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의 사랑
베르뒤랭가의 ‘작은 핵심’, ‘작은 무리’, ‘작은 패거리’에 받아들여지려면 조건은 하나로 충분했으나, 그 하나만은 없어서는 안 되었다. 하나의 신조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야 했는데, 그 신조의 한 조항인즉, 그해 베르뒤랭 부인이 자신의 후원 아래 거둔 젊은 피아니스트가, 그녀가 “정말이지, 저렇게까지 바그너를 잘 치다니 금지해야 마땅해!”라고 말하던 그 피아니스트가, 플랑테와 루빈스타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고, 또한 코타르 박사가 포탱보다 더 빼어난 진단의(診斷醫)라는 것이었다. 베르뒤랭 부부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보내는 저녁이 도랑물처럼 따분하다는 것을 납득시키지 못한 “새 신참”은 누구든 곧바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점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반항적이어서, 세속적 호기심 일체와, 다른 응접실이 이따금 그만큼 재미있지 않을까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좀처럼 버리지 못했고, 게다가 베르뒤랭 부부는 이 비판적 기질과 이 경박의 악령이 전염되어 작은 교회의 정통 신앙을 치명적으로 해칠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단골들” 가운데 여자인 이들을 하나하나 내쫓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의 젊은 아내를 빼면, 그해 이들의 여성 무리는 거의 오로지 두 사람으로 줄어 있었다. 하나는 거의 “어떤 부류”에 속하다시피 한 젊은 여인, 곧 드 크레시 부인으로, 베르뒤랭 부인은 그녀를 세례명 오데트로 부르며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일컬었고, 다른 하나는 피아니스트의 이모로, 한때 “초인종에 응해 문을 열어주던”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베르뒤랭 부인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착실한” 여자였고, 지나치게 부유하되 전혀 두드러질 것 없는 점잖은 중산층 집안 출신이었으나, 그 집안과는 차츰 스스로 나서서 모든 연을 끊어버린 터였다.) 세상 물정에 아주 어두운 이 부인들은, 사교적 순박함 탓에, 사강 대공비나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만찬에 사람을 불러 앉히려면 다른 가엾은 이들에게 큰돈을 치러야 한다고 곧이곧대로 믿었으므로, 누군가 그 두 귀부인 가운데 한 집의 초대를 주선해 주겠노라 나섰던들, 이 늙은 문지기 여자와 “몸가짐이 헤픈” 여자는 경멸하듯 마다했을 것이었다.
베르뒤랭 부부는 결코 사람을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 집에는 그저 당신의 “자리가 차려져” 있을 따름이었다. 저녁 여흥에 정해진 순서란 결코 없었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했지만 오직 마음이 내킬 때뿐이었으니, 아무도 무엇 하나 억지로 시키는 법이 없었고, 베르뒤랭 씨의 말버릇대로였다. “여기선 다들 친구지요. 마음대로 하는 자유의 집이랍니다!”
피아니스트가 ‘발키리의 기행’이나 ‘트리스탄’ 전주곡을 치겠다고 하면, 베르뒤랭 부인은 그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격렬한 인상을 준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 나더러 또 두통을 앓으란 말이지? 저 사람이 저걸 칠 때마다 어김없이 그렇다는 걸 잘 알잖아요. 무슨 꼴을 당할지 뻔하지. 내일 일어나려 하면, 어림도 없을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지 않을 때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벗들 가운데 하나가, 대개는 그해 그 집에서 총애받던 화가가, 베르뒤랭 씨의 표현대로 “다들 배꼽을 쥐게 하는 지독하게 우스운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놓곤” 했다. 특히 베르뒤랭 부인이 그러했으니, 자기 감정을 비유로 늘어놓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버릇이 어찌나 심했던지, 마침 이제 막 일반 진료를 시작한 코타르 박사가 “너무 웃어대다 어긋나버린 그녀의 턱을 정말이지 언젠가 와서 맞춰줘야” 할 지경이었다.
정장 차림은 금지였으니, 다들 “좋은 동무들”인 만큼, 역병처럼 피해야 할 “따분한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이들은 되도록 드물게 여는 큰 야회에만, 그것도 화가를 즐겁게 하거나 음악가의 이름을 더 알리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불렀다. 그 밖의 시간에는 제스처 놀이를 하고 분장 차림으로 밤참을 들며 아주 즐거웠으니, 작은 “패거리”에 낯선 요소를 섞어 넣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좋은 동무들”이 베르뒤랭 부인의 삶에서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해 가면서, “따분한 자들”, “성가신 자들”의 범위도 넓어져, 벗들을 그녀에게서 떼어놓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누구든 다 여기에 들게 되었다. 벗들이 때때로 “선약이 있다”고 핑계 대게 만드는 것들, 이를테면 누구의 어머니, 또 누구의 직업상 의무, 또 다른 누구의 “시골 별장” 같은 것들 말이다. 코타르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섭게, 중태에 빠진 어느 환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작별 인사를 하려 들면, “글쎄요” 하고 베르뒤랭 부인은 말하곤 했다. “오늘 저녁 다시 가서 그 환자를 들쑤셔 놓지 않는 편이 그이에게 훨씬 나을 게 분명해요. 선생님 없이도 밤을 잘 넘길 거예요. 내일 아침 일찍 가 보시면 다 나아 있을 테고요.” 12월 초부터 그녀는 “단골들”이 성탄절과 새해 첫날에 자기를 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병이 날 지경이었다. 피아니스트의 이모는 새해 첫날에 그가 어머니 집의 가족 만찬에 꼭 자기를 데려가야 한다고 우겼다.
“설마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답디까,” 하고 베르뒤랭 부인이 씁쓸하게 내쏘았다. “새해 첫날에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안 든다고 해서, 무슨 시골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성주간이 되자 그녀의 불안은 다시 불붙었다. “자, 박사님, 박사님은 분별 있고 활달한 분이시니, 물론 성금요일에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시겠지요?” 작은 “핵심”이 생긴 첫해에 그녀는 코타르에게, 그의 대답에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 크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며 그녀는 떨었으니, 그가 오지 않으면 자기 혼자 저녁을 들어야 할 처지에 놓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성금요일에 가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드리러요. 저희는 오베르뉴에서 휴일을 보낼 참이거든요.”
“오베르뉴에서요? 벼룩이며 온갖 벌레에게 뜯기러 가시게요! 그런다고 무슨 득이 될까요!” 그러고는 자못 엄숙하게 뜸을 들이더니, “진작 말씀해 주셨다면, 우리도 한 무리를 꾸려서 다 함께 편안히 그리로 갈 궁리를 해 봤을 텐데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단골” 가운데 누군가에게 벗이 있거나 부인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젊은 남자가 있어, 그 때문에 이따금 저녁 모임에 빠지게 될 성싶으면, 베르뒤랭 부부는, 여자가 애인을 두는 것을 조금도 겁내지 않았으니, 다만 그 애인을 자기네 무리 안에서 두고 자기네 무리 안에서 사랑하며 그 애인을 자기네 무리보다 더 좋아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좋아요, 벗을 데려오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되었다. 베르뒤랭 부인에게 아무 비밀도 두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작은 “패거리”에 들 만한 자질이 있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를 데려온 단골은 한쪽으로 불려 가, 그 벗이나 정부와 다투도록 넌지시 부추김을 받았다. 그러나 시험 결과가 흡족하면, 그 새 사람도 이번엔 “단골”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그해에, 그 화류계 여인이 베르뒤랭 씨에게 아주 매력적인 신사 스완 씨와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가 이 집에 와도 좋다는 허락을 몹시 바란다고 넌지시 비쳤을 때, 베르뒤랭 씨는 곧바로 그 청을 아내에게 전했다. 그는 아내가 어떤 일에 의견을 정하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의견을 세우지 않았으니, 그의 특별한 소임이란 아내의 뜻과, 대체로 “단골들”의 뜻을 받들어 실행하는 것이었고, 그 일을 그는 끝없는 재간으로 해냈다.
“여보, 드 크레시 부인이 당신한테 할 말이 있다는구려. 자기 벗 하나를 여기 데려오고 싶다는데, 스완 씨라는 사람이오. 어떻게 하겠소?”
“아니, 저렇게 앙증맞은 완벽 그 자체한테 누가 무엇 하나 마다할 수 있겠어요. 가만있어요, 당신 의견을 물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당신은 완벽 그 자체라니까요.”
“좋으실 대로 하죠,” 오데트가 새치름한 말투로 대꾸하고는 이렇게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칭찬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래요, 좋아요. 벗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데려와요.”
그런데 “작은 핵심”과 스완이 드나들던 사교계 사이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으므로, 순전히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그토록 남다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처지에, 굳이 베르뒤랭가에 소개받으려 애쓸 값어치가 거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스완은 어찌나 열렬한 연애가였던지, 일단 귀족 사회의 거의 모든 여인들과 알고 지내게 되고, 그들이 그에게 알려줄 만한 것을 죄다 가르쳐 준 뒤로는, 포부르 생제르맹이 그에게 베풀어 준, 거의 귀족 증서나 다름없던 그 귀화 증서를, 그저 그 자체로는 값어치 없는 양도 가능한 채권, 아무 실질도 없는 신용장쯤으로밖에 여기지 않게 되었다. 시골의 어느 후미진 구석이나 파리의 어느 이름 없는 동네에서, 그곳 지주나 변호사의 어여쁜 딸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스스로 지위 하나를 즉석에서 지어낼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채권 말이다. 그런 때면 욕망이, 아니 사랑 그 자체가, 그의 일상생활에서는 이제 말끔히 벗어난 허영심을 그의 마음속에 되살려 놓았으니, 그 허영심이야말로, 두말할 것 없이, 애초에 그를 사교계 명사의 길로 떠민 바로 그 감정이었다. 그 길에서 그는 자기 지적 재능을 하찮은 오락에 탕진하고, 예술에 관한 해박함이라고는 사교계 부인들에게 어떤 그림을 사고 집을 어떻게 꾸밀지 조언하는 데나 써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허영심 때문에 그는, 잠시 자기 마음을 사로잡은 낯선 미인 앞에서, 스완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내뿜지 못하는 광채로 빛나 보이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 낯선 미인이 미천한 처지에 있을 때 그 갈망은 가장 컸다. 지적인 사람이 저를 바보로 여길까 봐 두려워하는 상대가 다른 지적인 사람이 아니듯이, 사교계 명사가 자기 사교적 값어치를 얕잡힐까 봐 두려워하는 상대도 대귀족이 아니라 촌뜨기나 “막돼먹은 자들”이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저 자신의 값어치만 깎아내리는 데 이바지했을 뿐인 사람들이 부려온 온갖 잔재주와 사방에 뿌려온 사교적 거짓말의 태반은 아랫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작부인과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처신하던 스완도, 그 공작부인의 하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멸시당할까 두려워 벌벌 떨며 대뜸 허세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기력이 부족해서든, 아니면 자신의 사회적 위세가 지운 의무 탓에 삶이라는 강물의 강기슭 어느 한 지점에 배처럼 붙박여 있어야 한다는 체념 어린 자각에서든, 죽는 날까지 붙박여 있을 그 지점 위아래로 주어지는 즐거움을 마다한 채, 끝내는 더 나은 것이 없으니 그 어중간한 소일거리를,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 갇힌, 그저 견딜 만은 한 그 권태를 즐거움이라 일컫는 데 만족한다. 스완은 그들과 달리,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여자들에게서 애써 매력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이미 아름답고 매력 있다고 여긴 여자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은 열에 아홉, 딱히 “천한” 부류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들이었으니, 본능적으로, 까닭도 없이 그를 끌어당기던 육체적 특징이란 그가 좋아하는 거장들이 그리거나 조각한 여인들에게서 감탄하던 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여자의 얼굴에 어린 깊은 성품이나 우수 어린 표정은 그의 감각을 얼어붙게 했으나, 그 감각은 건강하고 풍만한 장밋빛 살결을 보는 순간 이내 녹아내리곤 했다.
여행 중에, 알고 지내려 들지 않는 편이 더 온당했을 어느 가족을 만나는데, 그 가운데 한 여자가, 그로서는 처음 보는 특별한 매력을 두른 채 그의 눈길을 끌었다고 하자. 그럴 때 짐짓 “도도한 태도”를 지키며 그녀가 그의 마음에 지펴놓은 욕망을 속이려고, 그녀와 함께라면 맛보았을 즐거움 대신 딴 즐거움을 갖다 대려고, 옛 정부 가운데 하나에게 와서 합류하라는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에게는 삶 앞에서의 비겁한 굴복만큼이나,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어리석게 저버리는 짓만큼이나 여겨졌을 것이다. 마치 자기가 와 있는 고장을 둘러보는 대신 제 방에 틀어박혀 파리의 “풍경화”나 들여다보는 격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사교 관계라는 단단한 구조물 속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어떤 여자가 마음을 끌기만 하면 어디서든 새 토대 위에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탐험가들이 지니고 다니는 그 접이식 천막 같은 것으로 만들어 두었다. 그중에 들고 다닐 수 없거나 어떤 새 즐거움에 맞춰 쓸 수 없는 부분이라면, 남들 눈에는 아무리 부러워 보일지라도 값어치 없다며 버렸다. 어느 공작부인이 해마다 그에게 무슨 호의든 베풀고 싶어 하면서도 좀처럼 기회를 못 잡아 쌓아 올린 그의 신용을, 그가 얼마나 자주 한순간에 탕진해 버렸던가. 시골에서 눈여겨본 어느 대리인의 딸과 당장 연을 맺게 해 달라며, 그 대리인에게 전보로 추천장을 써 달라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문구로 그녀에게 청함으로써 말이다. 마치 굶주린 사내가 빵 한 조각에 다이아몬드를 넘겨주듯이. 하기야 때가 이미 늦은 뒤면, 그는 그런 자신을 두고 웃곤 했다. 드문 세련됨이 여럿 있어 벌충되기는 했으나, 그의 천성에는 어릿광대 같은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한가로이 살아온 지적인 사람들, 곧 그 한가로움이 그들의 지성에 내미는 생각, 예술이나 학문으로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것 못지않게 관심을 쏟을 만한 대상이 있다는 생각, 곧 “삶”이란 이제껏 쓰인 그 어떤 소설보다 더 흥미롭고 더 낭만적인 상황을 품고 있다는 생각에서 위안을, 어쩌면 변명을 구하는 부류에 속했다. 적어도 그는 사교계 벗들 가운데 좀 더 예민한 이들, 특히 샤를뤼스 남작에게 그렇게 장담하곤 했고, 어렵잖게 그들을 설득했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놀라운 모험담으로 남작을 즐겁게 해 주기를 좋아했으니, 이를테면 기차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바로 그 순간 유럽 정치의 온갖 실마리를 손에 쥔 어느 재위 군주의 누이였고, 그 덕분에 자기가 더없이 흥겨운 방식으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는 이야기라든가, 또 얽히고설킨 정황 속에서 자기가 누군가의 여자 요리사의 애인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마침 콘클라베가 내릴 결정에 달려 있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스완이 그토록 냉소적으로 뚜쟁이 노릇을 시킨 것은, 그가 그토록 가까운 연으로 맺어져 있던, 덕망 높은 미망인들과 장군들과 아카데미 회원들의 저 빛나는 방진(方陣)만이 아니었다. 그의 벗이란 벗은 죄다, 때때로 추천이나 소개의 말 한마디를 청하는 편지를 받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그 외교적 능란함은, 잇따르는 그의 온갖 “연애” 내내 이어지며 갖가지 구실을 바꿔가면서도, 더없이 서투른 경솔함보다 더 뚜렷하게, 그의 성격에 박힌 한 가지 변함없는 특징과 한결같은 추구를 드러내 보였다. 여러 해 뒤 내가, 전혀 다른 면에서이긴 하나 내 성격과 닮은 데가 있다는 이유로 그의 성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우리 외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던 일을 곧잘 떠올리곤 했다. (다만 지금 이야기하는 무렵의 일은 아니다. 스완의 그 큰 “연애”가 시작되어 그의 연애 행각을 오래도록 끊어놓은 것은 바로 내가 태어난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외할아버지는 봉투에 적힌 벗의 필적을 알아보고는 이렇게 외치곤 했다. “스완이 또 뭔가 부탁하는군, 경계 태세!” 그리고 외조부모는, 불신에서든, 아니면 정작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이에게만 무엇을 내주고 싶어지는 그 무의식적인 심술에서든, 그의 청 가운데 더없이 들어주기 쉬운 것마저 완강히 거절하곤 했다. 이를테면 그가 일요일마다 우리와 함께 저녁을 들던 어느 아가씨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을 때가 그러했으니, 외조부모는 스완이 그 아가씨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이제는 그녀와 왕래하지 않는 척해야 했고, 정작 한 주 내내 누구를 불러 그녀와 만나게 할까 궁리하다가도 끝내 아무도 못 찾기 일쑤였으니, 기꺼이 응했을 그에게 신호 하나 보내느니 차라리 그 편을 택했던 것이다.
이따금, 한동안 이제는 도무지 스완을 못 만난다고 푸념하던 외조부모의 지인 부부가, 흡족한 낯으로, 어쩌면 외조부모를 은근히 부럽게 하려는 기색으로, 그가 별안간 더없이 상냥한 사람이 되어 자기네 집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고 알려오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그들의 흐뭇한 착각을 굳이 깨뜨리고 싶지 않아, 이런 곡조를 흥얼거리며 외할머니를 바라보곤 했다.
이 무슨 신비란 말인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어라
아니면 이런 곡조를
덧없는 환영이여…
아니면 또 이런 곡조를
이런 일에는
눈을 감는 게 상책이라네
몇 달 뒤, 외할아버지가 스완의 그 새 벗에게 “스완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그렇게 자주 만나시나요?” 하고 물으면, 상대의 얼굴은 시무룩하게 길어지곤 했다. “그 사람 이름은 다시는 제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하지만 두 분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는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외할머니의 어느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며 거의 매일 저녁 그 집에서 저녁을 들었다. 그러다 별안간, 아무 예고도 없이, 발길을 뚝 끊었다. 그들은 그가 병이 났으려니 여겼고, 그 집 안주인이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어보려던 참에, 부엌에서, 요리사가 실수로 가계부에 끼워 둔 그의 친필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그 편지에서 그는 파리를 떠나며 다시는 그 집에 올 수 없게 되었노라 알리고 있었다. 그 요리사가 그의 정부였고, 관계를 끊는 마당에 그는 온 집안에서 오직 그녀에게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정부가 사교계 여인이거나, 적어도 그가 그녀를 “사교계”에 받아들여지도록 주선하지 못할 만큼 태생이 미천하지도 처지가 문란하지도 않은 여인일 때면, 그는 그녀를 위해 다시 사교계로 돌아갔으니, 다만 그녀가 움직이는 특정한 궤도, 혹은 그가 그녀를 끌어들인 그 궤도로만이었다. “오늘 저녁 스완한테 기댈 생각 마시오” 하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기억 안 나요? 오늘은 그 사람의 미국 여자가 오페라에 오는 밤이잖소.” 그는 그녀를 위해 더없이 배타적인 응접실, 곧 그 자신이 주간 만찬이나 포커 판에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그런 집들의 초대를 받아냈다. 매일 저녁, 빳빳하게 빗어 넘긴 붉은 머리칼에 살짝 “물결”을 넣어 대담한 초록 눈빛의 열기를 어느 만큼 부드럽게 누그러뜨린 뒤, 그는 옷깃에 꽂을 꽃 한 송이를 고르고는 자기 무리의 어느 여인 집으로 정부를 만나러 나섰다. 그리고 자기가 늘 제멋대로 대하는 그 사교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여인이 보는 앞에서 자기에게 쏟아부을 애정과 찬탄을 떠올리며, 그는 이제는 진력이 나 버린 그 사교 생활에서 새삼 신선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가 그 한복판에 슬쩍 밀어 넣은 일렁이는 불빛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따스하게 물들여 놓은 그 사교 생활의 실체가, 이제 거기에 새로운 사랑 하나를 녹여 넣고 보니, 그에게는 아름답고도 진귀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애착들, 이 정사들 하나하나가, 스완이 절로, 아무런 애씀도 없이 매력적이라 여긴 어떤 얼굴이나 자태를 보고 싹튼 꿈의, 다소간 온전한 실현이었던 반면, 어느 날 극장에서 자신의 옛 벗 하나에게 오데트 드 크레시를 소개받은 일은 사뭇 다른 문제였다. 그 벗은 그녀를 두고, 어쩌면 잘 통할 법한 황홀한 여인이라 일러 주면서도, 소개로써 특별한 호의를 베푸는 양 보이려고 그녀가 실제보다 더 정복하기 어려운 여자인 것처럼 꾸며 말했다. 그녀는 스완에게, 물론 아름다움이 없는 여자로 비치지는 않았으나, 그를 무덤덤하게 하는, 그의 마음에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오히려 일종의 육체적 거부감마저 안겨 주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로 비쳤다. 남자라면 누구나 몇쯤 꼽을 수 있되 저마다 다른 예를 대게 마련인, 우리 감각이 요구하는 유형과는 정반대인 그런 여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기에는 그녀의 옆얼굴은 너무 날카로웠고, 살결은 너무 여렸으며, 광대뼈는 너무 도드라졌고, 이목구비는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눈은 고왔으나 어찌나 큰지 제 무게에 겨워 처지는 듯했고, 얼굴의 나머지를 짓눌러 늘 그녀를 어딘가 아파 보이거나 언짢아 보이게 했다. 극장에서 이렇게 소개받고 얼마 뒤, 그녀는 편지를 보내 스완의 수집품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무식한 여자”인 자기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이라면서, 그가 “차와 책에 파묻혀 참으로 아늑하게” 지내리라 상상되는 그 “댁”에서 한번 그를 보고 나면 그를 더 잘 알게 되리라고 했다. 다만 그녀는, 그가 그토록 침침할 게 분명한, “그처럼 세련된 분에게는 도무지 어울리게 근사하지 못한” 그런 동네에 살고 있다는 데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방문을 허락하자, 그녀는 떠나면서 그에게, 마침내 겨우 발을 들이게 되어 그토록 기쁜 집에 이토록 잠깐밖에 머물지 못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를 자기가 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각별한 무언가로 여기는 양 이야기하며, 그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 어떤 낭만적인 끈으로 두 사람을 한데 묶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스완이 다가서고 있던, 이미 환멸의 빛이 드리운 그 나이, 사내가 그다지 많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즐거움만으로 사랑에 만족할 수 있게 되는 그 나이에 이르면, 이렇게 두 마음을 잇는 일은, 비록 어린 시절처럼 사랑이 필연코 향해 가는 목표는 더 이상 아닐지라도, 여전히 사랑과 어찌나 강한 관념 연합으로 묶여 있는지, 그것이 먼저 나타나면 사랑의 원인이 될 만도 하다. 젊은 날 사내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를 꿈꾼다. 훗날에는, 한 여인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기에 넉넉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랑에서 무엇보다 먼저 구하는 것이 주관적 즐거움인 만큼, 그 사랑을 낳는 데에는 여성미에 대한 취향이 더 큰 몫을 해야 마땅해 보이는 그런 나이에도, 사랑이, 그것도 더없이 육체적인 부류의 사랑이, 욕망에는 아무런 바탕도 두지 않은 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나이에 이르면 사내는 이미 사랑의 화살에 한두 번 넘게 상처를 입은 터라, 사랑은 더 이상 저 홀로, 제 알 수 없고 숙명적인 법칙을 좇아, 그의 수동적이고 어리둥절한 마음 앞에서 저절로 자라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거들고 나선다. 우리는 기억으로, 암시로 그것을 왜곡한다. 그 증세 하나를 알아보고는 나머지를 떠올려 다시 지어낸다. 우리는 그 찬가를 온전히 마음에 새겨 지니고 있으므로, 어떤 여인이 그 첫 구절을, 그녀의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찬탄으로 그득한 그 구절을 되뇌어 줄 필요도 없이 그다음에 오는 것을 죄다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녀가 한복판부터, 곧 이제부터 우리가 오직 서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노래하는 대목부터 시작하더라도, 우리는 그 가락에 넉넉히 맞춰져 있는지라, 그녀의 목소리가 처음 멎는 자리에서 지체 없이 이를 받아 상대를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오데트 드 크레시는 다시 스완을 찾아왔고, 그 방문은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아마도 그 방문마다, 그동안 세세한 데를 얼마쯤 잊고 있던 얼굴, 젊은 나이에도 그리 생기 있지도 그리 시들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던 그 얼굴을 볼 때 그가 느끼던 실망감이 되살아났으리라. 그녀가 그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의 참으로 상당한 아름다움이 그가 절로 감탄하는 부류의 것이 아님을 그는 아쉬워하곤 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데트의 얼굴이 실제보다 더 야위고 더 도드라져 보였다는 점이다. 이마와 뺨 윗부분이, 거의 한 평면을 이루는 그 부분이, 그 시절 여자들이 하던 머리채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끌어내려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로 드리우고, 곱슬로 지져 올리며, 몇 가닥은 귀 위로 흘러내리게 한 그런 머리 모양이었다. 몸매로 말하자면, 그녀는 더없이 훌륭한 몸매를 지녔건만, 그 이어짐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유행 탓이었으며, 그녀가 파리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여자 축에 든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코르셋이 마치 있지도 않은 배를 감싸듯 활처럼 앞으로 불룩 튀어나왔다가 뾰족한 끝으로 마무리되고, 그 아래로 겹겹의 치마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해 여자를 마치 어설프게 끼워 맞춘 여러 토막으로 이루어진 듯 보이게 했다. 주름 장식이며 플라운스며 안쪽 보디스가, 오로지 디자이너의 변덕이나 천의 뻣뻣함에만 좌우된 채 저마다 제멋대로, 리본 매듭이며 늘어뜨린 레이스며 수직으로 매달린 흑옥 술로 이어지는 선을 따르거나 가슴을 따라 흐를 뿐, 정작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는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그리하여 그 겉치레의 골조가 몸 쪽으로 끌어당기느냐 몸에서 밀어내느냐에 따라, 그녀는 숨 막히게 옥죄이거나 아니면 아예 파묻혀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