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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③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그렇지만 질투란 그 원인이 변덕스럽고 강압적이며, 같은 환자에게서는 늘 한결같되 다른 환자에게서는 때로 아주 딴판인, 그런 간헐적 질환의 하나다. 어떤 천식 환자는 오직 창문을 열어 바람을 온통 들이마시고 산의 맑은 공기를 마셔야만 발작을 가라앉힐 수 있고, 어떤 이는 도시 한복판의, 연기가 자욱한 방으로 피신해야만 그럴 수 있다. 질투에 어떤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질투쟁이란 참으로 드물다. 어떤 이는 자기에게 알려 주기만 한다면 배신을 용납하고, 어떤 이는 자기에게 숨겨 주기만 한다면 그러한데, 이 점에서 둘은 똑같이 어리석어 보인다. 뒤엣사람이 진실을 듣지 못하는 만큼 글자 그대로는 더 속는 셈이지만, 앞엣사람은 바로 그 진실에서 제 괴로움의 양식을, 그 확장을, 그 되풀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투의 이 두 나란한 광기는, 털어놓기를 애원하든 물리치든 간에, 흔히 말을 넘어선다. 우리는 제 애인이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여자들과 관계 맺는 것만은 질투하면서도, 제 허락 아래, 가까이서, 설령 제 눈앞은 아닐지라도 제 지붕 밑에서라면, 다른 남자에게 몸을 내맡기도록 내버려 두는 질투하는 연인을 본다. 이런 경우는 젊은 여자를 사랑하는 늙은 남자들 사이에서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런 남자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는 것을, 때로는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배신당하느니, 그녀에게 나쁜 충고를 할 만한 자로는 여기지 않되 즐거움은 능히 줄 만하다고 여기는 어떤 남자를 제 집에, 곁방에 들이는 편을 택한다. 또 어떤 남자는 정반대여서, 제가 훤히 아는 도시에서는 애인을 단 일 분도 홀로 나다니게 하지 않고 예속 상태에 붙들어 두면서도, 제가 알지 못하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마음속에 그려 볼 수도 없는 곳으로는 한 달씩 가도록 내버려 둔다. 알베르틴에 대하여 나는 이 두 가지 진정제 같은 광기를 다 지니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내 곁에서, 내 부추김 아래, 내가 그 전부를 지켜볼 수 있어 거짓의 두려움 따위는 피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을 누렸더라면, 나는 질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내가 도무지 상상할 수도, 그녀의 생활 방식을 알아낼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도, 알고 싶은 어떤 유혹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낯설고 먼 곳으로 옮겨 갔더라면, 나는 그때도 질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나의 불확실함은 똑같이 완전한 앎이나 무지에 의해 죽어 버렸으리라.

하루가 기울며 나를 기억의 작용으로 오래전의 서늘한 대기 속에 다시 잠기게 하니, 나는 오르페우스가 엘리시온 들판의, 이 땅에서는 알 수 없는 그 미묘한 대기를 들이마셨던 것과 똑같은 황홀함으로 그것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고, 나는 저녁의 쓸쓸함에 짓눌렸다. 알베르틴이 돌아오기까지 몇 시간이나 지나야 하는지 보려고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다가, 나는 아직 옷을 차려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집주인인 게르망트 부인에게 애인에게 마련해 주고 싶어 안달하던 여러 어울릴 만한 옷가지에 관해 자세히 물어볼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았다. 이따금 나는 안뜰에서, 날씨가 궂어도 몸에 꼭 맞는 모자를 쓰고 모피를 두른 채 산책을 나서는 공작부인과 마주쳤다. 나는 잘 알고 있었으니, 총명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그저 여느 부인과 다를 바 없는 한 부인일 뿐이고, 이제 주권을 지닌 공국이나 공작령이 더는 없는 마당에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라는 이름 따위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과 장소를 누리는 나의 방식에서 나는 다른 관점을 택하고 있었다. 그녀가 공작부인이요 대공비요 자작부인으로 있던 영지의 모든 성을, 날씨에 아랑곳없이 모피를 두른 이 부인이 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만 같았으니, 마치 교회 문 상인방에 새겨진 조각상이 제가 지은 대성당이나 제가 지켜 낸 도시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 성들, 이 숲들은, 오직 내 마음의 눈만이 임금이 사촌이라 부르던 이 모피 두른 부인의 왼손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육체의 눈은 거기서, 하늘이 험상궂은 날이면, 공작부인이 서슴없이 무장하듯 챙겨 든 우산 하나밖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조심하는 편이 낫지요, 집에서 몇십 리나 떨어진 데서 마부가 내 형편에 넘치는 삯을 달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너무 비싸다’느니 ‘내 형편에 넘친다’느니 하는 말이, ‘나는 너무 가난해서’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공작부인의 대화에 줄곧 되풀이해 나왔는데, 그녀가 그토록 부유하면서도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여겨 그리 말한 것인지, 아니면 그토록 귀족적이면서도, 촌스러운 티를 짐짓 내면서도, 한낱 부유하기만 할 뿐 다른 것은 없어 가난한 이들을 깔보는 자들이 재물에 부여하는 그런 중요성을 재물에 부여하지 않는 것이 세련되었다고 여겨 그리 말한 것인지는 가늠할 길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차라리, 이미 부유하되 그 모든 영지를 유지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제 필요를 채우기에는 넉넉지 못하던 시절, 감추고 있는 티를 내고 싶지 않던 어떤 돈의 옹색함을 느끼던 그 시절 삶에서 몸에 밴 버릇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자주 농담거리로 삼는 것은 대개, 도리어 우리를 난처하게 하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것들 때문에 난처해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고, 어쩌면, 우리가 그 일을 농담으로 다루는 것을 듣고 이야기 상대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려 주리라는, 그 덤으로 얻는 이득에 대한 은밀한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저녁이면 대개 이 시각에 나는 공작부인이 집에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이 반가웠으니, 알베르틴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그녀에게 자세히 물어보기에 더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소년 시절의 그 신비로운 게르망트 부인을 한낱 실용적인 목적으로 써먹으려고 찾아간다는 것이, 마치 전화기를, 예전에는 그 기적 앞에서 놀라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재봉사를 부르거나 잔치에 쓸 얼음과자를 주문하는 데 쓰는 그 초자연적 기계를 써먹듯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거의 생각지도 않은 채 내려갔다.

알베르틴은 온갖 치레를 좋아했다. 나는 날마다 그녀에게 새로운 자잘한 것 하나쯤 안겨 주는 즐거움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창가에서나 안뜰에서 서로 지나치다가, 세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번에 알아보는 그 눈으로 게르망트 부인의 목에 두른, 어깨에 걸친, 손에 든 어떤 스카프며 목도리며 양산을 보고 나에게 넋을 잃고 이야기할 때면, 나는, 이 처녀의 타고난 까다로운 취향이(엘스티르의 대화가 그녀에게 옷차림의 우아함에 관한 가르침이 되어 그 취향은 한결 더 세련되어 있었다) 예쁘장한 물건일지언정 한낱 대용품 따위로는, 곧 보통 사람들 눈에나 그 자리를 채워 주되 실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그런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남몰래 공작부인을 찾아가, 알베르틴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어떤 본을 따라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하면 그와 똑같은 것을 구할 수 있는지, 그것을 만든 이의 비결이며 그 솜씨의 매력(알베르틴이 ‘시크’, ‘스타일’이라 부르던 것)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이름은 무엇인지(옷감의 아름다움도 중요했으므로), 내가 기어이 쓰게 해야 할 그 천의 이름과 품질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

발베크에서 돌아온 뒤,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같은 저택에서 우리 맞은편에 산다고 알베르틴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그 자랑스러운 작위와 위대한 이름을 듣고, 무심하다 못해 적의에 차고 경멸에 찬 그런 태도를 지었으니, 그것은 자존심 세고 열정적인 천성에 깃든 이룰 수 없는 욕망의 표시다. 알베르틴의 천성이 아무리 훌륭했다 해도, 그 속에 담긴 좋은 자질들은 오직 우리의 개인적 취향이라는, 또는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했던 우리 취향에 대한 그 한탄이라는 걸림돌들 한가운데서만 자유로이 피어날 수 있는데, 알베르틴의 경우 그것은 속물근성이었고, 그 한탄은 반감이라 불린다. 하기야 사교계 사람들에 대한 알베르틴의 반감은 그녀의 천성에서 아주 작은 자리밖에 차지하지 않았고, 나에게는 혁명 정신의 한 모습으로, 다시 말해 귀족에 대한 쓰라린 사랑으로 여겨졌으니, 그것은 게르망트 부인의 귀족적 태도를 드러내는 프랑스 기질의 그 반대편 면에 새겨져 있었다. 이룰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알베르틴은 어쩌면 이 귀족적 태도를 아예 마음에 두지 않았을 테지만, 엘스티르가 그녀에게 공작부인을 파리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여자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공작부인에 대한 그녀의 공화주의적 경멸은 내 애인 안에서 유행에 밝은 여인에 대한 예리한 관심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녀는 늘 나에게 게르망트 부인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고, 내가 제 옷차림에 관한 조언을 얻으러 공작부인을 찾아가는 것을 반겼다. 물론 나는 스완 부인에게서도 이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테고, 실제로 한 번은 그럴 셈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게르망트 부인은 옷 입는 기술을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나에게는 보였다. 그녀가 외출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알베르틴이 돌아오는 대로 알려 달라고 일러둔 뒤, 잠시 그녀를 찾아뵈러 내려갔을 때, 회색 크레프 드 신 옷의 안개에 감싸인 공작부인을 보게 되면, 나는 복잡한 원인에서 비롯되어 지극히 불가피하다고 느껴지는 그녀의 이 모습을 받아들이고, 마치 뿌연 안개에 진줏빛 회색으로 감싸인 어느 늦은 오후처럼 그 옷이 내뿜는 분위기에 나를 내맡겼다. 반대로 그녀의 실내복이 붉고 노란 불꽃이 어린 중국풍이면, 나는 이글거리는 석양을 보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옷들은 그녀의 기분 따라 바꿀 수 있는 무심한 장식이 아니라, 날씨나, 하루의 어느 특정한 시각에 고유한 빛처럼 명확하고도 시적인 하나의 실재였다.

게르망트 부인이 입던 온갖 외출복과 실내복 가운데, 명확한 의도에 가장 잘 응답하는 듯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은 듯한 옷은 포르튀니가 베네치아의 옛 본을 따라 지은 옷들이었다. 그 옷들에 그토록 특별한 의미를 주어, 그것을 입은 여인이 그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혹은 그대에게 말을 건네며 취하는 자세가, 마치 그 의상이 오랜 숙고의 열매이기라도 한 듯, 그대의 대화가 소설 속 한 장면처럼 일상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오기라도 한 듯, 남다른 중요성을 띠게 만드는 것은, 그 옷들의 역사적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차라리 그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하다는 사실 때문일까? 발자크의 소설에서 우리는 그의 여주인공들이 어떤 특정한 손님을 기다리는 날에 짐짓 이 옷이나 저 옷을 골라 입는 것을 본다. 오늘날의 옷은, 포르튀니의 창작만은 늘 예외로 하고, 성격이 덜하다. 소설가의 묘사에는 애매함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 그 옷은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의 가장 대략적인 밑그림조차 예술 작품의 모사만큼이나 자연스레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옷들 가운데 이것이나 저것을 걸치기 전에, 여인은 서로 엇비슷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 깊이 개성적이고 제 이름에 걸맞은 두 벌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러나 그 옷은 내가 그 여인을 생각하는 것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실로, 게르망트 부인은 이 무렵의 내게, 내가 아직 그녀를 사랑하던 시절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에게 덜 기대하게 되자(더는 그녀 자신을 위해 찾아가지 않게 된 그녀에게), 나는 마치 발받침에 발을 얹고 홀로 방에 있는 사람의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으니, 마치 오래전의 말씨로 쓰인 책을 읽는 듯했다. 내 마음은 그녀가 하는 말에서, 오늘날의 말에서도 문학에서도 더는 찾을 수 없는 프랑스어 특유의 그 순수한 매력을 즐길 만큼 충분히 초연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대화를, 감미롭고 순수하게 프랑스적인 어느 민요를 듣듯 들었고, 메리메가 보들레르를, 스탕달이 발자크를, 폴루이 쿠리에가 빅토르 위고를, 메야크가 말라르메를 헐뜯었던 것을 내가 알듯이, 그녀가 마테를링크를(하기야 그녀는 이제 그를 흠모했으니, 더디 퍼지는 문학 유행의 빛살에 물든 지적인 여성적 나약함 탓이었다) 깎아내리도록 내버려 두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 비평가가 제 희생자보다 훨씬 더 좁은 안목을 지녔으되, 또한 더 순수한 어휘를 지녔음을 알았다. 게르망트 부인의 어휘는, 생루의 어머니의 어휘 못지않게, 황홀할 만큼 순수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오늘날의 작가들이 au fait(‘실은’ 대신), singulièrement(‘특히’ 대신), étonné(‘경악하여’ 대신) 따위로 쓰는 그 핏기 없는 상투어에서가 아니라, 게르망트 부인이나 프랑수아즈 같은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우리는 옛말과 낱말의 참된 발음을 되찾는다. 나는 다섯 살 때 프랑수아즈에게서, ‘타른(Tarn)’이 아니라 ‘타르(Tar)’라고, ‘베아른(Béarn)’이 아니라 ‘베아르(Béar)’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덕에 스무 살이 되어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기서 봉탕 부인처럼 ‘마담 드 베아른(Madame de Béarn)’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녀 안에 살아남은 이 향토적이고 반쯤 촌스러운 자질을 공작부인이 온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며, 오히려 그녀는 그것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어떤 짐짓 꾸민 티를 내보였다. 그러나 그녀 편에서 이것은, 시골 아낙 흉내를 내는 귀부인의 거짓 소박함이라거나, 알지도 못하는 농부들을 업신여기는 부유한 마님들을 콧대 꺾어 놓으려 드는 공작부인의 오만함이라기보다는, 제게 속한 것의 매력을 알기에 그것을 현대적 니스 칠로 망치려 들지 않는 여인의, 거의 예술적이라 할 편애였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디브에서 그 노르만 여관 주인을, 기욤 르 콩케랑 여관의 주인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백만장자이면서도, 극히 드문 일이지만, 제 여관에 호텔식 현대적 편의를 들이기를 애써 삼가고, 노르만 농부의 말씨와 겉옷을 그대로 지녔으며, 손님이 부엌에 들어가 그가 마치 농가에서처럼 제 손으로, 그럼에도 가장 호화로운 호텔의 만찬보다 한없이 낫고 심지어 더 값비싼 만찬을 차리는 것을 지켜보도록 허락했다.

옛 귀족 가문에 살아남은 그 모든 향토적 수액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그 가문에서 그것을 업신여기지 않을 만큼, 사교계의 니스 칠 밑에 그것을 감추지 않을 만큼 총명한 사람이 태어나야 한다. 게르망트 부인은, 딱하게도 영리하고 파리 태생이어서, 내가 처음 알았을 무렵에는 제 고향 흙에서 그 억양밖에는 남긴 것이 없었으나, 적어도 처녀 시절의 삶을 이야기하려 할 때면 제 말씨에서 (한편으로 너무 자연스레 지방스럽거나, 다른 한편으로 인위적으로 문학적일 것 사이의) 그런 절충 하나를, 조르주 상드의 La Petite Fadette나 샤토브리앙이 그의 Mémoires d’Outre-Tombe에 간직한 어떤 전설들의 매력을 이루는 그런 절충 하나를 찾아냈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녀가 저 자신과 더불어 농부들을 그림 속에 끌어들이는 어떤 일화를 들려주는 것을 듣는 데 있었다. 역사적인 이름들과 옛 관습들이 성과 마을을 뒤섞은 이 이야기들에 뚜렷이 매혹적인 풍미를 안겨 주었다. 한때 다스리던 땅과 계속 접촉을 이어 온 덕에, 어떤 부류의 귀족은 향토적으로 남아 있어서, 그 결과 가장 단순한 한마디가 우리 눈앞에 프랑스 역사 전체의 정치적이고 지리적인 지도를 펼쳐 놓는 것이다.

짐짓 꾸미는 티도, 특별한 언어를 지어내려는 욕망도 없다면, 이런 식으로 낱말을 발음하는 방식은 대화 속에 펼쳐진 프랑스 역사의 어엿한 박물관이었다. ‘내 종조부 핏잼(Fitt-jam)’이라는 말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으니, 우리는 피츠제임스(Fitz-James) 가문이 저희가 프랑스 귀족임을 자랑스레 뽐내며 제 이름을 영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어떤 이름들은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해야 한다고 여겨 오던 사람들이, 문득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그것을 달리 발음하는 것을 듣고는, 저희로서는 결코 짐작도 못 했을 발음을 채택하던, 그 갸륵한 순종은 감탄할 만하다. 그리하여, 샹보르 백작의 수행원 가운데 증조부를 두었던 공작부인은, 오를레앙파로 돌아선 남편을 놀리기를 즐겨 “우리 프로슈도르프(Frochedorf) 사람들로 말하자면…” 하고 선언하곤 했다. 늘 ‘프로스도르프(Frohsdorf)’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오던 손님은, 그 자리에서 태도를 바꾸어, 그 뒤로는 내내 ‘프로슈도르프’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곤 했다.

언젠가 게르망트 부인이 제 조카라며 나에게 소개했으나 그 이름을 내가 미처 알아듣지 못한 어느 젊은 귀공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공작부인이 목구멍 깊은 데서 아주 크되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C’est l’… i eon… l… b… frère à Robert. 저 애는 제 두개골이 옛 갈리아인과 같은 모양이라고 우겨 댄답니다.”라고 내뱉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C’est le petit Léon”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로베르 드 생루의 처남인 레옹 대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애 두개골에 대해서는 나야 모르지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애가 옷 입는 품은, 정말이지 옷 하나는 꽤 잘 입는데, 그 고장 방식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요. 언젠가 로한가 사람들과 함께 조슬랭에 머물던 때, 우리는 다 함께 어느 순례에 갔는데, 거기엔 브르타뉴 방방곡곡에서 온 농부들이 있었어요. 레옹의 어느 마을에서 온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로베르의 처남이 입은 베이지색 반바지를 보고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지 뭐예요!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 레옹이 말했지요. ‘자네, 내가 누군지 모를걸?’ 농부는 모른다고 실토했어요. ‘좋아,’ 레옹이 말했지요. ‘내가 자네 대공일세.’ ‘오!’ 농부가 모자를 벗고 사과하며 말했어요. ‘나는 나리가 엥글리셰(Englische)인 줄 알았지요.’”

그리고 이 기회를 틈타 내가 게르망트 부인으로 하여금 로한가에 대해(그녀 자신의 집안이 그 집안과 자주 통혼했다) 이야기하도록 이끌면, 그녀의 말은 파르동 축제의 애수 어린 매력의 기미로, 그리고 (저 진정한 시인 팜피유의 표현을 빌리면) ‘골풀 불 위에 부친 검은 곡식 팬케이크의 투박한 풍미’로 흠뻑 배어들곤 했다.

뒤 로 후작으로 말하자면(그의 비극적인 몰락을 우리 모두 알거니와, 제가 귀먹은 몸으로 눈먼 H… 부인을 찾아뵈러 이끌려 다니곤 하던 그 몰락 말이다), 그녀는 그보다 덜 비극적이던 시절을, 게르망트에서 하루의 사냥을 마친 뒤 웨일스 공과 차를 들기 전에 슬리퍼로 갈아 신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으니, 그는 웨일스 공에게 제가 뒤진다고 여기지 않았고, 보다시피 그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지냈다. 그녀가 이 모든 것을 어찌나 그림처럼 묘사하던지, 그녀는 그에게 다소 허풍스러운 페리고르 신사들의, 깃털 꽂은 총사(銃士)의 모자를 씌워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들을 그저 분류하는 데서조차, 그들이 태어난 고장을 구별하고 짚어 내려는 게르망트 부인의 마음 씀씀이는, 그녀가 제 본연의 모습일 때, 파리 태생 여인이라면 결코 지닐 수 없었을 큰 매력이었고, 앙주, 푸아투, 페리고르 같은 그 소박한 이름들이 그녀의 대화를 그림 같은 풍경으로 채웠다.

게르망트 부인의 발음과 어휘로 돌아가자면, 귀족이 진정 보수적임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런 면에서이니, 그 말에 담긴, 다소 유치하고도 다소 위태로운 모든 것과 더불어, 진화에 완강히 저항하되 예술가에게는 또한 흥미로운 그런 면에서다. 나는 장(Jean)이라는 이름의 본디 철자를 알고 싶었다. 나는 빌파리지 부인의 조카에게서 편지를 받고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는 저를, 세례받은 대로, 고타 연감에 오른 대로, 즈앙 드 빌파리지(Jehan de Villeparisis)라 서명하는데, 우리가 시도서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주홍이나 군청으로 채색된 것을 보고 감탄하는, 그 아름답고 군더더기 같은 문장(紋章)의 H를 붙여서였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이 방문을 한없이 길게 늘일 시간이 결코 없었으니, 되도록 애인보다 늦게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안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르망트 부인에게서 그 옷차림에 관한 정보를, 곧 알베르틴을 위해 처녀가 입을 수 있는 한도에서 비슷한 양식의 옷을 주문하는 데 도움이 될 그 정보를 나는 오직 찔끔찔끔 얻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예컨대 마님, 생퇴베르트 부인 댁에서 만찬을 드시고 나서 게르망트 대공비 댁으로 가시던 그날 저녁, 온통 붉은, 붉은 구두까지 갖춘 드레스를 입으셨는데, 참으로 눈부시셨지요, 저는 마님을 보고 무슨 커다란 핏빛 꽃송이며, 이글거리는 루비를 떠올렸답니다. 그런데 그 드레스가 대체 어떤 것이었나요? 처녀가 입을 만한 그런 것인가요?”

공작부인은 지친 얼굴에, 지난날 스완이 칭찬을 건넬 때면 데 롬 대공비가 짓곤 하던 그 환한 표정을 띠고, 웃음기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언제나 그 시각이면 그 자리에 있던 브레오테 를 놀리듯, 묻듯, 그러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는데, 그는 외알 안경 너머로, 이 지적 허튼소리의 발작을 그 밑에 깔려 있다고 여겨지는 젊음의 육체적 흥분을 봐서 용서해 주는 듯한 미소를 환히 지어 보였다. 공작부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저 사람 왜 저러지? 미친 게 틀림없어.” 그러고는 나를 향해 어르는 듯한 태도로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이글거리는 루비나 핏빛 꽃송이를 닮았는지는 몰랐네요. 하지만 마침 기억이 나는데, 정말이지 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요. 그해에 유행하던 붉은 새틴이었지요. 그래요, 처녀도 정 뭣하면 그런 걸 입을 수야 있지만, 당신 친구는 저녁에 도무지 외출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정식 야회복이라, 방문할 때 걸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놀라운 것은, 어쨌거나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그 저녁의 일에서, 게르망트 부인이 제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럼에도, 이제 곧 보게 되듯 그녀에게 크게 중요했어야 마땅한 어떤 사건은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행동하는 남녀들 사이에서는(사교계 사람들도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규모로나마 행동하는 남녀이며, 그럼에도 어쨌든 행동하는 남녀다) 한 시간 뒤에 일어날 일을 챙겨야 할 필요에 짓눌린 나머지, 정신이 기억에 맡기는 것은 극히 몇 가지뿐인 듯하다. 이를테면 노르푸아 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독일과의 동맹에 관해 그가 내놓았던 예언들을 그대에게 상기시키면, 그가 “잘못 아신 게 분명하오, 나는 도무지 그런 기억이 없소, 그건 나답지 않소, 그런 종류의 대화에서 나는 늘 극히 말을 아끼는 사람이고, 흔히 coups de tête에 지나지 않으며 거의 언제나 coups de force로 변질되고 마는 그런 coups d’éclat의 성공을 나는 결코 점치지 않았을 것이오. 먼 훗날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고 두 나라에 크게 이로우리라는 것, 감히 말하건대 프랑스도 그 거래에서 손해 보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소만, 나는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열매가 아직 익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 의견을 알고 싶으시다면, 지난날의 적들에게 우리와 엄숙한 혼인을 맺자고 청하는 것은 호된 퇴짜를 향해 나서는 꼴이며, 그 시도는 오직 재앙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보오.”라고 말한 것은, 대개 제 질문자를 궁지에 몰아넣고 제가 틀리지 않았던 양 보이려는 속셈에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노르푸아 는 거짓말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잊어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깊이 곱씹지 않은 것, 모방의 정신이며 이웃의 격정이 우리에게 받아쓰게 한 것을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것들은 변하고, 그와 더불어 우리의 기억도 달라진다. 외교관보다도 더, 정치가들은 어느 순간에 저희가 취했던 관점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들의 몇몇 번복은 지나친 야심 탓이라기보다 기억의 옹색함 탓이다. 사교계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극히 몇 가지뿐이다.

게르망트 부인은, 붉은 드레스 차림으로 갔던 그 야회에 쇼스피에르 부인이 와 있었던 기억이 없다고, 내가 잘못 안 게 틀림없다고 나에게 잘라 말했다. 그렇지만 참으로, 그 뒤로 쇼스피에르 부부는 공작 내외의 마음속에 넘칠 만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게르망트 는 자키 클럽의 수석 부회장이었는데, 마침 회장이 죽었다. 사교계에서 인기가 없고, 저희를 집에 초대하지 않는 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유일한 낙이던 몇몇 회원이 게르망트 공작에게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는데, 공작은 당선을 확신하고, 제 사회적 지위로 보면 하찮은 일인 회장직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던 터라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작부인이 드레퓌스파라는 것(드레퓌스 사건은 진작 매듭지어졌으나, 이십 년이 지나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직은 겨우 이태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을 대접한다는 것, 반쯤 독일인인 게르망트 공작 같은 몇몇 거물 국제적 부호에게 근래 그토록 배려가 베풀어졌다는 것이 그를 걸고넘어지는 구실이 되었다. 클럽이란 늘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을 시샘하고 큰 재산을 미워하는 법이라, 이 운동은 바탕이 잘 닦여 있음을 알았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