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그 유명한 수요일에, 발베크에서 라 라스플리에르로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다시 올라탄 바로 그 작은 열차 안에서, 나는 그랭쿠르생바스트에서 코타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베르뒤랭 부인이 두 번째로 보낸 전화 전갈이 그곳에서 그를 만나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그는 내 열차에 오르기로 되어 있었고,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역으로 보낼 마차를 잡으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려 줄 참이었다. 그래서 그랭쿠르가, 동시에르 다음의 첫 정거장이라 작은 열차가 겨우 한순간만 멈추었으므로, 나는 코타르를 못 볼까 봐, 혹은 그가 나를 못 알아볼까 봐 어찌나 두려웠던지 열린 창가에 서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작은 패거리가 그 고정 회원 모두를 얼마나 똑같은 유형으로 빚어 놓았는지 나는 미처 몰랐다. 게다가 그들은 정장 야회복 차림으로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며, 어떤 자신감과 세련됨과 친밀함의 분위기로, 붙잡아 둘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훑듯 평범한 군중의 빽빽한 대열을 스쳐 지나가고, 앞선 역에서 열차에 오른 어떤 동료 회원의 도착을 지켜보고, 앞으로 나눌 담소를 예감하며 반짝이는 그 눈빛으로,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함께 식사하는 습관이 이 작은 무리의 회원들에게 찍어 놓은 이 선택받은 자의 표징이 그들을 구별 짓는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이 수가 많아 총출동하여 한데 모이면, 승객 무리 한가운데에서, 브리쇼가 pecus라 부르던 그 무리 한가운데에서 한결 눈부신 얼룩을 이루었으니, 그 우둔한 얼굴들에서는 베르뒤랭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어떤 관념도,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저녁을 들리라는 어떤 희망도 읽어 낼 수 없었다. 하기야 누군가 이 평범한 여행객들이 듣는 데서, 그 단골들 가운데 몇몇이 얻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을 읊었다 한들, 그들은 나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로 말하면 그 단골들이 여전히 외식을 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내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 다수는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너무나 멀고도 아득하여 나도 모르게 그 아득함을 과장하게 되는 어느 시절부터 그렇게 다녀 왔던 것이다. 그들의 존재뿐 아니라 그 능력의 충만함까지 이어지는 것과, 내가 여기저기서 이미 세상을 뜨는 것을 지켜본 그토록 많은 벗들의 소멸, 이 둘 사이의 대조는, 신문의 마감 직전 속보란에서 가장 뜻밖의 소식, 이를테면 어느 때 이른 죽음의 소식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감정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 죽음은 그리로 이끈 원인들이 우리 앎의 바깥에 남아 있는 탓에 우연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의 밀물 가운데 한결 앞질러 밀려오는 물결이, 뒤이어 올 물결들이 오래도록 그냥 지나쳐 둘 다른 목숨들과 똑같은 높이에 놓인 한 목숨을 채어 가 버린다는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다니는 죽음의 형태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신문의 부고란이 보이는 그 야릇한 뜻밖의 느낌을 낳는 원인임을 우리는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면, 더없이 평범한 대화와 나란히 있을 수 있는 진짜 재능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강요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범용한 사람들도 그 드높은 지위에, 어린 시절 우리의 상상 속에서 어떤 이름난 노대가들에게만 붙어 있던 그 지위에 오른다는 것을 말이다. 몇 해가 지나면 그들의 제자들이 스승이 되어 마찬가지로 유명해지고, 한때 자기들이 느끼던 그 존경과 경외를 남들에게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골들의 이름이 pecus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겉모습은 그 무리의 눈에 여전히 그들을 두드러지게 했다. 실제로 열차 안에서는 (그들 가운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낮 동안 하고 있었을 일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그들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 놓았을 때), 다음 역에서 외따로 떨어진 회원 하나만 더 태우면 될 즈음, 그들이 모여 앉은 객차는, 조각가 스키의 팔꿈치로 좌석이 맡아지고 코타르의 탕지로 깃발이 세워져, 멀리서도 특별 전용칸처럼 눈에 띄었고, 약속된 역에서 늦은 동료를 불러 모았다. 이 환영의 신호를 놓칠 법한 유일한 사람은, 반쯤 눈이 먼 탓에, 브리쇼였다. 하지만 일행 중 하나가 늘 자청해서 그 눈먼 이를 살폈고, 그의 밀짚모자와 초록 우산과 파란 안경이 눈에 띄기 무섭게 그는 부드럽지만 서둘러 정해진 칸으로 인도되었다. 그리하여 단골 가운데 누군가가 여정 중에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지 않는다는 것은, “빗나가 나돌고 있다”거나 심지어 “그 열차로 오지 않았다”는 더없이 심각한 의심을 사지 않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로는 그 반대의 과정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골 하나가 오후에 노선을 따라 멀리까지 다녀와야 했던 탓에, 무리와 합류하기 전에 여정의 일부를 혼자 가야 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그렇게 홀로 떨어져 제 부류 중 저 혼자일 때에도, 그는 으레 어떤 효과를 자아내지 않는 법이 없었다. 그가 향해 가는 ‘미래’가 맞은편 좌석에 앉은 이에게 그를 두드러지게 했으니, 그 사람은 속으로 “저이는 필시 대단한 인물이렷다”라고 중얼거리며 코타르나 조각가 스키의 부드러운 모자 둘레에서 어렴풋한 후광을 알아보았고, 다음 역에서 우아한 무리가, 그곳이 종착지라면 객차 문 앞에서 그 단골을 맞이하여 기다리던 마차 중 하나로 데려가고 두빌 역의 잡역부가 그들 모두에게 공손히 경례하는 광경을, 혹은 그곳이 중간역이라면 그 무리가 객실 안으로 밀려드는 광경을 보고도 절반쯤밖에 놀라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일이, 그것도 황급하게 벌어졌으니, 몇몇은 늦게 도착하여 이미 역에 들어와 있던 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참이었으므로, 코타르가 내가 손짓하는 것을 본 그 객차 창문을 향해 달음질로 이끌고 온 그 무리에 의해서였다. 이 단골들 축에 든 브리쇼는, 다른 이들의 열심을 줄여 놓은 이 몇 해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더 충실해져 있었다. 시력이 갈수록 약해지자 그는 파리에서조차 해가 진 뒤의 작업 시간을 점점 더 줄여야만 했다. 게다가 그는 요즘 소르본과 마음이 맞지 않았으니, 그곳에서는 독일식을 본뜬 과학적 엄밀함의 관념이 인문주의를 누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오로지 강의와 시험관 직무에만 자신을 한정했고, 그리하여 사교 활동에 바칠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다시 말해 베르뒤랭가의 야회, 혹은 어느 단골이 감격에 떨며 이따금 베르뒤랭 부부에게 베푸는 그런 연회에 바칠 시간이었다. 두 번인가, 사랑이 그의 일이 더는 해내지 못하게 된 것을, 곧 브리쇼를 작은 패거리에서 떼어 놓는 일을 거의 이룰 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늘 눈을 부릅뜨고 있던 베르뒤랭 부인은, 게다가 살롱의 이익을 위해 그런 버릇이 몸에 배어 이런 종류의 소동과 처형에서 사심 없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 터라, 그와 그 위험한 인물 사이를 대번에 냉랭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부인 자신의 표현대로 “일을 정리하고” “상처에 벌겋게 달군 인두를 대는” 데 능란했던 것이다. 이 일은 위험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그저 브리쇼의 세탁부에 지나지 않았던 경우에 한결 수월했으니, 교수의 오 층 방에 드나들 권리가 있던 베르뒤랭 부인은, 몸소 그의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무릅쓸 때면 분노로 새빨개져서, 그 가엾은 여자의 코앞에서 문을 닫아 버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아니!” 마님이 브리쇼에게 말했다. “나 같은 여자가 당신을 찾아가는 영광을 베푸는데, 당신은 그런 계집을 들인단 말이에요?” 브리쇼는 자신의 노년이 진창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준 베르뒤랭 부인의 은공을 결코 잊지 않았고 그녀에게 점점 더 강하게 매달렸으나, 이 애정의 되살아남과는 대조적으로,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마님은 지나치게 고분고분한 추종자와, 미리부터 확신할 수 있는 복종에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브리쇼는 베르뒤랭 부부와의 친교에서, 소르본의 모든 동료들과 자신을 갈라놓는 어떤 위세를 얻었다. 그들은 그가 들려주는, 자기들은 결코 초대받지 못할 만찬 이야기에, 여러 평론지에서 그가 거론되는 일에, 살롱에 그의 초상이 걸리는 일에, 그것도 문과대학의 다른 교수직을 차지한 이들이 그 재능을 우러르면서도 그의 눈길을 끌 가망은 없던 어느 이름난 작가나 화가의 손으로 그려진 초상이 걸리는 일에 눈이 부셨으며, 게다가 그 세속 철학자의 옷차림의 우아함에도 그러했으니, 처음에 그들은 그 우아함을 칠칠치 못함으로 잘못 알았다가, 동료가 친절히 일러 준 뒤에야, 실크해트란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으레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며 시골에서의 만찬에는 아무리 근사한 자리라 해도 어울리지 않아서 디너 재킷과 곧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모자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작은 무리가 객차 안으로 뛰어든 뒤 처음 얼마 동안 나는 코타르에게 말조차 붙일 수 없었으니, 그가 숨이 턱까지 차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린 탓이라기보다 그토록 아슬아슬하게 잡아탄 데 대한 자신의 놀라움 탓이었다. 그는 성공에 딸린 기쁨 이상의 것을, 거의 근사한 농담이 주는 유쾌함을 느꼈다. “아! 그거 멋지게 됐군!” 그는 숨을 돌리고 나서 말했다. “일 분만 늦었어도! 맹세코, 이런 걸 두고 아슬아슬하게 때맞춰 왔다고 하는 거지!”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한쪽 눈을 찡긋했는데, 그것은 그 표현이 적절한지를 묻기 위해서라기보다, 이제 자신감이 넘쳐흘렀으므로, 자기 만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그는 나를 작은 패거리의 다른 회원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거의 모두 파리에서 ‘스모킹’이라 부르는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언짢았다. 나는 베르뒤랭 부부가 상류사회 풍습을 향해 소심한 변화를 시작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으니, 그 변화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더뎌지고 ‘새로운’ 음악으로 빨라졌으며, 게다가 그들은 그 변화를 부인했고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줄곧 부인했으니, 마치 장군이 어떤 군사적 목표를, 실패했을 때 패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그것을 이루기 전에는 알리지 않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사교계 쪽에서도 그들을 향해 절반쯤 마중 나올 채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사교계는 그들을, 사교계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집에 드나들지 않으면서도 정작 그 사실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이들로 여기기까지 했다. 베르뒤랭 살롱은 ‘음악의 전당’으로 통했다. 사람들은 뱅퇴유가 영감과 격려를 얻은 곳이 바로 거기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뱅퇴유의 소나타가 도무지 인정받지 못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해도, 현대 최고의 작곡가로 거론되는 그의 이름은 놀라운 효력을 지녔다. 게다가 포부르의 어떤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중간계급보다 더 지적이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그중 셋이 음악을 공부한 터라, 이들 사이에서 뱅퇴유의 소나타는 대단한 유행을 누렸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면 교양을 쌓으라고 부추긴 총명한 어머니들에게 그 소나타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아들들이 관심을 두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 어머니들은 음악회에서 앞쪽 특별석에 앉아 인쇄된 악보를 짚어 가며 음악을 따라가는 베르뒤랭 부인을 어떤 존경심을 품고 바라보곤 했다. 지금까지 베르뒤랭 부부에게 잠재해 있던 이 사교적 성공은 두 가지 사실로만 드러났다. 첫째로, 베르뒤랭 부인은 카프라롤라 대공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그분은 총명하세요, 매력적인 여인이지요.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얼간이들, 나를 지루하게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이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죠.” 조금이라도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말에서, 최상류사회를 드나드는 여인인 카프라롤라 대공비가 베르뒤랭 부인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대공비는 스완 부인의 남편이 죽은 뒤 조문을 갔을 때 그 자리에서 베르뒤랭 부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까지 하며, 그 부부를 아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무슨 이름이라고 하셨죠?” 오데트는 문득 아련한 표정으로 물었다. “베르뒤랭이요? 아, 네, 그럼요,” 그녀는 애처로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그분들을 몰라요, 아니 정확히는, 안다고 할 수도 없이 알 뿐이에요, 여러 해 전에 남의 집에서 이따금 마주치던 분들이지요, 아주 좋은 분들이에요.” 카프라롤라 대공비가 돌아가고 나면 오데트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즉각적인 거짓말은 그녀의 계산에서 나온 열매가 아니라, 그녀의 두려움과 욕망의 표출이었다. 그녀가 부인한 것은 부인하는 편이 영리했을 일이 아니라, 설령 상대가 한 시간 뒤면 그것이 사실임을 틀림없이 듣게 될지라도, 자기로서는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랐던 일이었다. 조금 뒤 그녀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정말이지 질문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먼저 나서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베르뒤랭 부인이요, 어머, 저 그분이랑 예전엔 엄청 친했는걸요!” 마치 자기가 트램을 타 봤노라 일러 주는 귀부인처럼 겸손을 꾸미면서 말이다. “요즘 베르뒤랭 부부 이야기가 참 많던걸요,” 하고 수브레 부인이 말했다. 오데트는 공작부인다운 미소 띤 경멸로 대답했다. “네, 요즘 그분들 얘기를 많이 들은 것 같긴 해요. 이따금 그렇게 사교계에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정작 자기 자신이 가장 새내기 축에 든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로. “카프라롤라 대공비가 거기서 저녁을 드셨대요,” 하고 수브레 부인이 말을 이었다. “아!” 오데트는 미소를 한층 짙게 하며 대답했다. “놀랍지도 않네요. 그런 일은 언제나 카프라롤라 대공비부터 시작해서, 그다음엔 몰레 백작부인 같은 누군가가 뒤따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오데트는 얼마 전에야 자리 잡은 응접실에서 “집들이” 노릇 하기를 일삼는 그 두 귀부인에 대한 깊은 경멸로 가득 찬 듯 보였다. 그녀의 어조에서는, 자기 오데트는 수브레 부인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에 끼어들 부류가 아니라는 속뜻이 느껴졌다.
베르뒤랭 부인이 카프라롤라 대공비의 총명함을 인정한 데 이어, 베르뒤랭 부부가 자기들의 앞날의 운명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둘째 징표는 (물론 그들이 정식으로 요청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야회복 차림으로 저녁을 먹으러 와 주기를 몹시 바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베르뒤랭 씨는 “궁지에 몰린” 그 조카에게 부끄럼 없이 인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랭쿠르에서 내 객차에 오른 이들 가운데는 사니에트가 있었는데, 그는 오래전 사촌 포르슈빌의 손에 베르뒤랭가에서 쫓겨났다가 그 뒤 다시 돌아온 사람이었다. 사교의 관점에서 그의 결점은, 그의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본래 코타르의 그것과 비슷했으니, 곧 수줍음, 남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 그러려다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는 시도들이었다. 그러나 삶의 흐름이 코타르에게, 베르뒤랭가에서는 아닐지언정, 곧 낯익은 환경에 놓일 때 지난 인연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탓에 그는 그곳에서 거의 예전 그대로였으므로 거기서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의 진료에서, 그의 병동에서, 의학 아카데미에서, 냉담과 경멸과 근엄함의 껍데기를,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말장난으로 상을 내리는 사이 점점 더 도드라지는 그 껍데기를 뒤집어쓰게 함으로써 옛 코타르와 새 코타르 사이에 말끔한 단절을 만들어 놓았다면, 같은 결점들이 사니에트에게서는 오히려, 그가 그것을 고치려 애쓸수록 더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기가 자주 남을 지루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그럴 때 코타르라면 했을 법하게 말의 속도를 늦추거나 위엄 있는 태도로 남의 주의를 끌어 붙이기는커녕, 우스개 어조를 취해 자기 이야기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흐르는 것을 눈감아 주게 하려 애썼을 뿐만 아니라, 말의 속도를 높이고 사설을 걷어치우고 약어를 써 가며 덜 장황해 보이고 자기가 말하는 문제에 더 훤한 사람으로 보이려 했으나, 결국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어 끝없이 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만 성공했다. 그의 자신감은 환자들을 얼어붙게 하는 코타르의 그것과는 달랐으니, 그 환자들은 남들이 코타르의 사교적 예의범절을 칭찬하면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진료실에서 당신을 맞을 때 그이는 딴사람이 되지요, 당신은 빛을 마주 보고 그이는 빛을 등지고 앉은 데다, 그 꿰뚫는 듯한 눈까지 하고 말이오.” 그것은 아무 효과도 내지 못했고, 그것이 지나친 수줍음을 감추고 있으며, 하찮은 일 하나로도 넉넉히 흩어져 버리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벗들에게서 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 왔고, 실제로 자기보다 훨씬 못하다고 마땅히 여기던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성공을 손쉽게 거머쥐는 것을 보아 온 사니에트는, 진지한 태도가 듣는 이로 하여금 자기 물건의 값어치를 얕잡아 보게 할까 두려워, 이야기를 꺼낼 때면 늘 그 우스꽝스러움에 먼저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때로는 그가 막 하려는 이야기에서 스스로 찾아낸 듯한 그 우스운 대목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어, 그에게 좌중이 모두 입을 다무는 영광을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맥없이 끝나 버리곤 했다. 마음씨 고운 손님 하나가 이따금, 마치 손에서 손으로 쪽지를 건네듯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찬동하는 미소라는 은밀한, 거의 비밀스러운 격려를 사니에트에게 슬며시 전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솔직한 웃음이라는, 남의 눈에 훤히 드러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책임을 떠맡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나 맥없이 흐지부지된 지 한참이 지나도록, 풀이 죽은 사니에트는 혼자 미소를 지은 채로 있곤 했으니, 마치 그 이야기 속에서 저 혼자만이라도, 자기는 충분하다고 짐짓 여기지만 남들은 느끼지 못한 그 즐거움을 음미하는 듯했다. 조각가 스키로 말하자면,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사람들이 그의 폴란드 성을 발음하기 어려워한 탓이자, 또 그 자신이 어떤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한 뒤로 더없이 존경할 만하지만 다소 따분하고 그 수가 아주 많은 어떤 친척들과 혼동되기를 원치 않는 티를 냈던 탓인데, 그는 마흔넷의 나이에 잘생겼다고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일종의 소년 같은 데가, 꿈꾸는 듯한 아련함이 있었으니, 이는 그가 열 살까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신동, 모든 부인들의 귀염둥이였던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그가 엘스티르보다 더 예술가답다고 우겼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있었을지 모를 닮음이란 순전히 겉모습뿐이었다. 스키를 한 번 만난 적 있는 엘스티르가 그에게 깊은 반감을 느끼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 그런 반감은 우리와 정반대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우리의 가장 못난 데에서 우리를 닮은 사람들, 우리의 가장 나쁜 자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사람들, 우리가 이미 고쳐 낸 결점을 지닌 사람들,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되기 전에 어떤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를 일깨워 우리를 짜증 나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인은 스키가 엘스티르보다 기질이 풍부하다고 여겼으니, 어떤 예술에서든 그가 손쉽게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요, 부인은 그가 그토록 게으르지만 않았던들 그 손쉬움을 재능으로 키워 냈으리라 굳게 믿었다. 이것은 마님에게는 실상 하나의 덤으로 얹힌 재능처럼 보였으니, 부지런한 노력이란 천재성이 없는 사람들의 몫이라 여겼던 부인에게 게으름은 바로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었다. 스키는 청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커프스단추 위에든 문 위 벽널에든 그려 냈다. 그는 작곡가의 목소리로 노래했고, 악보 없이 외워서 연주하며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냈는데, 이는 그의 기교 덕이라기보다 즉흥으로 짚어 넣는 저음부 덕이었으니, 그 저음부는 어느 대목에서 코넷이 들어온다는 것을 손가락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음을 넌지시 알렸고, 그 코넷 소리를 그는 입술로 흉내 내기까지 했다. 말할 때면 야릇한 인상을 주려고 낱말을 골라 썼으니, 마치 화음을 쾅 내리치기 전에 잠시 멈추고 금관 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핑!” 하고 내뱉던 것과 같았는데, 그는 놀랍도록 총명한 사람으로 통했으나 실상 그의 생각이란 두어 가지, 지극히 한정된 것으로 간추릴 수 있었다. 변덕스럽다는 평판에 싫증이 난 그는 자기가 실용적이고 사무적인 사람임을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으니, 여기서 거짓 정확함, 거짓 상식을 우쭐대며 꾸미는 태도가 나왔고, 이는 기억력이라곤 없는 데다 늘 부정확한 정보의 밑천을 지닌 탓에 한층 더 심해졌다. 그의 머리와 목과 팔다리의 움직임은, 그가 아직 아홉 살로 금빛 곱슬머리에 넓은 레이스 깃을 달고 빨간 가죽 반장화를 신은 아이였다면 우아해 보였을 것이다. 코타르, 브리쇼와 함께 시간 여유를 두고 그랭쿠르 역에 다다른 그는, 코타르와 둘이서 브리쇼를 대합실에 남겨 두고 산책을 나섰다. 코타르가 돌아가자고 하자 스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두를 것 없어요. 오늘은 지역 열차가 아니라 도 노선 열차라니까요.” 이 정확함의 세련됨이 코타르에게 자아낸 효과에 흡족해진 그는, 자기 자신을 두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요, 스키가 예술을 사랑한다고, 진흙을 빚는다고, 사람들은 그가 실용적이지 못한 줄로 알지요. 하지만 이 노선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다가도 그들은 역 쪽으로 되돌아섰는데, 그때 별안간 다가오는 열차의 연기를 본 코타르가 다급한 고함과 함께 외쳤다. “죽어라 달려야겠어!” 실제로 그들은 한순간의 여유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으니, 지역 열차와 도 노선 열차의 구분이란 애당초 스키의 머릿속에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공비께서 이 열차에 안 계신가?” 하고 브리쇼가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는데, 후두과 의사들이 환자의 목구멍에 빛을 비추려고 이마에 붙이는 반사경처럼 번들거리는 그의 커다란 안경은, 교수의 두 눈에서 제 생명을 얻어 온 듯했고, 어쩌면 그가 그 안경에 시력을 맞추려 애쓰는 탓인지, 더없이 사소한 순간에도 한결같은 주의와 유별나게 고정된 시선으로 스스로를 응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브리쇼의 병은 그의 시력을 차츰 앗아 가면서, 도리어 그에게 그 감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 주었으니, 이는 흔히 우리가 어떤 물건을, 이를테면 선물로 내주려고 그것과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눈여겨보고 아쉬워하고 우러르게 되는 것과 같았다. “아니, 아니, 대공비는 파리행 열차를 타는 베르뒤랭 부인의 손님 몇과 함께 멘빌로 건너갔어요. 생마르에 볼일이 있던 베르뒤랭 부인이 대공비와 함께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 그렇다면 부인이 우리와 함께 오실 테니, 다 같이 여행하게 되어 즐거울 거요. 멘빌에서 눈을 부릅뜨고 어찌 되나 지켜봐야겠어요! 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가 하마터면 차를 놓칠 뻔했다고나 하시구려. 열차를 봤을 때 나는 얼이 빠졌지 뭐요. 이런 걸 두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착한다고 하는 거요. 우리가 열차를 놓치고, 베르뒤랭 부인이 우리 없이 마차만 되돌아오는 걸 보는 광경을 그려 보시구려. 그야말로 가관이지!” 하고 아직 흥분에서 헤어나지 못한 의사가 덧붙였다. “꽤 근사한 농담거리 아니겠소? 자, 브리쇼, 우리의 이 작은 모험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해 보시오.” 하고 의사가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맹세코,” 하고 브리쇼가 대답했다. “암, 그렇고말고, 열차가 떠나 버린 걸 봤더라면, 그거야말로 고(故) 빌맹이 즐겨 말하던 ‘한 방 먹은 꼴’이었겠지!” 그러나 처음엔 낯선 이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코타르가 작은 카지노의 무도장에서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고, 마치 어떤 기관과 우리의 시각적 기억을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있는 듯이, 알베르틴이 앙드레의 가슴에 제 가슴을 기대던 광경이 내 심장에 끔찍한 통증을 안겼다. 이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베르틴이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은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아 보였으니, 마흔여덟 시간 전 내 연인이 생루에게 던진 추파가 내 안에 새로운 질투를 불러일으켜 묵은 질투를 잊게 한 뒤로는 그러했다. 나는 한 가지 취향이 으레 다른 취향을 밀어낸다고 여길 만큼 순진했다. 아랑부빌에서, 트램이 만원이었던 탓에, 삼등칸 표밖에 없던 파란 작업복 차림의 농부 하나가 우리 객실로 올라탔다. 대공비가 그런 자와 함께 여행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 의사는, 짐꾼을 불러 자기 명함을 내보이며 자신을 큰 철도 회사 한 곳의 의무관이라 소개하고는, 역장으로 하여금 그 농부를 내리게 하도록 몰아붙였다. 이 소동은 사니에트의 소심한 마음을 어찌나 아프게 하고 놀라게 했던지, 그는 그 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자마자, 플랫폼에 몰려 있는 농부들을 보며 벌써부터 그것이 봉기의 규모로 번지지나 않을까 겁을 먹고는, 배가 아픈 척하며, 의사의 난폭한 처사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코타르가 “화장실”이라 부르던 곳을 찾는 척 복도를 따라 어정거렸다. 그것을 찾지 못한 그는 “꼬부랑이”의 저쪽 끝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베르뒤랭 부인 댁에 처음 나오는 거라면, 젊은이,” 하고 새내기 앞에서 제 재간을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난 브리쇼가 내게 말을 건넸다. “‘삶의 온갖 아취’를 이만큼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걸세, 이건 딜레탕티슴이며 포코쿠란티슴이며, 우리 자잘한 속물 아가씨들 사이에 유행하는 온갖 ‘-이슴’으로 끝나는 말들을 지어낸 이들 가운데 하나의 표현을 빌린 것인데, 다름 아닌 탈레랑 대공 씨를 두고 하는 말일세.” 왜냐하면 그는 이 옛 대귀족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작위 앞에 “M.” 하나를 붙이는 것을 재치 있고 “그 시대풍”이라 여겨, “라 로슈푸코 공작 씨”니 “레츠 추기경 씨”니 하고 말했으며, 이들을 두고 또한 “생존투쟁론자 드 공디”니 “불랑제파 드 마르시야크”니 하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몽테스키외를 언급할 때면 언제나 미소를 띠고 “스콩다 드 몽테스키외 법원장 나리”라 부르기를 잊지 않았다. 세상 물정에 밝은 총명한 사람이라면 이토록 강의실 냄새가 물씬 나는 현학에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대공을 이야기할 때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 보이는 완벽한 예법에도 나름의 현학이 있으니, 그것은 또 다른 계급을 드러내는 현학으로, “빌헬름”이라는 이름 앞에 “황제”를 붙이고 전하를 삼인칭으로 부르는 그런 계급의 것이다. “아, 그야말로 대단한 인물이지,” 하고 브리쇼는 여전히 “탈레랑 대공 씨”를 두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할 인물이야. 그분은 하나의 시조라고나 할까.” “매력적인 집이지,” 하고 코타르가 내게 말했다. “온갖 부류가 조금씩 다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베르뒤랭 부인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 말일세, 브리쇼 같은 대학자며, 셰르바토프 대공비 같은 고귀한 귀족이며, 그 대공비로 말하면 외독시 대공비의 벗인 러시아의 대귀부인인데, 외독시 대공비가 아무도 들이지 않는 시각에 그녀만은 홀로 만나 줄 정도라네.” 사실인즉 외독시 대공비는, 여러 해 전부터 모두에게 따돌림당해 온 셰르바토프 대공비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법한 때에 자기 집에 오는 것을 원치 않아, 이른 아침에만 오는 것을 허락했으니, 그 시각이면 황녀 전하는, 셰르바토프 대공비를 마주치기가 그들에게 불쾌한 만큼이나 셰르바토프 대공비로서도 그들을 마주치기가 거북했을 그런 벗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삼 년 동안, 셰르바토프 부인은 마치 손톱 손질꾼처럼 대공비의 집에서 물러 나오기 무섭게 곧장, 막 잠에서 깬 베르뒤랭 부인에게로 건너가 하루의 나머지를 그녀 곁에 딱 붙어 지냈으므로, 대공비의 충성심은 브리쇼의 그것마저 능가했다고 할 만했다. 브리쇼로 말하면 그 수요회에 한결같이 나왔으니, 파리에서는 라베이오부아의 샤토브리앙쯤 되는 인물로 자신을 그려 보는 즐거움을 누렸고, 시골에서는 샤틀레 부인의 살롱에서라면 무엇이 되었을 법한 그런 존재, 곧 그가 늘 (박식한 빈정거림과 흡족함을 담아) “볼테르 씨”라 부르던 그 사람에 맞먹는 존재가 되어 가는 자신을 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