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2장 ①

4권 제1부 · 제2장

알베르틴의 수수께끼 · 거울에 비쳐 그녀가 바라보는 처녀들 · 또 다른 여자 · 엘리베이터 보이 · 캉브르메르 부인 · 니심 베르나르 의 즐거움 · 모렐의 기이한 성격의 윤곽 · 샤를뤼스 가 베르뒤랭가에서 만찬을 들다.

이 홀로 떠나는 나들이에서 느낀 즐거움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약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는 할머니가 겪었던 어떤 크나큰 마음의 고통을 떠올려 그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나의 부름에 응해 그 고통은 내 마음속에 스스로를 세우려 하며 거대한 기둥들을 밀어 올렸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마도 그것을 담기에 너무 작았던지, 나는 그토록 큰 슬픔을 견딜 힘이 없었고, 그 슬픔이 완성에 다다르려는 순간 나의 주의는 흐트러졌으며, 그 아치들은 서로 맞물리기도 전에, 마치 채 곡선을 완성하지 못한 바닷물결이 비틀거리다 부서지듯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잠든 사이 꾸는 꿈만으로도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옅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꿈속의 할머니는 내가 그녀의 부재에 대해 품은 관념에 예전만큼 짓눌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병들어 있으나 회복의 길에 들어선 할머니를 보았고, 한결 나아진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나는 입맞춤으로 그 입을 막고 이제는 완전히 나았다고 안심시켰다. 나는 죽음이란 실은 거기서 회복되는 하나의 병이라는 것을 회의론자들을 불러 증언하게 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더 이상 할머니에게서 옛날의 그 풍요로운 자발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힘없고 고분고분한 대꾸, 거의 내 말의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생각의 반영에 불과했다.

아직 어떤 새로운 육체적 욕망도 느끼지 못하는 처지였으면서도, 알베르틴은 그럼에도 내 안에 행복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마음 표면에 늘 떠다니는, 함께 나누는 애정에 대한 어떤 꿈들은, (그 기억이 이미 조금 희미해져 있기만 하다면) 우리가 함께 쾌락을 나눈 여인에 대한 기억과 일종의 친화력으로 쉽사리 결합한다. 이 감정은 내게 알베르틴의 얼굴의 여러 면모를, 더 부드럽고 덜 명랑한, 육체적 욕망이 불러냈을 법한 것과는 사뭇 다른 면모들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 욕망보다 덜 절박하기도 했으므로, 나는 알베르틴이 발베크를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나려 애쓰지 않고, 그 실현을 다음 겨울까지 기꺼이 미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생생한 슬픔의 한가운데서도 육체적 욕망은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날마다 몇 시간씩 누워 쉬어야 했던 침대에서, 나는 알베르틴이 찾아와 예전의 놀이를 다시 시작해 주기를 갈망했다. 자식을 잃은 바로 그 방에서, 부모가 이내 다시 몸을 섞어 그 어린 천사에게 남동생을 안겨 주는 일을 우리는 보지 않는가? 나는 이 욕망에서 마음을 돌리려고 창가로 가 그날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하루하루 좀처럼 같은 모습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바다가 그 첫해의 바다와 조금이라도 닮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이 폭풍우가 이는 봄철이어서였을 수도, 혹은 설령 내가 예전과 같은 시기에 내려왔더라도 이번의 다르고 더 변덕스러운 날씨가, 내가 길고 뜨거운 여러 날 동안 해변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던 어떤 바다들, 나른하고 안개 서리고 부서질 듯 여린, 오직 그 푸르스름한 가슴만이 부드러운 고동으로 희미하게 일렁이던 그런 바다들이 이 해안을 찾아오는 것을 막았을 수도 있으며, 혹은 무엇보다 그럴 법하게는, 엘스티르에게서 예전에는 일부러 물리쳤던 바로 그 요소들을 붙들어 두는 법을 배운 내 눈이, 이제는 지난해에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것을 몇 시간이고 응시하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때는 빌파리지 부인과 함께한 시골 마차 나들이와, 영원한 대양의, 유동적이고 다가갈 수 없으며 신화적인 이 가까움 사이에서 그토록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던 대비가, 이제 내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도리어 바다 자체가 거의 시골스러워 보이는 날들도 있었다. 정말로 날씨가 좋은, 드물디드문 날이면, 더위가 물 위에, 마치 들판을 가로지르듯, 뽀얀 흰 길을 그어 놓았고, 그 길 끝에는 고깃배의 뾰족한 돛대가 마을의 종탑처럼 솟아 있었다. 굴뚝만 보이는 예인선 한 척이 저 멀리서 들판 한가운데의 공장처럼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한편 지평선을 배경으로 외따로 놓인 볼록한 흰 얼룩은, 필시 돛이 그려 놓은 것이련만 겉보기에는 회칠을 한 단단한 면 같아서, 어느 외딴 건물의, 병원이나 학교의 햇빛 받은 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구름과 바람은, 그것들이 햇빛에 더해지는 날이면, 판단의 오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첫눈의 착각을, 그 착각이 상상 속에 불러일으키는 암시를 완성했다. 서로 다른 작물이 이웃함으로써 시골에서 생겨나는 것과도 같은, 또렷하게 구획된 색색의 얼룩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모양, 거칠고 누렇고 거의 진흙빛에 가까운 바다 표면의 울퉁불퉁함, 그 두둑들, 날렵한 선원들이 한 무리 올라타 추수라도 하는 듯 보이는 배 한 척을 시야에서 가려 버리는 비탈들, 이 모든 것이 폭풍우 치는 날이면 대양을, 내가 예전에 다니곤 했고 이제 곧 다시 다니게 될 마찻길이 나 있는 육지만큼이나 다채롭고, 단단하고, 굴곡지고, 붐비고, 문명화된 무언가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욕망을 견딜 수 없어,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대신 옷을 챙겨 입고 알베르틴을 찾아 앵카르빌로 나섰다. 나는 그녀에게 나와 함께 두빌로 가자고 청할 참이었다. 거기서 나는 페테른으로 캉브르메르 부인을, 라 라스플리에르로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뵐 생각이었다. 그동안 알베르틴은 해변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우리는 어두워진 뒤 함께 돌아오게 될 터였다. 나는 그 지방의 작은 협궤 열차를 타러 갔다. 나는 지난번에 알베르틴과 그 친구들에게서 그 고장에 통용되는 이 열차의 온갖 별명을 주워들은 터였다. 셀 수 없는 굽이 때문에 트위스터라 불렸고, 좀처럼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 굼벵이, 선로에서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려고 울려 대는 끔찍한 경적 때문에 대서양횡단선, 케이블 철도라 할 만한 구석은 전혀 없으면서도 벼랑을 기어오르는 까닭에 데코빌퓌니라 불렸으며, 엄밀히 말해 데코빌은 아니었지만 60센티미터 궤간을 가졌고, 앙제르빌을 거쳐 발베크와 그라트바스트 사이를 달렸기에 B.A.G., 그리고 남부 노르망디 전차의 지선이었기에 트램T.S.N.이라 불렸다. 나는 나 혼자뿐인 객실 한 칸에 자리를 잡았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숨 막히게 더운 날이었다. 나는 단 한 줄기 햇빛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가리는 파란 차양을 내렸다. 그러나 곧바로 나는, 우리가 발베크로 가려고 파리를 떠나던 날 기차 안에 앉아 있던 모습 그대로의 할머니를, 내가 맥주 마시는 것을 보는 슬픔에 차라리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자는 척하던 그 할머니를 눈앞에 보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브랜디를 입에 대실 때 할머니가 느끼던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그 괴로움을 할머니에게 안겨 주고 있었다. 남의 권유로 그녀가 내게 해롭다 여기는 술을 내가 받아 마시는 것을 그저 지켜보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녀로 하여금 내가 마음껏 그것을 들이켜도록 내버려 두게끔 강요했고, 더 나쁘게는, 내 격정의 폭발과 숨 막힐 듯한 발작으로, 그녀가 나를 거들고 그렇게 하라고 권하게끔 강요했으니,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체념에서 나온 일이었다. 그 체념의, 말없이 절망에 잠긴,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은 모습을 나는 이제 기억 속에서 다시 보고 있었다. 그토록 생생한 기억은, 마치 요술 지팡이의 한 번 휘두름처럼, 얼마 전부터 내가 차츰 벗어나던 그 심경을 되살려 놓았다. 죽은 여인에게 입 맞추고 싶은 절망적인 갈망에 내 입술이 온통 사로잡혀 있는데 로즈몽드가 내게 무슨 상관이며, 매 순간 할머니가 겪은 그 고통이 내 안에서 새로이 되살아나 심장이 이토록 격하게 뛰는데 캉브르메르가와 베르뒤랭가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었겠는가. 나는 객실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기차가 멘빌라탱튀리에르에 서자마자, 나는 모든 계획을 내던지고 내려 버렸다. 멘빌은 근래 들어 상당한 비중과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여러 카지노를 거느린 어떤 흥행주, 쾌락을 파는 장사꾼이, 그 마을 바로 바깥에, 어느 고급 호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사치스럽게 악취미를 늘어놓은 한 업소를 차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 업소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거니와, 요컨대 그것은 프랑스 해안에 세울 생각을 누군가 처음으로 해낸,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최초의 매음굴이었다. 그런 곳은 그 하나뿐이었다. 하기야 항구마다 저 나름의 매음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직 뱃사람들을 위한 것이거나, 태곳적 본당 성당 바로 옆에서, 그에 못지않게 오래되고 위엄 있고 이끼 낀 뚜쟁이 노파가 악명 높은 제 문간에 서서 고깃배 선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림 같은 풍경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여러 집안의 가장들이 시장에게 헛되이 항의했음에도 그 자리에 뻔뻔스럽게 세워진, 번쩍이는 ‘쾌락’의 집을 서둘러 지나쳐, 나는 벼랑에 이르러 발베크 쪽으로 난 그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갔다. 나는 산사나무들의 부름을, 그에 답하지는 않은 채 들었다. 꽃 핀 사과나무들의, 더 초라한 처지의 이웃인 산사나무들은, 그 사과나무들을 몹시 상스럽다 여기면서도, 그 부유한 사과주 양조가들의, 장밋빛 꽃잎을 단 딸들의 싱그러운 낯빛만큼은 부인하지 않았다. 산사나무들은, 지참금이 더 적으면서도 자기들이 더 사랑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해진 듯한 흰빛만으로도 스스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아왔을 때, 호텔 문지기가 검은 테두리를 두른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곤빌 후작 내외, 당프르빌 자작 내외, 베른빌 백작 내외, 그랭쿠르 후작 내외, 다므농쿠르 백작, 멘빌 백작부인, 프랑크토 백작 내외, 데글빌 태생 샤베르니 백작부인이 삼가 부고를 알리는 편지였는데, 나는 뒤 메닐 라 기샤르 태생 캉브르메르 후작부인과 캉브르메르 후작 내외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그리고 고인이 캉브르메르가의 사촌으로 이름은 엘레오노르외프라지욍베르틴 드 캉브르메르, 크리크토 백작부인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그 편지가 왜 내게 왔는지를 이해했다. 빽빽하게 인쇄된 줄들을 가득 메운 이 시골 가문의 온 갈래를 통틀어, 평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반대로 남들이 알 만한 작위도 하나 없었으며, 다만 저마다의 이름을, 곧 그 근방의 온갖 흥미로운 고장들의 이름을 ville로, court로, 때로는 좀 더 칙칙한 가락으로 (tot로) 흥겹게 울려 대는, 그 지방 귀족들의 명부 전체가 있을 따름이었다. 제 성채의 지붕 기와나 제 본당 성당의 거친 회벽을 걸치고, 끄덕이는 그 머리는 겨우 본당 궁륭이나 연회장의 천장 위로 삐죽 솟을 뿐이며, 그것도 오직 노르망디식 채광탑이나 후추통 모양 작은 탑의 비둘기장으로 제 머리를 덮어쓰기 위함이라는 듯, 그 귀족들은 마치 반경 오십 리외에 걸쳐 늘어서거나 흩어진 온갖 아리따운 마을들에 소집 나팔을 불어, 하나도 빠짐없이, 끼어든 자 하나 없이, 검은 테를 두른 그 귀족 편지의 촘촘하고 반듯한 장기판 위로 밀집 대형을 이루어 행진시켜 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어머니는 세비녜 부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곱씹으며 이층 당신 방으로 올라가셨다. ‘나는 나를 너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사람들을 도무지 거들떠보지 않는다. 실은 그들이 내가 너를 생각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고, 그게 나는 못마땅하다.’ 재판장이 어머니에게 무언가 기분 전환거리를 찾으셔야 한다고 말했던 까닭이다. 그는 내게 속삭였다. ‘저분이 파름 대공비시라오!’ 재판장이 내게 가리켜 보인 그 여인이 대공비 전하와는 조금도 닮은 데가 없음을 보고서 내 걱정은 가셨다. 그러나 그 대공비가 뤽상부르 부인을 방문한 뒤 하룻밤을 묵으려고 방을 하나 잡아 둔 터라, 그녀가 온다는 소문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 오는 이마다 파름 대공비로 여기게 만들었고, 나로서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틀어박히게 만들었다.

나는 거기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겨우 네 시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알베르틴을 찾아가, 그녀가 남은 오후를 나와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알베르틴이 훗날 내 안에 불러일으키게 될 그 괴롭고 끝없는 불신의 징후가, 더구나 그 불신이 띠게 될 그 특수한 성격, 뚜렷이 고모라적인 성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무렵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사실과 다를 것이다. 물론 그날 오후에도, 하기야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졌다. 프랑수아즈는 한번 나서더니 어찌나 오래 돌아오지 않던지 나는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등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낮의 빛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바람이 카지노 위의 깃발을 펄럭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밀물이 차오르는 해변의 정적 속에서 더욱 희미하게, 이 뒤숭숭하고 부자연스러운 시각의 불안한 공허를 고스란히 옮기며 한층 짙게 하는 어떤 목소리처럼, 호텔 바깥에 멈춰 선 작은 손풍금 하나가 빈 왈츠를 연주하고 있었다. 마침내 프랑수아즈가 돌아왔으나, 혼자였다. ‘저야 할 수 있는 한 서둘렀습죠만, 그 아가씨가 자기 차림새가 곱지 않다면서 안 오려 들지 뭡니까. 얼굴에 분칠하고 화장하는 데 오 분이면 될 걸, 시계로 꼬박 한 시간이더라니까요. 이 방이 아주 향수 가게가 되겠어요. 온답니다,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다고 뒤에 처졌지요. 저는 그 아가씨가 벌써 여기 와 있을 줄 알았는데요.’ 알베르틴이 나타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보인 명랑함과 매력은 내 슬픔을 씻어 주었다. 그녀는 (며칠 전 자기가 한 말과는 어긋나게) 이번 철 내내 머물 것이라고 알리며, 지난해처럼 날마다 만나기로 할 수는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은 너무 우울하니, 파리에서 그랬듯이 그때그때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보내 그녀를 부르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괴롭거나, 제가 보고 싶어지거든, 망설이지 말고,’ 그녀가 말했다, ‘사람을 보내세요. 곧장 달려올게요. 그리고 호텔에서 말이 나는 게 겁나지 않으신다면, 원하시는 만큼 오래 있을게요.’ 프랑수아즈는 그녀를 내게 데려오면서, 나를 기쁘게 하려고 일부러 애를 써서 그것이 성공했을 때면 늘 짓던 그 즐거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알베르틴 본인은 그 기쁨에 아무것도 보태 주지 않았으니, 바로 이튿날 프랑수아즈는 이런 뜻깊은 소견으로 나를 맞이하게 된다. ‘도련님은 저 아가씨를 만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저런 부류가 어떤지 잘 알아요, 도련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말 거예요.’ 알베르틴을 문까지 배웅하다가 나는 불 밝힌 식당 안에서 파름 대공비를 보았다. 나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저 그녀를 한 번 흘끗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게르망트가에서라면 나를 미소 짓게 했을 그 왕족다운 정중함에서, 나는 어떤 웅대함을 발견했다고 말해 두어야겠다. 군주된 대공들은 어디에 있든 제집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 하나의 근본 규칙이며, 이 규칙은, 이를테면 집주인이 제 집에서 모자를 손에 들고 있어 여기가 제집이 아니라 대공의 집임을 나타내게 하는 것과 같은, 낡고 쓸모없는 관습들로 관례상 표현된다. 파름 대공비는 이 관념을 스스로 또렷이 정리해 본 적은 없었을지 모르나, 워낙 그것에 젖어 있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지어낸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 관념을 가리키고 있었다.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그녀는 에메에게 후한 팁을 쥐여 주었는데, 마치 그가 오직 자기만을 위해 거기 있었던 양, 그리고 시골 저택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시중을 들도록 배정된 하인에게 상을 내리는 양했다. 그녀는 팁으로 그치지 않고, 우아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다정하고 치켜세우는 몇 마디를 건넸으니,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미리 넉넉히 마련해 준 밑천이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녀는 그에게, 이 호텔이 나무랄 데 없이 잘 꾸려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노르망디는 장미 정원이며 자기는 세상 어느 나라보다 프랑스를 좋아한다고까지 말했을 것이다. 대공비의 손가락에서 또 하나의 동전이 흘러나왔으니, 이번엔 포도주 담당 급사를 위한 것으로, 그녀는 그를 일부러 불러다가 마치 사열을 마친 장군처럼 흐뭇함을 굳이 표해 보였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보이가 그녀에게 전할 말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 역시 짤막한 인사말과 미소와 팁을 받았으니, 이 모든 것에는 자기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일 뿐임을 그들에게 입증하려는, 격려하는 겸손한 말들이 섞여 있었다. 에메며 포도주 담당 급사며 엘리베이터 보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는 이에게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어 보이지 않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 여겼으므로, 그녀는 이내 하인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그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처신은 고급 호텔에서는 낯선 것이었던지라,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발베크에 눌러사는 어떤 여자, 곧 미천한 출신 때문에, 혹은 직업상의 이유로(어쩌면 샴페인 판매 대리인의 아내였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지체 높은 손님들보다 하인들과 덜 다른 그런 여자를 보고 있다고 여겼다. 나로 말하면, 파르마의 궁전을, 그리고 이 대공비에게 주어졌을, 반은 종교적이고 반은 정치적인 그 조언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마치 언젠가 아랫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환심을 사 두어야만 한다는 듯이 그들을 대했다. 더구나 마치 이미 군림하고 있기라도 한 듯이.

나는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갔으나, 거기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직이 슈만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때로는 사람들이, 우리가 가장 아끼는 이들조차, 우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우울이나 짜증에 흠뻑 젖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결코 다다르지 못할 만큼 사람을 격분케 하는 힘을 지닌 무생물이 하나 있으니, 곧 피아노가 그것이다.

알베르틴은 여러 여자친구를 만나러 며칠씩 떠나 있을 날짜를 내게 적어 두게 했고, 그런 저녁 중 하루에 혹시 내가 그녀를 찾게 될 경우를 대비해 그 친구들의 주소까지 받아 적게 했으니, 그들 중 아주 멀리 사는 이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이 처녀 저 처녀를 거쳐 그녀를 찾으려 하면, 그녀는 점점 더 꽃줄에 칭칭 얽혀 드는 셈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녀의 친구들 가운데 여럿은, 그때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해수욕장에서 내게 쾌락의 순간들을 안겨 주었다. 이 선선한 젊은 동무들이 내게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름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헤아려 보니, 그 한 철 동안 열두 명이 내게 덧없는 은총을 베풀었다. 뒤늦게 또 한 이름이 떠올라, 열셋이 되었다. 그때 나는 거의 아이 같은 잔혹한 즐거움으로 그 숫자를 곱씹었다. 아, 나는 그 모두의 첫 번째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알베르틴을, 열넷째가 되는 그녀를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다시 잡자면, 나는 알베르틴이 앵카르빌에 없을 날들에 그녀를 찾아낼 만한 처녀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두었으나, 속으로는 그런 날들을 차라리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뵙는 데 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어쨌거나 서로 다른 여인들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그 세기가 저마다 다르다. 어느 저녁엔 한 여인을 잠시도 눈앞에서 놓지 못하다가도, 그 뒤로 한두 달 동안은 그 여인이 도무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다음엔, 여기서 자세히 따질 자리는 아니지만, 변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에 따르면 육체를 지나치게 소진한 뒤 잠시의 노쇠 속에서 우리 뇌리를 떠나지 않는 여인의 모습이란, 기껏해야 이마에 입맞춤이나 해 줄까 말까 한 여인의 것이다. 알베르틴으로 말하면, 나는 그녀를 드물게, 오직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드문 저녁에만 만났다. 이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 그녀가 발베크에서 너무 멀리 있어 프랑수아즈가 데리러 갈 수 없으면, 나는 엘리베이터 보이를 에그르빌로, 라 소뉴로, 생프리슈로 보내며,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일을 마쳐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는 내 방으로 들어오되 문은 열어 둔 채였는데, 새벽 다섯 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청소로 이루어진 그 꽤나 고된 ‘일’에는 성실했으면서도, 문 하나 닫는 수고만큼은 도무지 스스로 감당하지 못했으며, 문이 열려 있다고 누가 일러 주면 되돌아가 온 힘을 그러모아 문을 살며시 밀어 붙이는 것이었다. 그를 특징짓던 그 민주적인 자부심, 즉 좀 더 자유로운 직업에서라면 그 종사자가 조금이라도 많은 직종의 사람들은 결코 이르지 못하는 자부심, 변호사며 의사며 문인들이 같은 처지의 이를 두고 그저 ‘형제’라 부르고 마는 그 자부심을 품고서, 그는 아카데미처럼 폐쇄적인 단체에나 쓰이는 용어를 아주 올바르게 갖다 써서, 하루걸러 엘리베이터를 맡는 사환 하나를 두고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 동료를 시켜 제 자리를 대신 서게 하지요.’ 이 자부심도 그가, 스스로 ‘봉급’이라 부르는 것을 늘리려는 속셈으로, 심부름 삯을 받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으니, 바로 그 때문에 프랑수아즈는 그를 못마땅해했다. ‘그래요, 처음 보면야 고해도 안 받고 성체를 내줄 만한 얼굴이지만, 어떤 날은 그 혓바닥이 감옥 문짝처럼 매끄럽다니까요. 그자가 노리는 건 도련님 돈이에요.’ 이것은 그녀가 그토록 자주 욀라리를 집어넣던 부류였고, 또한, 아아 (언젠가 그로 인해 벌어질 온갖 소동을 생각하면), 그녀가 이미 알베르틴을 집어넣던 부류이기도 했다. 내가 그 가난한 친구를 위해 자질구레한 장신구며 소소한 선물을 사 달라고 어머니께 자주 조르는 것을 그녀가 보았기 때문인데, 프랑수아즈는 봉탕 부인이 잡일 하녀 하나만 두고 사는 처지라는 이유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여겼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 보이는, 내가 제복이라 불렀을 것을, 그러나 그 자신은 ‘튜닉’이라 부르던 것을 벗어 던지고, 밀짚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채 몸을 빳빳이 세우고 나타났으니, 그의 어머니가 결코 ‘노동자’풍이나 ‘사환’풍을 흉내 내지 말라고 그에게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책 덕분에 온갖 지식이 노동자에게 열려 있어,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더는 노동자가 아니게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납작모자’와 장갑 한 켤레 덕분에 우아함이 이 엘리베이터 보이에게도 손 닿는 것이 되었으니, 그는 그날 저녁 손님들을 위층으로 올려 보내는 일을 마치고 나자, 가운을 벗어 던진 젊은 외과의처럼, 혹은 군복을 벗은 생루 하사처럼, 자기를 전형적인 도회의 멋쟁이 청년으로 여겼다. 그렇다고 그에게 야심이 없었던 것도, 제 기계를 다루어 두 층 사이에 사람을 멈춰 세우지 않는 재주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의 어휘가 부실했다. 내가 그에게 야심이 있다고 본 것은, 그가 제 위에서 부리는 문지기를 두고 ‘내 문지기’라고, 마치 파리에서 그 사환이라면 ‘개인 저택’이라 불렀을 집을 소유한 사람이 제 하인을 두고 말할 법한 바로 그 말투로 말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보이의 어휘로 말하자면, 하루에도 쉰 번씩 사람들이 ‘리프트’를 찾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그것을 늘 ‘레프트’라고밖에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한 노릇이다. 이 소년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구석이 몇 가지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그렇고말고요!’라든가 ‘아무렴요!’ 하는 말로 끼어들었는데, 그것은 내 말이 하도 뻔해서 누구나 생각해 냈으리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마치 그 화제로 내 주의를 끈 것이 자기라는 듯 그 공을 죄다 제 것으로 돌리는 것 같았다. 온갖 힘을 주어 내지르는 ‘그렇고말고요!’나 ‘아무렴요!’는, 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에 대해서까지 일 분이 멀다 하고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니, 그 버릇이 어찌나 나를 짜증 나게 하던지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대뜸 반대되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와 앞뒤가 맞지 않는데도 내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여전히 꿋꿋하게, 마치 그 말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도 되는 양 ‘그렇고말고요!’ ‘아무렴요!’ 하고 대꾸했다. 또한 나는, 그가 제 직업에 고유한 어떤 낱말들을, 곧이곧대로의 뜻으로 쓰였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옳게 들렸을 그런 낱말들을 오직 비유적인 뜻으로만 갖다 써서 그 말들에 어설픈 재담 같은 분위기를 입히는 버릇도, 이를테면 ‘페달을 밟다’라는 동사 같은 것도 좀처럼 봐주기 어려웠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다녀왔을 때는 결코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걸어서 제시간에 어딘가에 닿으려고 서둘렀을 때면, 자기가 빨리 걸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아, 페달 좀 세게 밟았죠!’ 엘리베이터 보이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볼품없이 생긴 몸매에 잘생긴 구석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그러면서도 누가 그에게 키 크고 늘씬하고 잘생긴 어떤 청년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예, 알아요, 딱 저만 한 키의 친구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에게서 전갈의 답을 받기를 기다리다가,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조바심에 방문을 열었더니, 엔디미온처럼 아름다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이목구비의 사환 하나가, 내가 모르는 어떤 부인에게 전갈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보이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내가 얼마나 애타게 답을 기다렸는지 말하면서, 그가 올라오는 소리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노르망디 호텔의 사환이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 예, 알아요,’ 그가 말했다, ‘거기엔 딱 하나 있죠, 저만 한 덩치의 애요. 얼굴까지 저랑 어찌나 닮았는지 늘 헷갈린다니까요. 누구든 걔가 제 형제인 줄 알걸요.’ 끝으로 그는 언제나 첫 순간부터 상대의 말을 완전히 알아들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으니, 그리하여 무슨 일을 시키기가 무섭게 ‘예, 예, 예, 예, 다 알아들었습니다’ 하고, 한동안 나를 속아 넘길 만큼 야무지고 똑똑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들이란, 우리가 그들을 알아 갈수록, 산성 용액에 담근 금속과도 같아서, 우리는 그들이 차츰 그 좋은 성질을 (때로는 나쁜 성질까지도) 잃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에게 지시를 내리기에 앞서, 나는 그가 문을 열어 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들을까 봐 그 점을 일러 주었고, 그는 내 청을 들어주어 되돌아가서는, 문틈을 좁혀 놓고 왔다. ‘분부대로 하지요. 하지만 이 층엔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걸요.’ 그 즉시 나는 한 사람이, 이어 두 번째 사람이, 다시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이 나를 짜증 나게 한 것은 얼마쯤은 남에게 엿들릴 위험 때문이었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그를 조금도 놀라게 하지 않고 지극히 예사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 그건 옆방 하녀가 제 물건 가지러 가는 걸 겁니다. 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술 창고지기가 열쇠 챙겨 넣는 거죠. 아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든 하셔도 됩니다, 제 동료가 이제 막 근무 서러 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도, 이 사람들이 저마다 지나갈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들이 나를 엿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한 내 거부감을 조금도 덜어 주지 못했으므로, 내가 정식으로 명령을 내리자 그는, ‘자동차’를 갈망하는 이 자전거꾼의 힘에 부치는 일인 문을 닫으러 간 것이 아니라, 문을 조금 더 바투 밀어 붙이러 갔다. ‘이제 아주 조용할 겁니다.’ 어찌나 조용했던지 미국인 부인 하나가 불쑥 들이닥쳤다가 제 방 번호를 잘못 알았다며 사과하고 물러갔다. ‘자네가 이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오게,’ 나는 그에게 말했는데, 그에 앞서 먼저 가서 온 힘을 다해 문을 쾅 닫았더니 (그 소리에 다른 사환 하나가 창문이라도 열려 있나 보려고 들어왔다). ‘이름은 기억해 두게, 알베르틴 시모네 이야. 어차피 봉투에 적혀 있네. 그저 나한테서 온 거라고만 말하면 돼. 기꺼이 올 거야,’ 나는 그를 북돋우고 내 자존심 한 조각이나마 지키려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고말고요!’ ‘천만에, 그녀가 기꺼이 오리라고 볼 이유는 조금도 없네. 베른빌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자네와 함께 오라고 그녀에게 말하게.’ ‘예, 예, 예, 예, 완전히 알겠습니다,’ 그는 그 날카롭고 야무진 어조로 대답했는데, 그 어조는 오래전부터 내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그쳤으니, 그것이 거의 기계적이며 겉으로는 또렷한 척하면서 실은 숱한 어정쩡함과 어리석음을 감추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돌아오나?’ ‘시간이 그리 넉넉지는 않네요,’ 엘리베이터 보이가 말했는데, 그는 대등하게 이어지는 동사들 앞에서 인칭대명사를 되풀이하지 못하게 하는 문법 규칙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 아예 주어를 몽땅 빼 버렸다. ‘가기야 문제없이 가죠. 오늘 낮에 스무 명이 드는 오찬이 있던 탓에 오후엔 외출이 금지됐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마침 제 비번 차례였어요. 그러니 저녁에 잠깐 나갔다 와도 괜찮습니다. 자전거 끌고 가죠. 눈 깜짝할 새 닿을 거예요.’ 그러고 한 시간쯤 뒤에 그가 다시 나타나 말했다. ‘나리께서 기다리셔야 했지만, 아가씨가 저와 함께 왔습니다. 아래층에 있어요.’ ‘오, 정말 고맙네. 문지기가 나 때문에 자네에게 화내지는 않겠나?’ ‘폴 씨 말인가요? 제가 어디 다녀왔는지 알지도 못하는걸요. 문지기 우두머리조차 한마디도 못 합니다.’ 그러나 한번은,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꼭 데리고 와야 하네’ 하고 일렀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알려 왔다. ‘있잖아요, 그녀를 못 찾았어요. 거기 없더라고요. 더는 못 기다렸어요. 호텔에서 잘린 제 동료 꼴 날까 봐 겁이 나서요’ (엘리베이터 보이는 난생처음 들어가는 일자리를 두고도 ‘재입사한다’는 말을 썼으니, 이를테면 ‘우체국에 재입사하고 싶어요’라는 식이었는데, 그 균형을 맞추려는 것인지, 아니면 재앙의 크기를 줄이려고, 그것도 제 밥줄이 걸렸을 때거나, 혹은 희생자가 남일 때 더 은근하고 음험하게 넌지시 이르려고, 그는 말의 앞머리를 잘라 내고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잘렸다던데요.’). 그가 미소 지은 것은 무슨 나쁜 속셈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소심함에서였다. 그는 제 잘못을 농담거리로 만들면 그 크기가 줄어든다고 여겼다. 마찬가지로, 그가 내게 ‘있잖아요, 그녀를 못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해서, 그것이 정말로 내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가 여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내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을 너무나 확신하고 있었고, 더구나 그것을 내게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될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자기를 위협하던 공포를 물리치려고 ‘있잖아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가 나무랄 때 킥킥 웃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성을 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우리를 비웃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화를 낼까 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웃는 이들에게 온갖 연민과 다정함을 보이도록 하자. 영락없이 뇌졸중 발작처럼, 엘리베이터 보이의 불안은 그에게 졸중 든 듯한 홍조뿐 아니라 말투의 변화까지 일으켜, 그의 말이 대뜸 허물없어졌다. 그는 마침내 내게, 알베르틴이 에그르빌에 없으며 아홉 시 전에는 거기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만일 ‘일찌감치’(그가 뜻한 바로는 ‘요행히’) 그녀가 더 일찍 돌아온다면 내 전갈이 그녀에게 전해질 것이며, 어쨌든 그녀는 새벽 한 시 전에는 내게 와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