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하고 브리쇼가 내게 설명했다, “내 생각에 베르뒤랭 부인은, 대단히 총명하고 자신의 수요회를 다듬는 데 무한한 공을 들이는 분이니만큼, 유서 깊은 가문이되 머리는 빈약한 이 촌뜨기들을 만나고 싶어 안달하실 리가 결코 없지요. 노(老)후작부인을 초대할 마음까지는 도저히 낼 수 없어, 아들과 며느리를 부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신 겁니다.” “아! 우리가 캉브르메르 후작부인을 보게 되는 겁니까?” 하고 코타르가, 부인 드 캉브르메르가 미인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짐짓 감상적인 곁눈질을 곁들이는 게 좋겠다 싶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후작부인이라는 칭호는 그에게 색정적인 온갖 공상을 불러일으켰다. “아! 나는 그분을 압니다,” 하고 스키가 말했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과 함께 외출했다가 한 번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뜻으로 ‘안다’는 건 아니겠지요?” 하고 의사가 외알 안경 너머로 능글맞은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이것은 그가 즐겨 하는 농담 가운데 하나였다. “그분은 총명합니다,” 하고 스키가 내게 일러 주었다. “물론,” 하고 그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 마디 한 마디에 미소를 지으며 뜸을 들여 말을 이었다, “그분은 총명하면서 동시에 총명하지 않아요. 교양이 부족하고 경박하지만, 아름다운 것에 대한 본능이 있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언정 결코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게다가 낯빛이 매력적이에요. 그리기에 재미난 인물일 겁니다,” 하고 그는, 마치 그녀가 자기 앞에서 자세를 잡고 있기라도 한 듯 눈을 반쯤 감으며 덧붙였다.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은 스키가 그토록 섬세한 뉘앙스로 늘어놓는 것과는 정반대였으므로, 나는 그저 그녀가 매우 저명한 토목기사 씨 르그랑댕의 누이라는 것만 짚어 두었다. “자, 보십시오, 당신은 예쁜 여인에게 소개될 참입니다,” 하고 브리쇼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요. 클레오파트라만 해도 대단한 귀부인이 아니라 자그마한 여인, 우리 메야크가 그려 낸 저 무심하고도 무서운 자그마한 여인이었는데, 그 결과가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 얼간이 안토니우스 하나뿐 아니라 고대 세계 전체에 미친 결과를 말입니다.” “저는 이미 부인 드 캉브르메르에게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아! 그렇다면 낯익은 자리인 셈이겠군요.” “그분을 만나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하고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그분이 콩브레의 옛 본당 신부가 이 고장 지명에 관해 쓴 책 한 권을 주기로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상기시켜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그 신부에게도, 또 어원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그 신부가 대는 어원은 하나도 믿지 마십시오,” 하고 브리쇼가 대꾸했다, “라 라스플리에르에 그 책이 한 권 있어서 훑어보았습니다만, 값어치 있는 건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요. 온통 오류투성이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Bricq라는 낱말이 이 근방 여러 지명에 나옵니다. 그 갸륵한 성직자는 그것이 높은 곳, 요새화된 곳을 뜻하는 Briga에서 왔다는 참으로 별난 생각을 품었지요. 그는 벌써 켈트 부족인 Latobriges, Nemetobriges 따위에서 그것을 찾아내고는, Briand, Brion 같은 이름까지 그것으로 끌어내립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이 지역만 놓고 보자면, Bricquebose는 높은 곳의 숲, Bricqueville은 높은 곳의 거주지, 그리고 멘빌에 이르기 전 곧 우리가 멈추게 될 Bricquebec은 시내 곁의 높은 곳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는 한 마디도 진실이 없으니, 이유는 간단합니다. bricq는 그저 다리를 뜻하는 고대 노르드어 낱말이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fleur라는 낱말도, 부인 드 캉브르메르의 그 비호받는 신부가 한 군데에서는 스칸디나비아어 floi, flo와, 다른 데에서는 아일랜드어 ae 또는 aer와 이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만, 의심할 여지 없이 덴마크인들의 fjord로서 항구를 뜻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 훌륭한 신부는 라 라스플리에르에 잇닿은 생마르르베튀 역이 Saint-Martin-le-Vieux(vetus)를 뜻한다고 여깁니다. vieux라는 낱말이 이 지방 지명학에서 큰 몫을 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Vieux는 대개 vadum에서 오며, les Vieux라 불리는 곳에서처럼 건널목을 뜻합니다. 영국인들이 ‘ford’(Oxford, Hereford)라 부르는 바로 그것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 Vêtu는 vetus가 아니라 vastatus, 곧 황폐해지고 헐벗은 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근방에 Sottevast, 곧 Setold의 vast가 있고, Brillevast, 곧 Berold의 vast가 있지요. 신부의 잘못을 내가 더욱 확신하는 것은, 생마르르베튀가 예전에 Saint-Mars du Gast, 심지어 Saint-Mars-de-Terregate라 불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들에서 v와 g는 같은 글자입니다. 우리는 dévaster라 하면서도 gâcher라고도 하지요. Jâchères와 gatines(고지 독일어 wastinna에서 온)는 같은 뜻이니, Terregate는 곧 terra vasta인 셈입니다. Saint-Mars로 말하자면, 예전엔 (외람되지만) Saint-Merd였고, 이는 Saint-Medardus로서 Saint-Médard, Saint-Mard, Saint-Marc, Cinq-Mars, 심지어 Dammas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게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근처에서 Mars라는 이름을 지닌 곳들이 그저 이교적 기원(마르스 신)의 증거라는 점입니다. 그 기원은 이 고장에 여태 살아남아 있건만 그 거룩한 분은 한사코 보려 하지 않지요. 신들에게 바쳐진 높은 곳들이 특히 흔하니, 이를테면 유피테르의 산(Jeumont) 같은 것입니다. 당신의 그 신부는 이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정작 기독교가 자취를 남긴 곳이면 어디든 그 자취는 그의 눈을 벗어나 버립니다. 그는 멀리 Loctudy까지 나아가서는, 그의 말로는 야만적인 이름이라지만 실은 그저 Locus Sancti Tudeni일 뿐이며, Sammarcoles에서도 Sanctus Martialis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그 신부는,” 하고 브리쇼는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hon, home, holm이라는 어미를 언덕을 뜻하는 낱말 holl(hullus)에서 끌어냅니다만, 실은 그것은 섬을 뜻하는 노르드어 holm에서 온 것으로, Stockholm에서 익히 보셨을 테고, 이 고장 곳곳에 하도 널리 퍼져 있어 la Houlme, Engohomme, Tahoume, Robehomme, Néhomme, Quettehon 따위가 있지요.” 이 이름들은 알베르틴이 Amfreville-la-Bigot(브리쇼의 말로는 잇따라 그 영지를 다스린 두 영주의 이름에서 왔다고 한다)에 가고 싶어 하다가, 그러고는 Robehomme에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멘빌로 말하자면, 우리는 마침 그곳에 다다르는 참이었다. “Néhomme는,” 하고 나는 물었다, “Carquethuit이나 Clitourps 근처 어디쯤 아닙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Néhomme는 그 holm, 곧 저 유명한 자작 Nigel의 섬 또는 반도이며, 그의 이름은 Néville에도 살아남아 있지요. 당신이 말한 Carquethuit과 Clitourps는 부인 드 캉브르메르의 그 비호받는 신부에게 또 한 번 헛짚을 빌미를 줍니다. 그는 carque가 교회, 곧 독일인들의 Kirche임을 물론 알아보았지요. Dunkerque는 말할 것도 없고 Querqueville도 떠올려 보십시오. 거기서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저 유명한 낱말 Dun을 살펴보는 편이 낫겠는데, 켈트인들에게 그것은 높은 땅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당신의 그 신부는 Eure-et-Loir에 거듭 나오는 Duneville에 홀려 버렸습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Châteaudun, Cher의 Dun-le-Roi, Sarthe의 Duneau, Ariège의 Dun, Nièvre의 Dune-les-Places, 그 밖에도 숱하게 찾아냈을 겁니다. 이 낱말 Dun은 우리가 곧 내려서 베르뒤랭 부인의 안락한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 Douville과 관련해 그를 묘한 오류로 이끕니다. 그의 말로는 Douville이 라틴어로 donvilla라는 겁니다. 사실 Douville은 정말로 높은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지요. 무엇이든 다 아는 당신의 그 신부도 그럼에도 자기가 헛짚었음을 느낍니다. 실제로 그는 어느 옛 문서 대장에서 Domvilla라는 이름을 찾아냈거든요. 그러자 그는 말을 뒤집습니다. 그의 말로는 Douville이 몽 생미셸 수도원장, 곧 Domino Abbati에게 속한 봉토라는 것이지요. 그는 그 발견에 무척 흡족해합니다만, Sainte-Claire sur Epte 협약에 따르면 몽 생미셸에서 벌어졌다는 그 추문투성이 생활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기이한 노릇이지요. 하기야 덴마크 왕을 이 해안 전체의 종주(宗主)로 그려 보는 것만큼 유별난 일은 아닙니다만. 그 왕은 이곳에서 그리스도 숭배보다 오딘 숭배를 훨씬 더 부추겼으니까요. 반면 n이 m으로 바뀌었다는 추정은 나로선 조금도 거슬리지 않으며, 이 역시 Dun(Lugdunum)에서 나온, 지극히 정확한 Lyon보다도 변형이 적습니다. 하지만 사실인즉 그 신부는 잘못 짚었습니다. Douville은 결코 Donville이었던 적이 없고 Doville, 곧 Eudonis villa, Eudes의 마을이었지요. Douville은 예전에 Escalecliff, 곧 절벽을 오르는 계단이라 불렸습니다. 1233년경 Escalecliff의 영주 Eudes le Bouteiller가 성지로 떠났는데, 출발 전날 그는 그 교회를 Blanchelande 수도원에 넘겨주었지요. 예의를 주고받은 끝에 마을은 그의 이름을 따게 되었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Douville이 있게 된 겁니다. 다만 덧붙여 두어야 할 것은, 게다가 나 자신도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지명학이라는 게 정밀한 학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역사적 증거가 없었더라면 Douville은 얼마든지 Ouville, 다시 말해 ‘물’에서 왔다고 해도 좋았을 테니까요. aqua에서 온 ai 형태(Aigues-Mortes)는 끊임없이 eu나 ou로 바뀝니다. 그런데 Douville 아주 가까이에 이름난 샘 몇이 있었으니, Carquethuit입니다. 당신은 그 신부가 거기서 기독교적 기원을 냉큼 찾아내고 싶어 했으리라 짐작하실 겁니다. 더구나 이 고장은 개종시키기가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니, Saint Ursal, Saint Gofroi, Saint Barsanore, Brèvedent의 Saint Laurent가 잇달아 애를 쓰다가 결국 그 일을 Beaubec의 수도사들에게 넘겨 버렸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thuit에 관해서는 그 필자가 잘못 짚었으니, 그는 그것을 Cricquetot, Ectot, Yvetot에서처럼 건물을 뜻하는 toft의 한 형태로 봅니다만, 실은 Braquetuit, le Thuit, Regnetuit 따위에서처럼 개간지, 곧 일궈 낸 땅을 뜻하는 thveit이지요. 마찬가지로 그는 Clitourps에서 마을을 뜻하는 노르만어 thorp를 알아보면서도, 그 낱말의 첫 음절은 비탈을 뜻하는 clivus에서 왔음이 틀림없다고 우깁니다만, 실은 그것은 벼랑을 뜻하는 cliff에서 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실책들은 그의 무지 때문이라기보다 그의 편견 탓입니다. 아무리 충직한 프랑스인이라 한들, 명백한 증거를 거스르면서 Saint-Laurent en Bray를 한때 그토록 유명하던 로마의 사제로 여길 필요는 없지요. 실은 그가 더블린의 대주교 Saint Lawrence ’Toot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애국심보다도 더, 당신 벗의 종교적 편협함이 그를 괴상한 오류로 이끕니다. 그래서 라 라스플리에르의 우리 주인 부부 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Montmartin이라 불리는 두 곳, 곧 Montmartin-sur-Mer와 Montmartin-en-Graignes가 있는데 말이지요. Graignes의 경우엔 그 착한 신부가 아주 옳았으니, 그는 Graignes가 라틴어로 Grania, 그리스어로 Krene이며 못과 늪을 뜻함을 알아보았지요. Cresmays, Croen, Gremeville, Lengronne 같은 예를 우리가 얼마든지 더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Montmartin에 이르면, 당신의 그 자칭 언어학자는 이것들이 틀림없이 Saint Martin에게 바쳐진 교구들이라고 한사코 우깁니다. 그는 그 성인이 이곳의 수호성인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도, 그 성인이 나중에야 받들어졌을 뿐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차라리 그는 이교에 대한 증오로 눈이 멀어 있는 거지요. 만약 그것이 Saint Martin의 문제라면 우리가 Mont-Saint-Michel이라 하듯 Mont-Saint-Martin이라 해야 마땅한데, 그는 이것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정작 Montmartin이라는 이름은 훨씬 더 이교적인 방식으로 마르스 신에게 바쳐진 신전들을 가리키지요. 그 신전들은, 사실 다른 자취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근방에 어마어마한 로마 군영들이 있었다는 다툴 여지 없는 사실만으로도 그 존재가 매우 그럴듯해지며, Montmartin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남아 온갖 의심을 걷어 냅니다. 보시다시피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당신이 보게 될 그 자그마한 소책자는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콩브레에서 그 신부가 우리에게 곧잘 흥미로운 어원을 들려주었다고 항변했다. “아마 제 고장에서는 더 나았겠지요. 노르망디로 옮겨 오면서 방향 감각을 잃은 게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그에게 득이 될 것도 없었지요,” 하고 나는 덧붙였다, “신경쇠약을 안고 이곳에 왔다가 류머티즘을 얻어 다시 떠났으니 말입니다.” “아, 그건 그의 신경쇠약 탓입니다. 그는 신경쇠약에서 문헌학으로 빠져 버린 거지요, 나의 훌륭한 스승 포클랭이라면 그리 말했을 겁니다. 자, 코타르, 말해 보십시오, 신경쇠약이 문헌학에 어지러운 영향을 미치고, 문헌학이 신경쇠약을 달래는 효과를 내며, 신경쇠약이 나으면 류머티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의심할 나위 없지요, 류머티즘과 신경쇠약은 신경관절증의 하위 형태들입니다. 전이를 통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옮아 갈 수 있고요.” “이 저명하신 교수께서는,” 하고 브리쇼가 말했다, “몰리에르를 떠올리게 하는 저 씨 퓌르공 못지않게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잔뜩 밴 프랑스어로 자신을 표현하시는군요! 나의 삼촌 격인, 그러니까 우리 국민적 인물 사르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만…” 하지만 그는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교수가 사나운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던 것이다. “빌어먹을!” 하고 그는 또렷이 말할 힘을 되찾자 소리쳤다, “우리가 멘빌을(들었소?) 지나쳐 버렸어, Renneville도 말이야.” 그는 기차가 생마르르베튀에 서고 있고 승객 대부분이 거기서 내리는 것을 방금 알아챈 참이었다. “서지도 않고 내처 달렸을 리는 없어. 우리가 캉브르메르 부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게 분명해. 내 말 좀 들어 보게, 스키, 잘 들어, 자네에게 ‘걸작 하나’를 들려줌세,” 하고 코타르가 말했다. 그는 어떤 의학계에서 흔히 쓰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대공비도 이 기차에 타고 계실 텐데, 우리를 못 보고 다른 칸에 오르신 게 분명해. 어서 찾으러 갑시다. 이 일로 곤란해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고는 그가 우리 모두를 이끌고 셰르바토프 대공비를 찾아 나섰다. 그는 빈 칸 구석에서 르뷔 데 되 몽드를 읽고 있는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퇴짜 맞을 것이 두려워, 삶에서나 기차에서나 제자리를, 제 구석을 지키는 버릇, 그리고 상대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 전에는 손을 내밀지 않는 버릇을 몸에 익혀 두었다. 단골들이 우르르 그녀의 칸으로 몰려드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책을 읽었다. 나는 이내 그녀를 알아보았다. 지위를 잃었을지언정 그래도 지체 높은 태생인, 어쨌거나 베르뒤랭가 같은 살롱의 진주인 이 여인이 바로 이틀 전 같은 기차에서 내가 어쩌면 매음굴의 여주인일지 모른다고 여겼던 그 부인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흐릿하던 그녀의 사교적 정체는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자마자 또렷해졌으니, 마치 수수께끼를 붙들고 골머리를 앓다가 마침내 온갖 모호함을 걷어 내는 그 낱말을 알아맞힐 때와 같았다. 사람의 경우 그 낱말이란 곧 그의 이름이다. 기차에서 함께 여행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틀 뒤에 알아내는 것은, 잡지 지난 호에 실린 문제의 답을 다음 호에서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난 놀라움이다. 큰 식당, 카지노, 지방 열차는 이런 사교적 수수께끼들의 가족 초상화 전시실이다. “대공비님, 멘빌에서 그만 엇갈린 모양입니다! 이 칸에 와서 앉아도 될까요?” “아, 그럼요,” 하고 대공비가 말했다. 그녀는 코타르가 자기에게 말을 걸었을 때, 오직 그때에야 잡지에서 두 눈을 들었는데, 그 눈은 씨 드 샤를뤼스의 눈처럼, 더 부드럽기는 해도, 짐짓 모르는 척하던 사람들을 완벽하게 보고 있었다. 코타르는 내가 캉브르메르 부부를 만나러 초대받았다는 사실이 충분한 추천이 된다고 결론짓고는, 잠시 망설인 끝에 나를 대공비에게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대공비는 더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으나 내 이름은 처음 듣는 듯했다. “Cré nom!” 하고 의사가 외쳤다, “아내가 내 흰 조끼 단추를 갈아 달게 하는 걸 깜빡했군. 원, 여자들이란,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해요. 자넨 절대 장가들지 말게, 젊은이,” 하고 그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달리 할 말이 없을 때 어울린다고 여기는 농담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그는 곁눈질로 대공비와 나머지 단골들을 슬쩍 살폈다. 그들은 그가 교수이자 아카데미 회원이라는 이유로 마주 미소 지으며, 그의 서글서글함과 거드름 없는 태도를 감탄스러워했다. 대공비는 우리에게 그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았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전날 저녁 두통으로 몸져누워 있었으나, 그날 저녁에는 동시에르에서 만난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날 아침 함께 점심을 든 베르뒤랭 부인에게서 이것을 들었다고, 빠른 목소리로, 러시아식 억양으로 목구멍 안쪽에서 부드럽게 r 발음을 굴리며, 마치 그것이 r이 아니라 l이기라도 한 듯이 우리에게 말했다. “아! 오늘 아침 그분과 점심을 드셨군요,” 하고 코타르가 대공비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로 눈을 돌렸으니, 이 말의 속뜻은 대공비가 마님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내게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충실한 단골이시군요!” “네, 나는 그 자그마한 모임을 아주 사랑해요, 어쩜 그리 총명하고, 그리 상냥하고, 결코 심술궂지 않고, 아주 소탈하고, 조금도 속물스럽지 않고, 손끝까지 영리한지 몰라요.” “Nom d’une pipe! 표를 잃어버린 게 틀림없어, 아무 데도 없잖아,” 하고 코타르가, 이런 상황에서는 도무지 까닭 없는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그는 알고 있었다. 랑도 마차 두어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Douville에서, 검표원이 표 없이도 그를 통과시켜 줄 뿐 아니라 도리어 더욱 공손히 모자를 벗으리라는 것을. 그 인사가 검표원의 관대함을 설명해 주는 셈이었으니, 다시 말해 그가 코타르를 베르뒤랭가의 단골손님 가운데 하나로 물론 알아보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일로 날 유치장에 처넣진 않겠지,” 하고 의사가 결론지었다. “선생님, 아까 말씀하시길,” 하고 나는 브리쇼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이름난 샘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 “다음 역 이름이 그 수많은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Fervaches라고 하지요.” “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네요,” 하고 대공비가, 마치 내게 예의상 “저이는 좀 지루한 사람이지요, 안 그래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웅얼거렸다. “아니 대공비님, Fervaches는 온천을 뜻합니다. Fervidae aquae. 그건 그렇고 그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하고 브리쇼가 말을 이었다, “코타르, 큰 소식을 전하는 걸 깜빡할 뻔했습니다. 베르뒤랭 부인이 아끼던 피아니스트였던 우리 가엾은 벗 데샹브르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요.” “꽤 젊은 사람이었는데,” 하고 코타르가 대꾸했다, “간에 탈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그쪽에 딱하게도 뭔가 잘못된 데가 있었을 겁니다. 오래전부터 정말이지 안색이 아주 이상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젊지는 않았지요,” 하고 브리쇼가 말했다, “엘스티르와 스완이 베르뒤랭 부인 댁에 드나들던 시절에 이미 데샹브르는 파리에서 명성을 쌓았고, 놀랍게도 먼저 외국에서 성공의 세례를 받지도 않은 채 그리했지요. 아! 그 친구는 성 바넘의 복음을 따르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잘못 아셨습니다, 그 시절엔 그가 베르뒤랭 부인 댁에 드나들었을 리 없어요, 아직 갓난애였는걸요.” “하지만 내 낡은 기억이 나를 속이는 게 아니라면, 데샹브르가 스완을 위해 뱅퇴유의 소나타를 연주하곤 했다는 인상을 나는 갖고 있었습니다. 귀족 사회와 인연을 끊은 그 클럽 신사가, 언젠가 자신이 우리 국민적 오데트의 부르주아화한 부군(夫君)이 되리라고는 아직 꿈에도 모르던 시절에 말이지요.” “그럴 리 없습니다, 뱅퇴유의 소나타가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 연주된 것은 스완이 그곳에 발길을 끊고 한참 지난 뒤였어요,” 하고 의사가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며 자기에게 쓸모 있으리라 여기는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다른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덕분에 그런 이들은 달리 할 일 없는 사람들의 기억력에 넋을 잃고 감탄하곤 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쩔 도리 없이 헷갈리고 계십니다, 머리야 여전히 멀쩡하시지만,” 하고 의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브리쇼는 자기가 잘못 알았음을 인정했다. 기차가 섰다. 우리는 라 소뉴에 있었다. 그 이름이 내 호기심을 돋우었다. “이 모든 이름이 무슨 뜻인지 정말 알고 싶군요,” 하고 나는 코타르에게 말했다. “씨 브리쇼에게 물어보십시오, 어쩌면 아실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la Sogne는 la Cicogne, 곧 Siconia입니다,” 하고 브리쇼가 대답했고, 나는 다른 숱한 이름에 대해서도 그에게 캐묻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기 “구석”에 대한 애착도 잊고, 셰르바토프 부인은 친절하게도 나와 자리를 바꿔 주겠다고 했다. 내가 관심 있는 다른 어원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 하던 브리쇼와 더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녀는 기관차를 향해 앉든 등지고 앉든, 서서 가든 앉아서 가든, 어떻게 가든 자기로선 조금도 상관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의 속내를 알아채기 전까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 속내가 호의적임을 깨닫는 즉시 힘닿는 데까지 무엇이든 해 주려 했다. 마침내 기차가 두빌페테른 역에 섰는데, 이 역은 페테른 마을과 두빌 마을에서 엇비슷하게 떨어져 있어 그런 까닭에 두 이름을 하이픈으로 이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Saperlipopette!” 하고 코타르 박사가, 표를 걷는 개찰구에 이르렀을 때, 마치 방금에야 표를 잃은 것을 알아챈 척하며 외쳤다, “표를 찾을 수가 없군, 잃어버린 게 틀림없어.” 하지만 검표원은 모자를 벗으며 괜찮다고 그를 안심시키고는 정중하게 미소 지었다. 대공비는(캉브르메르 부부 때문에 역까지 나오지 못한, 하기야 좀처럼 나오는 일도 없던 베르뒤랭 부인의 시녀라도 되는 양 마부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며) 나를, 그리고 브리쇼도 함께 마차 한 대에 태웠다. 의사와 사니에트와 스키는 다른 마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