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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⑥

4권 제1부 · 제1장

그 방에 막 다다랐을 때, 나는 시트리 후작부인에게 붙들렸는데,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거의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했다. 어엿한 귀족 태생인 그녀는 증조모가 오말로렌 가문 사람이었던 시트리 와 결혼함으로써 눈부신 혼처를 구해 이룬 터였다. 그러나 그 만족을 맛보기가 무섭게 타고난 심술이 도져, 그녀는 사교계 사람들을 질색하게 되었으면서도 그렇다고 사교 생활에서 아주 발을 끊지는 못했다. 야회에서 그녀는 그 자리의 모든 이를 비웃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비웃음이 어찌나 사나웠던지 그저 웃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도록 신랄하지 못해 목구멍에서 나오는 쉿 소리로 바뀔 정도였다. “아!” 그녀가 이제 내 곁을 떠나 벌써 저만치 가 있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내가 도무지 못 참겠는 건, 저이가 저따위 삶을 견디며 산다는 거예요.” 이것은 이방인들이 제 발로 진리를 깨치러 오지 않는 데 놀란, 의롭게 분개하는 성인의 말이었을까, 아니면 살육에 목마른 무정부주의자의 말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이 힐난에는 그 어떤 정당한 근거도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먼저, 게르망트 부인이 ‘견디며 사는 삶’이란 (분개하는 정도만 빼면) 시트리 부인이 사는 삶과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밖에 다르지 않았다. 시트리 부인은 공작부인이 그 죽을 것 같은 희생, 곧 마리질베르의 야회 가운데 하나에 참석하는 일을 능히 해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것이다. 다만 이 경우만은 짚어 두어야 할 것이, 시트리 부인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여인인 그 대공비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야회에 참석하는 것이 그녀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야회에 오려고, 자기가 천재로 여기며 러시아 무용의 신비로 이끌어 주기로 되어 있던 어느 무용수와의 약속까지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오리안이 이 손님 저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볼 때 시트리 부인이 느낀 그 응어리진 분노를 어느 정도 무색하게 만든 또 하나의 까닭은, 게르망트 부인도 비록 훨씬 덜 진행된 단계이긴 하나 시트리 부인을 좀먹고 있는 그 병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앞서 보았듯 그녀는 그 병균을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었다. 실은 시트리 부인보다 총명했던 만큼 게르망트 부인이야말로 (한낱 사교적인 것을 넘어서는) 이 허무주의에 그녀보다 더 마땅한 권리가 있었겠지만, 어떤 미덕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결점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 그것을 견디도록 돕는 법이며, 큰 재능을 지닌 사람은 대개 어리석은 자보다 남의 어리석음에 덜 마음을 쓰는 법이다. 공작부인의 재치가 어떤 것인지는 이미 넉넉히 그려 두었으니, 그것이 대단한 지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망정 적어도 재치, 곧 (번역가처럼) 갖가지 문법 형태를 부려 쓰는 데 능한 재치였다는 것을 독자도 수긍하리라. 그런데 시트리 부인에게는 그녀 자신의 것과 그토록 가까운 자질들을 깔볼 자격을 줄 만한 것이 이런 종류로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모든 이를 얼간이로 여겼으나, 정작 그녀의 대화나 편지는 그녀가 그토록 멸시하며 대하던 사람들보다 뚜렷이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파괴에의 갈증이 어찌나 심했던지, 사교계를 거의 등지다시피 한 뒤로 그녀가 찾던 즐거움들마저 하나하나 차례로 그 무시무시한 해체의 힘에 내맡겨졌다. 야회를 접고 음악의 밤을 찾던 무렵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그런 걸, 음악을 듣는 게 좋으세요? 세상에, 뭐냐에 따라 다 다르죠. 어떤 건 그야말로 사람 잡는다니까요! 오! 베토벤! 어찌나 따분한지!” 바그너에 대해서는, 그다음엔 프랑크나 드뷔시에 대해서는 barbe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수고조차 하지 않고, 그저 면도하는 듯한 손짓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릴 뿐이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따분해졌다. “아름다운 것들이란 어찌나 지겨운지. 오! 그림이라니! 사람을 미치게 만들 지경이에요.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편지를 써야 한다는 건 어찌나 따분한 노릇인지!” 마침내 그녀가 rasante하다고 선언한 것은 삶 그 자체였으니, 듣는 이들은 그녀가 그 말을 대체 어디에 갖다 붙이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내가 처음 그 댁에서 저녁을 든 날 저녁에 이 실내를 두고 한 말 때문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 카드놀이방, 아니 흡연실은, 그림이 그려진 바닥이며, 삼각대들이며,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신들과 짐승들의 형상이며, 안락의자 팔걸이를 따라 길게 늘어진 스핑크스들이며, 무엇보다도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을 어느 정도 본떠 상징적 기호들로 뒤덮인, 대리석인지 칠보 모자이크인지 모를 그 거대한 탁자로 인해, 마법사의 밀실 같은 인상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그 점술 탁자에 바짝 끌어당긴 의자에 앉아, 카드에는 손 한 번 대지 않고, 제 둘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아랑곳없이, 내가 방에 들어선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샤를뤼스 가 몸소, 오로지 제 의지와 이성의 온 힘을 다해 별점을 뽑는 마법사와 꼭 닮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삼각대에 앉은 피티아의 눈처럼 그의 두 눈은 튀어나올 듯했고, 더없이 단순한 움직임조차 멈추기를 요구하는 그 노고에서 무엇 하나 그의 주의를 흩뜨리지 못하게 하려고, 그는 (문제를 풀기 전에는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계산가처럼) 좀 전까지 입술 사이에 물고 있던 시가를 곁에 내려놓았으니, 이제는 담배 피울 생각을 할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마주 보는 의자 팔걸이에 웅크린 두 신을 보고 있노라면, 남작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려 애쓴다고 여길 법도 했으나, 실은 그보다는, 바로 그 안락의자에 앉아 놀이에 끼어들러 온, 젊고 살아 있는 오이디푸스의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샤를뤼스 가 그토록 온 정신을 쏟아붓고 있던 그 도형은, 사실 흔히 more geometrico로 연구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젊은 쉬르지 백작의 이목구비가 그에게 던져 놓은 명제였다. 그 앞에서 샤를뤼스 가 어찌나 골똘히 빠져 있었던지, 그것은 무슨 수수께끼 그림 같기도, 무슨 알쏭달쏭한 문제 같기도, 무슨 대수 문제 같기도 하여, 그로서는 그 신비를 꿰뚫거나 그 공식을 풀어내야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앞에서 그 율법의 서판에 새겨진 무녀의 기호들과 형상들은, 이 늙은 마법사로 하여금 그 젊은이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 뻗어 가는지를 읽어 내게 해 줄 gramarye처럼 보였다. 문득 그는 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미소 짓더니 얼굴을 붉혔다. 바로 그때 쉬르지 부인의 다른 아들이 카드를 들여다보려고 놀이를 하던 형 뒤로 다가왔다. 샤를뤼스 는 내게서 그 둘이 형제라는 말을 듣고는, 그토록 눈부시고 그토록 서로 다른 걸작들을 빚어낼 수 있는 한 집안에 대해 자신이 느낀 감탄을 얼굴에 숨기지 못했다. 게다가 남작의 열광을 한층 돋운 것은, 쉬르지르뒥 부인의 두 아들이 한 어머니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한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유피테르의 자식들이 서로 닮지 않은 것은, 그가 먼저 지혜로운 자식을 낳을 운명의 메티스와 혼인하고, 이어 테미스와, 그다음엔 에우리노메와, 므네모시네와, 레토와 혼인한 끝에, 맨 마지막에야 유노와 혼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르지 부인은 단 한 아버지에게서 이 두 아들을 낳았으니, 둘은 저마다 그녀에게서 아름다움을 물려받았으되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마침내 스완이 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렸는데, 방이 어찌나 컸던지 그는 처음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슬픔이 뒤섞인 기쁨, 다른 손님들은 아마 느끼지 못했을 슬픔이 뒤섞인 기쁨이었으니, 그들의 감정이란 차라리 다가오는 죽음의, 흔히들 말하듯 이미 얼굴에 죽음을 써 붙인 사람이 지닌 그 죽음의 낯설고 뜻밖의 형상이 자아내는 일종의 매혹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거의 무례하다 할 아연함, 그 속에 무람없는 호기심과 잔인함과, 조용하면서도 불안한 눈여김이 (로베르라면 suave mari magnomemento quia pulvis가 뒤섞인 것이라 했으리라) 깃든 그 아연함으로, 모든 눈길이 그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병으로 두 뺨이 하도 파먹혀, 이지러져 가는 달처럼, 어느 한 각도, 필시 스완 자신이 제 얼굴을 바라보던 그 각도만 아니면, 광학적 착각만이 겨우 단단해 보이게 할 뿐인 얄팍한 무대 배경 조각처럼 뚝 끊겨 버리는 그 얼굴에. 그 두 뺨이 이제 없어져 코를 다듬어 주지 못하는 탓인지, 아니면 이 또한 일종의 중독인 동맥경화가 취기처럼 코를 붉히고 모르핀처럼 코를 일그러뜨린 탓인지, 오랜 세월 매력적인 얼굴에 파묻혀 있던 스완의 그 어릿광대 같은 코가 이제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부어오르고 시뻘게져, 호사가풍 발루아 사람이라기보다 늙은 히브리인의 코 같아 보였다. 어쩌면 이 마지막 나날에 그에게서 혈통이 그 특유의 신체적 유형을 한층 뚜렷이 드러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며, 그와 더불어 다른 유대인들과의 도덕적 연대의 감정, 스완이 평생 잊고 지낸 듯싶다가 그의 죽을병과 드레퓌스 사건과 반유대주의 선전이 잇따라 되살려 놓은 그 연대의 감정도 함께 뚜렷해지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고도 남달리 뛰어나며 세련된 사교가이면서도, 마치 연극에서처럼 삶의 어느 순간 무대에 등장할 채비를 하고 무대 뒤 예비로 남아 있는 천박한 벼락출세자와 예언자를 함께 품고 있다. 스완은 이제 그 예언자의 나이에 이른 것이었다. 물론, 병이 작용하여, 마치 얼음덩이가 녹으며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듯 얼굴에서 통째로 사라진 부분들이 있는 그 얼굴로 하여, 그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더 크게 달라졌는지를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훌륭하고 교양 있는 사람, 만나서 조금도 언짢을 것 없는 이 사람을 두고, 나는 어찌하여 옛날에 그토록 큰 신비로 그를 감쌀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샹젤리제에 나타나기만 하면 내 심장이 어찌나 세차게 뛰었던지 감히 그의 비단 안감 망토에 다가가지 못할 만큼 수줍었고, 그런 존재가 사는 아파트 문 앞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감격과 당혹에 사로잡히지 않고는 초인종조차 누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집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도 사라져 버렸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은 내게 즐거울 수도 아닐 수도 있었으나, 내 신경에는 이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바로 그날 오후, 그러니까 결국 몇 시간 전에 게르망트 공작의 서재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 견주어서도 얼마나 달라졌던가. 정말로 그가 대공과 한바탕 다투었고, 그 일로 무너져 버린 것일까? 그런 가정은 필요치 않았다. 중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수고조차 이내 지나친 부담이 되는 법이다. 그런 사람은 이미 지쳐 있는 터에 사람으로 붐비는 응접실의 열기에 노출되기만 해도, 지나치게 익은 배나 곧 상하려는 우유가 몇 시간 만에 그러하듯, 얼굴이 무너지고 파리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스완의 머리칼은 군데군데 성글어져, 게르망트 부인의 말마따나 모피 손질하는 이의 손길이 필요할 지경이었고, 장뇌를 먹인 듯, 그것도 서투르게 먹인 듯 보였다. 내가 막 방을 가로질러 스완에게 말을 건네려던 참에, 공교롭게도 한 손이 내 어깨에 얹혔다.

“여어, 이 사람아, 나 파리에 마흔여덟 시간 와 있네. 자네 집에 들렀더니 여기 있다더군, 그러니 우리 아주머니가 이 야회에 나 같은 사람을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된 건 다 자네 덕일세.” 생루였다. 나는 그에게 이 저택이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해 마지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 제법 역사적인 건물이야. 개인적으론 끔찍하다 싶지만. 팔라메드 삼촌 근처엔 얼씬도 말자고, 잘못하면 붙들리니까. 몰레 부인이 가 버린 지금(요즘은 그 여자가 좌지우지하거든), 삼촌은 완전히 넋을 놓고 있어. 그야말로 연극이 따로 없었다더군, 한순간도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다가, 마차에 무사히 태워 보내고서야 놓아주었다니까. 삼촌을 원망하는 건 아니야, 다만 늘 나한테는 그토록 모질게 굴던 우리 집안 어른들 모임이라는 게, 정작 저마다 방탕한 삶을 산 바로 그 양반들로 짜여 있다는 게 우습다는 거지,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난봉꾼인 샤를뤼스 삼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공식 후견인인데도 돈 후안보다 더 많은 여자를 거쳤고 나이가 들었는데도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야. 한때는 나를 금치산 선고 받게 하자는 말까지 나왔지. 장담하는데, 그 늙은 난봉꾼들이 죄다 모여 그 문제를 논하고, 나를 불러다 놓고 훈계하며 네가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고 타이를 때, 그들은 웃음이 터질까 봐 감히 서로 얼굴도 못 쳐다봤을걸. 그 모임을 이룬 작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일부러 제일가는 오입쟁이들만 골라 놓은 줄 알 거야.” 샤를뤼스 만은 논외로 치자면, 그에 대해서는 내 친구의 놀라움이 이제 내게는 정당해 보이지 않았으나 그 까닭은 다른 데 있었고 더구나 그 까닭은 훗날 내 마음속에서 또 달라지게 되지만, 어쨌든 로베르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거나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젊은이에게 처세의 교훈을 주는 것을 두고 어처구니없어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

격세유전이나 집안 내림만 따진다 해도, 훈계를 늘어놓는 삼촌이 나무라도록 떠맡겨진 조카와 어슷비슷한 결점을 지니게 마련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삼촌이 조금이라도 위선적인 것은 아니니, 사람이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이건 전혀 다른 문제야’라고 믿는 재주에 속아 넘어가는 법이어서, 바로 그 재주 덕분에 예술적·정치적, 그 밖의 오류들을, 십 년 전에 다른 유파의 화가들에게서 스스로 폭로하며 단죄했던 오류, 그때는 혐오받아 마땅하다 여겼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혐오를 느끼지 않는 또 다른 정치적 사건과 똑같은 오류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받아들이며, 새로운 탈을 쓴 그 오류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껴안는 것이다. 게다가 설령 삼촌의 결점이 조카의 결점과 다르다 해도, 그렇다고 유전에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복사본이 원본을 닮듯 결과가 늘 원인을 닮는 것은 아니며, 설령 삼촌의 결점이 더 고약하다 한들 그는 제 결점을 도리어 덜 심각한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샤를뤼스 가 로베르에게 분개하여 나무랐을 때, 더구나 로베르는 그 무렵 제 삼촌의 참된 성향을 알지 못했으며, 또한 남작이 아직도 제 성향을 스스로 매섭게 나무라던 시절이었다 해도, 사교인의 관점에서 로베르가 자기보다 한없이 더 나무랄 만하다고 여기는 데에는 그가 진심이었을 법도 하다. 로베르는, 바로 그 삼촌이 그를 타일러 정신 차리게 하라고 떠맡겨진 그 순간에도, 하마터면 사교계에서 매장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자키 클럽에서 부결로 쫓겨날 뻔하지 않았던가, 가장 천한 부류의 여자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사교계에는 발도 못 붙이는 사람들, 곧 작가며 배우며 유대인 같은 이들과 사귀어, 반역자들의 것과 다를 바 없는 견해를 품어, 제 온 친척들에게 슬픔을 안겨, 스스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던가? 이 추문투성이의 삶을, 여태껏 게르망트가의 일원이라는 지위를 지켜 냈을 뿐 아니라 한층 더 드높이기까지 하여, 사교계에서 더할 나위 없는 특권을 누리며 가장 배타적인 사교계에서 떠받들리고 아첨받는 인물인 샤를뤼스 의 삶과, 더구나 명문 부르봉가의 대공비이자 걸출한 여인과 혼인하여 아내의 행복을 지켜 줄 줄 알았고 아내가 죽은 뒤에도 사교계의 관례보다 더 뜨겁고 더 극진하게 그 추억에 정성을 바쳐, 그리하여 아들로서만큼이나 남편으로서도 훌륭했던 그 샤를뤼스 씨의 삶과, 대체 어느 모로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샤를뤼스 한테 정말로 그 많은 정부가 있었다고 확신하는 건가?” 나는 물었는데, 물론 내가 우연히 알아챈 비밀을 로베르에게 폭로하려는 어떤 사악한 속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잘못된 지론을 그토록 확신에 차 자신만만하게 우겨 대는 것을 듣고 그래도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말을 순진함의 소치로 여겨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삼촌을 조금도 탓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아주 옳다고 보는걸.” 그러더니 그는 발베크에서라면 소름 끼쳐 했을 처신의 지론을 대충 그려 보이기 시작했다(발베크에서 그는 유혹자들을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때는 죽음만이 그 죄에 걸맞은 유일한 벌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기야 그때 그는 아직 사랑에 빠져 있었고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밀회의 집을 예찬하기까지 했다. “거기야말로 자네한테 꼭 맞는 신발을, 우리 연대 말로 하자면 칼집에 칼을 꽂아 볼 수 있는 유일한 데지.” 이제 그는 그런 장소에 대해, 내가 발베크에서 그런 데를 넌지시 입에 올렸을 때 그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그 혐오를 더는 느끼지 않았고, 그가 이제 하는 말을 듣고서 나는 블로크가 나를 그런 데 한 곳에 데려간 적이 있다고 말했더니, 로베르는 블로크가 드나들던 데라면 필시 “지독하게 잡탕에다 가난뱅이 천국”일 거라고 대꾸했다. “하기야 그것도 나름이지, 어딘데?” 나는 얼버무렸으니, 그곳이 바로 로베르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라셸을 한때 1루이면 살 수 있던 바로 그 집임을 방금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훨씬 나은 데로 데려가 줄 수 있어, 죽여주는 여자들이 그득한 데로.” 그가 아는 그런 데, 블로크가 나를 데려간 집보다 정녕 훨씬 나을 그런 데로 되도록 빨리 데려가 달라고 내가 바라는 것을 듣고, 그는 이번만은 그럴 수 없어 진심으로 아쉬워했으니, 이튿날 파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휴가 때 해야겠군.” 그가 말했다. “두고 보라고, 거긴 심지어 어린 처녀들도 있다니까.” 그가 은근한 기색으로 덧붙였다. “드… 도르주빌 양이었나 싶은데, 정확한 이름은 나중에 알려 줄게, 아주 최고 명문가의 딸이야. 어머니가 라 크루아레베크 집안 사람이었다니, 정말 반듯한 가문인 데다, 사실 내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우리 오리안 아주머니와도 얼추 친척뻘이지. 어쨌든 그 애를 한번 보기만 하면 반듯한 집안 출신이라는 걸 대번에 알걸”(나는 로베르의 목소리 위로 게르망트가의 정기가 어린 그림자가, 구름처럼, 그러나 아주 높은 데서 멈추지도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을 잠깐 알아챌 수 있었다). “장차 놀랍게 자라날 것 같은 애야. 부모가 늘 병치레라 그 애를 돌보질 못해. 원, 그 애도 뭔가 재미 좀 봐야 할 것 아냐, 그건 자네한테 맡기겠네!” “오! 언제 돌아오는데?” “몰라, 자네가 꼭 공작부인이라야 한다고 우기는 게 아니라면”(공작부인이라는 칭호는 귀족 사회에서 유독 눈부신 지위를 나타내는 유일한 칭호이니, 아랫것들이 ‘대공비’ 운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등급의 물건으로는, 퓌트뷔스 부인의 하녀가 있지.”

이때 쉬르지 부인이 제 아들들을 찾아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보자마자 샤를뤼스 가 어찌나 다정하게 다가갔던지 후작부인은 한결 더 흐뭇하게 놀랐으니, 그녀가 남작에게서 기대한 것은 얼음장 같은 냉대였기 때문이다. 남작은 늘 오리안의 옹호자를 자처하며, 집안에서 홀로, 다른 이들이야 공작의 후광에 홀리고 또 공작부인을 시샘하는 마음에서 공작의 난행을 곧잘 눈감아 주기 일쑤였으나, 형의 정부들만은 가차 없이 멀리해 온 터였다. 그리하여 쉬르지 부인은 남작에게서 볼까 봐 두려워한 그 태도의 속내는 훤히 헤아렸으면서도, 정작 그에게서 받은 전혀 딴판의 환대가 무슨 속셈에서인지는 한순간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는 자케가 여러 해 전에 그린 그녀의 초상을 두고 감탄해 마지않으며 이야기했다. 이 감탄은 자못 열광으로까지 치달았는데, 그것이 얼마간은, 후작부인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붙들어 두려는, 로베르가 적군을 두고 그 병력을 한 지점에 붙들어 매려 할 때 쓰던 말마따나 그녀를 ‘낚아’ 두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진심일 수도 있었다. 저마다 그녀의 아들들에게서 쉬르지 부인의 왕가다운 자태와 눈매를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을 기뻐했다면, 남작은 그와 반대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예리한 즐거움을, 그 매력들이 어머니에게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서 맛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그 자체로는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되 자기가 불러일으키는 미적 감탄으로써 자기가 되살려 놓는 욕망을 먹여 기르는 초상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이 욕망들은 이제, 돌이켜 보아, 자케의 초상 그 자체에 관능적인 매력을 덧입혀 주었으니, 그 순간 남작은 그 두 젊은 쉬르지 형제의 인상학적 계보를 그 화폭 위에서 연구하고자 기꺼이 그 초상을 사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거봐, 내가 과장한 게 아니라니까.” 로베르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우리 삼촌이 쉬르지 부인 꽁무니를 어떻게 쫓아다니는지 좀 보라고. 하기야 정말이지 놀랍긴 해. 오리안이 알면 노발대발할걸. 정말이지,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저 여자한테 저리 들러붙어야 하나 몰라.” 그는 말을 이었다. 사랑에 빠져 본 적 없는 사람이 다 그렇듯, 그는 사람이란 온갖 자질과 이점을 저울질하여 한없는 숙고 끝에 사랑할 상대를 고르는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로베르는 제 삼촌을 여자에게 빠진 사람으로 여겨 완전히 오해하고 있으면서도,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샤를뤼스 를 너무 함부로 말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조카라는 것은 결코 거저 되는 일이 아니다. 집안 내림의 습성이란 흔히 바로 그 삼촌을 통해 늦건 이르건 우리에게 전해지는 법이다. 우리는 독일 희극의 제목마냥 숙부와 조카라 이름 붙인 초상들의 화랑을 통째로 꾸며 볼 수도 있을 터인데, 거기서 우리는 삼촌이, 비록 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채나마, 조카가 끝내 저를 닮아 가기를 시샘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광경을 보게 되리라.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화랑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들, 곧 오로지 조카며느리의 삼촌일 뿐인 이들까지 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완일 것이라고까지 말하련다. 샤를뤼스가의 사내들은, 저희야말로 유일하게 좋은 남편이며, 나아가 아내가 질투하지 않는 유일한 남편이라고 어찌나 굳게 믿는지, 대개 조카딸에 대한 애정에서 그녀를 또 다른 샤를뤼스와 혼인시킨다. 그리하여 집안 내림의 실타래는 한층 뒤엉킨다. 게다가 조카딸에 대한 애정에는 때로 그 약혼자에 대한 애정까지 더해진다. 그런 혼인은 드물지 않으며, 흔히 이른바 행복한 혼인으로 불린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아 그렇지, 그 훤칠하고 금발인 처녀, 퓌트뷔스 부인의 하녀 말이야. 그 여자는 여자들하고도 어울리지만, 자네야 그런 건 개의치 않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런 근사한 물건은 여태 본 적이 없어.” “조르조네풍이라고 봐도 될까?” “지독하게 조르조네풍이지! 오, 파리에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해 볼 만한 근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고 나면 또 다음 상대로 넘어가는 거야. 사랑이란 다 헛소리거든, 잘 들어, 난 그런 건 다 끝냈어.” 나는 이내 놀랍게도, 그가 문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끝을 냈음을 알아챘는데, 지난번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서 환멸을 느낀 인상을 받은 것은 그저 문인들에 대해서였을 뿐이었다. (“그자들은 사실상 죄다 악당 떼거리야.”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는데, 라셸의 몇몇 벗에 대한 그의 정당한 원한으로 설명될 만한 말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라셸에게, ‘이방 혈통의 자손인 로베르’가 그녀를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면 결코 아무런 재능도 갖지 못하리라고 부추겼으며, 그와 함께 그가 그들을 대접하던 만찬 자리에서 그의 면전에다 대고 그를 조롱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은 로베르의 문학 사랑이란 조금도 깊은 것이 아니어서, 그의 참된 본성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라셸에 대한 사랑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는 관능에 빠진 자들에 대한 혐오며 여인의 정절에 바치던 종교적 경외와 더불어 그것마저 떨쳐 버린 것이었다.

“저 두 젊은이에게는 아주 묘한 데가 있소. 저 야릇한 도박 열정을 좀 보시오, 후작부인.” 샤를뤼스 는 마치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듯, 쉬르지 부인에게 그녀 자신의 두 아들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저 둘은 필시 동방 사람일 게요, 어떤 특징적인 이목구비를 지녔으니, 아마 터키인이겠지.” 그는 자신의 시치미를 한층 그럴싸하게 떠받치는 동시에 어렴풋한 반감을 내비치려고 말을 이었는데, 그 반감이 이윽고 상냥함으로 바뀔 때면, 그 상냥함이 오로지 쉬르지 부인의 아들이라는 자격에서만 저 젊은이들에게 향한 것임을, 다시 말해 남작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드러내 줄 터였다. 어쩌면 또한 샤를뤼스 는, 그 오만함이 타고난 재능이어서 그것을 부리기를 즐겼거니와, 이 두 젊은이의 이름을 모르는 척하는 그 짧은 순간을 틈타 쉬르지 부인을 상대로 잠시 장난을 치고 늘 하던 빈정거림에 빠져들었던 것이니, 마치 스카팽이 주인의 변장을 틈타 그를 흠씬 두들겨 패듯 말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