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길 초입에 이르자 자동차는 칼을 가는 듯한 끊임없는 소리를 내며 그 길을 거뜬히 올랐고, 그 아래로는 바다가 점점 멀어지며 더 넓게 펼쳐졌다. 몽쉬르방의 오래된 시골집들이 포도 덩굴이나 장미 덤불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우리를 향해 달려왔고, 라 라스플리에르의 전나무들은 저녁 산들바람이 일 때보다 더 설레며 우리를 벗어나려고 사방으로 내달았으며, 전에 본 적 없는 새 하인이 테라스에서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러 나왔고, 그동안 정원사의 아들은 조숙한 취향을 드러내며 그 기계를 눈으로 삼킬 듯 바라보았다. 월요일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부인 베르뒤랭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는데, 그녀가 집에 있는 그 요일을 빼고는 미리 기별 없이 찾아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원칙적으로” 집에 있었지만, 이 표현은, 부인 스완도 자기만의 작은 패거리를 이루고 손님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끌어들이려 애쓰던 무렵에 쓰던 말로, 그녀는 그것을 “원칙에 따라”라는 뜻으로 새겼으나, 실은 “대개는”이라는 것, 다시 말해 예외가 잦다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부인 베르뒤랭은 나들이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안주인으로서의 소임을 극단까지 밀어붙였으니, 사람들을 점심에 불러 대접하고 나면 커피와 리큐어와 담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더위와 소화의 첫 나른한 기운에도 아랑곳없이, 손님들로서는 차라리 테라스의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매끄러운 바다 위를 지나는 저지행 연락선을 바라보고 싶었으련만), 그 일정에는 잇단 나들이가 들어 있어, 그 도중에 손님들은 억지로 마차에 태워진 채, 좋든 싫든 두빌 근방에 널린 이런저런 경치를 구경하러 실려 갔다. 이 접대의 둘째 순서는, 막상 (일어나 마차에 오르는 수고를 한번 치르고 나면) 손님들에게 앞 순서 못지않게 흡족한 것이었으니, 이미 감칠맛 나는 요리와 오래 묵힌 포도주, 톡 쏘는 사과주로 마음이 무르익은 그들은 바람의 맑음과 경치의 장려함에 손쉽게 취하도록 채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인 베르뒤랭은 이 경치들을,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망정 제 소유지의 일부라도 되는 양 낯선 이들에게 구경시켰는데, 그녀와 함께 점심을 들러 온 이상 보러 가지 않을 수 없고, 반대로 이 마님의 대접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그런 곳들이었다. 산책과 마차 나들이에 대한 독점권을, 모렐의, 예전에는 데샹브르의 연주에 대해 그러했듯 제 것으로 가로채고, 풍경마저 작은 패거리의 일원이 되게끔 강요하려는 이 주장은, 그렇다고 얼핏 보이는 만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 베르뒤랭은, 그녀 말로는 캉브르메르 부부가 라 라스플리에르의 세간 배치와 정원 꾸밈에서 드러낸 몰취미를 개탄했지만, 그보다 더, 그들이 주변 고장에서 하거나 손님들에게 시키는 나들이에 아무런 창의가 없음을 개탄했다. 그녀 말로는, 라 라스플리에르가 이제 작은 패거리의 안식처가 되어서야 비로소 마땅히 늘 그러했어야 할 모습이 되어 가기 시작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캉브르메르 부부는 그 고장에서 유일하게 볼썽사나운 길을 따라, 철길을 끼고, 바닷가를 끼고 사륜마차로 하염없이 헤매고 다녔을 뿐, 평생을 그곳에서 살면서도 그곳을 알지 못한다고 그녀는 우겼다. 이 주장에는 얼마간 진실이 담겨 있었다. 습관의 힘, 상상력의 결핍, 너무 가까운 탓에 진부해 보이던 고장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캉브르메르 부부는 집을 나설 때면 늘 같은 곳으로 같은 길을 따라 다녔다. 물론 그들은 제 고향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베르뒤랭 부부의 제안에 실컷 비웃었다. 그러나 막상 그럴 때가 되면, 그들도, 심지어 그들의 마부도, 씨 베르뒤랭이 우리를 데려간 그 눈부시고 어지간히 은밀한 곳들로는 우리를 데려가지 못했을 것이니, 그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감히 발 들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사유지이되 인적 없는 곳의 울타리를 밀치고 들어가기도 했고, 마차를 두고 바퀴 달린 것이 다닐 만큼 넓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가기도 했지만, 어느 쪽이든 놀라운 경치라는 틀림없는 보상이 뒤따랐다. 지나는 김에 말해 두자면, 라 라스플리에르의 정원은 어떤 의미에서 사방 여러 마일 안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나들이의 집약이었다. 우선은 한쪽으로는 골짜기를, 다른 쪽으로는 바다를 굽어보는 그 높은 자리 때문이었고, 또한 한 방향, 이를테면 바다 쪽 한 방향에서도, 나무들 사이를 틔워 놓아 한 지점에서는 이 지평을, 다른 지점에서는 저 지평을 아우르게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조망 지점마다 벤치가 하나씩 있어, 발베크가, 또는 파르빌이, 또는 두빌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차례로 가서 앉곤 했다. 한 가지 경치를 굽어보는 데에도 어떤 벤치는 벼랑 가장자리께에, 다른 벤치는 더 뒤쪽에 놓여 있었다. 뒤쪽 벤치에서는 앞에 초록이 깔리고 이미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드넓은 지평이 펼쳐지는 듯했으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 바다의 원형극장 전체를 훑어보는 다음 벤치에 이르면 그 지평은 한없이 더 커졌다. 거기서는 파도 소리가 또렷이 들렸는데, 그 소리는 정원의 더 후미진 곳까지는 미치지 못해, 그곳에서는 바다가 여전히 보여도 이제 들리지는 않았다. 이 쉼터들은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그 집 식구들 사이에 “조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과연 그것들은, 하드리아누스가 제 별장에 여러 나라의 이름난 기념물들을 축소한 모형으로 모아 놓았듯, 멀어서 한껏 작아 보이는 이웃 고장들의, 해안선이든 숲이든, 가장 빼어난 경치들을 저택 둘레에 그러모았다. “조망”이라는 말 뒤에 붙는 이름이 반드시 해안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고, 흔히는 만 건너편 기슭의 이름이었는데, 파노라마가 그토록 광대한데도 어느 정도 도드라져 보이는 곳이었다. “발베크 조망”에서 한 시간쯤 읽으려고 씨 베르뒤랭의 서재에서 책을 한 권 집어 오듯이, 하늘이 맑으면 “리브벨 조망”에서 리큐어가 나왔는데, 다만 바람이 너무 세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에서였으니, 양옆에 심은 나무들에도 불구하고 그 위쪽 공기는 매서웠기 때문이다. 부인 베르뒤랭이 오후마다 꾸리던 마차 나들이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마님은 돌아오는 길에 “해안에 잠깐 들른” 어느 사교계 나비의 명함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하는 척했지만, 실은 그의 방문을 놓친 것에 가슴이 미어졌고, (이 무렵 사람들은 그저 “집 구경”을 하거나, 예술적 살롱으로 이름은 났으되 파리에서는 축에 끼지 못하는 여인을 하루 사귀어 보려고 왔을 뿐이건만) 이내 씨 베르뒤랭을 시켜 그를 다음 수요일 만찬에 청하게 했다. 그 나그네는 흔히 그날 이전에 떠나야 하거나 늦게까지 나다니기를 꺼렸으므로, 부인 베르뒤랭은 월요일 다과 시간에는 늘 집에서 만날 수 있도록 마련해 두었다. 이 다과회는 전혀 크지 않았고, 파리에서는 게르망트 대공비 댁이나 부인 갈리페 댁, 또는 부인 다르파종 댁에서 이런 종류의 더 화려한 모임을 나는 겪어 보았다. 그러나 이곳은 파리가 아니었고, 그 배경의 매력이 내 눈에는 모임의 즐거움뿐 아니라 찾아온 이들의 값어치까지 돋보이게 했다. 어느 사교계 명사와의 만남은, 파리에서라면 나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했겠지만, 페테른이나 샹트피 숲을 거쳐 먼 데서 찾아온 라 라스플리에르에서는 그 성격이, 그 무게가 달라져, 하나의 흐뭇한 사건이 되었다. 때로 그것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 스완 댁에서라면 만나려고 한 발짝도 옮기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 벼랑 위에서는 다르게 울렸으니, 극장에서 늘 들어 오던 배우의 이름이, 나머지 출연진의 뜻밖의 면면으로 그 명성이 대번에 몇 곱절이 되는 특별 자선 공연의 안내문에 다른 빛깔로 박혀 있을 때와 같았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격식 없이 처신하는 만큼, 그 사교계 명사는 흔히 제멋대로 함께 묵고 있는 벗들을 데려오고는, 그들 집에 얹혀 지내는 처지라 그들을 두고 올 수 없었다는 변명을 부인 베르뒤랭의 귀에 대고 웅얼거렸다. 반면 그를 재워 준 이들에게는, 단조로운 바닷가 생활에서 재치와 지성의 중심지로 이끌려 가고, 웅장한 저택을 구경하며 훌륭한 다과를 드는 기분 전환을, 일종의 호의로 베푸는 척했다. 이렇게 해서 대뜸 어중간하게 이름난 몇몇 사람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무 몇 그루가 선, 시골에서라면 초라해 보일 손바닥만 한 정원이, 오직 억만장자만이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가브리엘 대로나, 말하자면 몽소 거리에서는 남다른 매력을 얻듯이, 거꾸로 파리의 모임에서는 이류에 지나지 않는 신사들이 라 라스플리에르에서의 월요일 오후에는 제값을 온전히 드러냈다. 빨갛게 수놓은 식탁보를 씌운 식탁에, 그림을 그려 넣은 널판들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록 케이크며 노르망디식 퍼프 페이스트리, 산호 구슬 같은 버찌를 채운 배 모양 타르틀레트, “디플로마” 케이크를 들기가 무섭게, 이 손님들은 창이 열린 저 드넓은 쪽빛 사발이 가까이 있는 탓에, 그들을 바라보면 그것을 함께 보지 않을 수 없는 그 쪽빛 탓에, 깊은 변화를, 그들을 이전보다 더 값진 무엇으로 바꾸어 놓는 변성을 겪었다. 게다가 그들을 눈에 담기도 전에, 월요일에 부인 베르뒤랭 댁에 오면, 파리에서라면 대저택 밖에 늘어선 맵시 있는 마차 행렬쯤은 하도 눈에 익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을 사람들이, 높다란 전나무 아래 라 라스플리에르 앞에 세워진 두세 대의 낡아 빠진 이륜마차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이는 시골의 배경이 달랐던 까닭이요, 이 자리바꿈 덕에 사교적 인상이 일종의 새로움을 되찾은 까닭이었다. 또한 부인 베르뒤랭을 찾아뵈러 세낸 그 낡아 빠진 마차가, 즐거운 나들이와, 하루 전세에 “얼마”를 부른 마부와 맺은 값비싼 흥정을 떠올리게 한 까닭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누구인지 가려낼 수 없는 새 도착객들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의 술렁임이, 저마다 스스로에게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라고 묻게 했다. 캉브르메르 부부네나 다른 데에 일주일 묵으러 누가 내려왔는지 모를 때에는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으나, 오래 보지 못한 사람과의 만남이 파리 생활에서와 같은 성가신 일이기를 그치고, 너무 외로운 삶의 텅 빈 단조로움에 감미로운 틈을 이루며, 우편배달부의 노크 소리마저 하나의 기쁨이 되는 시골의 호젓한 살림에서는, 사람들이 늘 즐겨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라 라스플리에르에 다다른 그날은 월요일이 아니었으므로, 씨와 부인 베르뒤랭은 사람을 보고 싶은 그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 틀림없으니, 그것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덮쳐 오는 갈망으로, 엄격한 격리 요법을 위해 가족과 벗들에게서 떨어져 갇혀 지낸 환자로 하여금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표현들에 벌써 익숙해진 발 빠른 새 하인이, “마님께서 나가지 않으셨다면 두빌 조망에 계실 겁니다”라고, 가서 찾아보겠다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돌아와 그녀가 우리를 맞으러 오고 있다고 알렸다. 우리가 본 그녀는 매무새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는데, 공작과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달걀을 찾고, “식탁 한가운데를 꾸밀” 과일과 꽃을 따러 다녀온 꽃밭과 가금 마당과 채마밭에서 막 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 식탁 장식은 그녀의 정원을 축소한 모형을 떠올리게 했지만, 식탁 위에서는 쓸모 있고 먹기 좋은 것들만 떠받치게 하는 품위를 그 식탁에 부여했으니, 정원이 준 또 다른 선물인 배며 거품 낸 달걀 둘레로 개지치와 카네이션과 장미와 기생초의 긴 대들이 솟아 있었고, 꽃 핀 경계 말뚝들 사이로 그러하듯 그 대들 사이로, 유리창 너머 바다 위의 배들이 이 대에서 저 대로 옮겨 가는 것이 보였다. 통보된 손님들을 맞으려고 꽃을 꽂다 말고 나온 씨와 부인 베르뒤랭이, 그 손님이 고작 알베르틴과 나임을 알고 드러낸 놀라움으로 미루어, 열의는 넘치나 아직 내 이름에 익지 않은 새 하인이 그것을 잘못 옮겼고, 모르는 손님들의 이름을 들은 부인 베르뒤랭이 그래도 누구든 좋으니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들이라 일렀음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새 하인은 우리가 이 집안에서 어떤 몫을 하는 사람인지 가늠하려고 문간에서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달아나듯 가 버렸으니, 바로 전날에야 일을 시작한 터였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부부에게 제 토크 모자와 베일을 다 뽐내고 나자, 그녀는 우리가 하려던 일에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음을 일깨우려는 듯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부인 베르뒤랭은 다과라도 들고 가라고 우리를 붙들었으나 우리는 사양했는데, 그때 문득 한 가지 제안이 나와, 알베르틴과의 나들이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온갖 즐거움을 결딴내려 들었으니, 이 마님이 우리와 떨어질 생각을, 어쩌면 새로운 기분 전환을 놓칠 생각을 견디지 못해, 우리를 따라나서기로 한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제 이런 제안이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겪어 온 데다, 이 제안 또한 우리 마음에 들지 어쩔지 아마 미심쩍었던 그녀는, 우리에게 말을 붙일 때 느끼는 수줍음을 지나친 자신감으로 감추고는, 우리 대답에 조금이라도 의문의 여지가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않는 양,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알베르틴과 나를 두고 남편에게, 마치 우리에게 은혜라도 베푸는 듯이 말했다. “내가 직접 저이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겠어요.”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는 본디 그 입술의 것이 아닌 미소가 감돌았으니, 어떤 사람들이 아는 체하는 낯빛으로 베르고트에게 “당신 책을 샀는데, 나쁘지 않더군요”라고 말할 때 그 얼굴에서 내가 이미 본 적 있는 미소, 필요를 느낄 때면 마치 우리가 철도나 이삿짐 마차를 이용하듯 저마다 빌려다 쓰는 그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미소 가운데 하나로, 다만 스완이나 씨 드 샤를뤼스처럼 지극히 세련된 몇몇은 예외였으며, 나는 그들의 입술에 그 미소가 내려앉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방문은 망가지고 말았다. 나는 알아듣지 못한 척했다. 잠시 뒤 씨 베르뒤랭도 일행에 끼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씨 베르뒤랭께는 너무 멀 텐데요.” 나는 반대했다. “천만에요,” 부인 베르뒤랭이 짐짓 너그럽고 명랑한 낯빛으로 대꾸했다, “저이 말이, 그토록 여러 번 다녀 본 길을 젊은 두 분과 함께 가는 게 더없이 재미있겠다는군요. 필요하면 기사 옆자리에 앉을 테고, 그런 건 무서워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우리는 다정한 부부처럼 기차로 조용히 돌아오면 되고요. 저이 좀 보세요, 아주 신이 났잖아요.” 그녀는 마치, 다정함이 넘치고 누구보다 젊어, 손주들을 웃기려고 종이에 사람 모양을 끄적이기를 즐기는 늙고 이름난 화가라도 이야기하는 듯했다. 내 서글픔을 더한 것은, 알베르틴이 그 서글픔을 함께하지 않는 듯했고 이렇게 베르뒤랭 부부와 함께 온 시골을 내달리는 생각에서 되레 얼마간 즐거움을 찾는 듯 보였다는 점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녀와 함께 누리리라 다짐했던 그 즐거움이 어찌나 절실했던지, 나는 이 마님이 그것을 망치도록 그냥 두려 하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을 지어냈는데, 부인 베르뒤랭의 짜증스러운 으름장이 그 거짓말을 용서받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나, 아뿔싸, 알베르틴이 그 말을 뒤집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찾아가 인사할 데가 있어요.” 내가 말했다. “무슨 인사요?” 알베르틴이 물었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요, 안 갈 수 없는 일이에요.” “좋아요,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면 되죠.” 무슨 일이든 감수하겠다는 듯 부인 베르뒤랭이 말했다. 마지막 순간, 그토록 갈망하던 행복을 빼앗기는 것을 보는 괴로움이 나에게 무례해질 용기를 주었다. 나는 딱 잘라 거절하며, 알베르틴에게 어떤 곤란한 일이 생겨 그녀가 나와 의논하고 싶어 하니 내가 반드시 그녀와 단둘이 있어야 한다고 부인 베르뒤랭의 귀에 대고 둘러댔다. 이 마님은 언짢은 기색이었다. “알겠어요, 우리는 안 가겠어요.” 그녀가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녀가 어찌나 노여워하는지, 나는 조금 물러서는 듯 보이려고 “하지만 어쩌면…” 하고 말을 꺼냈다. “아니에요,” 그녀가 어느 때보다 격노하여 대꾸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예요.” 나는 그녀의 눈 밖에 났으려니 여겼으나, 그녀는 문간에서 우리를 다시 불러 세워, 다음 수요일에는 “빠지지” 말라고, 밤에는 위험한 그 탈것 말고 작은 무리와 함께 기차로 오라고 다그쳤으며, 정원을 가로질러 비탈을 내려가던 자동차를 멈추게 했으니, 하인이 우리에게 꾸러미로 싸 준 타르트 한 조각과 쇼트브레드를 포장 안에 넣는 것을 잊은 까닭이었다. 우리는 길을 떠났고, 꽃을 든 채 우리를 맞으러 달려온 작은 집들이 잠시 우리를 배웅했다. 시골의 모습은 우리에게 온통 달라져 보였으니, 우리가 저마다 떨어진 곳들에 대해 마음속에 그리는 지형의 심상에서, 공간이라는 관념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는커녕 그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관념이 그 곳들을 한층 더 갈라놓는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것 또한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우리가 늘 따로 떼어 보는 어떤 곳들은, 나머지와는 아무런 공통의 척도가 없는 듯, 거의 세상 바깥에 있는 듯 여겨지니, 우리 삶의 특별한 시기에, 병역을 치르는 동안, 또는 어린 시절에 알게 되어 그 무엇과도 잇대어 떠올리지 않는 사람들과 같다. 발베크에서의 첫해에, 부인 드 빌파리지가 우리를 즐겨 데려가던 높은 지대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오직 물과 숲만 보였기 때문으로, 그곳은 보몽이라 불렸다. 그녀가 그곳에 가려고 잡은 길은, 오래된 나무들 때문에 다른 길보다 그녀가 더 좋아하던 길로, 내내 오르막이었으므로, 그녀의 마차는 기어가듯 나아갈 수밖에 없어 아주 오래 걸렸다. 꼭대기에 이르면 우리는 내려서 잠깐 거닐다가 다시 마차에 올라 같은 길로 돌아왔는데, 마을 하나, 시골집 한 채 보지 못했다. 나는 보몽이 아주 특별하고 아주 멀고 아주 높은 무엇임을 알았으나, 다른 어디를 가려고 보몽 길을 잡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그곳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는 도무지 몰랐고, 게다가 마차로는 거기 가는 데 아주 오래 걸렸다. 그곳은 분명 발베크와 같은 도(道)(또는 같은 지방)에 있었으나, 나에게는 다른 차원에 자리해 치외법권이라는 특별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는 어떤 신비도 존중하지 않으니, 그 집들이 아직 내 눈앞에서 춤추던 앵카르빌을 지나, 파르빌(Paterni villa)로 이어지는 샛길을 내려가며, 우리가 지나던 자연 그대로의 벼랑에서 바다가 언뜻 눈에 들자, 나는 그곳의 이름을 물었고, 운전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곳이 보몽임을 알아보았으니, 파르빌에서 이 분 거리에 있어 작은 열차를 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곁을 지나치던 곳이었다. 우리 연대의 어느 장교가, 명문가 사람이라기엔 너무 다정하고 소탈하며, 그저 명문가 사람이라기엔 이미 너무 아득하고 신비로워, 나에게는 별종처럼 보였다가, 훗날 그가 내가 함께 저녁을 들던 사람들의 매부이자 사촌임을 알게 되는 일이 있듯이, 보몽도, 내가 그토록 동떨어져 있으려니 여기던 곳들과 별안간 맞닿게 되자 그 신비를 잃고 고장 안에 제자리를 잡았으며, 나로 하여금, 만일 소설의 그 밀폐된 공기 밖 다른 곳에서 마주쳤더라면 보바리 부인과 산세베리나마저도 여느 사람들처럼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하게 했다. 기차로 하는 마법 같은 여행을 향한 내 애착이라면, 병자마저도 원하는 곳 어디로든 데려다주며, 지금껏 내가 지녀 온, 공간상의 위치를 옮길 수 없는 아름다움들의 개별적인 표지요 대체할 수 없는 본질로 여기던 그 관념을 허물어 버리는 자동차에, 알베르틴이 품는 경이를 나 또한 나누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하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과연 이 공간상의 위치는, 내가 파리에서 발베크로 올 때 철도 기차에게 그러했던 것과는 달리, 자동차에게는, 일상의 우연들에서 벗어난 목표, 떠나는 순간에는 거의 이상에 가깝고, 다다르는 순간에도 그러하기에, 아무도 살지 않으면서 오직 그 도시의 이름만을 지닌 저 커다란 거처, 곧 역에 다다를 때, 마치 역이 그 도시의 구현물이라도 되는 양 마침내 그 도시에 이를 수 있으리라 약속하는 듯한 그런 목표가 아니었다. 아니, 자동차는 우리를, 처음에는 그 이름으로 요약되는 전체로서 바라보던 도시로, 극장의 관객이 품는 환상과 더불어 그렇게 마법처럼 실어다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를 거리라는 무대 옆문으로 그 극장에 들어서게 했고, 멈춰 서서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그러나 그토록 스스럼없는 진행에 대한 보상으로, 길을 확신하지 못해 왔던 길을 되짚는 운전사의 더듬거림이 있고, 성 하나를 언덕과 성당과 바다와 더불어 춤추게 하는 원근의 그 “자리바꿈 놀이”가 있으니, 우리가 그 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성은 태곳적 나뭇잎 아래 몸을 숨기려 부질없이 애쓰건만 그러하다. 자동차가, 저를 벗어나려 사방으로 내닫는 홀린 듯한 도시 둘레에 점점 좁혀 그리는 그 원들, 그러다 마침내 곧장 그 위로 내려앉아, 도시가 땅바닥에서 팔딱이며 누워 있는 골짜기 한복판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 원들이 있으니, 그리하여 이 공간상의 위치, 이 유일한 지점을, 자동차는 급행열차의 신비를 벗겨 낸 듯싶으면서도, 도리어 우리에게 그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컴퍼스로 하듯 스스로 확정하는, 더 다정하게 더듬는 손길로, 더 미세한 정확함으로, 대지의 참된 기하학을, 그 올바른 척도를 느끼도록 돕는 인상을 준다.
그 순간 내가 안타깝게도 몰랐고 두 해가 더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 운전사의 고객 가운데 하나가 씨 드 샤를뤼스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삯을 치르라는 명을 받고도 그 돈의 일부를 제 몫으로 챙기던(운전사에게 주행 거리를 세 곱절, 다섯 곱절로 부풀리게 하던) 모렐이, 그와 아주 가까워져(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를 모르는 척하면서) 그 차를 먼 여행에 부려 먹었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이것을, 그리고 머지않아 베르뒤랭 부부가 이 운전사에게 품게 될 신뢰가 그들도 모르게 바로 그 출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이듬해 파리에서의 내 삶의 숱한 슬픔이며 알베르틴을 둘러싼 내 괴로움의 많은 부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나, 나는 그것을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못했다. 씨 드 샤를뤼스가 모렐과 함께 자동차로 다니는 나들이 자체는 나에게 직접적인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은 으레 해안가 어느 식당에서의 점심이나 저녁으로 그쳤는데, 그곳에서 씨 드 샤를뤼스는 늙고 무일푼인 하인으로, 셈을 치르는 것이 소임이던 모렐은 지나치게 인정 많은 신사로 여겨졌다. 이런 식사 가운데 한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여기 옮기니, 나머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 줄 것이다. 그곳은 생마르르베튀의, 길쭉한 모양의 식당이었다. “이것 좀 치우게 할 수 없나?” 씨 드 샤를뤼스가, 종업원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중개인에게 부탁하기라도 하듯 모렐에게 물었다. “이것”이란 시든 장미 세 송이가 담긴 꽃병으로, 선의를 품은 급사장이 식탁을 꾸미는 데 알맞겠다 여겨 놓은 것이었다. “네…” 모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장미를 안 좋아하십니까?” “내 부탁은 오히려 내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걸 말해 주는 셈이지, 여기엔 장미가 없으니 말일세”(모렐은 놀란 눈치였다) “하기야 사실 나는 장미를 그리 좋아하진 않네. 나는 이름에 좀 민감한 편인데, 장미가 조금이라도 아름답다 싶으면 그게 로칠드 남작부인이니 마레샬 니엘이니 하는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러면 흥이 싹 가시거든. 자네는 이름을 좋아하나? 자네의 그 소품 연주곡들에 아름다운 제목이라도 붙여 봤나?” “‘슬픈 시’라고 이름 붙인 곡이 하나 있습니다.” “끔찍하군.” 씨 드 샤를뤼스가 일격처럼 쨍하게 울리는 새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데 나는 샴페인을 시키지 않았나?” 그가, 거품 이는 액체 두 잔을 손님들 곁에 놓으며 주문을 따르는 줄로 알았던 급사장에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더러운 것 좀 치우게,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샴페인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물건이니. 저건 컵이라 불리는 구토제인데, 으레 상한 딸기 세 알이 식초와 소다수를 섞은 물에 둥둥 떠 있는 것이지. 그래,” 그가 다시 모렐 쪽으로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제목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야. 게다가 자네가 가장 잘 연주하는 곡들을 풀어내는 데에서도, 자네는 영매(靈媒)적인 면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남작이 한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모렐이, 점심 초대 같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며 물었다. 씨 드 샤를뤼스가 “무슨 말씀이신지요?”를 물음으로 여기지 않은 탓에, 모렐은 그 결과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자, 화제를 바꾸어 그것을 음탕한 쪽으로 돌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남작님이 싫어하시는 그 꽃을 파는 저 금발 아가씨 좀 보세요. 저 여자한테 여자 애인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저 끝자리에서 저녁을 드는 저 노파도 그렇고요.” “한데 그걸 자네가 어떻게 다 아나?” 모렐의 직감에 놀란 씨 드 샤를뤼스가 물었다. “오! 저는 한눈에 알아봐요. 우리가 함께 사람들 속에 나가 보시면, 제가 한 번도 틀리는 법이 없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다운 아름다움 속에 계집애 같은 태가 깃든 모렐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어떤 여인들에게 그들이 그에게 그러한 만큼이나 훤히 드러나게 하는 그 어렴풋한 점술을 이해했으리라. 그는 쥐피앙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싶어 안달했고, 그 재봉사가 남작에게서 얻는다고 짐작한 이문을 제 고정 수입에 보태고 싶은 막연한 욕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애들이라면 저는 더욱더 자신 있어요, 남작님이 실수하시지 않게 막아 드릴 수 있고요. 곧 발베크에서 장이 설 텐데, 거기서 여러 가지를 찾아낼 겁니다. 그리고 파리에서도, 두고 보세요, 아주 즐거우실 거예요.” 그러나 하인으로서 물려받은 조심성이, 그가 이미 꺼내 놓은 문장에 다른 방향을 잡게 했다. 그래서 씨 드 샤를뤼스는 그가 아직도 여자애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여겼다. “들어 보세요,” 모렐이, 제 딴에는 자신에게 덜 위험하다 여긴 방식으로(실은 오히려 더 부도덕한 방식으로) 남작의 감각을 자극하고 싶어 안달하며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아주 순결한 처녀를 하나 찾아내서, 저에게 반하게 만들고는, 그 처녀의 순결을 빼앗는 겁니다.” 씨 드 샤를뤼스는 다정하게 모렐의 귀를 꼬집지 않고는 못 배겼으나, 시치미를 떼며 덧붙였다. “그게 자네에게 무슨 득이 되겠나? 그 처녀의 순결을 빼앗으면 자네는 그 애와 결혼해야 할 텐데.” “결혼이라뇨?” 모렐이, 남작이 얼근히 취했으려니 짐작하며, 아니면 자기가 말을 건네는 상대가 실은 자기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는 데는 아랑곳도 없이 소리쳤다. “결혼이라뇨? 웃기는 소리! 약속이야 하겠죠, 하지만 그 조그만 일만 치르고 나면, 저는 튀어 버리고 그 애를 내버려 둘 겁니다.” 씨 드 샤를뤼스는, 어떤 꾸며 낸 이야기가 그에게 한순간의 관능적 쾌락을 안겨 줄 수 있을 때면 그것이 참이라 믿어 버리는 버릇이 있었으되, 그 쾌락이 다하는 잠시 뒤에는 그 곧이곧대로 믿던 마음을 통째로 거둬들일 자유를 스스로에게 남겨 두었다. “자네 정말 그러겠나?” 그가 웃으며 모렐을 더욱 바싹 끌어당기며 말했다.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자기가 정말로 품은 욕망 가운데 하나를 계속 늘어놓아도 남작이 언짢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렐이 말했다. “그건 위험한 일일세.” 씨 드 샤를뤼스가 말했다. “짐은 미리 싸서 준비해 두었다가, 냅다 튀어 버리고 주소 하나 안 남기죠.” “그럼 나는 어쩌고?” 씨 드 샤를뤼스가 물었다. “물론 남작님도 모시고 가야죠.” 모렐이 서둘러 덧붙였으니, 실은 저에게 조금도 책임질 것 없는 남작이 어찌 될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수법을 꼭 한번 써 보고 싶은 계집애가 하나 있어요, 공작님의 저택에서 가게를 하는 어린 재봉사예요.” “쥐피앙의 딸이로군.” 포도주 담당 급사가 방에 들어서는 참에 남작이 외쳤다. “오! 그건 절대 안 되네.” 그가 덧붙였으니, 제삼자의 등장이 그의 열기를 식힌 탓인지, 아니면 가장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기를 즐기는 이런 종류의 흑미사 가운데서도, 우정의 끈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은 차마 용납할 수 없었던 탓인지 모를 일이었다. “쥐피앙은 좋은 사람이고, 그 아이는 사랑스럽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딱한 노릇이야.” 모렐은 자기가 너무 나갔다 싶어 입을 다물었으나, 그의 눈길은 상상 속에서 그 처녀에게 계속 못 박혀 있었으니, 언젠가 그녀 앞에서 저를 “친애하는 대선생님”이라 불러 달라고 나에게 사정하고는 그녀에게서 조끼를 한 벌 맞추었던 바로 그 처녀였다. 부지런한 일꾼이던 그 아이는 하루도 쉬지 않았으나,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발베크 근처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생각하기를 그치지 못했으니, 모렐을 나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본 덕에 그를 “신사”로 여기게 된 우연이 그 얼굴을 한층 고귀하게 만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