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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브레 ⑪

1권 · 콩브레

우리처럼, 이 무렵의 뱅퇴유 가, 아는 사람들을 피하고, 그들을 알아보기 무섭게 고개를 돌리며, 몇 달 사이에 슬픔의 바다에 잠겨 딸의 행복을 도모하는 데 곧바로 이바지하지 않는 일이라면 어떤 노력도 할 수 없게 되고, 아내의 무덤가에서 온종일을 보내는 늙은이로 변한 것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상심으로 서서히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을 리 없고, 그가 나도는 소문에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없었으리라. 그는 이웃들이 하는 말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믿기까지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 덕성이 엄격한 사람이라도, 갖가지 정황이 뒤얽힌 나머지, 자신이 누구보다도 거리낌 없이 규탄해 온 바로 그 악덕과 지척에서 살게 되는 처지에 놓이지 않을 이는 아마 없을 터인데, 그 악덕이 제 앞에 나타나며, 그를 상하게 하고 괴롭히려고 걸치는 그 변장 아래 그것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곧 어느 저녁, 그가 사랑할 온갖 이유를 지닌 사람의 그 이상한 말, 그 종잡을 수 없는 태도 아래 말이다. 그러나 뱅퇴유 만큼 예민한 사람에게는, 세상 물정에 닳고 닳은 사람보다도 훨씬 더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흔히 보헤미안 무리에서나 일어난다고 잘못 여겨지는 그런 처지 가운데 하나에 스스로를 내맡겨야 한다는 것은. 그런 처지란, 자연 그 자신이 어린아이의 넋 속에, 어쩌면 그 아비와 어미의 미덕을 뒤섞는 것만으로, 마치 그들 눈동자의 빛깔을 뒤섞듯 심어 놓은 어떤 악덕이, 제가 자라나는 데 필요한 안온함 속에 자리 잡으려 할 때면 언제고 생겨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뱅퇴유 가 딸의 행실을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한들, 그렇다고 그의 딸을 향한 흠모가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삶의 사실들은 우리의 믿음이 소중히 간직되는 영역까지는 파고들지 못한다. 그것들이 그 믿음을 낳은 것이 아니듯, 그것들에는 그 믿음을 무너뜨릴 힘도 없다. 그것들은 반박과 논박의 타격을 끊임없이 그 믿음에 퍼부으면서도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하며, 온갖 불행과 병고가 잇달아 쉼 없이 한 집안의 품 안으로 밀어닥친다 해도, 그 집안이 제 하느님의 자비도, 제 의사의 능력도 믿지 못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뱅퇴유 가 세상의 눈으로, 그리고 세평의 눈으로 제 딸과 자신을 바라볼 때, 이웃들의 일반적인 평판 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서열에 딸과 나란히 스스로를 놓아 보려 할 때, 그때 그는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자신과 딸에 대한 사회적 단죄를, 그와 딸에게 가장 적대적인 콩브레 주민이라면 썼을 바로 그런 말투로 입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딸이 ‘밑바닥’, 그야말로 가장 ‘밑바닥 물’ 속에 옴짝달싹 못 하게 처박힌 것을 보았고, 그리하여 그의 태도에는 근래 들어 그 겸손이, 곧 자기보다 윗자리에 있어 이제는 우러러보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여태까지는 그들이 아무리 자기보다 한참 아래였을지언정) 그 존경이, 다시금 그들의 자리로 오를 방도를 찾으려는 그 경향이 배어들었으니, 그것은 인간의 온갖 불행이 거의 기계적으로 낳는 결과였다.

어느 날 우리가 스완과 함께 콩브레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뱅퇴유 가 다른 거리에서 돌아 나오다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우리 모두와 그토록 불쑥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자 스완은, 제 온갖 도덕적 편견이 허물어진 가운데 남의 수치에서 다만 그를 다정하게 대할 구실만을 찾아내는, 그리하여 그 다정함의 겉표시가, 베푸는 이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이고 흡족하게 하는 세상 물정 밝은 사람 특유의 그 거의 오만하다 할 자애로써, 그것을 받는 이에게 그만큼 더 값진 것임을 그가 느끼는 까닭에, 오래도록 겨우 인사나 나누는 사이였던 뱅퇴유 와 한참을 이야기했고, 우리를 떠나기 전에 언제 딸을 탕송빌로 보내 함께 놀게 하라고 청했다. 그것은 이태 전이었더라면 뱅퇴유 를 노발대발하게 했을 초대였으나, 이제는 그를 어찌나 큰 고마움으로 채웠던지 그는 그것을 덥석 받아들이는 무례를 삼가야 한다고 느꼈다. 스완이 제 딸에게 보이는 다정한 관심은 그 자체로 그토록 명예로운, 제 처지를 그토록 값지게 떠받쳐 주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그는 그것을 아예 쓰지 않고, 고이 아껴 두는 순전히 플라토닉한 만족을 누리는 편이 어쩌면 나으리라고 느꼈다.

“참으로 매력적인 분이야!” 스완이 가고 난 뒤 그는 우리에게 말했으니, 그것은 중류 계급의 영리하고 어여쁜 여자들이, 못생기고 어리석은 공작부인일지라도 그 육체적, 지적 매력에 넋을 잃고 마는 그 열광과 숭배와 똑같은 것이었다. “참으로 매력적인 분이야! 그런 분이 그토록 개탄스러운 결혼을 하다니 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그러고서, 아무리 진실한 사람에게도 위선의 요소가 어찌나 강하게 들어 있는지, 그들은 누구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에 대해 실제로 품고 있으며 그가 자리를 뜨면 드러낼 그 의견을 벗어 던지는 법이라, 우리 식구도 뱅퇴유 와 어울려 스완의 결혼을 개탄하며, (더구나 우리 모두가 같은 부류의 어엿한 호인들이기라도 한 양 그와 한목소리로 들먹인 까닭에) 몽주뱅에서는 조금도 어겨지지 않는 것처럼 넌지시 내비치던 온갖 원칙과 관습을 들먹였다. 뱅퇴유 는 딸을 스완에게 보내지 않았는데, 그 빠짐을 누구보다 먼저 아쉬워한 것은 스완이었다. 뱅퇴유 를 만날 때마다 스완은, 자기와 이름이 같은 어떤 사람, 스완이 짐작하기로는 뱅퇴유의 친척 가운데 하나에 대해 오래전부터 그에게 물어보려던 것을 번번이 떠올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뱅퇴유 가 딸과 함께 탕송빌에 나타나거든 그에게 물어볼 말을 잊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메제글리즈 쪽’은 콩브레 둘레를 산책할 때 우리가 다니던 두 길 가운데 짧은 쪽이었고, 그런 까닭에 날씨가 어정쩡한 날을 위해 남겨 두는 길이었으므로, 메제글리즈의 기후는 지나치게 강수량이 많은 셈이었고, 우리는 루생빌 숲의 언저리를 한시도 놓치지 않아, 언제라도 그 빽빽한 잎사귀 지붕 아래로 비를 피해 달려들 수 있었다.

이따금 해가 구름 뒤로 숨으면서, 그 둥근 가장자리에 부딪히면 도리어 그 테두리를 금빛으로 물들이곤 했다. 그러면 대낮의 빛은 아니어도 그 밝음이, 온갖 생명이 멎어 있는 듯한 풍경에서 차단되었고, 그동안 자그마한 루생빌 마을은 그 하얀 박공의 무리를, 놀라우리만치 세세한 정밀함으로 하늘에 도드라지게 새겨 넣었다. 한 줄기 바람이 그 홰에서 떼까마귀 한 마리를 날려 보내, 그 새는 멀리 떠가 내려앉았고, 그동안 점점 옅어지는 하늘 아래 지평선의 숲은, 오래된 집들의 벽을 여태 장식하고 있곤 하는 그런 카메오 세공 가운데 하나에 그려지기라도 한 듯, 한층 짙은 푸른빛을 띠었다.

그러나 다른 날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곤 했으니, 우리는 안경장수가 문간에 내걸어 둔 그 자그마한 청우계 인형에게서 미리 마땅한 예고를 받은 터였다. 그 빗방울들은, 정해진 순간에 한 무리로 날아오르는 철새처럼, 촘촘한 행군 대오를 이루어 하늘에서 내려오곤 했다. 그것들은 결코 흩어지는 법이 없었고, 그 빠른 낙하 속에서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일도 없었으며,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뒤따르는 방울을 이끌었으니, 남쪽으로 날아가는 제비 떼로 어두워지듯 하늘도 그만큼 어두워졌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로 몸을 피하곤 했다. 그리고 그 비상이 다 끝난 듯싶을 때면, 나머지보다 힘없고 느린 몇 방울이 마지막으로 여전히 떨어져 내리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몸을 숨긴 데서 나오곤 했으니, 이제 비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고, 발밑이 거의 다시 말랐을 때조차, 잎사귀 옴폭한 곳에 남아 뭉그적대던 한두 방울이 흘러내려, 그 끝에 반짝이며 매달려 있다가, 문득 나무의 온 높이에서 위를 쳐다본 우리 얼굴 위로 후드득 떨어지곤 했다.

또 흔히 우리는 비를 피하려고 서둘러, 돌로 새긴 온갖 성인과 족장들 틈으로 굴러들어가듯 생탕드레데샹의 현관 안으로 뛰어들곤 했다. 그 성당은 얼마나 전형적인 프랑스식이었던가! 문 위에는 성인들, 백합을 손에 든 기사도의 왕들, 혼례와 장례의 장면들이, 마치 프랑수아즈의 머릿속에서 빚어졌음 직한 모습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조각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얽힌 어떤 일화들도 함께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은 꼭 프랑수아즈가 부엌에서 마치 자기가 직접 알기라도 했다는 듯 성 루이 이야기를 불쑥 꺼내던 모습 그대로였고, 그럴 때 그녀는 대개 그와 견주어 우리 조부모를 깎아내리려는 심산이었으니, 조부모가 그만큼 '올바르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의 예술가와 (19세기까지 살아남아 우리 집 부엌에서 밥을 짓게 된) 중세의 농부가 고전 시대와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해 품었던 관념들, 그 부정확함이 정직한 소박함으로 상쇄되던 관념들이, 책에서가 아니라 오래되고도 직접적인, 끊긴 적 없고 구전되었으며 변질되고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생탕드레데샹의 고딕 조각들 속에서 내가 마찬가지로, 잠재된 전형으로서 알아볼 수 있었던 또 한 사람의 콩브레 인물은 카뮈네 가게의 점원 소년 테오도르였다. 그리고 사실 프랑수아즈 자신도 그에게서 같은 고장 사람이자 동시대인을 얻었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 고모의 병세가 너무 깊어 프랑수아즈 혼자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안락의자로 옮겨 앉히기 어려워지면, 부엌데기를 위층으로 올려 보내 고모에게 '언짢은 인상'을 줄까 봐, 차라리 테오도르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못된 녀석'으로 여겨지던, 게다가 그 평판이 아주 온당하기도 했던 이 소년은, 생탕드레데샹의 현관을 장식하던 바로 그 정신으로, 특히 프랑수아즈가 보기에 모든 '가엾은 병자'에게, 무엇보다 자신의 '가엾은 마님'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존경의 감정으로 넘쳐흘렀으므로, 고모의 머리를 베개에서 받쳐 들려고 몸을 숙일 때면, 부조 속의 작은 천사들이 짓는 것과 똑같은 라파엘로 이전풍의 소박함과 열의를 띠었으니, 그 천사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성모의 임종 침상 둘레에 모여드는 것이었고, 마치 돌로 새겨진 그 벌거벗고 잿빛인, 겨울나무 같은 얼굴들이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을 뿐, 생명을 갈무리한 채 다시 꽃피기를 기다리다가, 테오도르의 얼굴처럼 인자하면서도 교활한,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빛나는 수많은 서민의 얼굴로 되살아나려는 듯했다.

거기, 그곳에도, 작은 천사들처럼 벽에 붙어 있지 않고 현관에서 떨어져 나온 채, 인간보다 큰 키로, 젖은 땅에 발이 닿지 않도록 발치에 놓아둔 받침돌 위에 발판을 딛듯 곧추선 성녀가 서 있었으니, 그녀는 통통한 뺨과, 자루 속의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옷자락 안에서 부풀어 오른 단단한 가슴, 좁은 이마, 짧고 고집스러운 코, 움푹 들어간 눈, 그리고 그 고장 시골 여인들 특유의 억세고 살갗 두꺼운 용감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조각상 자체에 내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다정함을 불어넣던 이 닮음은, 우리처럼 현관 밑으로 비를 피하러 온 어느 들판의 처녀가 나타남으로써 종종 확증되었는데, 그녀가 거기 있음은, 마치 덩굴풀의 잎사귀가 돌에 새겨진 잎사귀 곁에서 자라나기라도 한 듯,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자연 속 원형과 마주 세워 예술 작품의 진실성을 비평적으로 가늠하게 하려는 운명의 뜻인 것만 같았다. 우리 눈앞 저 멀리, 약속의 땅이자 저주받은 땅으로, 그 성벽 안으로 나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루생빌이, 이제 우리에게는 비가 그쳤건만, 여전히 구약의 어느 마을처럼, 주민들의 거처 위로 비스듬히 내리치는 폭풍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과 화살에 벌을 받고 있었으니, 아니면 이미 전능하신 분의 용서를 받아, 그분이 다시 햇빛을 돌려주시어, 제단 위 성체현시대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처럼 길이가 고르지 않은 빛줄기가 마을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때로 날씨가 아주 험하게 무너지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저물어 가는 빛과 물기를 잔뜩 머금은 대기 때문에, 바다 풍경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경치 속 여기저기 저 멀리, 구름 낀 어둠 속에 봉우리를 파묻은 언덕의 낮은 비탈에 매달린 몇 채의 외딴집이, 마치 돛을 접고 밤새 바다 위에 닻을 내린 채 정박하려는 작은 배들처럼 환히 빛났다. 하지만 비면 어떻고 폭풍이면 어떠랴? 여름에는 궂은 날씨란 그저, 늘 밑바닥에 자리한 항구적인 좋은 날씨가 잠깐 겉으로 드러내는 표피적 언짢음의 발작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은 겨울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좋은 날씨', 실은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여름의 좋은 날씨는 (땅에 단단히 뿌리내려, 무성한 잎사귀 덩어리로 굳건히 형체를 이루었기에, 그 위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그 참되고 지속적인 행복이 내미는 저항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하는 채로) 한 철 내내 나부끼도록, 마을 거리마다, 집집의 담벼락과 정원에, 제 비단 깃발을, 보랏빛과 흰빛의 깃발을 내걸어 두지 않았던가. 작은 응접실에 앉아 저녁 식사 때까지 책으로 시간을 보내노라면, 우리 밤나무에서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으나, 나는 그 소나기가 그 두껍고 쭈글쭈글한 잎사귀의 초록빛을 반드르르하게 씻어 빛나게 할 뿐임을, 그리고 그 잎들이 여름의 담보물처럼 비 내리는 밤 내내 거기 남아 좋은 날씨가 계속되리라 나에게 장담해 주기로 자청했음을 알고 있었다. 비야 내리고 싶은 대로 내려라, 그래도 내일이면 탕송빌의 흰 울타리 너머로, 예나 다름없이 무성하게, 작은 하트 모양 잎사귀들의 바다가 물결쳐 흐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의 불안도 없이, 페르샹 거리의 포플러가 폭풍 앞에서 절망에 겨워 몸을 굽히며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고, 조금의 불안도 없이, 정원 저 끝에서 라일락 나무 사이로 마지막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 내내 날씨가 궂으면 식구들은 산책 생각을 접었고, 나는 집에 남았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그런 날에도 혼자 밖으로 나가 메제글리즈라비뇌즈 쪽으로 걷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으니, 그것은 우리가 레오니 고모의 유산 분배를 정리하러 콩브레에 와야 했던 그 가을의 일이었다. 마침내 고모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고, 이웃들 가운데 대립하던 두 편은 저마다 고모의 죽음으로 자기네가 옳았음을 확인하고 의기양양했으니, 한쪽은 그런 생활 방식이 고모를 쇠약하게 만들어 끝내 목숨을 앗아가고 말리라 우겨 왔던 이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고모가 상상의 병이 아니라 실제 기질성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일단 고모가 거기에 굴복하고 나면 아무리 회의적인 이라도 눈에 보이는 증거 앞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늘 주장해 온 이들이었다. 그 죽음은 남은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누구에게도 깊은 슬픔을 안기지 않았으나, 그 한 사람에게만은 격렬하도록 사나운 슬픔을 안겼다. 고모가 마지막으로 병을 앓던 긴 두 주일 동안 프랑수아즈는 한순간도 그 방을 떠나지 않았고, 옷을 벗지 않았으며, 다른 누구에게도 고모를 위해 아무 일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고모의 시신이 무덤에 실제로 묻힐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마침내 우리는, 프랑수아즈가 고모의 모진 말과 의심과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살아온 그 일종의 공포가, 우리가 증오로 오해했던 감정을, 실은 경외와 사랑이었던 감정을 그녀 안에 키워 놓았음을 깨달았다. 그 결정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그 술수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렵던, 그러면서도 그 착한 마음을 이용하기는 그토록 쉽던 그녀의 진정한 마님, 그녀의 군주, 신비롭고 전능한 그 여왕은 이제 없었다. 그런 마님에 견주면 우리는 아주 하찮은 존재였다. 우리가 처음 콩브레로 휴가를 보내러 왔을 무렵, 프랑수아즈 눈에 우리가 고모와 대등한 무게를 지녔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 있었다.

그 가을 부모님은, 거쳐야 할 법적 절차와 공증인 및 소작인들과의 논의로 하루하루가 어찌나 빡빡했던지, 마침 날씨마저 산책을 위태롭게 만들던 터라 산책할 겨를이 거의 없었으므로, 나를 그분들 없이 '메제글리즈 쪽'으로 혼자 다니게 두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막아 주는 커다란 하일랜드 격자무늬 담요를 몸에 두르고 다녔는데, 그 요란한 타탄의 줄무늬가 프랑수아즈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것을 느낄수록 오히려 더 기꺼이 어깨에 걸치곤 했다. 옷 빛깔이 고인을 애도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프랑수아즈에게는 도무지 납득시킬 수 없었으니, 그녀에게 고모의 죽음에 우리가 보인 슬픔은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우리는 이웃들을 불러 성대한 장례 연회를 베풀지도 않았고, 고모 이야기를 할 때 특별한 어조를 취하지도 않았으며, 나는 이따금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물론 책 속에서라면, 롤랑의 노래나 생탕드레데샹의 현관에서와 같은 그런 애도의 관념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였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 점에서 내 감정은 프랑수아즈의 감정과 자못 가까웠다. 그러나 정작 프랑수아즈가 다가오는 순간이면, 어떤 못된 심술이 나를 부추겨 그녀를 화나게 만들려 들었고, 나는 조금의 핑계라도 붙잡아, 고모가 그 어처구니없는 구석에도 불구하고 좋은 분이었기에 그 죽음이 아쉽다고, 그러나 고모라는 이유로는 조금도 아쉽지 않다고, 얼마든지 내 고모이면서도 아주 밉살스러워서 그 죽음이 내게 한순간의 슬픔도 주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녀에게 말하곤 했으니, 이런 말들은 책 속에서라면 그저 얼빠진 소리로만 보였을 것이었다.

그러면 프랑수아즈는, 사별과 슬픔과 집안의 추억에 대한 혼란스러운 상념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인처럼 영감에 사로잡혀, 내 논리를 반박할 재간이 없다면서 이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저는 제 뜻을 표련할 줄을 몰라서요." 그러면 나는 페르스피에 박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비아냥과 잔인한 상식으로 그녀를 이겨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계속해서 "그래도 그분은 지질상 친척이셨는걸요. 자기 지질에는 늘 존경을 표해야 하는 법이지요." 하고 말하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제 나라 말도 못 하는 무식한 할멈을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나도 참 대단하군요." 하고 내뱉었으니, 프랑수아즈를 두고 판결을 내리며, 편협하고 옹졸한 학자 티를 흉내 냈던 것이다. 그런 학자를 두고, 스스로는 공정한 정신으로 누구보다 경멸하는 이들조차, 세상이라는 저속한 무대 위에서 한 배역을 맡아야 할 처지가 되면 너무도 쉽게 그를 흉내 내고 마는 법이다.

그해 가을 내 산책이 한결 더 즐거웠던 것은, 책에 오랜 시간을 쏟은 뒤에야 산책을 나서곤 했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집 안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나는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길을 나섰다. 오랜 강제적 부동 속에 생명의 기운을 잔뜩 쌓아 둔 내 몸은, 이제 감아 두었다가 풀어 놓은 팽이처럼 그 기운을 사방으로 쏟아 내야만 했다. 집들의 담벼락, 탕송빌의 산울타리, 루생빌 숲의 나무들, 몽주뱅이 등을 기대고 있던 덤불들, 그 모두가 내 지팡이나 우산의 매질을 견뎌야 했고, 나의 행복에 겨운 외침을 들어야 했으니, 그 매질과 외침이란 실은 나를 들뜨게 하던 혼란스러운 관념들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관념들은 백일하에 드러날 만큼 무르익지 못한 채, 더디고 고된 해명의 과정을 거치느니 차라리 곧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편이 더 쉽고 즐거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장 깊은 감각의 정서적 표현으로 보이는 것들의 태반은, 그 감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못하는 흐릿한 형태로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그저 그 감각의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 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메제글리즈 쪽'에 빚진 모든 것, 그 길이 우연한 무대가 되어 주었거나 직접적인 영감과 계기가 되어 주었던 그 모든 소박한 발견을 헤아려 보려 하면, 바로 그해 가을 그런 산책 가운데 하나에서, 몽주뱅을 뒤편에서 지키던 덤불 우거진 벼랑 가까이에서, 우리 인상과 그 통상적인 표현 형식 사이의 이 부조화에 내가 처음으로 부딪쳤음이 떠오른다. 한 시간 동안 비바람과 씩씩하게 맞서 싸운 끝에, 몽주뱅 못가에 이르러, 뱅퇴유 의 정원사가 연장을 넣어 두던 기와지붕의 작은 오두막에 다다랐을 때, 다시 해가 났고, 소나기에 씻긴 그 금빛 광선이 하늘에, 나무들에, 오두막 벽에, 그리고 마루 위에 닭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던 아직 젖은 지붕 기와 위에 다시금 이글거렸다. 바람은 벽에 자라난 야생초를, 그리고 닭의 솜털을 옆으로 잡아당겼는데, 이 둘은 다 가볍고 생명 없는 물질 특유의 저항 없는 순응으로, 바람의 숨결에 실려 한껏 나부꼈다. 기와지붕은, 이제 햇빛 속에서 다시 또렷이 반사하는 못 위로, 내가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홍빛 대리석의 네모진 형상을 드리웠다. 그리고 벽을 비추던 물 위에, 미소 짓는 하늘에 화답하는 희미한 미소가 어린 것을 보고, 나는 감격에 겨워 접힌 우산을 휘두르며 소리 높여 외쳤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아무것도 밝혀 주지 못하는 말들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내 기쁨의 근원을 더 또렷이 들여다보려 애써야 함이 내 의무라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마침 지나가던 한 농부 덕분에, 동일한 감정이 미리 정해진 질서에 따라 모든 사람의 가슴에 동시에 솟아나는 것은 아님을 배웠으니, 그 농부는 애초에 이미 꽤나 언짢은 기색이었으나, 하마터면 내 우산에 얼굴을 맞을 뻔한 뒤로 더욱 언짢아졌으며, "날씨 참 좋죠! 이런 날 걷기 딱 좋아요!" 하는 내 인사에 조금의 살가움도 없이 대꾸했던 것이다. 나중에 나는, 너무 오래 책을 읽어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을 때면 언제나, 내가 뭔가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나던 그 친구는 하필 그 순간 이미 대화의 즐거움을 실컷 누린 뒤라, 이제는 방해받지 않고 책이나 읽게 내버려 두어 주기만을 바랄 뿐임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부모님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분들을 기쁘게 해 드릴 더없이 사려 깊고 마땅한 계획을 세우고 있노라면, 그분들은 바로 그 같은 시간을 이용해, 내가 이미 잊어버린 지난 잘못 하나를 들춰내고서는, 내가 입 맞추려 그분들 품에 뛰어드는 바로 그 순간에 나를 호되게 나무라기 시작하곤 했다.

때로 혼자 있는 데서 오는 들뜬 기분에 또 다른 감정이 겹쳐, 어느 쪽에 결정표를 던져야 할지 마음속으로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내 품에 끌어안을 시골 처녀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욕망이 부추기는 감정이었다. 그토록 다른 온갖 관념 사이에서 그 근원을 정확히 짚어 볼 겨를도 주지 않고 불쑥 찾아든 이 욕망에 뒤따르는 쾌감은, 다른 상념들이 내게 주던 것보다 그저 한 단계 나은 정도로만 보였다. 나는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에서, 곧 기와지붕의 분홍빛 반영, 벽의 야생초, 오래도록 발 들여놓고 싶어 하던 루생빌 마을, 그 숲의 나무들과 성당의 종탑에서, 더 큰 가치를 발견했으니, 그것은 이 새로운 감정이 그것들 속에 자아낸 것으로, 그것들이 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내가 여겼기에 그것들을 한결 더 탐나게 만들었고, 그것들이 강렬하고 알 수 없으며 상서로운 바람으로 내 돛을 채울 때면 나를 그것들 쪽으로 더 빨리 실어가 주기만을 바라는 듯했다. 그러나 여인 하나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 욕망이 내게 자연의 매력보다 더 고양된 무언가를 더해 주었다면, 이번에는 그것들이 여인의 매력 속에서 내가 너무 옹색하게만 느꼈을 무언가를 넓혀 주었다. 나무들의 아름다움도 그녀의 것이며, 저 지평선의 정신, 루생빌 마을의 정신, 그해 내가 읽던 책들의 정신으로 말하자면, 그 모두의 주인이 되게 해 줄 것은 바로 그녀의 입맞춤인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내 상상력은 관능과 맞닿아 힘을 얻고, 내 관능은 상상력의 온 영토로 퍼져 나가면서, 내 욕망에는 이제 아무런 한계도 없어졌다. 게다가, 마치 자연을 넋 놓고 관조하는 순간, 정신의 정상적 작용이 멈추고 사물에 대한 우리의 추상적 관념이 한쪽으로 밀려나면, 우리가 마침 머물고 있는 그 장소의 독창성을, 그 개별적 존재를 더없이 깊은 신념으로 믿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욕망이 불러낸 그 스쳐 가는 형상은 '여자'라는 일반적 유형의 한 사례가 아니라, 그 땅이 낳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산물처럼 보였다. 그 무렵에는 나 자신이 아닌 모든 것, 대지와 그 위의 온갖 피조물이, 다 자란 어른들 눈에 비치는 것보다 내게는 더 소중하고 더 중요하며 더 실재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대지와 그 피조물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두지 않았다. 나는 발베크와 메제글리즈를 욕망하듯, 메제글리즈나 루생빌의 시골 처녀를, 발베크의 어부 처녀를 욕망했다. 그 처녀들이 내게 줄 수 있는 쾌락은, 내가 마음대로 그 조건을 바꿀 수 있었더라면, 덜 참된 것으로 보였을 테고, 나는 더 이상 거기에 믿음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발베크의 어부 처녀나 메제글리즈의 시골 처녀를 파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해변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개껍데기나 숲에서 한 번도 찾은 적 없는 고사리를 선물로 받는 것과 같았을 테고, 그녀가 내게 안겨 주려던 쾌락에서, 내 상상력이 그녀를 감싸 두었던 그 온갖 다른 쾌락을 다 벗겨 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을 시골 처녀 하나 없이 루생빌의 숲을 헤매는 것은, 그 숲을 보면서도 그 숨겨진 보물, 깊이 감춰진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늘 그 잎사귀 그늘에 얼룩진 모습으로만 보던 그 처녀는, 내게는 그 자체로 그 고장에서 자라난 한 그루 식물이었으니, 다만 다른 것들보다 키가 클 뿐이었고, 그 자태가 있어 나는 그것들에서보다 더 가까이, 그녀가 솟아난 그 땅의 은밀한 향취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한층 더 쉽게 믿을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녀가 그 향취를 내 감각에 실어다 줄 그 애무들이 그 자체로 특별한 종류의 것이어서, 오직 그녀에게서만 얻을 수 있고 다른 누구에게서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쾌락을 안겨 주리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도, 그리고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야 할, 저 삶의 한 시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곧 이 관능적 쾌락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함께 맛본 여러 여인에게서 아직 떼어 내지 못한 시기, 그것을 하나의 일반 관념으로 환원해 그때부터 그 여인들을 언제나 똑같은 쾌락의 뒤바뀔 수 있는 도구로 여기게 되지 않은 시기 말이다. 사실 그 쾌락은, 여자를 곁에 두려 할 때 추구하는 궁극의 대상으로서, 또는 그것을 미리 내다보며 느끼는 불안의 원인으로서, 의식 속에 따로 떨어져 정식화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일조차 거의 없이, 다만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까만 생각한다. 어렴풋이 기다려지고, 내재하되 감춰진 그 쾌락은, 마침내 스스로를 느끼게 하는 순간, 곁에 있는 이의 다정한 눈길에서, 그 입맞춤에서 우리가 얻는 그 다른 쾌락들을 극도의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까닭에,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우리 반려의 마음씨 고움에 대한,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 애틋한 편애에 대한 일종의 감사의 도취처럼 보이는데, 우리는 그 편애를, 그녀가 우리에게 쏟아붓는 은혜로, 행복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