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의 잔혹한 불신이 뚜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이날 저녁이 아니었다. 아니, 감출 것 없이 말하자면, 그 일은 몇 주가 지나서야 일어났지만, 그것은 코타르가 한 어떤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알베르틴과 그 친구들은 기어이 나를 앵카르빌의 카지노로 끌고 가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만일 내가 앵카르빌에서 마침 고장 난, 고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트램에 발이 묶이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거듭거듭 나를 초대한 베르뒤랭 부인을 만나러 갈 작정이었으므로)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부들이 수리를 마치기를 기다리며 이리저리 거니는 동안, 나는 문득 코타르 박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그는 환자를 보러 앵카르빌에 와 있던 참이었다. 그가 내 편지에 하나도 답하지 않았던 터라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를 하마터면 망설일 뻔했다. 그러나 우정이 저마다의 사람에게서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과 같은 정해진 행동 규범을 지키도록 자라지 못한 코타르는, 그 존재를 부정하게 될 만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선의로 가득 차 있었으니, 그것들을 드러낼 기회를 얻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는 사과하며, 과연 내 편지들을 받았고, 나를 몹시 만나고 싶어 하는 베르뒤랭 부부에게 내가 있는 곳을 알렸다면서, 어서 그들을 찾아가 보라고 나를 채근했다. 그는 심지어 당장 나를 그들에게 데려다주겠다고 나섰으니, 자기도 저녁을 들러 거기로 돌아가려고 그 작은 지방 열차를 기다리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렸고 그의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얼마간 여유가 있었으므로 (여전히 상당한 지연이 있을 것이 뻔했다), 나는 그를 그 작은 카지노로 데려갔으니, 그곳은 처음 도착하던 날 저녁 내게 그토록 음침하게 느껴졌던 곳 가운데 하나로, 이제는 남자 상대가 없어 저희끼리 춤을 추는 처녀들의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앙드레가 마룻바닥을 미끄러지듯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내 코타르와 함께 베르뒤랭가로 떠날 참이었으나, 알베르틴과 함께 있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실은 방금 나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대번에 장밋빛 살결을, 방금 그 웃음이 빠져나온 향기로운 두 문을 떠올리게 했으며, 또한 제라늄 향기만큼이나 강렬하고 관능적이며 무언가를 드러내는 그 웃음은, 그 살결의, 자극적이고 은밀한 미세한 입자들을 함께 실어 나르는 듯했다.
내가 모르는 처녀 하나가 피아노 앞에 앉았고, 앙드레는 알베르틴에게 함께 왈츠를 추자고 청했다. 이 작은 카지노에 이 처녀들과 함께 남으리라는 생각에 흐뭇해진 나는, 코타르에게 그들이 얼마나 춤을 잘 맞추는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다운 직업적 관점을 취하고서, 또 내가 그들과 악수하는 것을 분명 보았을 텐데도 그들이 내 친구라는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그래요, 하지만 부모가 딸들에게 저런 버릇을 들이도록 내버려 두다니 어지간히 경솔하군요. 나라면 결코 내 딸을 여기 오게 두지 않겠소. 그런데 저 애들 얼굴은 반반한가요? 나는 얼굴이 안 보이는데. 자, 저것 좀 보시오,’ 그는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천천히 왈츠를 추는 알베르틴과 앙드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안경을 두고 와서 잘은 안 보이지만, 저 애들은 확실히 잔뜩 달아올라 있소. 여자가 가장 큰 흥분을 얻는 곳이 젖가슴이라는 건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요. 그런데 저 애들 젖가슴은, 보다시피, 완전히 맞닿아 있단 말이오.’ 과연 앙드레와 알베르틴의 젖가슴 사이의 맞닿음은 끊긴 적이 없었다. 그들이 코타르의 말을 들었는지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왈츠를 이어 가면서 그 맞닿음을 슬며시 풀었다. 그 순간 앙드레가 알베르틴에게 무어라 말했고, 알베르틴은 웃었으니, 앞서 내가 들었던 그 깊고 파고드는 듯한 바로 그 웃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 웃음이 내게 실어다 준 것은 오직 고통의 느낌뿐이었다. 알베르틴은 그 웃음으로 어떤 그윽하고 은밀한 전율을 드러내며, 앙드레에게 그것을 함께 나누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초대받지 못한 무도회의 첫 가락이나 마지막 가락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코타르와 함께 그곳을 나섰고, 그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방금 목격한 장면은 이따금씩만 떠올렸다. 그렇다고 코타르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실은 그 순간 그의 이야기는 신랄해져 있었으니, 우리가 방금 뒤 불봉 박사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발베크 만 건너편에서 얼마간 지내려고 내려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코타르는 휴가 중에는 직업상의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늘 떠벌리는 버릇이 있었으면서도, 이 해안 일대에 상류층 환자를 좀 확보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뒤 불봉이 거기 있음으로 하여 그 바람은 실망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물론 그 발베크 의사가 코타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무엇이든 다 아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의사여서, 피부가 조금만 스치거나 헐어도 그에게 말했다 하면 그는 대번에 복잡한 처방으로, 당신을 낫게 해 줄 연고며 로션이며 도찰제를 지어 주는 것이었다. 마리 지네스트가 그 정겨운 말씨로 늘 말하던 대로, 그는 베인 데며 헌 데를 ‘주술로 낫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대단한 명의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기야 그는 코타르를 다소 성가시게 한 적이 있었다. 코타르로 말하면, 이제 자기 강좌를 치료학 강좌로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난 터라, 독성 작용을 전문으로 파기 시작한 참이었다. 의학에서 위태로운 혁신인 이것은 약방의 상표를 갈아 붙일 구실을 주었으니, 거기서는 어떤 조제약이든 그 대용품들과는 달리 결코 독성이 없으며 도리어 해독 작용을 한다고 내세워졌다. 그것이 유행하는 문구였다. 기껏해야 그 아래, 읽기 힘든 글씨로, 지난 유행의 희미한 자취처럼, 그 약이 정성껏 소독되었다는 다짐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독성 작용은 환자를 안심시키는 데도 쓸모가 있어서, 환자는 제 마비가 한낱 독성으로 인한 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발베크에 며칠 지내러 온, 눈이 몹시 부어오른 어느 대공이 코타르를 불렀는데, 코타르는 백 프랑짜리 지폐 한 뭉치를 받는 대가로 (교수님께서는 그보다 적은 돈으로는 아무도 봐주지 않으셨다) 그 염증을 독성 탓으로 돌리고 해독 치료를 처방했다. 부기가 가라앉지 않자 대공은 발베크의 그 일반의에게로 되돌아갔고, 그는 오 분 만에 티끌 하나를 빼냈다. 이튿날, 부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신경 질환의 어느 이름난 전문의는 더 위험한 경쟁자였다. 그는 불그레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신경이 망가진 사람들과 늘 어울려 지내면서도 아주 좋은 건강을 누리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요, 또 한편으로는 ‘안녕하십니까’와 ‘안녕히 가십시오’의 정겨운 유쾌함으로 제 환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으니, 그러면서도 훗날 그 환자들을 구속복에 잡아매는 데 제 억센 팔뚝의 힘을 빌려주기를 서슴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모임에서 당신이 그에게 정치 이야기든 문학 이야기든 건네면, 그는 마치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고 묻는 듯이 다정하게 귀 기울여 듣기만 할 뿐, 마치 그것이 진찰이라도 요하는 문제인 양 대뜸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그 재능이야 어떻든, 전문의였다. 그리하여 코타르의 분노는 온통 뒤 불봉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이내 베르뒤랭가의 그 의사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머지않아 그들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한 뒤 발베크로 돌아왔다.
알베르틴과 앙드레에 대한 그의 말이 내게 끼친 해악은 지독했으나, 그 가장 나쁜 효과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작용하기 시작하는 그런 종류의 중독이 그러하듯, 내게 곧바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 보이가 그녀를 찾으러 갔던 그 이튿날 밤, 알베르틴은 그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확실히,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는 개인적인 매력보다 ‘아뇨, 오늘 저녁엔 시간이 없어요’ 같은 말이 더 흔하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우리는 그 말을 거의 흘려듣는다. 저녁 내내 우리는 흥겹고, 어떤 영상도 우리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몇 시간 동안 그 영상은 필요한 용액 속에 담긴 채 있다.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그 감광판이 현상되어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삶이 더 이상 어제만 해도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내던졌을 그런 삶이 아님을 깨닫게 되니, 설령 우리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이제는 이별을 생각하는 것만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 한 시(엘리베이터 보이가 못 박은 한계)가 아니라 세 시가 되자,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가 올 가망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 그녀가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내게 온전하고 상쾌한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이 밤은 그저 내가 그녀를 보지 못한 다른 모든 밤과 같은 하룻밤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출발점으로 삼은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자, 내가 순순히 받아들인 그 공백 위로 아침에, 혹은 다른 어느 날 그녀를 보게 되리라는 생각이 윤곽을 드러내며 즐거운 것이 되었다. 때로는 이렇게 기다리는 밤에 우리의 괴로움이 우리가 복용한 어떤 약 때문일 때가 있다. 괴로워하는 이는 제 증상을 잘못 해석하여, 자기가 나타나지 않는 여인 때문에 애를 태운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 사랑은, 어떤 신경 질환이 그러하듯, 불편한 상태에 대한 부정확한 설명에서 생겨난다. 그 설명은 바로잡아 봐야 소용없으니, 적어도 사랑에 관한 한 그러하며, 사랑이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언제나 어김없이 오류에 빠져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튿날, 알베르틴이 에프르빌에 이제 막 돌아온 참이라 내 쪽지를 제때 받지 못했으며, 괜찮다면 그날 저녁에 나를 보러 오겠다고 편지를 써 보냈을 때, 그 편지의 글귀 뒤에서, 언젠가 전화로 내게 건넨 말들 뒤에서 그러했듯, 나는 그녀가 나보다 더 좋아한 어떤 즐거움들, 어떤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다시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알고 싶다는 괴로운 갈망에, 우리가 늘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그 잠재된 사랑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흔들렸다. 한순간 나는 그것이 나를 알베르틴에게 붙들어 매려는 것이라고 거의 믿을 뻔했으나, 그것은 제자리에서 고동치는 데 그쳤고, 그 마지막 여운은 기계가 미처 돌아가기도 전에 사그라들었다.
발베크에 처음 머무는 동안 나는 알베르틴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 점에서는 어쩌면 앙드레도 마찬가지로 실패했을 것이다. 나는 그 성격을 경박한 것으로 치부했으나, 우리가 함께 매달려 간청하면 그녀를 우리 곁에 붙잡아두어 정원 모임이며 당나귀 타기며 소풍을 단념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 발베크에 두 번째로 머무는 동안 나는 이 경박함이 겉치레에 지나지 않으며, 정원 모임이란 것도 꾸며낸 구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낱 눈가림일 뿐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음의 사건에서 그녀는 갖가지 빛깔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내가 말하는 사건이란, 결코 투명하지 않은 유리의 내 쪽에서 내가 본 그대로의 사건이며, 그 유리 저편에 어떤 실상이 있었는지를 가려낼 방도가 내게는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알베르틴은 내게 더없이 열렬한 애정의 맹세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가 시각을 살핀 것은, 앵프르빌에서 오후 다섯 시면 언제나 집에 있다는 어떤 부인을 찾아가 방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의심에 시달리는 데다 몸까지 영 좋지 않던 나는 알베르틴에게 나와 함께 있어달라고 청했고, 애원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게다가 그녀는 고작 오 분밖에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손님 대접에는 도무지 인색하고, 몹시 까다로우며, 알베르틴의 말로는 진저리 나는 사람인 그 부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방문 한 번쯤은 얼마든지 건너뛸 수 있잖아.」 「안 돼요, 이모는 늘 무엇보다 예의가 제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난 네가 무례하게 구는 걸 여러 번 봤는데.」 「그건 경우가 달라요. 그 부인은 내게 화를 내고 이모한테 내 험담을 늘어놓을 거예요. 안 그래도 난 이미 그분 눈 밖에 나 있는걸요. 그분은 내가 찾아뵙기를 바라고 계세요.」 「하지만 그 부인이 날마다 집에 있다면?」 여기서 알베르틴은 꼬리를 잡혔다고 느끼자 논리를 바꾸었다. 「그래요, 날마다 집에 있죠. 하지만 오늘은 거기서 다른 여자애들 몇을 만나기로 약속을 해뒀어요. 그래야 덜 지루하니까요.」 「그러니까 알베르틴, 너는 나보다 그 부인과 네 친구들이 더 좋다는 거구나, 너 스스로도 지루하다고 인정하는 그 방문을 거르느니, 아프고 비참한 나를 여기 혼자 내버려두는 편을 택하는 걸 보면 말이야.」 「지루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난 그애들을 위해서 가는 거예요. 내 마차로 그애들을 집에 데려다줄 거고요. 안 그러면 그애들은 돌아갈 방법이 없거든요.」 나는 앵프르빌에서 밤 열 시까지는 기차가 있다는 것을 알베르틴에게 짚어주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우리가 저녁 식사에 붙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분은 아주 손님 대접이 후하거든요.」 「그럼 저녁은 안 먹으면 되잖아.」 「그랬다간 이모만 화나게 할 뿐이에요.」 「그게 아니라도, 그분과 저녁을 먹고 열 시 기차를 타면 되잖아.」 「그건 시간이 좀 빠듯해요.」 「그럼 나는 시내에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기차로 돌아오는 건 영영 못 하겠구나. 하지만 들어봐, 알베르틴. 우리 아주 간단한 걸 하자, 바깥 공기를 좀 쐬면 몸에 좋을 것 같아. 네가 그 부인을 포기할 수 없다니, 내가 너와 함께 앵프르빌까지 가겠어. 놀라지 마, 엘리자베트 탑까지는(그 부인의 별장 말이다) 가지 않을 테니까, 그 부인도 네 친구들도 나는 보지 않을 거야.」 알베르틴은 심한 일격이라도 맞은 듯 흠칫했다. 한순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해수욕이 자기 몸에 조금도 이롭지 않다고 둘러댔다. 「내가 너와 같이 가는 게 싫은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당신과 함께 나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는 걸 잘 알잖아요.」 돌연 작전이 바뀌었다. 「어차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는 거라면」 하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반대쪽으로 가는 건 어때요, 같이 저녁을 먹어도 좋고요. 정말 근사할 거예요. 사실 발베크의 그쪽이 훨씬 더 예쁘거든요. 난 앵프르빌이며 그 시금치밭 같은 자그마한 촌동네들이 슬슬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네가 찾아가지 않으면 네 이모의 그 친구분이 언짢아하실 텐데.」 「그럼 언짢아하시라죠, 뭐.」 「아니야, 남을 언짢게 하는 건 옳지 않아.」 「하지만 그분은 내가 없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할 거예요,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오니까요. 내일 가도 되고, 모레 가도 되고, 다음 주에, 그다음 주에 가도 되고, 아무 차이 없어요.」 「그럼 네 친구들은?」 「아, 그애들도 나를 여러 번 바람맞혔는걸요. 이제 내 차례예요.」 「하지만 네가 말하는 그쪽에서는 아홉 시가 지나면 돌아오는 기차가 없어.」 「그게 뭐 어때서요? 아홉 시면 아주 충분해요. 게다가 돌아올 걱정 따위는 할 필요도 없어요. 짐수레든 자전거든 언제든 구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엔 우리한테 두 다리가 있잖아요.」 「언제든 구할 수 있다니, 알베르틴, 참 말도 잘하는구나! 마을들이 서로 잇닿아 있는 앵프르빌 쪽이라면야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반대쪽은 사정이 아주 달라.」 「그쪽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을 무사히 데려다드리겠다고 약속할게요.」 나는 알베르틴이 나를 위해, 내게는 한사코 말하려 들지 않는 미리 짜둔 어떤 계획을 단념하고 있으며, 나만큼이나 불행해질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굳이 따라나서겠다고 우기는 통에 애초에 하려던 일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자, 그녀는 그것을 아예 단념해버렸다. 그녀는 그 손실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여러 일을 한꺼번에 벌여놓은 모든 여자가 그렇듯, 그녀에게는 결코 어긋나는 법이 없는 한 가지 수단이 있었으니, 곧 의심과 질투였다. 물론 그녀가 그것들을 불러일으키려 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러나 연인이란 워낙 의심이 많아서 거짓의 낌새를 대번에 맡아낸다. 그리하여 알베르틴 역시 남들보다 나을 것이 없어서, 자기 경험이 상대의 질투 덕분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약속을 어기고 난 뒤에도 사람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것만은 언제나 확신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그녀가 저버리는 그 낯선 이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그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될 것이며(알베르틴은 그것이 이유임을 알지 못했지만), 괴로움을 오래 끌지 않으려고 제 발로 그녀에게 되돌아올 것이었으니, 내가 그랬을 법한 것처럼. 그러나 나는 남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도,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싶지도, 갖가지 형태로 끝없이 이어지는 감시와 캐묻기라는 그 끔찍한 길에 들어서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야, 알베르틴, 나는 네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 않아. 앵프르빌의 그 부인에게 가려무나, 아니 실은 네가 정말로 만나려는 그 사람에게 가려무나, 내게는 다 마찬가지니까. 내가 너와 함께 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네가 그걸 원치 않기 때문이야. 나와 함께 하려는 나들이는 네가 하려던 그 나들이가 아니야, 네가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채 적어도 다섯 번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한 것이 그 증거지.」 가엾은 알베르틴은 자기가 알아채지 못한 그 모순들이 실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두려워했다. 자기가 내게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그녀가 말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을 수도 있죠. 바닷바람을 쐬면 나는 아주 정신이 없어져요. 늘 이것저것 이름을 엉뚱하게 부른다니까요.」 그리고 (이제 그녀가 나를 믿게 하는 데 다정한 다짐 따위는 그리 많이 필요치 않으리라는 것을 내게 증명해준 사실인데) 내가 어렴풋이 상상만 하던 것을 이렇게 시인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좋아요, 그럼 됐어요, 난 갈게요.」 그녀는 비장한 어조로 말했는데, 이제 내가 저녁을 나와 함께 보내지 않을 구실을 마련해준 마당이라, 그 다른 사람에게 늦는 것은 아닌지 시각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신 너무해요. 당신과 길고 즐거운 저녁을 보내려고 내 계획을 전부 바꿨는데, 정작 그걸 마다하는 건 당신이면서 나더러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세우다니. 당신이 이렇게 잔인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바다가 내 무덤이 될 거예요.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어요.」 (이 말에 내 심장은 덜컥 뛰었다, 비록 그녀가 이튿날 다시 오리라는 것을, 실제로 그랬듯이, 나는 확신하고 있었지만.) 「난 물에 빠져 죽을 거예요, 바닷물에 몸을 던지겠어요.」 「사포처럼 말이지.」 「또 그러네요, 또 나를 모욕하는군요. 당신은 내가 하는 말뿐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까지 의심하는군요.」 「하지만 얘야, 나는 아무 뜻도 없었어, 맹세하마, 사포가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건 너도 알잖니.」 「그래요, 그래, 당신은 나를 조금도 믿지 않아요.」 시계를 보니 정각 이십 분 전이었다. 그녀는 약속에 늦을까 봐 겁이 났고, 가장 짧은 작별의 형식을 택하고서(그런데 마침 그 다른 사람이 그때는 시간이 없었는지, 이튿날 그녀는 다시 나를 찾아와 이 작별에 대해 사과했다) 방에서 뛰쳐나가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어조로 「영영 안녕」 하고 외쳤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가슴이 찢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자기가 무엇을 하려는지 나보다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그녀를 대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엄격하면서도 동시에 더 너그러웠던 그녀는,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나를 떠나버린 뒤에 내가 그녀를 다시 보기를 마다할까 봐 두려워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에게 정이 들어 있었다고 믿는다, 그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질투했을 만큼.
며칠 뒤, 발베크의 카지노 무도장에 우리가 있을 때, 블로크의 누이와 사촌이 들어왔다. 둘 다 제법 예쁜 처녀로 자라 있었으나, 나는 함께 있던 여자 친구들 때문에 그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삼갔으니, 손아래인 사촌 쪽이, 내가 처음 발베크에 왔을 때 알게 된 그 여배우와 동거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소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추문을 넌지시 속삭이자 앙드레가 내게 말했다. 「어머! 그런 것에 관해서라면 나도 알베르틴과 똑같아요, 우리 둘 다 그런 것만큼 질색하는 게 없거든요.」 알베르틴으로 말하자면, 소파에 앉아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평판 나쁜 두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자세를 바꾸기 전, 블로크 양과 그 사촌이 나타난 그 순간에, 내 친구의 두 눈이 그 돌연한, 골똘한 주의로 번뜩였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 주의는 이따금 이 경박한 처녀의 얼굴에 진지한, 아니 근엄하다고까지 할 기색을 서리게 하고는 그 뒤로 그녀를 생각에 잠기게 하곤 했다. 그러나 알베르틴은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으니, 그럼에도 그 눈길은 유난히 한곳에 붙박인 채 골똘한 것이었다. 블로크 양과 그 사촌이 요란하고 천박하게 웃고 떠들다가 마침내 무도장을 떠나자, 나는 알베르틴에게 그 자그마한 금발 처녀(여배우와 그토록 가까이 지내던 처녀)가 전날 꽃 행렬에서 상을 탄 아이가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모르겠어요.」 알베르틴이 말했다, 「그중에 금발인 애가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애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어요. 그중에 금발이 있냐고요?」 그녀는 짐짓 무심한 척 묻는 태도로 세 여자 친구에게 물었다. 알베르틴이 날마다 바닷가 산책로에서 스쳐 지나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치고는, 이런 무지가 진심이라기에는 너무 깊어 보였다. 「그애들도 우리를 딱히 쳐다보는 것 같지는 않던데.」 하고 나는 알베르틴에게 말했으니, 아마도 (분명히 의식해서 품은 것은 아니었으나 알베르틴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가정 아래) 그녀가 그 처녀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대체로 아무리 타락한 여자라 해도 모르는 처녀들에게 관심을 두는 일은 흔치 않다는 것을 짚어줌으로써 그녀를 어떤 미련에서 놓여나게 해주려는 뜻이었다. 「그애들이 우리를 안 쳐다봤다고요!」 알베르틴이 놀란 듯 대꾸했다. 「아니, 그애들은 내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는걸요.」 「하지만 네가 그걸 알 리가 없잖아.」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그애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저건 뭐죠?」 그녀는 이렇게 대꾸하며, 우리 앞 벽에 붙박여 있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커다란 거울을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근심스럽고 무언가에 사로잡힌 눈길을 그 거울에서 한순간도 떼지 않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코타르가 앵카르빌의 그 자그마한 카지노까지 나를 따라 들어왔던 그날 이후로, 비록 그가 내비친 견해에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알베르틴은 내게 달라 보였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녀가 내 눈에 달라진 만큼이나 나 자신도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호의도 품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면전에서도, 그리고 내 말이 그녀에게 옮겨질 만한 자리에서라면 그녀가 없는 데서도, 나는 더없이 모욕적인 말로 그녀를 헐뜯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좀 더 잔잔해지는 사이사이의 시간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알베르틴과 앙드레가 둘 다 엘스티르의 집에 초대를 받아 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필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방학 맞은 여학생들처럼 행실 나쁜 젊은 여자들의 몸짓을 흉내 내며 즐기려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처녀답지 못한 쾌락을 맛보려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으니, 그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은 미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알베르틴이 잔뜩 기대하던 즐거움을 앗아가려고, 내 뜻을 미리 알리지도 않은 채 엘스티르의 화실에 불쑥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앙드레밖에 없었다. 알베르틴은 이모가 함께 가주기로 한 다른 날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코타르가 틀렸던 것이 분명하다고 혼잣말을 했다. 친구도 없이 앙드레 혼자 거기 와 있는 데서 받은 그 흐뭇한 인상은 내게 오래 남아, 알베르틴에게 한결 너그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러나 이 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병치레에 시달리다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다시 무너지고 마는 허약한 사람들의 성한 한때만큼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알베르틴은 앙드레를, 아주 지나친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아주 결백하다고는 할 수 없는 행동으로 부추기곤 했다. 이 의심에 괴로워하던 나는 끝내 가까스로 그것을 물리쳤다. 그것에서 나으려는가 싶으면 곧바로 그것은 다른 형태로 되살아났다. 방금 나는, 앙드레가 그녀에게 자연스레 몸에 밴 그 우아한 몸짓 가운데 하나로 알베르틴의 어깨에 어리광 부리듯 머리를 기대고, 눈을 반쯤 감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입 맞추는 것을 보았다. 아니면 그 둘이 눈짓을 주고받았다거나, 그들이 함께 물에 들어가려고 내려가는 것을 본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이런 것들은 대다수 사람이 하루 종일 아무 탈 없이, 기분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빨아들이며 주위 대기에 늘 떠다니는 자잘한 티끌 같은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쉬운 기질에게는 병적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괴로움을 낳는 법이다. 때로는 내가 알베르틴을 다시 보지 않았어도, 누가 그녀에 관해 내게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당시에는 결백해 보였던 어떤 자세로 지젤과 함께 있던 그녀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문득 번뜩이곤 했다.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내가 가까스로 되찾은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으니, 나는 더 이상 바깥에 나가 위험한 병균을 들이마실 필요도 없었다, 코타르라면 말했을 법하듯, 나는 내 독소를 스스로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스완이 오데트에게 품었던 사랑에 관해, 스완이 평생토록 어떻게 속아 넘어갔는지에 관해 들었던 온갖 이야기를 떠올렸다. 실로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알베르틴의 성격 전체를 차츰차츰 지어내게 하고,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그 삶의 매 순간에 괴로운 해석을 갖다 붙이게 한 그 가설은, 다름 아니라 내가 전해 들은 대로의 스완 부인의 성격에 대한 기억, 뿌리 깊이 박힌 관념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훗날 내 상상이, 알베르틴이 착한 처녀이기는커녕 개과천선한 창부와 똑같은 부도덕함, 똑같은 기만의 재주를 지녔을지도 모른다고 넘겨짚는 쪽으로 기울도록 부추겼고, 나는 만일 내가 정말로 그녀의 연인이었다면 그 경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온갖 고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