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나는, 나에게 인사받고 환대받기를 헛되이 바랐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할 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내게 청한 적은 없으나 나의 품위와 선생의 품위를 위해 마땅히 베풀어야 한다고 느낀 몇 가지 해명에 귀 기울이도록 선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소. 그러므로 나는, 직접 만나 말했더라면 한결 수월했을 바를 여기 적어 두려 하오. 숨기지 않고 말하건대, 발베크에서 처음 선생을 보았을 때, 나는 선생의 얼굴이 솔직히 밉살스럽다고 느꼈소.”
여기서 샤를뤼스 씨가 깊이 정을 붙였던 어느 세상 떠난 벗과의 닮은꼴에 대한, 그것도 이튿날에야 알아차린 그 닮은꼴에 대한 소회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소. 선생이, 제 직분의 요구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나를 찾아와, 그의 유쾌함이 내 우울을 흩어 주곤 하던 그 카드놀이에 나와 함께 어울려, 그가 죽지 않았다는 환상을 내게 줄 수 있으리라고 말이오. 선생이 아마도 품었을, 다소 얼빠진 억측들이 어떤 것이든, 곧 (섬기기를 마다했으니 하인이라는 이름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하인의 정신적 범위에 그토록 드높은 감정을 헤아리는 것보다 더 어울리는 그 억측들이 어떤 것이든, 선생은 아마도, 내가 책 한 권을 가져다 달라고 청했을 때 잠자리에 들었노라고 내게 전갈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스스로 제법 대단한 사람인 양 굴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오. 그러나 무례한 처신이 매력을 더해 준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니, 더구나 선생에게는 그 매력이라는 것이 아예 없소. 만일 이튿날 아침, 우연히 선생에게 말을 건넬 기회를 얻지 못했더라면, 나는 거기서 일을 끝냈을 것이오. 나의 가엾은 벗과 선생의 닮음이 어찌나 두드러졌던지, 선생의 그 너무 튀어나온 턱의 참을 수 없는 돌출조차 지워 버릴 만큼이어서, 나는 깨달았소, 그 순간 세상 떠난 이가 선생에게 제 다정한 표정을 빌려주어, 선생이 나를 다시 사로잡을 수 있게 하고, 선생에게 주어진 그 다시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실로, 이제 더는 아무런 대상도 없고 이 생에서 선생을 다시 만날 성싶지도 않으니, 물질적 이해라는 저속한 문제를 끄집어낼 마음은 없으나, 나는 내 죽은 벗의 기도에 (나는 성인들의 통공을, 그리고 그들이 산 이의 운명에 뜻을 두고 개입함을 믿으므로) 기꺼이 따랐을 것이오. 곧 그를, 제 마차와 하인들을 거느렸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 내가 사랑했기에 내 재산의 태반을 바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그를 대하듯, 선생을 대하는 일에 말이오. 선생은 달리 정했소. 책 한 권을 가져다 달라는 내 청에 선생은 볼일이 있어 나가야 한다는 답을 보냈소. 그리고 오늘 아침 내가 마차로 와 달라고 사람을 보냈을 때, 선생은, 불경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세 번째로 나를 저버렸소. 발베크에서 선생에게 주려 했던, 그리고 한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함께 나누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상대로 삼기에는 너무나 인색하게 굴어야 하는 그 후한 사례금을, 이 봉투에 넣지 않은 것을 양해하시오. 적어도 선생을 선생의 식당으로 네 번째로 헛되이 찾아가는 수고만은 내게 면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거기까지 내 인내심은 미치지 않을 것이오.”
(여기서 샤를뤼스 씨는 자기 주소를 적고, 집에 있을 시각 등을 밝혔다.)
“그럼 안녕히, 선생. 잃어버린 벗을 그토록 빼닮은 선생이 아주 어리석을 리는 없다고, 그렇지 않다면 관상학이 그릇된 학문이 되고 말 터이니, 나는 그렇게 여기므로, 언젠가 선생이 이 일을 다시 떠올린다면 얼마간의 뉘우침과 얼마간의 회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하오. 나로서는, 아무런 앙금도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진심임을 믿어 주시오. 이 세 번째 헛된 시도보다는 덜 언짢은 기억으로 우리가 헤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오. 그것도 곧 잊히겠지요. 우리는 선생이 발베크에서 자주 보았을 그런 배들과 같으니, 잠시 서로의 항로가 엇갈렸고, 저마다 멈추는 편이 이로웠을지 모르나, 그중 하나가 달리 정한 것이오. 이제 곧 그들은 수평선 위에서 서로를 보지도 못할 것이며, 그 만남은 잊힌 일이 되고 말 것이오. 그러나 이 마지막 이별에 앞서, 저마다 상대에게 인사를 건네니, 이 대목에서, 선생, 선생에게 온갖 행운을 빌며, 그러하는 이는
에메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지도 않았으니,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짓궂은 장난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내가 그에게 남작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자,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샤를뤼스 씨가 미리 내다본 그 회한을 느끼는 듯 보였다. 나로서는, 그가 그 순간 제 벗들에게 마차를 내주는 사람에게 사죄의 편지를 쓰지 않았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그사이 샤를뤼스 씨는 모렐과 사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모렐과의 관계가 어쩌면 플라토닉한 것이었으므로, 샤를뤼스 씨는 이따금, 방금 내가 홀에서 그와 마주친 것과 같은 무리 속에서 하룻저녁을 보내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모렐에게서, 몇 해 전만 해도 자유로이 풀려나 에메에게 매달리기를 더없이 바랐고, 그 편지를, 곧 수석 급사가 내게 보여 주었을 때 그것을 쓴 이를 생각하면 마음 아프던 그 편지를 받아쓰게 했던 그 격렬한 감정을, 딴 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샤를뤼스 씨의 사랑이 지닌 반사회적 성격을 생각하면, 그것은, 연인이 헤엄치는 이처럼 어느새 뭍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실려 가고 마는 이 정념의 물결이 지닌, 감지할 수 없이 휩쓸어 가는 그 힘의 한결 더 두드러진 본보기였다. 물론 정상적인 남자의 사랑도, 연인이 제 욕망과 회한과 실망과 계획을 잇달아 지어내며,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두고 하나의 온전한 소설을 엮어 낼 때, 그 컴퍼스의 두 다리를 자못 놀랄 만큼 넓은 각도로 벌어지게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런 각도는 대개 공유되지 않는 정념의 성격에 의해, 또 샤를뤼스 씨와 에메 사이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의해 유난히 벌어졌던 것이다.
날마다 나는 알베르틴과 함께 외출했다. 그녀는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첫 습작의 소재로 생장 드 라 에즈 성당을 골랐는데,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고 이름을 들어 본 사람조차 극히 드문,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안내인 없이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으며, 외따로 떨어져 있어 다다르기까지 오래 걸리는, 케톨므 마을의 마지막 집들을 한참 뒤로한 뒤에도 에프르빌 역에서 반 시간이 넘게 가야 하는 곳이었다. 에프르빌이라는 이름을 두고는, 본당 신부의 책과 브리쇼의 이야기가 서로 어긋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한쪽에 따르면 에프르빌은 옛 스프레빌라였고, 다른 쪽은 그 이름을 아프리빌라에서 끌어냈다. 첫 방문 때 우리는 페테른과 반대 방향으로, 다시 말해 그라트바스트 쪽으로 가는 작은 열차를 탔다. 그런데 때는 삼복더위였고, 점심을 들자마자 문밖으로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그리 일찍 나서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눈부시고 타는 듯한 공기가 나른함과 시원한 은신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 공기는 방향에 따라 온도를 달리하며 어머니의 방과 내 방을 가득 채웠는데, 마치 터키탕의 방들 같았다. 어머니의 화장방은 햇살이 눈부신 무어풍의 흰빛으로 두른 곳으로, 마주 보이는 회칠한 네 벽 때문에 우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듯 보였고, 저 위 텅 빈 공간에는 솜털 같은 흰 물결이 잇달아 미끄러져 가는 하늘이, (마음속에 이는 그리움 탓에) 테라스 위에 지었든 창 위에 걸린 거울에 거꾸로 비쳤든, 미역 감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푸른 물이 담긴 수조처럼 보였다. 이 찌는 듯한 더위에도 우리는 한 시 기차를 탔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객차 안에서 몹시 더워했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긴 걸음에서는 더욱 더워했으므로, 햇살 한 줄기 들지 않는 그 축축하고 우묵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되면 감기라도 들지 않을까 나는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 나는 엘스티르를 처음 찾아갔던 그 옛날부터, 그녀가 사치뿐 아니라 돈이 없어 누리지 못하던 어느 정도의 안락함까지도 반길 사람임을 마음에 새겨 두었던 터라, 발베크의 마차 삯 놓는 업자와 약조를 맺어 날마다 우리를 태우러 마차 한 대가 오도록 해 두었다. 더위를 피하려고 우리는 샹트피 숲을 지나는 길을 택했다. 양옆 나무들에서 서로 지저귀며 이야기를 나누는, 더러는 바닷새에 가까운 무수한 새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 사실이, 눈을 감았을 때 느끼는 것과 똑같은 안식의 인상을 주었다. 객차 안에서 알베르틴의 팔에 얽매인 채 그녀 곁에 앉아, 나는 이 오케아니데스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 이 악사들 가운데 하나가 잎사귀 하나에서 또 다른 잎사귀 그늘로 옮겨 날 때 언뜻 눈에 띄어도, 그 새와 그 노래 사이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연관이 너무도 희박해서, 파닥이고 하잘것없으며 겁에 질린 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그 작은 몸뚱이에서 노래의 근원을 보고 있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마차는 성당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수 없었다. 케톨므를 지난 뒤 나는 마차를 세우고 알베르틴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 성당을 두고, 또 다른 건물이며 어떤 그림들을 두고 그녀가 나에게 “이걸 당신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해 나를 불안하게 했던 까닭이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나 자신은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혼자이거나 혼자인 척하며 입을 열지 않을 때에만 그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나 덕분에, 그런 식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예술의 감흥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겼으므로, 나는 그녀를 두고 가야 하며 저물녘에 다시 데리러 오겠지만 그동안 마차를 타고 돌아가 부인 베르뒤랭이나 캉브르메르 부부를 찾아뵙거나, 아니면 발베크에서 어머니와 한 시간쯤 보내야 한다고, 다만 그보다 멀리는 결코 가지 않는다고 말해 두는 편이 더 신중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언젠가 알베르틴이 뾰로통하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자연이 일을 이렇게 서투르게 짜 놓아서 생장 드 라 에즈는 이쪽에, 라 라스플리에르는 저쪽에 두는 바람에, 당신이 고른 고장 한구석에 하루 내내 갇혀 지내야 하다니 참 따분해요.” 그러자 토크 모자와 베일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끝내 나 자신을 망칠 일이건만, 생파르조(본당 신부의 책에 따르면 Sanctus Ferreolus)에서 자동차 한 대를 불렀다. 아무것도 모르게 해 두었던 알베르틴은 나를 부르러 왔다가, 호텔 앞에서 엔진의 부드러운 소리를 듣고 놀랐고, 이 자동차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고는 기뻐했다. 나는 그녀를 잠시 내 방으로 올라오게 했다. 그녀는 기뻐 껑충 뛰었다. “우리는 베르뒤랭 댁에 인사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하지만 자동차를 타게 됐으니 그런 차림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자, 이걸 하면 더 나아 보일 거예요.” 그러고서 나는 감춰 두었던 토크 모자와 베일을 꺼냈다. “저를 주는 거예요? 오! 당신은 천사예요.”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계단에서 우리를 마주친 에메는, 알베르틴의 맵시 있는 차림과 우리의 교통수단을 자랑스러워하며, 발베크에서는 아직 이런 탈것이 비교적 드물었던 터라, 우리 뒤를 따라 아래층까지 내려오는 즐거움을 스스로에게 베풀었다. 새 옷을 뽐내고 싶어 안달하던 알베르틴은, 나중에 더 은밀하게 있고 싶을 때 다시 닫으면 되니, 자동차 지붕을 열어 달라고 나에게 청했다. “이보게,” 에메가, 안면도 없고 꿈쩍도 않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자네(tu) 안 들리나, 지붕을 열라니까?” 호텔 생활로 세련되어졌고 게다가 그 안에서 높은 지위까지 오른 에메는, 프랑수아즈를 “귀부인”으로 대하던 삯마차꾼처럼 수줍어하지 않았다. 격식을 갖춘 소개가 전혀 없는데도, 그는 처음 보는 서민들에게 tu라고 말을 놓았는데, 그것이 그 편의 귀족적 멸시인지 민주적 동포애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선약이 있습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운전사가 대답했다. “시모네 양의 예약을 받았거든요. 이 신사분은 태울 수 없습니다.” 에메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니, 이 멍청한 호박덩이야,” 그가 운전사에게 말하고는 이내 그를 납득시켰다, “이분이 바로 시모네 양이고, 지붕을 열라고 하시는 이 무슈께서 자네를 부른 그분일세.” 그리고 에메는, 개인적으로는 알베르틴에게 아무런 정도 없었지만 나를 봐서 그녀가 걸친 옷을 자랑스러워했으므로, 운전사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런 공주님을 날마다 모실 기회가 오는 건 아니잖나, 안 그런가?” 이 첫날에는, 다른 날들처럼 알베르틴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 혼자 라 라스플리에르로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와 함께 그리로 가기로 했다. 그녀는 물론 오는 길에 여기저기 들를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우선 생장 드 라 에즈부터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다른 방향이고, 딴 날에나 갈 나들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전사에게서 그녀는, 생장에 가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으며 자기가 이십 분이면 갈 수 있고, 원한다면 거기서 몇 시간이고 머물러도 되고 훨씬 더 멀리 가도 된다는 것을, 케톨므에서 라 라스플리에르까지는 삼십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동차가 출발하며 훌륭한 말이 스무 걸음 갈 거리를 단숨에 지나쳐 버리자마자 우리는 이를 실감했다. 거리란 공간과 시간의 관계일 뿐이며, 그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곳에 다다르는 어려움을 마일이나 킬로미터의 체계로 나타내지만, 그 어려움이 줄어드는 순간 그 체계는 거짓이 되고 만다. 예술 또한 그로 인해 달라지니, 어떤 마을과는 딴 세상에 있는 듯 보이던 마을이, 규모가 바뀐 풍경 속에서 그 이웃이 될 때가 그러하다. 어쨌든 둘에 둘을 더하면 다섯이 되고 직선이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길이 아닌 우주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라도, 하루 오후 만에 생장과 라 라스플리에르, 두빌과 케톨므, 생마르르비외와 생마르르베튀, 구르빌과 옛 발베크, 투르빌과 페테른에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운전사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알베르틴을 훨씬 덜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때껏 이 고장들은, 오래전 메제글리즈와 게르망트가 그러했듯, 저마다 다른 날의 감방에 밀폐된 채 갇혀 있어 같은 눈으로 한 오후에 함께 바라볼 수 없던 곳이었는데, 이제 칠리 장화를 신은 거인의 손에 풀려나, 그 탑들과 첨탑들을, 밀려드는 숲이 물러나며 드러내는 그 오래된 정원들을 우리 다과 시간 언저리로 데려와 모여들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