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 처녀 자신은 매력적이었고, 그녀가 자기가 여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온갖 미적 흥미를 두루 채워 준다고 여긴 샤를뤼스 씨는 그녀의 사진을 수백 장이라도 갖고 싶어 했다. 모렐만큼 어리석지 않았던 그는 그녀를 제 집으로 부른 귀부인들의 이름을 듣고 기뻐했으니, 그의 사교적 본능은 그들이 어떤 자리에 놓이는 사람들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권력을 지키고 싶었기에) 그 일을 샤를리에게는 말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이 점에서는 영락없는 얼간이인 샤를리는, ‘바이올린 반’과 베르뒤랭가 사람들 말고는 오직 게르망트가와, 남작이 꼽아 준 몇몇 거의 왕가에 가까운 가문들만 존재하며, 나머지는 죄다 ‘찌꺼기’나 ‘쓰레기’일 뿐이라고 계속 믿고 있었다. 샤를리는 샤를뤼스 씨의 이런 표현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샤를뤼스 씨가 이 젊은 두 사람의 결혼을 고대하게 만든 여러 까닭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리 되면 쥐피앙의 조카딸이 어떤 의미에서 모렐이라는 인격의 연장(延長)이 되고, 따라서 남작이 모렐에게 미치는 권력과 그에 대한 앎의 연장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의 의미로 그 바이올리니스트의 장래 아내를 ‘배신’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샤를뤼스 씨는 조금의 거리낌을 느낄 생각조차 한순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무를 ‘젊은 부부’를 거느린다는 것, 모렐 아내의 두렵고 전능한 보호자가 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은, 만일 그녀가 남작을 신처럼 떠받든다면 그것은 모렐이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 넣었음을 증명하는 셈이고 따라서 그녀 안에 모렐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셈이 되니, 이는 샤를뤼스 씨의 지배 형태에 새로운 변주를 더해 주었고, 그의 ‘피조물’인 모렐 속에서 또 하나의 피조물을, 다시 말해 남작이 그에게서 사랑할 색다르고 새롭고 진기한 무언가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어쩌면 이 지배는 이제껏 어느 때보다도 강해질 터였다. 이를테면 벌거벗은 채인 모렐 혼자일 때는, 언제든 다시 남작을 손아귀에 넣을 자신이 있었기에 곧잘 남작에게 맞섰지만, 일단 결혼하고 나면 제 가정과 제 집과 제 앞날에 대한 생각이 그를 한결 빨리 겁먹게 할 테고, 그리하여 그는 샤를뤼스 씨의 욕망에 더 넓은 표면, 더 붙잡기 쉬운 손잡이를 내어 주게 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아가 달리 할 일이 없어 따분한 저녁이면 부부 사이에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마저도 (남작은 싸움을 그린 그림을 결코 마다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흐뭇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 젊은 부부가 자기에게 매인 처지로 살아가리라는 생각만큼 흐뭇하지는 않았다. 샤를뤼스 씨가 모렐에게 품은 사랑은 그가 속으로 이렇게 되뇔 때 감미로운 새로움을 얻었다. “그의 아내 또한 그가 내 것이듯 꼭 그만큼 내 것이 되리라. 두 사람은 늘 나를 언짢게 하지 않으려 조심할 테고 내 변덕에 고분고분 따를 테니, 그리하여 그녀는 (이제껏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어떤 표징이 되리라. 내가 거의 잊고 있던, 그러나 내 마음에 그토록 소중한 것, 곧 온 세상에게,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재워 준다는 것을 보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모렐이 내 것이라는 표징 말이다.” 세상의 눈에도 자기 자신의 눈에도 드러나는 이 증거야말로 무엇보다 샤를뤼스 씨를 기쁘게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는 일은 사랑 그 자체보다 더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 소유를 세상에 숨기는 사람들은 흔히 오직 그 사랑하는 대상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그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이 조심스러운 함구로 인해 줄어든다.
독자는 모렐이 언젠가 남작에게, 자기의 큰 야심은 어떤 젊은 처녀를, 그것도 바로 이 처녀를 유혹하는 것이며, 그 일을 이루려고 그녀에게 결혼을 약속했다가 몹쓸 짓을 저지르고 나면 ‘내빼 버리겠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고백을, 샤를뤼스 씨는 모렐이 찾아와 쏟아 놓은 쥐피앙의 조카딸에 대한 사랑 고백에 묻혀 잊고 말았다. 게다가 모렐 자신도 그것을 까맣게 잊었을 가능성이 컸다. 모렐의 본성과, 그 본성이 다시 그를 사로잡게 될 순간 사이에는 어쩌면 실제로 어떤 간극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냉소적으로 인정했던, 어쩌면 교묘하게 부풀리기까지 했던 그 본성 말이다. 그 처녀와 더 가까워지면서 그녀는 그의 마음을 끌었고, 그는 그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어찌나 몰랐던지, 필시 자기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어쩌면 정말로 언제까지나 그녀를 사랑하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그의 처음 욕망, 그 범죄적 의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숱한 감정의 겹으로 덧칠되어 있었기에, 이 사악한 욕망이 자기 행동의 참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해도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진심이 아니었으리라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더구나 그가 스스로에게 실제로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이 결혼을 필요한 것으로 여긴 짧은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모렐은 손에 심한 경련을 앓고 있어서,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예술을 제외한 모든 일에서 놀랄 만큼 게을렀던 그에게는 누가 자기를 먹여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눈앞에 어른거렸는데, 그는 그 사람이 샤를뤼스 씨보다는 쥐피앙의 조카딸이기를 바랐다. 이 편이 그에게 더 큰 자유를, 그리고 더 폭넓은 여자들의 선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갈리는 견습공 처녀들, 쥐피앙의 조카딸을 시켜 자기를 위해 타락시키게 할 그 처녀들에서부터, 그가 조카딸을 팔아넘길 부유하고 아름다운 귀부인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자기 장래의 아내가 이런 짓거리에 몸을 내맡기기를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녀가 그토록 고약할 수 있다는 것은 모렐의 셈속에 한순간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경련이 멎은 지금, 그런 궁리들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순수한 사랑이 차지했다. 그의 바이올린이면, 게다가 샤를뤼스 씨가 주는 수당까지 더하면 넉넉할 터였고, 자기가 그 처녀와 결혼하고 나면 남작이 그에게 내거는 요구도 분명 줄어들 것이었다. 결혼은 급한 일이었으니, 그의 사랑 때문에도, 그리고 그의 자유를 위해서도 그러했다. 그는 쥐피앙에게 정식으로 청혼했고, 쥐피앙은 조카딸의 뜻을 물었다.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를 향한 처녀의 열정은, 그녀가 머리를 풀어 내렸을 때의 머리카락처럼, 반짝이는 두 눈의 기쁨처럼, 그녀 둘레에 넘쳐흘렀다. 모렐에게는 자기에게 유쾌하거나 이로운 것이면 거의 무엇이든 도덕적인 감정과 그에 걸맞은 말들을 불러일으켰고, 때로는 그를 눈물짓게까지 했다. 그러니 그가 쥐피앙의 조카딸에게 감상에 흠뻑 젖은 말들을 건넨 것은, 만일 그에게 그런 말을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진심에서였다 (완전한 게으름의 삶을 고대하는 그 숱한 젊은 귀족들이 중산층 백만장자의 어느 사랑스러운 딸에게 건네는 말들 또한 그처럼 감상적이다). 그 말들은, 그가 샤를뤼스 씨에게 처녀 하나를 유혹해 순결을 빼앗겠노라 늘어놓았던, 구제 불능의 비열함에 흠뻑 젖어 있던 그 말들만큼이나 감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향한 이 갸륵한 열의와, 그가 그녀와 맺은 엄숙한 약속에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에게 더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게 되는 순간, 혹은 이를테면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그에게 언짢음을 안기는 순간, 그녀는 대번에 반감의 대상이 되었고, 그는 제 눈에는 그 반감을 정당한 것으로 여겼으며, 어떤 신경쇠약성 발작을 겪고 나서 신경 계통의 균형이 회복되자마자, 순전히 덕(德)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기가 어떤 의무에서도 벗어났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곤 했다. 그리하여 발베크 체류가 끝나 갈 무렵, 그는 어쩌다 가진 돈을 몽땅 잃고 말았는데, 그 일을 감히 샤를뤼스 씨에게 말하지는 못하고 손 벌릴 만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그 아버지는 동시에 그에게 결코 ‘빌붙어 사는 자’가 되지 말라고 금해 두었다) 이런 처지에서는 돈을 빌리려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긴히 사업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사업상 만나 뵙기를 청한다’고 하는 것이 옳은 방법임을 배웠던 것이다. 이 마법의 문구가 어찌나 모렐을 사로잡았던지, 내 생각에 그는 오직 ‘사업상’ 만남을 청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돈을 잃는 것도 기꺼워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는 이 문구가 자기가 여긴 만큼의 효험을 지니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편지 한 통 쓰지 않았을 어떤 사람들이, ‘사업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그의 편지를 받고도 오 분 안에 답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아챘다. 오후가 다 가도록 답장을 받지 못하면, 좋게 해석하자면 편지를 받은 그 신사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거나 써야 할 다른 편지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예 집을 떠나 있거나 병이 났거나 그 비슷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다 뜻밖의 행운으로 모렐이 이튿날 아침 만남을 허락받으면, 그는 자기가 점찍은 채권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붙이곤 했다. “답장이 없으셔서 저는 꽤 놀랐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나 걱정했지요, 이렇게 정정하신 걸 뵈니 다행입니다,” 어쩌고저쩌고. 자, 그런데 발베크에서 그는, 자기가 그에게 ‘사업’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은 내게 하지 않은 채, 바로 한 주 전에 기차 안에서 자기가 그토록 불쾌하게 굴었던 그 블로크에게 자기를 소개해 달라고 내게 청했다. 블로크는 그에게 오천 프랑을 빌려주기를,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니심 베르나르 씨에게서 빌려다 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모렐은 블로크를 떠받들었다.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어떻게 그 은혜를 갚아 보일 수 있을까 자문했다. 결국 내가 그를 대신해 샤를뤼스 씨에게 다달이 천 프랑씩을 청하는 일을 떠맡았는데, 그는 그 돈을 곧바로 블로크에게 보내 줄 참이었고, 그리하면 블로크는 꽤 짧은 기간 안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게 될 터였다. 첫 달에는 모렐이 아직 블로크의 너그러움에 감격해 있어서 그 천 프랑을 즉시 보냈지만, 그 뒤로는 필시 남은 사천 프랑을 다르게 쓰는 편이 자기에게 더 흡족하리라 여겼던지, 블로크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블로크를 보기만 해도 그의 머릿속은 음험한 생각으로 가득 찼는데, 블로크 자신이 모렐에게 빌려준 정확한 액수를 잊고서 사천 프랑 대신 삼천오백 프랑을 갚으라고 하는 바람에, 그러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오백 프랑이 남는 셈이었건만, 모렐은 이토록 터무니없는 사기를 보아하니 자기는 한 상팀도 더 갚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기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 것만도 채권자로서는 크나큰 행운으로 여겨야 할 것이라는 태도로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는 블로크와 니심 베르나르 씨가 자기를 탓할 까닭이 없다고 우기는 데 그치지 않고, 이내 자기가 그들을 탓하지 않는 것만도 그들로서는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까지 떠들어 댔다. 급기야 니심 베르나르 씨가 티보의 연주도 모렐만큼 훌륭하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돌자, 모렐은 그런 말이 자기 직업상 자기에게 해를 끼치려는 수작이라며 이 일을 법정으로 끌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러다가는 프랑스에 더는 정의라고는 없으니, 특히 유대인을 상대로는 더욱 그러하다며 (모렐에게 반유대주의란 어느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오천 프랑을 빌린 데서 온 당연한 결과였다) 장전한 권총 없이는 결코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뜨거운 애정 뒤에 이어지는 이와 비슷한 신경질적 반응이, 머지않아 그 재봉사의 조카딸을 두고 모렐에게 일어날 참이었다. 사실 이 변화에는 샤를뤼스 씨가 어느 정도 자기도 모르게 한몫했을 수 있으니, 그는 한순간도 진심이 아니면서 그저 두 사람을 놀리려고, 일단 그들이 결혼하고 나면 다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제 날개로 날아가도록 내버려 두겠노라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 자체는 모렐을 그 처녀에게서 떼어 놓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의 마음속에 도사린 채, 때가 되면 그와 비슷한 다른 생각들과 결합할 채비를 하고 있었으니, 일단 그 화합물이 만들어지면 강력한 파괴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샤를뤼스 씨와 모렐을 마주칠 운명이었던 적은 그리 잦지 않았다. 내가 공작부인 곁을 떠날 무렵이면 그들은 이미 쥐피앙의 가게로 들어가 버린 때가 많았으니, 그녀와 함께 있는 데서 얻는 즐거움이 어찌나 컸던지 나는 알베르틴이 돌아오기에 앞서 조바심치던 기다림은 물론이고 그녀가 돌아올 시각마저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게르망트 부인 댁에서 어정거리던 다른 날들과는 따로 떼어 두고 싶은 하루가 있으니, 그날은 사소한 사건 하나로 유난했는데, 그 사건의 잔혹한 의미를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날 오후, 게르망트 부인은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줄 알고서, 남부 지방에서 그녀에게 보내온 라일락 가지 몇 개를 내게 주었다. 공작부인 곁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올라가 보니 알베르틴은 이미 돌아와 있었고, 계단에서 나는 앙드레와 마주쳤는데, 그녀는 내가 집으로 가져오는 그 꽃들의 짙은 향내에 괴로워하는 듯했다.
“아니, 벌써 돌아왔어요?” 내가 말했다. “방금 왔어요. 그런데 알베르틴이 편지 쓸 게 있다며 저를 돌려보냈어요.” “혹시 그 애가 무슨 딴짓을 꾸미는 건 아닐까요?” “천만에요, 아마 이모한테 편지를 쓰는 걸 거예요. 그런데 그 애가 짙은 향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잖아요, 저 라일락을 보면 그리 반가워하지 않을걸요.” “내가 어리석었군요! 프랑수아즈한테 저걸 뒷계단에 내놓으라고 해야겠어요.” “그렇다고 알베르틴이 당신한테 밴 그 냄새를 못 알아챌 것 같아요? 내 생각엔 월하향 다음으로 어떤 꽃보다도 향이 짙은 게 저거예요. 아무튼 프랑수아즈는 장 보러 나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렇다면, 나한테 열쇠가 없으니 어떻게 들어가지요?” “아, 그냥 초인종을 누르면 돼요. 알베르틴이 열어 줄 테니까요. 게다가 프랑수아즈도 지금쯤이면 돌아왔을지 몰라요.”
나는 앙드레와 작별했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기가 무섭게 알베르틴이 문을 열러 나왔는데, 그러기가 수월찮았으니, 프랑수아즈는 나가고 없는 데다 알베르틴은 어디서 불을 켜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는 나를 들여보낼 수 있었지만, 라일락 향내에 그만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갔는데, 그 바람에 나의 연인은 편지를 미처 끝맺지 못한 채 (왜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방으로 건너가 거기서 나를 부르고 내 침대에 몸을 누일 겨를을 얻었다. 그때조차도, 바로 그 순간에는, 나는 이 모든 것에서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은 구석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기껏해야 좀 뒤숭숭한 정도였을 뿐, 어쨌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앙드레와 함께 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고, 불을 꺼 버리고, 제 침대가 흐트러진 꼴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 내 방으로 건너가고, 편지 쓰기에 바쁜 척함으로써 잠깐의 여유를 스스로 낚아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중에 다시 보게 될 터인데, 그 진상을 나는 끝내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체로, 이 하나의 동떨어진 사건을 빼면, 내가 공작부인을 찾아보고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아주 평온했다. 알베르틴은 내가 저녁 식사 전에 자기와 함께 나가고 싶어 할지 어떨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현관에서 으레 그녀의 모자와 외투와 우산을 발견하곤 했는데, 필요할 때를 대비해 그녀가 거기 놓아둔 것이었다. 문을 열고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집 안의 공기는 다시 숨 쉴 만한 것이 되었다. 나는 희박한 공기 대신 행복이 그 안을 채우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우울에서 구원받았고, 이 하찮은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 알베르틴을 소유한 듯한 기분이 들어, 그녀를 맞으러 달려갔다.
게르망트 부인 댁으로 내려가지 않는 날이면, 나의 연인이 돌아오기 전 한 시간 동안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려고, 나는 엘스티르의 화집이며 베르고트의 책 한 권, 뱅퇴유의 소나타를 집어 들곤 했다.
그리하여, 눈이나 귀에만 호소하는 듯한 예술 작품이라도 우리가 그것을 즐기려면 깨어난 지성이 그 감각 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듯,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래전, 그녀를 알기도 전에 알베르틴이 내 안에 불러일으켰던, 그러나 일상의 관습에 짓눌려 잦아들었던 꿈들을 내 안에서 끌어냈다. 나는 그 꿈들을 작곡가의 악절이나 화가의 형상 속에 도가니에 붓듯 쏟아 넣었고, 혹은 그것으로 내가 읽고 있던 책을 풍요롭게 했다. 그리하여 분명 책은 그만큼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알베르틴 자신도 그에 못지않은 이득을 보았으니, 이렇게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두 세계 가운데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옮겨져, 같은 대상을 번갈아 놓아둘 수 있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물질의 짓누르는 무게에서 벗어나 정신의 유동하는 공간 속에서 자유로이 노닐게 된 것이다. 나는 문득 한순간 이 성가신 처녀에게 뜨거운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엘스티르나 베르고트의 작품 같은 모습을 띠었고, 나는 상상과 예술의 원근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한때의 열광을 느꼈다.
이윽고 누군가 와서 그녀가 돌아왔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내가 혼자가 아닐 때, 이를테면 방에 블로크가 함께 있을 때에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지시가 상시로 내려져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블로크를 좀 더 붙들어 두어 그가 현관에서 내 애인과 마주칠 위험이 없도록 했다. 나는 그녀가 이 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내가 이 집에서 그녀를 만난다는 사실조차 숨겼으니, 친구들 가운데 누군가 그녀에게 반해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거나, 복도나 현관에서 잠깐 스치는 사이에 그녀가 눈짓을 보내 밀회를 약속하지나 않을까 그토록 두려웠던 것이다. 이윽고 나는 알베르틴이 제 방으로 가는 길에 스치는 페티코트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러운 성정에서, 그리고 우리가 라 라스플리에르로 저녁을 먹으러 가곤 하던 때 내게 질투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 애쓰던 그 마음에서, 그녀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고 내 방으로 오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듯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기억해 냈다. 나는 예전에 다른 알베르틴을 알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는 또 다른 여자로, 오늘의 알베르틴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해 내가 탓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저 친구 사이였을 때 그녀가 처음에는 스스럼없이, 이윽고 마음먹고 내게 털어놓곤 하던 고백들은,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의심하게 되자, 혹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못하더라도 내 안에 알고자 하고 그 앎에 괴로워하며 더 알아내려 드는 심문관 같은 감정이 있음을 눈치채자, 더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내게 모든 것을 감췄다. 드문 일이기는 했으나,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여겨지면 그녀는 내 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한때는 내가 어떤 처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토록 반짝이던 눈으로 이러던 그녀였다. “그 여자를 여기 데려와 봐요. 나도 만나 보고 싶어.” “하지만 그 여잔 당신 말로 하면 품행이 좋지 않던데.” “그야 그러니까 더 재미있죠.” 그 무렵이라면 나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작은 카지노에서 그녀가 앙드레의 가슴에서 제 가슴을 뗐을 때, 나는 그것이 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코타르가 있어서였다고 믿는다. 코타르라면 자기 평판을 더럽힐 수도 있다고 그녀는 필시 여겼으리라. 그렇지만 그때조차 그녀는 이미 ‘굳기’ 시작하여, 흉금을 터놓는 말은 더는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않았고 몸짓은 조심스러워졌다. 그 뒤로 그녀는 내 마음을 흔들 만한 것은 죄다 자기에게서 벗겨 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자기 삶의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해한 성격을 입혔고, 나의 무지가 그 무해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공범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변모가 완성되어, 내가 혼자가 아니면 그녀는 곧장 제 방으로 갔는데, 이는 나를 방해할까 두려워서만이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있든 상관하지 않음을 내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한 가지, 그녀가 다시는 나를 위해 하지 않을 일이 있었으니, 그것을 하더라도 내 마음이 무덤덤했을 그 시절이었다면 바로 그 이유로 그녀가 망설임 없이 했을 그것, 곧 내게 소상한 고백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재판관처럼, 범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정말로 설명 못 할 것도 아닌 말실수에서 막연한 결론을 끌어내야 할 처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내가 질투하며 자기를 판단하고 있음을 느낄 터였다.
알베르틴의 발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그날 저녁 다시 나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위안 어린 기쁨을 느끼면서, 나는 한때 도무지 알고 지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이 처녀에게 이제 날마다 집에 돌아오는 일이 곧 내 집에 들어오는 일과 다름없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생각했다. 발베크에서, 그녀가 호텔로 자러 왔던 그날 밤, 신비와 관능이 뒤섞인 채 덧없고 조각난 형태로 느꼈던 그 기쁨이 이제 완성되고 안정되어, 여태 텅 비어 있던 내 거처를, 복도까지 스며드는 가정적인, 거의 부부다운 안온함의 항구한 저장고로 가득 채웠으니, 나의 모든 감각은 능동적으로든, 혼자 있을 때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상상 속에서든, 그것을 조용히 탐식했다. 알베르틴의 방문이 그녀 뒤로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면, 나는 친구가 함께 있을 경우 서둘러 그를 돌려보냈고, 그가 계단에 완전히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서야 놓아주었으며, 몇 걸음쯤은 배웅하러 내려가기도 했다. 그는 내게 감기 들겠다고 일러 주며, 우리 집이 정말이지 얼음장 같고 바람굴 같아서 돈을 준대도 살지 않겠다고 했다. 이 추운 날씨는 막 시작된 참이라 아직 익숙지 않아 다들 불평거리로 삼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내 안에 어떤 기쁨을 풀어놓았으니, 지난날 시골에서 돌아와 잊고 지낸 파리의 즐거움과 다시 이어지려고 카페콩세르에 가곤 하던 겨울 첫 저녁들의 무의식적 기억이 그 기쁨에 어려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에게 작별을 고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섰다. 여름은 새들을 데리고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다른 악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블로크가 그토록 성토하던, 우리 집 아귀 안 맞는 문틈으로 기분 좋게 휘파람 소리를 내며 새어 드는 그 얼음장 같은 바람을, 나는 (여름 화창한 날들을 숲의 새들이 맞이하듯) 프라그송이나 마욜, 폴뤼스의 노래 가락을 걷잡을 수 없이 흥얼대며 열렬히 맞이했다. 복도에서 알베르틴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나 옷 벗는 동안 앙드레를 당신한테 보낼게요. 잠깐 인사하러 들렀거든요.” 그러고는 발베크에서 내가 준 친칠라 토크에서 흘러내린 커다란 회색 베일을 여전히 두른 채, 그녀는 내게서 돌아서 제 방으로 갔다. 마치 내가 그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겨 둔 앙드레가 이제 곧 그날의 일들을 낱낱이 늘어놓으며, 아는 누군가와 마주친 일까지 이야기해, 온종일 걸린 그 나들이, 내가 도무지 그려 볼 수 없던 그 나들이가 이루어진 막연한 지대에 얼마간 또렷한 윤곽을 그려 주리라는 것을 알아챈 듯이. 앙드레의 결점들은 더 뚜렷해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알았을 때만큼 유쾌한 벗이 아니었다. 이제 겉으로도, 알베르틴과 내가 즐거워하는 무언가를 내가 언급하기만 하면 바다의 너울처럼 이는 씁쓸한 불안 같은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앙드레가 다른 더 붙임성 있는 이들보다 나를 덜 다정하게 대하거나 덜 좋아한 것은 아니어서, 나는 그 점을 여러 번 확인했다. 그러나 어떤 이의 얼굴에 떠오른 아주 사소한 행복의 기색이라도 자기가 준 것이 아니면, 문을 쾅 닫는 소리만큼이나 불쾌하게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자기와 무관한 고통은 견뎌도 즐거움은 견디지 못했다. 내가 몸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그녀는 마음 아파하고 나를 딱하게 여기며 곁에 남아 간호라도 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책을 덮으며 흐뭇한 낯으로 기지개를 켜고 “아! 이 재미난 책 덕에 정말 즐거운 오후를 보냈어” 하고 말하는, 그 정도로 하찮은 만족이라도 내비치면, 어머니나 알베르틴이나 생루라면 기뻐했을 그 말이 앙드레에게는 일종의 못마땅함, 어쩌면 그저 신경질적인 짜증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나의 만족은 그녀에게 감출 수 없는 언짢음을 안겼다. 이런 결점들에 더해 더 심각한 것들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경마와 골프에는 그토록 밝으면서 다른 일에는 그토록 무식한 그 젊은이 이야기를 꺼내자, 앙드레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 아버지가 사기꾼인 거 알아요? 하마터면 기소될 뻔했다니까요. 요즘 그 집안은 어느 때보다 으스대지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길 해요. 그 사람들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라도 하면 좋겠어요. 증인석에 서면 내가 아주 근사할 텐데!”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앙드레도 그 사실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 아들이 자기를 깔본다고 여겨, 그를 난처하게 하고 망신 줄 거리를 찾다가, 법정에서 자기가 증언하게 되리라 상상하는 긴 이야기를 지어냈고, 그 세부를 스스로 되뇌다 보니 어쩌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이제는 의식하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같은 상태의 그녀를, (그 덧없고 어리석은 증오심을 빼고 보더라도)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그 심술궂은 과민함, 그녀의 더 따뜻하고 나은 천성을 거칠고 차가운 띠로 옥죄는 그 과민함 때문에라도. 그러나 오직 그녀만이 내 애인에 관해 줄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흥미로워서, 그것을 얻을 이토록 드문 기회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앙드레가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알베르틴이 내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아는 처녀를 만났다는 것이다. “무슨 얘길 했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알베르틴이 혼자가 아니길래, 그 틈에 나가서 털실을 좀 샀거든요.” “털실을 샀다고?” “네, 알베르틴이 사다 달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더더욱 가지 말았어야지, 어쩌면 당신을 떼어 놓으려는 수작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 사다 달라고 했는걸요.” “아!” 나는 다시 숨을 돌리며 대답했다. 이내 의심이 되살아났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녀가 미리 그 친구와 약속을 잡아 두고, 때가 되면 혼자 남을 구실을 마련해 두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앙드레가 늘 내게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나의 예전 가설이 옳지 않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한통속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란, 발베크에서 나는 혼잣말하곤 했는데, 그 행동이 오히려 우리 질투를 돋우는 사람에게 우리가 느끼는 것이며, 그녀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만 하면 어쩌면 우리는 쉽사리 그 사랑에서 낫게 될지도 모른다. 질투로 괴로워하는 자가 아무리 교묘하게 질투를 감춘들, 그것을 불러일으킨 여자는 이내 알아채고, 때가 오면 그녀 또한 못지않게 교묘해진다. 그녀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것의 자취에서 우리를 따돌리려 하고, 또 성공한다. 아무 경계도 없는 남자에게 무심코 흘린 한마디가 그 밑에 깔린 거짓을 어찌 드러내겠는가? 우리는 그 말을 나머지 말들과 구별하지 못한다. 두려움 속에 뱉어진 그 말을 우리는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흘려듣는다. 나중에 혼자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말로 돌아가고, 그것이 사실과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기는 한가? 마치 어떤 신경증에서 문을 잠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쉰 번째에도 첫 번째나 다름없고, 정확하고 후련한 기억이 따라오지 않는 채 그 행동을 한없이 되풀이할 수 있을 것만 같듯이, 그 말과 우리 기억의 정확성을 두고 그런 종류의 불확실함이 저절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듯하다. 어쨌든 우리는 쉰한 번째로 다시 문을 닫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불안케 하는 말은, 우리가 되풀이할 수 없는, 불완전하게 들었던 그 형태 그대로 과거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 다른 말들에 주의를 쏟고, 우리가 구하지 않는 유일한 처방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어 더는 알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