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마님이 불쑥 중얼거렸다. 간단히 짚어 두자면, 베르뒤랭 부인은,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스완과 오데트가 그녀의 집에서 작은 악절에 귀 기울이던 시절의 그녀와는 더 이상 같지 않았다. 이제는 그 악절이 연주되는 것을 들어도, 예전처럼 짐짓 넋을 잃은 듯한 감탄의 표정을 꾸며 지을 필요가 없었으니, 그것이 어느새 그녀의 예사로운 표정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바흐며 바그너며 뱅퇴유며 드뷔시의 음악이 그녀에게 안긴 헤아릴 수 없는 신경통의 영향으로, 베르뒤랭 부인의 이마는, 마침내 류머티즘으로 뒤틀린 팔다리처럼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있었다. 아름답고 고통에 찬 젖빛의 두 구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고 그 안에서 화음이 끝없이 굴러다니는 그녀의 관자놀이는, 은빛으로 센 머리채를 양옆으로 젖혀 넘기며, 마님을 대신하여, 그녀가 한마디도 할 필요 없이 이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오늘 밤 내게 무엇이 닥칠지 나는 알고 있노라.” 그녀의 이목구비는 더 이상 지나치게 격렬한 미적 인상들을 차례차례 빚어내려 애쓰지 않았으니, 그것들 자체가 이미 폐허가 되었으되 당당한 얼굴 위에 붙박인 항구적 표정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안겨 오는 저 시련에 체념한 이 태도, 그리고 지난번 소나타의 여파에서 미처 헤어나기도 전에 만찬을 위해 옷을 차려입자면 요구되던 그 용기의 결과로, 베르뒤랭 부인은 가장 가슴 저미는 음악을 듣는 순간에도 경멸하듯 무심한 낯빛을 잃지 않았고, 실은 아스피린 두 숟갈을 삼키려고 슬며시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아, 그래, 저기들 오는군!” 문이 열리며 모렐이, 그 뒤로 샤를뤼스 씨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베르뒤랭 씨가 안도하며 외쳤다. 후자로 말하면, 베르뒤랭 부부와 저녁을 드는 것이 사교계에 드는 일이라기보다 미심쩍은 소굴로 드는 일에 가까웠던 터라, 여주인에게 더없는 경의를 다하면서 처음으로 매음굴에 발을 들이는 학생처럼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게다가 사내답고 냉담해 보이려는 샤를뤼스 씨의 집요한 욕구는, (그가 열린 문간에 나타난 순간) 소심함이 꾸며낸 태도를 허물고 잠재의식의 자원에 호소하자마자 깨어나는 저 예의범절의 오랜 관념들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어느 샤를뤼스가 이렇듯 낯선 이들을 향한 본능적이고 격세유전적인 예의의 감정에 흔들릴 때면, 그를 낯선 응접실로 이끌어 여주인과 마주할 때까지 그 몸가짐을 빚어 주는 것은, 언제나 여신처럼 곁을 지키거나 분신으로 화한 여성 친족의 혼령이다. 그리하여 어느 젊은 화가는, 독실한 개신교도인 사촌 누이 손에 자란 탓에, 고개를 갸웃 기울여 떨면서, 눈을 천장으로 치켜뜨고, 보이지 않는 토시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쥔 채 방에 들어서는데, 그 토시의 기억된 형체와 그 실재하는 수호의 존재가, 겁먹은 화가로 하여금 현관과 안쪽 응접실 사이에 입을 벌린 심연을 광장공포증 없이 건너게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 그 기억이 그를 돕고 있는 그 경건한 친족도 바로 그렇게, 여러 해 전에 방에 들어서곤 했으니, 어찌나 애처로운 기색이었던지, 대체 무슨 재앙을 알리러 왔나 싶다가도, 첫마디를 듣고 나면, 지금 이 화가의 경우처럼, 그저 만찬 뒤의 방문차 들렀을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삶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행위를 위하여, 더없이 존경스러운, 어쩌면 더없이 신성한, 때로는 그저 더없이 순진무구할 뿐인 과거의 유산들을, 끊임없는 매춘 속에서 불러내고 써먹고 변질시키기를 요구하는 법이라, 바로 그 동일한 법칙에 따라, 비록 이 경우에는 다른 양상을 낳긴 했으나, 코타르 부인의 조카들 가운데 하나, 계집애 같은 몸짓과 어울려 다니는 무리 탓에 집안의 근심거리이던 그 조카는, 무슨 놀랄 일이라도 감춰 두었거나 큰 재산을 물려받았노라 알리려는 듯, 언제나 환한 얼굴로 신나게 방에 들어서곤 했으니, 그 행복은 굳이 설명해 보라 해도 부질없었을 터인데, 그것이 무의식적 유전과 제자리를 벗어난 성(性) 탓임에랴. 그는 발끝으로 걸었고, 명함첩을 쥐고 있지 않다는 데 자기도 아마 놀랐을 것이며, 이모가 입술을 벌리는 걸 보고 배운 대로 입술을 벌린 채 손을 내밀었고, 그 불안한 눈길은 거울로 향했으니, 모자도 쓰지 않았으면서, 코타르 부인이 언젠가 스완에게 물었던 것처럼, 제 모자가 삐뚜름하지나 않은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샤를뤼스 씨로 말하면, 그가 살아온 사교계가 이 결정적 순간에 그에게 다른 본보기들을, 다른 상냥함의 전형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상대할 때 평소 아껴 두던 가장 진귀한 우아함을 끄집어내 써야 한다는 격언을 대주었던 터라, 그는 파닥이듯, 앙큼하게, 그리고 만약 치마를 둘렀더라면 그의 뒤뚱거리는 몸짓을 한껏 부풀리고 방해했을 바로 그 활개짓으로, 베르뒤랭 부인을 향해 나아갔는데, 어찌나 우쭐하고 영광스러워하는 기색이던지, 그 집에 초대받은 것이 그로서는 더없는 은총이라도 되는 듯했다. 마치 마르상트 부인이 방에 들어서는 것 같았으니, 자연의 착오로 샤를뤼스 씨의 몸속에 깃들여진 그 여인이 그 순간 그토록 도드라져 보였던 것이다. 남작이 이 착오를 지우고 사내다운 외양을 갖추려고 온갖 애를 써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 성공하기 무섭게, 그 사이에도 여전히 같은 취향을 지녀 온 그로서는, 사물을 여자의 눈으로 보는 이 버릇이 그에게 새로운 여성적 외양을 안겨 주었으니, 이번에는 유전 탓이 아니라 제 삶의 방식 탓이었다. 그리고 그가 어느새 사회적 문제마저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도, 그러는 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사람이 거짓말쟁이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 남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만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이기도 한 까닭인데, (베르뒤랭 부부의 응접실에 들어서던 순간) 그가 제 몸에게 대귀족다운 온갖 예의를 드러내라 명했건만, 샤를뤼스 씨가 더는 헤아리지 못하게 된 것을 온전히 알아챈 그 몸은, 남작이 ‘아녀자 같다’는 형용을 들어 마땅할 만큼, 대귀부인의 온갖 매력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샤를뤼스 씨의 외양과, 아버지를 늘 빼닮지는 않는 아들들이, 성도착자가 아니고 여자를 좇는다 해도, 제 얼굴 위에 어머니를 모독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 굳이 무슨 연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자체로 한 장(章)을 바칠 만한 주제, 즉 ‘어머니의 모독’을 다룰 필요는 없겠다.
샤를뤼스 씨의 이 변모에는 다른 이유들이 작용했고, 순전히 육체적인 발효가 그의 물질적 실체를 “발효”시켜 그의 몸을 서서히 여자의 몸이라는 범주로 옮겨 놓았지만, 그럼에도 여기 우리가 기록하는 변화는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스스로 병들었다고 여기다 보면 정말 병이 들어 여위고, 자리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어지며, 신경성 장염에 시달리게 된다. 남자들을 애틋하게 그리다 보면 여자가 되고, 상상 속의 어떤 영이 그 움직임을 방해한다. 그 강박은, 앞의 경우에 건강을 해치듯, 이 경우에는 성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를 따라온 모렐이 내게 악수를 청하러 왔다. 그 첫 순간부터, 그에게 일어난 이중의 변화 때문에 나는 (아아, 그것을 활용할 만큼 미리 언질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 나쁜 인상을 품었다. 앞서 말했듯이, 모렐은 아버지의 하인 신분에서 벗어난 뒤로 대개 멸시가 섞인 허물없음을 즐겨 부렸다. 사진을 가져다준 날에도 그는 한 번도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법 없이, 아랫사람 대하듯 말을 걸었다. 그러니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 그가 내 앞에서, 오직 내 앞에서만 아주 깊이 허리를 숙이는 것을 보고, 다른 누구에게 한마디 건네기도 전에, 그의 펜에서 나오거나 그의 입에서 떨어지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던 지극히 공손한 존경의 말을 내게 건네는 것을 들었을 때, 나의 놀라움이 어떠했겠는가. 나는 그가 내게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음을 곧바로 눈치챘다. 잠시 뒤 그는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이번에는 나를 삼인칭으로 부르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제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셈입니다. 제 아버지가 그 큰아버지 밑에서 하던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베르뒤랭 부인과 손님들에게 알리지 말아 주신다면 말입니다. 차라리 그가 선생님 댁에서, 선생님 부모님과 거의 대등할 만큼 상당한 규모의 영지를 관리하던 관리인이었다고 말씀하시는 편이 가장 좋겠습니다.” 모렐의 부탁은 나를 몹시 언짢게 했다. 조금도 관심 없는 그 아버지의 지위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집안의 재산을, 재산이 있어 보이는 겉모습을 부풀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찌나 딱하고 간절해 보였는지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요, 저녁 식사 전에 하셔야 합니다.” 그가 애원하는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무슨 핑계로든 베르뒤랭 부인을 잠깐 따로 불러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결국 나는 그렇게 했다. 우리 집안의 “격식”이나 “재산”을 지나치게 부풀리지는 않으면서도, 모렐 아버지의 품위를 힘닿는 데까지 높여 주려 애썼다. 그것은 우편으로 부친 편지처럼 매끄럽게 통했다. 내 할아버지와 안면이 있던 베르뒤랭 부인이 놀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라고는 없고 가정생활을(작은 핵심을 녹여 없애는 그 가정생활을) 몹시 싫어했으므로, 오래전에 내 증조부를 본 적이 있다고 하더니, 그를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 사람, 작은 패거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사람,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편이 아니었던” 사람으로 이야기한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집안이란 게 어찌나 성가신지, 거기서 아주 멀찍이 벗어나는 것만이 상책이라니까요.” 그러고는 곧, 집에서라면 짐작할 법도 했으나 내가 모르고 있던 증조부의 성격 하나를 들려주었다(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식구들은 자주 그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유별난 인색함이었다(분홍 옷 입은 여인의 친구이자 모렐 아버지의 고용주였던, 다소 지나치게 후하던 종조부와는 대조적으로). “그야 물론, 선생님 조부모께서 그렇게 대단한 관리인을 두셨다면, 그건 한 집안에도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걸 보여 줄 뿐이지요. 선생님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찌나 인색했던지, 만년에 거의 얼이 빠졌을 무렵에는,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분은 딱히 대단한 인물이었던 적이 없어요, 선생님 한 분이 그 집안 사람 전부만 한 값어치가 있지요, 합승마차 삯으로 한 푼 내는 것도 못 견뎌 하셨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누군가를 딸려 보내 그분 대신 삯을 치르게 하고는, 그 늙은 구두쇠에게는 그분의 친구인 각료 페르시니 씨가 합승마차를 공짜로 타도 되는 증서를 주었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지요. 하지만 우리 모렐의 아버지가 그렇게 좋은 자리에 있었다니 아주 기쁘군요. 나는 그분이 학교 선생이었던 줄 알았는데, 뭐 아무래도 좋아요, 내가 잘못 알았던 게지요. 어쨌든 그런 건 조금도 상관없어요. 말해 두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높이 사는 건 오직 참된 가치, 저마다의 기여, 내가 참여라 부르는 것뿐이니까요. 예술적인 사람이기만 하면, 한마디로 형제단의 일원이기만 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아요.” 모렐이 형제단의 일원인 방식은,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한, 여자든 남자든 어느 한쪽에서 얻은 경험의 열매로 다른 쪽을 만족시킬 만큼 여자도 남자도 두루 좋아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어 두어야 할 것은, 내가 베르뒤랭 부인에게 그를 위해 말해 주겠다고 약속하자마자, 게다가 실제로 그렇게 하고 나서 이제 와 번복할 여지가 사라지자마자, 나를 향한 모렐의 “존경”이 마법에 걸린 듯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공손한 격식의 말투는 녹아 없어졌고, 실제로 그는 한동안 나를 피했으며, 나를 멸시하는 티를 내려 애썼다. 그래서 베르뒤랭 부인이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라거나 무언가를 연주해 달라고 청하라고 시키면, 그는 단골 가운데 한 사람과 계속 이야기하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고, 내가 다가가면 자리를 바꾸어 버리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서너 번이나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고 일러 주어야 했고, 그러고 나서야 그는 거북한 기색으로 짤막하게 대답하곤 했다. 물론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럴 때면 그는 스스럼없고 다정했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면이 있었으니까. 그렇더라도 나는 그 첫날 저녁에, 그의 천성이 비열한 것이 틀림없으며, 궁하면 어떤 야비한 짓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위인이요,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이 점에서 그는 대다수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천성을 얼마간 물려받아, 남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그들이 하는 어떤 일에 원망을 품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의 다양함을 즐겼으므로, 그의 비루함을 눈감아 주었고, 그의 유쾌함이 드러날 때면 그것을 반겼으며, 나아가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한 자신의 그릇된 관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경련하듯 불쑥, 그는 눈멀고 원시적인 야만으로 이상하게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므로) 내가 그에게 베푸는 친절이 사심 없는 것임을, 내 너그러움이 눈치 없음에서가 아니라 그가 선의라 부르던 것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가 보인, 내 생각에 진심이었을 애정을 반겼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나는 그의 예술에 매혹되었다. 사실 그것은 감탄스러운 기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지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음악가는 아니면서도) 그 기교로 나에게 그토록 많은 훌륭한 음악을 다시, 혹은 처음으로 듣게 해 주었다. 게다가 한 조련자가, 곧 샤를뤼스 씨가(나는 그에게 그런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으나, 젊은 시절 그를 아주 딴사람으로 알고 지낸 게르망트 부인은 그가 자기를 위해 소나타를 작곡하고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제 진짜 장점에 대해서는 겸손하면서도 일류의 재능을 지닌 그가, 이 기교를 열 배로 키워 주는 다재다능한 예술적 감각에 봉사하도록 이끌어 놓았다. 러시아 발레단의 한낱 솜씨 좋은 무용수가 댜길레프 씨의 손에 온갖 방면으로 빚어지고 교육받고 계발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나는 막 모렐이 부탁한 말을 베르뒤랭 부인에게 전하고서 샤를뤼스 씨와 생루에 관해 이야기하던 참이었는데, 그때 코타르가 마치 집에 불이라도 난 듯 방으로 뛰어들며 캉브르메르 부부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 씨(코타르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나 나 같은 외부인 앞에서 캉브르메르 부부의 도착에 큰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으므로, 꼼짝도 하지 않고 이 소식에 아무 대꾸도 없이, 우아하게 부채질을 하며 프랑세 극장의 후작부인 같은 어조로 의사에게 이렇게만 말했다. “남작께서 방금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이것은 코타르에게 너무한 노릇이었다! 학식과 높은 지위가 그의 말에 무게를 더한 터라 옛날처럼 그리 불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베르뒤랭 댁에서 되살아나는 그 흥분에 사로잡혀 그는 소리쳤다. “남작이라니! 무슨 남작이오? 남작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러면서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데 가까운 놀라움으로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베르뒤랭 부인은, 손님들 앞에서 하인이 값진 유리잔을 깨뜨렸을 때 안주인이 짐짓 짓는 무심함으로, 그리고 소(小) 뒤마의 극에 출연하는 음악원 수석 졸업생 같은 꾸미고 뽐내는 어조로, 부채로 모렐의 후원자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니, 샤를뤼스 남작이시잖아요. 자, 코타르 교수님, 소개해 드리지요.” 하기야 베르뒤랭 부인은 주역을 맡을 기회를 얻은 것이 조금도 싫지 않았다. 샤를뤼스 씨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자 교수는 “과학의 대공(大公)” 같은 자애로운 미소로 그것을 맞잡았다. 그러나 그는 캉브르메르 부부가 방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딱 멈추었고, 그사이 샤를뤼스 씨는 내게 무언가 말하려고 나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는데, 그러면서 내 근육을 만져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것은 독일식 버릇이다. 캉브르메르 씨는 노후작부인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에 대해, 혹은 그가 쓴 잘 다듬어지고 힘 있는 편지들에 대해 이야기로만 들은 사람에게는, 그의 생김새가 뜻밖이었다. 물론 곧 익숙해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코는 입 위에 비스듬히 자리 잡기로 마음먹은 듯했는데, 그 수많은 선 가운데 아마 그의 얼굴에 그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유일하게 비뚤어진 선이었으며, 저속한 우둔함을 드러내는 선이었다. 그 우둔함은 두 알의 잘 익은 사과 같은 뺨에 어린 노르망디풍 혈색이 가까이 있어 한층 더 도드라졌다. 캉브르메르 씨의 두 눈은 눈꺼풀 뒤에 코탕탱의 하늘빛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그네가 길가에 멈춰 서서 포플러 나무들의 그림자를 수백 개씩 세며 소일하는, 볕 좋은 날의 그토록 부드러운 하늘빛을. 그러나 무겁고 짓무르고 축 처진 그 눈꺼풀은 지성의 티끌만 한 섬광조차 새어 나오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하늘빛 눈길의 빈약함에 실망한 사람은 다시 그 크고 비뚤어진 코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 감각의 자리바꿈으로, 캉브르메르 씨는 코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 코는 못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지나치게 잘생기고, 지나치게 당돌하며, 제 잘난 줄을 지나치게 뽐냈다. 우뚝하고 매끄럽고 번들거리며 갓 만든 듯한 그 코는, 두 눈의 모자람을 넉넉히 벌충할 채비가 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눈이 때로 우리의 지성이 드러나는 기관이라면, 코는(한 이목구비가 나머지에 끼치는 은밀한 연대와 뜻밖의 파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개 어리석음이 가장 쉬이 드러나는 기관이다.
캉브르메르 씨가 아침에도 어김없이 걸치는 짙은 색 옷의 단정함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걸친 해변 차림의 방자한 화려함에 눈이 부시고 진저리가 난 이들을 어지간히 안심시킬 만했다. 그렇더라도 재판장 부인이, 알랑송 상류사회에 대해서라면 당신보다 훨씬 잘 안다는 사람답게, 분별과 권위가 밴 태도로, 캉브르메르 씨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대뜸 더할 나위 없이 기품 있는 사람, 나무랄 데 없는 가문의 사람, 발베크에서 보던 부류와는 다른 사람, 한마디로 함께 있으면 숨통이 트이는 사람 앞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단언한 까닭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세계를 알지 못하는 그 숱한 발베크 관광객들에게 숨이 막힌 그녀에게, 그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각성제 한 병 같은 존재였다. 반대로 내게는 그가, 내 할머니라면 대뜸 “영 글러먹은” 사람으로 치부했을 부류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리고 속물근성이라는 것을 모르던 할머니는, “그토록 세련된” 오빠를 둔 데다 분명 눈이 여간 높지 않을 르그랑댕 양의 손을 그가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필경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캉브르메르 씨의 상스러운 추함을 두고, 흙냄새가 물씬 나며 아주 오래된 고장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쳐 주고 싶은 그의 못난 이목구비를 뜯어보노라면,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 이름들의 어원을 두고 내 벗인 본당 신부가 잘못 짚었던 것은, 농부들이 그 이름을 잘못 발음하거나 그 밑에 깔린 라틴어나 노르만어 낱말을 오해한 나머지, 브리쇼라면 말했을 법하게, 이미 고문서집에 나타나는 어떤 야만적 형태 속에 그릇된 뜻과 발음의 오류를 끝내 굳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마을들의 삶은 제법 정겨울 수 있으며, 캉브르메르 씨에게도 분명 좋은 점이 있었을 것이다. 노후작부인이 며느리보다 아들을 더 아끼는 것이 어머니의 천성이었다면, 다른 한편 적어도 둘은 재능이 없지 않은 다른 자식들을 둔 그녀가, 자기 생각에 이 후작이 집안에서 가장 나은 아이라고 곧잘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군대에서 짧게 복무하던 동안, 동료들은 캉브르메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에 너무 길다고 여겨 그에게 캉캉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는 끝없는 수다를 뜻하는 것으로 그에게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초대받은 만찬 자리를, 생선이(설령 상한 것일지라도) 나오거나 앙트레가 들어올 때 “이야, 그것참 훌륭한 놈이로군” 하고 말하는 것으로 흥겹게 만들 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관습에 속한다고 여긴 것이면 무엇이든 받아들인 터라, 남편의 친구들과 같은 수준에 자기를 맞추었고, 어쩌면 정부(情婦)처럼, 마치 자기가 그의 총각 시절에 함께했기라도 한 듯이, 장교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이렇게 말하며 그를 즐겁게 하려 했다. “곧 캉캉을 보시게 될 거예요. 캉캉은 발베크에 갔지만 오늘 저녁에는 돌아올 거예요.” 그녀는 베르뒤랭 댁에 옴으로써 체면을 구겼다는 데 화가 나 있었고, 오로지 시어머니와 남편의 간청에 못 이겨, 임대 계약을 갱신할 속셈으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덜 자란 그녀는 그 속셈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고, 지난 보름 동안 여자 친구들에게 이 만찬을 두고 비웃어 왔다. “우리가 우리 세입자들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거 아시죠. 그만하면 집세를 올려 받을 만하지 않겠어요. 사실 그 사람들이 우리의 가엾은 옛 라 라스플리에르를 어떻게 해 놓았는지 좀 궁금하긴 해요.”(마치 자기가 그 집에서 태어나기라도 했고, 거기서 옛 집안의 온갖 추억을 되찾기라도 할 것처럼.) “우리 늙은 관리인이 바로 어제 나한테 그러는데, 그 집을 몰라보게 됐다지 뭐예요.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견딜 수가 없어요. 다시 들어가려면 틀림없이 온 집 안을 소독부터 해야 할 거예요.” 그녀는 오만하고 뚱한 얼굴로 도착했다. 전쟁 통에 성을 적에게 빼앗겼으나 그럼에도 제집처럼 편안해하며 정복자들에게 너희가 침입자임을 굳이 일깨워 주려 드는 귀부인의 태도였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처음에 나를 보지 못했는데, 내가 방 한쪽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 샤를뤼스 씨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모렐에게서 모렐의 아버지가 우리 집안의 “관리인”이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그, 곧 샤를뤼스는 내가, 저속하고 못난 좀팽이들이(나는 미리 경고를 받았다) 내 처지였다면 틀림없이 주인들에게 그들이 깎아내릴 만한 세부를 폭로해 스스로 맛보았을 그 비열하고 야비한 쾌감을 마다할 만큼 충분한 지성과 아량을(그와 스완이 함께 쓰던 말이다) 지녔다고 믿는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고 그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에게는 남다른 지위가 생기고 과거는 지워지는 걸세.” 남작은 그렇게 말을 맺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 대가로 지적이고 아량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더라도 지켰을 침묵을 약속하면서, 캉브르메르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 오후 발베크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실 때 내 곁에 있던 그 입안에서 녹는 감칠맛 나는 한 조각을, 지금 눈앞에 보이는 바위처럼 딱딱한 노르망디식 록케이크에서, 단골들이 아무리 이를 박아 보려 해도 헛수고였을 그 과자에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남편이 어머니의 소박한 다정함을 물려받아, 단골 가운데 누가 그에게 소개될 때마다 우쭐한 표정을 짓곤 하리라는 것을 알고 미리부터 짜증이 났지만, 그럼에도 사교계 지도자로서 제 소임을 다하려는 마음에서, 브리쇼가 그녀에게 소개되자 그녀는 더 세련된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본 대로 그와 남편을 인사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세상 물정에 밝음을 과시하려는 욕구보다 노여움인지 자존심인지가 앞선 나머지, 그녀는 마땅히 “제 남편을 소개해 드리지요”라고 해야 할 것을 그러지 않고 “제 남편에게 당신을 소개하지요”라고 말하며 캉브르메르가의 깃발을 이렇게 치켜들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남편이 그녀가 예상한 대로 브리쇼 앞에서 깊이 허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캉브르메르 부인의 언짢은 기분은 얼굴만은 알고 있던 샤를뤼스 씨에게 눈길이 닿는 순간 씻은 듯 사라졌다. 스완과 가깝게 지내던 시절에도 그녀는 그에게 소개받는 데 끝내 성공한 적이 없었다. 샤를뤼스 씨는 언제나 여자 편을 들어, 게르망트 씨의 정부들에 맞서 제 형수 편을, 당시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나 스완의 옛 연인이던 오데트 편을 새 여자들에 맞서 들었으므로, 도덕의 준엄한 수호자이자 가정의 충직한 보호자로서, 오데트에게 캉브르메르 부인에게는 결코 자기를 소개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또 그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그녀는 이 다가갈 수 없던 인물을 마침내 만나게 될 곳이 하필 베르뒤랭 댁이리라고는 결코 짐작조차 못 했다. 캉브르메르 씨는 이것이 아내에게 크나큰 기쁨임을, 그 자신마저 감동할 만큼 큰 기쁨임을 알았고, “오길 잘했다 싶지, 그렇지?” 하는 뜻이 담긴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자기보다 나은 여자와 결혼했음을 알기에 말수가 아주 적었다. “이 몸, 보잘것없으나” 하고 그는 걸핏하면 말하면서, 자기 무지에 들어맞는다 싶은 라 퐁텐의 우화 하나와 플로리앙의 우화 하나를 불쑥 인용하곤 했는데, 이는 동시에 그로 하여금 짐짓 자기를 낮추는 아첨의 겉모습 아래, 자키 클럽 회원이 아닌 학자들에게 사냥이나 즐기는 사람도 우화쯤은 읽었을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있게 해 주었다. 딱한 것은 그가 아는 우화가 그 둘뿐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둘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캉브르메르 부인은 바보는 아니었지만, 몹시 거슬리는 버릇을 여럿 지니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름을 뭉개는 버릇은 귀족적 경멸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처럼(태생 하나만으로도 캉브르메르 부인보다 더욱 그런 어리석음을 면했어야 할 사람인데) 쥘리앵 드 몽샤토라는, 한물간 이름을(지금은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여인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 되었지만) 기억나지 않는 척하며 “무슨 자그마한 마담… 피카 델라 미란돌라던가” 하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캉브르메르 부인이 이름을 틀리게 말한 것은 마음이 착해서, 무언가 해로운 사실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었고, 그러다 진심에서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면 이름을 바꾸어 그것을 감추려 했다. 이를테면 어떤 여자를 두둔할 때면, 진실을 말해 달라고 청한 사람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도, 아무개 부인이 지금 실뱅 레비 씨의 정부라는 사실을 감추려 애쓰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에요…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사람들이 그 여자더러, 이름은 모르겠지만 무슨 칸이던가 콘이던가 쿤이던가 하는 어떤 신사에게 연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몰아세우곤 했던 것 같긴 해요. 어쨌든 그 신사는 죽은 지 여러 해 됐고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알아요.” 이것은, 자기가 한 일을 정부에게, 혹은 그저 다른 남자에게 이야기할 때 그 내용을 바꾸어 말하면 듣는 이가 그 표현이(그녀의 칸, 콘, 쿤처럼) 끼워 넣어진 것임을, 대화의 나머지와는 결이 다르며 이중의 뜻을 지녔음을 대뜸 알아채지는 못하리라 여기는 거짓말쟁이들이 취하는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인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