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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⑦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한 사람 안에서 여러 알베르틴을 알던 나는, 이제 내 곁에 누운 그녀에게서 다시 훨씬 더 많은 알베르틴을 보는 듯했다. 내가 여태 본 적 없이 활처럼 휜 그녀의 눈썹은, 물총새의 솜털 둥지처럼 눈꺼풀의 둥근 구를 감쌌다. 온갖 인종과 격세유전과 악덕이 그녀의 얼굴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여자가 하나 생겨났으니, 흔히 내가 그 존재를 짐작조차 못 했던 여자였다. 나는 한 처녀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처녀를 소유하는 듯했다. 차츰 깊어지는 그녀의 숨결은 이제 규칙적으로 그 가슴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포갠 두 손을, 그 진주들을 흔들었는데, 같은 움직임에 저마다 다르게 밀린 그것들은, 밀물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배와 닻줄 같았다. 그러다 그녀의 잠이 만조에 이르렀음을, 이제 깊은 잠의 만수에 잠긴 의식의 암초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끼고서, 나는 마음먹고 소리 하나 없이 침대 위로 기어올라 그녀 곁에 누워,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입술을 그녀의 뺨과 가슴에 대었으며, 이윽고 진주들처럼 알베르틴의 숨결에 들어 올려지는 자유로운 손을 그녀 몸 구석구석에 차례로 얹었다. 나 자신도 그 규칙적인 움직임에 부드럽게 흔들렸으니, 나는 알베르틴의 잠의 밀물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 이따금 그것은 내게 그다지 순수하지 않은 쾌락을 맛보게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아무 움직임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 물속에 늘어뜨린 노처럼, 혹은 공중에서 잠든 새가 이따금 제 날개에 주는 간헐적인 퍼덕임처럼 부드러운 흔들림을 이따금 그것에 주면서, 내 다리를 그녀의 다리에 기대어 늘어뜨려 두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도 본 적 없고 그토록 마음에 드는 그녀 얼굴의 이 면을 골랐다.

어떤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들이 어슷비슷해서,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우리가 아는 그 사람과는 너무도 달라 또 하나의 인격을 이룰 만한 필자의 상(像)을 그려낸다는 것은, 짐작건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 여인이, 로지타와 두디카처럼, 그와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성격을 추론하게 하는 또 하나의 여인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어서, 하나를 보려면 옆얼굴로 보아야 하고 다른 하나를 보려면 정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기이한 일인가. 점점 높아지는 그녀의 숨소리는 쾌락에 겨워 숨 막히는 황홀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내 쾌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도 나는 그녀의 잠을 깨우지 않은 채 입 맞출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이면 나는, 말 없는 자연의, 의식도 저항도 없는 한 사물을 대하듯 그녀를 더 온전히 소유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이따금 잠결에 중얼거리는 말들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 뜻은 내게서 달아났고, 게다가 그 말이 가리키는 낯선 사람이 누구든, 이따금의 떨림이 되살려 놓는 그녀의 손이 한순간 굳어지는 곳은 내 손 위, 내 뺨 위였던 것이다. 나는 사심 없는, 마음을 달래는 사랑으로 그녀의 잠을 음미했으니, 마치 밀려와 풀려나는 물결의 소리를 몇 시간이고 듣고 있었을 때처럼.

어쩌면, 사람이 우리에게 자연과도 같은 마음의 평온을 안겨 주려면 그 전에 우리를 격심하게 괴롭힐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화를 나눌 때처럼 그녀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었고, 설령 내가 잠자코 있을 수 있었다 해도, 사실 그녀가 말하는 쪽일 때는 내가 그러했듯이, 그래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에는 그녀의 내면으로 그토록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겨우 느껴질 만한 산들바람처럼 마음을 달래는 그녀 숨결의 속삭임을 순간순간 계속 듣고 거두어들이는 동안, 내 앞에, 나를 위해 하나의 온전한 생리적 존재가 펼쳐져 있었다. 달빛 아래 해변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곤 했듯이, 나는 그토록 오래 거기 머물며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에게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때로는 바다가 거칠어지고, 만(灣) 안쪽까지 폭풍이 느껴지는 듯싶었고, 그 만처럼 나도 누워서 점점 높아지는 그녀 숨결의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 그녀는 너무 더울 때면, 벌써 반쯤 잠든 채로 기모노를 벗어 내 안락의자 위에 던져 놓았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그녀가 늘 편지를 쑤셔 넣곤 하던 이 기모노의 안주머니에 그녀의 서신이 죄다 들어 있으리라고 혼잣말을 했다. 서명 하나, 적혀 있는 약속 하나면 거짓을 밝히거나 의심을 걷어 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알베르틴이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꼼짝 않고 서 있던 침대 발치를 떠나, 나는 타오르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 또 다른 삶의 비밀이 저 안락의자 안에, 축 늘어진 채 무방비로 내게 제 몸을 내맡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은, 완전히 가만히 선 채 그녀의 잠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 지나자 고단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알베르틴이 깨지 않는지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발끝으로, 안락의자 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나는 우뚝 멈추어, 알베르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듯이 그 기모노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나 (그리고 어쩌면 이 점에서 내가 틀렸던 것인데) 나는 단 한 번도 그 기모노에 손을 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편지를 살펴보지 않았다. 끝내, 나로서는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발끝으로 물러나 알베르틴의 머리맡으로 돌아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을 그녀의 잠을 다시 지켜보기 시작했다. 반면 의자 팔걸이에 걸쳐진 저 기모노는 내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쐬려고 발베크의 호텔 방값으로 하루에 백 프랑을 치르듯, 나는 그녀에게 그 이상을 쓰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꼈으니, 나는 내 뺨에, 내 입술로 벌려 놓은 그녀의 두 입술 사이에 그녀의 숨결을 지녔고, 그 입술을 지나 그녀의 생명이 내 혀에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값진, 그녀의 잠을 지켜보는 이 기쁨은 또 다른 기쁨, 곧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에 의해 중단되곤 했다. 그것은 그녀를 내 지붕 아래 둔 데서 느끼던 바로 그 기쁨이, 한결 깊고 한결 신비로운 정도로까지 밀고 나아간 것이었다. 물론 오후에 그녀가 마차에서 내릴 때, 그녀가 돌아오는 곳이 다름 아닌 내 집 주소라는 것은 흐뭇한 일이었다. 그러나 잠의 지하 세계로부터 그녀가 꿈이라는 계단의 마지막 몇 단을 올라올 때, 그녀가 의식과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 내 방이라는 것, 그녀가 한순간 스스로에게 “여기가 어디지?” 하고 물으며, 주위의 방 안 온갖 물건들을, 눈을 거의 깜박이게 하지도 않는 은은한 등불을 바라보고, 자기가 내 집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자마자 집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더욱더 그러했다. 그 불확실함의 감미로운 첫 순간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더 온전히 소유하는 듯싶었다. 외출한 뒤라면 그녀가 돌아가는 곳은 자기 방이었을 텐데, 이제는 알베르틴이 알아보기만 하면 내 방이 그녀를 에워싸고 품으려 하고 있었고, 그때 내 연인의 눈에는 한순간도 잠든 적이 없었던 듯 잔잔하기만 한, 어떤 불안의 기색도 없었기 때문이다.

깨어남의 불확실함은 그녀의 침묵에는 드러났어도 눈에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녀는 “나의 ⸻” 혹은 “내 사랑하는 ⸻”이라 말하고 내 세례명을 붙였는데, 만일 이 책의 화자에게 저자와 같은 이름을 준다면 그것은 “나의 마르셀”, 혹은 “내 사랑하는 마르셀”이 되리라. 그 뒤로 나는, 내 친척들이 나를 “사랑하는 아이”라 부름으로써 알베르틴이 내게 건네던 그 감미로운 말들의 더없이 값진 유일함을 앗아 가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 말들을 건네면서 그녀는 입술을 조금 삐죽 내밀었고, 그 삐죽거림을 스스로 입맞춤으로 바꾸어 놓았다. 초저녁에 그토록 빨리 잠들었듯, 그토록 빨리 그녀는 깨어났다.

내가 시간 속을 지나온 것도, 등불 아래 내 맞은편에 앉은 한 처녀를, 바닷가를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바라보던 때의 햇빛과는 다른 빛을 그녀에게 드리우는 그 등불 아래에서 바라보는 행위도, 그리고 알베르틴의 이 물질적인 풍요로움, 이 자율적인 성장도, 지금 내가 그녀를 보는 눈과 발베크에서 그녀에게 받았던 애초의 인상 사이의 차이를 낳은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다. 더 긴 세월이 흘렀더라도 이토록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채 두 이미지를 갈라놓았을 것이다. 그 변화는, 본질적이고도 돌연하게, 내 연인이 사실상 뱅퇴유 의 여자친구 손에 자라다시피 했음을 내가 알게 되었을 때 일어났다. 한때 나는 알베르틴의 눈에서 신비의 자취를 본 듯싶을 때 흥분에 사로잡히곤 했지만, 이제 나는 그 눈에서, 나아가 눈만큼이나 무엇이든 비추어 내는, 지금은 그토록 부드럽다가도 금세 시무룩해지는 그 뺨에서까지 신비의 자취를 죄다 몰아내는 데 성공한 순간에만 행복했다.

내가 찾던 이미지, 그 위에 내가 쉬던 이미지, 거기 기대어 죽고만 싶던 그 이미지는, 더 이상 숨겨진 삶을 사는 알베르틴의 이미지가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내게 낯익은 알베르틴의 이미지였다(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내 사랑은 불행하지 않고서는 오래갈 수 없었으니, 그 본성상 신비에 대한 나의 갈구를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 세계를 비추어 내지 않는 알베르틴, 나 같은 사람인 나와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알베르틴이었으니,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것은 미지의 것이 아니라 내게 속한 것의 화신인 알베르틴이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안겨 준 고뇌의 한때로부터, 우리가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있을지 아니면 그녀가 달아날지 하는 불확실함으로부터 사랑이 태어날 때, 그런 사랑은 그것을 만들어 낸 격변의 흔적을 지니며, 우리가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이전에 보았던 것을 거의 되살려 내지 못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알베르틴을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이 그녀를 향한 내 사랑 속에 얼마간 남아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실은 이런 종류의 사랑에서 그 초기의 인상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아주 작을 뿐이다. 그 사랑의 힘 속에서, 그 고통 속에서, 위안을 향한 그 갈구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 관해 마땅히 알아야 할 무서운 무언가가 있다 할지라도 더는 아무것도 알지 않고 그저 머물고만 싶은, 잔잔하고 마음을 달래는 기억으로의 회귀 속에서, 오히려 그 이전의 기억만을 곱씹고 싶어 하는 마음속에서, 그런 사랑은 사뭇 다른 재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때로 나는 그녀가 들어오기 전에 불을 껐다. 사그라지는 장작의 불빛에 겨우 이끌린 채, 어둠 속에서 그녀는 내 곁에 누웠다. 눈으로 그녀를 보지 않고도 내 두 손, 내 두 뺨만이 그녀를 알아보았으니, 내 눈은 그녀가 달라져 있음을 발견할까 봐 자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보지 않는 사랑 덕분에 그녀는 여느 때보다 더 따뜻한 애정에 감싸인 듯 느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저녁이면 나는 옷을 벗고 누웠고, 알베르틴이 침대 가에 걸터앉은 채 우리는 입맞춤으로 끊기곤 하던 놀이나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존재와 성격에 우리가 관심을 갖게 만드는 유일한 것인 욕망 속에서, 우리는 (설령 그와 동시에, 차례로 사랑했던 여러 사람을 잇달아 저버린다 해도) 우리 자신의 본성에 그토록 충실히 머무는 나머지, 한번은 알베르틴에게 입 맞추며 그녀를 내 어린 소녀라 부르던 순간에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언뜻 보았을 때, 내 얼굴에 어린 그 서글프고 열정적인 표정이,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질베르트를 상대로 오래전에 지었던 표정과, 그리고 만일 내가 언젠가 알베르틴을 잊을 운명이라면 언젠가 또 다른 소녀를 상대로 짓게 될지도 모를 그 표정과 닮아 있어서, 나는 어떤 개인적인 사정을 넘어서(본능은 우리로 하여금 그 순간의 사람을 유일하게 참된 사람으로 여기도록 요구한다) 여인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바치는 봉헌물로서 헌정된, 뜨겁고도 고통스러운 헌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봉헌물을 바치듯 청춘을 기리는 이 욕망에, 발베크의 기억에도, 이렇게 저녁마다 알베르틴을 내 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갈구 속에서, 적어도 내 연애의 삶에서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설령 내 인생에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해도,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콩브레의 저녁들, 어머니가 내 침대 위로 몸을 굽혀 입맞춤으로 내게 안식을 안겨 주던 그 저녁들 이래로 내가 알지 못했던 종류의, 마음을 달래는 힘이었다. 하기야 그 무렵 누군가가 내게 나는 온전히 덕스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면 나는 몹시 놀랐을 테고, 내가 언젠가 남에게서 어떤 쾌락을 빼앗으려 들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더더욱 놀랐으리라.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알베르틴을 나와 함께 살게 한 데서 오는 나의 기쁨은, 적극적인 기쁨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차례로 그녀를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부터, 내게 큰 기쁨은 주지 않을망정 적어도 남들에게 기쁨을 주지는 않던 그 활짝 핀 처녀를 거두어들였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야심이나 명예 따위는 나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으리라. 하물며 나는 증오를 느낄 줄도 몰랐다. 그런데도 내게 육체적인 의미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쨌든 수많은 연적을 이기고 거두는 승리이기도 했다. 아무리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진정제였다.

알베르틴이 돌아오기 전에 내가 그녀의 진실함을 의심했든, 몽주뱅의 그 방에 있는 그녀를 그려 보았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일단 그녀가 실내복 차림으로 내 의자를 마주 보고 앉거나, 혹은 (더 흔한 일이었듯 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면) 내 침대 발치에 앉으면, 나는 기도를 올리는 신자의 헌신으로 내 의심을 그녀에게 맡겨, 그녀가 나를 그 의심에서 놓여나게 해 주도록 넘겨 버리곤 했다. 저녁 내내 그녀는 거기, 도발하듯 몸을 웅크린 채 큰 고양이처럼 나와 장난을 치며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조그맣고 발그레한 코는, 살집이 있는 편인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날카로움을 그 끝에 더해 주는 요염한 눈짓으로 그녀 스스로 더욱 자그맣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불같고 반항적인 기색을 주었을 법하다. 그녀는 길고 검은 머리채 한 가닥을 장밋빛 밀랍 같은 뺨 위로 흘러내리게 두고, 눈을 반쯤 감고 팔을 펴서,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내게 말하는 듯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녀가 나를 떠날 때가 되어 잘 자라는 인사를 하러 다가오면, 내가 그 탄탄한 목의 양편에 입 맞추던 것은 이제 거의 내 가정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순한 다정함이었다. 그 목은 이제 내게 결코 충분히 그을리거나 주근깨가 박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그 야무진 특징들이 알베르틴 안의 어떤 충직한 너그러움과 어우러지기라도 하는 듯했다.

이번엔 알베르틴이 내 목 양편에 입 맞추며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차례가 되면,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곤두선 깃털 날개처럼 나를 어루만졌다. 그 평화의 두 입맞춤이 비할 데 없이 좋았지만, 알베르틴은 성령의 선물을 건네듯 제 혀를 선사하며 내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내게 노자성체(路資聖體)를 전해 주었고, 콩브레에서 저녁이면 어머니가 내 이마에 입술을 대던 때만큼이나 값진 평온의 양식을 내게 남겨 주었다.

“내일 우리랑 같이 가실래요, 심술꾸러기 양반?” 그녀가 나를 떠나기 전에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 “그야 날씨에 달렸고, 당신한테 달렸죠. 그런데 오늘은 뭐라도 좀 쓰셨어요, 내 귀여운 님? 아니라고요? 그럼 우리랑 같이 안 온 보람이 별로 없었네요. 참, 그런데 내가 들어왔을 때, 당신 내 발소리를 알아채고, 누군지 대번에 맞혔죠?” “물론이지. 내가 어떻게 틀리겠어, 천 명 가운데서라도 내 작은 참새의 깡충거림을 못 알아보겠어? 자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신발을 벗겨 주게 해 줘요, 나한텐 그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 하얀 레이스에 감싸여 이렇게 곱고 발그레하니.”

이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그 관능적인 말투 가운데서도, 우리는 내 할머니와 어머니 특유의 다른 말투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 조금씩 나는 온 친척을 닮아 가고 있었으니, 날씨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쏟던 내 아버지를 닮아 갔던 것이다. 물론 나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였는데, 무릇 일이란 되풀이된다 해도 크게 변주되어 되풀이되는 법이니까. 아버지뿐이 아니라, 나는 점점 더 레오니 고모를 닮아 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알베르틴은, 그녀를 내 통제 밖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내가 문밖으로 나서는 이유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신앙 행위에 파묻혀 지내던 레오니 고모, 쾌락에 그토록 열렬한 나로서는 그녀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단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수도 있었을 그 고모, 평생 어떤 쾌락도 알지 못한 채 온종일 묵주를 굴리며 중얼거리던 그 별난 사람과 나는 겉보기엔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져 보였다. 나는 문학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무능에 괴로워하는 사람이었던 반면, 고모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독서란 그저 즐거운 소일거리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모에게는 온갖 진지한 일이 금지되고 오직 기도로써만 그날을 거룩하게 하는 일요일에도, 심지어 부활절 무렵에도 독서만은 떳떳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날마다 나는 자주 침대에 누워 지내게 만드는 이런저런 몸의 불편을 핑계로 삼긴 했지만, 한 사람이(알베르틴도 아니고, 내가 사랑한 어떤 사람도 아니라, 사랑하는 그 누구보다도 내게 더 큰 힘을 지닌 사람이) 내 안으로 옮겨 와, 때로는 나의 질투 어린 의심을 잠재우거나 적어도 그 의심에 근거가 있는지 알아보러 가지 못하게 막을 만큼 독단적으로 군림하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레오니 고모였다. 내가 아버지를 지나칠 만큼 닮아, 아버지처럼 청우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나 자신이 살아 있는 청우계가 되어 버린 것만도 충분한 노릇이었고, 내가 레오니 고모의 명령에 따라 침실 창가에서, 아니 침대에서까지 집에 머물며 날씨를 살피도록 나를 내맡긴 것만도 충분한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나는 알베르틴에게 말을 걸며, 어느 순간엔 콩브레에서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어머니에게 말하던 투로, 또 어느 순간엔 할머니가 내게 말하던 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나이를 넘어서면, 우리였던 그 아이의 넋과, 우리가 거기서 비롯된 죽은 이들의 넋이 찾아와 저마다의 보물과 재앙을 우리에게 한 움큼씩 안겨 주며, 우리가 지금 느끼는 새로운 감정에 함께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 감정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옛 모습을 지워 버리며 그들을 하나의 독창적인 창조물로 다시 빚어낸다. 그리하여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나의 온 과거가,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내 부모와 친척들의 과거가, 알베르틴을 향한 나의 불순한 사랑에, 자식으로서의 정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정이기도 한 애정의 매혹을 뒤섞어 놓았다. 우리는 삶의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토록 먼 길을 지나와 우리 둘레에 모여든 우리의 온 친척을 손님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알베르틴이 내 말을 따라 내가 그녀의 신발을 벗기도록 허락하기 전에, 나는 그녀의 슈미즈를 벌렸다. 봉긋이 솟은 그녀의 작은 두 젖가슴은 어찌나 둥근지, 그녀 몸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마치 과일처럼 거기서 익어 오른 듯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배는(감실에서 내려진 조각상에 박아 놓은 쇠꺾쇠로 흠집을 낸 듯 남자의 그곳이 상해 있는 자리를 감추고 있었는데) 두 넓적다리가 만나는 곳에서, 해가 진 뒤의 지평선만큼이나 고요하고, 평온하며, 수도원처럼 적막한 곡선을 이루는 두 판막으로 닫혀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내 곁에 누웠다.

오, 남자와 여자의 웅장한 자태여, 세상의 첫 시대의 순진함 속에서, 진흙의 겸허함으로, 창조가 갈라놓은 것을 다시 하나로 잇고자 하는 그 자태여, 그 안에서 이브는 제 곁에서 깨어난 남자 앞에 놀라며 순종하고, 그 남자 또한 아직 홀로, 자기를 빚으신 하느님 앞에 그러하다. 알베르틴은 검은 머리 뒤로 두 팔을 포갰고, 봉긋한 허리며, 위로 뻗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굽어 도는 백조의 목처럼 휘어져 놓인 다리를 드러냈다. 그녀가 완전히 옆으로 누웠을 때에만 보이는 그 얼굴의 어떤 면(정면에서 보면 그토록 선하고 고운 얼굴이었건만)을 나는 견딜 수 없었으니, 레오나르도의 몇몇 캐리커처에서처럼 매부리코를 하고서, 내 집 안에 있다면 나를 소름 끼치게 했을 밀정의 그 잔꾀와 잇속에 대한 탐욕, 교활함을 드러내는 듯했고, 그 옆얼굴이 그것을 폭로하는 성싶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알베르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그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착하게 굴어요, 내일 안 나가면 일하겠다고 약속해요.” 슈미즈를 걸치며 내 연인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아직 실내복은 입지 마.” 때로 나는 결국 그녀 곁에서 잠들어 버렸다. 방이 추워져서 장작을 더 넣어야 했다. 나는 머리맡에서 초인종 줄을 찾아보았지만, 정작 그것이 걸려 있는 두 막대 사이만 빼고 구리 막대를 하나하나 차례로 더듬은 끝에 찾지 못했고, 프랑수아즈가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알베르틴에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다시 와 봐, 초인종을 못 찾겠어.”

위안을 주는 순간들, 겉보기엔 즐겁고 순진무구하지만, 그 안에 재앙의 결코 짐작지 못한 가능성이 우리 안에 쌓여 가는 순간들이었다. 바로 그 가능성이 연애의 삶을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것으로 만드니, 연애란 가장 눈부신 순간들 뒤에 가늠할 수 없는 유황과 불의 비가 쏟아지는 삶이요,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그 참변에서 교훈을 끌어낼 용기도 없이, 파국 말고는 아무것도 솟아날 수 없는 그 분화구의 비탈 위에 다시 짓기 시작하는 삶이다. 나는 제 행복이 오래가리라 여기는 모든 이처럼 태평했다.

바로 이 위안이 슬픔을 낳는 데 꼭 필요했기에, 그리고 게다가 그 슬픔을 달래려고 이따금 되돌아오기에, 사람들은 한 여인이 자기에게 베푸는 다정함을 자랑스러워할 때 서로에게,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심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죄다 따져 보면 그 친밀함의 한복판에는, 세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은밀히, 혹은 이런저런 물음과 캐묻는 말로 본의 아니게 드러나는 고통스러운 불확실함이 늘 도사리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앞선 위안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뒤에도 간헐적인 위안이라야 고통을 견딜 만하게 하고 파국을 막아 주므로, 문제의 그 여인과 함께 나누는 삶이 어떤 은밀한 지옥일 수 있는지를 감추는 그들의 태도, 곧 자기들이 소중히 여기는 척하는 친밀함을 과시하듯 드러내기에까지 이르는 그 감춤은, 하나의 진정한 관점을, 원인과 결과의 보편적인 과정을, 슬픔의 산출이 가능해지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알베르틴이 집 안에 있고, 내일도 나와 함께이거나 앙드레의 보호 아래가 아니면 외출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함께 나누는 삶의 이런 습관들, 나의 존재를 규정하며 알베르틴 말고는 아무도 그 안에 들어올 수 없던 이 큰 윤곽, 또한 (아직 나 자신도 알지 못하던, 오래 뒤에야 세워질 기념비적 건축물을 위해 건축가가 그려 놓은 도면처럼, 장차 다가올 내 삶의 계획 속에서) 다른 선들과 나란하지만 훨씬 더 광대한, 외딴 은둔처처럼 내 앞날의 사랑들의 다소 뻣뻣하고 단조로운 공식을 내 안에 밑그림으로 그려 넣던 그 더 먼 선들, 이 모든 것은 사실 발베크의 그날 밤에 그려진 것이었다. 그날 밤 그 작은 전차 안에서, 알베르틴이 자기를 키운 사람이 누구인지 내게 털어놓은 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어떤 영향들에서 떼어 놓고, 앞으로 며칠 동안은 그녀가 내 시야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지나 이 습관들은 기계적인 것이 되었지만, 역사가들이 그 뜻을 캐내려 애쓰는 저 원시의 제의(祭儀)들처럼, 극장에도 더 이상 가지 않을 만큼 밀고 나간 이 은둔의 삶으로 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그 기원이 어느 저녁의 불안이었으며, 그 불행한 어린 시절을 내가 알게 된 그 처녀가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유혹에 몸을 내맡길 수 있는 일이 없도록, 뒤이은 며칠 동안 내 스스로에게 그것을 증명해야 했던 필요였다고 말할 수도 있었으리라. 이제 나는 아주 드물게만 이런 가능성들을 떠올렸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내 의식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게 마련이었다. 내가 날마다 그것들을 부수고, 혹은 부수려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다른 많은 뺨보다 조금도 더 아름다울 것 없는 그 뺨에 입 맞추는 일이 내게 위안이 되었던 이유였음이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깊은 육체적 매혹의 밑바닥에는 위험의 항구적인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만일 그녀와 함께 외출하지 않으면 일에 매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침이 되면, 마치 우리가 잠든 틈을 타 집이 기적처럼 날아오르기라도 한 듯, 나는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날씨 속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낯선 나라에 막 발을 디뎌 그 조건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하는 순간에 곧바로 일을 시작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데 내게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다른 나라였다. 나의 게으름조차, 그것이 걸친 새로운 형상 아래에서, 내가 어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으랴?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