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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⑭

4권 제1부 · 제1장

어머니는, 방해받기 싫어하던 이 순례길 가운데 하나에서, 딸들을 데리고 나온 콩브레의 한 부인을 해변에서 마주치는 불운을 겪었다. 그 부인의 이름은, 아마 푸생 부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늘 그녀를 '볼만한 꼴'이라 불렀는데, 그녀가 딸들에게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고 경고할 때 이 말을 노상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딸 하나가 눈을 비비면 이렇게 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눈병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볼만한 꼴이 될 게다.' 그녀는 멀리서 느리고 우울한 절로 내 어머니에게 인사했는데, 애도의 표시가 아니라 그녀가 받은 사교 교육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가 할머니를 잃은 적도, 마냥 행복하지 않을 어떤 이유가 있었던 적도 없다는 듯이. 콩브레의 널찍한 정원 담장 안에서 비교적 은둔하며 살던 그녀는, 무엇 하나 제 취향에 흡족하리만치 부드럽게 여기지 못해, 프랑스어의 낱말들을, 심지어 고유명사까지 부드럽게 눅이는 처리를 했다. 그녀는 자기 시럽을 덜어 담는 은수저를 두고 'spoon(스푼)'이라는 말이 너무 딱딱하다 여겨, 그 대신 'spune(스푠)'이라 했다. 그녀는 텔레마코스의 그 감미로운 시인을 대놓고 페늘롱이라 불러 그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겁냈으리라. 나 자신은, 더없이 다정하고 영리한 사람, 착하고 용감하며 그를 아는 이라면 누구도 잊지 못할 벗, 베르트랑 드 페늘롱을 벗으로 두었기에, 떳떳한 마음으로 페늘롱이라 불렀건만. 그녀는 예사로 '페넬롱'이라고만 했으니, 그 강세 부호가 어떤 부드러움을 더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콩브레에서 변호사였던, 이 푸생 부인의 조금도 부드럽지 않은 사위는, 이름은 잊었지만, 금고의 내용물을 들고 달아나 여러 사람 중에서도 내 삼촌에게 상당한 돈을 축냈다. 하지만 콩브레 사람들 대부분은 그 집안의 나머지 식구들과 어찌나 사이가 좋았던지 냉랭함이 뒤따르지는 않았고, 이웃들은 그저 푸생 부인이 딱하다고만 했다. 그녀는 결코 손님을 치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 울타리 앞을 지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 밖에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그 나무들의 감미로운 그늘에 감탄하곤 했다. 발베크에서 그녀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고, 나는 그녀를 딱 한 번, 손톱을 물어뜯는 딸에게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 마주쳤을 뿐이다. '그게 곪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볼만한 꼴이 될 게다.'

어머니가 해변에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방에 홀로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몇 주를, 그리고 거기 얽힌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나서던 날 열어 둔 채였던 아파트의 바깥문을 떠올렸다. 이 모든 것에 견주면 나머지 세상은 좀처럼 실재하는 것 같지 않았고, 내 고뇌가 그 안의 모든 것을 물들였다. 결국 어머니가 나가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발걸음마다, 카지노의 어떤 잊힌 풍경이, 첫날 저녁 어머니가 채비를 마치기를 기다리며 내가 뒤게트루앵 기념비까지 걸었던 그 거리의 어떤 풍경이, 도저히 맞설 수 없는 바람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기운을 조금 되찾은 뒤, 나는 호텔 쪽으로 돌아섰다. 앞으로 아무리 오래 기다린들, 도착하던 저녁에 그곳에서 만났던 할머니를 다시 만나기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그 호텔로. 내가 바깥나들이를 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아직 본 적 없는 여러 하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호텔 문턱에서 어린 보이 하나가 모자를 벗어 나에게 인사하고는 이내 다시 썼다. 나는 에메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나를 정중히 대하라고 그에게 '언질을 주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다른 누군가가 호텔에 들어서자 그가 또 모자를 벗는 것을 보았다. 사실인즉 이 젊은이에게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는 것 말고는 세상에 다른 소임이 없었고,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자기가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되 이 재주에는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날마다 되도록 자주 그것을 실행하여, 투숙객들에게서 은근하되 널리 퍼진 호평을 얻었고, 아울러 수위장의 큰 신임까지 얻었다. 보이들을 채용하는 임무를 맡은 그 수위장은, 이 진귀한 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 주 안에 해고 통지를 받지 않는 보이를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던 터라, 에메를 몹시 놀라게 했다. 에메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 그 일이란 게 그저 예의 바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까지 어려울 게 뭐람.' 지배인은 그 밖에도 그들에게 자기가 이르는바 좋은 '프레장스(presence)'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그 말인즉 그들이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거나, 어쩌면 'presence'라는 말이 겉모습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걸 어디서 들었던 것이거나였다. 호텔 뒤편 잔디밭의 모습은, 여러 화단이 새로 꾸며지고, 이국의 관목 한 그루뿐 아니라, 지난번 방문 때 유연한 줄기 같은 몸매에 신기한 빛깔의 머리칼을 얹고 바깥 장식 노릇을 하던 그 보이까지 치워지면서 달라져 있었다. 그는 자기를 비서로 데려간 폴란드 백작부인을 따라 떠났는데, 매력에 이끌린 다른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에게 호텔에서 뜯겨 나간 두 형과 타자수 누이의 본을 따른 것이었다. 남은 것은 막내뿐이었는데, 사팔뜨기여서 아무도 원치 않았다. 그는 폴란드 백작부인이나 다른 두 형의 후원자들이 발베크의 호텔을 찾아오면 몹시 기뻐했다. 형들을 시샘하면서도 그들을 좋아했기에, 이렇게 해서 한 해에 몇 주는 제 가족애를 가꿀 수 있었던 것이다. 퐁트브로 수녀원장도, 그럴 때면 제 수녀들을 버려두고 와서, 루이 14세가 또 다른 모르트마르, 곧 자기 정부인 몽테스팡 부인에게 베푸는 환대를 함께 누리는 것이 관례이지 않았던가? 그 소년은 아직 발베크에서 첫해였다. 그는 아직 나를 몰랐으나, 나에게 말을 걸 때 연차가 더 오랜 동료들이 'Monsieur(므시외)'라는 말에 내 성을 덧붙이는 것을 듣고, 처음부터 흡족한 낯빛으로 그들을 흉내 냈다. 유명하다고 그가 여긴 사람과 친분이 있음을 과시하는 데서든, 오 분 전만 해도 들어 본 적 없으되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느낀 관습을 따르는 데서든 말이다. 나는 이 거창한 '팰리스'가 어떤 사람들에게 지닐 매력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극장처럼 꾸며져 있었고, 수많은 출연진이 그곳을 문간까지 활기로 채웠다. 투숙객은 그저 일종의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공연에 한몫 끼어들었는데, 배우들이 관객 사이에서 극을 펼치는 그런 극장에서와는 달리, 마치 구경꾼의 삶이 무대의 호사스러운 장치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론테니스 선수가 흰 플란넬 블레이저 차림으로 들어오면, 수위는 그에게 편지를 건네기에 앞서 은실로 장식한 푸른 프록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리라. 이 론테니스 선수가 걸어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는 승강기를 움직이도록 못지않게 화려하게 차려입은 승강기 담당을 곁에 두는 데서 여전히 배우들과 얽혔다. 각 층의 복도는 물의 요정 같은 객실 하녀들의 날아다니는 무리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여쁜 환영들을 삼켰고, 그 초라한 방으로 여성미의 예찬자들이 교묘히 에움길을 돌아 이르렀다. 아래층에서는 남성적 요소가 우세하여, 하인들의 극도로, 그러면서도 힘들이지 않은 젊음 덕에, 이 호텔을 일종의 육신을 얻어 끊임없이 상연되는 유대·기독교 비극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을 볼 때, 보구베르 가 젊은 대사관 서기들이 샤를뤼스 에게 인사하는 것을 지켜보던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 문득 떠올랐던 라신의 시구가 아니라, 라신의 다른 시구를, 이번엔 에스테르가 아니라 아탈리에서 따온 시구를 스스로에게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홀의 문간, 17세기에 주랑이라 부르던 그곳에, 라신의 합창대의 어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젊은 보이들의 '번성하는 종족'이 특히 다과 시간에 무리 지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탈리가 어린 왕자에게 '그래, 네 소임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을 때 요아스가 찾아낸 그 막연한 대답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믿는다. 그들에게는 소임이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새 왕비처럼 '한데 이 온 종족은, 이곳에 갇혀 무얼 하느냐?' 하고 물었다면, 그는 이렇게 답했으리라. '저는 장엄한 의식을 지켜보며 제 몫을 다합니다.' 이따금 젊은 단역 하나가 좀 더 중요한 인물에게 다가갔다가, 이 젊은 미남은 다시 합창대에 합류했고, 관조적 휴식의 순간이 아닌 한, 그들은 쓸모없고 공손하며 장식적인 그날그날의 진행을 이어 갔다. '쉬는 날'을 빼면, 그들은 '세상과 격리되어 자라' 문턱을 결코 넘지 않으며, 아탈리의 레위인들과 똑같은 성직자 같은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호사스러운 양탄자로 덮인 층계 발치에서 노니는 그 '젊고 충실한 무리'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발베크의 그랑 호텔로 들어서는 것인지 솔로몬 성전으로 들어서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올라갔다. 내 생각은 줄곧 할머니의 마지막 발병기로, 내가 다시금 살아 내던 그녀의 고통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 고통에, 남의 고통보다 견디기가 훨씬 더 어려운, 우리의 가차 없는 연민이 거기에 보태는 그 요소로 강도를 더했다. 우리가 그저 사랑하는 벗의 아픔을 되살리고 있을 뿐이라고 여길 때, 우리의 연민은 그것을 부풀린다. 하지만 어쩌면 옳은 것은 우리의 연민이지, 정작 아픔을 겪는 이들 자신의 의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 존재의 그 비극을 보지 못하는데, 연민은 그것을 보고 슬퍼하니 말이다. 만약 그때 내가, 오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을, 곧 할머니가 죽음을 앞둔 어느 순간, 의식이 돌아온 틈에, 내가 방에 없음을 확인한 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열에 들뜬 입술을 거기 대고는 '잘 있어라, 내 아가, 영영 잘 있어라' 하고 말했음을 알았더라면, 내 연민은 분명 새 힘을 얻어 할머니의 고통을 훨씬 넘어섰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어머니가 그토록 붙박이로 응시하기를 멈추지 못하던 그 기억이었으리라. 그러다 더 정다운 기억들이 나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내 할머니였고 나는 그녀의 손자였다. 그녀의 얼굴 표정들은 오직 나만을 위한 언어로 쓰인 듯했다. 그녀는 내 삶의 전부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녀가 그들에게 내릴 판단 속에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 관계는 너무나 덧없어 우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는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를 위해서만 창조된 것이 아니었고, 그녀는 나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이 낯선 사람이, 생루가 찍은 사진 속에서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알베르틴을 만난 어머니는, 그녀가 할머니와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주었다는 이유로, 내가 그녀를 만나야 한다고 우겼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약속을 잡아 두었다. 나는 지배인에게 그녀가 올 거라고 말하고, 응접실에서 나를 기다리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녀와 그녀 친구들을, 그들이 '순수의 나이'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여러 해 알아 왔다고 알려 주었으나, 그들이 호텔에 대해 한 어떤 말들 때문에 그들에게 언짢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그리 '점잖은' 축은 못 되지요. 누가 그들을 험담한 게 아니라면요.' '순수'가 여기서 '사춘기'를 뜻함을 나는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내려가 알베르틴을 만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하도 뚫어지게 바라보아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그림을 보듯, 생루가 찍은 그 사진에 눈길을 붙박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나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이건 할머니야, 나는 그녀의 손자야.' 기억을 잃은 사람이 제 이름을 떠올리듯, 병자가 제 인격이 바뀌듯이.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이 와 있다고 알리러 들어왔다가, 그 사진을 언뜻 보았다. '가엾은 마님, 마님을 꼭 빼닮았네요, 뺨의 그 점까지도. 후작님이 사진을 찍어 주신 그날, 마님은 아주 편찮으셨어요, 두 번이나 쓰러지셨죠. '무슨 일이 있어도, 프랑수아즈,' 마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손자한테는 절대 알리지 말게.' 그러고는 혼자만 알고 계셨어요, 남들 앞에서는 늘 밝으셨죠. 그래도 혼자 계실 때는, 이따금 좀 가라앉은 기색이 보이곤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금세 지나갔죠. 그러고는 저한테 이러셨어요, 이러셨죠. '내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그 애가 간직할 내 사진 한 장은 있어야 할 텐데. 평생 한 장도 찍은 게 없구나.' 그래서 저를 후작님께 심부름 보내시면서, 마님이 부탁했다는 걸 도련님께는 절대 알리지 말되, 사진을 찍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라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돌아와 그러시겠다고 전하니, 마님은 또 마음을 바꾸셨어요, 낯빛이 너무 안 좋다고요. '차라리 사진이 아예 없느니만 못하겠구나,' 하시면서요. 그래도 마님은 영리한 분이셨죠, 그래서 결국 그 큰 챙 넓은 모자를 어찌나 잘 쓰셨던지, 그늘에서는 그게 도무지 드러나지 않았어요. 마님은 그 사진을 갖게 되어 아주 기뻐하셨어요, 그때는 살아서 발베크를 떠나지 못하리라 여기셨거든요. 제가 아무리 '마님, 그런 말씀 하시면 못써요, 마님이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저는 듣기 싫어요' 해도 소용없었어요, 이미 그리 굳게 믿고 계셨으니까요. 그리고, 저런, 아무것도 못 드시는 날이 어찌나 많았는지요. 그래서 도련님을 후작님과 함께 시골로 저녁 드시러 내보내곤 하셨죠. 그러고는 식사하러 들어가는 대신, 책을 읽는 척하시다가, 후작님 마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자리에 드셨어요. 어떤 날은 마님(어머니)께 기별을 넣어 제때 내려와 뵙게 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러다가도, 아무 말씀 안 하셨던 터라 마님을 놀라게 할까 봐 겁내셨죠. '그 애는 제 남편 곁에 있는 게 낫지, 안 그런가, 프랑수아즈.' ' 프랑수아즈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불쑥 '몸이 편찮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러다 제가 도련님이랑 이야기하느라 시간만 허비하네요. 손님이 이 시간 내내 와 계신데. 내려가서 말씀드려야겠어요. 여기 둘 만한 사람이 못 돼요. 아니, 저렇게 잰 여자는, 벌써 가 버렸을지도 몰라요. 기다리는 걸 싫어하니까요. 아이고, 요즘 알베르틴 아가씨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요!' '자네가 아주 잘못 봤네, 그 사람은 아주 반듯한 사람이야, 이런 데는 과분할 만큼. 하지만 가서, 오늘은 내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겠다고 전해 주게.'

내가 우는 것을 보았더라면, 프랑수아즈는 얼마나 측은해하는 넋두리를 늘어놓았을까.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서 몸을 숨겼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의 동정을 샀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내 동정을 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우는 것을 마치 우는 것이 우리에게 해롭기라도 한 듯 차마 보지 못하는 이 가엾은 하녀들의 처지에 우리 자신을 충분히 놓아 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해로운 것이거나. 프랑수아즈는 내가 어릴 때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그렇게 울지 마세요, 도련님이 그렇게 우는 거 저는 보기 싫어요.' 우리는 거창한 말투를, 단언을 싫어한다. 우리가 틀렸다. 우리는 시골의 그 애처로움에, 어쩌면 부당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쫓겨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마치 그저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양 문득 그 어느 때보다 겸손해진 가엾은 하녀가, 제 아버지의 정직함을, 제 어머니의 원칙을, 제 할멈의 훈계를 들먹이며 펼쳐 보이는 그 전설에 마음을 닫는다. 우리 눈물을 차마 보지 못하는 바로 그 하녀들이, 우리가 폐렴에 걸리도록 예사로 내버려 두는 것은 사실이다. 아래층 하녀가 바람을 좋아하는데 창문을 닫는 것은 그녀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처럼 옳은 사람들조차 동시에 틀린 데가 있어야, 그리하여 정의가 불가능한 것이 되어야 하니까. 하인들의 소박한 즐거움조차 주인들의 거절이나 조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언제나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어리석게 감상적이고, 비위생적이니까. 그리하여 그들은 이렇게 말할 처지가 된다. '어떻게 제가 한 해에 이 한 가지만 청하는데, 그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걸까요.' 그러면서도 주인들은 그들에게, 하인들에게도, 또 자기들에게도 어리석지도 위험하지도 않던 훨씬 더 어려운 것은 허락해 주곤 한다. 물론, 떨면서, 저지르지 않은 죄를 기꺼이 자백할 채비로, '원하신다면 저는 오늘 밤 떠나겠어요' 하는 그 가련한 하녀의 겸손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녀가 하는 말들의 엄숙하고 위협적인 얼빠짐에도 불구하고, 그 어미의 유산과 집안 '텃밭'의 위엄에도 불구하고, 제 평생과 제 조상의 명예를 두른 채, 빗자루를 왕홀처럼 휘두르며, 비극의 반장화를 신고, 흐느낌으로 말을 막으며, 위엄으로 허리를 곧추세우는 늙은 식모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날 오후, 나는 이런 종류의 장면들을 떠올렸거나 상상했고, 그것들을 우리 늙은 하녀와 결부지었으며, 그때부터, 그녀가 알베르틴에게 끼칠지 모를 온갖 해악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랑수아즈를, 물론 간헐적이나마 더없이 강한 종류의, 연민에 뿌리를 둔 그런 애정으로 사랑했다.

물론 나는 그날 온종일,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고 앉아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지배인에게서 받은 방문만큼 날카롭지는 않았다. 내가 할머니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가 애도의 말을 거듭한 뒤,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는 자기가 틀리게 발음하는 낱말들을 즐겨 썼으니까). '마님 할머님께서 그 실신(실신, syncope)을 하셨던 날처럼요, 그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른 손님들 때문에요, 아시다시피, 그게 이 집 이름에 누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사실 그날 저녁에 떠나셨어야 했지요. 하지만 마님이 그 일은 아무 말 말아 달라고 사정하시면서, 다시는 실신하지 않겠다고, 만약 또 한 번 그러면 떠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층 담당 급사가 마님이 또 한 번 그러셨다고 보고하더군요. 하지만, 저런, 우리가 기쁘게 해 드리려 애쓰는 오랜 친구분들이시고, 아무도 항의만 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나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실신을 겪었던 것이다. 어쩌면 바로, 내가 그녀에게 가장 못되게 굴던 그 순간에, 그녀가 고통 가운데서, 나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고 짐짓 성정을 다스리고, 호텔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낯빛을 살펴야 했던 바로 그때에. '실신'은, 그렇게 발음되니 내가 도무지 떠올리지 못했을 낱말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쓰였다면 어쩌면 우습게 여겨졌을 낱말이었으나, 마치 원래의 불협화음이 그러하듯, 그 기묘하고 낭랑한 새로움 속에서, 내 안에 더없이 고통스러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이튿날 나는 어머니의 청에 따라, 모래밭에, 아니 그보다 모래언덕 사이에, 그 굽이에 몸이 가려지는 곳에 잠시 누우러 갔다. 알베르틴과 그녀 친구들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서. 내리깐 눈꺼풀은 오직 한 종류의 빛만을, 온통 장밋빛의, 눈 안쪽 벽의 그 빛만을 들여보냈다. 그러다 눈꺼풀이 아주 감겼다. 그러자 할머니가, 안락의자에 앉은 채 나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어찌나 기운이 없던지, 다른 사람들보다 덜 살아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녀는 이따금, 아버지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를 품에 안아도, 나는 그녀의 눈에 애정의 불꽃을, 뺨에 발그레한 핏기를 도무지 지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서 부재한 그녀는, 어쩐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듯,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어쩌면 나를 보지도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무관심의, 낙담의, 말 없는 원망의 비밀을 헤아릴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한쪽으로 끌었다. '아버지도 보시잖아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할머니는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세요. 삶을 완벽하게 흉내 낸 거예요. 죽은 이들은 살지 않는다고 우기는 아버지 사촌을 여기로 데려올 수 있다면. 아니,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벌써 일 년도 넘었는데, 여전히 살아 계시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 입맞춤을 안 해 주시죠?' '보렴, 가엾게도 고개가 또 떨어지는구나.'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샹젤리제에 가고 싶어 하세요.' '미친 소리다!' '정말 그게 할머니께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할머니가 더 죽을 수 있다고요? 할머니가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실 리 없어요. 제가 자꾸 껴안는데, 할머니는 다시는 저에게 미소 지어 주지 않으실까요?' '어쩌겠니, 죽은 사람은 죽은 거란다.'

며칠 뒤 나는 생루가 찍어 준 그녀의 사진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프랑수아즈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았는데, 그 기억은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어 나는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받았던 그녀의 건강 상태에 대한 관념, 그토록 위중하고 그토록 고통스러운 그 관념과 관련해서 말하면, 사진은, 나에게 드러난 뒤에도 여전히 나를 속이는 데 성공한 할머니의 그 술책들의 덕을 아직도 보고 있어서, 얼굴을 반쯤 가린 모자 아래 그토록 맵시 있고 그토록 근심 없는 그녀를 보여 주었기에, 나는 그녀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덜 불행하고 더 건강해 보인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그녀의 뺨은 저도 모르게 제 나름의 표정을, 도살하기로 점찍힌 것을 느끼는 짐승의 표정처럼 납빛의, 초췌한 표정을 띠고 있어서, 내 할머니는 사형선고를 받은 듯한 기색을, 저도 모르게 침울하고 저도 모르게 비극적인 기색을 띠고 있었다. 나에게는 알아채이지 않고 지나갔으나, 어머니로 하여금 그 사진을, 어머니에게는 자기 어머니의 사진이라기보다 그 어머니의 병의 사진, 그 병이 잔혹하게 얻어맞은 내 할머니의 얼굴에 가하는 모욕의 사진으로 보이던 그 사진을 결코 바라보지 못하게 한 그 기색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알베르틴에게 곧 만나겠다고 기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유난히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의 어느 아침, 뛰노는 아이들의, 물놀이하는 이들의, 신문팔이들의 무수한 외침이, 잔물결들이 잇따라 밀려와 제 서늘함을 흩뿌리던 그 뜨거운 해변을, 나에게 불의 선으로, 소용돌이치며 교차하는 섬광으로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물의 철벙거림과 뒤섞인 교향악의 연주회가 시작되었고, 그 사이로 바이올린들이, 바다 위로 흩어져 나간 벌 떼처럼 잉잉거렸다. 나는 대번에 알베르틴의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졌고, 그녀의 친구들을, 물결을 배경으로 윤곽 지어진, 발베크의 떼어 놓을 수 없는 매력이자 전형적인 화초로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그 처녀들을 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프랑수아즈 편에 알베르틴에게 다음 주로 약속을 정하는 몇 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는 사이, 부드러이 부풀어 오르는 바다는, 물결이 하나하나 풀려날 때마다, 이탈리아 대성당의 지붕 위에서 푸른 반암과 거품 이는 벽옥의 봉우리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그 천사 류트 주자들처럼 서로 떨어져 나온 듯한 악구들의 그 선율을, 수정의 층층 아래 온전히 파묻었다. 하지만 알베르틴이 오기로 한 날, 날씨는 다시 흐리고 쌀쌀해졌고, 게다가 나는 그녀의 웃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녀는 몹시 언짢은 기분이었다. '올해 발베크는 지독하게 따분해요,'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오래 있을 생각 없어요. 알잖아요, 나 부활절부터 여기 있었어요, 한 달도 넘었죠. 사람 하나 없어요. 얼마나 재미있을지 짐작이 가죠.' 최근의 비와,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베르틴을 에프르빌까지 바래다준 뒤, 그녀는, 그녀 표현을 빌리면, 봉탕 부인의 별장이 있는 그 작은 해수욕장과, 로즈몽드의 가족에게 '하숙'으로 맡겨진 앵카르빌 사이를 '오가는' 중이었으니, 나는 홀로, 우리가 할머니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갔을 때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가 지나갔던 큰길 쪽으로 갔다. 이제 다시 밝아진 해가 미처 말리지 못한 물웅덩이들이 땅을 온통 진창으로 만들어 놓았고, 나는, 예전에 한 걸음도 진흙을 뒤집어쓰지 않고는 걷지 못하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하지만 길에 이르러 나는 눈부신 광경을 마주쳤다. 8월에 할머니와 함께 그저 푸른 잎들과, 말하자면 사과나무들의 배치만을 보았던 그곳에, 눈길이 닿는 데까지 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워, 그 화려함 속에 경이로웠다. 무도회 드레스 아래 발치를 진창에 담근 채, 일찍이 본 적 없는 더없이 경이로운 분홍 새틴을 망치지 않으려는 어떤 조심도 없이, 그것은 햇빛 속에 반짝였다. 저 멀리 바다의 지평선은 나무들에게 일본 판화의 배경을 주었다. 꽃 사이로 하늘을 우러러보려 고개를 들면, 그 꽃이 하늘의 고요한 푸름을 거의 격렬해 보이게 했는데, 나무들은 그 낙원의 광대함을 드러내려 서로 갈라서는 듯했다. 그 쪽빛 아래, 희미하되 차가운 미풍이 붉게 물든 꽃다발들을 가만히 떨게 했다. 푸른 박새들이 가지에 와 앉아 꽃 사이를 파닥이며 날았는데, 마치 이국의 예술과 빛깔을 사랑하는 어떤 애호가가 이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인위로 지어내기라도 한 듯 관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눈물짓게 했다. 예술가가 아무리 그 창작의 정교함을 끝까지 밀어붙였을지언정,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 사과나무들이 프랑스의 어느 큰길가에, 시골 한복판에, 농부들처럼 거기 있음을 느꼈으니까. 이윽고 햇살이 문득 빗줄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빗줄기는 온 지평선을 그어 내리며, 사과나무들의 행렬을 그 잿빛 그물에 붙들었다. 하지만 나무들은 계속 제 아름다움을, 분홍빛 만발한 아름다움을, 퍼붓는 비에 얼음처럼 차가워진 바람 속에 높이 치켜들었다. 그것은 봄의 하루였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