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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④

4권 제1부 · 제1장

마침내 보구베르 가 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는 서글프게 말했다. “내가 사는 나라에도 같은 일이 없으리라고요?” “있을 법하지요.” 샤를뤼스 가 대답했다. “테오도시우스 왕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그에 대해 뭔가 확실히 아는 바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요.” “오, 저런, 아닙니다! 그런 부류는 결코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토록 완연히 그렇게 보일 권리는 없지요. 게다가 그는 온갖 자잘한 몸짓을 다 갖추고 있어요. 세상 무엇보다 내가 질색하는 그 ‘이보게’ 하는 투를 지녔단 말입니다. 나라면 그와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을 결코 남에게 보이지 못할 겁니다. 어쨌든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도 아실 테지요, 다들 그를 흰 늑대라고 부르니까요.” “그에 대해 당신은 완전히 오해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그는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프랑스와의 협정이 조인되던 날, 왕은 내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는 그토록 감격한 적이 없어요.” “바로 그때가 당신이 원하는 바를 그에게 말할 순간이었군요.” “오, 맙소사! 그 무슨 생각을! 그가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눈치챈다면요!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가까이 서 있던 터라 이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왕은 오늘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이 비밀이 내 혀를 여전히 묶어 두고 있구나.”

반은 말없고 반은 입 밖에 낸 이 대화는 겨우 몇 순간 이어졌을 뿐이었고, 내가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함께 첫 번째 응접실에 막 들어서자마자 자그마하고 가무잡잡한, 대단히 어여쁜 부인이 그녀를 붙들어 세웠다.

“온데간데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단눈치오가 극장 특별석에서 당신을 보았는데, T 대공비에게 편지를 써서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여태 본 적이 없다고 했답니다. 당신과 십 분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지 뭐예요. 아무튼 당신이 못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 해도, 그 편지는 내가 지니고 있어요. 날을 잡아서 나를 보러 오셔야 해요. 여기서는 말씀드릴 수 없는 비밀들이 좀 있거든요. 나를 기억 못 하시는군요.”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파름 대공비 댁에서 뵈었잖아요”(나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러시아 황제께서 당신 아버님을 페테르부르크로 보내고 싶어 안달이세요. 월요일에 오실 수 있다면 이즈볼스키가 몸소 그 자리에 있을 테니, 그 일을 두고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거예요. 당신께 드릴 선물이 있어요, 부인.” 그녀는 공작부인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아니고는 누구에게도 줄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랍니다. 입센 희곡 세 편의 원고인데, 그이가 늙은 시종을 시켜 내게 보내온 거예요. 하나는 내가 갖고 나머지 둘은 당신께 드릴게요.”

게르망트 공작은 이런 제안들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입센과 단눈치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분명치 않은 채, 그는 작가며 극작가 무리가 제 아내를 찾아와서는 그녀를 제 작품 속에 집어넣는 광경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다. 사교계 사람들은 책이란 한 면이 떼어져 나간 일종의 정육면체 같은 것이어서, 작가가 만나는 이들을 곧바로 그 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이는 명백히 불충한 짓이며, 작가란 꽤나 천한 부류다. 물론 이따금 한 번쯤 그들을 만나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들 덕분에 책이나 기사를 읽을 때 “행간을 읽고” 등장인물의 “정체를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가장 현명한 처사는 죽은 작가들만 상대하는 것이다. 게르망트 가 “아주 괜찮다”고 여긴 것은 골루아에 부고 기사를 쓰는 그 신사뿐이었다. 그 사람만큼은, 공작이 이름을 올린 장례식에서 “참석으로 눈에 띈” 이들 가운데 게르망트 를 끼워 넣는 데 그쳤던 것이다.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때면, 그는 이름을 대는 대신 고인의 유족에게 조의 편지를 보내어 깊고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리하여 유족이 신문사에 “받은 편지들 가운데 게르망트 공작이 보낸 것도 언급해 둘 만하다”는 등등의 식으로 알려 오면, 이는 그 삼류 문사의 잘못이 아니라 고인의 아들이나 형제, 아버지의 잘못이었고, 공작은 그런 자들을 벼락출세한 무리로 몰아붙이며 앞으로는 더 상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런 표현의 뜻에 그리 밝지 못했던 그가 이를 두고 “물고 늘어질 까마귀가 있다”고 일컬은 것이었다). 어쨌든 입센과 단눈치오라는 이름, 그리고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함은 공작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으니, 그는 티몰레옹 다몽쿠르 부인의 갖은 아양을 못 들을 만큼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매력적인 여인으로, 그 재치가 미모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사람을 홀리는 것이어서 둘 중 하나만으로도 그녀를 빛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사는 세계 바깥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그저 문학 살롱 하나를 열망했을 뿐이며, 대문호들과 차례로, 그리고 오로지 벗으로만(품행이 나무랄 데 없었으니 벗 이상은 결코 아니었다) 사귀어 그들이 원고를 모두 그녀에게 주고 그녀를 위해 책을 썼는데, 어쩌다 한번 그녀가 포부르 생제르맹에 발을 들이게 되자 이 문학적 특권들이 그곳에서 그녀에게 요긴하게 쓰였다. 이제 그녀는 확고한 지위를 지녔고, 제 존재만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말고는 다른 은총을 베풀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날 중개인 노릇을 하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 주는 데 익숙했던 터라, 그녀는 그런 일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뒤에도 계속 그 짓을 이어갔다. 그녀에게는 늘 당신에게 털어놓을 국가 기밀이며, 당신이 꼭 만나야 할 실력자며, 당신에게 선사할 거장의 수채화 한 점이 있었다. 이 온갖 군더더기 같은 매력에는 과연 거짓의 자취가 어려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녀의 삶을 갖은 얽힘으로 반짝이는 한 편의 희극으로 만들었고, 그녀가 지사와 장군을 임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내 곁을 거닐며 하늘빛 눈빛을 앞으로 떠돌게 하되,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이들을 피하려는 듯 어렴풋하게만 두었으니, 그녀는 이따금 그들의 존재를 멀리 있는 위협적인 암초처럼 알아차렸다. 우리는 손님들이 두 겹으로 늘어선 울타리 사이를 나아갔는데, 그들은 결코 “오리안”과 알고 지낼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의식한 채 적어도 그녀를 진기한 구경거리로 제 아내에게 가리켜 보이려 안달이었다. “여보 우르쉴, 어서 와서 저 젊은이와 이야기하는 게르망트 부인 좀 봐요.” 그리고 이러다 곧 그들이 7월 14일의 열병식이나 그랑프리 경마에서처럼 더 잘 보려고 의자 위로 기어오르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살롱이 그 사촌의 살롱보다 더 귀족적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앞엣것에는 뒤엣것이 결코 초대하려 들지 않았을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그것은 주로 그 남편 탓이었다. 그녀는 알퐁스 드 로칠드 부인을 결코 집에 들이지 않았을 텐데, 이 부인은 오리안 자신이 그렇듯 라 트레무이유 부인과 사강 부인의 절친한 벗으로서 뒤엣 사람의 집에 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웨일스 공이 데려와 그녀에게 소개한 이르슈 남작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를 못마땅해했을 대공비에게는 데려가지 않았고, 유난히 악명 높은 몇몇 보나파르트파나 심지어 공화파도 그러했는데, 공작부인은 이들을 흥미롭게 여겼으나 확고한 왕당파인 대공은 이들을 제 집 안에 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반유대주의 역시 원칙에 뿌리를 둔 것이어서 아무리 확고하게 공인된 사교적 지위 앞에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니, 그가 소년 시절부터 벗이었던 스완을 집에 들이면서도 게르망트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를 샤를이 아니라 스완이라 부른 것은, 유대인과 결혼한 개신교도였던 스완의 할머니가 베리 공작의 정부였음을 알기에 스완의 아버지가 실은 그 공작의 사생아라는 전설을 이따금 믿어 보려 애썼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하기야 이는 거짓이었지만, 가톨릭교도 아버지의 아들이자 그 아버지 또한 가톨릭교도 어머니에게서 난 부르봉가의 아들인 스완은 손끝까지 기독교도였던 셈이다.

“아니, 이 화려한 것들을 모르신다고요?” 공작부인이 우리가 지나가고 있던 방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사촌의 “궁전”에 마땅한 찬사를 바치고 나서, 그녀는 자기는 제 “누추한 소굴”이 천 배는 더 좋다고 서둘러 덧붙였다. “구경하기에는 훌륭한 집이지요. 하지만 그 많은 역사적 사건을 지켜본 방에 남아 잠을 자야 한다면 나는 서러워 죽고 말 거예요. 폐관 시간이 지난 뒤 블루아 성이나 퐁텐블로, 심지어 루브르에 잊힌 채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 테고, 그 울적함을 달랠 방도라고는 내가 모날데스키가 살해된 그 방에 있노라 되뇌는 것뿐일 테니까요. 진정제로 삼기에는 그리 신통치 않지요. 어머, 저기 생퇴베르트 부인이 오시네요. 우린 방금 그분과 저녁을 먹었어요. 내일 그 대단한 연례 잔치를 여니까 곧장 잠자리에 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저분은 파티라면 한 번도 거르지 못한답니다. 이게 시골에서 열리는 것이었대도, 안 가느니 차라리 짐차에라도 뛰어올랐을 거예요.”

사실 생퇴베르트 부인이 이날 저녁에 온 것은 남의 파티를 놓치지 않는 즐거움 때문이라기보다, 제 파티의 성공을 다지고, 명단에 새로 넣을 이들을 끌어모으며, 이를테면 이튿날 제 가든파티에서 그토록 눈부신 진형을 펼칠 병사들을 막바지에 사열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생퇴베르트가 파티의 손님들은 거의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토록 드문드문했던 게르망트 세계의 명사 부인들이, 안주인의 극진한 대접에 파묻힌 나머지 차츰 제 벗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못지않게 점진적이되 반대 방향의 노력으로, 생퇴베르트 부인은 해마다 상류 사교계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수를 줄여 나갔다. 처음에는 그중 하나가, 다음에는 또 하나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은 “일괄” 방식이 시행되었는데, 침묵의 장막이 드리운 파티들 덕분에 그녀는 축에 들지 못하는 자들을 따로 불러 자기들끼리 어울리게 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럴싸한 이들과 함께 그들을 초대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들에게 무슨 불평할 거리가 있었겠는가? 그들에게도(panem et circenses) 가벼운 다과와 엄선된 음악 순서가 주어지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지난날 생퇴베르트 살롱이 이제 막 시작되던 무렵 한 쌍의 카리아티드처럼 그 위태로운 꼭대기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곤 하던 두 유배된 공작부인과 일종의 대칭을 이루듯, 이 뒷날에는 화려한 무리에 섞여 있는 이질적인 인물이라고는 딱 둘, 늙은 캉브르메르 부인과 노래를 청할 때마다 응해야 했던, 목소리 고운 그 건축가의 아내뿐임을 가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생퇴베르트 부인 댁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어, 잃어버린 옛 동무들을 애달파하고 자신들이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느끼며, 그들은 제때 떠나지 못한 두 마리 제비처럼 얼어 죽을 듯한 기색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하여 이듬해에는 그들이 초대받지 못했다. 프랑크토 부인이 음악을 그토록 좋아하는 제 사촌을 위해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아니, 음악을 듣고 싶으면 누구든 언제라도 들어와 들을 수 있지요. 그게 무슨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라는 말보다 더 분명한 대답을 얻어 낼 수 없었던 터라, 캉브르메르 부인은 그 초대가 그리 간곡하지 않다고 여겨 가지 않았다.

생퇴베르트 부인이 이렇듯 나환자 수용소나 다름없던 것을 귀부인들의 모임으로(겉보기에 유행의 절정에 이른 최신 형태로) 탈바꿈시켜 놓았으니, 이튿날 그 계절 가장 눈부신 파티를 열 사람이 굳이 전날 밤에 나타나 제 병사들에게 마지막 명령 한마디를 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그러나 실상 생퇴베르트 부인 응접실의 그 탁월함이란 오로지, 낮 파티며 저녁 파티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 없이 골루아피가로에 실린 그 기사를 읽는 것으로 사교 생활 전부를 삼는 이들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오직 신문에 비친 대로만 보는 이 속인들에게는, 영국·오스트리아 등등의 대사 부인들, 위제스 공작부인, 라 트레무이유 공작부인 등등 등등을 죽 늘어놓기만 해도 생퇴베르트 응접실이 파리에서 으뜸이라고 대뜸 상상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나, 실은 그것은 꼴찌 축에 들었다. 그 기사들이 거짓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언급된 이들 대다수는 실제로 참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간청과 정중한 대접과 편의에 응해서, 그리고 생퇴베르트 부인에게 더없는 영광을 베푼다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찾기보다 오히려 피하는, 이를테면 억지로 끌려들어 오는 응접실은 “사교계” 난의 여성 독자들 말고는 아무도 속이지 못한다. 그들은 정작 유행의 첨단을 걷는 파티는 지나쳐 버리는데, 그런 파티에서는 안주인이, 세상 모든 공작부인을 다 부를 수도 있건만, 그리고 그 부인들은 “선택받은 이들 축에 끼기를” 갈망하건만, 겨우 두셋만 초대하고 손님 명단을 신문사에 보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날 선전이 얻어 낸 위력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업신여기는 이 안주인들은, 스페인 왕비에게는 유행의 첨단으로 여겨지되 뭇 사람들에게는 무시당하니, 앞의 사람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뒤의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생퇴베르트 부인은 이런 부류의 여인이 아니어서, 잇속을 노리고 초대받은 이들을 이튿날을 위해 죄다 그러모으려 온 것이었다. 샤를뤼스 는 그 축에 들지 않았으니, 그는 늘 그녀의 집에 가기를 마다했다. 그러나 그는 하도 많은 이들과 다툰 터라, 생퇴베르트 부인은 이를 그의 별난 성미 탓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물론 오리안뿐이었다면 생퇴베르트 부인이 굳이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초대는 이미 말로 건네졌고, 게다가 그 매혹적이고도 사람을 속이는 우아함으로 받아들여진 터였으니, 그런 우아함을 부리는 데는 저 아카데미 회원들이 따를 자가 없어서, 지원자는 그들의 지지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슴이 녹은 채 그 문을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도 있었다. 아그리장트 대공은 올 것인가? 그리고 뒤르포르 부인은? 그리하여 생퇴베르트 부인은 잇속을 챙기려 몸소 현장에 나타나는 편이 상책이라 여겼다. 어떤 이에게는 넌지시, 어떤 이에게는 단호하게, 그녀는 하나같이 두루 어디서도 다시는 볼 수 없을 상상조차 못 할 볼거리를 에두른 말로 암시하며, 저마다 제 파티에서 가장 바라던 사람, 혹은 가장 만나고 싶던 인물을 만나게 되리라 약속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하루, 이튿날 그 계절 가장 큰 가든파티를 열 사람에게 부여되는, 마치 고대 세계의 어떤 공직과도 같은 이런 소임은 그녀에게 잠깐의 권위를 안겨 주었다. 그녀의 명단은 이미 짜여 마감된 터라, 대공비의 방들을 천천히 거닐며 이 귀 저 귀에 대고 “내일 나를 잊으시면 안 돼요” 하고 속삭이는 동안, 피해야 할 어떤 흉측한 자나, 학창 시절 우정의 인연 덕에 질베르의 집에 들 수 있었을 뿐 제 가든파티에 온들 아무 득이 될 것 없는 어떤 시골 지주가 눈에 띄면, 그녀는 미소는 그대로 지은 채 눈길을 돌려 버리는 덧없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 편을 택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저는 초대를 말로 했는데, 아쉽게도 어디서도 당신을 뵙지 못했지 뭐예요.” 그리하여 한낱 생퇴베르트에 지나지 않는 그녀는 송곳 같은 눈으로 대공비의 파티 손님들 가운데서 가려 뽑는 일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영락없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라도 된 양 상상했다.

뒤엣 부인 역시, 사람들이 무어라 짐작하든, 제 인사와 미소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녀가 그것을 아낄 때 그것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진저리 나게 지루하단 말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앞으로 한 시간을 저 여자 파티 얘기나 하고 있어야 하나요?”

가무잡잡한 낯빛의 어느 공작부인이 지나갔는데, 그녀의 못생김과 아둔함, 그리고 몇몇 행실의 흠이 그녀를 사교계 전체에서는 아니어도 몇몇 작고 세련된 무리에서는 내쫓아 버린 터였다. “어머!” 게르망트 부인이, 가짜 보석을 내밀린 감식가의 날카롭고 어김없는 눈길로 중얼거렸다. “여기선 저런 부류까지 부르나 봐요?” 검은 털이 삐죽삐죽 돋은 점이 지나치게 많아 얼굴이 무거워 보이는, 절반쯤 빛바랜 이 부인을 보는 것만으로 게르망트 부인은 이 파티의 대수롭지 않은 격을 가늠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자랐지만, 그녀는 이 부인과 모든 관계를 끊은 터였고, 그 인사에는 더없이 쌀쌀맞게 살짝 고개만 까딱해 답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마리질베르가 어쩌자고 저런 쓰레기들과 함께 우릴 부르는지. 본당마다 빈민 대표단이라도 하나씩 뽑아 보낸 것 같잖아요. 멜라니 푸르탈레스는 훨씬 일 처리를 잘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종교회의든 오라투아르 예배당이든 제 집에 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우릴 같은 날에 부르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소심함에서, 예술가 따위를 접대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남편과 한바탕 벌일 일에 대한 두려움에서(마리질베르는 그런 이들 수십 명에게 상냥한 관심을 쏟았으니, 어느 이름난 독일 여가수에게 붙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또한 국민주의 정서에 대한 얼마간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녀는 샤를뤼스 와 마찬가지로 게르망트가의 재치를 타고난 만큼 그 정서를 사교적 관점에서는 경멸했으나(이제 사람들은 참모본부의 더 큰 영광을 위해 평민 출신 장군을 어떤 공작들보다 앞세워 만찬에 들여보내곤 했다), 그럼에도 제 견해가 불온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 정서에 후하게 양보했고, 심지어 이 반유대주의적인 자리에서 스완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처지가 될까 봐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이 점에 대해서라면 그녀의 마음은 이내 놓였는데, 대공이 스완을 집에 들이기를 거부했고 그와 “일종의 언쟁 같은 것”을 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몰래 아끼는 편을 택한 “가엾은 샤를”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위험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 저 사람은 누구죠?” 게르망트 부인이, 빈민으로 여겼을 만큼 소박한 검은 드레스 차림에 어딘가 얼떨떨한 기색의 자그마한 부인이, 그 부인의 남편과 더불어 허리를 깊이 숙여 자기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외쳤다. 그녀는 그 부인을 알아보지 못한 채, 특유의 오만한 태도로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듯 몸을 곧추세우고는 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바쟁?” 그녀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고, 그동안 게르망트 는 오리안의 무례를 만회하려 그 부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남편과 악수했다. “아니, 저분은 쇼스피에르 부인이잖소, 당신 정말 무례했소.” “쇼스피에르라는 사람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샹리보 노부인의 조카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저 여자가 누구고, 왜 나한테 인사를 하는 거죠?” “당신도 잘 알잖소, 샤를발 부인의 딸, 앙리에트 몽모랑시요.” “아, 그 어머니라면 나도 아주 잘 알았죠, 매력적이고 무척 총명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어쩌자고 나가서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집안 사람들과 결혼했을까? 저 여자가 스스로를 쇼스피에르 부인이라 부른다고요?” 그녀는 이름의 음절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떼어, 캐묻는 기색으로, 마치 틀리기라도 할까 봐 겁내는 듯이 말했다. “쇼스피에르라 자칭하는 게 당신 생각만큼 우스운 일은 아니오! 늙은 쇼스피에르는 앞서 말한 샹리보와, 스느쿠르 부인과, 메를로 자작부인의 오라비였소. 훌륭한 집안이란 말이오.” “아, 그만 좀 하세요.” 공작부인이 외쳤는데, 그녀는 맹수 조련사처럼 짐승의 집어삼킬 듯한 눈초리에 겁먹은 모습을 결코 내비치려 하지 않았다. “바쟁, 당신은 내 삶의 낙이에요. 대체 그런 이름들을 어디서 주워 왔는지 짐작도 안 되지만, 축하해 드려요. 내가 쇼스피에르는 몰랐어도 발자크는 읽었고, 당신만 읽은 게 아니랍니다, 게다가 라비슈까지 읽었어요. 샹리보는 그럴싸하고, 샤를발도 나쁘지 않지만, 메를로는 걸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래도 쇼스피에르 역시 나쁘지 않다고 해 두죠. 당신은 그것들을 죄다 주우러 다녔던 게 분명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당신은 책을 쓸 생각이라죠.”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샤를발과 메를로는 적어 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보다 나은 것은 못 찾을 테니까.” “저 사람은 피고석에 서서 감옥에 가게 될 거요. 당신은 아주 못된 충고를 하고 있소, 오리안.” “저 사람을 위해서라도, 못된 충고를 구하고 싶거든 나보다 젊은 이들을 곁에 두고 있기를 바라요. 하물며 그걸 따를 작정이라면 더더욱요. 그래도 책을 쓰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을 할 게 아니라면야!”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온통 다이아몬드와 튈로 감싼 하얀 드레스 차림의 눈부시고도 도도한 젊은 여인이 무리 속에서 곱게 도드라져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은 그녀의 우아함에 홀린 한 무리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당신 누이는 여느 때처럼 오늘 무도회의 꽃이군요. 오늘 밤 참 매력적이에요.”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지나가던 시메 대공에게 말했다. 프로베르빌 대령이(같은 이름의 그 장군이 그의 삼촌이었다) 우리 곁에 와서 앉았고, 브레오테 도 그러했으며, 한편 보구베르 는 우리 주위를 서성이다가(테니스를 칠 때조차 지킬 만큼 지나친 예의 탓에, 공을 치기 전마다 그 자리에 있는 저명인사들에게 양해를 구하느라 번번이 제 짝의 경기를 지고 말던 그 예의였다) 다시 샤를뤼스 에게로 돌아갔는데(그때까지 그는 다른 어떤 여인보다 흠모한다고 공언하던 몰레 백작부인의 거대한 치마폭에 거의 가려져 있었다), 마침 그것은 파리에 새로 온 외교 사절단의 몇몇이 남작에게 인사하던 순간이었다. 유난히 총명해 보이는 젊은 서기관을 보자, 보구베르 는 샤를뤼스 에게 오직 하나의 물음만이 뚜렷이 피어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샤를뤼스 라면 두말없이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짓쯤은 예사로 했겠지만, 남의 입술에 떠오른, 게다가 오직 한 가지 뜻일 수밖에 없는 이 미소 때문에 제가 곤경에 처했다고 느끼는 것은 그를 격분케 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 호기심은 당신 혼자 간직해 두시길 부탁드리지요. 나로서는 냉담하다 못한 심정입니다. 게다가 이번 경우에 당신은 더없이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나는 이 젊은이가 완전히 그 반대라고 봅니다.” 여기서 샤를뤼스 는, 이렇듯 어리석은 자에게 속내를 들킨 데 화가 난 나머지,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남작의 말이 옳았다면 그 서기관은 제 대사관의 통례에 예외를 이루었을 것이다. 사실 그 대사관은 저마다 크게 다른 인물들로, 그중 다수는 지극히 이류인 자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들을 한데 모은 그 선발의 동기가 무엇이었을지 알아내려 든다면 있음 직한 것이라고는 성도착 하나뿐인 듯했다. 이 자그마한 외교의 소돔 우두머리에, 도리어 촌극 속 늙은 익살꾼처럼 우스꽝스럽도록 과장되게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제 남장 배우 부대를 일사불란하게 다스리는 대사를 앉힘으로써, 당국은 대비의 법칙에 따르고 있었던 듯싶다. 코앞에 그것을 두고도 그는 성도착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크게 잘못 짚어 바람둥이라 여긴 어느 대리공사에게 제 누이를 시집보냄으로써 이를 당장에 입증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는 꽤나 성가신 존재가 되어, 얼마 안 가 그 무리의 동질성을 확보해 줄 새 각하로 교체되었다. 다른 대사관들도 이 대사관에 맞서 보려 했으나 그 우승을 다투지는 결코 못했고(대입 자격시험에서 어떤 학교가 늘 수석을 차지하듯이), 이 너무나 완벽한 집합체에 이질적인 수행원들이 끼어든 끝에 마침내 다른 대사관이 그 섬뜩한 우승컵을 빼앗아 선두에 서기까지는 십 년도 더 지나야 했다.

스완과 이야기해야 할까 봐 두려워하던 마음을 놓은 게르망트 부인은, 이제 그가 주인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그게 무슨 얘기였는지 아시오?” 공작이 브레오테 에게 물었다. “듣기로는,” 상대가 대답했다, “작가 베르고트가 그 집에서 올린 자그마한 연극에 관한 것이었다더군요. 마침 아주 즐거운 공연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질베르로 분장을 했다는데, 하필 베르고트 선생이 흉내 내려던 게 바로 그 질베르였다는 거예요.” “어머, 질베르를 흉내 내는 걸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공작부인이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로 그 자그마한 공연을 두고,” 브레오테 가 설치류 같은 턱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이었다, “질베르가 스완에게 해명을 요구했는데, 스완은 그저 다들 아주 재치 있다고 여긴 대답을 했지요. ‘아니, 천만에요, 당신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어요, 당신이 훨씬 더 우습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브레오테 가 계속했다, “그 자그마한 연극이 꽤나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몰레 부인도 거기 있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어했다는군요.” “아니, 몰레 부인이 그 집에 드나든다고요?” 공작부인이 놀라 말했다. “아! 그건 분명 메메가 벌인 일이겠죠. 그런 부류의 집은 결국 늘 그렇게 되고 마는 법이에요. 어느 좋은 날 갑자기 너나없이 그리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원칙대로 일부러 발을 끊고 지낸 나는 내 구석에 홀로 남아 시무룩이 있는 신세가 되는 거죠.” 브레오테 의 말이 있고 나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이미(스완의 집에 대해서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언제든 그와 마주칠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서만큼은) 보다시피 새로운 관점을 취한 터였다. “당신이 우리에게 들려준 그 해명은,” 프로베르빌 대령이 브레오테 에게 말했다,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잘 알 만한 까닭이 있어요. 대공은 그저 스완을 호되게 꾸짖어, 우리 조상들 말마따나, 그가 떠벌리는 그 견해로 보건대 다시는 그 집에 얼굴을 내밀지 말라고 못을 박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내 삼촌 질베르가 스완에게 한마디 따끔하게 한 것뿐 아니라, 진작 반년 전에 그 골수 드레퓌스파와 아주 끝장을 냈어야 옳았으니, 천번만번 지당했지요.”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