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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⑪

4권 제1부 · 제1장

“내 빵을 먹자꾸나.”

“그래, 그거 좋고말고.”

“네 빵을 먹자꾸나.”

“난 이제 배부르이.”

나는 편지를 써야 하는 척했다. “누구한테 쓰던 거예요?” 알베르틴이 방에 들어서며 내게 물었다. “내 예쁘장한 친구 하나한테, 질베르트 스완이라고. 몰라요?” “몰라요.” 나는 알베르틴에게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지 캐묻지 않기로 했으니, 그래 봐야 그녀를 탓하게 될 뿐이고, 이미 이토록 늦은 마당에, 입맞춤과 애무로 넘어갈 만큼 충분히 화해할 시간도 남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순간부터 바로 그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게다가, 조금 진정되기는 했어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느끼는 온갖 방향 감각의 상실, 갈피를 못 잡는 그 느낌은, 기다리던 사람이 온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며, 우리 안에서, 그녀가 오는 것을 더없는 기쁨으로 그려 보던 그 평온한 마음을 대신 차지하고서, 우리가 거기서 아무런 기쁨도 얻지 못하게 한다. 알베르틴이 방 안에 있었다. 풀어져 버린 내 신경은 여전히 떨리며 그녀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한 번 입 맞춰 줘요, 알베르틴.” “얼마든지요.” 그녀가 더없이 다정한 태도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그토록 예뻐 보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또?” “어머, 나한테도 크나큰, 크나큰 기쁨인걸요.” “나한테는 그 천 배는 더하고요.” 그녀가 대답했다. “어머! 저기 참 예쁜 책 표지가 있네요!” “가져요, 기념으로 줄게요.” “너무 친절하시네요…” 사랑하는 처녀를 생각할 때, 더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될 훗날의 자신이 되어 보려고 마음먹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낭만주의에서 영영 벗어날 것이다. 질베르트의 책 표지도, 그녀의 마노 구슬도, 지난날 그 중요성을 순전히 내면적인 어떤 특별함에서 얻었던 것이 분명하니, 이제 그것들은 내게 여느 것과 다를 바 없는 한낱 책 표지요 구슬일 뿐이었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무언가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저기 오렌지하고 물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거면 아주 좋겠어요.”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입맞춤과 더불어,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 그 입맞춤보다도 더 낫게 느껴졌던 그 상쾌한 서늘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물에 짜 넣은 오렌지는, 내가 마시는 동안, 무르익어 온 그 성장의 은밀한 생명을, 이토록 다른 왕국에 속하는 인간 육체의 어떤 상태에 그것이 미치는 이로운 작용을, 그 육체를 살아 있게 하지는 못하는 그 무력함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 육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관개(灌漑)의 과정을, 그 열매가 내 감각으로부터는 감추었으되 내 지성으로부터는 감추지 못한 수백 가지 신비를 내게 내어주는 듯했다.

알베르틴이 떠나자, 나는 스완에게 질베르트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던 일이 떠올랐고, 예의상 그 일을 당장 해야 마땅하다고 느꼈다. 아무런 감흥 없이, 지루한 학교 작문 밑에 선을 긋듯이, 나는 봉투 위에 질베르트 스완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한때 나는 이 이름으로 내 공책들을 뒤덮어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환상에 젖곤 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 이름을 쓴 것이 나였으나, 이제 그 일은 습관이 자기가 부리는 수많은 비서 가운데 하나에게 떠넘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비서는 한층 더 태연하게 질베르트의 이름을 적어 내려갈 수 있었으니, 습관이 얼마 전에야 나에게 붙여 준 터라 근래에야 내 밑에 들어온 그는 질베르트를 결코 알지 못했고, 다만 내가 그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기에, 그 말에 아무런 실체도 부여하지 않은 채, 그녀가 한때 내가 사랑했던 소녀라는 것만을 알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매정하다고 탓할 수 없었다. 이제 그녀에 대해 내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녀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더없이 분명하게 입증해 주었다. 책 표지도, 마노(瑪瑙) 구슬도, 알베르틴에 대해서는 그저, 질베르트에 대해 그것들이 그러했던 것, 곧 내면의 불꽃으로 그것들을 물들이지 않은 그 누구에게든 그것들이 그러했을 바로 그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새로운 동요를 느꼈고, 그것은 또다시 사물과 말이 지닌 그 지극히 실재적인 힘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알베르틴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저는 터키석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것들을 죽게 두지 말아요”라고 대답하며, 어떤 값진 보석에게 그러하듯 그것들에게 우리 우정의 미래를 맡겼는데, 그 우정은 예전에 나를 질베르트에게 묶어 두었던 감정을 지켜 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베르틴에게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능력도 이미 없는 것이었다.

이 무렵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되풀이된다는 이유에서만 언급할 가치가 있다. 내가 질베르트에게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순간, 무도회에서 막 돌아와 아직 투구를 쓴 채였던 게르망트 는, 이튿날 정식 상복을 입어야 하리라는 생각에, 명령받은 요양을 한 주 앞당겨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세 주 뒤 그가 돌아왔을 때(잠시 앞질러 말하자면, 나는 아직 질베르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는 중이니까), 처음에는 그토록 무관심하던 공작이 광적인 반드레퓌스파로 변하는 것을 지켜봐 온 그의 벗들은, (마치 요양의 효험이 그의 방광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듯) 그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잃었다. “허, 재심이 열릴 거고 그는 무죄가 될 걸세. 증거 하나 없이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지. 포르슈빌만큼 노망난 사람을 본 적이 있나? 프랑스 국민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장교라니, 곧장 전쟁을 향해 치닫는 거지. 참 별난 시절이야.” 실은 그사이에 공작은 온천장에서 매력적인 세 부인(이탈리아 대공비와 그녀의 두 시누이)을 만났던 것이다. 그들이 읽고 있던 책이며 카지노에서 상연되던 연극에 관해 몇 마디 하는 것을 듣고서, 공작은 이내 자기가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인들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첫판에 나가떨어질 만한 상대들을 마주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대공비에게 브리지 게임을 청받자 그는 더욱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의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이중 삼중으로 뿌리 깊은 반드레퓌스주의의 열기에 들떠 “그런데 그 유명한 드레퓌스며 그 상고 이야기는 요새 통 들리지 않는군요”라고 입을 떼는 순간, 대공비와 그 시누이들이 “그건 날마다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어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감옥에 가둬 둘 수는 없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의 아연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 예?” 처음에 공작은, 늘 총명하다고 여겨 오던 사람을 이 집안에서 웃음거리로 삼으려고 붙인 어처구니없는 별명이라도 발견한 듯 그렇게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마치 우리가 비겁함과 모방 심리에서, 온 집안 식구들이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는 영문도 모른 채 “안녕, 조조트”라고 외치듯이, 공작도 이 새로운 태도의 낯섦에 여전히 몹시 거북해하면서도 그예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없다면야.” 매력적인 세 부인은 그가 그다지 빨리 나아가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그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지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무슨 근거가 있다고 한순간이라도 믿었을 리가 없어요.” 드레퓌스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폭로가 나올 때마다, 이제야말로 매력적인 세 부인을 개종시키리라 여긴 공작이 그것을 알리러 오면,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논거가 아무 값어치도 없고 참으로 터무니없다는 것을 대단한 변증술의 능란함으로 어렵잖게 입증해 보이곤 했다. 공작은 광적인 드레퓌스파가 되어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이 경우 매력적인 세 부인이 진리의 전령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십 년에 한 번쯤, 진심 어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을 두고 떠났다가, 마침 어느 총명한 부부가, 혹은 그저 매력적인 한 부인이 그와 접촉하게 되어, 몇 달 뒤면 그가 정반대 진영으로 넘어가 있곤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 진실한 사람처럼 처신하는 나라도 얼마든지 있으니, 우리가 다른 민족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채 떠나온 그 많은 나라가, 여섯 달 뒤에는 태도를 바꾸어 온갖 동맹을 죄다 끊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알베르틴을 만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 상상력에 더는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게르망트 부인을 대신할 것이 없어, 다른 요정들과 그들의 거처를 계속 찾아다녔는데, 그 거처들은, 그것을 빚어내고 그 안에 몸을 숨기는 연체동물에게서 진주빛 혹은 에나멜빛 껍데기 판이나 톱니 모양 첨탑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과 꼭 같이, 요정들 자신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부인들을 분류할 수 없었을 터인데, 그 어려움인즉 문제 자체가 그 조건이 너무나 모호하여 풀기는커녕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그 부인에게 이르기 전에, 우선 그 요정의 저택에 다가가야 했다. 그런데 그 부인들 가운데 하나가 여름철이면 언제나 점심 뒤에 집에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의 집에 닿기 전에 삯마차의 포장을 내려야 했으니, 햇살이 어찌나 뜨겁게 내리쬐던지, 그 기억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전체 인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쿠르라렌으로 실려 가고 있을 뿐이라고 여겼으나, 실은 더 넓은 경험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쩌면 업신여겼을 그 모임에 이르기도 전에, 마치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처럼 감미롭고 눈부신 감각을 받았고, 그 뒤로 그 집은 내 기억 속에서 결코 그 감각과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계절과 시각의 무더위 탓에, 그 부인은 벗들을 맞이하던 일층의 널따란 직사각형 응접실들의 덧문을 빈틈없이 닫아 두었다. 처음에 나는 안주인과 그 손님들을, 심지어 쉰 목소리로 나더러 자기 곁에, 에우로페의 겁탈을 그린 보베산 안락의자에 와 앉으라고 이른 게르망트 공작부인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나는 벽면에서, 돛대가 활짝 핀 접시꽃인 배들을 그린 거대한 18세기 태피스트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니, 나는 그 밑에 앉아 마치 센강의 궁전이 아니라 넵투누스의 궁전에, 오케아노스강 기슭에 있는 듯했고, 그곳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일종의 물의 여신이 되었다. 온갖 종류의 응접실을 일일이 그려 내기 시작한다면 나는 결코 끝을 보지 못하리라. 이 한 예만으로도, 내가 사교계에 대한 판단 속에, 셈을 하러 들 때에는 결코 항목에 넣지 않았던 시적인 인상들을 끌어들였고, 그리하여 어느 응접실의 비중을 헤아릴 적에 내 총계가 결코 맞아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기에 넉넉하다.

물론 이것이 결코 오류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었으나, 발베크로 떠나기에 앞서(그곳에서 나는 애석하게도 두 번째 체류를,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 될 체류를 하려는 참이다) 이제 나에게는, 때가 되면 제자리를 찾을 사교계의 여러 정경을 늘어놓기 시작할 겨를이 남아 있지 않다. 여기서는 다만 이렇게만 말해 두겠다. 질베르트에게 보낸 내 편지, 그리고 그 편지가 암시하는 듯싶은 스완 일가와의 화해에 대한 이 첫 번째 그릇된 이유(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교를 좋아한다고 여기게 만든, 비교적 경박한 내 생활)에, 오데트 역시 얼마든지, 그것도 마찬가지로 부정확하게, 두 번째 이유를 덧붙일 수 있었으리라. 지금까지 나는, 사교계가 한 사람의 눈에 띠는 여러 양상을, 그저 이렇게 가정함으로써만 시사해 왔다. 곧, 며칠 전만 해도 아무도 모르던 여자가 이제 어디에나 드나들고, 위세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던 또 다른 여자가 따돌림을 당하면,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그저, 증권거래소의 투기 탓에 사회의 어느 한 부문에서 이따금 몰락이나 탐욕의 꿈을 넘어서는 치부(致富)를 불러오는, 순전히 개인적인 부침(浮沈)으로만 여기기 십상이라고. 그러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어느 정도까지 사교적 현상들은(예술 운동이나 정치적 위기, 대중의 취향을 관념극 쪽으로, 이어 인상파 회화 쪽으로, 그다음엔 독일풍의 복잡한 음악 쪽으로, 그다음엔 러시아풍의 단순한 음악 쪽으로, 혹은 사회 봉사나 정의, 종교적 반동, 애국적 격발의 관념 쪽으로 휩쓸어 가는 그 변전보다는 한없이 덜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의 메아리이니, 멀고 끊기고 불확실하고 어수선하며 변덕스러운 메아리다. 그리하여 응접실조차, 지금껏 인물의 연구를 위해 관례적으로 써 온 그 정태적인 부동(不動) 속에 그려 낼 수는 없으니, 이것들 또한 거의 역사적이라 할 흐름 속에 실려 가야 하는 것이다. 지적인 변천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는 열의에서 어느 정도 진지한 사교계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변천의 전개를 좇을 수 있는 모임에 드나들게 만드는, 새것에 대한 갈증은, 그들로 하여금 대개, 아직 발굴되지 않은 어느 안주인을, 곧 오랜 세월 사교의 홀(笏)을 휘둘러 오면서 이제 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비밀도 없어 더는 그들의 상상력에 호소하지 못하는 여인들에게서는 그토록 바래고 퇴색해 버린 우월한 교양의 희망을 아직 그 첫 신선함 속에 담고 있는 안주인을 더 좋아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시대마다 저마다, 그 순간의 최신 관심사가 무엇이든 그것에 바짝 밀착하여, 그 차림새로 보아 마치 그 순간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서는 듯한, 마지막 대홍수에서 태어난 미지의 종(種)처럼, 새 통령정부, 새 총재정부마다의 거역할 수 없는 미인들처럼 보이는 신선한 여인들 속에, 신선한 여인들의 무리 속에 화신(化身)한다. 그러나 흔히 새 안주인은, 처음으로 관직에 올랐을지언정 지난 사십 년 동안 어느 문이든 하나도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문마다 두드려 온 어떤 정치가들과 다름없으니, 사교계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되 그럼에도 여러 해 전부터 더 나은 것이 없어 그 계층에서 몇몇 “가려 뽑은 벗들”을 맞아 오던 여인들인 것이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어서, 러시아 발레단의 눈부신 개화가 박스트, 니진스키, 브누아, 스트라빈스키의 천재를 차례차례 드러내던 무렵, 이 모든 새로운 위인들의 젊은 후원자였던 유르벨레티예프 대공비가, 파리 여인들이 여태 본 적 없어 하나같이 흉내 내려 든 거대하고 하늘거리는 백로 깃털 장식을 머리에 이고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이 놀라운 존재가 러시아 무용수들의 헤아릴 수 없는 짐짝 속에, 그들의 가장 값진 보물로 실려 온 것이라 여겼을 법하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 곁에, 무대 옆 특별석에, “러시아인들”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 순간까지 귀족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베르뒤랭 부인이 진짜 요정 대모(代母)처럼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베르뒤랭 부인이 최근에야 댜길레프의 극단과 함께 이 나라에 들어왔다고 자연스레 여긴 사교계 사람들에게, 이 부인은 이미 여러 시절에 걸쳐 존재해 왔으며 갖가지 화신을 두루 거쳐 왔노라고, 그리고 이번 화신이 주목할 만한 것은 다만 그것이, 이제부터 확실해져 갈수록 빠른 걸음으로, 마님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성공을 마침내 이루어 내는 첫 번째 화신이라는 점뿐이라고 일러 줄 수 있을 것이다. 스완 부인의 경우, 그녀가 대표하는 새로움이 그런 집단적 성격을 띠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의 응접실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곧 죽어 가는 한 사람, 그 재능이 다한 바로 그 순간에 거의 한순간에 무명에서 영광의 광휘로 옮겨 간 한 사람을 중심으로 결정(結晶)되어 있었다. 베르고트의 작품들에 대한 열광은 끝이 없었다. 그는 온종일, 사람들에게 내보여진 채, 스완 부인의 집에서 지냈고, 그녀는 어느 유력한 인사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제가 그이에게 한마디 하죠, 당신을 위해 글을 하나 써 줄 거예요.” 그리고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능히 그렇게 해 줄 수 있었고, 스완 부인을 위해 짧은 극 한 편을 써 줄 수도 있었다.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섰으되, 그는 예전 내 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러 오곤 하던 시절만큼 그렇게 쇠약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극심한 육체의 고통이 그에게 어떤 섭생을 강제했기 때문이다. 병(病)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귀담아듣는 의사이니, 친절이나 지식에게 우리는 그저 약속만 할 뿐이나, 고통에게는 우리가 복종한다.

베르뒤랭 부부와 그들의 작은 패거리가 이 무렵, 어렴풋이 국수주의적이고 한층 뚜렷이 문학적이며 무엇보다도 베르고트적인 스완 부인의 응접실보다 훨씬 더 절실한 관심사를 지녔던 것은 사실이다. 그 작은 패거리는 실상, 극도의 긴장에 다다른 어느 기나긴 정치적 위기의 활동 중심지였으니, 곧 드레퓌스주의였다. 그러나 사교계 사람들은 대개 그 상고에 어찌나 격렬하게 반대했던지, 드레퓌스파의 집이란 그들에게는, 지난 시절의 코뮌파의 집이 그러했던 것만큼이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기가 조직한 어느 큰 전람회를 통해 베르뒤랭 부인과 알게 된 카프라롤라 대공비는, 과연 작은 패거리 가운데 흥미로운 표본 몇을 꾀어내어 자기 응접실에 편입시킬 요량으로 그녀에게 긴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방문에서 대공비는(게르망트 공작부인을 축소판으로 흉내 내며) 세간의 관념에 맞서 자기 세계의 사람들이 얼간이들이라고 단언했으니, 베르뒤랭 부인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대단한 용기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용기도, 그다음에는, 국수주의 부인들의 시선의 포화 아래에서 발베크 경마장에서 베르뒤랭 부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데까지 나아갈 정도는 못 되었다. 반대로 스완 부인에 대해서는, 반드레퓌스파가 그녀를 “건전하다”고 인정해 주었으니, 이는 유대인과 결혼한 여자로서는 갑절로 갸륵한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집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녀의 집에 드나드는 이라고는 이름 없는 유대인 몇몇과 베르고트의 제자들뿐이리라 상상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완 부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여인들을 사회의 사다리 맨 아랫단에 올려놓는데, 그것은 그들의 출신 탓이거나, 혹은 그들이 만찬회나 리셉션 따위에 마음을 쓰지 않아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그들을 결코 보지 못하고는 이것을 그들이 초대받지 못한 탓이라고 잘못 넘겨짚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들이 자기 사교 관계는 결코 입에 올리지 않고 오직 문학과 예술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감추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들 자신이 또 다른 이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이들에게 문을 열어 준다는 사실을 감추기 때문이니, 요컨대 한데 모으면 이런저런 여인을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알고 지내지 않는 부류의 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수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오데트의 경우도 그러했다. “프랑스 조국” 동맹을 위한 무슨 기부금을 걷느라 분주하던 데피누아 부인은, 마치 자기 재봉사를 찾아가듯 그녀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게다가 거기서 만나 봐야 상대하기 곤란하다기보다 아예 낯모를 얼굴들 한 무더기밖에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던 터라, 문이 열리며 나타난 것이 그녀가 상상하던 응접실이 아니라, 무언극의 전환 장면에서처럼, 눈부신 무리 속에서 그녀가 알아본 것이, 긴 의자에 반쯤 기대거나 안락의자에 앉아 안주인을 세례명으로 부르는, 저 왕족들과 공작부인들, 곧 그녀 데피누아 대공비가 온갖 애를 써도 자기 응접실로 좀처럼 끌어들이지 못하던 이들이었을 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오데트의 자애로운 눈길 아래, 뒤 로 후작, 루이 드 튀렌 백작, 보르게세 대공, 데스트레 공작이 오렌지에이드와 케이크를 나르며 술 시중꾼이자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버렸다. 데피누아 대공비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사교적 가치를 그들 자신에게 붙박인 것으로 여기던 터라, 스완 부인의 몸에서 넋을 빼내어 그것을 세련된 사교계 여인의 몸에 다시 불어넣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존재를 신문에 광고하지 않는 여인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이렇게 어떤 상황들 위에(그리하여 이 집 저 집을 서로 구별짓는 데 이바지하며) 신비의 장막을 드리운다. 오데트의 경우, 처음에는 베르고트를 만나고 싶어 안달하던 최상류 사교계 남자 몇몇이, 아주 조용히 그녀의 집으로 저녁을 들러 갔다. 그녀는 최근에야 익힌 눈치로 그들이 왔다는 것을 떠벌리지 않았고, 그들은 거기 가 보니, 어쩌면 오데트가 분열에도 아랑곳없이 그 전통을 지켜 온 작은 핵심의 자취라 할 만한, 자기들을 위해 식탁에 마련된 자리 따위를 발견하곤 했다. 오데트는 그들을 베르고트와 함께(덧붙이자면 이런 나들이가 그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흥미로운 초연에 데리고 갔다. 그들은 그런 새로움에 관심을 가질 만한 자기네 세계의 여러 부인에게 그녀 이야기를 했다. 이 부인들은 베르고트의 절친한 벗인 오데트가 그의 작품에 어지간히 협력했으리라 확신했고, 그녀가 포부르에서 가장 뛰어난 여인들보다 천 배는 더 총명하다고 믿었으니,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두메르 나 데샤넬 같은 알맞은 색채의 어떤 공화파들에게 정치적 신념을 몽땅 걸게 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였으며, 반면 그들은 자기들과 곧잘 저녁을 함께 들던 사람들, 곧 샤레트나 두도빌 같은 왕당파 인사들에게 나라의 운명이 맡겨진다면 프랑스가 파멸로 치닫는 꼴을 보게 되리라 여겼다. 오데트의 지위에 일어난 이 변화는, 그녀로서는, 그것을 한층 확실하고 한층 빠르게 만들되 골루아지의 사교란을 뒤져 어느 집안의 흥망을 가늠하려 드는 세간에 아무런 낌새도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신중함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리하여 어느 날, 자선을 위해 가장 세련된 어느 극장에서 열린 베르고트 극의 총연습에서, 참으로 극적인 순간이란, 저자를 위해 마련된 맞은편 특별석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그리고 스완 부인 곁에, 마르상트 부인과, 그리고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명성에 물릴 대로 물려 애써 나다니는 수고를 덜려고 물러난) 점차 스스로 자취를 감추어 감에 따라 이 시대의 총아, 이 시대의 여왕이 되어 가고 있던 몰레 백작부인이 나란히 와 앉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을 때였다. 오데트의 특별석으로 몰레 백작부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오데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저 여자가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조차 짐작도 못했는데, 저것 봐, 사다리 꼭대기까지 이르렀잖아.”

그리하여 스완 부인은, 내가 그녀의 딸과 다시 가까이 지내려는 것이 속물근성에서라고 여길 법도 했다.

오데트는 그 눈부신 수행원들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오로지 이 공연을 보러 온 것처럼, 지난날 건강을 위해, 일종의 운동 삼아 불로뉴 숲을 가로질러 걷곤 하던 그때처럼, 극에 온 정신을 기울여 귀 기울였다. 지난날 그녀에게 시들한 관심밖에 보이지 않던 남자들이, 온 관객을 어수선하게 하면서 특별석 가장자리로 다가와 그녀의 손에 손을 뻗어, 그녀를 에워싼 그 위엄 있는 무리에 다가서곤 했다. 그녀는 빈정거림보다는 오히려 다정함에 가까운 미소를 띠고, 예상보다 더한 침착함을, 어쩌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일 그 침착함을 가장하며 그들의 물음에 참을성 있게 대답했으니, 이렇게 내보인 것이란 실은 늘 있어 온, 은근히 감추어져 온 친분의 뒤늦은 폭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뭇 시선이 쏠린 이 세 부인 뒤에는, 아그리장트 대공, 루이 드 튀렌 백작, 브레오테 후작을 좌우에 거느린 베르고트가 있었다. 그리고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노릇이니, 어디서나 환대받아 이제는 독창적인 연구의 보상 말고는 더 이상의 출세를 바랄 것도 없는 남자들에게는, 심오한 지성으로 이름난, 그 집에서 당대의 온갖 극작가와 소설가를 만나리라 기대되는 안주인에게 자기가 굴복하도록 내맡김으로써 자기네 진가를 드러내 보인다고 여긴 이 시위(示威)가, 프로그램의 변화도 새로운 볼거리도 없이 해가 바뀌어도, 우리가 그토록 세세히 그려 낸 그 야회와 죄다 엇비슷하게 여러 해째 되풀이되어 온 게르망트 대공비 댁의 그 야회들보다 더 짜릿하고 더 생기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흥미를 잃기 시작하던 그 드높은 권역, 게르망트가의 권역에서는, 최신의 지적 유행이, 베르고트가 스완 부인을 위해 쓰곤 하던 그런 촌극들 속에서처럼, 혹은 (만일 사교계가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질 능력이 있었더라면) 베르뒤랭 부인의 응접실에 피카르, 클레망소, 졸라, 레나크, 라보리가 모여들곤 하던 그런 이를테면 공안(公安) 위원회들 속에서처럼, 그 유행을 본떠 빚어낸 여흥으로 화신하는 일이 없었다.

질베르트 또한 어머니의 지위를 굳히는 데 한몫했으니, 스완의 어느 큰아버지가 근 이천사백만 프랑을 그 소녀에게 막 남겼던 터라, 이는 곧 포부르 생제르맹이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음을 뜻했다. 메달의 뒷면이라면, 스완이(하기야 그는 죽어 가고 있었지만) 드레퓌스파의 견해를 지녔다는 것이었는데, 실은 이것도 그의 아내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도리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 해를 끼치지 않은 까닭인즉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이는 정신이 나갔어, 아주 맛이 갔지, 아무도 그이 말에는 신경 쓰지 않아, 유일하게 무게가 있는 건 그이 아내인데, 그 사람은 매력적이거든.” 그러나 스완의 드레퓌스주의조차 오데트에게는 쓸모가 있었다. 혼자 내버려 두었더라면 그녀는 필경 자기를 파멸로 몰고 갈 만한, 세련된 사교계 여인들에게 다가서려는 짓을 저질렀을 법도 하다. 반면 그녀가 남편을 끌고 포부르 생제르맹으로 저녁을 들러 가던 저녁이면, 제 구석에 시무룩이 앉아 있던 스완은, 오데트가 어느 국수주의 부인에게 소개를 청하려는 낌새라도 보이면 서슴없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정말이지 오데트, 당신 미쳤군. 왜 좀 가만히 있질 못해.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소개받으려 들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어, 내 금하겠소.” 남들이 죄다 뒤쫓아 다니는 사교계 사람들이란 그런 오만함에도, 그런 무례함에도 익숙하지 않은 법이다. 그들은 난생처음, 자기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본 것이다. 스완이 투덜댄 말들의 소문이 널리 퍼졌고, 모서리를 접은 명함이 오데트에게 비 오듯 쏟아졌다. 그녀가 다르파종 부인을 찾아왔을 때는 우호적인 호기심의 술렁임이 일었다. “제가 그분을 소개해 드려도 언짢지 않으시겠지요.” 다르파종 부인이 말했다. “그분은 참 상냥해요. 마리 드 마르상트가 제게 그분 이야길 해 줬답니다.” “아니요, 천만에요, 그분이 그렇게 놀랍도록 영리하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매력적이라고요. 진작부터 뵙고 싶었답니다. 그분이 어디 사시는지 좀 알려 주세요.” 다르파종 부인은 스완 부인에게, 요전 저녁 그녀의 집에서 무척 즐거웠으며 그녀를 위해 생퇴베르트 부인을 기꺼이 저버렸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으니, 스완 부인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다과회 대신 음악회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총명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퇴베르트 부인이 오데트와 같은 시각에 다르파종 부인을 찾아왔을 때, 생퇴베르트 부인이 지독한 속물인 데다 다르파종 부인은, 비록 그녀를 격식 없이 대하기는 해도 그녀의 초대만은 소중히 여겼던 터라, 오데트를 소개하지 않았으니, 생퇴베르트 부인이 그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려는 것이었다. 후작부인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필경 아무 데도 나다니지 않는 어느 대공비이려니 상상하고는, 방문을 질질 늘이며 오데트가 하는 말에 에둘러 대꾸했으나, 다르파종 부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생퇴베르트 부인이 스스로 졌음을 인정하고 자리를 뜨자, 안주인은 오데트에게 말했다. “제가 소개해 드리지 않은 건, 사람들이 그분 모임에 가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데다 그분은 늘 사람을 초대하거든요. 한번 걸리면 두고두고 성가시게 굴 거예요.” “오, 괜찮아요.” 오데트는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이 생퇴베르트 부인의 집에 가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간직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자기가 사교계에서 생퇴베르트 부인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으니, 그 부인은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오데트는 아직 아무 지위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