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승강기 소년의 괴로운 불안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가 이렇게 여느 때의 미소로 내게 헌신을 드러내는 것마저 잊었을 정도라면, 무슨 불행이 그에게 닥친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그는 ‘해고’를 당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럴 경우 그의 복직을 힘써 얻어내리라 마음먹었으니, 지배인이 제 직원에 관한 한 내 뜻은 무엇이든 들어주마 약속한 터였다. “언제든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제가 미리 다 처리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승강기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문득 그 소년의 낙담과 겁에 질린 기색의 뜻을 알아챘다.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있었기에, 나는 올라올 때면 으레 그의 손에 슬쩍 쥐여주던 5프랑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얼간이는, 내가 제삼자 앞에서 후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을 뿐임을 깨닫기는커녕, 이제 다 끝났다고, 내가 다시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리라 여기고는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내가 (게르망트 공작이라면 말했을 법하게)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상상했고, 그 짐작은 그에게 나를 향한 연민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지독한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언젠가 전날 주었던, 터무니없지만 애타게 기다려지던 그 액수를 차마 주지 않을 엄두를 못 냈던 것을 두고, 내가 어머니가 생각한 만큼 분별없지는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일렀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까지 내가 한 점 의심도 없이 그의 여느 때의 기쁜 표정에 부여했던, 서슴없이 헌신의 표시로 보았던 그 뜻이, 이제는 덜 확실하게 여겨졌다. 절망에 빠진 승강기 소년이 호텔 5층에서 제 몸을 던지려는 듯한 꼴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이를테면 어떤 혁명의 결과로 우리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뒤바뀐다면, 저 소년은 정중하게 나를 위해 승강기를 부리는 대신, 독립을 얻어, 나를 승강기 수직 통로 아래로 내던져 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어떤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는, 사교계에서보다 더한 표리부동함이 있지 않을까, 사교계에서야 사람들이 우리가 못 듣는 데까지 물러날 때까지 험담을 아껴 두기는 해도, 우리가 가난으로 영락한다 해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모욕적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발베크 호텔에서 승강기 소년이 가장 타산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보면 직원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한편에는, 손님을 가려 대하며, 늙은 귀족의 (더구나 그는 보트레이 장군에게 한마디 넣어 그들을 28일간의 병역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한 위치에 있었다) 변변찮은 팁을, 제 헤픔으로 오히려 서투름을 드러내는 어떤 상놈의 무분별한 인심보다 더 고맙게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런 인심을 그 상놈 면전에서나 관대함이라 불렀을 뿐이다. 다른 한편에는, 귀족이든 지성이든 명성이든 지위든 예절이든, 돈으로 매긴 값어치 아래 감추어져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잣대, 곧 사람이 가진 돈, 아니 차라리 사람이 내놓는 돈만이 있었다. 어쩌면 에메 자신도, 숱한 호텔에서 일해본 경력을 내세워 세상을 훤히 안다고 자부하기는 했으나, 이 뒤엣부류에 속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그는 이런 종류의 평가에, 누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교적 색채를 입힐 뿐이었으니, 뤽상부르 대공비를 두고 “저 축들 사이엔 돈이 산더미 같지 않나?”라고 말할 때가 그러했다(끝에 붙은 물음표는, 손님에게 파리로 보낼 ‘요리사’를 대주거나 발베크에서 문가 왼편, 바다가 보이는 자리를 약속해 주기 전에, 사실을 알아보거나 이미 알아둔 정보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비록 치사한 속셈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으나, 그는 승강기 소년처럼 얼빠진 절망으로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기야 그 소년의 꾸밈없음이 어쩌면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호텔의, 한때 라셸이 드나들던 그런 집의 편리함이란, 아무 중개도 없이, 그 순간까지 얼어붙어 있던 하인이나 여인의 얼굴이, 100프랑짜리 지폐를, 하물며 1000프랑짜리 지폐를 보면, 설령 그것이 남에게 주어지는 것일지라도, 미소와 봉사의 제안으로 녹아내린다는 데 있다. 반면에 연인과 정부 사이의 거래며 관계에서는, 돈과 고분고분함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너무 많다. 어찌나 많은지, 돈이 마침내 그 얼굴에 미소를 자아내는 바로 그 사람들조차 흔히 그것들을 잇는 내적 과정을 좇지 못하고, 스스로를 더 섬세한 존재라 믿으며, 실제로도 더 섬세하다. 게다가 그것은 정중한 대화에서 이런 따위의 말들을 없애준다. “내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에요, 내일 시체 안치소에서 나를 보게 될 거예요.” 그리하여 정중한 사교계에서는 소설가나 시인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들을 이야기하는 그 숭고한 부류를 좀처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단둘이 되어 복도를 따라 걷자마자, 알베르틴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한테 뭔가 화나신 거예요?” 그녀를 모질게 대한 것이 나 자신에게 괴로운 일이었던가? 그것은 그저, 내 정부를 저 두려움과 애원의 태도로 몰아넣어, 그녀를 캐물어, 어쩌면 내가 오래전부터 그녀에 대해 세워둔 여러 가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아내려는, 내 무의식적 술책에 지나지 않았던가? 어찌 되었든, 그녀의 물음을 들었을 때, 나는 오래 바라던 목표에 다다른 사람의 기쁨을 문득 느꼈다. 그녀에게 대답하기 전에, 나는 그녀를 내 방문 앞까지 데려갔다. 문을 열자, 방 안을 넘실넘실 채우며 밤을 위해 쳐 둔 흰 모슬린 커튼을 황금빛 다마스크로 물들이던 장밋빛 빛을 나는 흩뜨려 놓았다.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갈매기들이 다시 물결 위에 내려앉아 있었으나, 이번에는 장밋빛이었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그것들을 가리켜 보였다. “말 돌리지 마세요.” 그녀가 말했다. “저한테 솔직하게 말해줘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먼저 한 가지 고백을, 얼마 전부터 앙드레에게 품어온 열렬한 흠모의 고백을 들어야 한다고 못 박고는, 그 고백을, 무대에서나 어울릴 법한,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느끼지도 않는 사랑을 두고서가 아니면 좀처럼 쓰이지 않는 그런 단순함과 솔직함으로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첫 발베크 방문 이전에 질베르트를 상대로 써먹었던 허구로 되돌아가, 다만 그 어사(語辭)만 바꾸어, 나는 (지금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녀가 더 쉽게 믿게 하려고) 이런 실토까지 흘리기에 이르렀다. 한때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질 뻔했으나 너무 긴 시간이 흘러버렸으며, 이제 그녀는 내게 좋은 벗이자 동무 이상은 될 수 없고, 설령 그녀에게 다시 한번 더 뜨거운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들 그것은 도무지 내 힘 밖의 일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알베르틴 앞에서 그녀를 향한 냉담함을 이토록 내세우고 보니, 나는 그저, 어떤 특정한 사정 때문에 그리고 어떤 특정한 목적을 노리고, 사랑이 지니는 저 이중의 리듬을, 곧 여자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도, 또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도 믿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너무 없는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이 취하는 그 이중의 리듬을 한결 더 뚜렷이, 한결 더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충분히 잘 알기에, 가장 판이한 유형의 여자들 앞에서도 똑같은 희망과 똑같은 번민을 느끼고, 똑같은 몽상을 지어내며,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는 것을 스스로 지켜본 터라, 자기들의 감정과 행동이 사랑하는 여자와 긴밀하고 필연적인 관계를 맺기는커녕, 그 여자를 스쳐 지나가고, 그 여자에게 튀어 흩어지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결처럼 그 여자를 에워쌀 뿐임을 미루어 알았으며, 자기 자신의 불안정함에 대한 이 자각이, 그토록 사랑받고 싶은 이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한층 더 키운다. 우리 욕망의 들끓음을 받아내라고 놓인 하나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어째서 하필, 그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욕망의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도록 우연이 마련해 놓았단 말인가? 그리하여,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한낱 인간적인 감정과는 그토록 다른, 연인만의 것인 그토록 고도로 특화된 온갖 감정을 그녀 앞에 쏟아내고 싶은 욕구를 느끼면서도, 우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녀를 향한 애정과 우리의 희망을 실토하자마자, 이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또한 우리가 그녀에게 건넨 말이 그녀만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이들에게 써먹은 적이 있고 앞으로도 써먹으리라는 것,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그 경우, 무지한 청중에게 그들을 위한 것도 아닌 정교한 말을 늘어놓는 현학자가 보이는 그런 무취미와 몰염치로 말한 셈이 되리라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이 두려움과 이 부끄러움이 반대의 리듬을, 곧 썰물을, 이미 고백한 애정을 우선 뒤로 물러서서 뜨겁게 부인함으로써라도 다시 공세로 나아가, 그녀의 존경을 되찾고 그녀를 지배하려는 욕구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이중의 리듬은 한 사랑의 여러 시기에서, 비슷한 사랑들의 온갖 상응하는 시기에서, 자기애보다 자기 분석이 더 무거운 모든 이들에게서 감지된다. 만약 지금 내가 알베르틴에게 하려고 벼르던 이 말에서 그 리듬이 여느 때보다 얼마간 더 힘차게 도드라졌다면, 그것은 그저 내가 내 애정을 울려 퍼지게 할 교대의 리듬으로 한결 빠르고 한결 힘차게 넘어가기 위함일 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녀를 다시 사랑할 수 없다고 한 말을 알베르틴이 믿기가 괴로울 것처럼 여겨, 나는 내 천성의 별난 구석이라 부른 바를, 그들의 탓이든 내 탓이든 사랑할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그 시간을 되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예를 들어 변명했다. 그리하여 나는 동시에, 그녀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지 못하는 이 무능을 무례라도 되는 양 사과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 무능의 심리적 이유를 마치 나에게만 고유한 것인 양 그녀에게 이해시키려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나를 설명하면서, 질베르트의 경우를 파고들면서(그 논거는 질베르트에게는 실로 엄밀히 참이었으나 알베르틴에게 적용하면 그토록 참과 멀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스스로 믿지 않는 척하던 내 주장을 오히려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알베르틴이 이른바 내 “솔직한 말”을 고맙게 여기고 내 추론에서 증거의 명료함을 알아본다고 느껴, 나는 진실이란 늘 불쾌하며 이 경우에는 그녀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고 말하며 그 솔직함을 사과했다. 그녀는 도리어 내 진솔함에 고마워하며, 당황하기는커녕 그토록 흔하고 그토록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앙드레에 대한 상상의 애정을, 그리고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이렇게 고백한 일은(다만 그 무관심이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지극히 진솔하게 보이도록, 나는 예의를 차리는 척 지나가는 말로 그것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라고 일러두었다), 마침내 알베르틴이 나를 두고 그녀를 사랑한다 의심할 염려 없이, 내가 그토록 오래 스스로에게 금해 왔고 내게는 더없이 감미롭게 느껴지던 다정함으로 그녀에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내 속내를 털어놓는 이 상대를 거의 어루만지다시피 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친구를 두고 이야기하는 동안,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마침내 본론에 이르러, 나는 그녀에게, 그대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예민함과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며, 어쩌면 이제 오랜 벗이 된 그대이니, 그대가 내게 안기는 이 쓰라린 슬픔을 그칠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가 아니라(그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다시 말해도 된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는 그대 자신이 아니므로), 앙드레를 향한 내 사랑에서 나를 상처 입힘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리해 달라고. 나는 말을 멈추고, 저 앞 멀리서 홀로 서둘러 나아가는 커다란 새 한 마리를 알베르틴에게 감탄하며 가리켰다. 규칙적인 날갯짓으로 공기를 후려치며, 여기저기 붉은 종잇조각을 잘게 찢어 뿌린 듯한 반사광으로 얼룩진 해변 위를 전속력으로 지나, 속도를 늦추지도, 주의를 딴 데로 돌리지도, 제 길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채 그 새는 해변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로질렀으니, 마치 급하고도 절박한 전언을 먼 곳까지 나르는 전령 같았다. “저 새는 적어도 곧장 본론으로 가는군요!” 알베르틴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그대가 모르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낫겠소. 분명 그대를 화나게 할 테니. 그러면 결국 이렇게 되고 말 거요. 정작 내가 사랑하는 처녀와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좋은 벗 하나만 잃는 셈이지.” “하지만 화내지 않겠다고 맹세하잖아요.” 그녀는 마치 제 행복 전부가 내게 달려 있기라도 한 듯, 그토록 다정하고 그토록 애처로이 순한 기색이어서, 나는 이 새로운 얼굴에 입 맞추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머니에게 입 맞출 때 느꼈을 것과 거의 같은 종류의 기쁨을 안겨 주는 그 얼굴은, 이제 분홍빛 조그맣고 들린 코를 한 반항적이고 심술궂은 새끼 고양이의 놀라 붉어진 표정을 더는 띠지 않고, 짓누르는 슬픔으로 가득 차, 넓고 납작하며 축 처진 순수한 선의의 판(板)들로 빚어진 듯 보였다. 내 사랑을, 그녀와는 아무 상관 없는 만성적인 광증쯤으로 떼어 놓고, 그녀의 처지에 나를 놓아 보며, 나는 이 정직한 처녀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게 두었다. 다정하고 성실한 대접에 익숙하던 그녀를, 그녀가 좋은 동무쯤으로 여겼을 이 사내가 몇 주째 갖은 괴롭힘으로 뒤쫓아 왔고, 그 괴롭힘이 마침내 절정에 이른 참이었다. 내가 알베르틴에게 그 깊은 연민을 느낀 것은, 우리 둘 바깥의, 내 질투 어린 사랑이 녹아 스러지는 순전히 인간적인 자리에 나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 연민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깊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고백에서 다툼으로 이끄는 그 율동적인 흔들림 속에서(상반되고 잇따르는 움직임으로, 풀리지 않는 매듭을 짓고, 그 율동의 두 요소 가운데 하나인 물러섬의 움직임이 주는 긴장으로 우리를 어떤 사람에게 단단히 붙들어 매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틀림없이 위험한 방법이거니와), 인간적 연민의 역류를 더 파고들어 분석한들 무슨 소용인가. 사랑의 반대이면서도, 어쩌면 무의식중에 같은 원인에서 솟아나, 어느 경우에나 같은 결과를 낳는 그 연민을. 우리가 한 여자를 위해 한 모든 일을 나중에 헤아려 보면, 그녀를 사랑함을 보이려는, 그녀가 우리를 사랑하게 하려는, 그녀의 호의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온 행동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그 존재에게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인간적 필요에서, 마치 우리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라도 하는 양 순전한 도덕적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들보다 그다지 더 크지 않음을, 아니 크더라도 아주 조금 더 클 뿐임을 이따금 깨닫게 된다. “그런데 말해 봐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예요?” 알베르틴이 내게 물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 보이였다. 마차를 타고 호텔 앞을 지나던 알베르틴의 이모가, 혹시 그녀가 거기 있을까 하여 데려가려고 멈춰 선 것이었다. 알베르틴은 갈 수 없으니 자기는 빼고 저녁을 시작하라고, 몇 시에 돌아갈지는 말할 수 없다고 전하게 했다. “하지만 이모님이 화내지 않으실까요?” “무슨 말이에요? 잘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리하여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순간만큼은, 나와의 대화가 알베르틴의 눈에 무엇보다 앞세워야 할 만큼 자명하게 중요한 일임이 이 사건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집안의 법도를 떠올리며, 봉탕 씨의 앞길이 걸렸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나곤 하던 몇몇 위기의 순간들을 꼽아 보건대, 이모라면 그녀가 저녁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리라고 내 벗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그런 일이었다. 제 식구들 틈에서 나 없이 보냈을 그 멀리 있는 시간을, 알베르틴은 내게 가져와 선사했다. 나는 그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녀의 생활 방식에 대해 내게 전해진 이야기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악덕에 물든 여자들에게 내가 깊은 혐오를 느끼면서도, 그 상대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그 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내가 앙드레를 사랑하는 만큼, 그 소식이 내게 안긴 슬픔을 그녀도 능히 헤아릴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관심도 없는 다른 여자들의 이름까지 함께 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눈치 있는 처사였으리라. 그러나 코타르가 내게 한 그 갑작스럽고 끔찍한 폭로는, 그 자체로 온전하되 아무런 덧붙임도 없이, 내 심장에 들어와 그것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전에는, 코타르가 두 사람이 함께 왈츠를 추던 자태에 내 주의를 끌지 않았더라면 알베르틴이 앙드레를 사랑한다거나 적어도 그녀를 어루만지는 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결코 내게 떠오르지 않았을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나는 그 생각에서, 알베르틴이 앙드레가 아닌 다른 여자들과, 애정을 변명 삼을 수도 없는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른다는, 내게는 사뭇 다른 그 생각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알베르틴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내게 맹세하기도 전에, 자기에 대해 그런 말이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분노와 근심을 드러냈고, 그 정체 모를 험담꾼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나운 호기심과, 그와 맞대면하여 그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싶은 욕망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만은 아무 원한도 품지 않았다고 그녀는 다짐하듯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당신에게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앙드레도 나도 그런 건 질색이에요. 우리도 이만큼 살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굴며 당신이 말하는 그런 짓을 하는 여자들을 못 본 게 아니지만, 그보다 더 역겨운 건 없어요.” 알베르틴이 내게 준 것은 그저 말뿐, 아무 증거도 없는 단호한 말 한마디였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라앉히기에 가장 알맞은 것이었으니, 질투란 확언의 개연성보다는 그 기세로 씻어 내는 편이 나은 병적인 의심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에는, 우리를 한꺼번에 더 의심 많고 더 잘 믿게 만드는 속성이 있어, 다른 누구를 의심할 때보다 더 쉽게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의심하게 하면서도, 그녀의 부인에는 더 쉽게 설득당하게 한다. 모든 여자가 정숙하지는 않다는 데 마음을 쓰려면, 다시 말해 그 사실을 알아차리려면 먼저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하고, 개중에 정숙한 여자도 있기를 바라려면, 다시 말해 스스로 그렇다고 다짐하려면 역시 먼저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을 굳이 찾아내고는 곧바로 그것을 떨쳐 내려 드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말들은 지극히 자연스레 참으로 여겨지고, 우리는 효험 있는 진정제를 두고 트집 잡으려 들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여러 모습을 지녔다 한들, 그녀는 어느 경우에나, 우리 것으로 보이느냐 아니면 제 욕망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보이느냐에 따라 두 가지 본질적인 인격을 우리에게 내보일 수 있다. 이 가운데 앞의 인격은, 뒤의 인격이 실재함을 우리가 믿지 못하게 막는 기묘한 힘을, 곧 뒤의 인격이 우리에게 안긴 괴로움을 낫게 하는 은밀한 치료약을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대상은 번갈아 가며 병이자, 그 병을 멎게 하고 또 도지게 하는 치료약이다. 틀림없이 나는, 스완의 본보기가 내 상상력과 감정의 능력에 남긴 강렬한 인상으로 말미암아, 오래전부터 이미, 내가 바랐을 것보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을 참으로 믿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알베르틴의 확언이 내게 안겨 준 위안은, 문득 오데트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바람에 한순간 흔들릴 뻔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일렀다. 스완의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그의 처지에 나를 놓아 보았을 때뿐 아니라, 이제 나 자신이 걸린 일에서, 남의 일이라도 되는 양 진실을 캐낼 때에도, 최악을 헤아려 두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가장 쓸모 있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위험에 드러난 자리를 골라 서는 병사처럼 나 자신에게 모질게 굴어, 단지 더 고통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가정을 나머지보다 더 참되다 여기는 잘못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어엿한 중산층 집안의 딸인 알베르틴과, 어린 시절 제 어머니에게 팔려 넘겨진 화류계 여자 오데트 사이에는, 까마득한 간극이 있지 않은가? 둘의 신뢰성을 견주는 것부터가 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알베르틴에게는, 오데트가 스완에게 거짓말할 때 지녔던 것과 같은 이해관계가 나에게 거짓말할 이유로는 어느 모로도 없었다. 더욱이 오데트는 알베르틴이 방금 부인한 바로 그것을 스완에게는 시인했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두 사람의 처지가 지닌 이 실질적인 차이들을 헤아리지 않고, 오데트의 삶에 대해 전해 들은 것만으로 내 연인의 실제 삶을 재구성한다면, 나는 어떤 가정이 나머지보다 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그리로 기울었던 것과 꼭 같이 중대한, 다만 방향만 반대인 추론의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었다. 내 앞에는 새로운 알베르틴이 있었다. 지난번 발베크 체류가 끝나 갈 무렵 이미 여러 차례 언뜻 본 적이 있는, 솔직하고 정직한, 나에 대한 애정에서 내 의심을 용서하고 그것을 걷어 내려 애쓴 알베르틴이었다. 그녀는 나를 내 침대 위 제 곁에 앉혔다. 나는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에 고마워하며, 우리의 화해가 온전히 이루어졌으며 다시는 그녀에게 못되게 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이 기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여태껏 한 번도 준 적 없는, 어쩌면 우리 사이가 아문 덕에 얻게 된 애무를 하려고 내 머리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벌리려 애쓰던 내 입술 위로 혀를 가볍게 스쳤다. 처음에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곰 같은 사람이에요!” 그녀가 내게 일러 주었다.
나는 그날 저녁 그곳을 떠나, 다시는 그녀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이미 나는 느끼고 있었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서는(사랑이라고만 말해도 좋으리라, 보답받는 사랑이란 것이 아예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 우리는 오직 그 행복의 허상만을 누릴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 허상은, 한 여자의 착한 마음씨나 변덕, 또는 한낱 우연이, 우리가 정말로 사랑받기라도 하는 양 똑같은 말과 똑같은 행동을 우리의 욕망에 감쪽같이 들어맞게 가져다주던, 그 둘도 없는 순간의 하나에서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더 현명한 길은, 그 조그마한 행복의 꾸러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기쁨으로 지니는 것이었으리라. 그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것이 나보다 덜 까다롭거나 더 은혜로운 마음들에게 무엇을 뜻할 수 있는지 짐작조차 못 한 채 죽고 말았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 조각만이 내게 보일 뿐인 드넓고 오래가는 행복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며, 이튿날이 이 허구를 들추어내지 못하도록, 오로지 예외적인 한순간의 술책에 힘입어 얻은 이 은혜에 뒤이어 다시는 새로운 은혜를 청하려 들지 않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발베크를 떠나 고독 속에 틀어박혔어야 했다. 한순간 내가 애써 사랑에 젖게 만든 그 목소리의 마지막 떨림과 그렇게 조화를 이룬 채로 머물러, 다시는 내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말기만을 그 목소리에 바랐어야 했다. 이제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한마디가 더해져, 페달을 밟은 듯 내 안에 행복의 떨리는 화음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있을지 모를 그 예민한 침묵을 불협화음으로 깨뜨릴까 두려웠으니.
알베르틴과의 해명으로 마음이 가라앉은 나는, 다시금 어머니와 한결 가까이 지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더 젊으셨던 시절에 대해 내게 부드럽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어쩌면 할머니의 말년을 어둡게 했을 그 슬픔들로 스스로를 자책할까 봐, 어머니는 차라리, 내 지성이 처음 움트던 기미가 할머니에게 안겨 드린, 그러나 여태껏 내게는 늘 감춰져 있던 흐뭇함을 주던 그 시절로 이야기를 돌리곤 했다. 우리는 콩브레의 옛날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가 책을 읽곤 했으니, 일을 할 게 아니라면 발베크에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콩브레의 추억과 그 정겨운 채색 삽화들로 나를 에워싸려면 천일야화를 다시 읽고 싶다고 대답했다. 오래전 콩브레에서 내 생일에 책을 선물해 주던 때처럼, 어머니는 이번에도 남몰래, 나를 놀라게 해 주려고 갈랑의 천일야화와 마르드뤼스의 천 밤과 하룻밤을 둘 다 구해 오게 했다. 그러나 두 번역본을 훑어본 뒤, 어머니는 내가 갈랑의 것을 고수하기를 바랐다. 다만 지적 자유에 대한 존중과, 내 지적 생활에 끼어들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여자인 자기로서는 한편으로 필요한 문학적 소양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모자라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의 독서를 나무라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망설였다. 어떤 이야기들을 우연히 마주치고는, 어머니는 그 소재의 부도덕함과 표현의 노골적임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브로치와 양산과 외투와 세비녜 부인의 책뿐 아니라 제 어머니의 사고방식과 말버릇까지도 귀한 유물처럼 간직하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라면 어떤 견해를 내놓았을지를 헤아리던 나의 어머니로서는, 할머니가 마르드뤼스의 책을 얼마나 소름 끼쳐하며 단죄했을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콩브레에서 메제글리즈 쪽으로 산책을 나서기 전에 내가 오귀스탱 티에리를 읽고 있으면, 내가 책도 읽고 산책도 한다는 데 기뻐하면서도 할머니가 그럼에도 분개하던 일을 떠올렸다. 그 이름이 “그때 메로베가 다스렸다”라는 반구(半句)에 아로새겨진 인물이 “메로비히”라 불리는 것을 보고서였는데, 할머니는 끝내 충실히 지킨 “카를로뱅거” 대신 “카롤링거”라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블로크가 르콩트 드 릴을 좇아 호메로스의 신들에게 붙인 그리스식 이름들을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블로크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까지, 그리스식 철자법을 따르는 것을 자기가 문학적 재능이 깃든다고 여기던 일종의 종교적 의무로 삼을 정도였다. 이를테면 편지에서 자기 집에서 마시는 포도주가 진짜 넥타르라고 적을 일이 있으면, 그는 k를 넣어 “진짜 nektar”라고 썼는데, 그럼으로써 라마르틴이 입에 오를 때 킥킥거릴 수 있었다. 그리고 율리시스와 미네르바라는 이름이 빠진 오디세이아가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오디세이아가 아니었다면, 하물며 표지에서부터 훼손된 자신의 천일야화라는 제목을 보고, 평생 발음해 오던 그대로 정확히 옮겨진 셰에라자드며 디나르자드라는 영원히 낯익은 이름들을 더는 찾지 못하고, 그 이름들 속에서 (이슬람 설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마다 개명당한 매력적인 칼리프와 강력한 정령들이 각각 “칼리파트”와 “겐니스”로 이름이 바뀐 채 겨우 알아볼 정도가 된 것을 보았다면, 무어라 하셨을까. 그래도 어머니는 두 책 다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나가기에 너무 지친 날이면 그것들을 읽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