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헛되이 루생빌의 성탑에 애원했으니, 그 마을의 딸 하나를 나에게 보내 마중 나오게 해 달라고 빌었다. 콩브레의 우리 집 꼭대기 층, 붓꽃 뿌리 냄새가 배어 있던 작은 방에서 반쯤 열린 창의 네모난 틀 안에 오직 그 성탑만이 담긴 것을 내다보며,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자의, 또는 자멸의 벼랑 끝에서 망설이는 절망한 가련한 이의 영웅적 망설임으로, 감정에 겨워 아뜩해진 채, 내 경험의 한계를 넘어, 나를 죽음으로까지 이끌지도 모른다고 여기던 미답의 길을 더듬어 나갈 때, 내 가장 이른 욕망을 털어놓았던 유일한 벗으로서 그 성탑에 호소했었으니, 마침내 격정이 스스로를 소진하고, 창을 넘어 기어들어 온 꽃핀 까치밥나무 가지가 내 온몸을 뒤덮은 채 나를 부들부들 떨게 남겨 두기까지 그러했다. 나는 이제 헛되이 그 성탑을 불렀다. 헛되이 온 풍경을 내 시야 안에 눌러 담아, 거기서 여인 하나를 뽑아내려는 남김없는 응시로 그것을 훑어 냈다. 나는 혼자서 생탕드레데샹의 현관까지 갈 수는 있었으나, 할아버지와 함께였다면, 그래서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는 처지였다면 틀림없이 마주쳤을 그 처녀를, 거기서 결코 만나지 못했다. 나는 시간의 제한도 없이, 그 뒤에서 그녀가 나타나 나를 향해 달려 나오게 마련인 저 먼 나무의 밑동에 눈을 붙박곤 했으나, 아무리 뚫어져라 살펴도 지평선은 여전히 텅 빈 채였다. 밤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 아무 희망도 없이, 마치 그 메마른 땅, 그 케케묵고 닳아빠진 땅이 감춰 두었을 피조물들을 억지로라도 솟아나게 하려는 듯, 나는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제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침울한 분노로, 루생빌 숲의 나무들을 향해 매질을 퍼부었으니, 그 나무들에서는, 파노라마의 팽팽한 캔버스 배경에 그려진 나무들이나 다름없이, 살아 있는 피조물이라고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토록 갈망하던 여인을 품에 안아 보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차마 체념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결국 콩브레 쪽으로 발길을 되돌려, 그녀가 내 앞길에 나타날 가망이 순간순간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나타났던들,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까? 그녀가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았으리라 나는 느꼈으니, 산책 중에 내게 찾아왔으나 결코 이루어지지 않은 그 욕망들을,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도 함께 품는 것으로도, 나 자신을 떠나 어떤 존재를 지닌 것으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이제 순전히 주관적이고 무력하며 환영에 지나지 않는, 내 기질의 산물로만 보였다. 그것들은 이제 자연과도, 실재하는 사물들의 세계와도 아무런 연관이 없어졌으며, 그 세계는 이제부터 온갖 매력과 의미를 잃고, 마치 소설의 줄거리가 여행자가 심심풀이로 그 소설을 읽고 있는 기차 객실 안에, 그 좌석 위에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삶에는 순전히 관습적인 틀 이상의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몇 해 뒤 몽주뱅에서 내가 받은 또 다른 인상, 그 당시에는 아무 의미도 없던 그 인상에서, 훗날 오랜 시간이 지나, '사디즘'이라 불리는 인간 정념의 그 잔혹한 면에 대한 내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전혀 다른 이유로, 이 인상의 기억이 내 삶에서 중요한 몫을 하게 됨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몹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때였다. 하루 종일 어딘가로 떠나야 했던 부모님은 내게 마음껏 늦게까지 밖에 있어도 좋다고 일러 두었고, 나는 몽주뱅 못까지 가서 오두막 기와지붕이 다시 물에 비친 모습을 즐겨 바라보다가, 집 뒤로 가파르게 솟은 비탈의 덤불 사이 그늘에, 몇 해 전 어느 날 부모님이 뱅퇴유 씨를 찾아뵈러 갔을 때 내가 부모님을 기다리던 바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거의 어두워져 있었고, 나는 일어나 자리를 뜨려 했으나, 그때 뱅퇴유 양이 (적어도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고 여겼는데, 콩브레에서 그녀를 자주 본 적이 없거니와, 본 것도 그녀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뿐이었고, 이제 그녀는 어엿한 처녀로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시 막 들어온 듯, 내 앞에, 나에게서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을 맞이하던, 그리고 이제 그녀가 자신의 작은 거실로 꾸며 놓은 그 방 안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창은 반쯤 열려 있었고,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볼 수 없는 채로 그녀의 온갖 몸짓을 지켜볼 수 있었으나, 만일 내가 자리를 떴다면 덤불 사이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녀는 그 소리를 듣고 내가 그녀를 엿보려고 거기 숨어 있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터라 깊은 상복 차림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보러 가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자신의 인정에 어떤 한계를 그어 주던 단 하나의 미덕, 곧 조심성 때문에 가기를 꺼렸으나, 마음속 깊이 그 처녀를 가엾이 여겼다. 어머니는 뱅퇴유 씨의 슬픈 만년을, 그가 딸에게 어머니 노릇과 유모 노릇을 함께 해야 했던 처지에, 그리고 훗날 딸이 그에게 안긴 고통에 온통 자신을 바쳤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끔찍한 마지막 몇 해 동안 노인의 얼굴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던 고통스러운 표정을 눈에 그릴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의 후기 작품 전체를, 그러니까 우리가 어느 늙은 음악 선생, 은퇴한 시골 오르간 연주자의 가엾고 소소한 곡들이라 여기며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으리라 짐작했으되, 그렇다고 얕보지는 않았던 것은 그것이 그에게는 그토록 큰 가치를 지녔고 딸에게 그것을 바치기 전까지 그 삶의 으뜸가는 동기였기 때문인데, 그 곡들을 정서(淨書)로 옮겨 적는 일을 그가 끝내 단념해 버렸음을 알고 있었다. 그 곡들은 대개 악보로 적히지도 않은 채 오직 그의 기억 속에만 담겨 있었고, 나머지는 낱장의 종이에 갈겨쓴 데다 도무지 알아볼 수도 없었으니, 이제 영영 알려지지 못한 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또, 뱅퇴유 씨가 내몰렸던 그 또 다른, 한층 더 잔인한 단념을, 곧 딸이 정직하고 떳떳한 앞날과 함께 행복하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리라는 소망을 접어야 했던 일을 생각했다. 우리 고모들의 늙은 음악 선생에게 닥친 이 참담하고 가혹한 온갖 불행을 떠올리면 어머니는 참으로 진실한 슬픔에 젖었고, 이제 뱅퇴유 양이 느끼고 있을 그 또 다른 슬픔, 쓰라림의 결이 그토록 다른, 아버지를 사실상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회한이 배어 있을 그 슬픔을 생각하며 몸서리쳤다. "가엾은 뱅퇴유 씨," 하고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그분은 딸을 위해 사셨고, 이제 딸을 위해 돌아가셨는데,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하셨어요. 이제라도 그 보답을 받으실까, 받으신다면 어떤 형태로 받으실까. 그건 오직 딸에게서만 올 수 있을 텐데."
뱅퇴유 양의 거실 저 안쪽, 벽난로 선반 위에는 아버지의 작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는데, 바깥 길에서 마차 바퀴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그녀는 성큼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들더니, 소파에 몸을 던지고는 작은 탁자를 곁으로 바싹 끌어당겨 그 위에 사진을 올려놓았으니, 이는 오래전 뱅퇴유 씨가 우리 부모님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던 악보를 자기 곁에 '올려놓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고서 그녀의 친구가 들어왔다. 뱅퇴유 양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로 친구를 맞으며, '자리를 내주려는' 듯 소파 한쪽으로 몸을 당겼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마자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친구에게 어떤 특정한 자세를, 성가시다 여겨질 만큼 노골적으로 넌지시 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친구가 아마도 자기에게서 좀 떨어져 의자에 앉기를 더 바라리라 생각했고, 자신이 경솔했다고 느꼈다. 예민한 마음이 겁을 집어먹었다. 그녀는 다시 소파 전체에 길게 몸을 뻗고는 눈을 감고 하품을 하기 시작했으니, 자기가 거기 드러누운 것은 오직 잠이 오기 때문임을, 그것뿐임을 내비치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친구를 다루는 그 무람없고 을러대는 듯한 스스럼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특징이던 비굴하고 삼가는 듯한 접근을, 그 갑작스러운 망설임과 자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일어나 창가로 가더니, 덧문을 닫으려다 잘 되지 않는 척했다.
"그냥 열어 둬," 하고 친구가 말했다. "난 더워."
"하지만 그건 너무 끔찍한걸! 사람들이 우릴 볼 텐데," 하고 뱅퇴유 양이 대꾸했다. 그러고서 그녀는 아마도, 자기가 이 말을 한 것은 그저 어떤 다른 말로 대꾸하게끔 부추기려는 것뿐이라고 친구가 여기리라 짐작했을 것이니, 그녀는 그 다른 말이 실은 듣고 싶으면서도, 조심성에서 친구가 먼저 입을 열게 두려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충분히 또렷이 볼 수는 없었으나, 그녀가 서둘러 이렇게 말을 이었을 때, 언젠가 우리 할머니가 그토록 사랑스럽다 여겼던 바로 그 표정이 그녀 얼굴에 떠올랐으리라 확신한다. "'우릴 본다'고 한 건, 물론 우리가 책 읽는 걸 본다는 뜻이지. 네가 하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누군가 넘겨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끔찍하잖아."
타고난 관대함,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예의로, 그녀는 자기 욕망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느꼈던 그 계산된 말들을 입 밖에 내기를 삼갔다. 그리고 그녀 존재의 깊은 밑바닥에서는, 수줍고 애원하는 처녀 하나가 저 다른 요소 앞에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서, 그 상처투성이지만 의기양양한 노병에게 간청하여 그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나, 그야말로 지독하게도 그럴싸하겠네, 이 밤중에,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 동네에서, 누가 우릴 쳐다보고 있다니!" 하고 친구가 쓰디쓴 비아냥으로 말했다. "그래서 설령 그런들 어때?" 하고 그녀는 말을 이으며, 짓궂으면서도 다정한 눈짓으로 이 말들에 주석을 달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으니, 그녀는 이 말들을, 뱅퇴유 양이 들으면 좋아하리라는 것을 알고서 착한 마음으로, 미리 외워 둔 학과처럼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령 그런들 어때? 우릴 봐 주면 오히려 더 좋지."
뱅퇴유 양은 몸을 떨며 일어섰다. 예민하고 소심한 그녀의 마음은, 달아오른 감각이 아우성치는 그 장면을 만들어 내려면 자기 입에서 어떤 말이 절로 흘러나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참된 성격이라는 한계를 넘어 될 수 있는 한 멀리 팔을 뻗어, 남들에게 그렇게 여겨지기를 그토록 갈망하던 방탕한 젊은 여자에게 어울릴 말을 찾으려 했으나, 그런 여자라면 진심으로 내뱉었을 법한 말들이 정작 자기 입에서는 거짓처럼 울렸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에게 겨우 허락한 몇 마디는 억지 어린 어조로 나왔으니, 몸에 밴 소심함이 자유롭고 대담하게 말하려는 성향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며, 그러면서 그녀는 자꾸만 스스로 말을 끊고서 이렇게 물었다. "너 정말 춥지 않아? 너무 덥진 않고? 혼자 앉아 책 읽고 싶은 건 아니지…
"아씨의 생각이 오늘 저녁엔 좀 '뜨거운' 것 같은데," 하고 그녀는 말을 맺었으니, 필시 언젠가 친구가 쓰던 말을 그대로 되뇐 것이었다.
크레이프 상의의 V자로 파인 가슴께에서 뱅퇴유 양은 친구의 느닷없는 입맞춤이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이윽고 둘은 가구를 타넘으며 방 안을 이리저리 쫓고 쫓기기 시작했으니, 넓은 소매가 날개처럼 펄럭였고, 사랑에 빠진 한 쌍의 닭처럼 꼬꼬거리며 홰를 쳤다. 마침내 뱅퇴유 양이 지쳐 소파 위로 쓰러졌고, 그 위로 몸을 숙인 친구의 몸에 가려 내게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친구는, 늙은 음악 선생의 초상이 놓여 있던 작은 탁자 쪽으로 등을 돌린 채였다. 뱅퇴유 양은 누군가 일깨워 주지 않는 한 친구가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채고서, 마치 자기가 방금 처음 알아보기라도 한 듯 이렇게 소리쳤다. "어머! 아버지 사진이 우릴 쳐다보고 있네. 누가 저기 갖다 뒀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저긴 둘 자리가 아니라고 스무 번은 넘게 일렀는데 말이야."
나는 뱅퇴유 씨가 거치적거리는 악보 한 장을 두고 우리 부모님에게 미안해하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 사진은 물론 그들의 의례에서 늘 쓰이는 물건이었고, 나날이 모독을 당하고 있었으니, 친구가 분명 전례의 화답 같은 말로 이렇게 대꾸했기 때문이다. "그냥 두라지. 이제 저이가 우릴 어쩌지도 못해. 지금 네 꼴을, 창까지 열어 놓은 이 꼴을 저이가 볼 수 있다면, 저 못생긴 늙은 원숭이가, 징징대기라도 할 것 같아? 널 집에서 내쫓기라도 할 것 같아?"
이에 뱅퇴유 양은 "어머, 제발!" 하고 대꾸했으니, 그 부드러운 나무람은 그녀 천성의 참된 선량함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은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입에 오르는 데 대한 어떤 반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분명 그녀가 그런 순간이면 오랜 궤변의 훈련을 거쳐 꼭꼭 눌러 두도록 스스로를 길들여 온 감정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온갖 이기심의 기색을 피하고자, 친구가 그녀에게 안겨 주려 애쓰던 그 만족을 그녀 스스로 억누르는 데 쓰던 재갈이었다. 어쩌면 또한, 이 신성모독을 마주하고 대꾸하던 그 미소 어린 절제가, 이 다정하고 위선적인 나무람이, 솔직하고 너그러운 그녀의 천성에는, 그녀가 애써 취하려던 저 삶에 대한 범죄적 태도의 유독 부끄럽고도 유혹적인 한 형태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방금 저 무력한 죽은 이에게 그토록 가차 없이 굴어 보인 여자에게서 애정으로 대접받는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친구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딸이 어머니에게 하듯 정결한 이마를 내밀어 입맞춤을 받았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둘이서 함께, 마치 무덤을 파헤치기라도 하듯 뱅퇴유 씨에게서 아버지로서의 신성한 권리를 앗아, 잔혹의 나사를 마지막으로 한 바퀴 더 조이는 것이라 여기며 더없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다. 친구는 그 처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이마에 입을 맞추었으니, 뱅퇴유 양에게 품은 진정한 애정에서, 그리고 고아의 따분하고 우울한 삶에 자기가 줄 수 있는 위안이나마 안겨 주려는 바람에서, 그렇게 순순히 따랐던 것이다.
"내가 저 흉물스러운 걸 어떻게 해 주고 싶은지 알아?" 하고 그녀는 사진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녀는 뱅퇴유 양의 귀에 대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어머! 넌 절대 그럴 배짱 없어."
"거기에 침을 못 뱉을 것 같아? 저것한테?" 하고 친구가 짐짓 사납게 소리쳤다.
나는 더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니, 이제 지치고 어색하고 골똘하고 진지하며 다소 서글퍼 보이는 뱅퇴유 양이 창가로 돌아와 덧문을 바싹 닫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뱅퇴유 씨가 살아생전 딸 때문에 견뎌 낸 그 온갖 고통의 대가로, 죽은 뒤 딸에게서 받은 보답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뒤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뱅퇴유 씨가 이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더라도, 그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딸의 착한 심성을 계속 믿었을지 모르며, 그렇게 믿는다 하여 아주 그른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뱅퇴유 양의 온갖 행동에서 악의 겉모습이 어찌나 강하고 한결같았던지, 그토록 온전한 형태로 그것이 드러난 예는, 요즘 흔히 말하는 '사디스트'에게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을 만했음은 사실이다. 살아생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자기만을 위해 죽은 아버지의 초상에 침을 뱉도록 처녀가 친구를 부추기는 광경은, 실제 시골집의 정겨운 등불 아래가 아니라, 파리 어느 극장의 각광 너머에서나 보게 되리라 여겨지는 것이며, 우리가 실제 삶에서 멜로드라마 같은 극적 효과를 탐하는 마음을 발견할 때면, 대개 그 책임은 '사디즘'의 본능에 있다. '사디즘' 쪽으로는 조금도 기울지 않은 처녀라도 뱅퇴유 양처럼, 죽은 아버지의 기억을 더럽히고 그 뜻을 거스르는 똑같이 터무니없는 잔혹함을 보였을 수는 있으나, 그런 처녀라면 그것을, 상징이 그토록 노골적이고 그토록 섬세함이라고는 없는 행위로 짐짓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처녀의 행동에서 범죄적 요소는 남들 눈에도, 심지어 그녀 자신에게도 덜 뚜렷했을 테니, 그녀는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모습은 접어 두고, 뱅퇴유 양의 영혼 속에는,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악의 요소가 아마도 순수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녀 부류의 '사디스트'는 악의 예술가인데, 온전히 사악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으니, 그런 사람에게는 악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졌을 테고, 그녀 자신과 구별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덕이나 죽은 이에 대한 존경, 자식으로서의 순종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애초에 그런 것들을 떠받든 적이 없었을 테니, 그것을 모독하는 데서 불경한 쾌감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뱅퇴유 양 부류의 '사디스트'는 어찌나 순전히 감상적이고 본디 어찌나 유덕한 존재인지, 관능적 쾌락조차 그들에게는 무언가 나쁜 것, 사악한 자들에게나 허락된 특권으로 비친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것을 즐기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면, 그들은 사악한 자를 흉내 내어, 자기 자신에게도 죄의 공범에게도 사악한 자의 온갖 겉모습을 꾸며 보이려 하니, 자기네 온화하고 소심한 천성의 통제를 벗어나 쾌락의 비인간적 세계로 달아났다는 순간의 환상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달아남이 그녀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녀가 얼마나 그것을 갈망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아버지와는 정반대되는 존재로 여겨지기를 바라던 그 순간, 그녀가 나에게 대뜸 떠올려 준 것은 다름 아닌 그 가엾은 늙은 음악 선생의, 생각과 말투의 버릇들이었다. 사실 그의 사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그녀가 정말로 모독하던 것, 자기 쾌락에 봉사하도록 타락시키던 것, 그러면서도 쾌락과 그녀 사이에 남아 그녀가 그것을 직접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던 것은, 자기 얼굴과 아버지 얼굴의 닮음이었고, 집안 대대로 간직할 어떤 패물처럼 그가 그녀에게 물려준 그의 어머니의 푸른 눈이었으며, 뱅퇴유 양의 사악함과 그녀 자신 사이에, 악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어떤 어법을, 어떤 심성을 세워, 그 사악함을 그녀가 날마다 힘써야 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소한 사교적 의무며 예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던 그 다정한 몸짓과 기울임들이었다. 그녀에게 쾌락의 관념을 심어 주고 매력적으로 비친 것은 악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악하게 보인 것은 쾌락 쪽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쾌락에 빠질 때마다, 여느 때 그녀의 유덕한 마음에는 자리하지 않던 악한 생각들이 쾌락을 따라왔으므로, 그녀는 마침내 쾌락 그 자체에서 무언가 악마적인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악과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뱅퇴유 양은, 자기 친구가 마음속으로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님을, 그 신성모독의 말들을 쏟아 낼 때 정말로 진심은 아님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마에 받는 그 입맞춤들, 그 미소들, 그 눈길들을 누리는 기쁨을 얻었으니, 어쩌면 다 꾸며 낸 것이었을지언정, 그것들은 그 천하고 사악한 표현 방식에서, 인정과 인내가 아니라 방종과 잔혹으로 빚어진 존재의 얼굴에나 나타났을 법한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잠시나마 스스로를 속여, 자기가 정말로,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공범을 데리고, 아버지의 기억을 향해 참으로 사나운 반감을 품은 처녀가 즐길 법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노라 믿을 수 있었다. 만일 그녀가 자기 자신 안에서도, 모든 동류의 남녀 안에서 그러하듯, 자기가 남에게 안기는 고통에 대한 그 무심함을, 달리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잔혹의 참되고 무섭고 지속적인 유일한 형태인 그 무심함을 알아볼 수 있었더라면, 사악함을 그토록 드물고 그토록 비정상이며 그토록 이색적인, 찾아가 보면 그토록 신선한 어떤 상태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제글리즈 쪽’이 그토록 수월했다면, ‘게르망트 쪽’을 택할 때는 사정이 아주 달랐다. 그쪽은 긴 산책을 뜻했고, 그래서 우리는 먼저 날씨부터 확실히 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 맑은 날이 이어질 성싶을 때, 프랑수아즈가 ‘가엾은 농작물’ 위로 빗방울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것에 절망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고요한 쪽빛 표면 위로 여기저기 떠다니는 자그마한 흰 구름 한 점밖에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탄식하며 외치곤 했다. “저것들이 꼭 주둥이를 쳐들고 헤엄쳐 다니는 곱상어 떼 같지 않아요! 아, 가엾은 일꾼들을 위해 비를 조금 내려 줄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다 곡식이 다 여물고 나면, 그제야 우수수 쏟아져 사방에 후드득거리며, 그게 어디로 떨어지는지 바다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양 아랑곳도 않을 테지요!” 아버지가 정원사에게 물을 때마다 여러 번 잇달아 똑같이 고무적인 대답을 얻고 나면, 그제야 누군가가 저녁 식탁에서 말하곤 했다. “내일 날씨가 버텨 주면, 게르망트 쪽으로 가 볼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우리는 점심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길을 나서, 자그마한 정원 쪽문을 지나 페르샹 거리로 내려섰는데, 그 거리는 좁고 급한 각도로 꺾여 있었으며, 두세 마리 말벌이 온종일 식물 채집이라도 하듯 오가는 잔디밭이 군데군데 점점이 박혀 있었고, 그 이름만큼이나 기묘한 거리였다. 내가 느끼기에 그 거리의 야릇한 특색과 개성은 바로 그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의 콩브레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헛수고일 거리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공립학교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콩브레를 꿈꿀 때면 (르네상스식 성가대 칸막이와 18세기 제단 아래에서 노르만식 성가대석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상상하며, 교회 전체를 아마도 12세기의 모습이었을 상태로 복원해 내는 저 비올레르뒥의 제자 건축가들처럼) 나는 현대식 건물의 돌 한 조각도 남겨 두지 않고, 그것을 꿰뚫고 들어가 페르샹 거리를 ‘복원’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건을 위해 기억은, 대개 복원가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것보다 더 상세한 길잡이를 내게 내어 준다. 기억이 간직해 온 그림들, 어쩌면 오늘날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자 머지않아 나머지를 따라 망각 속으로 사라질 그 그림들, 내 어린 시절의 콩브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담은 그 그림들은, 오직 사라지기 전 옛 콩브레가 내 마음에 그 윤곽을 새겼다는 이유만으로, (하찮은 풍경을 저 영광스러운 걸작들, 곧 할머니가 그토록 즐겨 내게 선사하던 그 복제화들과 견주어도 좋다면) 체나콜로의 옛 판화들이나,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의 레오나르도의 걸작과 성 마르코 성당의 주랑현관을 볼 수 있는 젠틸레 벨리니의 그림만큼이나 뭉클하다.
우리는 루아조 거리를 지나며 옛 루아조 플레셰 여관 앞을 지나갔는데, 그 커다란 안뜰로는 옛날 옛적 몽팡시에, 게르망트, 몽모랑시 공작부인들의 마차가, 소작인들과의 소송 때문에, 또는 그들에게서 경의를 받으려고 콩브레로 내려와야 할 때면 덜컹거리며 들어서곤 했다. 우리는 마침내 몰 산책로에 이르렀고, 그 우듬지들 사이로 나는 생틸레르의 종탑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온종일 책을 읽고 종소리를 들으며 지낼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곳은 어찌나 매혹적이고 고요한지, 한 시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면, 그것이 하루의 정적을 깨뜨린다기보다 오히려 하루에서 군더더기를 덜어 내 주는 것 같았고, 달리 할 일이 없는 사람의 느긋하면서도 공들인 정확함으로, 종탑이 뜨거운 햇살 속에 천천히 자연스레 고여 든 몇 방울의 금빛 물방울을 짜내어 떨어뜨리려고, 어느 한순간 정적의 팽팽히 부푼 표면을 지그시 눌렀을 뿐이라고 할 만했다.
‘게르망트’ 쪽의 커다란 매력은, 거의 내내 우리 곁에 비본의 물줄기가 함께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집을 나선 지 십 분 만에, 퐁비외라 불리는 구름다리로 그 물줄기를 처음 건넜다. 그리고 해마다 부활절 아침, 콩브레에 도착해 설교가 끝난 뒤 날씨가 맑으면,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큰 축일 아침이면 으레 감도는 온갖 부산함 속에서, 그 화려한 채비 탓에 미처 치우지 못한 일상의 살림살이들이 여느 때보다 더 초라해 보이는 가운데)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강물은 아직 검고 헐벗은 두 기슭 사이로 벌써 하늘빛을 띠고 있었고, 제철보다 일찍 피어난 수선화 한 무더기, 처음 꽃을 연 앵초 몇 송이만이 그 벗이었으며, 여기저기서는 제비꽃의 푸른 불꽃이 타올랐는데, 그 줄기는 자그마한 뿔 속에 갈무리한 향기 한 방울의 무게에 겨워 휘어 있었다. 퐁비외는 예선로로 이어졌는데, 이 지점에서는 여름이면 개암나무의 푸르스름한 잎사귀가 그 위를 뒤덮었고, 그 아래에서 밀짚모자를 쓴 낚시꾼 하나가 뿌리라도 내린 듯 앉아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콩브레에서, 성당지기의 제복이나 성가대원의 중백의로 변장한 대장장이나 식료품점 소년마저 늘 알아볼 수 있었던 나였건만, 이 낚시꾼만은 끝내 정체를 알아낼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가족을 알았음이 분명한데, 우리가 지나갈 때면 모자를 들어 인사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늘 그의 이름을 막 물어보려는 참이었으나,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내거나, 아니면 내가 물고기를 놀라게 할 판이었다. 우리는 개울보다 몇 자쯤 높은 가파른 둑 위를 따라 난 예선로를 걸었다. 건너편 땅은 더 낮아, 마을까지, 나아가 멀리 기차역까지 드넓은 초원이 연이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긴 풀 속에 반쯤 파묻힌 채, 옛 콩브레 백작들의 성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중세 동안 이쪽에서 비본의 물줄기를 방벽이자 방어선 삼아, 게르망트 영주들과 마르탱빌 수도원장들의 공격에 맞섰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탑의 밑동 몇 개, 넓은 들판 위에 솟은 흙둔덕들,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 것들, 그리고 한때 궁수들이 그 너머로 돌을 내던지고 파수꾼들이 노브퐁, 클레르퐁텐, 마르탱빌르섹, 바이요렉장을 굽어보던 부서진 흉벽뿐이었다. 그곳들은 모두 게르망트의 봉토로서, 콩브레를 가두어 둔 고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풀 속에 쓰러져 땅과 나란해진 채, 노는 시간이면 그곳을 찾아오거나 외울 교과서를 들고 온 기독교 교리 수도회 학교 소년들이 기어오르고 올라타는 신세였다. 그것들은 땅속으로 가라앉아 거의 사라져 버린 과거의 표상으로, 이제는 바람이라도 쐬는 게으름뱅이처럼 물가에 누워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게 깊은 생각거리를 주었으니, 콩브레라는 이름이 내게 오늘의 자그마한 읍만이 아니라 그와는 사뭇 다른 유서 깊은 도시를 뜻하게 했고, 미나리아재비의 반짝이는 너울 아래 반쯤 감춘 아득하고 헤아릴 길 없는 자태로 내 상상을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미나리아재비는 풀숲 사이 저희 놀이터로 골라잡은 이 자리에서 헤아릴 수 없이 자라나, 홀로, 짝지어, 또 무리를 이루어 서 있었으며, 달걀노른자처럼 노랗고, 한층 더한 광채로 빛났다. 그 광경이 언제나 내게 주는 즐거움을 나는 혀로는 다 맛볼 길이 없었기에, 그 도금한 너른 벌판 위로 눈길을 옮기는 동안 그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두었고, 마침내 그것은 내 마음속에 절대적이고 아무것도 낳지 않는 아름다움의 새로운 본보기를 빚어낼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으니, 그때 나는 예선로에서 그 매혹적인 이름을 미처 발음하기도 전에 그것들을 향해 두 팔을 뻗곤 했다. 어느 프랑스 동화 속 왕자에게나 어울릴 이름이었다. 어쩌면 아득한 옛 세기에 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마을에 영영 뿌리내려, 그 소박한 지평에 흡족해하고, 햇살과 물가를 즐기며, 기차역이 언뜻 보이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옛 그림들 가운데 더러가 그러하듯, 그 소박한 순박함 속에 황금빛 동방에서 온 시적인 반짝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