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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⑧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때로, 누구 말로나 도무지 가망 없는 날씨인 날이면,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리는 비 한복판에 자리한 집 안에 그저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바다 항해의 미끄러지는 매혹과, 마음을 달래는 고요와, 그 흥취가 고스란히 있었다. 또 어떤 때, 맑은 날이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은 나무 등걸을 두르듯 빛과 그림자가 내 둘레에서 노닐게 두는 일이었다.

또 어떨 땐, 이른 아침 예배자들처럼 드문드문한, 이웃 수녀원 종의 첫 타종 소리 속에서, 그 종소리가 팔랑이는 눈발로 어두운 하늘을 겨우 희끗하게 물들이다 따뜻한 바람에 녹아 흩어질 무렵, 나는 저 사납고 어수선하면서도 유쾌한 날들 가운데 하루임을 알아차렸다. 이따금 지나가는 소나기에 젖었다가 한 줄기 바람이나 한 가닥 햇살에 마른 지붕들이 구구 우짖는 낙숫물을 떨구고, 바람이 다시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지붕들이 슬레이트의 비둘기 가슴빛을 반들반들 윤내 준 한순간의 햇빛 속에서 깃을 다듬는 그런 날이었다. 날씨의 변덕과 대기의 소요, 폭풍이 어찌나 많이 들어찬 하루인지, 게으른 사람도 그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고 느끼지 않으니, 자기를 대신하듯 어떤 의미에서 그를 대리하여 대기가 펼쳐 보이는 그 활동에 그가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 날들은, 교실을 빼먹고 달아난 학생에게도 텅 빈 것으로 보이지 않는 혁명이나 전쟁의 시절과 닮았다. 법원 앞을 서성이거나 신문을 읽음으로써, 그 학생은 배우지 않은 학과 대신에,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어떤 지적인 소득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핑곗거리를 찾은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 날들은, 우리 삶에 어떤 예외적인 위기가 닥쳐, 여태 아무것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만일 그 위기가 다행히 끝난다면 부지런한 습관을 얻게 되리라 상상하는 그런 날들에 견줄 만하다. 이를테면 유난히 위험한 조건에서 치러질 결투를 향해 그가 나서는 아침이 그렇다. 그러면 그는, 어쩌면 그 목숨을 막 빼앗기려는 순간에, 어떤 중요한 일을 시작하는 데 쓸 수도 있었을, 아니 그저 즐거움을 누리는 데 쓸 수도 있었을, 그러나 조금도 쓰지 못한 삶의 가치를 문득 깨닫는다. “죽지만 않는다면,” 그는 속으로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당장 일에 매달릴 텐데, 게다가 실컷 즐기기도 할 텐데.”

과연 삶은 문득 그의 눈에 더 높은 가치를 띠게 되니, 그가 평소에 삶에서 끌어내던 그 하잘것없는 것 대신, 삶이 줄 수 있어 보이는 모든 것을 그가 삶에 쏟아 넣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제 경험이 가르쳐 준 대로 자기가 만들기 십상이던 그 모습, 곧 그토록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빛 속에서 바라본다! 그 순간 삶은, 일과 여행과 등산으로, 그리고 결투의 치명적인 결말이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그가 스스로 되뇌는 온갖 즐거운 것들로 가득 차오른다. 정작 그것들은 결투가 화제에 오르기도 전에, 결투가 없었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었을 나쁜 습관들 탓에 이미 불가능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그는 생채기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오지만, 즐거움에도, 나들이에도, 여행에도, 한순간 죽음에 영영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던 그 모든 것에도, 여전히 똑같은 걸림돌을 마주하고 만다. 그에게서 그것들을 빼앗는 데는 삶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로 말하자면, 예외적인 상황이란 그 사람 안에 이미 있던 것을, 부지런한 자에게는 부지런함을, 게으른 자에게는 게으름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법이어서, 그는 휴가를 얻는다.

나는 그를 본받아, 오래전에 세웠으나 그사이의 나날을 저마다 없는 것으로 여겨 온 탓에 마치 어제 세운 듯싶던,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첫 결심 이래로 늘 해 오던 대로 했다. 이날도 나는 비슷하게 다루어, 소나기와 쏟아지는 햇살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내면서, 내일부터는 일을 시작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종소리의 그 황금빛 가락은 (꿀이 그러하듯) 그저 빛만을 머금은 것이 아니라, 빛의 감각을, 그리고 설탕에 절인 과일의 그 나른한 맛까지 머금고 있었다(콩브레에서 그 소리가 치워진 저녁 식탁 위를 말벌처럼 이따금 맴돌곤 했기 때문이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이날, 밤이 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더위를 막으려 바깥 덧문을 닫아 두는 것처럼, 허락된, 으레 그럴 만한, 몸에 이로운, 즐거운, 철에 맞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발베크에 갔을 무렵, 밀려드는 물결의 푸르스름한 흐름 속에서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곤 하던 것도 바로 이런 날씨에서였다. 오늘 나는 얼마나 더 온전히 알베르틴을 소유하고 있는가.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 울림의 구(球) 위에, 어찌나 서늘하고, 습기나 빛을 그토록 그득 실은 판(板)을 얹는지, 그것은 마치 앞 못 보는 이를 위한 옮겨 적기 같기도 했고, 달리 말하자면 비의 매혹이나 햇살의 매혹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 같기도 한 날들이 있었다. 어찌나 그러한지, 그 순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운 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옮겨 놓일 수 있으며, 오로지 들리기만 하는 우주도 다른 우주 못지않게 다채로울 수 있으리라고. 마치 배를 탄 듯 하루하루 물길을 거슬러 느긋이 올라가며, 내가 고르지도 않았고 조금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리고 내 마음이 내가 마음대로 고를 자유도 주지 않은 채 하나씩 차례로 내밀어 보이는, 끝없이 변해 가는 황홀한 기억들의 행렬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이어진 넓은 물 위로 햇살 속 나의 산책을 하염없이 이어 갔다.

발베크의 그 아침 연주회들은 시간상 먼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비교적 최근의 순간에, 나는 알베르틴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실은 도착한 뒤 첫 며칠 아침에는 그녀가 발베크에 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그것을 알았던가? 아, 그래, 에메에게서였다. 오늘처럼 화창하고 볕 좋은 날이었다. 그는 나를 다시 보게 되어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틴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 그녀가 발베크에 있다고 내게 말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아! 그는 그녀와 마주쳤고, 그녀의 몸가짐이 좋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순간, 에메가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관점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것을 되짚어 보자, 여태껏 이 잔잔한 물 위를 흐뭇하게 항해하던 내 상념들이, 마치 내 기억의 이 지점에 음험하게 부설된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기뢰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별안간 터져 버렸다. 그는 그녀와 마주쳤고, 그녀의 몸가짐이 좋지 않다고 여겼다고 내게 말했다. 몸가짐이 좋지 않다니, 그가 뜻한 바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천박한 태도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으니, 미리 그의 말을 반박하려고 그녀가 더없이 세련되었다고 잘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어쩌면 그는 고모라의 몸가짐을 뜻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또 다른 처녀와 함께였고, 어쩌면 서로 허리에 팔을 두른 채 다른 여자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내 앞에서 알베르틴이 취하는 것을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몸가짐”을 정말로 드러내고 있었는지도. 그 또 다른 처녀는 누구였고, 에메는 어디서 그녀를, 이 가증스러운 알베르틴을 마주쳤던 것일까?

나는 에메가 내게 한 말을 정확히 떠올려 보려 애썼으니,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바를 가리키게 될 수 있는지, 아니면 그가 그저 예사로운 태도 이상을 뜻한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보려 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물어본들 헛일이었다, 그 물음을 던지는 사람과 그 기억을 내놓아 줄 사람이, 아아, 한순간 둘로 갈라졌으되 내 됨됨이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한 나 자신, 동일한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물어도 답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고, 나는 새로 알게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뱅퇴유 을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의심에서 태어난, 내가 앓고 있던 질투의 발작 또한 새로운 것이었으니, 아니 차라리 그것은 그 의심의 연장이자 확장일 뿐이었다. 그것은 무대가 같았는데, 이제 그 무대는 몽주뱅이 아니라 에메가 알베르틴을 마주쳤던 그 길이었고, 그 대상은 그날 알베르틴과 함께 있던 여자가 그중 하나일 법한 여러 여자친구였다. 그것은 어쩌면 엘리자베트라는 여자였거나, 아니면 어쩌면 알베르틴이 카지노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척하면서 거울로 지켜보던 그 두 처녀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필시 그들과, 그리고 블로크의 사촌 에스테르와도 관계를 맺어 왔으리라. 그런 관계가 제삼자를 통해 내게 밝혀졌다면 나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했겠지만, 그것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었던 만큼, 나는 그 고통을 무디게 하려고 충분한 불확실함을 덧보태 두는 데 마음을 썼다.

우리는 날마다, 의심이라는 탈을 쓴 채, 우리가 배신당하고 있다는 바로 이 생각을 엄청난 분량으로 흡수해 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쿡 찌르는 한마디 말의 바늘로 주사된다면 극히 미량으로도 목숨을 앗을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바로 그 때문에, 그리고 자기 보존 본능이 살아남은 덕분에, 그 똑같은 질투하는 남자가 아무 해롭지 않은 세세한 일들을 근거로 삼아 가장 끔찍한 의심을 서슴없이 지어내는 것이니, 다만 어떤 증거가 자기 앞에 제시될 때마다 그 증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 어쨌거나 사랑은, 류머티즘이 앓는 이에게 잠깐의 소강을 허락하고는 곧 간질 같은 두통으로 대체되는 저 소질성(素質性) 질환들처럼, 낫지 않는 병이다. 나의 질투 어린 의심이 가라앉으면, 나는 알베르틴이 내게 다정하게 굴지 않은 것을, 어쩌면 앙드레에게 나를 놀림감으로 삼은 것을 원망하게 되었다. 앙드레가 우리의 대화를 죄다 옮겼다면 그녀가 품었을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섬뜩해졌고, 앞날이 검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이 침울한 기분은, 새로운 질투의 의심이 나를 또 다른 탐색으로 내몰거나, 아니면 반대로 알베르틴이 애정을 드러내 보여 나의 실제 처지 따위가 내게 하찮게 여겨질 때에야 비로소 나를 떠났다. 그 처녀가 누구든 간에, 나는 에메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만나 보려 애써야 했고, 그런 다음 알베르틴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고백을 들어 그의 진술을 확인해 보아야 했다. 그동안, 그 여자가 블로크의 사촌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 나는, 내 속셈은 꿈에도 모르는 블로크 본인에게, 그저 그녀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아니 될 수 있으면 그녀와 만나게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질투는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도시와 길을 알고 싶어 안달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앎에 대한 갈증이어서, 그 덕분에 우리는 여기저기 동떨어진 갖가지 점들에 관해,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빼고 가능한 모든 관념을 하나씩 차례로 끝내 손에 넣게 된다. 어떤 의심이 일지 않으리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으니, 문득 분명치 않던 한 문장이, 무슨 속셈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졌을 리 없는 어떤 알리바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건만, 사후(死後)의 질투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은 우리가 그녀를 떠나 버린 뒤에야 비로소 태어나는, 문지방의 질투다. 어쩌면, 여러 욕망을 한꺼번에 가슴속에 품어 기르던 나의 버릇, 곧 가정교사를 대동하고 내 창 밑을 지나가는 것을 보곤 하던 그런 양갓집 처녀에 대한 욕망, 그리고 특히 생루가 내게 언급했던, 창가(娼家)를 드나든다는 그 처녀에 대한 욕망, 어여쁜 시녀들에 대한, 특히 퓌트뷔스 부인의 하녀에 대한 욕망, 이른 봄에 시골로 내려가 산사나무와 꽃핀 사과나무와 바다의 폭풍을 다시 보고 싶은 욕망, 베네치아에 대한 욕망, 일에 매달리고 싶은 욕망,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 어쩌면 이 모든 욕망을 그중 어느 하나도 달래지 않은 채 쌓아 두면서, 언젠가는 그것들을 채우기를 잊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으로 만족하던 버릇, 어쩌면 이미 여러 해 묵은 이 버릇, 곧 샤를뤼스 가 “미루기”라는 이름으로 나무라곤 하던 끝없는 뒤로 미루기의 버릇이, 내 안에 어찌나 널리 퍼졌던지 나의 질투 어린 의심마저 그 지배 아래 두어, 언젠가는 반드시 알베르틴에게서 그 처녀에 관한, 어쩌면 그 처녀들에 관한(이야기의 이 부분은 내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이고, 지워졌으며, 말하자면 사라져 버렸다) 에메가 그녀와 마주쳤을 때의 해명을 받아 내고야 말리라고 마음속에 새겨 두게 하면서도, 그 해명 또한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아무튼 나는 오늘 저녁에는 내 연인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참이었으니, 그녀가 나를 질투에 찬 사람으로 여겨 언짢아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튿날 블로크가 자기 사촌 에스테르의 사진을 내게 보내오자, 나는 서둘러 그것을 에메에게 부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날 아침 알베르틴이 어떤 쾌락을, 그것이 정말로 그녀를 지치게 했을 법한 쾌락을 내게 거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아껴 두려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오늘 오후에? 누구를 위해?

이렇게 하여 질투는 끝이 없으니, 설령 사랑하던 대상이, 이를테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제 행동으로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 없게 되더라도, 어떤 사건보다도 나중에 생겨난 사후의 기억들이, 그것들 역시 사건이기라도 한 듯 문득 우리 마음속에 형체를 갖추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태껏 우리가 제대로 헤아려 본 적 없고, 하찮아 보이던, 그러나 어떤 바깥의 행위도 없이 오로지 그것들을 곱씹은 우리 자신의 사색만으로도 새롭고 무서운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우리에게는 그녀가 곁에 있어 줄 필요도 없으니, 방 안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비록 그녀가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 연인이 우리를 저버린 새로운 배신이 드러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에서, 일상에서처럼 앞날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흔히 앞날이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과거마저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오래 뒤에야 발견하는 과거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우리 안에 쌓아 두었다가 문득 그 풀이하는 법을 알게 되는 과거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제 오후가 저녁으로 기울어 가는 지금, 내가 절실히 바라던 위안을 얻으려 알베르틴이 곁에 있어 주기를 청할 수 있는 시각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나는 무척 기뻤다. 안타깝게도, 뒤이은 저녁은 이 위안이 내게 베풀어지지 않는 저녁, 알베르틴이 밤 인사로 나를 떠날 때 건네는 입맞춤이, 여느 때의 입맞춤과는 사뭇 다르게, 오래전 어머니가 나를 언짢아하여 내가 감히 그녀를 부르지도 못하면서도 잠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던 날들에 어머니의 입맞춤이 나를 달래 주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나를 달래 주지 못하는 그런 저녁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그런 저녁이란, 알베르틴이 이튿날을 위해 내가 알기를 바라지 않는 어떤 계획을 세워 둔 저녁이었다. 만일 그녀가 내게 털어놓았더라면, 나는 그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알베르틴 말고는 아무도 내게 불어넣을 수 없었을 열의를 쏟았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내 방 문지방을 미처 넘기도 전에, 아직 모자나 토크를 쓴 채로, 나는 그 알 수 없는, 안절부절못하는, 필사적이고 굽힐 줄 모르는 욕망을 이미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녁들이야말로, 내가 더없이 애틋한 마음으로 그녀의 귀가를 기다리고, 더없이 따뜻한 애정으로 그녀의 목을 끌어안기를 고대하던 저녁이기 일쑤였다.

아, 부모님과 자주 겪었던 그 오해들, 사랑이 넘쳐 그분들을 껴안으려 달려가던 순간에 차갑거나 언짢은 모습으로 나를 맞던 그 오해들도,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이런 오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의 괴로움은 훨씬 덜 표면적이고, 훨씬 견디기 어려우며, 마음의 더 깊은 지층에 자리를 튼다. 그렇지만 이날 저녁 알베르틴은 마음속에 품은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이튿날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가려 한다는 것을 곧 알아챘는데, 그 방문 자체라면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목적은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어떤 앞날의 즐거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그 방문에 그토록 큰 의미를 둘 리 없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나에게 거듭 다짐할 리 없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알파벳의 글자들을 일련의 기호로 여긴 뒤에야 비로소 표음문자를 쓰게 된 저 민족들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진짜 삶과 생각을, 그들이 제 뜻으로 자진해서 내게 건네는 직접적인 진술에서만 찾다가, 그것이 없을 때는 도리어, 진리의 이성적·분석적 표현이 아닌 증거에만 의미를 두게 되었다. 말 그 자체는, 당황한 사람의 뺨에 갑자기 피가 몰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갑작스러운 침묵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가 아니면 나를 깨우쳐 주지 못했다.

어떤 부수적인 한마디는(가령 캉브르메르 가 내가 ‘문학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쓴 말처럼, 그는 전에 내게 말을 건넨 적이 없다가 자신이 베르뒤랭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를 돌아보며 “아니, 보렐리도 거기 있었지요!”라고 했다) 화자가 입 밖에 내지 않은 두 관념이 뜻하지 않게, 때로는 위험하게 맞닿아 불꽃을 일으키는데, 나는 알맞은 분석법이나 전기분해법을 써서 그 한마디에서 그 관념들을 뽑아낼 수 있었고, 그것은 긴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일러 주었다.

알베르틴은 이따금 대화 속에 그런 값진 합성물 하나둘을 내비쳤고, 나는 서둘러 그것을 ‘처리’해 또렷한 관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연인에게 가장 끔찍한 재앙 가운데 하나는, 실험과 염탐만이, 있을 수 있는 온갖 실현 가운데 오직 그것만이 알게 해 줄 세부들은 그토록 알아내기 어려운 반면, 진실 그 자체는 파고들거나 그저 본능으로 느끼기는 쉽다는 점이다.

발베크에서 나는 그녀가 우리 곁을 지나가는 어떤 처녀들에게 날카롭고 오래 머무는 시선을, 마치 살갗이 맞닿는 것 같은 시선을 던지는 것을 자주 보았고, 그런 다음 내가 그 처녀들을 아는 사이면 그녀는 내게 “저 애들더러 우리랑 같이 가자고 할까요? 나는 저 애들한테 못되게 굴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분명 그녀가 내 성격을 읽어내는 데 성공한 뒤로는, 누구를 불러 달라는 청도, 한마디 말도, 곁눈질 한 번조차 없었으니, 그녀의 눈은 대상을 잃고 말이 없어졌으며, 얼굴 나머지의 멍하고 텅 빈 표정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자석 같은 그 방향 틀기가 그러했던 만큼이나 많은 것을 드러냈다. 이제 나는 그녀를 나무랄 수도, 그녀가 그토록 하찮고 시시하다고 잘라 말할 만한 일들을 캐물을 수도 없었으니, 그런 것들은 내가 침소봉대하는 즐거움 하나만으로 마음속에 쌓아 둔 일들이었다. “왜 방금 지나간 저 애를 뚫어져라 봤소?” 하고 말하기도 어지간히 어렵지만, “왜 저 애를 뚫어져라 보지 않았소?” 하고 말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알았어야 했다, 만일 내가 시선 하나에 담긴 온갖 사소한 것들보다 알베르틴의 단언을 믿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 시선이, 그리고 그녀의 말 속 이런저런 모순이 증명해 주던 그 사소한 것들을, 그 모순은 내가 그녀 곁을 떠난 지 한참 뒤에야 겨우 알아차릴 때가 많았고, 밤새도록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으며, 다시는 그녀에게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이따금 주기적으로 내 기억을 찾아와 경의를 표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발베크의 해변이나 파리의 거리에서 그런 은밀하거나 곁눈질하는 시선을 두고, 나는 그 시선을 자아낸 사람이 그저 지나가던 그 순간의 욕망의 대상일 뿐인지, 아니면 오랜 지인이거나, 혹은 누군가 그녀에게 그저 이름만 들먹인 어떤 처녀인지 스스로 물어보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누가 그녀에게 그런 사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놀라웠으니, 알베르틴이 알고 싶어 할 만한 이와는 도무지 딴판인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고모라는 우리가 가장 뜻밖의 곳에서 주워 모은 조각들로 짜맞춘 조각 그림 퍼즐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는 리브벨에서 열 명의 여자가 모인 큰 만찬 자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들 모두를 나는 어쩌다 알고 있었고, 적어도 이름만은 알았으며, 서로 더할 나위 없이 딴판인 여자들이었건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져, 그토록 잡다하게 섞였으면서도 그토록 한결같은 무리는 여태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거리에서 우리가 지나친 처녀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알베르틴은 늙은 사람에게는, 남자든 여자든, 결코 그런 뚫어질 듯한 시선을 던지지 않았고, 반대로 그토록 사려 깊은 태도로,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오쟁이 진 남편들도 실은 모든 것을 안다. 하지만 질투의 소동을 벌이려면 더 정확하고 풍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질투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어떤 거짓의 성향을 발견하게 해 준다면, 그 여인이 우리가 질투한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 성향은 백 배로 불어난다. 그녀는 거짓말을 한다(전에는 우리에게 결코 하지 않던 정도로), 연민에서든, 두려움에서든, 아니면 우리의 캐물음에서 본능적으로 계획적인 도피로 물러서기 때문이든. 물론 처음부터 가벼운 여자가 자기에게 반한 남자의 눈에는 덕의 화신인 척 자세를 취하는 사랑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되는 두 시기로 이루어지는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은가? 첫 시기에 여자는 거의 저절로, 조금씩 수정을 곁들이며, 관능적 쾌락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그것이 이끌어 온 흥청망청한 생활을 이야기하는데, 그 모든 것을 그녀는 나중에 가서, 자기가 질투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음을 느꼈을 때, 바로 그 같은 남자에게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인하게 된다. 그는 그 첫 고백들의 나날을 아쉬움에 젖어 떠올리기 시작하지만, 그 기억은 그럼에도 그를 괴롭힌다. 만일 여자가 그런 고백을 계속했더라면, 그가 날마다 헛되이 뒤쫓던 그녀 행실의 비밀을 거의 저 혼자 힘으로 그에게 넘겨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얼마나 큰 내맡김이며, 얼마나 큰 믿음이고 우정이겠는가. 그를 배신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해도, 적어도 그녀는 벗으로서 그를 배신하며, 자기 쾌락을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를 거기에 끌어들이는 셈일 텐데. 그리고 그는 그들 사랑의 초기가 약속하는 듯 보이던, 그러나 뒤이은 일들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그런 삶을 아쉬움에 젖어 떠올리며, 그 사랑을 더없이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형편에 따라 최후의 이별을 피할 수 없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때로는 내가 알베르틴의 거짓을 판독해 낸 그 글자가, 표의문자는 아니어도 그저 거꾸로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날 저녁 그녀는 거의 흘려듣게 할 셈으로, 무심한 어조로 내게 이런 전갈을 던졌다. “어쩌면 내일 베르뒤랭가에 갈지도 몰라요, 갈지 안 갈지 통 모르겠어요, 그다지 가고 싶지도 않고요.” 이것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유치하게 뒤바꾼 철자 수수께끼였다. “내일 베르뒤랭가에 갈 거예요, 그건 완전히 정해진 일이에요, 나는 그 방문을 더없이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이 겉으로 드러난 망설임은 단호한 결심을 가리켰고, 그 방문을 내게 알리면서도 그 중요성을 깎아내리려는 것이었다. 알베르틴은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이야기할 때면 늘 불확실한 어조를 취했다. 내 결심도 그에 못지않게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이 베르뒤랭 부인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손을 썼다. 질투란 흔히 사랑의 문제에 적용된, 폭군처럼 굴고 싶은 불안한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아마 아버지에게서 이 갑작스럽고 제멋대로인 욕구를, 곧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마음을 달래는 그 희망 속에서, 그것이 거짓임을 그들에게 폭로해 보이겠다고 마음먹으며 그들을 위협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알베르틴이 내 몰래, 등 뒤에서 어떤 나들이를 계획한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나를 믿고 털어놓았더라면 나로서는 그것을 더 수월하고 즐겁게 해 주려고 세상 무슨 일이든 다 했을 그 나들이를, 나는 그녀를 떨게 하려고 무심한 척, 이튿날 나도 외출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베르뒤랭가 방문을 불가능하게 만들 방향의 다른 나들이들을 알베르틴에게 넌지시 권해 보았는데, 짐짓 꾸민 무관심의 낙인이 찍힌 말투 아래로 나는 내 흥분을 감추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그녀 안에서 반대되는 의지의 전기 충격에 부딪혀 격렬하게 튕겨 나왔고, 나는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인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알베르틴의 눈이, 아주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진 듯 보이는 그런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나는 어찌하여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것은 그날 그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그러면서도 가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려 하는 온갖 장소들 때문이다. 그 눈은 거짓 때문에 언제나 꼼짝 않고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실은 역동적이어서, 정해진, 가차 없이 정해진 만남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지나야 할 거리를 야드나 마일로 잴 수 있는 눈, 자기를 유혹하는 즐거움에 미소 짓기보다는, 그 만남의 자리에 이르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과 낙담의 그늘이 드리운 눈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그대가 손안에 붙잡고 있을 때조차 달아나는 존재다.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그리고 더 잘생긴 다른 이들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그 감정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음을 헤아려야 하며, 그들의 몸에 물리학에서 속도를 나타내는 부호에 해당하는 기호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그들의 하루 계획을 그대가 뒤엎어 놓으면, 그들은 그대에게 숨겼던 즐거움을 털어놓는다. “다섯 시에 아무개랑, 내 가장 소중한 벗이랑 차를 마시러 가고 싶었단 말이에요.” 좋다, 만일 여섯 달 뒤에 그대가 그 사람을 알게 된다면, 그대가 계획을 뒤엎어 놓은 그 처녀가, 덫에 걸려 벗어나려고, 그대가 자기를 놓아주도록, 매일 그대가 보지 못하는 그 시각에 소중한 벗과 이렇게 차를 마시곤 한다고 그대에게 털어놓았던 그 처녀가, 그 사람 집에는 단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고, 둘이 함께 차를 마신 적도 결코 없으며, 오히려 그 처녀는 자기 시간이 온통 다름 아닌 그대에게 차지되어 있다고 둘러대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차를 마시러 갔다고 고백한, 차를 마시러 가게 해 달라고 그대에게 애원한 그 사람은, 부득이해서 둘러댄 그 핑계는, 진짜 사람이 아니었고, 따로 누군가가,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다른 것, 무엇? 누군가, 누구?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