는 중이나 다음에 기꺼이 뵙겠노라고 아래로 전갈을 보내곤 하던 것처럼, 이날 저녁에도 고모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래요, 날 좋은 어느 날엔가 공원 문 앞까지 마차 나들이라도 해야지요.” 이렇게 말하며 고모는 아주 진심이었다. 고모는 스완과 탕송빌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이루는 데 다 써 버리고도 남을 만큼, 남은 기력을 온통 채우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화창한 날씨가 고모를 조금 더 기운차게 하여, 고모는 일어나 옷을 차려입기도 했다. 그러나 바깥방에 채 이르기도 전에 고모는 다시 ‘피곤해’졌고, 기어이 침대로 돌아가겠다고 우겼다. 고모에게 시작된 그 과정은, 그것도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보다 고모에게는 다만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인데, 노년이 죽음을 준비하며 행하는 저 크고도 보편적인 체념, 곧 삶의 번데기 단계였으니, 이는 삶이 지나치게 오래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더없이 격렬한 열정으로 살아온 늙은 연인들에게서도, 더없이 긴밀한 정신적 공감의 끈으로 맺어진 옛 벗들에게서도, 어느 나이가 지나면 그들은 서로를 보러 그 얼마간의 걸음을 옮기기는커녕 길 하나 건너기조차 그만두고, 편지를 주고받기도 그치며, 이승에서는 다시 소식을 나누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고모도, 다시는 스완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다시는 자기 집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필시 훤히 알고 있었으련만, 이 마지막 칩거를 고모는 오히려 한결 선선히 받아들이는 듯했으니, 그 까닭은 우리 생각으로는 도리어 그것을 더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어야 할 바로 그 이유, 곧 그런 칩거가, 나날이 스스로 가늠할 수 있었던 기력의 점진적이고 꾸준한 쇠퇴로 인해 고모에게 강요된 것이라는 데 있었다. 그 쇠퇴는 온갖 행동, 온갖 움직임을 고모에게, 정말로 고통스럽지는 않더라도, ‘피곤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홀로 있음과 침묵에, 안식의 복되고 기운을 북돋우며 상쾌하게 하는 매력을 부여했던 것이다.
고모는 산울타리의 그 분홍 산사나무를 보러 가지 않았지만, 나는 하루의 온갖 시간에 나머지 식구들에게 고모가 그것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인지, 예전에는 탕송빌에 자주 가곤 하지 않았는지 물어 대며, 내게는 신들만큼이나 크고 영광스러워 보이던 스완 양의 부모며 조부모 이야기를 그들에게서 끌어내려 애썼다. 나로서는 거의 신화가 되다시피 한 그 이름, 스완이라는 이름을, 나는 식구들과 이야기할 때 누군가 입에 올려 주기를 애타게 갈망했다. 감히 내 입으로는 발음하지 못했으나, 나는 그들을 자연스레 질베르트와 그 가족으로, 그녀가 얽혀 있는 이야기로 이끌어 갔으니,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만은 그녀 곁에서 그리 멀리 쫓겨나 있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테면 할아버지의 사업이 그분 대(代) 이전부터 우리 집안 것이었던 척한다든지, 레오니 고모가 보러 가고 싶어 하던 그 분홍 산사나무 산울타리가 공유지에 있는 척함으로써) 아버지가 마치 나에게 맞서 스스로 나서기라도 하듯 내 말을 바로잡아, “아니다, 아니야, 그 사업은 스완의 아버지 것이었고, 그 산울타리는 스완의 정원의 일부다”라고 말하도록 불쑥 몰아가곤 했다. 그러면 나는 숨을 고르느라 멈추어야 했으니, 그 이름이 영원히 새겨진 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압력이 어찌나 숨 막혔던지. 그 이름은, 내가 그것을 들은 순간,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더 그득하고 더 불길하게 느껴졌으니, 내가 마음속으로 남몰래 그것을 되뇌었던 그 온갖 순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어떤 기쁨을 안겼는데, 나는 부모님에게 감히 그것을 요구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기쁨이 어찌나 컸던지, 나를 위해 그것을 마련해 주자면 부모님은 엄청난 수고를 치러야 했을 터이고, 게다가 그들에게는 그 소리에 아무런 기쁨도 없었으니 아무런 보답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화제를 돌리곤 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스완이라는 그 낱말의 소리 속에 쟁여 두었던 온갖 유별난 매혹을, 나는 그것이 입에 오르자마자 고스란히 되찾았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는, 그들도 나의 관점을 함께하게 되리라는, 그들도 이번에는 나의 몽상 같은 갈망을 알아채고, 눈감아 주고, 심지어 끌어안기까지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마치 그들 마음의 순결을 겁탈하고 더럽히기라도 한 듯 비참해졌다.
그해 우리 식구는 파리로 돌아갈 날을 여느 때보다 다소 이르게 잡았다. 떠나는 날 아침 나는 사진사 앞에 설 채비로 머리를 곱슬곱슬 지지고, 새 모자를 머리에 조심스레 얹고, 벨벳 저고리 단추까지 채운 채였다. 얼마 뒤 어머니는, 온 데를 뒤져 나를 찾다가, 탕송빌 가까이 그 가파른 작은 언덕배기에서, 내 산사나무에게 긴 작별을 고하며, 그 뾰족한 가지를 가슴에 끌어안고, (제 무의미한 보석의 무게에 짓눌린 비극 속 공주처럼) 그 고수머리를 말아 내 머리카락을 죄다 이마 위로 그러모으느라 애쓴 그 부산스러운 손에는 아무 고마움도 없이, 머리에서 뜯어낸 종이 말이며 새 모자를 발밑에 짓밟고 눈물바람으로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내 눈물에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나, 짓뭉개진 내 모자와 결딴난 저고리를 보고는 외마디 소리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 내 가엾은 작은 산사나무들아,” 나는 흐느끼며 그들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나를 불행하게 하려고, 너희를 떠나게 하려고 이러는 건 너희가 아니야. 너희는, 너희는 한 번도 나를 아프게 한 적이 없어. 그러니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를 사랑할 거야.” 그리고 눈물을 훔치며 나는 그들에게 약속했으니,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본을 결코 따르지 않고, 파리에 있더라도 화창한 봄날이면 남의 집을 찾아다니며 실없는 이야기를 듣는 대신, 시골로 나들이 나가 처음 피어난 산사나무들을 보러 가리라고.
일단 들판에 들어서면 우리는 메제글리즈 산책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들판은, 내게는 콩브레의 수호신이던 바람에 의해, 마치 보이지 않는 오가는 물결에 가로질리듯 쉼 없이 가로질러졌다. 해마다 도착하는 날이면, 내가 정말로 콩브레에 와 있음을 실감하려고, 나는 언덕에 올라 그 바람이 다시금 내 옷자락을 파고들며 그 뒤를 좇아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을 찾아냈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갈 때면, 그 부드러운 윤곽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몇 마일이고 뻗어 나가는 그 불룩한 벌판에서, 사람은 늘 바람을 길동무로 삼았다. 나는 스완 양이 라옹에 가서 며칠씩 지내다 오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곳이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으니 그 거리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더운 오후, 저 아득한 지평선에서 바람 한 자락이 일어나, 먼 들판의 밀 이삭 고개를 숙이며, 그 드넓은 벌판 위로 홍수처럼 쏟아지다가, 마침내 내 발치의 클로버와 잠두 사이로 따스하고 살랑이며 내려앉는 것을 볼 때면, 우리 둘 모두의 것이던 그 벌판은 그때 우리를 서로 끌어당겨 하나로 맺어 주는 듯했다. 나는 똑같은 바람 자락이 그녀 곁도 스쳐 지났으리라고, 그것이 내게 속삭이는 것 속에 그녀의 어떤 전언이 담겨 있으련만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으리라고 상상하며, 그것이 지나갈 때 붙잡아 입 맞추곤 했다. 왼편에는 (본당 신부에 따르면 Campus Pagani인) 샹피외라는 마을이 있었다. 오른편으로는 밀밭 너머로, 그 자체가 밀 이삭 두 개처럼 뾰족하고 비늘 돋고 판을 두르고 벌집 무늬가 지고 누렇게 물들고 우툴두툴한, 생탕드레데샹의 소용돌이 장식 돋친 두 시골 첨탑이 보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른 어떤 과일나무의 것과도 혼동될 수 없는 그 흉내 낼 수 없는 잎사귀 장식 사이로, 사과나무들은 흰 공단 같은 널따란 꽃잎을 드러내거나, 아직 벌지 않은 발그레한 봉오리를 수줍은 송이로 매달고 있었다. 사과나무가 햇살 비친 땅바닥에 드리우는 둥근 그림자며, 지는 해가 그 잎 아래로 비스듬히 아래로 자아내는, 만질 수 없는 황금빛 비단실을 내가 처음 알아챈 것도 바로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면서였다. 아버지가 지팡이로 그 실을 후려치면서도 그것을 그 곧은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보곤 했다.
이따금 오후의 하늘에 흰 달이, 자그마한 구름처럼, 슬며시, 요란스럽지 않게 기어올랐는데, 마치 아직 등장할 차례가 아니어서 평상복 차림으로 ‘객석 앞’에 나와 잠시 나머지 배우들을 지켜보되,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뒤편에 물러나 있는 여배우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책과 그림 속에 되살아난 것을 보면 반가웠는데, 그런 작품들은, 적어도 블로크가 내 눈과 마음을 더 미묘한 조화에 길들이기 전인 나의 어린 시절에는, 오늘날 내게 달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거니와, 그런 작품 속의 달이라면 그때의 나는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생틴의 어느 소설이거나, 글레르의 어느 풍경화 같은 것으로, 그 속에서 달은 은빛 낫 모양으로 하늘을 배경에 또렷이 오려져 있었으니, 그 무렵 나 자신의 인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소박하고 어설픈 작품이었고, 내가 그런 것을 감탄하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자매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은 아이들 앞에는 오직, 그들의 정신이 자라 성숙했을 때에도 계속 감탄하게 될 그런 책과 그림만을 놓아 주어야 하며, 아이가 그런 것을 감탄하는 데서 제 타고난 좋은 안목을 드러낸다고 여겼다. 필시 그들은 미적 가치를, 흐림 없는 시각이라면 어김없이 알아볼 수 있는, 삶의 경험 속에 쟁여져 마음속에서 천천히 무르익는 등가물 따위는 필요치 않은, 그런 물질적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메제글리즈 쪽’을 따라, 커다란 못가에 지어져 가파른 관목 우거진 언덕이 굽어보는 몽주뱅이라는 집에 뱅퇴유 씨가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딸이 개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며 길을 달리는 것을 자주 마주치곤 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우리는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을 다시는 보지 못했고, 늘 저보다 나이 든, 동네에서 평판이 나쁜 여자친구 하나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 친구는 끝내 어느 날 몽주뱅에 아주 눌러앉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저 가엾은 뱅퇴유 씨는 사랑에 눈이 멀어, 온 세상이 다 하는 이야기를 못 보는 게로군. 말 한마디를 잘못 쓰기만 해도 질겁하는 양반이, 제 딸이, 저런 여자를 제 지붕 밑에 데려다 살게 하다니. 그 여자가 더없이 훌륭한 사람이고, 마음씨가 황금 같고, 제대로 배우기만 했더라면 남다른 음악 재능을 보였을 거라고 하더군. 그가 딸에게 가르치는 게 음악은 아닌 게 분명하고말고.” 그러나 뱅퇴유 씨는 그것이 음악이라고 그들에게 장담했으니, 실로 사람들이 육체 관계를 맺는 상대의 친척들에게서 그 사람의 정상적인 자질에 대한 감탄을 어김없이 자아낸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그토록 부당하게 헐뜯겨 온 육체의 정념은, 그 희생자들로 하여금 제 안에 있는 사심 없음과 너그러움의 온갖 자취를 드러내게 하되, 어찌나 효과가 있는지 그들은 보는 이 모두의 눈에 눈부시게 빛나 보이는 것이다. 페르스피에 박사는, 그 우렁찬 목소리와 덥수룩한 눈썹 덕분에, 마음 내키는 대로 ‘이중인격자’ 역할을, 본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저 무너뜨릴 수 없고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 마음씨 좋은 심술꾼 노인이라는 평판을 조금도 해치지 않으면서 능히 해낼 수 있었는데,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 본당 신부며 나머지 사람들을 눈물이 나도록 웃기곤 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시오, 응? 글쎄, 그 여자가 제 여자친구 뱅퇴유 양하고 음악을 한다는구먼. 놀랍소? 오, 나야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 어제 뱅퇴유 영감이 죄다 이야기해 준 거요. 하기야 그 아가씨도 음악을 좋아할 권리쯤은 있고말고. 나는 아이의 예술적 소명을 훼방 놓을 생각은 꿈에도 없소. 뱅퇴유도 그렇다는군. 게다가 그 양반도 딸의 여자친구하고 함께 음악을 한다지. 아니, 세상에, 저 바깥 그 집은 아주 제대로 된 오르골 상자가 틀림없소! 뭐가 그리 우습소? 내 말은 저치들이 음악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거요. 며칠 전 묘지 근처에서 뱅퇴유 영감을 만났는데, 제 발로 서 있는 것도 겨우겨우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