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이 그 애는 제 어미의 고향과 아주 가까운 작은 마을 출신이었으나, 그럼에도 흙의 성질이며 경작 방식이며 사투리가, 무엇보다 주민들의 어떤 기질이 그곳과 달랐다. 그리하여 “푸주댁”과 프랑수아즈의 조카는 도무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심부름을 나가면 “언니네”나 “사촌네”에서 몇 시간이고 늑장을 부리며, 스스로 대화를 끝맺지 못한다는 점이었고, 그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애초에 나선 목적이 머릿속에서 어찌나 말끔히 사라졌던지, 돌아온 그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물으면,
“그래! 노르푸아 후작님이 여섯 시 십오 분에 댁에 계신다던가?” 하면, 그들은 이마를 치며 “아이고, 까맣게 잊었네요.”라고 하기는커녕, “어머! 나리가 그걸 알고 싶어 하시는 줄은 몰랐죠, 그저 가서 인사만 여쭙고 오면 되는 줄 알았지 뭐예요.”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전에 들은 일에 대해서는 “정신을 놓아 버리는” 그들이었지만, 반대로 “그” 언니나 사촌에게서 한번 들은 말만은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푸주댁은 영국이 70년에 프로이센과 때를 같이하여 우리에게 전쟁을 걸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지, 내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지칠 때까지 설명해 주어도, 삼 주가 멀다 하고 이야기 도중에 내게 되뇌곤 했다. “다 그 왜, 영국이 70년에 프로이센과 함께 우리한테 건 그 전쟁 탓이라니까요.” “하지만 그게 틀렸다고 백 번은 말했잖아요.” 그러면 그녀는 제 확신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어쨌든 그렇다고 그이들한테 나쁜 마음을 품을 이유는 없죠. 70년 이후로 다리 밑으로 물이 많이도 흘러갔는걸요.” 하는 식이었다. 또 한번은, 내가 반대하던 대영 전쟁을 두둔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전쟁은 안 하는 게 언제나 낫죠. 하지만 해야 한다면 당장 하는 게 상책이에요. 방금 언니가 설명해 준 대로, 영국이 70년에 우리한테 그 전쟁을 건 뒤로 통상 조약이 우리를 거덜 냈으니까요. 우리가 그이들을 이기고 나면, 영국인은 하나도 프랑스에 못 들이게 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 영국에 상륙하려면 내야 하는 것처럼, 삼백 프랑을 내고 들어오지 않는 한 말이죠.”
이것이, 대단한 정직함과 더불어, 말을 할 때면 어떤 끼어듦도 완강히 거부하며 말이 끊긴 대목으로 스무 번이고 되돌아가 끝내 그들의 이야기에 바흐 푸가와도 같은 흔들림 없는 견고함을 부여하던 그 성미와 함께, 밤나무와 버드나무, 감자밭과 사탕무밭 사이에 자리한, 주민이 오백을 넘지 못하는 이 자그마한 마을 사람들의 기질이었다.
반면에 프랑수아즈의 딸은 (자신을 낡은 틀에서 벗어난 요즘 여자로 여기며) 파리 속어를 썼고 당대의 온갖 우스갯소리에 훤했다. 프랑수아즈가 그 애에게 내가 어느 대공비 댁에서 왔다고 하자, “아, 그러셨어요! 브라질 공주겠죠, 그 왜, 견과 나는 데 말이에요.” 내가 손님을 기다린다는 것을 보고, 그 애는 내 이름이 샤를인 줄 아는 척했다. 내가 순진하게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 애는 이 틈을 타 이렇게 받았다. “어머, 샤를인 줄 알았죠! 그래서 혼잣말을 했지 뭐예요, Charles attend(‘샤를이 기다린다’, 야바위꾼 charlatan과 발음이 꼭 같잖아요) 하고요.” 그리 고상한 재담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베르틴이 늦는 것을 위로한답시고 그 애가 내게 한 말에는 나도 그리 태연할 수 없었다. “세월아 네월아 하염없이 기다리시겠네요. 그 아가씨 안 와요. 어유! 요즘 말괄량이들이란!”
이렇듯 그 애의 말씨는 제 어미의 말씨와 달랐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어미의 말씨가 또 그 할미의 말씨와 같지 않았다는 점인데, 할미는 프랑수아즈의 마을과 그토록 가까운 바이오르팽 태생이었다. 그럼에도 사투리는, 풍경이 그렇듯, 조금씩 달랐다. 프랑수아즈의 어미가 살던 마을은 가파른 비탈을 타고 협곡으로 굴러떨어지듯 자리 잡아 버드나무가 무성했다. 그리고 이 두 곳 어디에서도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오히려 사람들이 메제글리즈에서와 거의 똑같은 사투리를 쓰는 프랑스의 한 작은 고장이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서 그 불편함만 절감했다. 실제로 한번은 프랑수아즈가 이웃집 하녀와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하녀는 바로 이 마을 출신으로 그곳 사투리를 썼다. 둘은 그럭저럭 서로 알아들었으나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그들도 이를 알면서도 (그토록 멀리 떨어진 데서 태어났으면서도 같은 고장 사람이라는 기쁨이 면죄부가 된다고 여기며) 내 앞에서, 남이 알아듣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처럼, 이 낯선 말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언어 지리학에 관한 이 그림 같은 연구와 하인방의 정다운 교분은 주마다 부엌에서 이어졌으나, 나로서는 거기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다.
바깥문이 열릴 때마다 문지기가 전기 단추를 눌러 계단에 불을 밝혔고, 건물의 주민들은 이미 다 들어온 뒤였으므로, 나는 곧장 부엌을 나와 현관에 앉아 망을 보았는데, 바깥문 유리판 위로 커튼이 완전히 맞물리지 않아 계단에 어스름한 세로 띠가 보이는 지점이었다. 만약 이 띠가 별안간 황금빛 노랑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알베르틴이 방금 건물에 들어섰으며 일 분 안에 내게 오리라는 뜻이었으니, 그 밤 시각에 올 사람은 달리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좀처럼 어둠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 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앉아, 어떤 변화든 놓치지 않으려 온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그 세로의 검은 띠는 내 애타는 갈망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고 의미심장한 마법으로 그것이 눈부신 황금 막대로 바뀌는 것을 보았더라면 느꼈을 그 도취의 기쁨을 내게 주지 않았다. 게르망트가의 야회 내내 삼 분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 알베르틴을 두고 이 무슨 야단법석이란 말인가! 그러나 지난날 다른 처녀들이, 특히 질베르트가 오기를 미룰 때 나를 기다리게 하던 그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한낱 육체의 쾌락을 단념해야 한다는 전망이 내게 격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겼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내 방으로 물러났다. 프랑수아즈가 뒤따라왔다. 야회에서 돌아온 마당에 단춧구멍에 꽂은 장미를 그대로 둘 까닭이 없다고 여긴 그녀는 그것을 빼내려고 다가왔다. 그 행동은 알베르틴이 어쩌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게 일깨우고, 또 내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맵시를 내고 싶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어 나를 짜증나게 했는데, 몸을 빼내려다 그 꽃을 뭉개 버리는 바람에 그 짜증은 한층 커졌고, 프랑수아즈는 내게 말했다. “그렇게 망가뜨리시느니 제가 빼도록 두시는 게 나았을 텐데요.” 그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나를 격앙시켰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우리는 애타게 그리는 그 사람의 부재로 어찌나 사무치게 괴로운지, 다른 어떤 이의 존재도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프랑수아즈가 내 방을 나가자, 이제 와 알베르틴 앞에서 가장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라면, 우리의 애무를 다시 나누려고 그녀를 들이던 그 저녁들에, 며칠씩 자란 수염을 그대로 둔 채 면도도 하지 않은 내 모습을 그토록 여러 번 보여 준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이 나를 냉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라도 알베르틴이 아직 올지 모르니 방을 조금이나마 화사하게 꾸미려고, 또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어여쁜 물건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나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침대 곁 탁자 위에, 질베르트가 베르고트의 소책자를 담으라고 나를 위해 맞춰 준, 터키석이 박힌 그 표지를 꺼내 놓았으니, 그것은 오랜 세월 내가 마노 구슬과 함께 잠자는 동안에도 곁에 두겠다고 고집하던 물건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오지 않는 알베르틴 자신 못지않게, 그녀가 그 순간 나로서는 전혀 알 길 없는, 그리고 분명 그녀가 더 매력적이라 여긴 어떤 “알리바이” 속에 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안겼으니, 그것은 겨우 한 시간 전 스완에게 나는 질투할 줄 모른다고 말했음에도, 만약 내가 이 벗을 좀 더 잦은 간격으로 만났더라면, 그녀가 어디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 알아야겠다는 불안한 갈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를 감정이었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감히 알베르틴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지는 못했으나, 어쩌면 그녀가 어느 카페에서 다른 처녀들과 저녁을 들다가 문득 내게 전화를 걸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나는 스위치를 돌려, 그 시각이면 으레 연결되던 우체국과 문지기 방 사이의 회선을 끊고 내 방으로 연결을 돌려놓았다. 프랑수아즈의 방으로 통하는 그 작은 복도에 수화기를 두는 편이 더 간단하고 덜 번거로웠겠지만, 그것은 쓸모가 없었다. 문명의 진보는 저마다에게 뜻밖의 장점이나 새로운 결점을 드러내게 하여, 그를 벗들에게 더 사랑스럽게도, 더 견디기 어렵게도 만든다. 그리하여 벨 박사의 발명은 프랑수아즈에게 결점을 하나 더 안겨 주었으니, 그것은 아무리 중요하고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전화를 쓰기를 한사코 마다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전화 쓰는 법을 가르치려 들 때면 그녀는 용케 사라져 버리곤 했으니, 예방 접종을 맞을 때가 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전화는 내 침실에 놓였고, 부모님을 방해하지 않도록 벨 대신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내는 장치가 달렸다. 나는 그 소리를 놓칠까 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찌나 미동도 없이 있었던지, 여러 달 만에 처음으로 시계의 똑딱임이 귀에 들어왔다. 프랑수아즈가 방을 치우러 들어왔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으나 나는 그 이야기가 싫었으니, 한결같이 시시하게 이어지는 그 말 아래에서 내 감정은 시시각각 바뀌어, 두려움에서 불안으로, 불안에서 완전한 실망으로 옮겨 갔다. 그녀에게 응당 건네야 한다고 여긴 막연히 만족스러운 말과는 딴판으로, 내 얼굴이 어찌나 비참해 보이는지 느껴졌으므로, 나는 짐짓 꾸민 무심함과 시름에 잠긴 표정 사이의 어긋남을 둘러대려고 류머티즘을 앓는 척했다. 게다가 나는,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올 가능성은 진작에 사라졌다고 여겼으므로) 어차피 낮은 목소리로 이어 가던 그 이야기가, 이제는 울리지 않을 그 구원의 벨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 마침내 프랑수아즈가 잠자리에 들러 갔다. 나는 그녀가 방을 나서며 내는 소리가 전화 소리를 묻어 버리지 않도록, 무뚝뚝하면서도 예의를 갖춰 그녀를 물렸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귀를 기울이며, 괴로워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소리를 받아들이는 귀에서 그것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는 정신으로, 다시 그 결과를 전달받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 두 겹의 여정은 어찌나 빠른지, 우리는 그 경로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마치 마음으로 곧장 듣고 있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벨소리를 향한, 점점 더 애타면서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끊임없이 되살아나 나를 괴롭혔다. 고독한 번민의 굽이굽이를 뚫고 오르는 험난한 상승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내게 갑자기 바짝 다가온, 사람들로 붐비는 한밤의 파리 한복판에서, 바로 내 책장 옆에서, 나는 문득 트리스탄 속의 나부끼는 베일이나 목동의 피리처럼 기계적이면서도 숭고한, 전화기의 나직한 울림을 들었다. 나는 전화기로 달려들었다. 알베르틴이었다. “이 시각에 전화해서 방해되는 건 아니죠?” “천만에…” 나는 기쁨을 억누르며 말했으니, 시각이 늦었다는 그녀의 말은 필시 곧, 그토록 늦게 찾아오는 데 대한 사과일 뿐, 오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리로 오는 거예요?” 나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글쎄요… 당신이 꼭 저를 봐야 하는 게 아니라면, 안 갈래요.”
내 일부가, 나머지 일부가 다시 만나려는 그 일부가 알베르틴 안에 있었다. 그녀가 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나는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 이제 서로 통화가 이어졌으니 마지막 순간에 언제든 그녀를 내게 오게 하거나 내가 그녀에게 달려가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은 저는 집 근처예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한테서는 한참 먼 데고요. 당신 쪽지를 제대로 못 읽었어요. 방금 다시 찾아냈는데, 당신이 안 자고 저를 기다릴까 봐 걱정됐어요.” 나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이제 분노에 사로잡혀, 그녀를 보고 싶다기보다 그녀의 계획을 뒤엎고 싶은 욕심에서 그녀를 오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몇 분 뒤에 그녀에게서 얻어 내려는 것을, 처음에는 거절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른 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자전거 탄 사람의 요란한 경적, 노래하는 여자의 목소리, 멀리서 울리는 취주악단의 연주가 그리운 목소리 못지않게 또렷이 들려왔으니, 마치 그 순간 내 곁에 있는 것이 바로 실제 자기 주위 환경 속의 알베르틴임을, 흙 한 덩이를 떠 오면서 거기서 자라던 풀까지 죄다 딸려 온 것과도 같음을 내게 보여 주려는 듯했다. 내가 듣는 바로 그 소리들이 그녀의 귀에도 부딪쳐 그녀의 주의를 흩뜨리고 있었다. 그것은 논의 중인 주제와는 무관하고 그 자체로는 하찮으나, 그 기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데에는 그만큼 더 요긴한 진실의 세부였다. 파리의 어느 거리를 그려 보이는 담담하고도 매혹적인 요소이자, 페드르에서 돌아온 뒤 알베르틴이 내게 오지 못하게 붙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잔치의, 가슴을 에는 잔혹한 요소이기도 했다. “먼저 일러 두는데, 나는 당신이 오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아요, 이 밤중에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테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졸려서 쓰러질 지경이거든요. 게다가, 뭐,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고요.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이 내 편지를 오해했을 리는 없어요. 당신은 알겠다고 답했잖아요. 그래요,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죠?”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우리가 뭘 약속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났어요. 하지만 당신이 저한테 화가 난 걸 보니,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페드르에는 아예 가지 말걸 그랬어요. 이 일로 이렇게 소란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한 가지 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짐짓 다른 일로 책망받는 줄 아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페드르 때문에 화난 건 조금도 아니에요, 거기 가라고 한 게 나였으니까요.” “그럼 저한테 화가 나신 거네요. 지금 너무 늦은 게 탈이에요, 안 그랬으면 당신한테 갔을 텐데. 하지만 내일이나 모레 들러서 풀게요.” “오, 제발, 알베르틴, 부탁이니 그러지 말아요, 내 저녁을 통째로 허비하게 만들었으면, 앞으로 며칠은 나를 좀 가만 놔두는 게 최소한의 도리예요. 나는 이 주나 삼 주는 시간이 없을 거예요. 들어 봐요, 우리가 화난 채로 헤어지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면, 하기야 당신 말이 옳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이것저것 따져 볼 때, 내가 여태 당신을 기다렸고 당신도 아직 집에 안 갔으니, 차라리 지금 당장 오는 편이 훨씬 낫겠어요. 나는 잠을 쫓으려고 커피나 한 잔 마시겠어요.” “내일로 미루면 안 될까요? 실은 곤란한 게…” 마치 올 뜻이 없는 듯 내뱉는 이 발뺌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지난날 발베크에서 나의 모든 나날을, 9월의 연보랏빛 바다 곁에서 그 장밋빛 꽃 옆을 거닐게 될 그 순간으로 향하게 하던, 벨벳처럼 피어나는 그 얼굴을 다시 보고픈 갈망에 사뭇 다른 어떤 요소가 고통스럽게 뒤엉키려 애쓰고 있음을 느꼈다. 한 사람을 향한 이 무서운 갈구를, 나는 콩브레에서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어머니가 프랑수아즈를 시켜 위층으로 올라올 수 없다는 전갈을 보내면 죽고 싶을 만큼이나 사무치던 것이었다. 오직 물든 표면, 곧 바닷가 어느 꽃의 장밋빛 낯빛만을 관능의 대상으로 삼던 더 최근의 감정과 하나로 결합하여 단일한 요소를 이루려는 이 해묵은 감정의 애씀은, 흔히 (화학적 의미에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칠 뿐이며, 그 물질은 겨우 몇 순간밖에 지속되지 못한다. 적어도 그날 저녁,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 두 요소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전화로 내게 닿은 그 마지막 말들에서, 나는 알베르틴의 삶이 (물론 물질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내 삶에서 어찌나 멀리 떨어진 데 자리해 있는지, 그녀에게 손을 뻗기까지 늘 고된 탐색을 거쳐야 하고, 게다가 그 삶이 방어용 토루 체계처럼 짜여 있으며, 더욱 안전을 기하려고, 훗날 우리가 위장이라 부르게 된 그 방식으로 꾸며져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실상 알베르틴은, 비록 사회적으로는 조금 더 높은 층에 속했으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한통속이었다. 곧, 그 집 문지기가 당신의 심부름꾼에게 그녀가 들어오면 편지를 전해 주겠노라 약속하는 부류인데(당신이 밖에서 만나 편지까지 써 보내도록 허락받은 바로 그 여자가 실은 문지기임을 깨닫는 날까지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과연 당신이 받은 주소에 살긴 살되 오직 문지기 방에 살 뿐이며, 게다가 그 주소는 문지기가 뚜쟁이 노릇을 하는 사설 매춘굴의 주소인 것이다), 아니면 자기 주소랍시고, 비밀을 당신에게 발설하지 않을 공모자들이 그녀를 알고 있어 당신의 편지가 그녀에게 전달되기는 하나 정작 그녀는 살지 않고 기껏해야 화장 도구 몇 가지나 두어 둔 집을 대는 부류였다. 대여섯 겹의 방어선 뒤에 틀어박혀 사는 까닭에, 그 여자를 보려 하거나 그녀에 관해 알아보려 하면 당신은 어김없이 너무 오른쪽에, 혹은 너무 왼쪽에, 혹은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늦게 다다르게 되고, 몇 달이고 심지어 몇 해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낼 수 있다. 알베르틴에 관해서라면, 나는 결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사실과 거짓이 뒤엉킨 그 무더기에서 결코 진실을 풀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를 끝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지 않는 한(그러나 갇힌 자는 달아나는 법이다) 언제나 그러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 이 확신은 내게 그저 막연한 불안만을 주었으나, 그 안에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긴 고통의 나날에 대한 오싹한 예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에요.” 나는 대답했다. “방금 말했잖아요, 앞으로 삼 주는 시간이 없을 거라고, 내일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요.” “그래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갈게요… 좀 곤란하긴 해요, 친구 집에 와 있는데, 그 친구가…” 나는 그녀가 오겠다는 제 제안을 내가 받아들이리라고는 믿지 않았음을, 따라서 그 제안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아챘고, 그녀를 몰아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친구가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요, 오든 말든, 그건 당신이 정할 일이지, 오라고 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내게 먼저 그러자고 한 거잖아요.” “화내지 말아요, 지금 마차에 뛰어올라서 십 분이면 당신한테 갈게요.” 그리하여, 그 침침한 심연에서 이미 내 방에까지 흘러나와, 부재하는 한 사람의 활동 반경을 그어 보이던 어느 목소리가, 이 예비 통고에 뒤이어 이제 막 솟아나 모습을 드러내려는 그 파리에서 오는 이는, 오래전 발베크의 하늘 아래 내가 알던 그 알베르틴이었으니, 그때 그랑 호텔의 급사들은 식탁을 차리다가 지는 해의 노을에 눈이 부셨고, 모든 창에서 유리가 떼어져 나가, 마지막 산책하는 연인들이 아직 서성이는 바닷가에서 저녁의 가장 희미한 속삭임까지 거침없이, 첫 손님들이 아직 자리에 앉지 않은 드넓은 식당 안으로 흘러들었으며, 계산대 뒤에 놓인 거울을 가로질러 뱃전의 붉은 반영이 스쳐 지나가고, 그 뒤로도 오래도록 리브벨행 마지막 증기선 연기의 잿빛 반영이 어른거리던 그 발베크였다. 나는 더는 무엇이 알베르틴을 늦게 만들었는지 자문하지 않았고, 프랑수아즈가 내 방에 들어와 “알베르틴 아가씨가 오셨어요.”라고 알렸을 때,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대체 알베르틴 아가씨는 왜 이런 밤중에 오신담!” 그러나 이내, 내 물음이 겉보기에 진심임을 뒷받침해 줄 그녀의 대답이 궁금하기라도 한 듯 눈을 들어 프랑수아즈를 바라보다가, 나는 감탄과 분노가 뒤섞인 심정으로 이런 것을 알아챘다. 곧, 생명 없는 옷가지와 제 얼굴의 주름살에 말을 불어넣는 재주에서 라 베르마에 견줄 만한 프랑수아즈가, 제 몸통 옷과 머리카락과, 고단함과 순종으로 수그러진 목에 각자의 배역을 가르쳐 두었던 것이니, 그 머리카락은 가장 하얀 올들이 겉으로 끌어올려져 마치 출생증명서처럼 거기 내걸려 있었다. 그것들은, 그 나이에 한밤중 잠에서, 따뜻한 잠자리에서 끌려 나와, 폐렴에 걸릴 위험을 무릅쓰고 부랴부랴 옷을 걸쳐야 했던 그녀를 가엾어했다. 그리하여 나는 알베르틴이 늦게 온 것을 사과하는 듯 보였을까 봐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그녀가 와서 무척 기뻐요, 바라던 바니까요.” 그러고는 깊은 기쁨을 마음껏 터뜨렸다. 그 기쁨은 프랑수아즈의 대답을 듣고 나자 오래도록 흐림 없이 남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불평 한마디 내뱉지 않고,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기침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추위라도 타는 양 숄을 가슴께로 여미면서, 우선 자기가 알베르틴에게 한 말을 죄다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알베르틴의 이모 안부 묻는 일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그랬죠, 나리께서 아가씨가 안 오시는 줄 알고 걱정하셨을 거라고요, 지금이 어디 남의 집에 갈 시각인가요, 거의 새벽인걸요. 그런데 아가씨는 어디 재미난 데라도 있었나 봐요, 나리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될 대로 되라는 얼굴로 이러시더군요, ‘늦게라도 오는 게 아예 안 오는 것보단 낫죠!’” 그러고는 프랑수아즈가 내 가슴을 찌르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속이 드러나던걸요. 아마 속으로 생각하는 걸 감추고 싶으셨겠지만, 그래도…”
나는 놀랄 까닭이 없었다. 몇 쪽 앞에서 말했듯이, 프랑수아즈는 전갈을 들려 보내면, 자기가 한 말이야 기꺼이 낱낱이 전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기다리는 대답에는 좀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우리 벗들이 한 말을, 그것이 아무리 짧더라도 우리에게 되전할 때면, 그녀는 대개, 필요하다면 그 말에 딸려 있었다고 장담하는 표정이며 어조까지 들먹여 가며, 어떻게든 그 말이 가시가 되도록 손을 써 놓곤 했다. 여차하면 그녀는, 우리가 심부름 보낸 상인에게서 받았다는 모욕(십중팔구 순전히 상상의 산물인)에 고개를 숙이기도 했으니, 다만 그 모욕이 우리 대리인으로서, 우리 이름으로 말하는 그녀를 향한 것인 만큼, 에둘러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였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란, 그녀가 그 사람을 오해한 것이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며, 가게 주인들이 결코 작당하여 그녀에게 맞서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 주는 것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속내야 내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알베르틴의 속내가 어떠한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늦게라도 오는 게 아예 안 오는 것보단 낫죠!”라는 그 빈정거리는 말을 되뇌면서, 프랑수아즈는 대번에, 알베르틴이 저녁나절을 함께 마무리한, 따라서 내 곁보다 더 좋아한 그 친구들을 내 눈앞에 떠올리게 했다. “참 우스운 꼴이시더라고요, 납작한 조그만 모자를 쓰셨는데, 그 큰 눈에다 그걸 쓰니 어찌나 우습던지, 게다가 그 망토는 진작 께매는 집에 보냈어야 할걸요, 온통 구멍투성이던데요. 저는 재미있네요.” 좀처럼 내 인상에 맞장구치는 법이 없으면서도 제 인상만은 기어이 전하고 싶어 하던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이 웃음이 경멸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챈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으려 했으나, 앙갚음으로, 그녀가 말하는 그 조그만 모자를 본 적도 없으면서 이렇게 받았다. “자네가 ‘납작한 조그만 모자’라 부르는 건 그야말로 매력적인…”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이죠.” 프랑수아즈가, 이번에는 대놓고 자신의 진짜 경멸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내 거짓 대답이 내 분노가 아니라 진실의 표현으로 보이도록 부드럽고 느긋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알베르틴을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지체 없이,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이런 모진 말을 퍼부었다. “자네는 훌륭해.” 나는 꿀 바른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자네는 착하고, 장점이 수천 가지지, 하지만 자네는 파리에 처음 온 날 이후로 단 한 가지도 배운 게 없어, 부인네들 옷차림에 대해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 없이 말을 발음하는 법에 대해서도 말이야.” 그런데 이 나무람은 유난히 어리석은 것이었으니, 우리가 정확히 발음한다고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그 프랑스어 낱말들 자체가, 라틴어나 색슨어를 잘못 발음한 갈리아인의 입술이 저지른 실수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언어란 다른 여러 언어를 어설프게 발음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상태의 언어의 정수, 곧 프랑스어의 미래와 과거, 바로 그것이 프랑수아즈의 실수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어야 마땅했다. 그녀가 “꿰매다”를 “께매다”라 하는 것은, 고래나 기린처럼 아득한 옛 시대에서 살아남아 동물의 삶이 거쳐 온 여러 단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저 짐승들만큼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말을 이었다. “이 여러 해 동안 배우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영영 못 배울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낙심하지는 말게, 그래도 자네가 더없이 착한 사람이고, 젤리를 곁들인 양념 쇠고기를 기막히게 잘 만들고, 그 밖에도 잘하는 게 많다는 건 변함없으니까. 자네가 그토록 하찮게 여기는 그 모자는 오백 프랑짜리 게르망트 대공비의 모자를 본떠 만든 거라네. 그래도 나는 머지않아 알베르틴 양에게 그보다 더 근사한 걸 줄 참이지만.” 나는 프랑수아즈를 무엇보다 짜증나게 할 것이,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돈을 쓴다는 생각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별안간 숨이 차오르는 바람에 거의 알아들을 수 없게 된 몇 마디로 내게 대꾸했다. 훗날 그녀의 심장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되받아치는 사납고 무익한 쾌락을 한 번도 스스로에게 금하지 못했음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던가. 게다가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을 몹시 싫어한 것은, 알베르틴이 가난하여, 프랑수아즈가 나의 우월한 지위라 여기던 것을 드높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빌파리지 부인에게 초대받을 때면 그녀는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반면에 알베르틴이 답례를 하지 않는 것에는 분개했다. 급기야 나는 알베르틴이 내게 주었다는 가공의 선물을 지어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프랑수아즈는 그것의 존재를 단 한순간도 믿지 않았다. 이 답례 없음이 그녀를 가장 크게 언짢게 한 것은 음식 문제에서였다. 우리가 봉탕 부인 댁에는 초대받지 못하는데(하기야 그 부인은 절반은 파리 밖에서 지냈으니, 그 남편이 지난날 부처(部處) 일에 물렸을 때처럼 “자리”를 받아들이곤 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엄마에게서 저녁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그녀가 보기에 내 벗의 결례였고, 그녀는 콩브레에서 흔히 쓰던 속담을 되뇌며 이를 에둘러 나무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