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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⑥

4권 제1부 · 제2장

하지만 그런 날은 그리 잦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알베르틴과 그녀의 친구들과 나, 이렇게 무리 지어 절벽으로, 또는 마리앙투아네트라 불리는 농장으로 소풍을 나가곤 했다. 그러나 이따금 알베르틴이 내게 이 큰 기쁨을 베풀어 줄 때가 있었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은 잠깐 당신과 단둘이 있고 싶어요, 우리끼리만 있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그녀는 바쁘다고 둘러댔는데, 굳이 무슨 설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우리 없이 그래도 소풍과 나들이를 가더라도 우리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단둘이 바가텔이나 욀랑 십자가로 몰래 빠져나갔고, 그동안 그 무리는 거기로 우리를 찾아볼 생각도, 거기에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우리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마리앙투아네트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는 그때의 무더위를 떠올린다. 뙤약볕 아래 일하던 농부들 저마다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수직으로, 규칙적으로, 이따금씩, 물통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떨어지고, 그것이 이웃한 “밭”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익은 열매와 번갈아 들던 그 더위를. 그 무더위는 오늘날까지도, 한 여자의 비밀이 지닌 그 신비와 더불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사랑에서 가장 실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 내게 이름을 들려준, 그러나 나로서는 한순간도 마음 쓰지 않을 여자라도, 만일 그런 날씨가 이어지는 한 주간이고 어느 외딴 농가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면, 나는 그 주의 약속을 죄다 뒤엎어 가며 그녀와 아는 사이가 되려 든다. 이런 날씨, 이런 밀회가 그녀의 일부가 아님을 안다 한들 소용없다. 그것들은 여전히, 내가 너무도 잘 아는 미끼이면서도, 내가 기꺼이 넘어가게 되는, 나를 낚기에 충분한 미끼다. 나는 안다. 이 여자를, 추운 날씨에, 어느 도시에서였다면 어쩌면 욕망했을지언정, 낭만적인 감정을 곁들이지도,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사정에 떠밀려 그 사랑이 나를 사로잡고 나면 내 사랑은 조금도 덜 간절하지 않으니, 다만 한결 더 우수에 젖을 뿐이다. 살아가는 동안 남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란, 그들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몫이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과, 그토록 영원하기를 바라는 그 새로운 사랑이 삶 그 자체와 같은 순간에 잘려 나가 마지막 사랑이 되리라는 것을 더 또렷이 깨달아 갈수록, 그렇게 우수 어린 것이 되어 가기 때문이다.

발베크에는 아직 사람이 몇 되지 않았고, 처녀는 거의 없었다. 이따금 나는 해변에서 쉬고 있는, 아무 매력도 없는 어떤 처녀를 보았는데, 그런데도 여러 특징으로 미루어, 승마 학교나 체육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오던 순간 다가가지 못해 애를 태우던 바로 그 처녀인 듯싶었다. 만일 같은 처녀라면(그리고 나는 그 일을 알베르틴에게는 입 밖에 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내가 그토록 마음 설레게 여기던 그 처녀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확신에도 이를 수 없었다. 이 처녀들 가운데 누구의 얼굴도 해변에서 일정한 자리를 채우지 못했고, 붙박인 형태를 내보이지 못했으니, 내 관찰과, 내 욕망의 불안이나 그 자체로 넉넉한 편안함, 그녀가 걸친 서로 다른 옷, 그녀 몸짓의 빠름이나 멈춰 있음에 따라 오그라들고 부풀고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가운데 두엇은 내게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런 처녀를 볼 때마다 나는, 그녀를 타마리스 대로를 따라, 혹은 모래언덕 사이로, 아니 그보다는 절벽 위로 데려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욕망에는, 무관심과는 달리, 비록 한쪽만의 것일지언정 실현을 향한 첫 단계인 그 대담함이 이미 깃들어 있다 해도, 그럼에도 내 욕망과, 입맞춤을 허락해 달라는 내 청이 되었을 그 행동 사이에는, 망설임과 소심함의 아득한 공백이 죄다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면 나는 제과점의 술청으로 들어가, 포트와인을 일고여덟 잔이고 잇달아 들이켰다. 그러자 이내, 내 욕망과 행동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 대신, 술기운이 그 둘을 잇는 선 하나를 그어 놓았다. 더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그 처녀가 곧 내 품으로 날아들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고, 말이 절로 입술로 흘러나왔다. “당신과 함께 산책하고 싶소. 절벽을 따라 걷지 않겠소? 지금 비어 있는 저 판잣집의 바람을 막아 주는 작은 숲 뒤라면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텐데.” 삶의 온갖 어려움이 말끔히 걷혀, 우리 두 몸이 하나로 맺어지는 데 더는 아무 걸림돌도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걸림돌이 없었다. 포트와인을 마시지 않은 그녀에게는 그 걸림돌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일 그녀도 그리했다면, 바깥 세계가 그녀의 눈에 얼마간 실감을 잃었다면, 그때 그녀에게 문득 이룰 수 있을 듯 보였을 오래 품어 온 꿈은, 어쩌면 내 품에 안기는 꿈 따위는 전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처녀들이 수가 적었을 뿐 아니라, 아직 “한창때”가 아닌 이 철에는 그들이 잠깐밖에 머무르지 않았다. 불그레한 살결에 초록빛 눈, 발그레한 두 뺨을 지닌, 갸름하고 좌우가 반듯한 얼굴이 어떤 나무들의 날개 달린 씨앗을 닮은 처녀 하나가 기억난다. 어떤 바람이 그녀를 발베크로 실어 왔는지, 또 어떤 바람이 그녀를 실어 갔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녀가 어찌나 갑작스레 사라졌던지,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슬픔에 사로잡혔고, 그 처녀가 영영 떠났음을 깨닫자 용기를 내어 그 슬픔을 알베르틴에게 털어놓았다.

덧붙이자면, 그들 가운데 몇몇은 내가 전혀 모르는 처녀이거나,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한 처녀였다. 흔히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편지를 썼다. 그들의 답장이 사랑의 가능성을 믿게 해 주면, 그 얼마나 큰 기쁨이던가! 한 여자와 사귐이 시작될 무렵이면, 설령 그 사귐이 끝내 아무것도 되지 못할 운명이라 해도, 우리는 그녀에게서 받은 그 첫 편지들을 차마 떼어 놓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아직 싱싱한 진귀한 꽃 선물처럼 늘 곁에 두고 싶어 하며, 바라보기를 멈추는 것은 오직 그것들을 더 가까이 끌어당겨 향기를 맡기 위해서다. 외우다시피 아는 문장은 다시 읽어도 즐겁고, 덜 정확히 기억해 둔 문장에서는 어떤 표현에 담긴 애정의 정도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녀가 “당신의 다정한 편지”라고 썼던가? 우리의 더없는 기쁨에 살짝 흠집이 나는데, 이는 우리가 너무 빨리 읽은 탓이거나 상대의 알아보기 힘든 필체 탓으로 돌려야 한다. 그녀가 쓴 것은 “당신의 다정한 편지”가 아니라 “당신의 편지로부터”였으니. 그러나 나머지는 그토록 다정하다. 오, 내일 이런 꽃이 더 오기를. 그러다 이내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우리는 씌어진 말과 그 쓴 이의 눈, 그 얼굴을 견주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약속을 잡는데, 그러면 어쩌면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건만, 우리는 남에게서 들은 묘사나 제 기억을 좇아 요정 비비안을 만나리라 기대했다가 장화 신은 고양이와 마주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튿날 다시 약속을 잡는다, 어쨌거나 그것은 결국 그녀이고, 우리가 욕망한 사람도 그녀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꿈꿔 온 한 여자를 향한 이 욕망들은, 모습과 이목구비의 아름다움을 꼭 필요한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이 욕망들은 그저 어떤 특정한 사람을 향한 욕망일 뿐, 향처럼 어렴풋하다. 스티락스가 프로티라이아의 향이었고, 사프란이 아이테르의 향이었으며, 향긋한 방향(芳香)들이 헤라의 향, 몰약이 마기의 향, 만나가 니케의 향, 유향이 바다의 향이었듯이. 그러나 오르페우스 찬가에서 노래되는 이 향들은, 그것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그 수가 훨씬 적다. 몰약은 마기의 향이지만, 또한 프로토고노스와 넵투누스, 네레우스, 레토의 향이기도 하다. 유향은 바다의 향이지만, 또한 아름다운 디케와 테미스, 키르케, 아홉 무사, 에오스, 므네모시네, 낮, 디카이오시네의 향이기도 하다. 스티락스와 만나와 향긋한 방향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을 들이마시는 신들을 모두 헤아리기란 불가능할 만큼 그 수가 많다. 암피에테스는 유향을 뺀 모든 향을 지니고, 가이아는 오직 콩과 향긋한 방향들만을 물리친다. 내가 느끼던, 서로 다른 처녀들을 향한 이 욕망들도 그러했다. 처녀들 자체보다 그 수가 적었던 이 욕망들은, 서로 몹시 닮은 실망과 회한으로 바뀌었다. 나는 결코 몰약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쥐피앙과 게르망트 대공을 위해 남겨 두었으니, 몰약은 프로토고노스의 향, 곧 “양성(兩性)을 지니고,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헤아릴 수 없는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잊히지 않으며, 형언할 수 없고, 강림하여, 기쁨에 겨워, 오르기오판테스의 제물로 나아가는” 그 신의 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윽고 철이 무르익어 날마다 새로 오는 이가 생겼고, 천일야화를 홀린 듯 탐독하던 자리를 대신한 내 나들이가 부쩍 잦아진 데에는, 그 나들이를 죄다 망쳐 놓는, 즐거움이라곤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해변은 처녀들로 북적였고, 코타르가 내게 던진 그 생각이 실은 새로운 의심거리를 준 것은 아니었으되 그 방면으로 나를 예민하고 무르게 만들어 어떤 의심도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지 못하도록 조심하게 한 터라, 젊은 여자 하나가 발베크에 닿기가 무섭게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해, 알베르틴이 그 새 손님과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하도록, 나아가 될 수만 있다면 눈길조차 주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그녀에게 청했다. 수상쩍은 처신이 눈에 띄거나 이미 나쁜 소문이 나 있는 여자들은 당연히 더욱 두려웠다. 나는 내 연인에게, 그런 나쁜 소문은 근거가 없으며 어쩌면 험담일 뿐이라고 믿게 하려 애썼는데, 이는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한 채, 아직 의식하지 못한 어떤 두려움에서였다. 곧 그녀가 그 타락한 여자와 벗이 되려 하거나, 나 때문에 그러지 못함을 아쉬워하거나, 그 많은 본보기를 보고 그토록 널리 퍼진 악덕이라면 단죄할 것이 못 된다고 결론지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잘못을 부인하면서, 내 속셈은 다름 아니라 사포주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데 있었다. 알베르틴은 이 여자 저 여자의 부도덕함에 대해 내가 짐짓 내보인 불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에요, 그냥 꾸미는 거라고 봐요, 그런 척해 보이고 싶은 거죠.” 그러나 그러고 나면, 나는 그 다른 여자의 결백을 두둔한 것을 거의 후회했으니, 예전에는 그토록 엄격하던 알베르틴이, 그런 “척”이란 것이 어찌나 우쭐하고 이로운 일인지, 그런 취향이 전혀 없는 여자조차 그렇게 “보이려” 들 만하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는 더는 여자들이 발베크로 오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싶었다. 이제 곧 퓌트뷔스 부인이 베르뒤랭가에 닿을 무렵이라, 생루가 내게 그 취향을 숨기지 않았던 그녀의 하녀가 문득 해변으로 내려올 마음을 먹고, 마침 내가 알베르틴과 함께 있지 않은 날이라면 그녀를 타락시키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몸서리쳤다. 나는 이런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코타르가, 베르뒤랭 부부가 나를 높이 평가하며, 그의 말마따나 나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어하면서도 내가 자기네 집에 와 주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내주려 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으니, 나는 세상의 게르망트 사람들을 죄다 파리로 데려와 그들을 방문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미끼 삼아, 베르뒤랭 부인으로 하여금 이런저런 구실을 대어 퓌트뷔스 부인에게 더는 그녀를 붙들어 둘 수 없다고 알리게 하고 그녀를 당장 그곳에서 떠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를 어지럽히던 것은 무엇보다 앙드레의 존재였던 만큼, 알베르틴의 말이 내게 끼친 진정 효과는 얼마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머지않아 그것이 덜 필요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이면 앙드레가 로즈몽드와 지젤과 함께 그곳을 떠날 것이고, 알베르틴과는 겨우 몇 주만 더 보낼 참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몇 주 동안, 알베르틴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 하는 모든 말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내 의심을 없애거나 그것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려고 미리 짜 둔 듯했다. 그녀는 결코 앙드레와 단둘이 남지 않도록 마음을 썼고, 나들이에서 돌아올 때면 내가 그녀의 집 문 앞까지 바래다주기를, 어디로 갈 때면 내가 그녀를 데리러 오기를 고집했다. 앙드레도 그동안 제 나름으로 꼭 그만큼 애를 써서, 알베르틴과 마주치기를 피하는 듯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이 겉으로 드러난 묵계는, 알베르틴이 우리의 대화를 제 친구에게 일러 주고 내 터무니없는 의심을 부디 가라앉혀 달라고 부탁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일한 낌새는 아니었다.

이 무렵 그랑 호텔에서 한바탕 추문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내 괴로움의 강도를 누그러뜨릴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블로크의 사촌 누이가 얼마 전부터 은퇴한 여배우와 은밀한 관계에 빠져 있었는데, 이내 그 관계만으로는 두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에게 보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제 쾌락에 짓궂음을 더해 주는 듯싶어, 그들은 그 위태로운 유희를 온 세상의 눈앞에 대놓고 내보이기로 했다. 그들은 카드놀이 방의 바카라 탁자 곁에서, 어쨌거나 다정한 친밀함으로 여겨질 법한 애무로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은 더욱 대담해졌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큰 무도장의 어둡지도 않은 한구석 소파 위에서, 그들은 마치 침대에 있기라도 한 양 제가 하는 짓을 조금도 감추려 들지 않았다. 마침 가까이에 아내와 함께 있던 두 장교가 지배인에게 항의했다. 한순간은 그들의 항의가 먹혀들 듯싶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약점이 있었으니, 묵고 있던 네톨므에서 그저 하룻저녁 건너온 처지라 지배인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는 점이다. 반면, 정작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또 지배인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든 간에, 블로크 의 머리 위에는 니심 베르나르 의 비호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까닭을 설명해야겠다. 니심 베르나르 는 집안을 위하는 미덕을 더없이 드높은 데까지 밀고 나간 사람이었다. 해마다 그는 조카를 위해 발베크에 으리으리한 별장을 얻었고, 어떤 초대를 받아도 제 식탁, 실은 조카 내외의 식탁으로 돌아가 저녁을 드는 일만은 그만두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점심만은 결코 집에서 들지 않았다. 날마다 정오면 그는 그랑 호텔에 있었다. 실상인즉, 다른 사내들이 오페라의 합창단 여자를 두듯이, 그도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사환들과 거의 같은 부류의, 에스테르아탈리에 나오는 젊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풋내기 급사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니심 베르나르 와 그 젊은 급사 사이의 마흔 해나 되는 나이 차이라면, 그 급사를 그다지 유쾌하달 수 없는 접촉에서 지켜 주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라신이 바로 그 합창 대목에서 슬기롭게 일러 두었듯이,

위대한 하느님, 얼마나 미덥지 못한 걸음으로
갓 돋은 미덕이 그토록 많은 위험 속을 걷는가!
당신을 찾아 죄 없이 있고자 하는 영혼 앞에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놓여 있는가.

그 젊은 급사가 발베크의 성전-카라반세라이에서 “세상과 동떨어진 채” 자라났을지는 몰라도, 그는 조아드의 훈계를 따르지는 않았다.

재물과 황금을 믿지 말지어다.

그는 어쩌면 “악한 자들이 온 땅에 널려 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변명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니심 베르나르 는 그토록 빠른 정복을 기대하지 않았건만, 바로 첫날부터,

놀라서였는지, 아니면 애무가 못내 그리워서였는지,
그는 그 어린 두 팔이 제 몸을 껴안는 것을 느꼈네.

그리고 이튿날에는, 니심 베르나르 가 그 젊은 급사를 데리고 나간 터라,

그 모진 습격이 그의 순결을 무너뜨렸네.

그 순간부터 그 소년의 삶은 달라졌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빵과 소금을 나르면서도, 그의 온 얼굴은 이렇게 노래했다.

꽃에서 꽃으로, 기쁨에서 더 짜릿한 기쁨으로
이제 우리의 욕망을 마음껏 내닫게 하라.
덧없는 세월의 이야기는 기약이 없으니.
서둘러 이 삶을 누리자!
명예와 영예는
눈멀고 온순한 복종에 주어지는 상이라.
풀죽은 순결을 위해
이제 누가 목소리를 높이랴!

그날부터 니심 베르나르 는 점심 식탁의 제 자리를 차지하러 오는 일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무희를 데리고 사는 사내가 극장 일층 앞자리의 제 자리를 차지하듯이, 다만 이 경우의 무희란 아직 제 드가를 기다리고 있는 남다르고 특별한 부류의 무희였지만). 니심 베르나르 의 낙이란, 식당 바닥을 가로질러, 저 멀리 종려나무 아래 계산대 여인이 옥좌에 앉은 듯한 그곳까지 이어지는 광경 속에서, 시중드느라 바삐 오가는 그 소년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이었다. 소년은 모두를 위해 시중들었으되, 정작 자기를 데리고 사는 니심 베르나르 에게는 누구에게보다 덜 시중들었으니, 그 어린 성가대원이 자기를 넉넉히 사랑해 준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굳이 같은 살가움을 내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사랑이 성가셔서였는지, 그것이 들통나면 다른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냉담함이 니심 베르나르 를 흐뭇하게 했으니, 그 안에 감추어진 온갖 것 때문이었다. 히브리적 격세유전에서였는지 그리스도교 정신에 대한 모독에서였는지, 그는 그것이 유대식이든 가톨릭식이든 그 라신풍의 의식(儀式)에서 남다른 기쁨을 맛보았다. 만일 그것이 에스테르아탈리의 진짜 공연이었다면, 베르나르 는 여러 세기의 간극 탓에 저자인 장 라신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없어, 제가 돌보는 소년에게 좀 더 번듯한 배역을 얻어 줄 수 없음을 아쉬워했으리라. 그러나 그 점심의 의식은 어느 저자의 붓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 “젊은 이스라엘 사람”이 그토록 탐내던 보조 급사 자리로, 나아가 한 줄의 식탁을 맡는 정식 급사 자리로까지 올라설 수 있도록, 지배인과 에메와 좋은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에게 포도주 급사 자리가 제안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베르나르 는 그로 하여금 그 자리를 마다하게 했으니, 그리되면 날마다 와서 그가 초록빛 식당을 이리저리 내닫는 모습을 지켜보고 낯선 사람인 양 그의 시중을 받는 일이 더는 못 하게 될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쁨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해마다 베르나르 는 발베크로 돌아왔고 점심을 집 밖에서 들었으니, 블로크 는 그 두 습관에서, 앞의 것에서는 눈부신 햇살과 그 어느 곳보다 은혜로운 이 해안의 석양에 대한 시적인 취향을, 뒤의 것에서는 늙은 독신자의 뿌리 깊은 별난 버릇을 보았다.

사실인즉, 니심 베르나르 가 해마다 발베크로 돌아오는 참된 까닭도, 현학적인 블로크 부인이 그의 “자리를 비우는 입맛”이라 부르던 것의 참된 까닭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그의 친척들의 오해는, 실은 한결 깊은 이차적인 진실이기도 했다. 니심 베르나르 자신도, 아직 제 드가를 갖지 못한 또 다른 부류의 무희처럼 하인 하나를 데리고 사는 그 취향 속에, 발베크 해변에 대한, 식당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그 경치에 대한 사랑이, 또 병적인 버릇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 그 나머지 하인들은 여전히 여자들이었다. 그리하여 니심 베르나르 는, 발베크의 그 호텔이라는 극장의 극장주와, 그리고 이 모든 일에서 맡은 몫이 결코 단순하달 수 없던 무대감독 겸 연출가 에메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언젠가는 그들이 중요한 배역을, 어쩌면 수석 급사 자리를 얻어 내려고 함께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시적이고 잔잔히 관조적일망정, 니심 베르나르 의 그 기쁨은, 이를테면 지난날의 스완처럼, 어느 모임에 나가면 제 정부를 만나리라는 것을 늘 알고 있는 여자 좋아하는 사내들을 조금은 떠올리게 했다. 니심 베르나르 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그의 애정의 대상이 손에 쟁반을 들고 과일이며 시가를 받쳐 든 채 무대에 나타나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리하여 아침마다, 조카딸에게 입 맞추고, 내 벗 블로크를 붙들고 일에 대해 성가시게 굴고, 내민 손바닥의 각설탕으로 제 말들에게 먹이를 준 뒤면, 그는 그랑 호텔의 점심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 열띤 조바심을 내비치곤 했다. 집에 불이 났더라도, 조카딸이 졸도했더라도, 그는 틀림없이 그대로 길을 나섰으리라. 그래서 그는, 자기를 침대에 붙들어 매어, 점심과 오후 차 사이에 에메에게 부탁해 그 젊은 벗을 집으로 문병 보내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감기를 염병처럼 두려워했으니, 그가 건강 염려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발베크의 호텔을 이루는 복도며 사무실, 응접실, 외투 보관소, 식료품 저장실, 회랑의 그 온갖 미로를 사랑했다. 동방적 격세유전의 기질이 있어 그는 후궁(後宮)을 사랑했고, 밤에 나설 때면 그 통로들을 몰래 뒤지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지하로 내려가, 남의 눈을 피하는 동시에 추문도 면하려 애쓰면서, 젊은 레위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니심 베르나르 는, 라 쥐브의 그 시구를 떠올리게 했다.

오 우리 조상의 하느님, 다시 우리에게 내려오소서,
우리의 신비를 악한 자들의 눈에서 가려 주소서!

나로 말하자면 그와 반대로, 어느 외국인 노부인을 모시는 하녀로서 그녀와 함께 발베크에 온 두 자매의 방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들은 호텔 말투로 “쿠리에”라 불리는 이들이었는데, 쿠리에란 제 코스를 달리려고 거기 있는 사람이라 여긴 프랑수아즈의 말투로는 두 “달리는 자”였다. 호텔들은, 더 고상하게도, 사람들이 “C’est un courrier de cabinet.”라고 노래하던 그 시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손님이 하인들의 거처까지 파고들기란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이내 이 두 젊은 여인, 마리 지네스트 양과 셀레스트 알바레 부인과 순수하면서도 그만큼 굳건한 우정의 유대를 서로 맺게 되었다. 프랑스 중부 높은 산자락, 실개천과 급류의 물가에서 태어난 그녀들은(물은 실제로 그녀들의 옛집 아래를 지나며 물레방아를 돌렸고, 집은 홍수로 자주 상하곤 했다) 그 고장의 특색을 그대로 지닌 듯했다. 마리 지네스트는 한결 고르게 빠르고 무뚝뚝했고, 셀레스트 알바레는 더 부드럽고 나른하며 호수처럼 펼쳐져 있었으나, 무엇이든 앞에 놓인 것을 휩쓸어 가는 급류와 폭풍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무서운 격노의 끓어오름을 안에 품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가 아직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아침이면 종종 나를 보러 왔다. 나는 그녀들처럼 이토록 작정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도무지 하나도 없는데도, 그 말투가 어쩐지 몹시 문학적이어서, 어조에 밴 거의 야성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이 아니었다면 그 말이 꾸며낸 것이라 여겨졌을 정도였다. 나 자신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셀레스트의 기이한 천재성을 기리려 여기 적어 두는 그 찬사들과,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나를 얽어 넣는 듯한 그 비난들에도 아랑곳없이, 내가 크루아상을 우유에 적시는 동안 셀레스트는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을 만한 스스럼없음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 흑옥 같은 머리를 한 검은 꼬마 악마, 오 깊디깊은 심술꾸러기!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꼭 새 같으니까요. 봐, 마리, 깃털을 다듬으며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어찌나 가벼워 보이는지 이제 막 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지 않니. 아! 당신을 낳은 이들이 당신을 지체와 부귀 속으로 태어나게 해준 게 당신한테는 다행이지, 그토록 헤픈 사람이 대체 어찌 되었을꼬. 봐, 크루아상이 침대에 닿았다고 저렇게 내던지네. 저것 봐, 이제 우유를 흘리네, 냅킨을 둘러줄 때까지 기다려요, 당신 혼자서는 절대 못 하니까, 나는 평생 당신처럼 이렇게 손이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 나는 마리 지네스트의 급류가 한결 고르게 소리 내며 제 언니를 사납게 나무라는 것을 듣게 된다. “입 좀 다물지 못해, 셀레스트. 므슈께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너 미쳤니?” 셀레스트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내가 목에 냅킨 두르는 것을 질색했으므로. “아니, 마리, 저것 좀 봐, 뱅, 뱀처럼 곧추 솟아올랐잖아. 정말이지 영락없는 뱀이라니까.” 이런 것들은 그녀의 동물 비유 가운데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에 따르면 나는 언제 잠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밤새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낮에는 다람쥐처럼 재빨랐으니 말이다. “있잖아, 마리, 우리 고향에서 보는 그 다람쥐들 있지, 어찌나 날쌘지 아무리 눈여겨봐도 좇을 수 없는.” “하지만 셀레스트, 므슈가 드실 때 냅킨 두르는 걸 싫어하시는 거 너도 알잖아.” “싫어서가 아니야, 아무도 자기 뜻을 거슬러 뭔가를 시킬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저이는 위대한 나리라서 그걸 드러내고 싶은 거야. 시트를 열 번을 갈아야 한다면 갈겠지만, 저이는 물러서지 않아. 어제 것은 제 몫을 다했지만, 오늘 것은 방금 침대에 깔았을 뿐인데 벌써 갈아야 할 판이니. 오, 저이가 결코 가난한 이들 틈에서 태어날 사람이 아니라고 한 내 말이 옳았어. 봐, 머리카락이 곤두서네, 새 깃털처럼 성이 나서 부풀어 오르는걸. 가엾은 ploumissou!” 이번에는 마리만이 아니라 나까지 항의했으니, 나는 위대한 나리 같은 기분이 조금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레스트는 내 겸손의 진심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고 내 말을 잘랐다. “오! 이야기꾼 같으니! 오! 아첨꾼! 오! 거짓말쟁이! 교활한 악당! 오! 몰리에르!”(이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작가 이름이었는데, 그녀는 그 이름을 내게 갖다 붙였고, 그로써 희곡을 쓸 줄도 알고 그것을 연기할 줄도 아는 사람을 뜻했다.) “셀레스트!” 마리가 위엄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몰리에르라는 이름을 몰랐던 그녀는 그것이 무슨 새로운 욕지거리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셀레스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럼 저이가 어렸을 때 서랍 속에 든 사진을 못 봤단 말이지. 저이는 늘 아주 수수하게 입고 지냈다고 우리를 믿게 하려 들었어. 그런데 거기, 조그만 지팡이를 짚고서, 어느 대공도 걸쳐 본 적 없는 온통 모피며 레이스투성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저이의 엄청난 위엄과, 그보다 더 깊은 다정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서,” 급류 같은 마리가 나무랐다. “이제 저이 서랍까지 뒤지고 다닌단 말이지?” 마리의 걱정을 가라앉히려고 나는 M. 니심 베르나르의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 “아! 므슈,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지 못했을 일들이 다 있더군요. 이런 델 와 봐야 알게 되지요.” 그러고는 이번만은 한층 더 깊은 통찰로 셀레스트를 능가하며. “아! 보세요, 므슈, 한 사람의 삶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결코 알 수 없는 법이에요.” 화제를 돌리려고 나는 밤낮으로 애써 일하시는 내 아버지의 삶을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아! 므슈, 자기 삶에서 자기 몫으로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요, 단 일 분도, 단 하나의 즐거움도. 온통 남을 위한 희생이니, 그런 삶은 바쳐진 삶이에요.” “봐, 마리, 저이가 손을 이불에 얹고 크루아상을 집기만 해도, 저 기품이란. 지극히 하찮은 일을 해도, 여기서 피레네까지 프랑스의 온 귀족이 그이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꿈틀거린다고 할 만하잖아.”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