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케톨므에서 마차를 내려, 움푹 팬 오솔길을 달려 내려가, 널빤지로 개울을 건너, 온통 첨탑과 잎꽃 장식으로 뒤덮여 가시 돋친 듯 붉은, 장미 덤불처럼 꽃핀 성당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알베르틴을 발견했다. 오직 채광탑만이 매끈한 정면을 드러냈고, 미소 짓는 돌의 표면에는 천사들이 만발하여, 우리라는 20세기의 한 쌍 앞에서, 초를 손에 들고 13세기의 의식을 여전히 거행하고 있었다. 알베르틴이 밑칠해 둔 화폭에 담아내려 애쓰던 것이 바로 그 천사들이었고, 엘스티르를 흉내 내어 그녀는 큼직한 붓질로 물감을 칠하며, 그 거장이 그녀에게 일러 준 대로, 그가 아는 어떤 천사와도 그토록 다른 그 천사들이 빚어내는 고귀한 리듬을 따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기 물건들을 챙겼다. 서로에게 기댄 채 우리는 그 움푹 팬 오솔길을 되짚어 올라가며, 마치 우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듯 고요한 그 작은 성당을 개울의 끝없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남겨 두었다. 이윽고 자동차가 출발하여, 다른 길로 우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마르쿠빌 로르괴외즈를 지났다. 절반은 새것이고 절반은 복원된 그 성당 위로, 지는 해가 수백 년 세월의 것에 못지않게 고운 녹빛 광택을 펼쳐 놓았다. 그 광택을 통해 커다란 부조들은 반쯤은 액체 같고 반쯤은 빛나는, 떠도는 한 겹의 막을 통해서만 보이는 듯했다. 성모 마리아, 성 엘리사벳, 성 요아킴이 그 만질 수 없는 물결 속에서, 물이나 햇빛의 표면 위, 거의 마른 땅 위에서 헤엄쳤다. 따스한 먼지 속에 솟아오른 수많은 근대의 조각상들은, 저마다의 기둥 위에서, 석양의 황금빛 그물 중턱까지 닿아 있었다. 성당 앞에서는 키 큰 편백나무 한 그루가 일종의 봉헌된 울타리 안에 있는 듯했다. 우리는 그것을 보려고 잠시 차에서 내려 조금 거닐었다. 알베르틴은 자기 팔다리 못지않게 레그혼 밀짚 토크와 비단 베일(그것들도 그녀에게는 못지않은 만족의 원천이었다)을 직접 의식하고 있었고, 성당 둘레를 거니는 동안 그것들에서 또 다른 종류의 활기를 끌어냈는데, 그 활기는 나른하되 내가 어떤 매력을 느낀 흡족함으로 드러났다. 베일과 토크는 내 여자친구에게 아주 최근에 덧붙은 부수적인 일부일 뿐이었으나, 저녁 공기 속 편백나무를 지나며 눈으로 그 자취를 좇던 나에게는 이미 소중한 일부였다. 그녀 자신은 그것을 볼 수 없었으나 그 효과가 보기 좋으리라 짐작했으니, 그녀는 자기 머리의 자세를 그것을 완성해 주는 모자에 맞추며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난 저게 싫어, 복원한 거잖아.” 그녀가 성당을 가리키며, 오래된 돌의 값을 매길 수 없는,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엘스티르가 자기에게 한 말을 떠올리면서 내게 말했다. 알베르틴은 한눈에 복원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탄스러운 취향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건축에 대해서는 그녀가 이미 익힌 취향이 그토록 확실한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엘스티르만큼이나 이 성당에 무관심했고, 그 햇살 어린 정면이 내 눈앞에 다가와 자리 잡은 것도 내게는 아무런 즐거움이 아니었으며, 내가 차에서 내려 그것을 살펴본 것도 오로지 알베르틴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위대한 인상파 화가가 자가당착에 빠졌음을 알아챘다. 어째서 이 성당을 그 객관적인 건축적 가치의 물신으로 떠받들면서, 석양이 성당에 일으킨 변용은 고려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절대 아니야.” 알베르틴이 말했다. “난 저건 싫어. 나는 orgueilleuse라는 그 이름은 좋아하지만. 그런데 내가 잊지 말고 브리쇼에게 물어봐야 할 건, 왜 생마르가 le Vêtu라고 불리느냐는 거야. 우리 다음엔 거기 갈 거지, 그렇지?” 그녀가 말하며, 예전의 그 작은 폴로 모자처럼 토크를 눌러쓴 그 아래로 검은 두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베일이 등 뒤로 나부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다시 차에 올랐다, 이튿날 우리가 생마르로 가리라는 생각에 흐뭇해하면서. 그곳에서는, 오직 미역 감는 즐거움만 떠올릴 수 있는 이 불볕더위 속에서, 마름모꼴 기와를 얹은 연어살빛의 두 오래된 종탑이, 숨을 쉬려는 듯 살짝 벌어진 채, 비늘을 뒤집어쓰고 이끼가 끼어 붉은, 주둥이가 뾰족한 늙은 물고기 한 쌍처럼 보였는데, 그것들은 움직이는 기색도 없이 파랗고 투명한 물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르쿠빌을 벗어나며, 길을 줄이려고 우리는 농가가 하나 있는 갈림길에서 옆으로 꺾어 들었다. 이따금 알베르틴은 거기서 차를 세우게 하고는, 그녀가 차 안에서 마실 수 있도록 나 혼자 가서 칼바도스나 시드르 한 병을 받아 오라고 청했는데, 그 집 사람들은 그게 거품이 일지 않는다고 장담했으나, 그것은 우리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뻑 적셔 놓기 일쑤였다. 우리는 바짝 붙어 앉았다. 농가 사람들은 닫힌 차 안의 알베르틴을 거의 볼 수 없었고, 나는 그들에게 빈 병을 돌려주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마치 우리끼리 그 은밀한 삶을, 그들이 우리가 살고 있으리라 짐작할 법한 그 연인의 삶을 이어 가려는 듯이. 그리고 목을 축이려던 이 멈춤은 그 삶의 하찮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이. 그런 짐작은, 알베르틴이 시드르 한 병을 다 마신 뒤의 우리를 그들이 보았더라면 훨씬 덜 억지스러워 보였으리라. 그럴 때면 그녀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그녀와 나 사이의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리넨 치마 아래로 그녀의 다리가 내 다리에 밀착했고, 그녀는 창백해진, 광대뼈 위로는 따뜻하게 붉어진 자기 두 뺨을 내 뺨에 바짝 붙였는데, 그 뺨에는 빈민가 처녀들에게서 볼 법한 어딘가 열띠고도 바래 버린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런 순간이면, 그녀의 인격이 바뀌는 것 못지않게 빠르게 그녀의 목소리도 바뀌어, 그녀는 자기 목소리를 버리고 다른 목소리를, 쉬고, 대담하고, 거의 방탕한 목소리를 취했다. 밤이 내리기 시작했다. 토크와 베일을 두른 채 내게 기댄 그녀를 느끼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가, 나란히 앉아 있는 그 모습이, 우리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마주칠 때 늘 보게 되는 그 모습임을 일깨우면서. 나는 어쩌면 알베르틴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내 안에 존재하긴 했어도 나는 감히 그녀에게 그것을 내보이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하나의 추상적 진리와도 같을 수밖에 없었으니, 실험으로 검증해 내기 전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진리 말이다. 그런 채로 그것은 내게 실현할 수 없는, 삶의 평면 바깥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 질투로 말하자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되도록 알베르틴을 떠나지 말라고 부추겼으나, 나는 그 질투가 그녀와 영영 헤어지기 전에는 완전히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곁에 있을 때조차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럴 때면 그 질투를 불러일으켰던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심하곤 했다. 이를테면 한번은, 어느 맑은 아침에, 우리는 리브벨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과, 차를 내오던 복도 모양의 그 홀의 커다란 유리문들이 활짝 열려, 그 너머 햇살 어린 잔디밭을 드러냈는데, 그 거대한 레스토랑이 그 잔디밭의 일부를 이루는 듯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불꽃처럼 굽이치는 검은 머리를 한 그 웨이터는, 예전보다는 덜 빠르게 그 드넓은 공간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날아다녔는데, 이제 그는 더 이상 보조가 아니라 한 줄의 탁자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고난 활발함 덕분에, 어떤 때는 멀리 식당 안에서, 또 어떤 때는 더 가까이, 그러나 바깥에서, 정원에서 식사하기를 택한 손님들의 시중을 들며, 사람들은 그를 여기서 또 저기서 언뜻언뜻 보게 되었으니, 마치 달리는 젊은 신의 잇따른 조각상들 같았다, 어떤 상은 초록빛 풀밭의 전망에 둘러싸인 저택의, 게다가 환히 밝혀진 그 실내에, 또 어떤 상은 나무들 아래, 야외 생활의 밝은 광채 속에 있는 듯이. 한순간 그가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알베르틴은 내가 방금 그녀에게 한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두 순간 나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자기 곁에 두지 못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내 존재 때문에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어떤 은밀한 대화에 빠져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전혀 모르는 지난날의 만남들의, 아니면 그가 그녀에게 던진 한낱 눈길의 뒤끝일 그 대화에. 그리고 거기서 나는 terzo incomodo, 곧 다른 이들이 뭔가를 감추려 드는 거추장스러운 제삼자였다. 고용주에게 억지로 불려 가 그가 우리에게서 물러난 뒤에도, 알베르틴은 식사를 이어 가면서 레스토랑과 그 정원을 그저 불 밝힌 경주로쯤으로 여기는 듯했으니, 그 위로는 갖가지 풍경 사이 여기저기에 검은 머리채를 늘어뜨린 발 빠른 신이 나타나곤 했다. 한순간 나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뒤따라가, 나를 탁자에 홀로 남겨 두려는 것은 아닐까 자문했다. 그러나 뒤이은 날들 동안 나는 이 괴로운 인상을 영영 잊기 시작했으니, 나는 다시는 리브벨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알베르틴에게서 약속을 받아 냈는데, 그녀는 전에 거기 온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랜 웨이터가 오직 그녀에게만 눈길을 주었다는 것을 부인했으니, 내 동행이 그녀에게서 어떤 즐거움을 앗아 갔다고 그녀가 믿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따금 나는 리브벨을 다시 찾곤 했으나, 혼자였고, 예전에 거기서 그랬듯이 지나치게 마셨다. 마지막 잔을 비우면서 나는 흰 벽에 그려진 둥근 무늬 하나를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쾌감을 그 위에 집중시켰다. 세상에서 오직 그것만이 내게 존재했다. 나는 흔들리는 눈길로 그것을 좇고, 만졌다가, 번갈아 놓쳤으며, 미래에는 무심해진 채, 그려진 그 무늬로 만족했으니, 마치 앉아 있는 나비 주위를 맴돌며 그 나비와 함께 지고한 합일의 행위 속에서 제 생을 끝맺으려는 나비처럼. 그 순간은 어쩌면 한 여인을 단념하기에 유난히 알맞은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 최근의 것도 그리 격렬한 것도 아닌 어떤 고통도 나로 하여금, 병을 일으킨 자들이 지니고 있는 그 병의 진통제를 그 여인에게 청하도록 다그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바로 이 드라이브들로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비록 그 순간 나는 그것들을 오직 내일의 예고편으로밖에 여기지 않았고, 그 내일이란 나를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면서도 정작 오늘과 다를 바 없을 것이었지만, 그 드라이브들은 지금껏 알베르틴이 드나들었으나 내가 그녀와 함께 있지는 않았던 장소들, 그녀의 이모 집이며 여자친구들의 집에서 떼어 내어졌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적극적인 기쁨의 매력이 아니라, 오직 어떤 불안이 가라앉는 데서 오는 매력이었으나, 그래도 꽤 강한 매력이었다. 며칠 간격을 두고, 우리가 밖에 앉아 시드르를 마셨던 그 농가로, 아니면 그저 우리가 생마르르베튀 둘레를 거닐었던 그 산책으로 내 생각이 돌아갈 때면, 알베르틴이 토크를 쓴 채 내 곁에서 걷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녀가 곁에 있다는 감각이 그 근대 성당의 하찮은 이미지에 별안간 그토록 강한 효험을 더해 주어, 햇살 어린 정면이 이렇게 저절로 기억 속에서 내 앞에 다가와 자리 잡는 순간, 그것은 내 가슴 위에 얹힌 커다란 위안의 찜질 같았다. 나는 알베르틴을 파르빌에 내려 주었으나, 그것은 저녁에 다시 그녀와 합류해 어둠 속 해변에서 그녀 곁에 길게 누우려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나는 날마다 그녀를 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기 시간을, 자기 삶을 어떻게 보냈는지 낱낱이 이야기한다 해도, 거기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여전히 나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긴 시간을 잇달아 보냈는데, 그것이 내 나날에 그토록 달콤한 도취를 가져다주어서, 파르빌에서 그녀가, 한 시간 뒤에 내가 다시 데리러 보내기로 한 차에서 뛰어내릴 때조차, 나는 그녀가 떠나기 전에 차 안을 꽃으로 뿌려 놓기라도 한 듯, 차 안에 혼자 있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그녀를 보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헤어질 때면 나는 행복할 참이었고, 그 행복이 주는 진정 효과가 여러 날에 걸쳐 이어질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알베르틴이 나를 떠나며 자기 이모나 여자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럼 내일 여덟 시 반에. 늦으면 안 돼, 다른 애들은 여덟 시 십오 분이면 준비돼 있을 테니까.” 사랑하는 여인의 대화는 지하의 위험한 물을 덮고 있는 땅과 같다. 낱말들 아래로 매 순간 보이지 않는 웅덩이의 존재를, 그 스며드는 냉기를 느끼게 된다. 여기저기서 그 물의 음험한 스밈을 알아챌 뿐, 정작 물 자체는 감춰진 채로 남는다. 알베르틴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평온은 무너졌다. 나는 그녀에게 이튿날 아침에 만나게 해 달라고 청하고 싶었으니, 내 앞에서 오직 은밀한 말로만 언급된 여덟 시 반의 이 수상한 만남에 그녀가 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 처음에는 자기 계획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내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다 머잖아 그녀는 그 계획을 뒤엎으려는 나의 끊임없는 욕구를 알아챘을 것이고, 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감추는 그런 상대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배제된 이 모임들은 아마 대단찮은 것이었을 테고, 어쩌면 내가 거기 있는 다른 처녀들 중 하나를 천박하다거나 지루하다고 여길까 봐 두려워서 나를 부르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불행히도 알베르틴의 삶과 그토록 밀접하게 얽힌 이 삶은 나에게만 반작용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것은 평온을 가져다주었으나, 내 어머니에게는 불안을 일으켰고, 어머니가 그 불안을 털어놓자 나의 평온은 무너졌다. 마음이 흐뭇한 채로, 머잖아 어느 날엔가 그 끝이 내 의지에 달려 있으리라 상상하던 그런 생활을 끝내리라 다짐하며 내가 호텔로 들어설 때, 내가 운전기사에게 알베르틴을 데리러 가라는 전갈을 보내는 것을 듣고서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돈을 어쩌면 그렇게 헤프게 쓰니.” (프랑수아즈라면 그 소박하고 표현력 있는 말투로 더 힘주어 이렇게 말했으리라. “돈이란 게 다 그렇게 나가는 거지요.”) “너는 부디,” 엄마가 말을 이었다, “샤를 드 세비녜처럼은 되지 마라, 그 어머니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잖니. ‘그 애 손은 돈이 녹아 버리는 도가니로구나.’ 게다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알베르틴과 어울려 다닐 만큼 다녔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너는 도가 지나쳐, 그 애한테마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그 애에게서 기분 전환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해 기뻤단다. 다시는 그 애를 만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저 너희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 없이 만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거야.” 격렬한 즐거움이라곤 없는, 다시 말해 내가 느낄 수 있는 격렬한 즐거움이라곤 없는 알베르틴과의 내 삶, 조용한 틈을 골라 언제든 바꾸려 했던 그 삶은, 엄마의 이 말로 위협받게 되자, 별안간 다시금 한동안 내게 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방금 하신 말씀이 어머니가 바라는 그 결정을 어쩌면 두 달은 늦추게 될 거라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주가 끝나기 전에 그 결정에 이르렀을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를 낙담시키지 않으려고) 자기 충고가 이렇게 즉각 낳은 효과에 웃음을 터뜨렸고, 나의 선한 결심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막지 않으려 다시는 그 문제를 내게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가 웃음을 허락할 때면 언제나, 막 피어나던 웃음이 뚝 끊기며 거의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슬픔의 표정으로 끝나 버리곤 했으니, 한순간이나마 잊을 수 있었던 데 대한 자책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 짧은 망각의 순간이 그녀의 잔혹한 강박을 도로 도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할머니의 기억이 그녀 안에 불러일으킨 생각들에, 이번에는 나 자신에 관한 다른 생각들이, 곧 어머니가 알베르틴과 나의 친밀함의 뒤끝으로 두려워하던 것에 관한 생각들이 더해졌음을 나는 느꼈다. 하지만 내가 방금 한 말을 생각하면 어머니는 감히 그 친밀함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자신이 내 일에 대해, 그리고 더 건전한 생활 규칙에 대해 내게 말하기를 삼갔던 그 모든 세월을 떠올렸다. 나는 그들의 훈계가 나를 몰아넣는 동요만 아니었다면 그 규칙을 시작했을 거라고 말했었지만, 그들이 고분고분 입을 다물어 주었는데도 나는 끝내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녁 식사 뒤 차가 알베르틴을 데려왔다. 아직 희미한 햇빛이 남아 있었고, 공기는 그리 덥지 않았으나, 타는 듯한 하루를 보낸 뒤라 우리 둘 다 야릇하고도 감미로운 서늘함을 꿈꾸었다. 그러자 우리의 달아오른 눈에 가느다란 초승달 조각이 처음에는 (내가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 갔고 알베르틴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던 그 저녁처럼) 얇고 고운 껍질처럼, 이어 보이지 않는 칼이 하늘에서 막 벗겨 내기 시작한 어떤 과일의 서늘한 한 조각처럼 나타났다. 때로는 또 내가 내 연인을 찾아 나서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엔 조금 더 늦은 시각이었다. 그녀는 멘빌의 시장 아케이드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곤 했다. 처음엔 그녀를 알아볼 수 없어, 나는 그녀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은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 나는, 파란 점무늬가 있는 흰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가 처녀라기보다는 어린 짐승 같은 가벼운 도약으로 내 곁 차 안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끝없이 나를 어루만지기 시작하는 것도 영락없이 개 같았다. 밤이 내리고, 호텔 지배인이 내게 말한 대로 하늘이 온통 별로 “총총히 박혀” 있을 때면, 우리는 샴페인 한 병을 들고 숲으로 드라이브를 가지 않을 경우엔, 희미하게 불 밝힌 해안 산책로를 아직 거니는, 그러나 어두운 모래 위에서는 한 걸음 앞도 볼 수 없었을 낯선 이들에는 아랑곳없이, 모래언덕이 가려 주는 곳에 드러눕곤 했다. 그 나긋함 속에, 내가 파도의 수평선 앞을 지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그 처녀들의 온갖 여성적이고 바다 같고 발랄한 우아함이 깃들어 있던 바로 그 몸을, 나는 떨리는 빛의 오솔길로 갈라진 미동 없는 바다 가장자리에서, 같은 무릎담요 아래 내 몸에 밀착시켜 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은 즐거움으로 바다 소리에 귀 기울였으니, 바다가 숨을 참고서, 썰물이 영영 오지 않으리라 여겨질 만큼 오래 멈춰 있을 때에도, 마침내 우리 발치에서 오래 기다려 온 그 속삭임을 헐떡이며 내뱉을 때에도. 마침내 나는 알베르틴을 파르빌로 데려다주었다. 그녀의 집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누가 우리를 볼까 봐 입맞춤을 중단해야 했다.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나와 함께 발베크로 되돌아왔고, 거기서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파르빌로 데려다주었다. 자동차가 막 등장하던 그 시절의 운전기사들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아침의 첫 이슬이 내릴 무렵에야 발베크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혼자였으나, 여전히 내 연인의 존재에 둘러싸인 채, 마르지 않는 입맞춤의 비축으로 잔뜩 배부른 채였다. 내 탁자 위에서 나는 전보나 엽서를 발견하곤 했다. 또 알베르틴이었다! 내가 차를 타고 혼자 떠나 있는 동안 그녀가 케톨므에서 쓴 것으로, 자기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읽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 나는 커튼 너머로 밝은 햇살의 줄무늬를 언뜻 보고는, 우리가 서로의 품에서 밤을 보냈으니 결국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튿날 아침 해안 산책로에서 알베르틴을 언뜻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그날은 시간이 없어 함께 나가자는 내 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할까 봐 몹시 두려워, 되도록 오래 그 청을 미루었다. 그녀가 차갑고 골똘한 기색을 띠고 있었기에 나는 더욱 불안했다. 그녀가 아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으니, 필시 그녀는 내가 빠진 오후 계획을 세워 두었을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매혹적인 몸을, 발그레해진 알베르틴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니, 그것은 내 앞에 그녀의 속셈이라는 수수께끼를, 내 오후의 행복이나 불행을 빚어낼 그 알 수 없는 결정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온전한 영혼의 상태였고, 내 눈앞에서 한 처녀의 우의적이고 숙명적인 형상을 취한 하나의 온전한 미래의 삶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내가 마음을 정하고, 내가 지어 보일 수 있는 가장 무심한 태도로 “우리 지금, 그리고 오늘 저녁에 또 함께 나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녀가 “더없이 기꺼이” 하고 대답하자, 그 장밋빛 얼굴에서 나의 오랜 불안이 감미로운 편안함으로 별안간 뒤바뀌면서, 폭풍이 지나간 뒤에 느끼는 그 위안과 안도를 늘 내게 빚지게 하던 그 윤곽이 내게 한층 더 소중해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 애는 얼마나 상냥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취기가 일으키는 것보다는 덜 풍요롭고, 우정이 주는 것보다 그다지 깊지도 않으나, 사교 생활의 흥분보다는 훨씬 우월한 그런 흥분 속에서. 우리가 차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오직 베르뒤랭가에 만찬 모임이 있는 날들과,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나갈 수 없어서 내가 이 기회에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아무에게나 내가 발베크에 머물러 있겠다고 알리던 날들뿐이었다. 나는 생루에게 이런 날들에는 와도 좋다고 허락했으나, 오직 이런 날들에만 그랬다. 왜냐하면 한번은 그가 예고 없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가 알베르틴을 만나게 될 위험을 무릅쓰느니, 얼마 전부터 내가 잠겨 있던 그 행복한 평온의 상태를 위태롭게 하고 내 질투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알베르틴을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루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그러나 철저히 지키기로, 내가 부르지 않는 한 결코 발베크에 오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예전에, 게르망트 부인이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그리움에 잠겨 떠올릴 때면, 나는 그를 만나는 특권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세계의 알아챌 수 없으나 영원한 행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한순간의 시야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 순간은 그들을 쓸어 가는 움직임을 우리가 알아채기에는 너무 짧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우리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순간에 찍힌 그들의 두 장면을,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알아챌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을 만큼 서로 가까운 두 장면을 골라내기만 하면 되니, 그 두 장면의 차이가 곧 그들이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겪은 위치 이동의 척도인 것이다. 그는 내게 베르뒤랭 부부 이야기를 꺼내어 나를 몹시 놀라게 했으니, 나는 그가 자기를 거기 데려가 달라고 청할까 봐 두려웠는데, 그랬다가는 내가 내내 느낄 질투만으로도, 알베르틴과 함께 거기 가는 데서 내가 얻는 모든 즐거움을 망치기에 충분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로베르는 내게, 오히려 자기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단 한 가지는 그들과 알고 지내지 않는 것이라고 장담했다. “안 돼.” 그가 내게 말했다. “난 그런 성직자 같은 분위기가 미치도록 싫어.” 나는 처음에는 ‘성직자 같은’이라는 형용사가 베르뒤랭 부부에게 적용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생루가 말끝에 한 이야기가 그 뜻을 밝혀 주었으니, 그것은 지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흔히 놀라게 되는 그런 유행어들에 대한 그의 양보였다. “내 말은,”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하나의 부족, 하나의 종단, 하나의 예배당을 이루는 그런 집들 말이야. 그들이 하나의 작은 종파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할걸. 자기네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살갑게 굴다가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험한 말도 모자라 하지. 문제는, 햄릿에게처럼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속하느냐 속하지 않느냐야. 너는 속해, 우리 샤를뤼스 삼촌도 속하고. 나야 어쩔 수 없지, 난 한 번도 그런 걸 좋아해 본 적이 없어, 내 잘못이 아니야.”
내가 생루에게 부과한 규칙, 곧 내가 분명히 초대하지 않는 한 결코 나를 보러 오지 말라는 규칙을, 내가 라 라스플리에르며 페테른이며 몽쉬르방이며 그 밖의 곳에서 차츰 사귀기 시작한 온갖 사람들에게도 못지않게 엄격히 공포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호텔에서, 파르빌 절벽의 굽이 속에서 초록빛 비탈의 옆구리에 오래도록 걸려 있는 한결같은 연기 깃털을 남기는 세 시 기차의 연기를 볼 때면, 나와 차를 마시러 오는 손님, 그 작은 구름에 가려 마치 고전의 신처럼 아직 내게 감춰져 있는 그 손님의 정체에 대해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었다. 미리 내게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이 손님이 사니에트인 경우는 거의 없었음을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소홀함을 두고 나는 자주 스스로를 나무랐다. 그러나 자기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사니에트 자신의 자각은(당연히 그가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보다 방문을 왔을 때 훨씬 더했다), 그가 대다수 사람들보다 더 박식하고 더 총명하며 여러모로 더 나은 사람이었는데도, 그와 함께 있으면, 어떤 즐거움은 고사하고, 오후 내내를 잡쳐 놓는 거의 참기 어려운 짜증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듯한 결과를 낳았다. 아마 사니에트가 자기가 일으킬까 봐 두려워하던 이 지루함을 솔직히 인정했더라면, 사람들은 그의 방문을 겁내지 않았으리라. 지루함이란 우리가 견뎌야 하는 폐해 가운데 가장 사소한 축에 드는 것이고, 그의 따분함이란 어쩌면 오직 다른 이들의 상상 속에나 존재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그의 사랑스러운 겸손에 뿌리내린 어떤 암시의 과정을 통해 그에게 옮겨 심어 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남들에게서 찾아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어찌나 애를 태웠는지, 감히 자기를 내세우지 못했다. 물론 그가, 공공장소에서 모자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어찌나 기뻐하는지, 여러 해 동안 당신을 못 보다가 자기가 모르는 세련된 사람들과 함께 특별석에 있는 당신을 발견하면, 은근하면서도 요란하게 저녁 인사를 건네고는, 당신을 본 데서, 당신이 다시 나다닌다는 것을, 당신 안색이 좋다는 것 등등을 알게 된 데서 느낀 기쁨과 감동을 핑계로 대는 그런 사람들처럼 굴지 않은 것은 옳았다. 사니에트는 그와 반대로 용기가 부족했다. 그는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나 작은 전차 안에서, 나를 방해할까 봐 두렵지만 않았더라면, 발베크로 나를 보러 가면 큰 기쁨이겠다고 내게 말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런 제안이라면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구워 낸 에나멜처럼 부서지지 않는 눈길을 하고서, 그렇지만 그 눈길에는, 상대를 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단, 더 재미난 다른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말이지만) 그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결심과 뒤섞여 들어가 있었는데, 무심한 태도로 내게 말했다. “혹시 앞으로 며칠 동안 뭘 하실지 아시나요, 제가 아마 발베크 근방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요? 뭐 조금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냥 한번 여쭤나 볼까 했지요.” 이런 태도는 아무도 속이지 못했고, 우리가 우리 감정을 그 반대로 표현하는 그 뒤집힌 신호들은 어찌나 또렷이 읽히는지, 우리는 어떻게 아직도, 이를테면 “초대가 하도 많아서 어디에 머리를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함으로써 실은 아무 데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이 무심한 태도는, 아마 그것을 이루려고 뒤섞여 든 그 이질적인 요소들 탓에,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또 상대를 보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에서도 결코 느끼지 못했을 어떤 것을, 다시 말해 일종의 거부감을, 혐오를 당신에게 안겨 주었으니, 그것은 단순한 사교적 예의라는 관계의 범주에서, 사랑이라는 범주의, 한 여인이 사랑하지 않는 구애자가 그녀에게 이튿날 자기를 만나 달라고 하면서 내내 그게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우기며 건네는 위장된 제안에, 아니 그 제안이라기보다는 거짓 냉담함의 태도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사니에트라는 사람에게서는 대번에 무언지 모를 것이 풍겨 나와, 당신으로 하여금 더없이 다정한 어조로 그에게 대답하게 만들었다. “아뇨, 유감스럽게도 이번 주는,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그리고 나는 그 대신, 그보다 한참 못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도록 허락했는데, 그들에게는 우수로 가득 찬 그의 눈길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던 그 온갖 방문의 온갖 쓰라림으로 주름진 그의 입도 없었다. 불행히도 사니에트가 “굼벵이” 안에서 나를 보러 오는 손님과 마주치지 않는 일은 아주 드물었으니, 게다가 그 손님이 베르뒤랭가에서, 내가 방금 사니에트에게 집에 없을 거라고 말해 둔 바로 그 목요일을 두고 “잊지 마세요, 목요일에 뵈러 갈게요” 하고 내게 말해 둔 터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삶을, 자기 몰래, 실제로 자기를 희생시키면서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련된 여흥으로 가득 찬 것으로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가운데 누구도 결코 한 사람인 법이 없듯이, 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내는 병적으로 경솔하기도 했다. 그가 초대받지 않고 우연히 나를 보러 온 그 한 번,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는 잊었지만 편지 한 통이 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처음 몇 분이 지나자, 나는 그가 내 말에 그저 어렴풋한 주의밖에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 편지는, 그가 내용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몰랐는데도, 그를 사로잡았고, 나는 매 순간 그의 번득이는 눈알이 눈구멍에서 떨어져 나와, 그 자체로는 아무 중요성도 없지만 그의 호기심이 자석처럼 만들어 놓은 그 편지로 날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당신이라면 그를 뱀의 아가리로 뛰어들려는 새라고 불렀으리라.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마치 내 방을 정돈하려는 듯이 우선 그 편지의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자, 그는 그것을 집어 들어, 뒤집었다가, 다시 뒤집기를, 마치 기계적으로 하듯 되풀이했다. 그의 경솔함의 또 다른 형태는, 일단 당신에게 달라붙고 나면 좀처럼 떨어져 나갈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몸이 좋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에게 삼십 분 뒤의 다음 기차로 돌아가 달라고 청했다. 그는 내가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대꾸했다. “한 시간 십오 분만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나를 보러 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 왔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나는 그의 불운을 홀리듯 쫓아 버릴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초대했을 테고 그는 그들을 위해 대번에 나를 저버렸을 테니, 내 초대는 그에게 기쁨을 주는 동시에 나를 그의 동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이중의 이점을 지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