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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의 사랑 ②

1권 · 스완의 사랑

그러나 오데트가 돌아간 뒤면 스완은, 다시 오게 해 줄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디 갈지 모른다던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 짓곤 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언젠가 그녀가 애타고 수줍게 조르던 모습, 그때 그를 바라보던 눈길, 겁먹은 채 애원하던 그 눈길을 그는 떠올렸다. 검은 벨벳 끈으로 맨 하얀 밀짚 둥근 모자 앞쪽에 조화 팬지 몇 송이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로 던지던 그 눈길이 그녀에게 애잔한 정취를 안겨 주었다. “한 번쯤,” 그녀는 넌지시 청했었다, “오셔서 저와 차라도 함께 드시지 않으실래요?” 그는 일거리를 핑계 삼았으니, 실은 여러 해 전에 손 놓아 버린, 델프트의 페르메이르에 관한 논문이었다. “제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거 알아요,” 그녀가 대꾸했었다. “선생님처럼 학식 높은 대단한 분 곁에 있는 저 같은 자그마한 촌것이야. 우화 속 개구리 꼴이겠죠! 그래도 저는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눈뜨고 싶은걸요. 어엿한 책벌레가 되어 낡은 종이 뭉치에 코를 처박는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그녀는 이렇게 이어 갔으니, 세련된 여자가, 손끝을 더럽힐까 겁내지 않고 무슨 궂은일에, 이를테면 “손수 냄비에 손을 넣어” 저녁을 짓는 일 따위에 기꺼이 몸을 바치는 게 소원이라고 우겨 댈 때 짓는 그 자못 흡족한 낯빛으로였다. “저를 비웃으시겠지만, 선생님이 저를 못 만나게 붙드시는 이 화가 말인데요,” 페르메이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저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직 살아 있나요? 파리에서 그 사람 그림을 볼 수 있을까요? 저 커다란 이마 뒤에서, 저토록 애써 돌아가는 저 머릿속에서, 늘 무언가를 골똘히 파고들고 있는 게 분명한 저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요. 그저 ‘저것 봐, 저 사람이 지금 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말할 수 있게 말이에요. 선생님 일을 거들어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꿈같을까요.”

그는 새로운 벗을 사귀기가 두렵다는 것을 핑계로 삼았고, 그것을 짐짓 가망 없는 열정이 두렵다는 식으로 멋들어지게 둘러댔다. “사랑에 빠지는 게 두려우시다고요? 참 우습기도 하지, 저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돌아다니는데, 어디서든 자그마한 사랑 하나만 찾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줄 텐데 말이에요!” 그녀가 어찌나 자연스럽게, 어찌나 확신에 찬 태도로 말했던지 그는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어떤 여자가 선생님을 아프게 했나 봐요. 그래서 나머지 여자들도 다 그 여자 같으려니 하시는 거고요. 그 여자는 선생님을 이해 못 했을 거예요. 선생님은 여느 사내들하곤 너무나 다른 분이니까요. 제가 선생님을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든 게 바로 그거였어요. 이분은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구나, 대번에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말이오, 당신 자신도 있잖소.” 그는 말을 이었었다. “나는 여자들이 어떤지 알지. 당신도 해야 할 일이 한 무더기일 테고, 짬이라곤 도무지 없을 텐데.”

“제가요? 아니, 저는 할 일이라곤 통 없는걸요. 저는 늘 한가하고, 선생님만 원하시면 앞으로도 늘 한가할 거예요. 낮이든 밤이든 저를 보고 싶은 때가 언제든, 그저 사람만 보내 주세요. 그럼 저는 더없이 기뻐하며 달려올 테니까요. 그래 주시겠어요? 제가 정말로 바라는 게 뭔지 아세요? 제가 매일 저녁 드나드는 베르뒤랭 부인 댁에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는 거예요. 거기서 선생님을 만나는 상상을 해 봐요, 선생님이 조금이나마 저를 봐서 거기 오셨거니 생각하는 거요.”

물론, 이렇게 그들의 대화를 되새기며, 혼자 있을 때 그녀를 이렇게 떠올린다고 해서, 그가 자기 낭만적 몽상 속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여인들의 모습 틈에 그녀의 모습을 불러내는 것 이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일, 무슨 우연한 정황 덕분에 (혹은 어쩌면 그런 도움조차 없이. 여태 잠재해 있던 어떤 심적 상태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정황이란, 정작 그 상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데트 드 크레시의 모습이 그의 몽상을 통째로 빨아들이게 된다면, 만일 그 몽상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을 더 이상 지워낼 수 없게 된다면, 그때는 그녀 육체의 결함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었고, 그녀의 몸이 다른 어떤 몸보다 더도 덜도 아니게 스완의 취향에 들어맞느냐 아니냐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이제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몸이 된 이상, 앞으로는 그에게 기쁨이나 괴로움을 안겨 줄 수 있는 유일한 몸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마침 우리 외할아버지는, 다른 어떤 실제 지인을 두고도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이 베르뒤랭가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젊은 베르뒤랭”과는 연을 아주 끊어버린 터였으니, 그를 두고, 수백만 재산은 놓치지 않았을망정 보헤미안의 어중이떠중이 틈에 떨어진 자로 뭉뚱그려 보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스완에게서, 자기를 베르뒤랭가에 연결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편지를 받았다. “경계 태세! 경계 태세!” 그는 편지를 읽으며 외쳤다. “전혀 놀랍지 않군. 스완은 끝내 이렇게 될 팔자였어. 참 근사한 무리로군!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네. 우선 그 양반을 이제는 알지도 못하는 데다, 게다가 거기엔 필경 여자가 하나 끼어 있을 테고, 나는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으니 말일세. 허, 스완이 그 젊은 베르뒤랭 무리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면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겠는걸.”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소개인 노릇을 마다하자, 스완을 그 집으로 데려간 것은 오데트 자신이었다.

스완이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날, 베르뒤랭가에서 함께 저녁을 든 이들은 코타르 박사와 그 부인, 젊은 피아니스트와 그 이모, 그리고 그해 총애받던 화가였고, 저녁이 깊어가는 동안 “단골들” 몇이 더 여기에 합류했다.

코타르 박사는 어떤 말에 어떤 투로 응해야 할지, 상대가 농담을 하는지 진담을 하는지 도무지 종잡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대비하려고, 그는 자기 모든 표정에 조건부의, 잠정적인 미소를 곁들였으니, 자기에게 건넨 말이 알고 보니 우스개였을 때 그 뜸 들이는 미묘함이 자기를 얼간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 경우에도 맞설 채비를 해야 했으므로, 그는 그 미소가 얼굴에 뚜렷한 표정으로 자리 잡도록 감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 얼굴에는 끊임없이 가물거리는 망설임이 어려 있어, 거기서 그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물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정말 그런 뜻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거리에서, 아니 대체로 살아가는 데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는 응접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없었다. 그가 지나는 사람들이며 마차며 무슨 일이 벌어지든 거기에다 짓궂은 미소로 인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그 미소는 뒤이은 그의 행동이 온당치 못하다는 온갖 혐의에서 그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 행동이 혹여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그가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면 그 농담은 저 혼자만 아는 비밀이었다는 것을 그 미소가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부러진 물음이 허락될 성싶은 대목이라면 어디서든, 박사는 자기 무지와 불확실의 황무지를 일구고 그리하여 자기 교양을 채워 넣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시골 고향에서 처음 수도로 올라올 때 현명한 어머니가 일러 준 충고를 좇아, 처음 듣는 관용구든 고유명사든 그 뜻을 낱낱이 캐내려 애쓰지 않고서는 결코 그냥 흘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관용구로 말하자면, 그는 앎에 대한 갈증을 채울 줄 몰랐으니, 흔히 그것들이 실제보다 더 또렷한 뜻을 지녔으려니 상상하며, 자기가 가장 자주 듣는 표현들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 했다. 이를테면 “기막히게 예쁘다”, “푸른 피(고귀한 혈통)”, “개와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하는 살림”, “심판의 날”, “유행의 여왕”,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다”, “옴짝달싹 못 하는 궁지에 빠지다” 따위였고, 또 자기가 몸소 어떤 상황에서 그것들을 대화에 써먹을 수 있을지도 알고 싶어 했다. 그런 표현이 아쉬울 때면 그는 대화를, 달달 외워 둔 말장난이며 이런저런 “말놀이”로 꾸미곤 했다. 자기 귀에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그는 그저 그것을 묻는 투로 혼자 되뇌곤 했으니, 그렇게 하면 겉으로 대놓고 구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얻기에 넉넉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가 어디에나 두루 부린다고 자부하던 비판력이, 실은 아예 없다시피 했으므로, 좋은 가정교육이 지닌 그 세련됨, 곧 무슨 일로든 신세를 지운 상대에게, 곧이곧대로 믿어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실은 신세를 진 쪽이 바로 자기라고 안심시켜 주는 그 세련됨은, 코타르에게는 헛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듣는 것을 죄다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베르뒤랭 부인이 그의 흠에 아무리 눈멀어 있었다 한들, 한번은 진정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눈부시게 영리한 사람으로 여기기는 했다. 그녀가 무대 옆 특별석에서 사라 베르나르를 보고 들으라고 그를 초대해 놓고 공손하게, “박사님, 이렇게 와 주시다니 참 고마워요. 사라 베르나르쯤이야 이미 여러 번 들으셨을 게 분명한 데다, 게다가 우리 자리가 무대에 좀 너무 가까운 게 아닌가 싶어 죄송하네요”라고 말하자, 이 구경거리의 진가에 대해 권위 있는 누군가가 일러 줄 때까지 얼굴에 미소를 지을지 거둘지 미룬 채 특별석에 들어선 박사가 이렇게 대꾸했던 것이다. “아무렴요, 우리 자리가 무대에 너무 가깝긴 하죠. 게다가 사라 베르나르한테는 이제 슬슬 물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부인께서 제가 오기를 바라셨잖습니까. 제게는 부인의 바람이 곧 분부지요. 이렇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어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부인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부인은 이토록 좋은 분이신데요.” 그러고는 이렇게 이었다. “사라 베르나르, 저 사람을 두고들 신의 목소리라고 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저, 이런 말도 흔히들 하던데, 저 사람이 ‘무대를 불살라 놓는다’고요. 참 별난 표현이지 뭡니까, 그렇죠?” 뭔가 깨우쳐 줄 논평이 나오기를 바라면서였으나, 그런 논평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있잖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었다. “내 생각엔 우리가 박사님한테 뭘 내놓을 때마다 그걸 깎아내리는 건 헛다리를 짚는 것 같아요. 그이는 우리 일상하곤 아주 동떨어져 사는 학자잖아요. 무엇이 얼마짜리인지 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가 하는 말이라면 죄다 복음처럼 곧이듣는다니까요.”

“차마 입 밖엔 못 냈지만,” 베르뒤랭 가 대꾸했었다. “나도 똑같은 걸 눈치채고 있었소.” 그리하여 다가온 새해 첫날, 베르뒤랭 는 코타르 박사에게 삼천 프랑짜리 루비를 보내며 그저 하찮은 것인 양하는 대신, 삼백 프랑짜리 인조석을 사서는, 그것이 여간해서는 짝을 찾기 어려운 물건인 양 넌지시 믿게 했다.

베르뒤랭 부인이 그날 저녁 스완 를 만나게 될 거라고 알리자, “스완이라뇨!” 하고 박사가 놀란 나머지 거칠어진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리 사소한 소식이라도 늘 이 사람의 허를 완전히 찔렀으니, 그는 언제 무슨 일에든 대비가 되어 있다고 스스로 여기던 터였다. 그리고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스완이라니! 대체 스완이 누굽니까?” 하고 그는 불안에 겨워 발광하듯 소리쳤다. 그 불안은 베르뒤랭 부인이 “아, 오데트의 벗 말이에요, 그이가 우리한테 이야기했던” 하고 일러 주자 이내 가라앉았다.

“아, 그래요, 그래. 그럼 됐네요.” 박사가 대뜸 누그러져 대답했다. 화가로 말하자면, 그는 스완이 베르뒤랭가에 나타난다는 데에 몹시 기뻐했으니, 스완이 오데트에게 반해 있으려니 짐작한 데다, 연인들의 만남을 거드는 일이라면 언제든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매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일도 없지요,” 그는 코타르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그 방면으론 엄청나게 재미를 봤거든요, 여자들 상대로도 말입니다!”

스완이 대단히 “세련된” 사람이라고 베르뒤랭 부부에게 말했을 때, 오데트는 또 하나의 “따분한 인간”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예감으로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그가 도착하자 그는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고, 그들은 몰랐지만 그 간접적인 원인은 그가 최상류 사교계에 익숙하다는 데 있었다. 실제로 그는, 세상에 나가 살아 본 남자들이 지성과 세련됨을 갖추었으되 한 번도 사교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이들에 비해 누리는 이점 가운데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 곧 그들은 더 이상 사교계를 상상 속에서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갈망이나 혐오로 변모시켜 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극히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속물근성의 온갖 흔적에서도, 지나치게 상냥해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서도 벗어나, 실은 그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워진 그들의 선량함은, 잘 단련된 체조 선수의 편안함과 우아한 몸놀림을 지니는데, 그 유연한 사지 하나하나가 몸의 나머지 부분이 서투르게 끼어드는 일 없이 요구되는 동작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과 같다. 사교계에 익숙한 남자가 자기에게 소개되는 낯선 젊은이에게 정중히 손을 내밀 때, 또 자기가 소개되는 대사 앞에서 신중하게 고개를 숙일 때 쓰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몸짓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스완의 사교적 처신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베르뒤랭 부부와 그 친구들처럼 자기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극진한 정성을 보였고, 그들의 말대로라면 그들의 “따분한 인간들” 중 누구라도 굳이 하지 않았을 인사치레를 먼저 건넸다. 그는 코타르 박사를 만났을 때 한순간이나마 냉담해졌다. 서로 아직 말도 나누기 전에 그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감는 것을(코타르는 이 표정을 두고 “다들 덤벼 보라지”라고 불렀다) 보고, 스완은 이 의사가 어디선가, 아마 어느 “평판 나쁜” 집에서 이미 자기를 만나 알아본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곳에 거의 드나들지 않았고, 돈으로 사는 사랑에 빠져 지내는 습관을 가진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암시를, 특히 오데트 앞에서, 자칫 그녀가 자기를 나쁘게 보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암시를 무례하다고 여겨, 스완은 더없이 싸늘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의사 옆에 앉은 부인이 코타르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저렇게 젊은 남편이 아내가 듣는 데서 일부러 그런 종류의 유흥을 넌지시 들먹였을 리 없다고 판단하고, 처음에 의심했던 의미로 의사의 표정을 해석하기를 그만두었다. 화가는 곧장 스완에게 오데트와 함께 자기 화실을 찾아오라고 청했고, 스완은 그가 무척 유쾌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아마 저보다 더 후한 대접을 받으실지도 모르죠.” 베르뒤랭 부인이 그 호의를 짐짓 시샘하는 척하며 끼어들었다. “어쩌면 코타르 씨의 초상화를 보게 해 줄지도요.”(그녀가 화가에게 주문한 그림이었다.) “조심하세요, 비슈 선생님.” 오래전부터 화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 정겨운 농담이었기에 그녀는 화가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저 눈매의 그 다정한 표정, 저 재치 있게 반짝이는 눈빛을 꼭 잡아 주세요. 아시죠, 제가 무엇보다 갖고 싶은 건 저이의 미소예요. 그걸 그려 달라고 부탁드린 거예요, 저이의 미소의 초상을요.” 그리고 그 말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곱씹을 만하게 느껴져, 그녀는 되도록 많은 손님이 듣도록 아주 큰 소리로 되풀이했고, 심지어 이런저런 막연한 구실을 대어 다시 한번 그 말을 내뱉기 전에 사람들을 자기 곁으로 더 바싹 끌어모으기까지 했다. 스완은 모두에게 자기를 소개해 달라고 청했는데, 사니에트라 불리는 베르뒤랭 부부의 오랜 친구에게까지 그랬다. 그는 수줍음과 소박함과 선량함 탓에, 고문서학에 관한 그의 재능과 상당한 재산과 그가 속한 명문 가문에 마땅히 따라야 할 존중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할 때면 그 말은 어수선하게 뒤엉켜 나왔는데, 그것이 듣기에 사랑스러웠던 까닭은, 그것이 그의 발음의 결함이라기보다는 그의 영혼의 한 자질을 드러내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가 끝내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순수의 시절의 잔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모든 자음은, 그의 온화한 입술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거친 소리처럼 여겨졌다. 사니에트 에게 자기를 소개해 달라고 청함으로써 스완은 베르뒤랭 로 하여금 소개의 통상적인 형식을 뒤집게 만들었다(실제로 그는 그 구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스완 , 부디 저희 친구 사니에트를 소개해 드리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스완은 사니에트 본인에게는 뜨거운 감사의 정을 불러일으켰는데, 다만 베르뒤랭 부부는 그것을 결코 스완에게 밝히지 않았다. 사니에트가 그들에게는 다소 성가신 존재였고, 그에게 친구를 붙여 줄 의무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베르뒤랭 부부는 스완의 다음 청에는 몹시 감동했으니, 그가 피아니스트의 이모에게 자기를 소개해 달라고 청해야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늘 그러하듯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여자는 검은색을 입으면 언제나 잘 어울리고, 그보다 더 품위 있는 것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몹시 붉었으니, 식사 뒤 한동안은 늘 그러했다. 그녀는 정중히 스완에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대단한 위엄을 갖추어 몸을 곧추세웠다. 배운 것이 전혀 없어 문법이나 발음에서 실수할까 두려워한 그녀는, 만일 말을 잘못하더라도 그것이 주위의 웅얼거림 속에 묻혀 실제로 실수했는지 아닌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흐릿하고 어물어물한 투로 말하곤 했다. 그 결과 그녀의 말은 일종의 끊임없고 뿌옇게 뭉개진 가래 뱉기 같았고, 그 속에서 이따금 드물게 그녀가 자신 있는 소리와 음절이 튀어나왔다. 스완은 베르뒤랭 와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두고 가벼운 농을 던져도 되겠거니 여겼으나, 정작 베르뒤랭 씨는 조금도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그가 응수했다. “그분이 딱히 재기가 넘치는 분은 아니라는 건 인정하죠. 하지만 단둘이 있어 보시면 얼마나 매력적으로 말씀하시는지 장담합니다.”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스완이 서둘러 그를 달랬다. “제 말은 그저 그분이 그다지 ‘품위 있다’는 인상은 아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가 말투로 그 형용사를 따옴표 속에 떼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건 오히려 칭찬에 가까운 말이지요.”

“잠깐만요.” 베르뒤랭 가 말했다. “자, 이건 놀라실 겁니다. 그분은 글을 아주 근사하게 쓰신답니다. 그 조카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정말 감탄스럽지요, 안 그렇습니까, 박사님? 스완 , 제가 그에게 뭔가 한 곡 연주해 달라고 청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없는 행운이겠습니다만…….” 스완이 다소 거창하게 운을 떼려는데, 의사가 비웃듯 끼어들었다. 그는 언젠가 누군가 하는 말을 듣고 결코 잊지 않았으니, 일상 대화에서 힘주어 말하거나 격식 차린 표현을 쓰는 것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짓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방금 스완이 “행운”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누군가 진지하게 근엄한 낱말을 쓰는 것을 들을 때면, 그는 곧장 그 사람이 일부러 현학을 부리고 있다고 단정했다. 게다가 마침 같은 낱말이 그가 이른바 케케묵은 “문구”나 “속담” 속에도 들어 있다면, 그것이 지금도 흔히 쓰이는 것이든 아니든, 의사는 그 모든 것이 농담이라고 냉큼 결론짓고, 인용문의 나머지 말로 상대를 가로막았다. 실제로 상대의 머릿속에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건만, 그 대목에서 상대가 그 말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듯 몰아세우는 식이었다.

“프랑스에는 더없는 행운이지요!” 그가 두 팔을 힘차게 번쩍 치켜들며 짓궂게 읊어 댔다. 베르뒤랭 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기 저 사람들 대체 뭐가 그리 우스운 거예요? 당신네 구석에는 우울하게 생각에 잠긴 기색이라곤 도무지 없군요.” 베르뒤랭 부인이 소리쳤다. “나 혼자 여기 참회의 걸상 위에 처박혀 있는 게 뭐 그리 재미있는 줄 아세요.” 그녀는 응석받이 아이처럼 심통 나서 말을 이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밀랍 칠한 소나무로 만든 높은 스웨덴식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나라 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녀에게 준 것으로, 겉모습은 학교 “걸상”을 떠올리게 하고 그녀가 따로 가진 진짜 훌륭한 골동 가구들과는, 흔히 하는 말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응접실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골들”이 이따금 그녀에게 바치곤 하는 선물들을 눈에 잘 띄게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니, 준 사람들이 집에 왔을 때 그것들이 거기 놓인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헌사를 적어도 목숨이 짧다는 장점이 있는 꽃과 사탕에 그치도록 설득해 보려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집 안은 발난로며 방석이며 시계며 병풍이며 청우계며 꽃병 따위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한없이 어울리지 않는, 쓸모없으나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건들로 차츰 가득 차 갔다.

이 높다란 자리에서 그녀는 “단골들”의 대화에 기운차게 끼어들어 그들의 온갖 재미난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곤 했다. 그러나 턱을 다친 이후로는 진짜로 크게 웃는 데 드는 수고를 그만두고, 그 대신 일종의 상징적인 무언극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자신을 조금도 위태롭게 하거나 지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눈물이 나도록 웃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좌중의 누군가가 어느 “따분한 인간”을, 혹은 이제 “따분한 인간들”의 변방으로 밀려난 옛 멤버를 겨냥해 아주 사소한 재담이라도 던지면, 그녀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백내장으로 흐려지기 시작한 작은 새 같은 두 눈을 꼭 감고, 마치 무슨 외설스러운 광경을 피하거나 치명적인 일격을 막을 시간밖에 없다는 듯 재빨리 두 손에 얼굴을 파묻어 그것을 완전히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고는, 만일 웃음에 몸을 내맡긴다면 틀림없이 그녀를 축 늘어져 정신을 잃게 만들고야 말 그 웃음을 억누르고 뿌리 뽑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그러는 사이 베르뒤랭 는 자기도 아내 못지않게 쉽게 웃음이 터진다고 늘 우겨 왔건만, 그의 웃음은 “진짜배기”였던 탓에 이내 숨이 차 버려, 짐짓 꾸며 낸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웃음 술책에 따라잡혀 나가떨어지고 말았으니, 그것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절망이었다. 이렇듯 “단골들”의 흥겨움에 얼떨떨해지고, 동지애와 험담과 열띤 장담에 취한 베르뒤랭 부인은, 비스킷을 데운 포도주에 적셔 먹은 새장 속 새처럼 높다란 자리에 걸터앉아, 공감에 겨워 흐느껴 울곤 했다.

그러는 동안 베르뒤랭 는 먼저 스완에게 파이프에 불을 붙여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 뒤(“여기선 격식 차릴 것 없습니다, 아시겠죠. 다들 허물없는 사이니까요!”), 젊은 음악가에게 가서 피아노 앞에 앉아 달라고 청했다.

“그냥 두세요, 귀찮게 하지 마시고요. 저 사람은 여기 시달리러 온 게 아니잖아요.” 베르뒤랭 부인이 소리쳤다. “저 사람을 괴롭히는 건 두고 볼 수 없어요.”

“아니, 대체 왜 그게 저 사람을 귀찮게 한다는 거요?” 베르뒤랭 가 응수했다. “틀림없이 스완 는 우리가 발견한 그 올림바장조 소나타를 들어 본 적이 없을 거요. 저 사람이 피아노 편곡판을 우리에게 들려줄 겁니다.”

“안 돼요, 안 돼, 안 돼, 내 소나타는 안 돼요!” 그녀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지난번처럼 머리에 감기 들고 얼굴이 온통 신경통으로 쑤실 때까지 울고 싶진 않아요. 정말 고맙기도 하지, 난 그 연주를 되풀이할 생각 없어요. 여러분은 다들 참 친절하고 사려 깊으시죠. 여러분 중 누구도 일주일씩 자리보전할 일은 없을 테니, 딱 보면 알겠어요.”

젊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러 앉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작은 촌극은, 마치 저마다 처음 보는 양, 이른바 “마님”이라 불리는 그녀의 사람을 홀리는 독창성과 그녀의 음악적 “귀”의 예민한 감수성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좌중을 즐겁게 하는 데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 가까이 있는 이들은 “옳소, 옳소!” 하는 외침으로, 방 저쪽 끝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카드놀이를 하던 나머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으니, 그것은 의회 토론에서처럼 무언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오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튿날이면 그들은 그날 저녁 오지 못한 이들을 위로하며, 그 “작은 촌극”이 그토록 재미나게 펼쳐진 적은 없었다고 장담하곤 했다.

“자, 그럼 좋소.” 베르뒤랭 가 말했다. “그럼 안단테만 치면 되잖소.”

안단테만이라니! 어쩜 그런 소릴!” 그의 아내가 소리쳤다. “마치 나를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서지도록 만드는 게 ‘안단테만’이 아니라는 듯이. 이 ‘선생님’은 정말 어이가 없다니까! 마치 ‘제9번’을 두고 ‘그냥 피날레만 있으면 된다’고 하거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서곡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