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피에르 자신의 재산도 결코 푼돈이 아니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시비 삼을 수 없었다. 그는 한 푼도 쓰지 않았고, 부부는 수수한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아내는 검은 서지 천 옷을 입고 다녔다. 열렬한 음악 애호가인 그녀는 과연 게르망트가보다 훨씬 더 많은 성악가를 부르는 자그마한 오후 모임을 열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모임들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다과도 나오지 않았으며, 남편은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고, 모든 것이 라 셰즈 거리의 어둑함 속에서 아주 조용히 치러졌다. 오페라 극장에서 쇼스피에르 부인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갔으니, 늘 샤를 10세의 측근 가운데 가장 ‘강경파’ 부류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을 지녔으되 이제는 아주 한물간, 아무 데도 드나들지 않는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선거 날, 뭇사람이 놀랍게도, 무명이 명성을 이겼다. 제2부회장이던 쇼스피에르가 자키 클럽의 회장으로 뽑혔고, 게르망트 공작은 눌러앉은 채로, 다시 말해 수석 부회장의 자리에 남게 되었다. 물론 자키 클럽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게르망트가 같은 최고위 대공들에게는 거의, 아니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제 차례인데도 그것이 되지 못하는 것, 이태 전 오리안이 그 아내에게 인사하기를 마다했을 뿐 아니라 그런 이름 없는 허수아비가 제게 인사한다고 언짢아하기까지 했던 그 쇼스피에르가 저보다 앞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 이것만은 공작도 참아 내기 힘들어했다. 그는 이 퇴짜에 초연한 척했고, 더구나 그 뿌리에는 스완과의 오랜 우정이 있노라고 우겼다. 실은 그의 노여움은 결코 식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그때까지 아무도 게르망트 공작이 “그야말로”라는 지극히 흔한 표현을 쓰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자키 클럽 선거가 있고부터는 누가 드레퓌스 사건을 입에 올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그야말로”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 말이야 쉽지, 그건 용어를 잘못 쓰는 거요. 그건 종교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치 문제란 말이오.” 그동안 아무도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다시 오 년이 지나도록 그가 “그야말로”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오 년 뒤에라도 드레퓌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면 곧바로 “그야말로”가 자동으로 뒤따랐다. 어쨌든 공작은 그 사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했으니, 그는 그 사건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불러온” 원인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실은 그가 의식하는 재앙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자기가 자키 클럽 회장이 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문제의 그 오후, 내가 게르망트 부인에게 그녀가 사촌의 파티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를 상기시키자, 브레오테 씨는 무언가 한마디 하려고 마음먹고서, 끝내 밝혀지지 않은 모호한 연상 작용에 이끌려, 오므린 입술 사이로 혀를 놀리며 이렇게 운을 뗐다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드레퓌스 사건 말인데,” (도대체 왜 드레퓌스 사건이란 말인가, 우리는 그저 붉은 드레스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오직 호감을 사려는 마음밖에 없던 딱한 브레오테에게 악의가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드레퓌스라는 이름만으로도 게르망트 공작은 유피테르 같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들었는데,” 브레오테가 말을 이었다. “아주 근사한 얘기, 지독히도 재치 있는 말을, 정말이지, 우리 친구 카르티에가 했다지 뭐요” (독자에게 미리 일러두거니와, 빌프랑슈 부인의 오라비인 이 카르티에는 같은 이름의 그 보석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놀랄 일도 아니지, 그 사람이야 남아도는 게 재치니까,” “어머!” 오리안이 끼어들었다. “그 재치, 나한테는 좀 아껴 주었으면 좋겠네. 당신 친구 카르티에가 늘 나를 얼마나 지루하게 했는지 차마 말하기도 뭣하고, 샤를 드 라 트레모유 부부가 그 인간에게서 도대체 무슨 끝없는 매력을 찾는 건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 집에 갈 때마다 거기서 그 사람을 마주치니 말이에요.” “친애하는 공탁부인,” 부드러운 c 발음을 하지 못하는 브레오테가 대꾸했다. “당신은 카르티에에게 너무 야박한 것 같군요. 그가 라 트레모유가에서 좀 지나치게 제집처럼 편하게 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탸를에게 이를테면, 뭐라고 할까, 일종의 fidus Achates가 되어 주고 있단 말이오. 요즘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새가 되어 버린 존재 말이오. 아무튼 내가 들은 대로 얘기하리다. 카르티에 말로는, 졸라 씨가 굳이 자청해서 재판을 받고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단 하나의 감각, 곧 감옥에 갇히는 기분을 누려 보려는 것이었다더군요.” “그래 놓고는 붙잡히기도 전에 달아났잖아요,” 오리안이 끼어들었다. “당신 얘기는 앞뒤가 안 맞아요. 게다가 설령 그럴듯하다 쳐도, 그 말은 정말이지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걸 재치라고 한다면 말이죠!” “저런 맙쏘사, 친애하는 오리안,” 반박을 당하자 자신감을 잃기 시작한 브레오테가 대꾸했다. “그건 내 말이 아니라, 나는 들은 대로 전할 뿐이니, 알아서들 새겨들으시구려. 아무튼 그 말 때문에 카르티에 씨는 그 훌륭한 라 트레모유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오. 라 트레모유는, 지당하게도, 자기 응접실에서 이를테면 시사 문제라 할 만한 것을 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데다, 마침 알퐁스 로트실트 부인이 자리에 있던 터라 더욱 언짢아했던 거요. 카르티에는 라 트레모유에게서 제대로 한바탕 훈계를 들어야 했지.” “그야 당연하지,” 공작이 몹시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알퐁스 로트실트가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을 눈치는 있다 해도, 속으로는 다른 모든 유대인들처럼 드레퓌스파란 말이야. 사실 그것이 바로 ad hominem 논거지” (공작은 ad hominem이라는 표현을 다소 어정쩡하게 쓰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부정직함을 증명하는 데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논거란 말이야. 어떤 프랑스인이 남의 것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인다 해서, 그자가 나와 같은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무죄라 여겨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기네 동포 가운데 하나가 반역자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 끔찍한 파장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단 말이야” (물론 공작은 쇼스피에르에게 당한 그 저주스러운 패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자들 가운데 하나가 저지른 죄가 심지어… 자, 오리안, 그자들이 하나같이 반역자를 편든다는 게 유대인들한테 불리한 증거가 아니라고 우기지는 못할 거요. 그게 그자들이 유대인이라서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 “물론 아니죠,” 오리안이 되받았다 (약간의 짜증과 함께, 천둥의 신 유피테르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드레퓌스 사건보다 ‘지성’을 위에 두려는 어떤 욕구를 느끼면서). “어쩌면 바로 그들이 유대인이고 자기 민족을 잘 알기에,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드뤼몽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반역자에다 반프랑스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인지도 몰라요. 물론 그가 그리스도교도였다면 유대인들은 그에게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겠죠. 하지만 그들이 관심을 둔 건,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선뜻 a priori 반역자라고 여기지는 않았으리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조카 로베르 식으로 말하자면요.” “여자들은 정치라고는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니까,” 공작이 공작부인에게 시선을 못 박으며 외쳤다. “그 충격적인 범죄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프랑스에 더없이 소름 끼치는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는 막대한 국가적 중대사요. 마땅히 유대인을 죄다 내쫓았어야 할 일인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껏 취해진 조치들은 (반드시 뒤집어야 할 비열한 방식으로) 그들을 겨냥한 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가장 저명한 적수들, 최고 지위에 있는 인사들을 겨냥했고, 그 사람들이 시궁창에 내동댕이쳐졌으니, 우리 불행한 나라의 파멸을 부른 셈이오.”
나는 대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었음을 느끼고 서둘러 옷 이야기로 화제를 되돌렸다.
“부인,” 내가 말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해 주셨던 때를 기억하세요?” “내가 이이한테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해 준 때라,” 그녀는 미소를 띠며 브레오테 씨 쪽으로 돌아보며 되뇌었다. 브레오테는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예의로 코끝이 한층 뾰족해지고 미소는 더 부드러워졌으며, 그의 목소리는 숫돌에 갈리는 칼처럼 이런저런 모호하고 녹슨 소리를 냈다. “커다란 검은 꽃무늬가 있는 노란 드레스를 입고 계셨죠.” “하지만 얘야, 그게 그거란다, 그런 건 다 야회복인걸.” “그리고 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수레국화 장식 모자도요! 하기야 다 지난 일이네요. 전에 말씀드린 그 아가씨에게 어제 아침 부인이 두르고 계셨던 것 같은 모피 외투를 하나 맞춰 주고 싶은데요. 그걸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아니발도 이제 곧 가 봐야 하니까요. 내 방으로 오면 하녀가 보고 싶은 걸 뭐든 보여 줄 거예요. 다만 얘야, 뭐든 기꺼이 빌려주긴 하겠지만, 이건 일러둬야겠구나. 칼로나 두세, 파캥의 옷을 어디 자그마한 바느질집에 맡겨 베끼게 하면 결과가 결코 같지 않단다.” “하지만 자그마한 바느질집에 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어요. 같을 리 없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다만 왜 그런지 부인의 설명을 들어 보고 싶어서요.” “내가 뭘 설명이라고는 도무지 못 한다는 걸 잘 알잖니, 나는 영락없는 바보에다 촌사람처럼 말하는걸. 그건 손재주와 맵시의 문제란다. 모피라면 적어도 내 단골 모피상에게 소개장 한 장은 써 줄 수 있으니, 그자가 널 등쳐먹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그래도 팔구천 프랑은 든다는 건 알아 두렴.” “그리고 얼마 전 저녁에 입고 계셨던, 묘한 향내가 나던 그 실내복은요? 어둡고 보드랍고 얼룩덜룩하고, 나비 날개처럼 금빛 줄무늬가 있던 그 옷 말이에요.” “아! 그건 포르투니 옷이란다. 네 아가씨가 집 안에서 입기에 아주 좋지. 나한테 그런 게 잔뜩 있으니 이따 보여 주마. 사실 원한다면 한두 벌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내 사촌 탈레랑이 가진 걸 네가 한번 봤으면 싶구나. 그걸 빌려 달라고 편지를 써야겠네.” “그런데 부인은 그토록 근사한 구두도 신고 계셨잖아요. 그것도 포르투니 건가요?” “아니, 네가 말하는 게 어떤 건지 알겠구나. 그건 콘수엘로 맨체스터와 함께 런던에서 쇼핑하다 우연히 발견한 금박 새끼염소 가죽으로 만든 거란다. 정말 놀라웠지.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꼭 금빛 살갗 같았고, 앞쪽에 자그마한 다이아몬드가 하나 박혀 있을 뿐이었지. 가엾은 맨체스터 공작부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네게 도움이 된다면 워릭 부인이나 말버러 공작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좀 더 구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어. 그런데 혹시 그 천 조각이 아직 나한테 남아 있지 않을까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한 켤레 맞출 수 있을 텐데. 오늘 저녁에 찾아보고 알려 주마.”
나는 알베르틴이 돌아오기 전에 되도록 공작부인 곁을 떠나려 애썼기에, 그녀의 집 문을 나서다 안뜰에서 쥐피앙의 가게로 차를 마시러 가는 샤를뤼스 씨와 모렐을 마주치는 일이 잦았는데, 그것은 남작으로서는 더없는 호의였다. 내가 그들을 날마다 마주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날마다 그곳에 갔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둘 만한 것은, 습관의 규칙성이란 대개 그 어리석음에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들은 우리가 대체로 이따금 발작적으로 할 뿐이다. 그러나 편집광이 스스로 온갖 즐거움을 앗아 가고 자신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는 그 무의미한 생활이야말로 가장 좀처럼 바뀌지 않는 부류다. 십 년마다 한 번씩 궁금해서 알아본다면, 그 딱한 자는 정작 삶을 누릴 만한 시각에는 여전히 잠들어 있고, 거리에서 살해당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시각에 외출하며, 더울 때는 얼음을 넣은 음료를 홀짝이고, 감기를 고치겠다고 여전히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단 하루만 약간의 기력을 내면 이런 습관들을 영영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 이런 종류의 생활은 거의 언제나 기력이라고는 없는 사람의 몫이다. 악덕이란 이런 단조로운 삶의 또 다른 일면으로, 의지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덜 괴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샤를뤼스 씨가 날마다 모렐과 함께 쥐피앙의 가게로 차를 마시러 올 때면 이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폭발이 이 날마다의 관습에 흠집을 냈다. 어느 날 재봉사의 조카딸이 모렐에게 “그럼 됐어요, 내일 와요, 내가 차 한잔 쏠게요”라고 말하자, 남작은 거의 장래의 며느리로 여기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 표현이 몹시 상스럽다고 여겼는데, 그야 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을 모욕하기를 즐기고 제 화에 못 이겨 격해지는 사람이라, 그저 모렐에게 그녀에게 예의범절을 좀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대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격렬한 장면을 잇달아 연출했다. 더없이 무례하고 더없이 오만한 어조로. “그러니까 자네의 ‘터치’는, 보아하니 반드시 ‘택트’와 짝을 이루는 건 아닌 모양인데, 그게 자네 후각의 정상적인 발달을 가로막은 게로군. 그러지 않고서야 ‘차 한잔 쏜다’는 그 악취 나는 표현을, 기껏해야 십오 상팀짜리일 그 말을, 어떻게 내 고귀한 콧구멍에 하수구 악취를 풍기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나? 자네가 바이올린 독주를 끝냈을 때, 내 집에서 열광적인 박수 대신, 혹은 그보다 더 웅변적인 침묵 대신, 방귀로 보답받은 적이 있던가? 그 침묵으로 말하자면, 자네의 그 아가씨가 자네에게 마구 퍼붓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내 입술까지 치밀어 오르게 한 흐느낌을 억누르려 애쓰다 지친 데서 오는 것이건만.”
어떤 관리가 상관에게서 이런 비슷한 질책을 잔뜩 들었다면, 그는 어김없이 이튿날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정반대로, 샤를뤼스 씨에게는 모렐을 내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었으니, 자기가 좀 지나쳤나 싶어 두려워진 그는 무례함이 뒤섞인 세련된 취향을 한껏 발휘하며 그 처녀를 시시콜콜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는 매력적이야. 자네가 음악가이니, 아마 그녀의 목소리에 홀린 게로군. 높은 음에서 참으로 아름다워서, 마치 자네의 올림 나 음의 반주를 기다리는 듯하지. 낮은 음역은 나한테는 덜 끌리는데, 그건 아마 묘하게 가느다란 그 목의 세 겹으로 이어지는 곡선과 무슨 관련이 있을 거야. 그 곡선은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시작되거든. 하지만 이런 건 사소한 세부일 뿐, 내가 감탄하는 건 그녀의 윤곽선이지. 그리고 그녀가 재봉사이니 가위를 잘 다룰 테고, 그러니 종이를 오려 만든 자기 옆모습을 근사하게 하나 내게 주도록 자네가 시켜 주게.”
샤를리는 이 찬사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니, 그 찬사가 자기 약혼녀에게서 추어올린 매력이란 그의 눈에는 도무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샤를뤼스 씨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알겠어요, 이 친구야, 제가 그 애를 단단히 나무랄 테니 다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모렐이 샤를뤼스 씨를 이렇게 ‘이 친구’라고 불렀다 해서, 이 잘생긴 바이올리니스트가 자기 나이가 남작의 삼분의 일에 겨우 미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쥐피앙이 그러듯 그 말을 쓴 것도 아니었으니, 그가 쓴 말투에는 어떤 관계에서는 나이 차이를 지워 없애는 일이 애정에 앞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전제하는 그런 스스럼없음이 배어 있었다. 모렐 쪽에서는 꾸며 낸 애정이었다. 다른 이들에게서는 진실한 애정이겠지만. 그리하여 이 무렵 샤를뤼스 씨는 다음과 같이 쓰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사랑하는 팔라메드, 언제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나는 네가 못 견디게 그립고 늘 너만 생각한단다. 피에르.”
샤를뤼스 씨는 자기에게 이토록 스스럼없이, 따라서 필시 자기를 아주 가깝게 아는 사이일 텐데도 필체는 알아볼 수 없는, 그런 무람없는 말투를 감히 쓴 것이 대체 자기 친척 가운데 누구일까 알아내려 머리를 쥐어짰다. 고타 연감이 몇 줄씩 할애하는 온갖 대공들이 며칠이고 그의 머릿속을 줄지어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편지 뒷면에 적힌 주소가 그를 깨우쳐 주었다. 편지를 쓴 이는 샤를뤼스 씨가 이따금 드나드는 어느 도박 클럽의 사환이었다. 이 사환은 샤를뤼스 씨에게 이런 어조로 쓰는 것이 무례하다고는 느끼지 않았으니, 오히려 그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여러 번 자기에게 입을 맞춘, 그럼으로써 (그의 순진한 생각으로는) 애정을 베푼 신사에게 반말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던 것이다. 샤를뤼스 씨는 이 스스럼없음에 정말로 기뻐했다. 그는 그 편지를 보여 주려고 오후 모임에서 보구베르 씨를 끌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알다시피 샤를뤼스 씨는 보구베르 씨와 함께 돌아다니기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후자는 외알 안경을 눈에 낀 채 지나가는 젊은이마다 사방으로 눈길을 던져 대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나쁘게도, 그는 샤를뤼스 씨와 함께 있을 때면 거리낌 없이 굴며 남작이 질색하는 말투를 썼다. 그는 모든 남성형 단어에 여성형 어미를 붙였고, 지독히도 아둔한 탓에 이 익살을 더없이 재치 있는 것으로 여겨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외교관으로서의 자기 지위를 대단히 중히 여겼기에, 거리에서 터뜨리는 이 한심한 웃음은, 마침 사교계의 누군가가, 혹은 더 나쁘게는 관리 한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받는 충격으로 번번이 끊기곤 했다. “저 자그마한 전보 배달부,” 그는 넌더리를 내는 남작을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내가 저 여자애를 알던 사이인데, 이제는 얌전한 척한다니까, 저 못된 것! 아, 갈르리 라파예트의 저 배달부, 정말 꿈같지 않아! 아이고 저런, 저기 상무부장이 있잖아. 아무것도 못 봤어야 할 텐데. 저 사람은 장관한테 고자질하고도 남을 위인이라, 그랬다간 나를 퇴직자 명단에 올려 버릴 거야. 더구나 저 사람 자신도 그렇다는 소문이니 말이야.” 샤를뤼스 씨는 분노로 말문이 막혔다. 마침내 이 부아 돋우는 산책을 끝내려고, 그는 편지를 꺼내 대사에게 읽으라고 건네기로 했으나, 입조심을 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는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남들이 믿게끔 하려고 샤를리가 질투한다는 시늉을 즐겨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자애로운 태도로 덧붙였다. “우리는 언제나 되도록 말썽을 적게 일으키도록 애써야 하는 법이지.” 쥐피앙의 가게로 돌아가기 전에, 지은이는 이토록 별난 인물들을 그려 낸 것을 두고 어느 독자든 불쾌해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깊이 유감스러울지 한마디 해 두고 싶다. 한편으로 (그리고 이는 이 문제에서 덜 중요한 측면인데), 이 지면에서 귀족 계급이 사회의 다른 계급들에 비해 불균형하게 타락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조금도 놀랄 일은 아니다. 가장 오래된 가문들은 끝내 벌겋고 뭉툭한 코나 일그러진 턱에, 누구나 ‘혈통’이라며 감탄하는 특징적인 표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지며 끊임없이 발달하는 특징들 가운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 곧 성향과 취향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와는 무관하며, 우리는 마땅히 가까이 있는 시정(詩情)에서 진실을 길어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만일 거기에 무슨 근거가 있다면 한결 더 심각한 반론이 될 것이다. 더없이 친숙한 현실에서 길어 낸 예술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영역은 아마 어떤 예술보다도 넓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그 무엇, 우리가 믿는 그 무엇과도 너무나 동떨어져서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하여 아무런 까닭도 조리도 없는 구경거리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어떤 심성에서 비롯된 행위들에서도, 아름다움이라고까지는 못 해도 강렬한 흥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참이다. 자기 함대를 삼켜 버렸다 하여 바다를 매질하라 명한 다레이오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보다 더 시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렐이 자기 매력이 그 처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믿고서, 남작의 그 핀잔을 마치 제 생각인 양 그녀에게 전했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차 한잔 쏜다’는 표현이 재봉사의 가게에서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 마치 날마다 찾아오던 어느 절친한 벗이, 이런저런 까닭으로 다투었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며 집 밖에서만 만나려 하는 통에, 응접실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과 꼭 같았기 때문이다. 샤를뤼스 씨는 ‘차 한잔 쏜다’는 말이 그친 것에 흡족해했다. 그는 그것을 자기가 모렐을 좌지우지한다는 증거로, 그리고 그 처녀의 완벽함에서 유일한 자그마한 흠 하나가 사라진 것으로 여겼다. 요컨대,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다 그렇듯, 그는 모렐과 그에게 거의 약혼한 처지인 그 처녀를 진심으로 아끼며 두 사람의 결혼을 열렬히 옹호하면서도, 제멋대로 이렇다 할 해도 없는 자그마한 소동들을 꾸며 내는 자기 권능을 마음껏 즐겼고, 정작 자신은 그런 소동에서 초연히 벗어나 그 위에, 자기 형만큼이나 올림포스의 신처럼 군림했다.
모렐은 샤를뤼스 씨에게 자기가 쥐피앙의 조카딸을 사랑하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고, 남작은 관대하고 조심스러운 장래의 장인 노릇을 하는 그 방문에 젊은 벗을 따라나서기를 좋아했다. 그에게 그보다 더 흐뭇한 일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 한잔 쏜다’는 말은 모렐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그 젊은 재봉사 처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제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그 표현을 가져다 썼는데, 그것이 자기 고운 말씨와는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고운 말씨와 그에 따르는 사랑스러운 몸가짐, 그리고 샤를뤼스 씨의 후원 덕분에, 그녀가 일해 주던 여러 손님들이 그녀를 벗으로 맞아 저녁 식사에 부르고 자기네 친구들에게 소개하기에 이르렀지만, 처녀는 오직 남작의 허락을 받고 그가 편한 저녁에만 그 초대에 응했다. “젊은 재봉사가 사교계에 받아들여진다고?” 독자는 이렇게 외치리라. “말도 안 되는 소리!” 곰곰이 따져 보면, 한때 알베르틴이 한밤중에 나를 찾아왔던 일이나, 그녀가 지금 내 집에서 살고 있는 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누구에게라면 있을 법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알베르틴에게라면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인 그녀는 어찌나 제멋대로인 생활을 했던지, 나는 처음 발베크에서 그녀를 어느 자전거꾼의 정부로 여겼을 정도였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봉탕 부인뿐이었는데, 부인은 지난날 스완 부인 댁에서 조카에 대해 오직 그 버릇없음만을 감탄해 마지않던 사람이었고, 이제는 눈을 감아 주고 있었으니, 특히 그렇게 함으로써 조카를 부유한 혼처에 시집보내 떼어 낼 수 있고 그 재산의 얼마간이 이모의 주머니로 흘러들 수 있다면 더욱 그러했다 (최상류 사회에서도, 지체 높은 집안 출신이지만 무일푼인 어머니가 아들에게 부유한 신붓감을 찾아 주는 데 성공하면, 젊은 부부에게 자기를 부양하게 하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는 하는 며느리에게서 모피며 자동차며 돈을 선물로 받아 챙기는 법이다).
언젠가는 재봉사들이 사교계에 드나드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나로서는 그것을 조금도 충격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쥐피앙의 조카딸이 예외라 해서 그것이 무슨 셈의 근거가 되어 주지는 못하니,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쥐피앙의 조카딸의 그 지극히 소박한 신분 상승이 더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해도, 모렐은 그 축에 들지 않았다. 그의 아둔함은 어떤 점에서는 어찌나 지독했던지, 자기보다 천 배는 영리하고 어리석은 데라곤 어쩌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뿐인 이 처녀를 ‘좀 모자란 애’라고 딱지 붙였을 뿐 아니라, 그녀를 제 집으로 초대했고 그녀가 조금의 허영도 없이 그 초대에 응한 그 지체 높고 신분 있는 사람들을, 실은 귀부인 행세를 하는 재봉사의 조수들, 협잡꾼 계집들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은 게르망트가 사람들도 아니었고 게르망트가를 아는 사람들조차 아니었으며, 부유하고 멋 부린 중산층 여자들이었으니, 재봉사를 제 집에 부르는 것쯤 수치가 아니라고 여길 만큼 트인 마음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샤를뤼스 남작 각하께서 날마다, 물론 조금의 부정한 뜻도 없이, 찾아 주곤 하는 처녀를 후원한다는 데서 얼마간의 만족을 얻을 만큼 비굴하기도 한 여자들이었다.
남작에게는 이 결혼이라는 생각보다 더 흐뭇한 것이 없었으니, 이렇게 하면 모렐을 자기에게서 빼앗기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쥐피앙의 조카딸은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던 시절에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샤를뤼스 씨는 모렐에게 그녀를 칭찬하면서도, 이 비밀을 벗에게 폭로하기를 서슴지 않았을 법했고, 그러면 모렐은 격노하여 불화의 씨앗이 뿌려졌을 것이다. 샤를뤼스 씨는 지독히 심술궂었지만, 자기 관대함을 증명하려는 양 어떤 남자나 여자를 추어올리면서도, 정작 다툼을 끝낼 수 있는,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 그 다독이는 말은 독을 피하듯 피하는 숱한 선량한 사람들과 닮은 데가 있었다. 그럼에도 남작은 어떤 암시도 하지 않고 참았으니, 거기에는 두 가지 까닭이 있었다. “만약,”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연인이 티 없이 깨끗하지는 않다고 말해 준다면, 그의 자존심이 상해 나한테 화를 낼 테지. 게다가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내가 어찌 장담하겠는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이 지푸라기 불은 머지않아 저절로 다 타 버릴 테고,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내 뜻대로 주무를 수 있을 테니, 그는 내가 허락하는 만큼만 그녀를 사랑하겠지. 그의 아가씨의 지난 과오를 그에게 말해 준다면, 우리 샤를리가 아직도 그녀에게 흠뻑 빠져 있어 질투에 사로잡히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리 되면 나는 내 손으로 해롭지 않고 다스리기 쉬운 연애 놀음을, 감당하기 어려운 진지한 열정으로 바꿔 놓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샤를뤼스 씨는 겉으로만 신중함으로 보이는 침묵을 지켰는데, 그 침묵은 다른 면에서는 갸륵한 것이기도 했으니,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입을 다물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