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숱한 다른 말들 틈에서 이 말 밑에 거짓이 숨어 있는지 가려내기란 내게 불가능했다. 게다가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함께 다녀온 모든 곳을 내게 일러 주리라 믿을 수 있었다.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에게 진저리가 났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앙드레에게 거짓으로 이렇게 말하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나의 귀여운 앙드레, 좀 더 일찍 당신을 다시 만났더라면! 내가 사랑했을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은 다른 데 매여 있소. 그래도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있소. 다른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이 나를 몹시 불안하게 하니, 당신이 내가 위안을 찾도록 도와주오.” 그런데 이 똑같은 거짓말이 삼 주 만에 참말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앙드레는 파리에서, 그것이 정말 거짓말이고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발베크에서라면 틀림없이 그리 믿었을 것처럼. 진실이란 우리 각자에게 어찌나 변하기 쉬운지, 남들은 그 속에서 자신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그녀가 알베르틴과 함께 한 일을 죄다 내게 일러 주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거의 날마다 알베르틴을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그러겠노라 응했다. 이렇게 하면 나는 아무 불안 없이 집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앙드레가 작은 무리의 처녀들 가운데 하나라는 유리한 처지에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알베르틴에게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어 내리라 믿을 수 있었다. 참으로 이제 나는 그녀야말로 내 마음을 놓이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앙드레(발베크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접고 마침 파리에 머물고 있던)를 내 연인의 안내자이자 동무로 고른 것은, 발베크에서 그녀의 친구가 나를 아껴 주었다고 알베르틴이 내게 일러 준 말에 이끌린 것이었다. 정작 그때 나는 도리어 내가 그녀를 지루하게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실은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내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앙드레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몰랐어요?” 하고 알베르틴이 말했다. “우린 늘 그걸 두고 놀려 댔는걸요. 그이가 당신의 말투랑 따지는 버릇을 죄다 흉내 내던 걸 정말 못 알아채셨단 말이에요? 당신과 막 있다 온 뒤면 너무 빤히 드러났어요. 그이는 당신을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우리한테 말할 필요도 없었어요. 우리한테 오기가 무섭게 우린 대번에 알아챘으니까요.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웃었죠. 그이는 아니라고 우기는 석탄 나르는 인부 같았어요. 온몸이 새까만데 말이에요. 방앗간 일꾼은 방앗간 일꾼이라고 말할 것도 없어요, 옷에 온통 밀가루가 묻어 있고 어깨에 짊어진 자루 자국이 남아 있으니까요. 앙드레도 꼭 그랬어요. 당신처럼 눈썹을 찌푸리고, 그 긴 목을 쭉 빼고, 뭐 그 밖에도 별별 것을 다요. 당신 방에 있던 책을 집어 들면, 밖에서 읽고 있어도, 그게 당신 것인 줄 대번에 알아요.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훈증 냄새가 배어 있거든요. 대수롭잖은 거지만, 그래도 제법 정겨운 대수롭잖음이랄까요, 안 그래요? 누구든 당신을 좋게 말하거나, 당신을 대단히 여기는 눈치면, 앙드레는 그저 황홀해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내 등 뒤에서 무슨 은밀한 계획이 꾸며졌을까 봐, 나는 그녀에게 그날은 뷔트쇼몽을 그만두고 그 대신 생클루나 다른 어디로 가라고 일렀다.
그것은, 나 자신도 잘 알다시피, 내가 알베르틴을 조금이라도 사랑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감정의 여파로 영혼을 뒤흔드는 그 소용돌이의 자극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이 뱅퇴유 양 이야기를 했을 때 실제로 그런 소용돌이가 내 영혼을 속속들이 뒤흔든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잠잠해졌다. 나는 더 이상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발베크의 전차 안에서 알베르틴이 처녀 시절을, 어쩌면 몽주뱅을 드나들며 어떻게 보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이제는 아문 그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너무 오래 기정사실로 여겨 왔고, 이제 아물었다. 그러나 때때로 알베르틴이 쓰는 어떤 표현들은, 왜인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으나, 그녀가 짧다면 짧은 생애 동안 애정 고백을 받은 적이 있고 그것도 기꺼이, 다시 말해 관능과 함께 받아들인 적이 있으리라 짐작하게 했다. 이를테면 그녀는 무슨 이야기 끝에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로 그래요?” 물론 그녀가 어느 오데트처럼 “그게 정말이에요, 그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투구의 어처구니없음이야 여자다운 재치의 어리석은 객설로 저절로 설명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게 정말이에요?” 하는 그녀의 묻는 듯한 태도는, 한편으로는 사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에게는 남과 같은 능력이 없는 양 상대에게 증언을 구하는 존재의 기이한 인상을 주었다(그녀에게 “아니, 우린 한 시간이나 나와 있었잖아”라거나 “비가 오네”라고 말하면, 그녀는 “그게 정말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불행히도 다른 한편으로, 외부 현상을 스스로 판단하는 이 서투름이 그녀의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로 그래요?”의 참된 기원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 말들은, 조숙한 사춘기의 첫새벽부터, “있잖아, 난 너처럼 예쁜 사람을 본 적이 없어”라거나 “있잖아, 난 너한테 미치도록 반했어, 정말 견딜 수 없이 설레”라는 말들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아양스레 못 이기는 척 수줍음을 담아, 이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로 그래요?”의 되풀이로 답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제, 내 곁에 있을 때의 알베르틴에게는, “넌 한 시간 넘게 잤어” 따위의 단언에 되물음으로 답하는 데밖에는 쓰이지 않았다. “그게 정말이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알베르틴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우리가 함께 보낸 순간들을 나의 기쁨 목록에 넣지 않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제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가 나를 두고 저지를까 봐 그토록 두려워하던, 단지 장난삼아(어쩌면 나를 골리는 장난삼아) 이런저런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내가 떠남으로써 그녀의 위험한 온갖 얽힘을 단번에 끊어 놓으려고 교묘히 꾀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알베르틴은 어찌나 온전히 수동적이고,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압력에 순순히 따르는 능력이 어찌나 완벽했던지, 이 관계들은 실제로 끊겼고 나 자신도 나를 사로잡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그것을 일으키는 정체 모를 화근만큼이나 여러 모습을 띨 수 있는 법이다. 나의 질투가 새로운 사람들에게로 되살아나지 않는 한, 나는 고뇌가 지나간 뒤의 한동안의 평온을 누렸다. 그러나 만성병이 그러하듯 아주 사소한 구실만으로도 그것은 되살아났으니, 우리 질투의 원인이 되는 그 사람의 악덕 또한, 아주 사소한 기회만으로도 (정결한 한때의 소강 뒤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것을 새로이 저지르는 데 쓰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알베르틴을 그 공모자들에게서 떼어 놓았고, 그리하여 나의 환각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설령 그녀가 사람들을 잊게 하고 그녀의 애착을 끊어 놓을 수 있다 해도, 그녀의 관능적 성향 역시 그 자체로 만성적인 것이어서, 어쩌면 스스로 배출구를 찾을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파리는 발베크만큼이나 많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어느 고을에서든 그녀는 애써 찾을 필요조차 없었으니, 화근은 알베르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향락의 기회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의 눈짓을 다른 쪽이 대번에 알아채면, 굶주린 두 영혼이 맞닿는다. 그리고 영리한 여자가 못 본 척하다가 오 분 뒤에 제 눈짓을 읽고 골목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몇 마디로 밀회를 정하기란 쉬운 일이다. 누가 알기나 하랴? 그리고 알베르틴이, 이런 짓을 계속하려고, 전에 마음에 들었던 파리 근교의 어느 곳을 다시 보고 싶다고 내게 말하기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여느 때보다 늦게 돌아오는 것만으로, 그녀의 나들이가 까닭 모를 만큼 오래 걸린 것만으로, 비록 아무 관능적 이유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어쩌면 아주 쉽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었을지언정, 나의 병은 다시 도지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는 발베크의 것이 아닌 심상들에 매달린 채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심상들을 앞선 것들과 마찬가지로 부수는 데 힘을 쏟았으니, 마치 덧없는 원인을 없애면 타고난 병을 끝낼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나는, 이 파괴의 행위들 속에서, 변덕을 부리는 그녀의 능력, 잊어버리는 능력, 얼마 전 사랑한 대상을 거의 미워하기까지 하는 능력을 알베르틴 안에 공모자로 두고서, 이따금 그녀가 차례로 쾌락을 나눈 저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슬픔을 헛되이 안기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은 버림받고 다른 이로 갈리게 될 것이며, 그녀의 가벼운 변심이 남긴 온갖 잔해로 어지러운 그 길과 나란히,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이따금 잠깐의 유예로나 끊길 뿐인 무자비한 길이 열릴 터였으니, 그리하여 나의 고통은 알베르틴의 목숨이나 나 자신의 목숨과 더불어서만 끝날 수 있었다. 파리로 돌아온 첫날들에조차, 나는 앙드레와 운전기사가 내 연인과 함께 다녀온 나들이에 관해 알려 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파리 근교가 발베크 근교만큼이나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 알베르틴과 함께 며칠 시골로 떠났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나의 불안은 한결같았고, 그것이 무언가 그릇된 일일 가능성은 그만큼 넘쳐 났으며, 감시는 더더욱 어려워, 결국 나는 그녀와 함께 파리로 돌아왔다. 발베크를 떠나면서 나는 고모라를 떠나 알베르틴을 그곳에서 뽑아 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실은, 아, 고모라는 세상 끝끝까지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질투에서, 한편으로는 그런 향락에 대한 무지에서(참으로 드문 경우이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숨바꼭질 놀음을 벌여 놓았고, 그 속에서 알베르틴은 늘 나를 빠져나가게 마련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대놓고 물었다. “아 참, 그런데 알베르틴, 내가 꿈을 꾼 건가, 아니면 당신이 질베르트 스완을 안다고 말했던가?” “네,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나한테 말을 걸곤 했어요. 그 애가 프랑스사 필기를 한 벌 갖고 있었거든요. 사실 아주 친절하게도 나한테 빌려주었고, 나는 다음에 만났을 때 돌려주었죠.” “내가 못마땅해하는 그런 여자야?” “오, 전혀요, 정반대예요.” 그러나 이런 심문 같은 짓에 빠지느니, 나는 흔히, 알베르틴의 나들이를 함께하는 데 쓰지 않은 힘을 그 나들이를 상상하는 데 쏟곤 했고, 이루지 못한 바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열정으로 내 연인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생트샤펠의 어느 창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그녀와 단둘이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간절한 아쉬움을 어찌나 절절히 드러냈던지, 그녀는 다정히 내게 말했다. “아니 여보, 그렇게나 보고 싶으시다면 조금만 힘을 내서 우리랑 같이 가요. 당신 준비되는 대로 아무리 늦게 나서도 괜찮아요. 그리고 나랑 단둘이 있고 싶으시면, 앙드레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만 하면 돼요, 그 앤 다음에 오면 되니까요.” 그러나 나가자는 이 간청들조차 내가 집 안에 머물고 싶은 욕망에 나를 내맡기게 하는 그 평온을 더해 줄 뿐이었다.
이렇게 나의 동요를 달래는 일을 앙드레나 운전기사에게 맡겨 그들로 하여금 알베르틴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드러나는 그 무기력이, 내 안에서, 남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고 미리 헤아리게 해 주는 온갖 상상의 충동과 온갖 의지의 영감을 마비시키고 무디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나에게는 언제나 실제로 일어난 일들의 세계보다 가능성의 세계가 더 활짝 열려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우리는 개개인에게는 곧잘 속아 넘어가곤 한다. 나의 질투는 마음속 심상에서, 개연성에 근거하지 않은 자기 고문의 한 형태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에나 나라들의 운명에는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의 삶에도 닥칠 터였다) 우리 안에 경찰서장이나, 눈 밝은 외교관이나, 명탐정을 두어야 할 순간이 있으니, 그는 사방팔방으로 뻗은 숨은 가능성들을 곱씹는 대신 정확히 추론하며 이렇게 되뇐다. “독일이 이것을 발표한다면, 그것은 딴것을 하려는 속셈이다. 그저 막연히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나 저것이나 그것을, 어쩌면 이미 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를 그것을 말이다.” “아무개가 달아났다면, 그것은 a나 b나 d 방향이 아니라 c 지점을 향한 것이니, 우리가 그를 찾아야 할 곳은 c다.” 아, 내게는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이 능력을, 나는 남들이 나를 대신해 감시에 매달리는 순간 마음을 놓아 버리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느슨해지고 힘을 잃고 사라져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집을 나서기 꺼리는 까닭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알베르틴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의사가 침대에 누워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설령 사실이었다 해도, 그 처방이 내가 애인을 따라나서는 것을 막을 힘은 없었으리라. 나는 그녀와 앙드레와 함께 외출하는 일을 면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여기서는 신중함이 시킨 한 가지 이유만 들어 두겠다. 알베르틴과 함께 외출할 때면, 그녀가 잠시라도 내 곁을 떠나면 나는 불안해져서, 그녀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거나 단지 누군가에게 시선을 던졌으리라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으면, 나는 내가 그녀로 하여금 어떤 약속을 놓치게 하거나 미루게 만들고 있다고 여겼다. 현실이란 결코, 우리가 그것을 찾아 아무리 나아가도 끝내 멀리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요소로 우리를 꾀어내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되도록 적게 생각하는 편이, 아주 사소한 구체적 사실 하나로도 질투를 키우지 않는 편이 낫다. 불행히도, 우리가 바깥 생활을 없애 버린다 해도, 사건들은 안쪽 생활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나는 알베르틴의 나들이에서 비켜서 있었지만, 홀로 하는 상념이 제멋대로 흘러가다 보면 때때로 진실의 그 자잘한 조각들이 나에게 주어졌으니, 그것들은 자석처럼 미지의 예감을 제게로 끌어당겼고, 그 순간부터 그 예감은 고통스러워졌다. 밀폐된 방 안에 산다 해도, 관념의 연상과 기억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 내적인 충격들은 곧바로 닥치지는 않았다. 알베르틴이 마차 나들이를 떠나기가 무섭게, 단 몇 순간일지언정, 고독이 지닌 자극의 미덕이 나를 되살려 놓았다.
나는 새로운 하루의 즐거움에서 내 몫을 취했다. 그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는 제멋대로의 욕구, 변덕스럽고 순전히 자발적인 마음의 이끌림만으로는, 만약 날씨의 그 독특한 상태가 그저 지난날의 그 즐거움의 심상을 떠올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현재에도 실재함을, 어떤 우연하고 따라서 하찮은 사정 때문에 집에 머물러야 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당장 손 닿는 곳에 있음을 확언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즐거움을 내 손이 닿는 곳에 놓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맑은 날에는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거리와 어찌나 온전히 통해 있는지, 마치 집의 바깥벽에 틈이 뚫린 것만 같았고, 전차가 지나갈 때면 그 종소리가 은빛 칼이 유리 벽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도취한 채로, 숨은 바이올린이 빚어내는 새로운 소리를 들은 것은 내 안에서였다. 그 현은 바깥세상의 온도와 빛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팽팽해지거나 느슨해진다. 습관의 획일함이 침묵하게 만든 악기인 우리 몸에서, 이러한 일탈과 변주로부터 노래가 태어나니, 그것이 모든 음악의 원천이다. 어떤 날 기후의 변화는 우리를 단숨에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 가게 한다. 우리는 그 수학적 필연성을 능히 추론해 냈을 법한, 잊혔던 가락을 되찾는데, 처음 몇 순간은 그것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흥얼거린다. 이 변화들만으로도(바깥에서 왔으되 안쪽의 것인 그 변화들이) 나를 위해 바깥세상을 다시 빚어 놓았다. 오래 빗장 질러 있던, 서로 통하는 문들이 내 머릿속에서 저절로 열렸다. 어떤 도시들의 생활, 어떤 나들이의 흥겨움이 내 의식 속에서 제자리를 되찾았다. 진동하는 현과 어우러져 온몸이 떨리는 채로, 나는 이 특별하고 유일한 순간 하나를 위해서라면, 지나간 내 무료한 삶도, 습관이라는 지우개로 지워진 앞으로의 내 온 삶도 다 바쳤으리라.
알베르틴의 긴 마차 나들이에 함께 나서지 않으면, 내 마음은 그만큼 더 멀리 헤매었고, 이 특별한 아침을 내 감각으로 맛보기를 마다한 까닭에, 나는 상상 속에서 그와 비슷한 온갖 아침들을, 지나간 것이든 있을 법한 것이든 다 누렸으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한 유형의 아침을 누린 것이었고, 같은 종류의 모든 아침이란 내가 대번에 알아본 그 유형이 간헐적으로 나타난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슬 푸른 대기가 저 홀로 책을 알맞은 쪽에 펼쳐 주어, 내가 침대에서도 따라 읽을 수 있도록 그날의 복음이 눈앞에 또렷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이상적인 아침은 내 마음을, 비슷한 모든 아침과 똑같은 하나의 항구적 실재로 가득 채웠고, 내 육체의 병약함으로도 줄어들지 않는 명랑함을 나에게 옮겨 주었다. 우리의 안녕감은 튼튼한 건강에서라기보다 쓰이지 않고 남아도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힘을 늘림으로써만이 아니라 활동을 줄임으로써도 능히 그 안녕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침대에 누운 채 끊임없이 채워 두어 내 안에 넘쳐흐르던 그 활동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힌 나머지 제 축 위에서 도는 기계처럼, 심장이 뛰노는 채로 나를 이쪽저쪽으로 튀게 만들었다.
프랑수아즈가 불을 지피러 들어왔고, 불이 잘 붙도록 잔가지 한 줌을 그 위에 던졌는데, 한 해 전부터 잊고 있던 그 냄새가 벽난로 둘레에 마법의 원을 그려서, 그 원 안에서 나는 콩브레에서, 또 동시에에서 책에 파묻혀 있는 나 자신을 보며, 파리의 침실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마치 메제글리즈 쪽으로 산책을 나서려는 참이거나, 훈련장에 있는 생루와 그 벗들을 만나러 가려는 참인 듯 기뻤다. 저마다 제 기억이 모아 둔 추억거리를 뒤적일 때 누구나 느끼는 즐거움이, 육체적 병약함의 폭정과 나으리라는 매일의 희망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 추억을 닮은 자연의 풍경을 찾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머잖아 그럴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 나머지 그 추억들을 한낱 기억이나 그림으로만 여기지 않고 욕망과 갈망에 찬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예리한 법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들이 나에게 끝내 기억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설령 내가 그것들을 떠올리며 한낱 그림만을 볼지라도, 그것들은 곧바로, 하나의 똑같은 감각의 힘으로, 내 안에, 나라는 존재 전체 속에, 그것들을 처음 본 소년을, 그 젊은이를 되살려 놓았다. 바깥 날씨가 달라졌다거나, 방 안에 새로운 냄새가 들어왔다거나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나이의 차이가, 다른 사람으로의 뒤바뀜이 있었던 것이다. 서리 낀 대기 속 마른 잔가지의 냄새는 지난날의 한 조각과도 같았으니, 어느 오랜 겨울의 얼음에서 떨어져 나와 내 방으로 몰래 스며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성엣장이었고, 게다가 이 향기 저 빛으로, 마치 서로 다른 여러 해가 잇달아 이어지듯 얼룩덜룩 물들어 있어서, 나는 그것들을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오래전에 버린 희망들의 간절함에 사로잡혀 그 속에 잠기고 압도되었다. 햇살이 내 침대에 내려와 여윈 내 몸의 투명한 껍질을 뚫고 들어와 나를 덥히고, 나를 이글거리는 수정판처럼 뜨겁게 만들었다. 그러자, 아직 금지된 온갖 음식에 벌써부터 게걸스레 달려들기 시작한 굶주린 회복기 환자처럼, 나는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내 삶을 망치지 않을까 자문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나를 바치는, 내 어깨에는 너무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됨으로써도 그렇거니와, 그녀가 늘 곁에 있는 탓에 나 자신에게서 떠나 살도록, 그리고 고독의 기쁨을 영영 빼앗기도록 강요당함으로써도 그러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들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하루에게 욕망 말고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을 때조차,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그 욕망들은, 다른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는 것이 그 본성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잠시 커튼을 젖힐 때면, 그것은 단지, 피아니스트가 잠시 제 악기의 뚜껑을 젖혀 보듯, 발코니와 거리에서 햇빛이 내 기억 속과 꼭 같은 음정으로 조율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고, 빨래 바구니를 인 어느 세탁부며, 파란 앞치마를 두른 빵 파는 여인이며, 가슴받이와 흰 아마천 소매 차림으로 우유 단지가 매달린 멜대를 진 우유 짜는 처녀며, 가정교사를 대동한 어느 도도한 금발 아가씨를 언뜻이라도 보기 위해서였으니, 요컨대 하나의 복합적인 심상이었고, 그 윤곽의 차이란 수로 따지면 어쩌면 하찮을지 몰라도, 음악의 한 악구에서 두 음 사이의 차이가 그러하듯, 그 심상을 다른 어느 것과도 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그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내 하루에서, 행복을 바라는 내 욕망에 바쳐졌을지 모를 대상들을 앗아 궁핍하게 만들었을 그런 심상이었다. 그러나, a priori로는 도무지 그려 볼 수 없는 여인들의 광경이 나에게 안겨 준 넘치는 기쁨이 거리와 도시와 세상을 더 탐낼 만한, 더 탐사할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면,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내가 건강을 되찾아, 밖으로 나가, 알베르틴 없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내 꿈을 사로잡을 미지의 여인이, 이제는 걸어서, 이제는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창 밑을 지날 때면, 그녀와 발맞추어 나아가던 내 시선을, 마치 아르크뷔스 총으로 창구멍에서 쏘아 보낸 듯 그녀에게 떨어져 내려, 이렇게 갇힌 나로서는 결코 알 수 없을 행복을 나에게 내밀어 보이던 그 얼굴의 달아남을 붙잡아 세우던 그 시선을, 내 육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는 얼마나 자주 비참했던가.
반면에 알베르틴에 대해서는, 나는 더 알아낼 것이 없었다. 날마다 그녀는 나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였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품는 욕망은, 내가 그것을 전해 듣고 다시금 괴로워하며 그들이 그녀를 차지하려는 데 맞서 다투게 되면, 그녀를 내 눈에 드높은 꼭대기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나에게 고통은 안겨 줄 수 있었으나, 기쁨은 결코 안겨 주지 못했다. 오직 고통만이 내 지루한 애착을 살려 두었다. 내 고통이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온 주의를 앗아 가는 그 애타는 소일거리처럼 고통을 달래야 할 필요마저 사라지자마자, 나는 그녀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음을, 내가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임을 느꼈다. 이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나를 비참하게 했고, 어떤 순간에는, 그녀가 무언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말을, 내가 나을 때까지 우리를 서로 멀찍이 떼어 놓을 만한, 그리하여 그다음에는 다시 화해하여 우리를 묶던 사슬을 전과는 다른 더 유연한 모양으로 다시 빚을 수 있게 해 줄 그런 말을 듣기를 갈망했다.
그동안 나는 온갖 상황과 온갖 즐거움을 동원해, 정작 나 자신은 그녀에게 줄 수 있다고 여기지 못하는 그 행복의 환상을 내 곁에서 그녀에게 안겨 주려 애썼다. 나는 병이 낫는 대로 베네치아로 떠나고 싶었으나, 알베르틴과 결혼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파리에서조차 방을 나설 마음을 먹을 때면 언제나 그녀와 함께 나가려던, 그토록 그녀를 질투하던 내가? 오후 내내 집에 머물 때조차, 내 생각은 마차 나들이에 나선 그녀를 따라다니며, 아득한 푸른 지평선을 그리고, 나 자신을 중심으로 막연한 불확실함의 일렁이는 지대를 만들어 냈다. “알베르틴이,”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 나들이 가운데 어느 날, 내가 더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을 보고, 돌아오지 않기로 마음먹어, 나에게 작별 인사를 시킬 것도 없이 이모 집으로 가 버린다면, 이별의 고뇌를 얼마나 말끔히 덜어 줄 것인가!” 이제 그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내 마음은 애인의 마음에 붙어 있기를 그치고 있었다. 나는 상상만으로 그녀를 옮기고, 아픔 없이 나 자신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었다. 물론 나 대신 어떤 다른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고, 자유로운 몸이 된 그녀는 어쩌면 나를 소름 끼치게 하던 그런 모험들을 만나게 될 터였다. 그러나 날씨가 어찌나 좋고, 그녀가 저녁이면 돌아오리라고 어찌나 확신하고 있었던지, 설령 그럴 법한 부정의 상념이 내 마음에 떠오른다 해도, 나는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그것을 내 뇌의 한 구석에 가두어 둘 수 있었으니, 거기서 그것은 실제 내 삶에서 어느 가공 인물의 악덕이 지녔을 만큼의 무게밖에 지니지 못했다. 내 사고의 유연한 경첩을 놀려서, 나는,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라고, 근육의 움직임인 동시에 영혼의 충동이라고 내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어떤 기운으로, 그때까지 갇혀 있던 끊임없는 근심의 상태를 벗어나, 자유로운 대기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 대기 속에서는 알베르틴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그녀가 여자들을 좋아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모든 것을 바친다는 생각이, 그녀를 한 번도 알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서만큼이나 내 마음에서도 터무니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