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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계속) ③

4권 제2부 · 제2장 (계속)

벗이 없다는 사정 덕분에 셰르바토프 대공비는 몇 해 전부터 베르뒤랭 부부에게, 그녀를 여느 “단골”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충절을, 곧 충실함의 전형, 베르뒤랭 부인이 오래도록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여겨 오다가 이제 만년에 이르러 마침내 이 새로운 여성 신참에게서 살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한 그 이상(理想)을 보여 줄 수 있었다. 마님이 아무리 질투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들, 그녀의 가장 열심인 단골이 적어도 한 번쯤 그녀를 “저버리지” 않은 적은 지금껏 없었다. 가장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이도 여행의 유혹에 넘어갔고, 가장 금욕적인 이도 정절을 잃었으며, 가장 튼튼한 이도 독감에 걸리고, 가장 게으른 이도 한 달간의 병역에 붙들려 가고, 가장 무심한 이도 죽어 가는 어머니의 눈을 감겨 드리러 갔다. 그리하여 베르뒤랭 부인이 그때 그들에게, 로마 황후처럼 자기야말로 자기 군단이 복종해야 할 유일한 장군이라고, 그리스도나 카이저처럼 자기보다 제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여 그들을 버리고 자기를 따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자는 자기에게 합당치 않다고,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못된 여자들에게 놀아나느니 자기 곁에, 그들의 유일한 약이자 유일한 기쁨인 자기 곁에 머무는 편이 나으리라고 아무리 말해 보아도 다 헛일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인간의 수명을 넘어선 삶의 마지막 나날을 밝혀 주기를 즐기는 운명은, 베르뒤랭 부인으로 하여금 셰르바토프 대공비를 만나게 해 주었다. 가족과 소식이 끊기고 고국에서 쫓겨난 처지에, 아는 사람이라곤 퓌트뷔스 남작부인과 외독시 대공비뿐이었는데, 앞의 부인의 벗들과는 그녀 자신이 마주치기를 원치 않았고 뒤의 대공비는 제 벗들이 대공비와 마주치기를 원치 않았던 까닭에, 그녀는 그 두 집에도 베르뒤랭 부인이 아직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 시각에만 드나들었으며, 기억하는 한 열두 살에 홍역을 앓은 이래로 단 한 번도 방 안에 갇혀 지낸 적이 없었고, 12월 31일에는, 혼자 남겨질까 겁이 난 베르뒤랭 부인이 섣달그믐인데도 그날 밤 거기서 “잠자리를 펴고” 묵지 않겠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으니, “아니, 일 년 중 어느 날인들 못 갈 까닭이 있겠어요? 게다가 내일은 다들 집에 있는 날이고, 여기가 바로 제 집인걸요,” 하숙집에 살면서 베르뒤랭 부부가 이사할 때마다 따라 옮기고 그들의 휴가에도 동행하던 이 대공비는, 베르뒤랭 부인에게 비니의 다음 시구를 그토록 완벽하게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대만이, 사람이 늘 찾아 헤매는 그것으로 나타났도다,

이리하여 이 작은 모임의 여회장은, 죽은 뒤에도 자기 “단골” 하나만은 확실히 붙들어 두고 싶은 마음에, 둘 중 다른 하나보다 오래 사는 쪽이 자기 곁에 묻히겠노라는 약속을 그녀에게서 받아 냈다. 낯선 이들 앞에서, 그 낯선 이들 가운데는 우리가 가장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상대, 곧 우리가 그 경멸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인 우리 자신도 늘 헤아려 넣어야 하거니와, 셰르바토프 대공비는 자기의 단 세 가지 우정, 곧 대공비와 베르뒤랭 부부와 퓌트뷔스 남작부인과의 우정을,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격변이 나머지 모든 것의 파괴 속에서 남겨 준 우정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으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여 골라낸 우정, 고독과 소박함에 대한 어떤 애착이 그녀로 하여금 그 안에만 스스로를 가두게 한 우정으로 내보이려 애썼다. “저는 그 밖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말하곤 했으니, 굴복해야 하는 필연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칙처럼 보이는 그것의 굽힐 수 없는 성격을 강조하면서였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저는 세 집만 드나들어요,” 마치 자기 연극이 네 번째 공연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극작가가 자기 연극을 세 번만 공연하겠다고 미리 알리는 것과 같았다. 베르뒤랭 부인이 이 꾸며 낸 이야기의 진실성을 믿었든 아니든, 그들은 대공비가 그것을 단골들의 마음에 심어 넣도록 거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대공비가 자기에게 쏟아지는 수천 건의 초대 가운데 오직 베르뒤랭 부부만을 골랐다는 것과, 온갖 상류 귀족들에게서 헛되이 구애받아 온 베르뒤랭 부부가 오직 대공비 한 사람을 위해 단 하나의 예외를 두기로 승낙했다는 것을 둘 다 믿게 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기가 타고난 부류를 지루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뛰어난 대공비가, 자기가 어울릴 수 있었을 온갖 사람들 가운데 오직 베르뒤랭 부부만을 재미있게 여겼고, 반면 그들은 그 답례로, 온 귀족 사회가 퍼붓는 접근에도 귀를 막은 채, 제 부류의 다른 누구보다 총명한 대귀부인인 셰르바토프 대공비 한 사람을 위해 단 하나의 예외만을 두기로 승낙한 것으로 보였다.

대공비는 대단한 부자였다. 그녀는 첫날 공연마다 큰 특별석을 하나 잡아, 베르뒤랭 부인의 동의를 얻어 그 자리에 단골들만을 초대하고 그 밖에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창백하고 알 수 없는 인물을, 머리가 세지 않은 채로, 오히려 바싹 마르고 쪼그라든 어떤 산울타리 열매처럼 붉게 물들며 늙어 간 이 여인을 손가락질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영향력과 겸손함을 아울러 우러렀으니, 늘 곁에 아카데미 회원인 브리쇼, 이름난 과학자인 코타르, 당대 으뜸가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뒷날에는 샤를뤼스 를 두고서도, 그녀는 굳이 극장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특별석을 골라 잡고, 뒤편에 물러앉아, 극장 안의 나머지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오로지 그 작은 무리만을 위해 살았으며, 그 무리는 공연이 끝나기 조금 전이면, 어딘가 수줍고 매혹적이며 스러진 아름다움이 없지 않은 이 야릇한 여왕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러나 셰르바토프 부인이 관객을 바라보지 않고 그늘 속에 머물렀다면, 그것은 자기가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알 수 없었던 살아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으려는 몸부림이었으니, 특별석 안의 작은 패거리는 그녀에게, 위험 앞에서 거의 주검처럼 굳어 버리는 어떤 동물들의 그 부동(不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교계 사람들을 사로잡는 새로움과 기이함에 대한 갈증은, 어쩌면 모두가 찾아가 인사하는 앞쪽 특별석의 명사들보다 이 신비로운 이방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녀가 자기들이 아는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리라고, 놀라운 지성에 안목 있는 너그러움이 어우러져 그녀 둘레에 저 저명한 인사들의 작은 모임을 붙들어 두는 것이리라고 상상했다. 대공비는, 누군가에 대해 그녀에게 말을 꺼내거나 누군가를 그녀에게 소개하면, 사교계를 몹시 꺼린다는 그 꾸며 낸 이야기를 이어 가려고 격심한 냉담을 가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코타르나 베르뒤랭 부인의 도움을 받아 몇몇 새내기가 그녀와 안면을 트는 데 성공했는데,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 그녀가 어찌나 들떴던지, 짐짓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던 그 꾸며 낸 이야기도 잊은 채, 그 새내기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가 전혀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아무도 사귀려 들지 않는 대공비가 저렇게 시시한 사람을 두고 예외를 두다니 참 이상도 하지.” 그러나 이렇게 결실을 맺는 만남은 드물었고, 대공비는 단골들 한가운데에 옹색하게 갇혀 지냈다.

코타르는 “화요일에 아카데미에서 그를 볼 걸세”라고 말하기보다 “수요일에 베르뒤랭가에서 그를 볼 걸세”라고 말하는 일이 훨씬 잦았다. 그는 또 그 수요회를,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피할 수 없는 약속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코타르는, 별로 찾는 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초대에 응하는 것을, 마치 그 초대가 군대나 법원의 소환장 같은 명령이기라도 한 듯 지엄한 의무로 삼는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수요일에 베르뒤랭 부부를 “저버리게” 하려면 아주 중요한 환자의 부름이 있어야 했는데, 그 중요함은 게다가 병세의 위중함보다 환자의 신분에 달려 있었다. 과연 코타르는, 사람은 더없이 훌륭했으나, 뇌졸중을 일으킨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장관의 감기를 위해서라면 수요일의 즐거움을 마다했을 것이다. 그런 때조차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베르뒤랭 부인께 미안하다고 전해 주오. 이따 늦게라도 가겠다고 말이오. 각하께서도 하필 그날 감기에 걸리실 게 아니라 다른 날을 고르셨어도 좋았을 텐데.” 어느 수요일 그들의 늙은 식모가 팔의 혈관을 베였을 때, 베르뒤랭가에 가려고 이미 디너 재킷을 걸친 코타르는, 아내가 조심스레 그 상처를 싸매 줄 수 없겠느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투덜거렸다. “당연히 안 되지, 레옹틴, 내가 흰 조끼를 입은 게 안 보이오?”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코타르 부인은 부랴부랴 그의 수석 조수를 불러오게 했다. 그는 시간을 아끼려고 삯마차를 탔는데, 그 바람에 그의 마차가 안뜰로 들어서는 바로 그때 코타르를 베르뒤랭가로 데려가려던 코타르의 마차가 나오던 참이라, 서로 비켜 주느라 뒤로 물러나는 데 오 분이 헛되이 흘러갔다. 코타르 부인은 그 조수가 주인이 야회복 차림인 것을 볼까 봐 걱정했다. 코타르는 자리에 앉아 그 지체를 저주했는데, 어쩌면 뉘우침에서였을 터이고, 고약한 심사로 길을 나섰으니 그것을 흩어 없애는 데는 그 수요일의 온갖 즐거움이 죄다 필요했다.

코타르의 환자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게르망트가 사람들과 왕래가 있으십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는 더없이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게르망트가 사람들을 딱히 만난다고는, 글쎄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친구들 집에서 그런 사람들을 다 만나지요. 물론 베르뒤랭가 이야기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결코 영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재산이 탄탄한 이들이지요. 흔히들 베르뒤랭 부인의 재산을 3천5백만이라고 잡습니다. 이런, 3천5백만이라니, 제법 큰 액수 아닙니까. 그러니 그 부인은 인색하게 굴 일이 없지요.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말씀하셨는데, 그 차이를 설명해 드리지요. 베르뒤랭 부인은 대단한 귀부인이고,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아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겁니다. 물론 그 구별을 아시겠지요. 어쨌든 게르망트가 사람들이 베르뒤랭 부인 댁에 오든 안 오든, 그 부인은 오직 최상류의 인사들만 대접합니다. 셰르바토프가, 포르슈빌가, e tutti quanti, 하나같이 최고로 높은 이들, 프랑스와 나바르의 온 귀족들이지요. 그런 이들과 내가 대등하게 담소를 나누는 걸 당신도 보시게 될 겁니다. 물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학문의 대공(大公)들을 만나면 그저 반가워 어쩔 줄 모르지요.” 하고 그는 어리석은 자만이 어린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그 미소는 자랑스러운 만족감이 입가에 불러온 것이었는데, 그것은 전에는 포탱이나 샤르코 같은 이들에게나 붙던 표현이 이제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데서 온 만족이라기보다, 오랜 수련 끝에 관습이 허락한 그 온갖 표현들을 마침내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알게 되어 통째로 외워 두었다는 데서 온 만족이었다. 그리하여 셰르바토프 대공비를 베르뒤랭 부인 댁에 드나드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내게 언급한 뒤, 코타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덧붙였다. “이만하면 그 댁 격이 어떤지 짐작이 가시지요, 내 말뜻을 아신다면?” 그가 하려던 말은 그 댁이 유행의 극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예브도키야 대공비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러시아 부인을 대접한다는 건 조금도 유행일 게 없었다. 하지만 셰르바토프 대공비가 설령 그 부인조차 몰랐다 한들, 베르뒤랭 살롱이 더없이 우아하다는 코타르의 평가도, 그곳에 초대받았다는 그의 기쁨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드나드는 집의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듯 보이는 그 광채는, 무대 위 왕과 왕비의 광채보다 더 본질적일 게 없다. 그런 배우들을 치장하는 데 연출가가 진짜 의상과 진짜 보석을 사들이느라 수백, 수천 프랑을 쓴들 헛일이니, 뛰어난 의상가라면 유리 조각을 촘촘히 박은 거친 천 저고리와 종이 망토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것만으로 훨씬 호사스러운 인상을 자아낼 테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위대한 이들 사이에서 평생을 보냈으면서도, 그에게 그들이란 그저 지루한 친척이나 성가신 지인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요람에서부터 몸에 밴 친숙함이 그의 눈에서 그들의 온갖 특별함을 벗겨 버렸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로 그 같은 사람이라도 어쩌다 우연히 더없이 미천한 이들과 어울리게 되기만 하면, 수많은 코타르들은 응접실을 귀족적 우아함의 중심지쯤으로 상상하게 되는 어느 작위 있는 부인들 앞에서 영영 눈이 멀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부인들이란 부인 드 빌파리지나 그 벗들 정도조차 못 되는 이들이니, 빌파리지 부인 쪽은 그래도 지난날의 영화에서 몰락한 대귀부인들, 함께 자란 귀족 사회가 이제는 발길을 끊은 부인들이었다. 아니, 그 많은 사내들이 그 우정을 자랑거리로 삼던 그 부인들로 말하자면, 만약 그 사내들이 회고록을 펴내 그 여인들과 그 야회에 드나든 다른 여인들의 이름을 밝힌다 해도, 부인 드 캉브르메르는 물론 부인 드 게르망트조차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그렇게 코타르에게는 저마다의 후작부인이 있으니, 마리보의 작품에 나오듯 그에게는 “남작부인”인 그 여인, 이름이 도무지 입에 오르지 않아 아무도 그녀에게 이름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는 그 “남작부인”인 것이다. 코타르는, 정작 귀족 사회는 그런 부인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건만, 그녀가 곧 귀족의 화신이라고 더욱더 굳게 믿는다. 작위가 미심쩍을수록 술잔이며 은식기며 편지지며 여행 가방에 관(冠) 문장이 한결 요란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포부르 생제르맹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고 여기는 수많은 코타르들은, 어쩌면 정말로 대공들 틈에서 산 사람들보다 더 봉건적 몽상에 사로잡혀 상상을 부풀렸을지 모른다. 마치 일요일이면 이따금 “옛” 건물을 구경하러 가는 소상인이, 정작 돌 하나하나가 죄다 우리 시대의 것이고 궁륭은 비올레르뒤크의 제자들이 파랗게 칠하고 금빛 별을 뿌려 놓은 그런 건물에서 도리어 중세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곤 하는 것처럼. “대공비는 멘빌에 계실 겁니다. 우리와 함께 가시겠지요. 하지만 당장 소개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베르뒤랭 부인에게 맡기는 편이 좋아요. 내가 빈틈을 찾지 못한다면 말이지요. 찾게 되면, 내가 나서서 황소의 뿔을 잡듯 밀어붙일 테니 믿으셔도 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사니에트가 바람을 쐬러 나갔던 척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와 물었다. “나는 이 신사분께,” 브리쇼가 말했다, “당신도 기억하실 어느 말을 인용하던 참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다시 말해 18세기의) 세기말 인사 가운데 으뜸가는 이의 말이지요. 이름하여 샤를 모리스, 페리고르의 신부(神父) 말입니다. 그는 처음엔 탁월한 저널리스트가 되겠거니 싶었지요. 그러나 끝이 좋지 않았으니, 요컨대 장관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인생에는 이런 비극이 있는 법이지요. 더구나 양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정치가여서, 순종 귀족다운 드높은 경멸을 품고 한때 프로이센 왕을 위해 일하기를 서슴지 않았고, 여기엔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결국 ‘좌파 중도’의 탈을 쓴 채 죽었지요.”

생피에르데지프에서 눈부신 아가씨 하나가 우리 칸에 올라탔는데, 안타깝게도 작은 무리에 속한 처녀는 아니었다. 나는 목련꽃 같은 살결, 검은 눈, 대담하고 감탄스러운 몸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싶어 했다. 칸 안이 더웠기 때문인데, 모두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싶지는 않았던 데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였으므로, 그녀는 빠르고 서늘하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바깥바람 좀 쐬어도 괜찮으시겠어요, 선생님?” 나는 그녀에게 “우리와 함께 베르뒤랭가에 가시지 않겠어요?”라거나 “이름과 주소를 알려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대답한 것은 이랬다. “아니요, 바깥바람은 개의치 않습니다, 아가씨.” 그러자 그녀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일행분들이 담배 연기를 싫어하시나요?” 하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세 번째 역에서 그녀는 객차에서 뛰어내렸다. 이튿날 나는 알베르틴에게 그녀가 누구일지 물었다. 사람에게는 오직 한 종류의 사랑밖에 없으리라고 어리석게 여기던 나는, 로베르를 향한 알베르틴의 태도를 질투하면서도 다른 여자들에 관한 한 마음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은, 내 생각엔 꽤 진심으로,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녀를 꼭 다시 만나 보고 싶은데.” 하고 나는 외쳤다. “걱정 말아요, 사람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마련이니까.” 하고 알베르틴이 대꾸했다. 그런데 이 경우만큼은 그녀가 틀렸다. 나는 담배를 피우던 그 어여쁜 아가씨를 다시는 보지 못했고, 그녀가 누구인지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어째서 내가 오랫동안 그녀를 찾기를 그만두었는지도 앞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이따금 그녀를 떠올릴 때면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살아나는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아가씨들을 예전과 똑같은 기쁨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면 우리는 그 시절의 해로도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그 뒤로 이미 열 해가 더 흘러 그동안 그녀의 꽃다움은 시들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따금 어떤 사람을 다시 찾을 수는 있어도 시간을 없앨 수는 없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겨울밤처럼 음울한, 예기치 못한 어느 날에 이른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아가씨도, 다른 어떤 아가씨도 찾지 않으며, 오히려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녀의 마음을 끌 만한 매력도, 그녀를 사랑할 힘도 넉넉히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말 그대로의 뜻에서 우리가 무력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일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힘으로는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임을 느낄 뿐이다. 영원한 안식은 이미 우리가 건너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건네 들리게 하지도 못할 간격들을 박아 놓았다. 제대로 된 발판에 발을 딛는 것마저 위태로운 도약을 놓치지 않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성취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그런 꼴로 비친다니, 설령 젊은 날의 이목구비와 금빛 머리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들 말이다! 우리는 이제 젊음과 보조를 맞추는 그 고된 일을 떠맡을 수 없다. 우리의 육욕이 스러지기는커녕 도리어 커지기라도 한다면 사태는 더욱 딱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욕망을 채우려고, 애써 마음을 끌 필요도 없는 여자, 단 하룻밤만 잠자리를 함께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 여자를 구해 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에 관해선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겠지요?” 하고 코타르가 말했다. 사실 그날 작은 패거리의 큰 사건은 베르뒤랭 부인이 아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나타나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르 인근에서 군 복무를 하던 그는 자정 통행증을 받아 일주일에 세 번 라 라스플리에르로 저녁을 들러 오곤 했다. 그런데 이틀 전, 난생처음으로 단골들은 트램에서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가 차를 놓친 모양이라고들 여겼다. 하지만 베르뒤랭 부인이 다음 트램을, 그리고 마지막 트램이 도착할 때까지 잇달아 마차를 마중 보냈어도, 마차는 번번이 빈 채로 돌아왔다. “틀림없이 영창에 처박힌 겁니다, 그가 이렇게 자리를 비운 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어요. 원 참! 군대라는 게, 아시다시피, 그런 친구들한텐 성깔 사나운 하사관 하나면 충분하거든요.” “그가 오늘 저녁에도 오지 않는다면,” 하고 브리쇼가 말했다, “베르뒤랭 부인으로선 더욱 낭패이겠지요. 우리 인심 좋은 안주인께서 라 라스플리에르를 빌린 이웃, 캉브르메르 후작 부부를 오늘 처음으로 만찬에 초대하셨으니 말입니다.” “오늘 저녁에 캉브르메르 후작 부부가 온다고요!” 코타르가 소리쳤다. “난 전혀 몰랐습니다. 물론 다들 그렇듯 나도 그분들이 언젠가 오리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요. Sapristi!” 하고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셰르바토프 대공비, 캉브르메르 후작 부부라니.” 그러고는 그 이름들을 되뇌며 그 가락에 스스로 도취되어 내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겁니다.” “그래도 당신은 첫 등장이니 여럿 가운데 하나로 묻어가면 됩니다. 오늘은 유난히 화려한 모임이 될 겁니다.” 그러고는 브리쇼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마님께서 노발대발하고 계실 겁니다. 이제 우리가 나타나 거들어 드려야 할 때예요.” 라 라스플리에르에 자리 잡은 뒤로 줄곧 베르뒤랭 부인은 단골들 앞에서, 하룻저녁 집주인들을 초대해야 할 필요를 마지못해 느끼면서도 못마땅해하는 척해 왔다. 그렇게 하면 내년엔 더 좋은 조건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순전히 실리 때문에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다는 생각을 어찌나 끔찍하게 여기고 무슨 도깨비라도 되는 양 몰아세우는 척했던지, 그 저주스러운 날을 자꾸만 미루었다. 하기야 그 만찬은 그녀가 내세우는 이유들 때문에 실제로도 그녀를 조금은 불안하게 했으니, 다만 그 이유를 부풀렸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만찬은 그녀가 속으로만 간직하고 싶어 하던 속물근성의 이유들로 그녀를 매혹했다. 그러니 그녀는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작은 패거리가 온 세상 어디에도 견줄 데 없는 것, 여러 세기가 흘러야 빚어지는 저 완벽한 총체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기에, 그 한복판에 이 시골뜨기들이 끼어드는 광경을 떠올리면 몸서리를 쳤다. 니벨룽의 반지뉘른베르크의 명가수도 모르는 사람들, 대화라는 합주에서 제 몫을 해내지 못할 사람들, 베르뒤랭 부인 댁에 옴으로써 그 유명한 수요회 가운데 하루를 망쳐 놓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수요회란 어긋난 음 하나면 산산조각 나기에 충분한 저 베네치아 유리잔처럼 견줄 데 없이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예술의 걸작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틀림없이 철저한 드레퓌스파에 군국주의자들일 겁니다,” 하고 베르뒤랭 가 말했다. “아, 그거라면 난 상관없어요, 그 일에 대해선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하고 베르뒤랭 부인이 대꾸했다. 진실한 드레퓌스파였던 그녀도 자기 살롱에 압도적인 드레퓌스주의를 사교적으로 상쇄해 줄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반가웠을 것이다. 드레퓌스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사교적으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교계 사람들에게 라보리, 레나크, 피카르, 졸라는 여전히 얼마간 반역자였으므로, 그런 자들은 작은 핵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게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정치로 잠깐 발을 들였다가, 베르뒤랭 부인은 예술의 세계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댕디며 드뷔시도 그 사건에서 “틀린” 편에 서 있지 않았던가? “그 사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브리쇼만 떠올리면 돼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단골 가운데 참모본부 편을 든 사람은 그 교수뿐이었고, 그 때문에 그는 베르뒤랭 부인의 평가에서 크게 깎여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언제까지고 논할 필요는 없어요. 아니, 실은 캉브르메르 부부가 날 지루하게 한다는 게 진짜 이유죠.” 단골들로 말하자면, 캉브르메르 부부와 안면을 트고 싶다는 감춰진 욕망에 들뜬 데다, 베르뒤랭 부인이 그들을 초대하기 꺼려진다며 꾸며 보이던 태도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터라, 날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 자신이 초대의 명분으로 내세우던 그 속된 논거들로 되돌아와 그것들을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이참에 아예 마음을 굳히시지요,” 코타르가 거듭 말했다, “그러면 내년엔 조건이 더 좋아질 거고, 정원사 삯도 그쪽에서 낼 테고, 목초지도 쓰실 수 있게 됩니다. 지루한 저녁 한 번쯤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요. 난 오로지 두 분 생각만 하는 겁니다,” 하고 그는 덧붙였다. 하기야 그의 가슴도 한 번은 뛰었던 적이 있었으니, 베르뒤랭 부인의 마차를 타고 가다 캉브르메르 노(老)부인의 마차와 마주쳤을 때였고, 더구나 역에서 후작 곁에 서게 되었을 때는 철도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한편 캉브르메르 부부로 말하자면, 사교계의 흐름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살고 있던 터라 유행을 좇는 몇몇 부인들이 베르뒤랭 부인을 제법 대접하며 이야기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고, 그저 그녀를 보헤미안들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법적으로 혼인한 사이도 아닌 사람, 그리고 지체 있는 이들로 치자면 자기네 말고는 결코 아무도 만나지 못할 사람쯤으로 여겼다. 그들이 그녀와 저녁을 함께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오로지, 여러 철에 걸쳐 다시 세 들기를 바라 마지않는 세입자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더구나 지난달에 그녀가 최근 그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천한 농담 한마디 없이 그 운명의 날을 맞을 채비를 했다. 단골들은 그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으니, 베르뒤랭 부인이 그들이 듣는 데서 날을 잡아 놓고는 번번이 미룬 일이 하도 잦았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결정들은 이 만찬을 떠올릴 때 그녀가 느끼는 지루함을 과시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근처에 머물면서 이따금 모임에 빠지려 드는 작은 무리의 일원들을 조바심 나게 붙들어 두려는 것이기도 했다. 마님이 그 “대단한 날”이 자기 못지않게 그들에게도 즐거운 기대이리라고 눈치챈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만찬이 자기에게는 사교적 의무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라고 그들을 믿게 해 놓고서, 그들의 헌신에 호소하려는 속셈이었다. “설마 나를 저 중국 고관들과 단둘이 내버려 두진 않겠지요! 이 지루함을 견디려면 다들 총출동해야 해요. 물론 우리가 관심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이야기하지 못하겠지요. 망쳐 버린 수요회가 되겠지만, 어쩌겠어요!”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