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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①

4권 제1부 · 제1장

사교계의 샤를뤼스 / 어느 의사 / 보구베르 부인의 전형적인 인상 / 다르파종 부인, 위베르 로베르풍 분수, 그리고 블라디미르 대공의 유쾌함 / 아몽쿠르 부인, 시트리 부인, 생퇴베르트 부인 / 스완과 게르망트 대공 사이의 기이한 대화 / 전화 속의 알베르틴 / 두 번째이자 마지막 발베크 방문에 앞선 시기의 나의 사교 생활 / 발베크 도착 / 마음의 간헐.

게르망트가의 이 야회에 서둘러 도착할 마음이 없었고, 더구나 내가 초대받았는지도 확실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서성였다. 그러나 여름날은 나보다 조금도 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좀처럼 저물려 하지 않았다. 벌써 아홉 시가 지났건만, 콩코르드 광장의 룩소르 오벨리스크를 분홍빛 누가 과자로 빚어놓은 듯 보이게 하는 것은 여전히 대낮의 빛이었다. 이윽고 그 빛은 색조를 묽게 풀어 표면을 금속질로 바꾸어, 오벨리스크는 한층 값져 보였을 뿐 아니라 더 가늘고 거의 낭창낭창해진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으로 비틀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이미 그 윤곽을 살짝 뒤틀어 놓았는지도 몰랐다. 달은 이제 하늘에, 곱게 껍질을 벗겼으나 살짝 멍이 든 오렌지 한 조각처럼 떠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달은 더없이 변치 않는 황금으로 빚어질 참이었다. 그 뒤에 홀로 몸을 숨긴 가엾은 작은 별 하나가 외로운 달의 유일한 동무가 되어 줄 터였고, 한편 달은 제 벗을 지켜 주면서도 더 대담하게 앞서 성큼성큼 나아가며, 거스를 수 없는 무기처럼, 동방의 상징처럼, 넓고 경이로운 황금빛 초승달을 휘둘러 보일 것이었다.

게르망트 대공비의 저택 밖에서 나는 샤텔로 공작과 마주쳤다. 삼십 분 전만 해도 초대도 받지 않고 이 집에 들어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곧 다시 나를 옭아맬 그 두려움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잊고 있었다.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때로는 위험의 순간이 지나고 한참 뒤에야, 뒤이은 딴생각에 잊고 있던 그 불안을 문득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나는 젊은 공작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사소한 사건 하나를 적어 두어야겠다. 그래야 곧 벌어질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날 저녁에도 지난 며칠 저녁과 마찬가지로, 샤텔로 공작을 두고 골똘히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짐작조차 못 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 댁의 문지기(당시 이른바 aboyeur라 불리던)가 그였다. 샤텔로 는 대공비의 사촌이긴 했으나 가까운 벗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댁에 초대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부모는 지난 십 년간 대공비와 말도 섞지 않는 사이였다가 최근 보름 사이에 화해했는데, 그날 저녁 파리를 떠나 있어야 했던 터라 아들에게 대신 참석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대공비의 문지기는 샹젤리제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매력적이라고 느꼈으나 그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젊은이가 후한 만큼이나 상냥하게 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문지기가 그토록 젊은 신사에게 베풀어야 하리라 여겼던 온갖 호의를, 오히려 그가 도리어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샤텔로 는 경솔한 만큼이나 입이 무거웠다. 상대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몰랐기에 더욱더 자기 정체를 숨기기로 마음먹었으니, 만약 알았더라면 그 두려움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을망정, 훨씬 더 컸으리라. 그는 자신을 영국인으로 꾸미는 데 그쳤고, 그토록 큰 즐거움과 넉넉한 사례를 안겨 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 문지기가 애타게 던지는 온갖 질문에, 공작은 가브리엘 거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오로지 이렇게만 대꾸했다. “저는 프랑스어를 못 합니다.”

그렇긴 해도, 무엇보다 사촌 질베르의 외가 혈통을 떠올리며 게르망트 공작은 게르망트바비에르 대공비의 살롱에서 쿠르부아지에가풍의 기색을 짐짓 짚어내려 했지만, 그럼에도 그 부인의 진취적 기상과 지적 우월함에 대한 세간의 평판은 그녀의 무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혁신에 근거한 것이었다. 저녁 식사 뒤에는, 이어질 모임이 아무리 성대하더라도,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는 의자를 작은 무리 여럿을 이루도록 배치했으니,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앉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 대공비는 마치 그러기를 더 좋아한다는 듯 그 무리 가운데 하나에 가서 앉음으로써 자신의 사교적 감각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다른 무리의 누군가를 골라 제 곁으로 끌어당기기를 꺼린 것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데타유 에게(그야 물론 맞장구를 쳤다) 다른 무리에 앉은 탓에 이쪽에는 등을 보이고 있던 빌뮈르 부인의 목덜미가 아름답다고 한마디 하고 나면, 대공비는 서슴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빌뮈르 부인, 데타유 가 그 놀라운 화가의 눈으로 방금 당신의 목덜미를 감탄하며 바라보던 참이에요.” 빌뮈르 부인은 이를 대화에 끼어들라는 직접적인 권유로 받아들여, 노련한 여기수 같은 날렵함으로 자기 의자를 원의 사분면 셋만큼 천천히 돌려, 이웃들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은 채 거의 대공비를 마주 보는 자리에 이르렀다. “데타유 를 모르세요?” 하고 안주인이 외쳤으니, 손님의 재빠르고 겸손한 자리 이동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뵌 적은 없지만 작품은 압니다.” 빌뮈르 부인은 공손하고 상냥한 태도로, 곁에서 지켜보던 많은 이가 부러워할 만큼 재빠르게 대답하면서, 이런 언급만으로는 격식을 갖춰 소개받은 셈이 못 되는 그 이름난 화가에게 알아채기 힘든 목례를 보냈다. “자, 데타유 씨,” 하고 대공비가 말했다. “빌뮈르 부인께 소개해 드리지요.” 그러자 부인은 조금 전 그를 마주 보려고 몸을 돌릴 때 못지않은 재주를 발휘하여 의 창작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대공비는 자기 몫의 의자를 끌어당겼으니, 실은 빌뮈르 부인을 부른 것도 정해진 십 분을 보낸 첫 번째 무리를 떠나 두 번째 무리에 같은 만큼의 시간을 나누어 줄 구실을 얻기 위해서였다. 사십오 분 만에 모든 무리가 그녀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 방문은 매번 충동과 편애로 정해진 듯 보였으나, 실은 ‘위대한 귀부인이 손님을 대접할 줄 안다’는 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드러내느냐가 무엇보다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야회의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안주인은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쯤 왕가에 가까운 위엄으로 꼿꼿하고 당당하게, 두 눈에 저 스스로의 광채를 이글거리며, 볼품없는 두 왕족과 스페인 대사 부인 사이에 앉아 있었다.

나는 먼저 도착한 손님 여럿의 뒤에 서서 기다렸다. 내 맞은편에는 대공비가 있었는데, 그토록 미인이 많던 그 야회에서 이 부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마 그녀의 아름다움만은 아니리라. 그러나 내 안주인의 얼굴은 어찌나 완벽했던지, 그토록 아름다운 메달에 새겨진 듯하여, 내 마음속에 기념할 만한 힘을 지닌 채 남아 있다. 대공비는 야회를 하루 이틀 앞두고 손님들을 만나면 마치 그들과 몹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듯 “오실 거죠, 그렇죠?” 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할 이야기라곤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막상 그들이 앞에 나타나면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은 채 두 왕족과 대사 부인을 상대로 나누던 시시한 대화를 잠시 멈추고, “와 주시다니 참 고마워요” 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그쳤다. 손님이 와 준 것으로 갸륵한 뜻을 보였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제 몫의 호의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곧 손님을 다시 물결 속으로 떠밀듯, “는 정원 문 쪽에 계실 거예요” 하고 덧붙여, 손님이 제 갈 길로 가 더는 그녀를 성가시게 하지 않도록 했다. 더러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마치 그들이 보석 전시를 구경하러 오기라도 한 듯 자기의 감탄스러운 마노 같은 눈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바로 앞에 선 사람은 샤텔로 공작이었다.

응접실 안쪽에서 그에게 보내오는 온갖 미소와 인사에 일일이 답하느라, 그는 문지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문지기는 첫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토록 애타게 알고 싶어 하던 이 낯선 이의 정체를, 잠시 뒤면 알게 될 참이었다. 며칠 전 저녁의 ‘영국인’에게 어떤 이름으로 아뢰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문지기는 그저 마음이 흔들렸을 뿐 아니라, 스스로 경솔하고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온 세상(하기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에 대고, 이렇게 억지로 캐내어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죄스러운 비밀 하나를 폭로하려는 참이라고 느꼈다. 손님의 대답 “Le duc de Châtellerault”를 듣자, 그는 어찌나 뿌듯했던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공작은 그를 바라보고, 알아보고, 자신이 파멸했음을 깨달았다. 한편 하인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데다 문장학에도 제법 밝아 지나치게 겸손한 그 호칭을 스스로 채워 넣을 줄 알았으므로, 직업적 격정에 벅찬 감격의 부드러움을 실어 이렇게 외쳤다. “Son Altesse Monseigneur le duc de Châtellerault!” 그러나 이제는 내 차례로 아뢰어질 참이었다. 아직 나를 보지 못한 안주인을 넋 놓고 바라보던 나는, 검은 옷을 형리처럼 차려입고, 더없이 화사한 제복을 걸친 하인 무리에 둘러싸인, 침입자를 붙들어 문밖으로 내던질 채비를 갖춘 우람한 사내들에 에워싸인 이 문지기의 소임을, 샤텔로 에게 그랬던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이긴 하나 내게는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던 그 소임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문지기가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사형수가 처형대에 묶이도록 몸을 내맡기듯 기계적으로 이름을 일러 주었다. 그러자 그는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쳐들었고, 내가 초대받지 않았다면 내 체면을, 초대받았다면 게르망트 대공비의 체면을 지키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아뢰어 달라고 청할 겨를도 없이, 지붕이라도 무너뜨릴 만한 힘으로 그 섬뜩한 음절들을 외쳐 댔다.

이름난 헉슬리(그의 손자는 오늘날 영국 문단에서 흔들림 없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기 환자 하나가 더는 사교계에 나가지 못했다고 전한다. 정중한 손짓으로 권해 주는 바로 그 의자 위에, 이미 한 노신사가 앉아 있는 것이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권하는 손짓이든 노신사의 존재든 둘 중 하나는 환각임이 분명했으니, 안주인이 이미 사람이 앉은 의자를 그녀에게 권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헉슬리가 그녀를 고치려고 억지로 다시 사교계에 나서게 하자, 그녀는 자기에게 건네오는 다정한 손짓이 진짜인지, 아니면 있지도 않은 환영에 이끌려 여러 사람 앞에서 살아 있는 신사의 무릎 위에 앉으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으며 괴로운 망설임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 짧은 불확실함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내 것보다는 덜했겠지만. 내가, 닥쳐올 파국을 예고하는 우렛소리 같은 내 이름 소리를 알아들은 그 순간부터, 나는 어느 경우든 내 선의를 내세우기 위해, 그리고 아무 의심도 없다는 듯이, 단호한 낯빛으로 대공비를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대공비는 내가 아직 몇 걸음 떨어져 있을 때 나를 알아보고(내가 음모의 희생양임을 조금도 의심치 못하게 하려는 듯), 다른 손님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앉은 채로 있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잠시 뒤 나는 헉슬리의 환자가 의자에 앉기로 마음먹고서 그 자리가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노신사야말로 환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대공비가 방금 미소를 띠며 내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그녀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으니, 그 모습에는 말레르브의 시구, 곧 다음과 같이 끝맺는 시구에 깃든 매혹이 어려 있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려 모든 천사가 일어선다.”

대공비는 공작부인이 아직 오지 않았다며, 마치 그녀가 없어 내가 지루하기라도 할 것처럼 미안해했다. 그런 인사를 건네려고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우아하게 한 바퀴 나를 돌았는데, 그 회전의 소용돌이에 나는 발이 땅에서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다음 순간 코티용의 선도자처럼 상아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나 손목시계라도 내게 건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마치 보스턴을 추는 대신 베토벤의 성스러운 사중주에 귀 기울이며 그 숭고한 선율이 끊길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대화를 그 자리에서 뚝 끊어 버렸으니, 아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본 기쁨에 환히 빛나며, 그저 대공이 어디 있는지만 일러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물러나 다시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가 내게 할 말이라곤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드넓은 친절 속에서도, 처형대에 그토록 당당히 오르던 숱한 귀부인들처럼 고귀하고 놀랍도록 훤칠하고 아름다운 이 여인이, 감로주 한 잔을 내주지 않는 한, 이미 두 번이나 되뇌던 말, 곧 “대공은 정원에 계실 거예요”를 되풀이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공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내 의심이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를 소개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온갖 대화 소리 너머로, 방금 알게 된 시도니아 공작 각하를 상대로 끝없이 지껄여 대는 샤를뤼스 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인데, 공통의 악덕도 마찬가지다. 샤를뤼스 와 시도니아 는 저마다 상대의 악덕을 즉각 알아챘으니, 두 사람 모두 사교계에서 혼자 독백을 늘어놓으며 어떤 방해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유명한 소네트의 표현대로 ‘달리 방도가 없다’고 대번에 단정한 두 사람은, 입을 다물기는커녕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아랑곳없이 저마다 계속 지껄이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여러 사람이 저마다 다른 말을 동시에 내뱉을 때 빚어지는 그 뒤죽박죽 수다가 생겨났다. 게다가 남작은 귀청을 울리는 목소리로 시도니아 의 가냘픈 목소리를 눌러 덮어 우위를 지킬 것이 분명했으나, 그렇다고 상대의 기를 꺾지도 못했다. 샤를뤼스 가 숨을 돌리려 잠시 멈출 때마다 그 틈을, 태연히 제 이야기를 이어 가던 스페인 그랑데의 웅얼거림이 메웠기 때문이다. 나는 샤를뤼스 에게 게르망트 대공을 소개해 달라고 쉽게 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그가 내게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의 제안을 두 번째로 흘려듣고, 그가 그토록 다정하게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저녁 이후로 살아 있다는 기별조차 한 번 보내지 않음으로써, 더없이 배은망덕하게 그를 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그날 오후 그와 쥐피앙이 벌인, 내가 방금 목격한 그 장면을 미리 짐작했노라 변명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기야 얼마 전, 부모님이 내 게으름을, 샤를뤼스 에게 편지 한 줄 쓰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고 나무랐을 때, 나는 굴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부추긴다며 그분들을 거세게 몰아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가장 모욕이 될 표현을 찾으려는 노여움만이 그 거짓된 대꾸를 시켰을 뿐이다. 실은 나는 남작의 제안 밑에 관능적인 것이라곤, 아니 감상적인 것조차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다고 여겼다. 나는 아무 책임감 없이 부모님께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때로 미래는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안에 잠재해 있어서, 거짓이라 여긴 우리의 말이 임박한 현실을 예언하기도 한다.

샤를뤼스 는 아마 내 배은망덕쯤은 용서했으리라. 그러나 그를 격노케 한 것은, 그날 저녁 내가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 와 있는 것이, 얼마 전부터 그 사촌 댁에 드나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 댁들에 드나드는 길은 오직 나를 거치는 것뿐이다’라던 그의 엄숙한 선언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중대한 잘못, 어쩌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며, 나는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샤를뤼스 는 자기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자기가 미워하게 된 이들에게 내던지는 벼락이, 제아무리 사납게 휘둘러도, 많은 이에게 그저 판지 조각쯤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누구를 어디에서도 내쫓을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줄어든 자기 권세가, 그래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그 권세가, 나 같은 풋내기의 눈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존재 자체가 그의 허세를 비웃는 부정처럼 보이는 야회에서 그에게 청을 넣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나는 여겼다.

바로 그때 나는 딱 보기에도 흔한 부류의 사내, E⸺ 교수에게 붙들렸다. 그는 나를 게르망트가에서 보고 놀랐다. 나 역시 그를 거기서 보고 못지않게 놀랐으니, 그런 부류의 인간이 대공비의 야회에 나타난 것을 전에도 본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볼 일이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 임종의 종부성사까지 치른 대공을 패혈성 폐렴에서 고쳐 낸 참이었고, 게르망트 부인이 그에게 품은 각별한 고마움이 관례를 깨고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한 까닭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어, 죽음의 사자처럼 홀로 하염없이 서성일 수도 없던 터라, 나를 알아보고는 평생 처음으로 내게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덕에 짐짓 태연한 낯빛을 꾸밀 수 있었으니, 이것이 그가 내게 다가온 까닭의 하나였다. 또 다른 까닭도 있었다. 그는 자기 진단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두었다. 그런데 그가 주고받는 서신이 하도 많다 보니, 환자를 단 한 번만 보았을 경우에는 병이 그가 짚어 준 경과를 정말로 밟았는지 늘 기억하지는 못했다. 독자는 아마 기억하리라,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그가 온갖 훈장을 저고리에 꿰매어 달던 오후에,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그를 찾아갔던 일을.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는 그때 자기에게 보내진 부고를 더는 기억하지 못했다. “할머님은 돌아가셨지요, 그렇죠?” 그는 반쯤의 확신으로 자그마한 불안을 달래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처음 뵀을 때부터 제 예후는 지극히 심각했지요, 똑똑히 기억납니다.”

그리하여 E⸺ 교수는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거나 떠올렸는데, (그의 명예를 위해, 나아가 의료계 전체의 명예를 위해 말해 두어야겠다) 어떤 만족감도 드러내지 않고, 어쩌면 느끼지도 않은 채였다. 의사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은 으레 치료에 관해서는 낙관 쪽으로, 결과에 관해서는 비관 쪽으로 그르친다. “술이요? 적당히 드시면 해로울 것 없습니다, 늘 강장제가 되지요.… 성생활이요? 따지고 보면 자연스러운 기능입니다. 쓰되 남용은 마십시오, 아시겠지요. 무엇이든 지나치면 나쁩니다.” 그러면 대번에, 환자로서는 저 두 생명의 원천, 곧 물과 금욕을 마다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크겠는가. 반대로 심장이나 단백뇨 따위에 탈이 나더라도 그런 것은 오래가는 법이 없다. 중하기는 하나 순전히 기능적일 뿐인 질환이 대뜸 가상의 암으로 둔갑한다. 고칠 수 없는 병을 뿌리 뽑지도 못할 왕진을 계속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제 처지에 내맡겨진 환자가 그리하여 가차 없는 섭생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여 이윽고 회복되거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기라도 하면, 그가 페르라셰즈에 진작 누워 있으려니 여기던 의사는, 오페라 거리에서 그 환자가 자기에게 모자를 들어 인사할 때 그 몸짓을 뻔뻔한 도전의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다. 제 코앞과 점잖은 턱수염 아래를 유유히 거니는 순진한 산책이, 이 년 전 지금 아무 벌도 받지 않은 채 제 앞을 지나가는 그 악당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중죄 재판장의 노여움을 자아낸들 그보다 더하지는 않으리라. 의사들은(물론 여기에 그들 모두를 넣는 것은 아니며, 감탄스러운 몇몇 예외는 마음속에 따로 둔다) 대체로 제 판결이 집행되어 흡족해하기보다 그것이 뒤집혀 언짢아하고 부아를 낸다. 이런 까닭에 E⸺ 교수는 자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느꼈을 지적 만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닥친 그 타격을 그저 안타까운 어조로만 내게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대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으니, 대화가 그의 체면을 세워 주고 그 자리에 머물 구실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겪고 있던 그 지독한 더위 이야기를 꺼냈는데, 박식하고 훌륭한 프랑스어로 자기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고열(高熱)에도 별 탈 없으십니까?” 실은 의학이 몰리에르 시절 이후로 지식은 조금 나아졌으되 어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내 상대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이런 날씨가 부르는 발한을 피하는 겁니다, 특히 지나치게 데워진 방에서요. 집에 돌아가 목이 마르거든 열을 가하여”(아마 뜨거운 음료를 두고 한 말이리라) “그것을 다스릴 수 있지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사정 탓에 그 화제는 내 관심을 끌었고, 나는 얼마 전 어느 대가의 책에서 땀이 콩팥에 해롭다는 것을, 수분이 제 배출구가 따로 있는데도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읽은 참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무렵의 그 삼복더위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고, 그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E⸺ 박사에게 꺼내지 않았으나, 그는 제 쪽에서 먼저 내게 말했다. “이렇게 몹시 더운 날씨에 땀이 많이 나면 그만큼 콩팥이 덜어지는 이점이 있지요.” 의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E⸺ 교수는 나를 이야기에 붙들어 두며 오로지 자기를 떠나게만 하지 말아 달라고 청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마침, 게르망트 대공비의 좌우로 성큼 물러섰다가 크게 허리 굽혀 연달아 절을 해 대는 보구베르 후작을 보았다. 노르푸아 가 얼마 전 나를 그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어, 나는 그가 우리 주인에게 나를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 작품의 분량으로는, 젊은 시절의 어떤 사건들 탓에 보구베르 가 소돔에서 이른바 샤를뤼스 의 ‘심복’ 자리에 든 몇 안 되는(어쩌면 유일한) 사교계 인사가 된 연유를 여기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왕의 궁정에 파견된 우리 공사가 남작과 몇 가지 결점을 함께 지녔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흐릿한 반영에 지나지 않았다. 끌어당기고 싶은 욕망과, 이어 멸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체가 탄로 날지 모른다는, 역시 상상에 지나지 않는 두려움 사이를 오가게 만들던 저 마음의 진동을, 보구베르 는 한없이 누그러지고 감상적이고 단순한 형태로만 드러냈다. 순결로, 야심가답게 시험에 합격한 순간부터 온갖 쾌락을 바쳐 지켜 온 ‘플라토닉주의’로, 무엇보다 지적인 공허함으로 우스꽝스러워진 그였으나, 이 진동만은 그럼에도 내보였다. 그러나 샤를뤼스 의 경우 도를 넘은 찬사가 그야말로 격정적인 웅변으로 터져 나오고 사람을 두고두고 낙인찍는 더없이 미묘하고 신랄한 야유로 양념되던 반면, 보구베르 의 경우 그 애정은 더없이 아둔한 인간이자 관리다운 진부함으로 표현되었고, 그 불평은(대개 남작처럼 완전한 탄핵으로 부풀려졌다) 집요하되 동시에 맥없는 심술로 표현되었으며, 그 심술이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이 늘, 여섯 달 전에 공사가 했던 말,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를 말과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토록 규칙적인 변전은 보구베르 인생의 갖가지 국면에 거의 천문학적인 시정(詩情)을 안겨 주었으니, 정작 그 점을 빼면 이 사람만큼 별을 덜 떠올리게 하는 이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내게 건넨 인사는 샤를뤼스 에게서 받았을 법한 인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보구베르 는 그 인사에, 좋은 가문의 태도이자 외교관다운 몸가짐이라 스스로 여기던 온갖 허식 말고도, 거만하리만치 활달하고 싱글거리는 기색을 실었으니, 그것은 한편으로 그가 살아 있음을 기뻐하는 듯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고(정작 속으로는 승진의 가망 없이 강제 퇴직의 위협까지 받는 이력의 쓰라림을 곱씹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젊고 씩씩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다(정작 그는, 매혹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랐을 얼굴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제는 거울에 비춰 살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무언가를 손에 넣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 남들이 뭐라 할지, 추문이 일지, 협박이 따를지를 생각하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거의 어린애 같던 타락에서, 외무부로 마음이 향하여 스스로 원대한 이력을 그리기 시작한 그날부터의 완전한 절제로 넘어온 그는, 사방으로 두려움과 욕구와 우둔함이 어린 눈길을 던지는, 우리에 갇힌 짐승 같은 꼴이었다. 그 우둔함이 어찌나 짙던지, 그는 제 사춘기의 부랑아들이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는 것도 헤아리지 못했고, 신문팔이가 그의 얼굴에 대고 “La Presse!” 하고 외치면, 그리움보다도 오히려 자기가 알아보여 고발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외무부의 배은망덕에 제물로 바친 그 쾌락 대신, 보구베르 는, 바로 이 때문에 여전히 남의 마음을 끌고 싶어 안달했으니, 느닷없는 가슴의 설렘에 사로잡히곤 했다. 아무 마땅한 까닭도 없이 아무 재주도 없는 젊은이 하나를 공사관 직원으로 들여앉히려고 그가 얼마나 많은 편지로 본부를 들볶았는지(어떤 사사로운 술수를 부렸는지, 부인의 신망을 얼마나 끌어다 썼는지는 하늘만이 알리라. 보구베르 부인은 그 우람한 체구와 고귀한 태생과 남자다운 풍모, 무엇보다 남편의 범용함 덕에 뛰어난 역량을 지녔으며 사실상 그녀 자신이 공사나 다름없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하기야 몇 달, 몇 해 뒤면, 그 보잘것없는 수습 서기가 아무 적의도 없이 그저 상관에게 냉담한 기색을 조금 내비치기만 해도, 자기가 멸시당하거나 배신당했다고 여긴 상관은, 예전에 그에게 온갖 총애를 퍼붓던 그 발작적인 열정을 이번엔 그를 벌하는 데 쏟아붓기 마련이었다. 그는 그를 소환시키려고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고, 정무국장은 날마다 이런 편지를 받았다. “어서 그 건달을 내게서 떼어 주지 않고 뭘 합니까. 그자를 위해서라도 따끔하게 혼쭐을 내십시오. 그자에게 필요한 건 쓴맛을 보는 겁니다.” 그런 까닭에 테오도시우스 왕의 궁정에 파견된 수습 서기 자리는 도무지 달가운 것이 못 되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면에서는, 세상 물정에 밝은 완벽한 양식 덕분에 보구베르 는 해외에 나가 있는 프랑스 정부의 가장 훌륭한 대표 가운데 하나였다. 뒷날 온갖 사안에 정통한 뛰어난 인물, 자코뱅이라는 자가 그를 갈음하자, 오래지 않아 프랑스와 그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