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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⑨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아, 만화경 같은 그 눈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떠나가며 우울의 그늘에 잠겨, 어쩌면 우리에게 거리를 재게 해 줄지언정 방향은 가리켜 주지 않는다. 가능성의 끝없는 들판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혹여 어쩌다 현실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그것은 가능성의 경계를 너무나 아득히 벗어나 있어서, 우리는 그 경계의 담벼락에 느닷없이 부딪혀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그녀의 움직임과 도주를 증명할 필요조차 없으니, 그저 그것을 짐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우리에게 편지를 약속했기에, 우리는 마음이 놓였고, 더는 사랑에 빠져 있지 않았다. 편지가 오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올 심부름꾼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불안이 새로 태어나고, 사랑도 태어난다. 우리를 파멸로 이끌면서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들 때문에 느끼는 새로운 불안 하나하나가 우리 눈에서 그들의 인격을 얼마간씩 벗겨 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밖의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여기며 고통을 감수하고 있었는데, 문득 우리의 사랑이 우리 슬픔의 함수이며, 우리 사랑이 어쩌면 곧 우리의 슬픔이고, 그 대상은 아주 미미한 정도로만 그 검은 머릿결의 처녀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국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사랑은 어떤 감정이, 곧 그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것을 다시 찾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이 그 안에 스며들었을 때가 아니면,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불안은 몸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것은 몸에 아름다움마저 능가하는 어떤 성질을 더해 주는데, 이것이 바로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들에게는 무심하던 남자들이 우리 눈에는 추해 보이는 다른 여인들에게 미친 듯이 빠져드는 것을 보게 되는 까닭 가운데 하나다. 이런 사람들, 이 달아나는 자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본성과 우리의 불안이 날개를 달아 준다. 그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조차 그들의 눈빛은 이제 곧 날아오르려 한다고 우리에게 일러 주는 듯하다. 날개가 더해 주는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이 아름다움의 증거는, 바로 그 같은 사람이 우리 눈에 어느 때는 날개가 없고 어느 때는 날개가 달린 것으로 번갈아 보인다는 점이다.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하면 우리는 다른 모든 여인을 잊는다. 그녀를 붙잡아 두리라 확신하면 우리는 그녀를 다른 여인들과 견주고, 이내 그 여인들을 그녀보다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이런 확신이 주마다 달라질 수 있으므로, 어느 한 주에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해 희생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다음 주에는 그녀 자신이 희생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렇게 몇 주, 몇 달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한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사랑하기를 그치고 어떤 여인을 잊어본 경험, 모든 남자가 함께 나누는 그 경험으로부터, 사람이 더는 우리의 감정에 스며들 수 없게 되었을 때, 혹은 아직 스며들 수 없을 때, 그 자체로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거니와, 우리가 달아나는 자들에 대해 하는 이 말은 갇힌 자들, 곧 붙잡힌 여인들에게도 똑같이 들어맞으니, 우리는 결코 그들을 소유하지 못하리라 여긴다. 그래서 남자들은 뚜쟁이 여인들을 싫어하는데, 그들이 도주를 거들고 유혹을 부추기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남자들이 갇혀 지내는 여인을 사랑할 때는, 그녀를 감옥에서 나오게 해 자기에게 데려오려고 기꺼이 뚜쟁이 여인에게 기댄다. 우리가 채어 오는 여인들과의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덜 오래가는 까닭은, 그들을 손에 넣는 데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그들이 달아나는 것을 볼지 모른다는 무서움이 그들에 대한 우리 사랑의 전부이기 때문이며, 일단 그들이 남편에게서 채어 오고, 무대의 각광에서 떼어 내지고, 우리를 떠나고 싶은 유혹에서 치유되고, 요컨대 우리의 감정이 무엇이든 그 감정에서 떨어져 나오고 나면, 그들은 오직 그들 자신일 뿐, 다시 말해 거의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그토록 오래 갈망되던 그들은, 그들이 자기를 저버릴까 그토록 두려워하던 바로 그 남자에게 머지않아 버림받고 만다.

어떻게,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이것을 짐작하지 못했던가? 하지만 발베크에서의 첫날부터 나는 이미 그것을 짐작하지 않았던가? 알베르틴에게서 나는, 그 살의 껍질 아래 더 많은 숨은 사람들이 꿈틀거리는 그런 처녀들 가운데 하나를 알아보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아직 갑에 든 카드 한 벌, 우리가 들어가기 전의 대성당이나 극장이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저 광대하고 끊임없이 바뀌는 온 군중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이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욕망과, 관능적 추억과, 절박한 갈구까지도. 발베크에서 나는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으니, 언젠가 내가 어떤 자취를, 그것도 거짓 자취를 뒤쫓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좋다! 이것은 내 눈에 알베르틴에게, 이 모든 사람들과 사람들에 대한 욕망과 관능적 추억이 겹겹이 포개져 넘칠 듯 가득 찬 한 존재의 충만함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언젠가 “뱅퇴유 ”이라는 말을 무심코 흘린 마당에, 나는 그녀의 몸을 보려고 그녀의 옷을 벗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을 통해 그녀의 추억과 앞날의 열정적인 밀회로 채워진 그 비망록을 보고 읽고 싶었다.

아마도 가장 하찮을 것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혹은 이 이중성 하나가 모자라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들지 못했던 사람이) 우리에게 그것을 숨길 때, 어찌 그리 느닷없이 엄청난 가치를 띠는가! 고통 그 자체는 반드시 그것을 일으킨 사람에게 사랑이나 증오의 감정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외과의는 우리 몸을 아프게 하면서도 어떤 개인적 감정도 자아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우리에게는 온 세상 전부이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자기가 온 세상 전부라고 얼마 동안 거듭 다짐하던 여인, 우리가 보고 입 맞추고 무릎 위에 앉히기를 즐기던 여인이, 그저 갑작스러운 저항에서 우리가 그녀의 삶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없음을 느끼기만 해도 우리는 놀란다. 그때 실망은 우리 안에 잊혔던 옛 괴로움의 기억을 되살릴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이 여인이 아니라 다른 여인들, 곧 그 배신이 우리 지난 삶의 이정표가 된 여인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사랑이 오직 거짓에 의해서만 일어나고,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우리 고통을 달래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필요에 지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용기로 살기를 바라며, 무슨 수로 손가락 하나 까딱해 죽음에서 스스로를 지키겠는가? 그녀의 거짓과 저항을 발견한 뒤 뒤따르는 무너짐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그녀 삶에 우리보다 더 가까이 얽혀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 우리에게 저항하며 거짓말하는 그녀에게 맞서 그녀 뜻을 거스르려 애쓰고, 이번에는 우리가 속임수를 쓰며, 스스로 미움받는 자가 되는 극단의 처방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일으키는 고통은, 고통받는 자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자세를 바꾸어 헛된 위안을 찾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다.

아, 이런 행동 수단이 없지도 않다! 그리고 불안 하나만으로 생겨난 이런 사랑의 무서움은, 우리가 더없이 하찮은 말들을 우리 우리에 갇힌 채 쉴 새 없이 뒤집고 또 뒤집는다는 데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이런 사랑을 느끼는 상대가 복잡한 방식으로 육체적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경우는 드무니, 우리를 위해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신중한 선호가 아니라 한순간의 불안, 곧 우리 성격의 나약함으로 한없이 늘어지는, 진정제에 굴복할 때까지 저녁마다 그 실험을 되풀이하는 한순간의 불안이기 때문이다.

분명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은, 의지의 나약함 탓에 남자가 떨어질 수 있는 사랑들 가운데 가장 메마른 것은 아니었으니, 그것이 아주 순수한 정신적 사랑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육체의 만족을 주었고, 게다가 총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군더더기였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가 했을 법한 총명한 말이 아니라, 그녀의 행실에 대한 의심을 내 안에 불러일으킨 어떤 우연한 한마디였다. 나는 그녀가 이 말을 했는지 저 말을 했는지, 어떤 어조로, 어느 순간에, 나의 어떤 말에 응해서 했는지 떠올리려 애썼고, 나와 나눈 그녀 대화의 온 장면을 재구성하고, 그녀가 어느 순간에 베르뒤랭가를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는지, 나의 어떤 말이 그녀 얼굴에 그 언짢은 표정을 불러왔는지 되새기려 애썼다. 더없이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었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알맞은 분위기와 색채를 되살리는 데 나는 이토록 애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이런 불안이 우리가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지경까지 심해진 뒤에도, 우리는 이따금 하룻저녁만은 그것을 완전히 달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정부가 가기로 되어 있는, 그 참된 성격을 우리 마음이 며칠 동안 알아내려 애쓰던 그 모임에, 우리도 함께 초대받고, 우리 정부는 우리 말고는 누구에게도 눈길도 말도 주지 않으며, 우리가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면, 우리는 온갖 불안이 흩어진 채, 오랜 산책 뒤에 오는 깊은 잠 속에서 이따금 누리는 것처럼 완전하고 치유가 되는 안식을 누린다. 그리고 분명 그런 안식은 우리가 비싼 값을 치를 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선 불안을, 그것도 더 비싼 값을 치르면서까지, 일부러 사서 얻지 않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런 한순간의 이완이 아무리 깊다 한들 불안이 언제나 더 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실은 이따금 그 불안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려던 바로 그 말들에 의해 되살아난다. 하지만 대개 우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불안을 갈아치우는 것뿐이다. 우리를 달래려던 문장 속 어느 한마디가 우리 의심을 또 다른 자취로 내닫게 한다. 우리 질투의 요구와 우리 맹신의 눈멂은,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이 결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녀가 제 입으로, 어떤 남자는 자기에게 벗 이상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맹세할 때, 그녀는 우리가 꿈에도 의심하지 못한 것, 곧 그가 자기 벗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어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한다. 그녀가 자기 진심의 증거랍시고, 바로 그날 오후에 그와 함께 차를 마셨다고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마다 보이지 않던 것, 의심조차 못 하던 것이 우리 눈앞에 형체를 갖춘다. 그녀는 그가 자기에게 정부가 되어 달라 청했다고 털어놓고, 우리는 그녀가 그의 수작을 귀담아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녀는 거절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우리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우리는 그녀 이야기가 정말로 사실인지 자문하게 되는데, 그녀가 우리에게 한 여러 말들 사이에, 서술된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진실의 표지가 되는 그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연결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저 끔찍한 경멸의 어조가 있었다. “그 사람한테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라고 했다니까요.” 이것은 여자가 거짓말을 할 때면 어느 계층에서나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거절해 준 것을 고마워하고, 앞으로도 이런 잔혹한 고백을 되풀이하도록 우리의 다정함으로 그녀를 북돋아야 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미 당신한테 수작을 걸었다면, 왜 차 마시자는 초대를 받아들였소?” “그 사람이 나한테 화를 내면서, 내가 자기한테 살갑게 굴지 않았다고 할까 봐서요.” 그리고 우리는 감히, 거절했더라면 그녀가 어쩌면 우리에게 더 살갑게 군 것이 되었으리라고 대꾸하지 못한다.

알베르틴은, 자기 평판을 생각해서 내가 그녀의 연인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하면서 나를 한층 더 불안하게 했으니, “게다가,”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아니라는 건 정말이지 사실이잖아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그 말의 온전한 뜻에서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한 그 모든 일을 그녀가, 자기는 한 번도 정부가 된 적 없다고 내게 맹세하던 다른 모든 남자들과도 똑같이 했다고 여겨야 한단 말인가? 알베르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고 싶다는 이 욕구에 내가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으니, 질베르트의 경우에도 나는 이름이며 사실이며를 알고 싶다는 똑같은 욕구를 느꼈으나 이제는 그것들이 나를 아주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의 행동이 그 자체로는 조금도 더 흥미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첫사랑이란, 그것이 우리 마음에 남겨 놓는 연약한 상태로 뒤이은 사랑들에 길을 터 준다면, 증상과 고통이 같은 만큼 적어도 그것들을 치유할 수단만은 우리에게 마련해 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니 참 묘한 일이다.

어쨌든, 어떤 사실을 알 필요가 있기나 한가? 우리는 숨길 것이 있는 여인들의 거짓됨을, 심지어 그 신중함까지도, 두루뭉술하게나마 미리 알고 있지 않은가? 잘못 알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다 내주고서라도 그들을 입 열게 하고 싶을 때, 그들은 자기 침묵을 덕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공범에게 “나는 아무 말도 안 해. 나를 통해서 누가 그 일을 알게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다짐했으리라 확신한다. 사람은 어떤 이를 위해 자기 재산을, 자기 목숨을 내줄 수도 있으나, 그러면서도 십 년쯤 뒤에는, 더 되든 덜 되든, 자기가 그녀에게 재산을 내주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제 목숨을 지키려 하리라는 것을 뻔히 안다. 그때가 되면 그 사람은 그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다시 말해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어 있을 테니까. 우리를 사람들에게 붙들어 매는 것은 저 수천의 뿌리, 저 헤아릴 수 없는 실오라기들, 곧 지난밤에 대한 우리의 추억, 내일 아침에 대한 우리의 희망,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습관의 저 끊임없는 굴레다. 너그러움에서 돈을 쌓아 두는 구두쇠가 있듯이, 우리도 인색함에서 헤프게 쓰는 낭비꾼이니, 우리가 우리 삶을 바치는 대상은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자기에게 붙들어 맬 수 있었던 우리의 시간, 우리의 나날, 그리고 그것과 견주면 아직 살지 않은 삶, 상대적으로 앞으로의 삶이 우리에게 더 멀고, 더 동떨어지고, 덜 실질적이고, 덜 우리 것으로 보이는 그 온갖 것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 굴레에서 스스로를 풀어내는 일이지만, 그 굴레는 우리 안에 그녀에 대한 일시적인 의무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낳으니, 그 의무 때문에 우리는 그녀에게 잘못 판단될까 두려워 감히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데, 훗날에는 감히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녀는 더는 우리 자신이 아닐 테고, 또 실은 우리가(겉보기의 모순으로 그것이 자살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오직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스스로 의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내가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았다면(이것을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에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과만, 견딜 수 없는 사랑을, 그것이 여인에 대한 것이든, 장소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장소를 구현한 여인에 대한 것이든, 죽여 없애려고 우리와 함께 살게 한 것과만 산다. 정녕 우리는, 또 한 번의 이별이 닥친다면 다시 사랑하기 시작할까 봐 몹시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아직 알베르틴과 이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녀의 거짓말과 그녀의 고백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제를 내게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그녀의 헤아릴 수 없는 거짓말은, 사랑받는다고 여기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저 거짓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과는 별개로 천성이 거짓말쟁이인 데다, 게다가 어찌나 일관성이 없는지, 설령 매번 내게 진실을 말한다 해도, 예컨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한다 해도, 매번 다른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은, 그토록 드물고 그토록 금세 잘려 나가는 것이어서, 과거에 관한 한, 그 고백들 사이에 텅 빈 거대한 간격을 남겼고, 나는 그 온 넓이에 걸쳐 그녀의 삶을 되짚어 가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현재로 말하자면, 내가 프랑수아즈의 무녀 같은 말들을 풀이할 수 있는 한, 알베르틴이 내게 거짓말하는 것은 몇몇 세부에서만이 아니라 통째로였고, “어느 좋은 날” 나는 프랑수아즈가 아는 척하는 것, 내게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 내가 감히 묻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프랑수아즈가 예전에 욀라리를 두고 느꼈던 것과 똑같은 질투에서 그녀는 더없이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을, 어찌나 두루뭉술한지 기껏해야 저 가엾은 포로가(그녀는 여자를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도무지 나 자신으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의 결혼을 더 좋아한다는 지극히 있을 법하지 않은 암시를 전하는 것이려니 짐작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만일 그렇다면, 무선전신 같은 텔레파시 능력이 있다 한들 프랑수아즈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들었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알베르틴의 말은 내게 아무런 확실한 깨우침도 줄 수 없었으니, 그것은 거의 멈추기 직전인 팽이의 색깔들처럼 날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랑수아즈로 하여금 말하게 몰아붙인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증오였던 듯싶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는 내게 말했고, 나는 어머니가 안 계신 틈에 이런 말들을 견뎠다.

“물론 도련님이야 착하시지요, 저는 도련님께 진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아마 내가 자기 고마움에 새로운 빚을 지우도록 하려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이 집은 이제 역병이 든 곳이 되고 말았어요, 착함이 그 안에 사기를 불러들이고, 영리함이 여태 본 적 없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감싸 주고, 세련됨이며 예의범절이며 재치며 무슨 일에서든 품위가, 이 집에서 사십 년을 지낸 저를 부끄럽게 만들며 제멋대로 법을 세우고 안방마님 노릇을 하게 내버려 두니 말이에요, 악덕이, 가장 상스럽고 비열한 모든 것이요.”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에 대해 가장 못마땅해한 것은 우리 식구도 아닌 사람에게서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늙은 하녀의 건강을 해치던 늘어난 집안일의 부담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그녀는 ‘밥값도 못 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며 집안일에 어떤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신경 쇠약과 그 격렬한 증오는 설명이 될 만했다. 분명 그녀는 알베르틴에스테르가 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이것이 프랑수아즈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만이, 그녀를 달래며 우리 늙은 하녀에게 얼마간의 안식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토록 격렬한 증오는 지나치게 혹사당한 몸에서만 비롯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배려보다도 더, 프랑수아즈에게 필요한 것은 잠이었다.

알베르틴은 겉옷을 벗으러 갔고, 나는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앙드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저 가차 없는 신들을 불러냈으나, 그저 그들의 노여움을 돋우는 데 성공했을 뿐이니, 그 노여움은 “통화 중!”이라는 단 한마디로 나타났다. 앙드레는 정말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녀가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리며, 나는 스스로 물었다. 지금 우리 화가들 가운데 많은 이가 십팔 세기의 여인 초상화를, 곧 교묘하게 꾸며진 배경이 기다림, 우울, 관심, 딴생각의 표정을 그려 내기 위한 구실이 되는 그런 초상화를 되살리려 애쓰는 마당에, 어찌하여 우리의 현대판 부셰나 프라고나르 가운데 누구도 아직 편지하프시코드 대신, 전화기 앞에서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 장면을, 곧 듣는 이의 입술에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만큼 한결 더 진실한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는 이 장면을 그리지 않았을까? 마침내 앙드레가 수화기 저편에 나왔다. “내일 알베르틴을 데리러 올 거지?” 하고 나는 물었고, 알베르틴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 게르망트 대공비의 야회가 있던 날 스완이 내게 “오데트를 보러 오게”라고 했을 때 내가 그에게 느꼈던 부러움을 떠올렸으며, 결국 세례명에는, 온 세상의 눈에는, 오데트 자신의 눈에조차도, 오직 스완의 입술 위에서만 이토록 온전히 소유의 뜻을 띠게 하는 무언가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렇게 단 한마디로 요약되는, 다른 사람의 온 존재에 대한 그런 소유의 행위란(나는 사랑에 빠질 때면 늘 느꼈다) 정녕 흐뭇한 일임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실상, 우리가 그 말을 입에 올릴 처지가 되었을 때는, 이미 우리가 더는 마음을 쓰지 않거나, 아니면 습관이 애정의 힘을 무디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즐거움을 고통으로 바꾸어 놓은 뒤다. 거짓이란 아주 사소한 것이어서, 우리는 그것에 그저 미소나 지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그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뜻 없이 그것을 행하지만, 우리 질투는 그것에 상처 입고, 거짓이 감추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흔히 우리 정부는 우리에게 자기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이지 않으려고 저녁을 함께 보내기를 거절하고 극장에 간다). 그러면서도 진실이 감추고 있는 것에는 질투가 어찌 그리 자주 눈이 먼 채 남아 있는가! 하지만 질투는 아무것도 캐낼 수 없으니,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고 맹세하는 그런 여인들은 형장에서라도 자기 참모습을 실토하기를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앙드레에게 그런 어조로 “알베르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알베르틴에게도, 앙드레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사랑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그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사랑이, 우리 눈앞에 누워 있는, 한 인간의 몸속에 갇힌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여긴다. 아, 사랑의 대상은 그 사람이 차지했고 앞으로 차지할 공간과 시간의 온갖 지점으로 뻗어 나간 그 사람이다. 우리가 이런저런 장소, 이런저런 시각과의 그 사람의 접촉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지점에 손댈 수 없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리켜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거기까지 손을 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찾지 못한 채 더듬거릴 뿐이다. 그리하여 불신, 질투, 박해가 생겨난다. 우리는 터무니없는 실마리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진실 곁을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이미 저 성마른 신들 가운데 하나가, 번개처럼 재빠르게 심부름하는 하인들을 거느린 그 신이,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내가 말을 해서가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였다. “여보세요, 아까부터 계속 선을 잡아 놓고 있잖아요, 끊어 버리겠어요.”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앙드레의 존재를 불러내면서, 전화 교환수란 언제나 위대한 시인인 법이라, 그 존재를, 알베르틴의 벗이 사는 집과 동네와 바로 그 삶 자체에 고유한 분위기로 감싸 안았다. “당신이에요?” 하고 앙드레가 물었고, 그 목소리는, 소리를 빛보다 더 빠르게 하는 특권을 지닌 여신에 의해, 눈 깜짝할 새의 속도로 나를 향해 던져졌다. “이봐,” 하고 나는 대답했다, “어디든 좋으니 아무 데나 가, 베르뒤랭 부인 댁만 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알베르틴을 거기서 멀리 떼어 놓아야 해.” “아니, 걔가 내일 거기 가기로 약속했는데.” “아!”

하지만 나는 잠시 대화를 끊고 위협하는 몸짓을 해야 했으니, 프랑수아즈가, 마치 그것이 예방접종만큼이나 불쾌하거나 비행기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라도 되는 양, 전화 거는 법을 배우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그녀가 아무 해도 없이 가로챌 수 있는 대화의 수고를 덜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특히 그녀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싶어 하는 은밀한 대화에 몰두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방으로 들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방을 나갈 때는, 전날부터 거기 놓여 있어서 한 시간쯤 더 그대로 두어도 무방했을 이런저런 것들을 치우느라 꾸물거리고, 침입자의 존재로 열이 펄펄 끓고 교환수에게 ‘끊길까’ 두려워하는 나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장작 하나를 벽난로에 넣느라 지체한 뒤였다. “미안해,” 하고 나는 앙드레에게 말했다, “방해를 받았어. 걔가 내일 꼭 베르뒤랭가에 가야 하는 게 확실해?” “확실해, 하지만 네가 싫어한다고 걔한테 말해 줄 수는 있어.” “아니, 그건 전혀 아니고, 어쩌면 나도 너랑 같이 갈지 몰라.” “아!” 하고 앙드레는 몹시 언짢은 어조로, 그리고 내 뻔뻔함에 놀란 듯이 말했는데, 그 뻔뻔함은 그녀의 반대로 한층 더 부추겨졌다. “그럼 잘 자, 공연히 방해해서 정말 미안해.” “천만에,” 하고 앙드레는 말했고, (요즈음은 전화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그 둘레에 정중한 인사말의 장식적인 의례가 자라났으니, 마치 지난날 다과상 둘레에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네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반가웠어.”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