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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브레 ⑬

1권 · 콩브레

나는 소년들이 피라미를 잡으려고 비본에 담가 놓은 유리병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곤 했다. 그 병들은 스스로도 그 안에 잠겨 있는 물살로 채워진 채, 투명한 옆면이 굳은 물 같은 ‘용기’이면서 동시에 더 큰 액체의 용기, 곧 흐르는 수정 속에 잠긴 ‘내용물’이기도 하여, 같은 물이 같은 병에 담겨 저녁 식탁에 놓여 있을 때보다 더 감미롭고 더 애타는 서늘함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내 손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만질 길 없는 물과, 내 혀로는 즐길 수 없는 녹지 않는 유리 사이에서, 그 서늘함이 영영 달아나는 것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번에는 낚싯줄을 들고 다시 와 물고기를 잡으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점심 바구니에서 빵 한 조각을 졸라 얻어 내어, 비본에 그 부스러기들을 던져 넣었는데, 그것들은 화학적 침전이라도 일으키는 힘이 있는 듯했다. 물이 그 둘레에서 이내 굳어 야윈 올챙이들의 타원형 무리를 이루었으니, 그때까지 물은 틀림없이 그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녹여 품고 있었으되, 언제든 결정화의 단계로 들어설 채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비본의 물줄기는 물풀로 뒤덮여 갔다. 처음에는 하나씩 나타났는데, 이를테면 수련 한 송이가, 하필 물살이 지나는 길목에 자라난 탓에, 물살이 한순간도 가만 놔두지 않아, 마치 기계로 오가는 나룻배처럼 한쪽 기슭으로 떠밀려 갔다가 다른 쪽으로 되돌아오기를, 그 두 겹의 여정을 영영 되풀이했다. 기슭 쪽으로 떠밀리면 그 줄기는 곧게 펴지고, 늘어나고, 끊어질 듯 팽팽히 당겨졌다가, 물살이 다시 그것을 낚아채면, 그 푸른 닻줄은 정박지 위로 도로 휘돌아, 그 가엾은 풀을 마땅히 출발점이라 부를 만한 자리로 데려왔으니, 거기서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또다시 떠나갈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산책에서도 저 산책에서도 그것이 늘 같은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곤 했는데, 그것은 어떤 신경쇠약 환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 할아버지라면 레오니 고모도 그 축에 넣었을 그런 이들은, 해가 가고 또 가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저 야릇하고 종잡을 수 없는 버릇의 광경을 보여 주는데, 그들은 늘 그 버릇을 이제 막 떨쳐 내려는 참이라 여기지만 끝끝내 붙들고 있으며, 제 병과 별난 기질의 쳇바퀴에 걸려들어, 벗어나려는 헛된 몸부림이 도리어 그 톱니를 돌리고, 저 야릇하고 벗어날 길 없는 숙명적인 나날의 태엽을 계속 감아 돌게 할 뿐이다. 이 수련이 바로 그러했으니, 또한 그것은 저 가엾은 죄인들 가운데 하나와도 같았다. 영원토록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들의 남다른 형벌은 단테의 호기심을 자아냈고, 만일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가던 베르길리우스가, 마치 내가 부모님을 서둘러 뒤따라야 하듯 그로 하여금 온 힘을 다해 뒤쫓게 하지 않았던들, 단테는 그 형벌받는 이들에게서 더 길고 더 소상히 사연을 캐물었으련만.

그러나 더 멀리 가면 물살이 느슨해지는 곳이 있었으니, 개울이 어느 사유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자리로, 그곳 주인은 물가 정원 가꾸기를 취미로 삼았기에, 비본이 이곳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든 자그마한 못들은 수련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이 지점의 기슭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 그 짙은 그늘이 물에 여느 때는 짙푸른 바탕을 드리웠으나, 이따금, 이를테면 폭풍우 몰아친 오후가 지나고 고요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그 물속 깊은 데서 거의 보랏빛에 가까운 맑고 강렬한 파랑을, 일본 칠보의 바닥을 연상시키는 빛깔을 본 적이 있다. 여기저기 수면 위에는, 딸기처럼 발갛게 물든 수련의 진홍빛 심장이 흰 꽃잎의 고리 안에 자리 잡고 떠 있었다.

그 너머로는 꽃들이 더 자주 눈에 띄었으나, 빛깔이 옅고, 윤기가 덜하고, 더 촘촘히 씨를 품고, 더 야무지게 오므린 채, 우연히도 어찌나 우아한 꽃줄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지,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마치 어느 바토풍 축제에서 쓰인 장식들을 스산히 걷어 낸 뒤 풀어헤쳐진 꽃줄 속 이끼장미들이 아닐까 여기곤 했다. 다른 한쪽 모퉁이는 더 흔한 종류의 수련에게 내어 준 듯했는데, 로켓꽃처럼 정갈한 분홍이나 흰빛으로, 알뜰한 살림꾼의 정성으로 도자기처럼 말끔히 씻긴 모양이었다. 그런가 하면 조금 더 멀리에는, 물 위에 떠 있는 화단처럼 서로 바싹 붙어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 마치 팬지들이 정원에서 나비처럼 날아올라, 이 물가 자락의 투명한 어스름 위로 푸르고 반들거리는 날개를 펴고 맴도는 듯했다. 이 하늘빛 자락이기도 했으니, 그것은 꽃들 아래에 저희 빛깔보다 더 귀하고 더 마음을 흔드는 빛깔의 바탕을 깔아 주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소리 없이 설레며 또렷이 깨어 있는 어느 행복의 만화경 속에서 수련들 아래 반짝일 때에도, 저녁 무렵, 지는 해의 장밋빛 꿈으로 먼 하늘처럼 가득 찰 때에도, 그것은 꽃들 저마다의 더 오래가는 빛깔을 둘레로 하여, 쉼 없이 바뀌면서도 늘 어우러진 채, 더할 나위 없는 깊이와 덧없음과 신비로써, 무한을 은근히 암시하며 그러했다. 오후이든 저녁이든, 그것은 꽃들을 하늘 한복판에 피워 놓은 듯했다.

이 정원을 벗어나면 비본은 다시 더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훗날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면 얼마나 흉내 내 보고 싶었던지, 노를 거두고 배 밑바닥에 머리를 낮춘 채 반듯이 드러누워, 배가 물살에 실려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제 위로 고요히 미끄러져 가는 하늘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며, 그 얼굴에 행복과 평화의 예감을 떠올리던 어느 뱃사공을 나는 얼마나 자주 바라보았던가.

우리는 물가 붓꽃들 사이에 앉곤 했다. 휴일의 하늘에는 게으른 구름 한 점이 온몸을 죽 뻗고 있었다. 이따금 무료함의 무게에 짓눌린 잉어 한 마리가 근심 어린 헐떡임과 함께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우리가 요기할 때였다. 집으로 돌아서기 전에 우리는 그곳 풀밭에 앉아 오래도록 과일과 빵과 초콜릿을 먹었는데, 그 위로 생틸레르의 종소리가 우리 귀에 이르렀다. 그 소리는 수평으로, 희미하되 여전히 야무지고 쇳빛으로 울려, 저 자신이 익히 가로질러 온 대기 속에서도 조금도 스러지지 않은 채, 다만 낭랑한 타종이 하나하나 잇달아 고동칠 때마다 조각조각 나뉘어, 우리 발치의 꽃들을 스치며 두근거렸다.

이따금 물가, 나무들 사이에 파묻힌 채, 우리는 이른바 ‘위락의 집’이라 불리는 집 한 채와 마주치곤 했다. 외따로 떨어져 잊힌 그 집은, 제 발치를 적시는 강 말고는 세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어느 젊은 여인이, 그 시름겨운 얼굴과 세련된 너울로 보아 이 고장 태생 같지는 않고, 흔히들 말하듯 필경 ‘제 몸을 파묻으러’ 그곳에 온 이가, 제 이름은 물론이려니와 한때 마음을 붙들었으나 끝내 붙들어 두지 못한 그이의 이름조차 이곳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씁쓸하고도 달콤한 느낌을 맛보려는 듯, 문가에 매어 둔 배 말고는 아무 바라볼 것 없는 창가에 틀 지어 서 있었다. 그녀는 기슭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무심한 기색으로 눈을 들었는데, 그들이 미처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배신한 연인을 결코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하리라는 것, 그들의 지난 삶 어디에도 그의 자취가 새겨져 있지 않았고, 그들의 앞날 어디에도 그것을 받아들일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그녀가 삶을 단념하면서, 적어도 사랑하던 이를 볼 수 있었을 그 자리들을 기꺼이 버리고, 그가 한 번도 발 디딘 적 없는 다른 곳을 택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던 어느 길을 걷고 돌아오며, 순순히 내맡긴 손가락에서 귀하고도 쓸모없는 매력이 어린 긴 장갑을 벗겨 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하는 동안, 우리는 결코 비본의 수원까지 다다르지는 못했다. 나는 그 수원을 자주 생각해 왔거니와, 그것은 내 마음속에 어찌나 추상적이고 어찌나 관념적인 존재였던지, 누군가가 그것이 실은 같은 도(道) 안에, 콩브레에서 몇 마일 떨어진 어느 지점에 실재한다고 일러 주었을 때, 나는 옛사람들의 말대로 지옥의 아가리가 열려 있다는 또 하나의 정해진 지점이 지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만큼이나 놀랐다. 우리는 또한 내가 그토록 이르고 싶어 하던 저 다른 목적지, 곧 게르망트 그 자체에도 결코 다다를 수 없었다. 나는 그곳이 그 소유주인 게르망트 공작과 공작부인의 거처임을 알았고,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진짜 인물임을 알았지만, 그들을 생각할 때면 늘 그들을 우리 성당에 걸린 ‘에스테르의 대관식’ 벽걸이 그림 속 인물처럼, 아니면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악인 질베르처럼 무지갯빛으로 변해 가는 빛깔로, 그러니까 내가 성수반에 손가락을 담글 때는 양배추빛 초록이었다가 우리 자리 줄에 이르면 자두빛 파랑으로 바뀌는 그 빛깔로 그려 보거나, 아니면 아예 만질 수 없는 것으로, 이를테면 환등기가 내 방 커튼 위로 떠돌게 하거나 천장 위로 던져 올리던 게르망트 가문의 시조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영상처럼 떠올렸다. 요컨대 언제나 메로빙거 시대의 신비에 감싸인 채, 노을 속에 잠기듯 앙트라는 낭랑한 음절에서 피어오르는 주홍빛 광채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내게 공작이자 공작부인으로서, 낯선 부류이긴 하나 실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공작다운 인격은 다시금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비물질화되어, 그들이 공작과 공작부인으로 다스리는 저 게르망트를, 우리 산책의 그 햇빛 어린 ‘게르망트 쪽’ 전부를, 비본의 물줄기를, 그 수련들과 그늘 드리운 나무들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뜨거운 여름 오후들을 에워싸 품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들이 게르망트 공작과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만 지닌 것이 아님을 알았다. 14세기 이래로, 앞서 그 옛 영주들을 싸움으로 정복하려던 헛된 시도 끝에 혼인으로 연을 맺어 콩브레 백작이 되었고, 그리하여 그 고장의 으뜸가는 시민이면서도 그곳에 살지 않는 유일한 시민이 되었으니, 콩브레 백작으로서 콩브레를 소유하고, 그것을 제 이름과 칭호의 실에 꿰어 제 인격 속에 빨아들였으며, 콩브레 특유의 저 야릇하고 경건한 우수를 필경 제 몸으로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읍의 소유주이면서도 그곳의 어떤 특정한 집의 주인은 아니었으니, 아마도 문밖에서, 거리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지냈으리라. 마치 저 질베르 드 게르망트처럼. 나는 카뮈네로 소금 한 봉지를 사러 갈 때 눈을 들어 그를 찾으면, 생틸레르 후진(後陣)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흐릿한 검은 옻칠로 된 그의 ‘뒷모습’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게르망트 쪽’으로 가다가, 나는 이따금 물 잘 댄 자그마한 정원들이 늘어선 곳을 지나쳤는데, 그 울타리 너머로는 짙은 빛깔의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솟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 경험에 무언가 값진 것을 보태 얻기를 바랐다. 내가 그토록 보고 알고 싶어 하던 저 강가 고장의 한 조각을 눈앞에 둔 듯싶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가 즐겨 읽던 작가 가운데 하나가 그린 묘사를 접한 뒤로 품어 온 갈망이었다. 그리고 페르스피에 박사가 그 공작가의 정원에서 볼 수 있다는 꽃들과 매혹적인 실개천과 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난 뒤로는, 백 갈래 보글거리는 물줄기가 상상 속 땅을 가로지르는 그 이야기책 속 고장과, 내 마음속에서 모습을 바꾼 게르망트가 하나로 겹쳐졌다.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문득 나를 향해 변덕스러운 호의를 품고 그곳으로 초대하여, 온종일 내 곁에서 송어 낚시를 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저녁이 오면, 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그 봉신들의 자그마한 정원들 곁을 지나며, 낮은 담장 위를 따라 붉고 자줏빛인 꽃 이삭을 기울이고 있는 꽃들을 내게 가리켜 보이며 그 이름을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또한 내가 지으려는 시들에 대해서도 죄다 이야기하게 했다. 그리고 이 꿈들은, 내가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이상 어떤 책을 쓸 것인지 결정할 때가 무르익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무한한 값어치의 철학적 의미를 담아낼 만한 주제를 찾아내려 애쓰자마자, 내 마음은 멈춘 시계처럼 멎어 버렸고, 눈앞에 텅 빔을, 아무것도 아님을 보았으며, 내게 재능이라곤 도무지 없거나, 아니면 어쩌면 뇌의 병이 그 발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따금 나는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만사를 마련해 주리라 기댔다. 아버지는 어찌나 힘이 세고,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에게 어찌나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던지, 프랑수아즈가 삶과 죽음의 법칙보다도 더 벗어날 길 없는 것으로 여기라 가르쳤던 규칙들마저 우리가 어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를테면 우리 집은 파리의 그 구역에서 유일하게 의무적인 외벽 재도색을 한 해 미룰 수 있게 허락받았고, 또 이를테면 아버지는, 어느 요양지로 가라는 처방을 받은 사즈라 부인의 아들을 위해, 성이 S로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성이 A로 시작하는 응시자들 틈에 끼어 정해진 때보다 두 달 앞서 학위를 딸 수 있도록 장관에게서 허락을 얻어 냈다. 만일 내가 중병에 걸리거나 산적들에게 붙들렸다 한들, 아버지가 지고의 권력자들과 맺은 사이가 너무나 완벽하고, 전능하신 분께 보내는 그의 소개장이 너무나 거역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내 병이나 사로잡힘 따위는 실은 나를 위협하는 아무런 위험도 없는 헛된 환상으로 드러날 뿐이라 믿었기에, 나는 편안한 현실로 돌아갈, 속박에서 풀려나거나 건강을 되찾을 그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더없이 태연히 기다렸으리라. 어쩌면 이 재능의 결핍, 내 장래의 글감을 찾아 마음속을 뒤질 때마다 입을 벌리던 이 검은 구멍조차도, 실은 실체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아, 정부와 섭리를 상대로 나를 당대 으뜸가는 작가로 만들어 주도록 손써 줄 아버지의 개입으로 끝나 버릴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 어떤 때는, 부모님이 뒤따라오지 않고 뒤처져 어정거리는 나를 보며 조바심을 내는 사이에, 내 실제 삶은 아버지가 마음대로 빚어내고 뜯어고칠 수 있는 인위적 창작물처럼 여겨지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더 큰 현실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그 현실의 판결에는 항소할 길이 없었고, 그 한복판에 나는 벗도 아군도 없이 옴짝달싹 못 하게 매여 있었으며, 그 너머에 숨겨진 다른 가능성이라곤 없었다. 그때 내게 분명해진 것은, 나 또한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들처럼 늙어야 하고, 그들처럼 죽어야 하며, 그들 가운데서 나는 그저 글쓰기에 소질 없는 이들 가운데 하나로 가려질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없이 낙담하여, 블로크가 내게 주었던 격려에도 아랑곳없이 영영 문학을 단념했다. 이 은밀하고 절로 우러난 느낌, 내 지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자각은 아무리 나를 향해 아첨을 늘어놓아도 그 모두를 이겨 냈으니, 마치 악한이, 모두가 그의 선행을 소리 높여 기릴 때에도 양심의 은밀한 가책에 시달리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늘 게르망트 부인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런데 페르스피에 박사가 사 년 전 그분이 앓으실 때 많은 애를 써 드렸단다. 그래서 그분이 그 따님 혼례 때문에 콩브레에 오신다는구나. 성당에서 그분을 볼 수 있을 게다.” 마침 게르망트 부인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가 바로 페르스피에 박사였는데, 그는 심지어 그분이 레옹 대공비가 연 가장무도회에서 입었던 의상 차림으로 그려진 어느 화보 신문의 호수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까지 했다.

불현듯, 혼례 미사 도중에, 성당지기가 한쪽으로 비켜서는 바람에, 나는 어느 예배당에 앉아 있는 한 부인을 볼 수 있었다. 금발에 커다란 코, 꿰뚫는 듯한 파란 눈, 반들거리고 새것다우며 눈부신 연보랏빛 비단의 물결치는 목도리를 두르고, 콧방울 언저리에 자그마한 점이 있는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 몹시 더웠던 듯 발갛게 상기된 얼굴 표면에서, 내게 보여 준 초상을 닮은 세부들이 희미하게 엷어진 채 겨우 알아볼 만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또 무엇보다도 이 부인에게서 내가 눈여겨본 특징들을 하나하나 꼽아 보려 하면, 페르스피에 박사가 내 앞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묘사할 때 썼던 바로 그 말, 곧 커다란 코에 파란 눈이라는 말로 고스란히 정리되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부인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닮았어.” 그런데 그녀가 미사를 좇고 있던 그 예배당은 바로 악인 질베르의 예배당이었다. 벌집 밀랍처럼 누렇게 물들어 볼록해진 그 평평한 묘석 아래에는 옛 브라방 백작들의 유골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이 예배당이 게르망트 가문의 누군가가 콩브레의 예식에 참석하러 올 때면 언제나 그 가문을 위해 마련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과연, 게르망트 부인의 초상을 닮은 여인으로서, 바로 그분이 오시리라 예상되던 그날, 저 예배당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그분이었다! 나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실망은, 게르망트 부인을 떠올릴 때 내가 그분을 벽걸이 그림이나 채색 창의 빛깔로, 다른 세기를 사는 사람으로, 여느 인류와는 다른 재질로 된 사람으로 그려 왔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분이 사즈라 부인처럼 발간 얼굴에 연보랏빛 목도리를 두를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헤아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뺨의 타원형 곡선이 내가 집에서 보아 온 사람들을 어찌나 강하게 떠올리게 했던지, 이 부인은 그 창조의 원리에서, 그 육체를 이루는 분자들에서, 어쩌면 본질적으로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아니라, 그 몸이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의사나 상인의 아내들까지 아우르는 어떤 여성성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이내 쫓겨나기는 했으나) 내 마음을 스쳤다. “저분은, 저분은 틀림없이 게르망트 부인이야, 다른 누구도 아니야!” 이것이, 이 영상을 응시하던 나의 주의 깊고 놀란 표정 밑에 깔린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영상은, 여태껏 그토록 자주 똑같은 ‘게르망트 부인’이라는 이름 아래 꿈속에서 내게 나타나던 것들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으니, 이번 것은 다른 것들처럼 나 스스로 제멋대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조금 전, 이곳 성당에서 처음으로 눈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 다른 것들과는 성질이 달랐으니, 낭랑한 음절의 주홍빛 색조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던 그것들처럼 마음대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나 실재하는 것이었던지, 콧방울 언저리의 그 불타는 듯한 자그마한 점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가 삶의 법칙에 매여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마치 무대의 변신 장면에서 요정의 옷 주름 하나, 그 자그마한 손가락의 떨림 하나가, 그때까지 우리가 그저 환등에서 비친 각광의 투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리송해하던 차에, 눈앞에 살아 있는 여배우가 실제로 있음을 알려 주듯이.

그러는 동안 나는, 그 도드라진 코와 꿰뚫는 듯한 눈이 내 시야에 못 박아 붙들어 놓은 이 영상에 (어쩌면 그것들이야말로 맨 먼저 시야를 때려, 내 눈앞에 이렇게 나타난 여인이 혹시 게르망트 부인일까 헤아려 볼 겨를도 없이 그 표면에 첫 인상을 새겼기 때문이리라), 이 새롭고도 변함없는 영상에 ‘이분이 게르망트 부인이다’라는 관념을 갖다 대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 관념을 나와 영상 사이로 지나가게 하는 데 그쳤으니, 마치 서로 다른 평면에서 사이에 틈을 두고 움직이는 두 원반 같았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자주 꿈꾸어 온 이 게르망트 부인은, 이제 그녀가 나와는 별개로 실재함을 내가 볼 수 있게 되자, 내 상상력을 새삼 더 세차게 사로잡았다. 제가 예상해 온 그 무엇과도 사뭇 다른 현실과 맞닿아 한순간 마비되었던 상상력은, 이내 되살아나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샤를마뉴 시절보다도 앞서 위대하고 영광스러웠던 게르망트 가문은 제 봉신들에 대해 생사여탈의 권한을 지녔었지.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후예야. 그녀는 오늘 여기 온 이들 가운데 누구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고는, 아, 사람의 눈길이 지닌 놀라운 자유여, 어찌나 느슨하고 길고 탄력 있는 끈으로 사람의 얼굴에 매여 있는지, 홀로, 제 마음 내키는 데까지 헤맬 수 있는 그 눈길이여. 게르망트 부인이 죽은 선조들의 무덤 위 예배당에 앉아 있는 동안, 그녀의 눈길은 여기 머물다 저기로 떠돌고, 기둥머리까지 올라갔다가, 심지어 내게까지 내려앉았으니, 마치 회랑을 따라 흘러내리는 한 줄기 햇살 같았으되, 다만 그 애무를 내가 받는 순간에는 제가 어디에 내려앉는지를 아는 듯한 햇살이었다. 게르망트 부인 자신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그곳에 꼼짝 않고 앉아, 놀이에 빠져 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제 아이들의 무례하거나 어설픈 행동을 짐짓 못 본 체하는 어머니처럼 있었기에, 그 무심히 초연한 마음속에서 그녀가 제 눈의 방랑을 눈감아 주는지 나무라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성당을 떠나기 전에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으니, 여러 해 전부터 그녀를 보는 일이야말로 더없이 바라 마지않던 것으로 여겨 왔음을 스스로 되새기며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그녀를 응시함으로써 저 도드라진 코와 발간 뺨의 기억을, 그 얼굴에 관해 그토록 값지고 진짜이며 견줄 데 없는 정보로 내게 다가온 그 모든 세부를 내 안에 담아 갈무리하여 훗날 참고할 수 있으리라는 듯이. 그리고 이제, 그 얼굴에 마음을 쏟을 때마다, 특히 어쩌면 내가 어떤 식으로도 속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다짐, 곧 우리가 제 안의 가장 좋은 것을 지킬 때 발휘하는 저 자기보존 본능의 한 형태 속에서, 나는 거기서 오직 아름다움만을 발견했다. 이 부인, 곧 내 앞에 앉은 이 부인과, 그때까지 내가 상상 속 형상으로 불러내는 데 익숙했던 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하나이자 같은 사람인 이상, 나는 그녀를, 살아 있는 몸으로 그녀를 순수하고 단순하게 바라본 탓에 한순간 뒤섞어 버렸던 저 뭇 인간들의 무리로부터 떼어 내어 그 위에 다시 올려 두었다. 그리하여 내 둘레의 회중 사이에서 사람들이 “사즈라 부인보다 더 곱다”느니 “뱅퇴유 보다 더 곱다”느니 하며, 마치 그녀가 그들과 견줄 만하기라도 한 듯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발끈했다. 그리고 그녀의 금발에, 파란 눈에, 목덜미의 선에 눈길을 두고, 다른 여인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할 법한 이목구비는 못 본 체하면서, 나는 이 일부러 미완으로 남긴 밑그림을 감탄하며 속으로 외쳤다. “얼마나 어여쁜가! 얼마나 참된 기품인가! 내 앞에 있는 이야말로 참으로 오만한 게르망트,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후예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온 주의를 모으려는 나의 정성은 그것을 어찌나 완벽하게 따로 떼어 놓았던지, 오늘날 그 혼례식을 떠올려 보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은 그녀와, 그 부인이 정말 게르망트 부인이 맞느냐는 내 물음에 그렇다고 답해 준 성당지기 말고는 단 한 사람도 눈에 그려 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만은,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주 또렷이 그려 낼 수 있으니, 특히 행렬이 성구실로 줄지어 들어서던 그 순간,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의 뜨거운 햇살이 이따금 비쳐 드는 가운데, 게르망트 부인은 이름조차 모르는 저 모든 콩브레 사람들 한복판에 있었건만, 그들의 못남이 그녀 자신의 드높음을 어찌나 큰 소리로 알렸던지, 그녀는 그 답례로 그들에게 진정 어린 가엾음의 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소박함과 타고난 매력으로 한층 더 강하게 그들에게 감명을 주리라 여길 만했다. 게다가 그녀는, 군중 속에서 아는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또렷한 뜻이 실린 그런 의도된 눈길을 쓸 수는 없었기에, 제 막연한 상념들이 눈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와 어쩌지 못할 파란 빛의 물결을 이루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물결이 흘러내려 여기저기서 가로막히는 저 낮은 이들을 어떤 식으로도 언짢게 하지 않으려, 업신여기는 듯 보이지 않으려 마음 쓰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연보랏빛 목도리 위로, 비단결 같고 사뿐한 그 목도리 위로, 그녀의 눈에 어린 부드러운 놀라움을 다시 그려 볼 수 있다. 거기에 그녀는, 감히 누구 하나를 콕 집어 건네지는 못하면서도 저마다 제 몫을 누리도록, 사랑하는 봉신들 틈에 끼어 있는 것을 사죄라도 하는 듯한, 군주다운 부인의 거의 수줍은 미소를 더해 두었다. 이 미소는 눈으로 줄곧 그녀를 좇던 내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는, 미사 도중 그녀가 내게 떨구었던 눈길, 악인 질베르의 창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처럼 파랗던 그 눈길을 떠올리며 속으로 말했다. “틀림없어, 그녀는 나를 생각하고 있어.” 나는 그녀의 눈에 든 것이라고, 그녀가 성당을 떠난 뒤에도 계속 나를 생각하리라고, 어쩌면 그날 저녁 게르망트에서 나 때문에 다시금 시름에 잠기리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내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스완 이 그랬으리라 여겼듯, 우리가 결코 제 것이 될 수 없으리라 상상하는 여인이 우리를 업신여기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넉넉하다면, 게르망트 부인이 그때 그러했듯, 우리가 이미 거의 제 것이라 여기는 여인이 우리를 다정히 바라보는 것 또한 때로는 넉넉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페리윙클꽃처럼 파래져, 내 손이 도무지 닿을 수 없으면서도 그녀가 내게 바친 것이었다. 그리고 위협하듯 드리웠던 구름 뒤에서 해가 다시 터져 나와 광장과 성구실 안으로 온 힘을 다해 햇살을 내리쏘자, 혼례를 위해 깔아 둔 붉은 융단 위로 제라늄빛 노을을 흩뿌렸으니, 그 융단 위를 게르망트 부인이 미소 지으며 나아갔고, 햇살은 그 양털 결 위에 장밋빛 벨벳의 보풀을, 빛의 꽃을 입혀, 기쁜 축전의 화려함 속에 어린 저 다정함, 저 엄숙한 감미로움을 그것에 주었다. 그것은 로엔그린의 어느 대목, 카르파초의 어떤 그림들이 지닌 것이자, 보들레르가 어찌하여 나팔 소리에 ‘감미롭다’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었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헤아리게 해 주는 그런 것이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