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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계속) ①

4권 제2부 · 제2장 (계속)

니심 베르나르 의 쾌락 (계속). 모렐의 기이한 성격 소묘. 샤를뤼스 가 베르뒤랭가에서 저녁을 든다.

알베르틴과 나는 작은 지방 열차의 발베크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왔기에 우리는 호텔 합승마차를 타고 그곳까지 왔다.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든 니심 베르나르 가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아탈리의 성가대 소년을 버리고, 인근에서 손님이 많이 드는 “체리 과수원”이라 불리는 농가의 웨이터에게로 마음을 옮긴 참이었다. 불그레한 낯빛에 이목구비가 뭉툭한 그 젊은이는, 누가 봐도 머리 대신 토마토를 얹은 것만 같았다. 똑 닮은 토마토가 그의 쌍둥이 형제의 머리 노릇도 하고 있었다. 무심한 관찰자에게 이런 쌍둥이 사이의 완벽한 닮음이 끄는 매력이란, 잠시 공업화된 자연이 견본 하나를 팔려고 내놓은 듯 보인다는 데 있다. 불행히도 니심 베르나르 는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니, 이 닮음이란 겉모습에 그친 것이었다. 토마토 II는 오로지 부인들에게만 쾌락을 대주는 데 광적인 열의를 보였고, 토마토 I은 몇몇 신사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토마토 I과 보낸 즐거운 시간의 기억에 마치 반사작용처럼 이끌려 베르나르 가 “체리 과수원”에 나타날 때마다, 근시였던 (하기야 둘을 헷갈리는 데 근시일 필요도 없지만) 그 늙은 이스라엘인은 자기도 모르게 앙피트리옹 노릇을 하며 쌍둥이 형제에게 이렇게 수작을 걸곤 했다. “오늘 저녁 어디서 좀 볼까?” 그는 즉시 뺨을 철썩 얻어맞았다. 한 끼 식사 동안에도 그 일이 되풀이될 수 있었으니, 그가 첫째 형제와 시작한 대화를 둘째 형제와 이어갈 때 그랬다. 결국 이런 대접 탓에 그는 관념의 연상으로 토마토라면, 먹는 토마토까지도 넌더리를 내게 되어, 그랑 호텔에서 제 옆 식탁에 새로 온 손님이 그 채소를 주문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에게 나직이 속삭이곤 했다. “소개도 없이 말을 걸어 죄송합니다, 선생. 그런데 토마토를 주문하시는 걸 들었소이다. 오늘 건 상했어요. 선생을 위해 드리는 말씀이지, 내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오, 난 아예 입에 대질 않으니.” 그 낯선 손님은 이 박애롭고 사심 없는 이웃에게 넘치도록 감사하고는, 웨이터를 다시 불러 마음이 바뀐 척했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안 되겠소, 토마토는 됐어요.” 그 광경을 익히 보아온 에메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하곤 했다. “저 베르나르 양반, 늙은 능구렁이라니까, 또 한 사람 주문을 바꿔놓았군.” 이미 연착된 전차를 기다리던 베르나르 는, 시퍼렇게 멍든 눈 때문에 알베르틴이나 나와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 자전거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내달려 오지 않았다면 그 일은 거의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승강기 소년이 숨을 헐떡이며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베르뒤랭 부인이 우리가 호텔을 떠난 직후에 전화를 걸어, 이틀 뒤에 자기와 저녁을 들겠느냐고 물어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곧 알게 되리라. 그러고 나서 소식을 소상히 전한 승강기 소년은 우리를 떠났는데, 중간계급 앞에서는 독립을 뽐내면서도 저희끼리는 권위의 원칙을 되살리는 이 민주적인 “종업원”의 하나였던 터라 이렇게 설명했다. “윗분들 때문에 저는 이만 가봐야 해요.”

알베르틴의 여자친구들은 떠나버렸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나는 그녀에게 기분전환거리를 마련해 주고 싶어 애가 탔다. 발베크에서 나 말고는 아무 벗도 없이 오후를 보내는 데서 그녀가 얼마간 행복을 느낀다 치더라도, 나는 그런 행복이 결코 온전할 수 없음을, 그리고 알베르틴이 아직, 이 불완전함이란 행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이에 (우리 가운데 더러는 평생 그 나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있는 만큼, 제 실망을 내 탓으로 돌리고 싶어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그녀가 그 실망을, 내가 꾸며낸 사정들 탓으로 돌리기를 바랐다. 그 사정들이란 우리가 단둘이 있을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나 없이 카지노나 해변에 남아 있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생루를 만나러 가는 동시에로 함께 가자고 그녀에게 청했던 것이다. 비슷한 심산으로 그녀의 마음을 붙들어두고자, 나는 그녀에게 예전에 배운 적 있는 그림을 다시 해보라고 권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제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자문하지 않을 터였다. 나는 이따금 베르뒤랭가나 캉브르메르가에 그녀를 데려가 저녁을 들게 할 마음도 기꺼이 있었다. 그들이야 내가 소개하는 벗이라면 누구든 반겨 맞았으련만, 다만 먼저 퓌트뷔스 부인이 아직 라 라스플리에르에 와 있지 않음을 확인해 두어야 했다. 그 점은 내가 직접 그곳에 가봐야만 확인할 수 있었고, 이틀 뒤에 알베르틴이 이모와 함께 방문을 나가리란 걸 미리 알고 있던 터라,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르뒤랭 부인에게 전보를 쳐 수요일에 댁에 계시겠느냐고 물었다. 퓌트뷔스 부인이 그곳에 있다면 나는 어떻게든 그 하녀를 만나, 그녀가 발베크로 올 위험이 있는지 알아보고, 만일 그렇다면 언제인지 캐내어, 그날 알베르틴을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작은 지방 열차는, 내가 할머니와 함께 탔던 시절에는 없던 지선을 새로 내어, 이제 동시에라구필까지 이어졌다. 그곳은 중요한 열차들이 서는 큰 역으로, 그 가운데는 내가 생루를 찾아 파리에서 내려올 때 탔던 급행과, 돌아갈 때 탔던 그 짝이 되는 급행도 있었다. 그리고 궂은 날씨 탓에, 그랑 호텔의 합승마차가 알베르틴과 나를 작은 전차의 역인 발베크플라주까지 데려다주었다.

작은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지나온 자리에 남긴 게으르고 느릿한 연기 기둥이 보였다. 이제는 거의 멈춰 선 구름처럼 제 나름의 이동하는 힘에만 갇힌 그 연기는, 크리크토 절벽의 푸른 비탈을 천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수직으로 오르는 길을 앞질러 갔던 그 작은 전차가 뒤이어, 느긋하게 기어오듯 당도했다. 그것에 오르려고 기다리던 승객들은 길을 터주려 물러섰으나, 서두르는 법은 없었다. 저희가 상대하는 것이 사람 좋고 거의 사람 같은 나그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나그네는 초보자의 자전거처럼, 역장의 친절한 신호에 이끌려, 기관사의 억센 손안에서, 누구를 치어 넘길 위험도 없이 제자리에 멎을 터였다.

내 전보는 베르뒤랭가의 전화 전갈을 설명해 주었고, 게다가 더없이 시기가 좋았다. 수요일(내가 정한 날이 마침 수요일이었다)은 베르뒤랭 부인이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라 라스플리에르에서도 만찬회를 위해 따로 떼어둔 날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만찬”을 여는 것이 아니라, “수요회”를 가졌다. 이 수요회는 예술 작품이었다. 어디에도 견줄 데 없음을 온전히 자부하면서도, 베르뒤랭 부인은 수요회들 사이에 미묘한 등급의 차이를 두었다. “지난 수요회는 그 전만 못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다음번은 내가 여태 연 것 중에 손꼽힐 만할 거예요.” 때로는 이렇게 시인하기까지 했다. “이번 수요회는 다른 것들만 못했지요. 하지만 다음 주엔 큰 뜻밖의 선물을 마련해 두었답니다.” 파리 사교철이 끝나가는 몇 주, 시골로 떠나기 전이면, 마님은 수요회의 종막을 알리곤 했다. 그것은 단골들을 자극할 좋은 기회였다. “이제 수요회는 세 번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제 두 번밖에 없어요.” 그녀는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대미를 장식할 다음 수요회를 빠지진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이 대미란 눈속임이었으니, 그녀는 이렇게 알렸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수요회가 없습니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수요일이면 여전히 집에 있을 거예요. 우리끼리 조촐한 수요회를 갖는 거죠. 이 조촐하고 사사로운 수요회야말로 무엇보다 즐거우리라 감히 말하겠어요.” 라 라스플리에르에서는 수요회가 부득이 제한되었는데, 그 길로 지나가는 벗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이런저런 저녁에 그를 초대하곤 했으므로, 한 주의 거의 모든 날이 수요회가 되었다. “손님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카망베르 후작부인 마님이 계신 건 알아요.” 승강기 소년이 내게 그렇게 일러주었다. 캉브르메르라는 이름을 두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기억도, 낯익고 뜻으로 가득 찬 그 음절, 곧 옛말의 기억을 끝내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그 어려운 이름에 쩔쩔맬 때면 그 옛말이 어린 종업원을 구하러 달려왔고, 그는 그것을 대뜸 더 좋아하며 다시 골라 썼다. 결코 게을러서도 아니고 오래되어 뿌리 뽑을 수 없는 버릇이라서도 아니라, 그 말이 채워주는 논리와 명료함에의 요구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정 내내 알베르틴을 품에 안고 있을 만한 빈 객차를 찾아 서둘렀다. 빈 객차를 찾지 못한 우리는, 이미 한 부인이 자리 잡은 칸에 올랐다. 큼직한 얼굴에, 늙고 못생겼으며, 남자 같은 표정을 짓고, 나들이옷으로 한껏 차려입은 채 르뷔 데 되 몽드를 읽고 있는 부인이었다. 그 천박함에도 불구하고 취향은 잡다했으니, 나는 그녀가 어떤 사회 부류에 속할지 자문하는 데서 재미를 느꼈다. 나는 이내 그녀가 어느 큰 매음굴의 주인, 휴가를 나온 포주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녀의 얼굴이, 몸가짐이, 그 사실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런 부인들이 르뷔 데 되 몽드를 읽으리라고는 여태 짐작조차 못했을 따름이다. 알베르틴이 눈짓과 미소로 내게 그녀를 가리켜 보였다. 그 부인은 더할 나위 없이 위엄 있는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이틀 뒤 저 이름난 베르뒤랭 부인에게서 작은 열차의 종착지로 초대받았다는 것, 중간 어느 역에서는 로베르 드 생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가면 페테른에 묵으러 감으로써 캉브르메르 부인을 크게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터라, 공들인 차림새와 모자의 깃털과 르뷔 데 되 몽드 덕분에 자기가 나보다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듯한 이 잘난 체하는 부인을 뜯어보는 동안 내 눈은 빈정거림으로 반짝였다. 나는 그 부인이 니심 베르나르 보다 오래 열차에 남아 있지 않기를, 적어도 투탱빌에서는 내리기를 바랐으나, 웬걸. 열차가 에브르빌에 섰지만 그녀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몽마르탱쉬르메르에서도, 파르빌라뱅가르에서도, 앵카르빌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절망한 나머지, 동시에 앞 마지막 역인 생프리슈를 열차가 떠났을 때, 그 부인은 아랑곳없이 알베르틴을 껴안기 시작했다. 동시에에서는 생루가 역으로 나를 맞으러 나와 있었는데, 그의 말로는 무척 애를 쓴 끝이라 했다. 이모 집에 묵고 있던 터라 내 전보가 이제 막 그에게 닿았고, 미리 아무런 채비도 해둘 수 없었기에 한 시간밖에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아, 이 한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으니,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알베르틴이 온 신경을 생루에게 쏟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고, 내가 말을 붙여도 겨우 대꾸하는 둥 마는 둥이었으며, 내가 다가가면 밀어냈다. 반면 로베르에게는 그 도발적인 웃음을 터뜨리고, 청산유수로 이야기하며, 그가 데려온 개와 장난치고, 그 짐승을 부추기면서 일부러 개 주인에게 몸을 비벼댔다. 나는 기억했다, 알베르틴이 내게 처음으로 입맞춤을 허락한 날, 그녀에게 그토록 깊은 변화를 일으켜 내 일을 그만큼 수월하게 해준 그 미지의 유혹자에게 감사의 미소를 지었던 것을. 이제 나는 그를 소름끼치는 심정으로 떠올렸다. 로베르는 내가 알베르틴에게 무심하지 않음을 알아챈 게 틀림없었으니, 그녀의 도발에 아무 응수도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몹시 성이 났다. 그러다 그가 마치 나 혼자 있기라도 한 듯 내게 말을 걸었고, 그녀가 그것을 알아차리자 그녀의 눈에 비친 내 값이 다시 올라갔다. 로베르는, 내가 동시에에 묵던 시절 저녁마다 그와 함께 저녁을 들게 하던 그의 벗들, 아직 그 수비대에 남아 있는 이들을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남에게서는 나무라던 그 얄미운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며 말했다. “그토록 애써 그들을 매혹해 놓고서 이제 다시 만나기 싫다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의 제안을 물리쳤는데, 알베르틴과 떨어질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이제 내가 그들에게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에게서, 다시 말해 나 자신에게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있을 또 다른 삶이 있기를 열렬히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걸음을 멈추어 이렇게 헤아려 보지는 않는다. 그 다른 삶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이 삶에서마저, 몇 해가 지나고 나면 우리가 예전의 우리에게, 영원히 그대로이고자 했던 그 모습에 등을 돌리고 만다는 것을. 설령 죽음이 한평생 동안 일어나는 변화보다 우리를 더 온전히 바꿔놓으리라 가정하지 않더라도, 만일 그 다른 삶에서 예전의 우리 자신과 마주친다면, 우리는 한때 다정히 지냈으나 여러 해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대하듯 우리 자신에게서 돌아설 것이다. 이를테면 파장 도레에서 저녁마다 다시 만나기를 그토록 즐거워하던 생루의 벗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야기가 한낱 지루한 성가심으로만 여겨질 그런 벗들처럼. 이런 점에서, 그리고 지난날 그곳에서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을 다시 찾아 그리로 가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동시에를 거니는 일은 내게 천국에 다다름을 미리 그려 보인 것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천국을, 아니 차라리 잇따르는 여러 천국을 자주 꿈꾸지만, 그 하나하나는 우리가 죽기 훨씬 전에 이미 잃어버린 천국이며, 그 안에서 우리 또한 길을 잃은 듯 느끼리라.

그는 역에서 우리와 헤어졌다. “하지만 자넨 한 시간쯤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네.” 그가 내게 말했다. “여기서 그 시간을 보내면, 아마 우리 외삼촌 샤를뤼스를 보게 될 걸세. 자네 것보다 십 분 앞서 파리행 열차로 떠나시거든. 나는 벌써 작별 인사를 드렸네, 그분 열차가 떠나기 전에 돌아가야 하니까. 자네 이야기는 안 했네, 자네 전보를 받지 못했던 터라서.” 생루가 우리를 떠난 뒤 내가 알베르틴에게 퍼부은 나무람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가 내게 쌀쌀하게 군 것은, 열차가 멎던 순간 내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기대어 있는 모습을 그가 보았다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을지 모를 생각을 지워버리려는 뜻이었다고. 그는 과연 그 자세를 알아챘고 (나는 그를 미처 보지 못했으니, 보았더라면 좀 더 점잖은 자세를 취했으련만),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일 겨를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였군, 자네가 말했던 그 새침한 계집애들 중 하나 아닌가, 스테르마리아 을 헤프다고 여겨 곁에도 안 가려 했다던?” 과연 나는 로베르에게, 파리에서 내려가 동시에로 그를 찾았을 때, 발베크에서 지낸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알베르틴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고, 그녀가 정숙함의 화신이라고 진심으로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거짓임을 나 스스로 진작에 알아차린 마당에, 나는 로베르만은 그것을 참이라 믿어주기를 더욱 바랐다. 로베르에게 내가 알베르틴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는 벗의 괴로움을 덜어주려 제 즐거움을 마다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 정작 자기가 그 괴로움을 겪는 처지라면 더욱 사무치게 느꼈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 그 애는 아직 좀 어린애 같지. 그런데 자넨 그 애에 대해 흠잡을 만한 걸 알진 못하지?” 나는 조바심을 내며 덧붙였다. “아무것도 없네, 자네 둘이 연인처럼 붙어 있는 걸 본 것 말고는.”

“네 태도는 아무것도 지우지 못했어.” 생루가 우리를 떠난 뒤 나는 알베르틴에게 말했다. “정말 그래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네요, 나는 당신보다 훨씬 더 괴로워요. 두고 봐요,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용서해 줘요.” 그녀는 서글픈 기색으로 손을 내밀며 사정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대합실 입구 쪽에서, 짐을 잔뜩 진 짐꾼을 정중한 거리를 두고 뒤따르게 한 채 샤를뤼스 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파리에서는 그를 오직 야회복 차림으로만, 검은 외투에 갇힌 듯 꼿꼿하게 굳은 모습으로만 마주쳤고, 그 오만한 초연함과 찬사에의 갈망과 드높이 날아오르는 화술이 그를 수직으로 버티게 했으므로, 나는 그가 얼마나 늙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몸을 더 뚱뚱해 보이게 하는 가벼운 여행복 차림으로, 불룩한 배와 거의 상징적이라 할 엉덩이를 뒤뚱대며 대합실을 가로질러 거들먹거리며 걷는 그에게, 잔인한 대낮의 빛이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입술 위에는 화장, 콧등에는 콜드크림으로 굳힌 쌀가루 분, 반백의 머리와 대조를 이루는 흑단빛으로 물들인 콧수염 위에는 검은 칠, 인공조명 아래서라면 아직 젊은 사내의 생기 어린 혈색으로 보였을 그 모든 것이 색칠로 갈라져 드러난 것이다.

그의 열차 때문에 짧게나마 서서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내가 곧 가겠다는 것을 알베르틴에게 보이려고 그녀의 객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샤를뤼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승강장 건너편에 서 있는, 자기 친척인 어느 군인을 불러다 달라고 청했다. 그 군인은 우리 열차를 타려는 듯 서 있었지만, 방향은 반대로, 발베크에서 멀어지는 쪽이었다. “그는 연대 군악대에 있소.” 샤를뤼스 가 말했다. “자네야 아직 젊은 복을 누리고 있고, 나야 불행히도 늙었으니, 자네가 그에게 건너가는 수고를 대신해 줌 직하지 않겠나.” 나는 그가 가리킨 군인에게 건너가는 일을 떠맡았고, 그의 옷깃에 수놓인 리라를 보고 그가 군악대원임을 알았다. 그런데 막 그 심부름을 이행하려던 참에, 그가 내 삼촌의 하인의 아들 모렐, 그토록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모렐임을 알아보았을 때의 내 놀라움이란, 아니 감히 말하건대 그 기쁨이란. 그 추억들 탓에 나는 샤를뤼스 의 전갈을 전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니, 자네가 동시에에 와 있다니?” “예, 포병대에 딸린 군악대에 배속됐지요.” 그러나 그는 이 대답을 무뚝뚝하고 거만한 어조로 했다. 그는 지독한 “허세꾼”이 되어 있었고, 나를 보는 것이 제 아버지의 직업을 떠올리게 하는 터라 아무래도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문득 나는 샤를뤼스 가 우리에게 들이닥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꾸물댄 탓에 그의 참을성이 바닥난 게 분명했다. “오늘 저녁 음악을 좀 듣고 싶은데.” 그는 아무런 서두도 없이 모렐에게 말했다. “하룻저녁에 오백 프랑을 내겠소, 자네 동료 중에 군악대에 벗이 있다면 그에게 솔깃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샤를뤼스 의 오만함을 익히 알던 나는, 그가 이 젊은 벗에게 안녕하냐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데 놀랐다. 그러나 남작은 내게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더없이 다정한 태도로 손을 내밀며 “잘 가게, 여보게.” 하고 그가 말했으니, 이제 자기들을 떠나도 좋다는 눈치였다. 마침 나는 사랑하는 알베르틴을 너무 오래 혼자 두고 있었다. “있잖아.” 객차에 오르며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바닷가 생활과 여행을 하다 보니 깨닫게 돼, 세상이라는 극장에는 배우보다 무대장치가 적고, 상황보다 배우가 적다는 걸.” “어째서 그런 말을 해요?” “방금 샤를뤼스 가 자기 벗 하나를 데려와 달라기에 갔더니, 바로 이 순간, 이 역 승강장에서, 그가 다름 아닌 내 벗임을 막 알아냈거든.” 그러나 이 말을 내뱉는 사이, 나는 남작이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신분의 골을 어떻게 건너뛰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맨 먼저 떠오른 것은, 그것이 쥐피앙을 통해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독자도 기억하겠지만, 쥐피앙의 조카딸이 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마음을 두는 듯 보였던 것이다. 나를 완전히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오 분 뒤면 파리로 떠날 참인 남작이 음악의 저녁을 청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쥐피앙의 조카딸을 다시 기억 속에 그려보며, “재회”가 과연 삶에서 중요한 몫을 한다고 여기기 시작하던 참에, 별안간 진실이 머릿속을 번득이며 스쳐 지나갔고, 나는 내가 어처구니없으리만치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샤를뤼스 는 평생 모렐을 본 적이 없었고, 모렐 또한 샤를뤼스 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기라고는 리라밖에 지니지 않았을망정 한 무인에게 눈이 부시면서도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흥분에 사로잡혀, 내가 이미 아는 사이일 줄은 꿈에도 의심치 못한 그 사람을 데려와 달라고 내게 청했던 것이다. 어쨌든 오백 프랑의 제안이 지난 인연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모렐에게 벌충해 준 게 틀림없었으니, 두 사람이, 자기들이 우리 전차 바로 곁에 서 있다는 것도 아랑곳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샤를뤼스 가 모렐과 내게 다가오던 그 태도를 떠올리며, 나는 이내 그의 몇몇 친척이 거리에서 여자를 꾈 때의 모습과 닮았음을 알아보았다. 다만 욕망의 대상이 그 성을 바꾼 것뿐이었다. 어느 나이가 지나면, 우리 안에서 서로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더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어 갈수록 우리 고유의 특징은 더욱 뚜렷해진다. 자연은 제 융단의 무늬를 조화롭게 짜 넣으면서도, 가로챈 형상들의 다채로움 덕분에 구도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샤를뤼스 가 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수작을 걸던 그 오만함이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던 사교계 사내 넷 중 셋이라면 알아보았을 오만함이지, 몇 해 뒤 그를 감시하게 될 경찰청장이 알아볼 오만함은 아니었다.

“파리행 열차가 신호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그의 짐을 나르던 짐꾼이 말했다. “하지만 난 그 열차로 안 가네, 그걸 물품보관소에 넣게, 이런 빌어먹을!” 샤를뤼스 가 이렇게 말하며 짐꾼에게 이십 프랑을 건넸고, 짐꾼은 바뀐 계획에 어리둥절하면서도 팁에 홀딱 넘어갔다. 이 후한 인심이 대뜸 꽃 파는 여인 하나를 끌어들였다. “이 카네이션 좀 사세요, 보세요, 이 고운 장미, 인정 많으신 나리들, 행운을 가져다줄 거예요.” 참다못한 샤를뤼스 가 그녀에게 이 프랑을 건넸고, 그 대가로 여인은 그에게 축복을, 그리고 꽃까지 안겨주었다. “맙소사, 어째서 우리를 좀 내버려 두질 못하나.” 샤를뤼스 가, 넋 나간 사람처럼 빈정대고 푸념하는 어조로, 하소연하는 데서 얼마간 위안을 얻던 모렐에게 말했다. “우린 지금도 이야기할 게 충분히 많은데 말이야.” 어쩌면 짐꾼이 아직 들리는 거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어쩌면 샤를뤼스 가 청중이 너무 많은 것을 꺼렸기 때문일 수도, 어쩌면 이런 곁말들이 그의 도도한 수줍음으로 하여금 밀회의 청을 너무 곧바로 꺼내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악사는 솔직하고 단호하며 결연한 기색으로 꽃 파는 여인에게 돌아서서, 그녀를 물리치는 손을 들어 올려, 자기들은 꽃 따위는 필요 없으니 되도록 빨리 앞에서 비키라는 뜻을 내보였다. 샤를뤼스 는 이 위압적이고 사내다운 몸짓을 황홀히 지켜보았다. 그 고운 손에는 아직 너무 묵직하고 너무 우악스레 거칠어야 마땅했을 몸짓을, 조숙한 굳셈과 유연함으로 해낸 것이었고, 그 굳셈과 유연함이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이 소년에게 골리앗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어린 다윗의 기색을 주었다. 남작의 감탄은, 우리가 아이에게서 제 나이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을 볼 때 짓게 되는 미소와 저도 모르게 뒤섞여 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내 여행에 데리고 다니며 내 일을 거들게 하고 싶은 사람이로군. 얼마나 내 삶을 수월하게 해줄까.” 샤를뤼스 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파리행 열차가 (샤를뤼스 는 타지 않은 그 열차가) 떠났다. 그러고서 알베르틴과 나는 우리 열차에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샤를뤼스 와 모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 다신 절대 다투지 말아요, 다시 한번 용서를 빌게요.” 생루의 일을 넌지시 가리키며 알베르틴이 되뇌었다. “우린 언제나 서로에게 다정해야 해요.”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 친구 생루로 말하자면, 내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고 여긴다면 크게 잘못 안 거예요. 내가 그에게서 좋게 보는 건 그가 당신을 무척 아끼는 듯하다는 것뿐이에요.” “참 좋은 친구지.”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상대가 알베르틴이 아니었다면 그에 대한 우정에서 틀림없이 지어냈을 그 가공의 장점들을 로베르에게 갖다 붙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지, 솔직하고, 헌신적이고, 의리 있고,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질투에 억눌린 채 생루에 관해 사실만을 말하는 데 그쳤으나, 내가 한 말은 글자 그대로 참이었다. 그것은, 빌파리지 부인이 내게 그를 두고 이야기할 때 썼던 바로 그 말투로 표현되었다. 그때 나는 아직 그를 알지 못한 채 그를 아주 딴판인, 아주 거만한 사람으로 상상하며 속으로 이렇게 뇌었었다. “사람들이 그를 좋게 여기는 건 그가 대단한 귀족 나리이기 때문이지.” 그녀가 내게 “그가 무척 기뻐할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마차를 몰고 떠나려는 그를 호텔 밖에서 본 뒤로, 나는 그 이모의 말이 나를 추어올리려는 한낱 사교적인 상투어일 뿐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나는 그녀가 그 말을 진심으로 했음을, 내가 관심을 둔 것들, 곧 내 독서를 떠올리며,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루가 좋아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리 말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훗날 잠언집의 저자인 그의 조상 라 로슈푸코의 전기를 쓰며 그 일로 로베르에게 자문을 구하고자 하는 어떤 이에게 내가 진심으로 “그가 무척 기뻐할 겁니다.” 하고 말하게 될 차례가 온 것과 같았다. 그저 내가 그를 알게 되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나 자신과 비슷한 지성이 그토록 겉으로 우아한 옷차림과 몸가짐에 감싸여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 깃털만 보고 나는 그를 다른 종의 새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제는 알베르틴이, 어쩌면 생루가 내게 다정하느라 그녀에게 그토록 쌀쌀했던 탓도 조금은 있어, 내가 이미 생각했던 바를 내게 말했다. “아! 그 사람이 그렇게나 헌신적이라고요! 내가 보니 사람들은 상대가 포부르 생제르맹에 속하기만 하면 늘 그에게서 온갖 미덕을 찾아내더군요.” 그런데 생루가 포부르 생제르맹에 속한다는 것은, 그가 제 위광을 벗어던지고 내게 제 미덕을 보여주던 이 여러 해 동안 내가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남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의 변화란, 한낱 사교적 관계에서보다 우정에서 이미 더 두드러지지만, 사랑에서는 얼마나 더 두드러지는가. 사랑에서는 그토록 광대한 규모의 욕망이 아주 사소한 냉담의 기미마저 엄청난 크기로 부풀리는 까닭에, 처음에 생루가 내게 보였던 냉담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도, 나로 하여금 처음에는 알베르틴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짐작하게 하고, 그녀의 벗들을 놀랍도록 비인간적인 존재들로 상상하게 하며, 엘스티르가 그 작은 무리를 두고, 빌파리지 부인이 생루를 이야기할 때와 꼭 같은 심정으로 “착한 아가씨들이지요.”라고 내게 했던 판단을,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어떤 우아함에 대해 품는 관대함 탓으로만 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베르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가 본능적으로 품었을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가 헌신적이든 아니든, 나는 그를 다시는 안 봤으면 진심으로 좋겠어요, 우릴 다투게 만들었으니까. 우린 다신 다투지 말아요. 그건 좋지 않아요.” 그녀가 생루를 탐내는 듯 보였던 만큼, 나는 그녀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도무지 고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 생각에서 당분간은 거의 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걸치자 다른 사람이, 곧 비 오는 날의 지칠 줄 모르는 방랑자가 된 듯한 알베르틴의 레인코트를 마주하고서, 몸에 착 붙고 부드러우며 잿빛인 그 옷이 그 순간에는 비로부터 그녀의 옷을 지키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녀에게 흠뻑 젖어, 조각가에게 그 몸의 본을 떠주려는 듯 내 연인의 몸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같아, 나는 그리워하던 가슴을 질투하듯 감싼 그 겉옷을 헤치고, 알베르틴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자, 나른한 나그네여,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꿈꾸지 않으려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이렇게 말하고는, 짙어가는 땅거미 속에서, 멀고 푸른 골짜기들의 나란한 틈으로 닫힌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물에 잠긴 채 고요한 드넓은 초원을 그녀에게 가리켜 보였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