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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⑩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나도 똑같은 말을, 그것도 앙드레보다 더 진심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니, 나는 그녀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토록 다르다는 것을 전에는 한 번도 알아챈 적이 없다가, 그 소리에 깊이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또 다른 목소리들을, 특히 여인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는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질문의 정확함과 정신의 집중으로 느려졌고, 어떤 것은 말하는 이가 들려주던 이야기의 서정적인 흐름으로 숨 가빠지거나 심지어 순간순간 잦아들었다. 나는 발베크에서 알고 지낸 온갖 처녀들의 목소리를, 그다음에는 질베르트의 목소리를, 그다음에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다음에는 게르망트 부인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떠올렸고, 그것들이 모두 서로 다르며, 저마다 말하는 이에게 고유한 언어로 빚어졌고, 저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옛 화가들이 그린 서너 명의 천사 악사가 낙원에서 벌이는 연주회란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 하고 스스로 되뇌었으니, 나는 온갖 목소리들의 조화롭고 여러 소리로 어우러진 인사가 열씩, 백씩, 천씩 하느님의 옥좌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몇 마디 달래는 말로, 소리의 빠름을 다스리는 그 여신에게, 나의 보잘것없는 말을 위해 그 말을 천둥보다 백 배나 더 빠르게 만들어 주는 권능을 기꺼이 써 준 데 감사했으나, 나의 감사에 대해 나는 통화가 끊기는 것 말고는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

알베르틴이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검은 새틴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옷은 그녀를 더 창백해 보이게 하고, 신선한 공기의 부족과 군중의 공기와 어쩌면 못된 습관으로 시들어 버린, 창백하고 열에 들뜬 파리 여인으로 바꾸어 놓는 효과가 있었으니, 그 눈은 뺨에 어떤 혈색으로도 밝혀지지 않아 한층 더 불안해 보였다.

“맞혀 봐,”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방금 내가 전화로 누구랑 이야기했는지. 앙드레야!” “앙드레요?” 하고 알베르틴은, 그토록 단순한 소식이 도무지 그럴 만하지 않은데도, 놀라움과 격정의 거친 어조로 외쳤다. “지난번에 우리가 베르뒤랭 부인을 만났다고 걔가 네게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베르뒤랭 부인? 기억 안 나는데,” 하고 나는, 이 만남에 무심한 척하고, 알베르틴이 이튿날 어디로 가는지 내게 일러 준 앙드레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마치 딴생각을 하고 있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앙드레가 도리어 나를 저버리고 있지 않은지, 이튿날 알베르틴에게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가 베르뒤랭가에 가는 것을 막아 달라 부탁했다고, 그리고 이미 여러 번 비슷한 청을 했다고 일러바치지 않으리라고 내가 어찌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아무것도 옮긴 적이 없다고 내게 다짐했으나, 이 단언의 가치는, 얼마 전부터 알베르틴의 얼굴이, 그토록 오랫동안 내게 두던 그 신뢰를 더는 내비치지 않게 되었다는 인상으로 내 마음속에서 상쇄되어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알베르틴과 이렇게 다투기 며칠 전에, 나는 이미 그녀와 한바탕 다툰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앙드레가 있는 자리에서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앙드레는, 알베르틴에게 좋은 충고를 해 주면서도, 늘 나쁜 것을 넌지시 부추기는 듯 보였다. “이봐, 그렇게 말하지 마, 입 다물어,” 하고 그녀는, 마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절정에 있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그녀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하인을 하나하나 차례로 내보내게 만들던 저 독실한 가정부들의 메마른 산딸기 빛을 띠었다. 내가 결코 입 밖에 내지 말았어야 할 온갖 비난을 알베르틴에게 퍼붓는 동안, 앙드레는 마치 보리사탕 한 덩이를 흐뭇하게 빨아 먹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다정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봐, 티틴, 나랑 가자. 있잖아, 나는 네 사랑스러운 언니잖아.” 나는 이 다소 느끼한 연출에 화가 났을 뿐 아니라, 앙드레가 정말로 알베르틴에게 자기가 내보이는 그런 애정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 물었다. 나보다 앙드레를 훨씬 더 잘 아는 알베르틴이, 내가 그녀에게 앙드레의 애정을 정말 확신하느냐고 물을 때면 늘 어깨를 으쓱하며, 세상에 그 누구도 자기를 그보다 더 아끼지 않는다고 늘 대답하던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앙드레의 애정이 진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부유하나 시골티 나는 집안에서라면, 어떤 과자들을 두고 ‘최상품’이라 일컫는 대성당 광장의 몇몇 가게에 견줄 만한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로서는, 설령 내가 언제나 그 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앙드레가 알베르틴의 손등을 톡톡 때리려 한다는 인상이 어찌나 강했던지, 내 정부는 이내 내 애정을 되찾았고 내 노여움은 가라앉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괴로움은 이따금 한순간 멎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로 되살아나기 위해서일 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예전처럼 그 다정한 애정의 발산으로, 지난날의 사랑의 몸짓으로 더는 응답해 주지 않는 것을 보며 눈물짓고, 그녀가 우리에게서는 그것들을 잃고서 다른 이들을 위해 되찾는 것을 보면 한층 더 사무치게 괴로워한다. 그러다 이 괴로움에서, 우리는 더 새롭고 한층 더 날카로운 슬픔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녀가 전날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으리라는, 필시 우리를 속였으리라는 의심이 그것이다. 이 의심 또한 이내 풀리고, 연인이 우리에게 보이는 다정함이 우리를 달래 주지만, 그러다 잊고 있던 한마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누군가 그녀가 쾌락의 순간에는 열렬했다고 우리에게 일러 주었건만, 우리는 늘 그녀를 차분하다고만 여겨 왔으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을 때의 그 열광이 어떠했을지 마음속에 그려 보려 애쓰며, 우리가 그녀에게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느끼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에게서 권태와 갈망과 우수의 기색을 알아채며, 처음에는 우리의 마음을 사려고 걸치던 옷은 다른 이들을 위해 남겨 둔 채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수수한 옷차림을 하는 것을 검은 하늘을 보듯 바라본다. 반대로 그녀가 다정하게 굴면, 한순간 그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러나 초대하듯 내미는 그 작은 혀를 볼 때면, 우리는 그 초대가 그토록 자주 건네졌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어쩌면 이 집 안에서조차, 알베르틴이 그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것이 오랜 습관의 힘으로 무심결의 신호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감정이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녀의 삶 속 알 수 없는 악의 요소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가 다녀왔던,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이면 어쩌면 여전히 드나들고 있을, 아니 어쩌면 아예 거기서 살 작정인지도 모를, 도무지 짚어낼 수 없는 그 장소들, 그녀가 우리와 떨어져 있고, 우리에게 속하지 않으며, 우리와 함께일 때보다 더 행복한 그 장소들을 떠올리는 순간에 별안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질투의 회전하는 탐조등이란 이런 것이다.

게다가 질투는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쫓아낼 수 없는 악령이어서, 늘 새로운 화신을 뒤집어쓰고 되돌아온다. 설령 그 화신들을 죄다 없애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영원히 곁에 붙들어 두는 데 성공한다 해도, 악의 정령은 그때 또 다른, 한층 더 애처로운 형태를 취하리라. 오직 힘으로만 그녀의 정절을 얻어냈다는 절망, 사랑받지 못한다는 절망이 그것이다.

알베르틴과 나 사이에는 흔히 침묵이라는 장벽이 가로놓였는데, 그것은 필시 그녀가 어쩔 도리 없는 것이라 여겨 혼자 속에 담아 두던 원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저녁이면 알베르틴은 무척 사랑스러웠지만, 발베크 시절 “그래도 당신은 참 잘해 주시는군요!”라고 말하곤 하던 그 자발적인 충동, 온 마음이 나를 향해 솟구쳐 오르는 듯하던 그 충동, 지금 그녀가 느끼면서도 혼자 담아 두는 그 어떤 원망의 유보도 없던 그 충동을 이제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원망들을 그녀는 필시 돌이킬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이라 여겨 털어놓지 않고 속에 담아 두었으나, 그럼에도 그것들은 그녀와 나 사이에 그녀의 뜻깊게 조심스러운 말투를, 또는 넘을 수 없는 침묵의 간극을 세워 놓았다.

“그런데 당신이 앙드레에게 전화를 건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 “내일 당신과 함께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려고요.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베르뒤랭 댁에 가겠다고 약속한 방문을 하려고 말이에요.” “당신 좋으실 대로요. 하지만 미리 말해 두는데, 오늘 저녁 안개가 지독하고 내일까지도 틀림없이 걷히지 않을 거예요. 이런 말을 하는 건 당신이 몸이라도 상할까 봐서예요. 저야 물론 당신이 함께 가 주시면 훨씬 좋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덧붙였다. “베르뒤랭 댁에 갈지 저도 통 모르겠어요. 그분들이 저한테 어찌나 잘해 주셨는지 정말 가긴 가야 하는데요…. 당신 다음으로는 누구보다도 저한테 다정하게 대해 주셨지만, 그분들에게는 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좀 있어요. 저는 어쨌든 봉 마르셰랑 트루아 카르티에에 꼭 가서, 정말 너무 새까만 이 드레스에 두를 흰 스카프를 하나 사야 해요.”

알베르틴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로 몸을 부딪는 붐비는 큰 상점에, 문이 하도 많아서 밖으로 나왔을 때 저만치 길가에서 기다리던 마차를 찾지 못했노라 여자가 언제든 둘러댈 수 있는 그런 상점에 혼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나는 그런 일에 결코 응하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진작에 알베르틴을 그만 보았어야 했다는 것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삶 속에서, 공간과 시간에 흩뿌려진 사람이 더 이상 한 여인이 아니라, 우리가 도무지 밝혀낼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 풀리지 않는 일련의 문제들, 크세르크세스처럼 우리가 어리석게도 채찍질하려 드는 바다, 삼켜 버린 것을 벌하려고 매질하는 바다가 되어 버리는 그 통탄스러운 시기에 접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 시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패배한 사람이다. 상상력의 한계에 사방으로 에워싸인 채, 부질없고 진 빠지는 싸움을, 질투가 참으로 딱한 몫을 맡는 그 싸움을 부질없이 오래 끌지 않도록 제때 이것을 깨닫는 자는 행복하다. 그런 싸움에서는, 한때는 늘 곁에 있던 여인의 눈길이 한순간 다른 남자에게 머물기만 해도 밀회를 상상하며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던 바로 그 남자가, 이윽고 체념하여 그녀가 혼자, 때로는 그녀의 정부임을 뻔히 아는 남자와 함께 외출하도록 내버려 두게 된다.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자기가 아는 이 고문을 택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어떤 리듬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고, 그다음에는 습관의 힘으로 그 리듬을 따라가게 된다. 만찬 자리에서 한 번도 빠지지 못하던 신경증 환자들이 나중에는 도무지 충분히 길게 느껴지지 않는 요양을 하게 되고, 얼마 전까지도 행실이 헤프던 여자들이 참회의 행위로, 참회를 위해 살아가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감시하려고 제 잠 시간을 줄이고 휴식을 마다하던 질투에 찬 연인들은, 그녀 자신의 욕망이며 그토록 광대하고 은밀한 세상이며 시간이 저희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녀가 저희 없이 외출하도록, 이윽고 여행을 떠나도록 내버려 두다가, 마침내 그녀와 헤어진다. 이렇게 질투는 양분이 없어 스러지는데, 그것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새로운 먹이를 끊임없이 아우성치며 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이런 경지와는 한참 멀었다.

이제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얼마든지 알베르틴과 함께 외출할 수 있었다. 최근 파리 근교 곳곳에, 배에게 항구가 그러하듯 비행기에게 그러한 것인 비행장이 여러 곳 생겨났고, 또 라 라스플리에르로 가던 길에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사와 마주쳐 내 말이 놀라 뒷걸음질 치던, 거의 신화와도 같던 그날 이래로 그 만남이 나에게는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므로, 나는 곧잘 우리의 하루 나들이를 이런 비행장 가운데 한 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온갖 운동을 열렬히 좋아하던 알베르틴도 선뜻 찬성해 주었다. 그녀와 나는 그곳으로 갔다.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방파제를 따라, 혹은 그저 해변을 거니는 산책에 그토록 큰 매력을 주고, 하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행 중심지”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에 그러한 매력을 주는, 끊임없이 오가는 출발과 도착의 술렁임에 이끌려서였다. 언제라도, 꼼짝 않고 닻을 내린 듯 놓여 있는 기계들의 정적 한가운데서, 우리는 한 대가 여러 정비공들에 의해 힘겹게 떠밀려 나가는 것을 보곤 했는데, 그것은 마치 한 시간쯤 바다에 나가고 싶어 하는 관광객의 분부로 배 한 척이 모래 위로 떠밀려 내려가는 것과도 같았다. 이윽고 엔진이 걸리고, 기계는 땅 위를 달려 속도를 올리다가, 마침내 별안간, 직각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수평의 속도가 문득 장엄한 수직의 상승으로 바뀌는, 그 어색하고 이를테면 마비된 듯한 황홀경 속에서. 알베르틴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기계가 이제 공중에 뜬 터라 격납고로 어슬렁어슬렁 돌아가던 정비공들에게 설명을 졸라 댔다. 그동안 탑승자는 몇 마일이고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 눈이 붙박인 채 바라보던 그 거대한 조각배는 이제 창공에서 겨우 알아볼까 말까 한 점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들이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 가고 착륙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것은 차츰 제 단단함과 크기와 부피를 되찾곤 했다. 그러면 알베르틴과 나는,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 저 호젓한 창공에서 저녁의 고요와 맑음을 마음껏 누리고 온 탑승자가 땅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비행장에서든 우리가 둘러보던 어느 미술관이나 어느 성당에서든,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들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발베크에서 좀 더 뜸하던 나들이가 오후 내내 이어지는 것을 기뻐하며 바라보고, 나중에는 그것이 알베르틴의 나머지 삶에서 마치 무리 지어 핀 꽃처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흐뭇하게 몽상에 잠기는 텅 빈 하늘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곰곰이 그려 보던 그때처럼, 마음이 가라앉아 집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 무렵 알베르틴의 시간은 오늘날처럼 그렇게 넉넉히 내 것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때는 그 시간이 훨씬 더 내 것처럼 여겨졌다. 그때 나는 오직 그녀가 나와 함께 보낸 시간만을, 마치 은총이라도 베풀어진 듯 그것을 기뻐하는 내 사랑으로 헤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직 그녀가 나와 떨어져 보낸 시간만을, 그 속에서 배신의 낌새를 불안하게 뒤지는 내 질투로 헤아린다.

그런데 이튿날 그녀는 바로 그런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괴로워하기를 그만두든가 사랑하기를 그만두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왜냐하면 사랑은 처음에는 욕망으로 빚어지듯, 그 뒤로는 오직 괴로운 불안으로만 존속되기 때문이다. 나는 알베르틴의 삶의 일부가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랑은, 괴로운 불안에서든 더없이 행복한 욕망에서든, 전체를 향한 고집이다. 그것은 정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을 때에만 태어나고 살아남는다. 우리는 오직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것만을 사랑한다. 알베르틴이 아마 베르뒤랭 댁에 가지 않을 것이라 말했을 때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내가 그리로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내가 자기를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고, 나는 실행할 뜻도 없는 이 계획을 불쑥 알림으로써 그녀의 가장 민감한 데라고 느껴지던 곳을 건드려, 그녀가 감추고 있던 욕망을 추적하고, 이튿날 내가 함께 있으면 그 욕망을 채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녀가 실토하게끔 하려던 것이었다. 그녀는 베르뒤랭 댁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대번에 거둠으로써, 사실상 이것을 실토한 셈이었다.

“베르뒤랭 댁에 가기 싫다면,”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트로카데로에서 근사한 자선 공연이 열려.” 그녀는 거기에 가 보라고 채근하는 내 말을 서글픈 낯빛으로 듣고 있었다. 나는 발베크에서, 처음으로 질투에 사로잡혔던 그 무렵처럼 그녀에게 모질게 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이 어렸고, 나는 연인을 나무라는 데에, 어릴 적 부모가 나에게 그토록 자주 들이대던,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아둔하고 잔인하게만 여겨지던 바로 그 논리를 써먹었다. “아니,” 하고 나는 알베르틴에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우수 어린 얼굴을 해도, 나는 너에게 조금도 연민이 느껴지지 않아. 네가 아프다면, 곤경에 처했다면, 누구를 여의어 슬퍼한다면 안됐다고 여기겠지. 하기야 너는 그런 일쯤 눈 하나 깜짝 안 하겠지만. 너는 하찮은 일에마다 거짓 감정을 쏟아 내니까 말이야. 아무튼 나는, 우리를 그토록 좋아하는 척하면서 정작 우리에게 아주 사소한 도움 하나 베풀 줄 모르고, 정신이 어찌나 딴 데 팔려 있는지 우리의 앞날이 통째로 걸린 편지 한 통을 맡겨 두어도 전할 것을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의 감정 따위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

이 말들을, 우리가 하는 말의 상당 부분이 기억에서 외워 읊는 것에 지나지 않는 법인데, 나는 죄다 어머니가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늘, 참된 감정, 곧 아버지가 그 민족을 몹시 꺼렸음에도 어머니가 그 언어를 무척 흠모하던 독일인들이 Empfindung이라 부른 것과, 겉치레의 감상 곧 Empfindelei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설명해 주려 하곤 했다. 언젠가 내가 눈물짓고 있을 때, 어머니는 네로도 아마 신경을 앓았겠지만 그렇다고 나을 것 하나 없었다고까지 말했다. 정말이지, 자라면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저 식물들처럼, 예전의 나 전부였던 예민한 소년 곁에는 이제 그 반대되는 부류의 사내가, 상식으로 가득하고 남의 병적인 감수성에는 엄격한,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던 것을 닮은 사내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저마다가 제 안에서 선조들의 삶을 이어 가야 하는 법이니만큼, 처음에는 내 안에 없던 그 균형 잡히고 냉소적인 사내가 예민한 사내와 손을 잡은 것도 틀림없고, 내가 이번에는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던 존재가 되어 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새로운 인격이 내 안에서 꼴을 갖추던 그 순간, 그는 제 말투를 이미 다 만들어진 채로 손에 넣었다. 예전에 나에게 건네졌고 이제는 내가 남들에게 건네야 할, 그 비꼬고 나무라던 말들의 기억 속에서 말이다. 그 말들은 어찌나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던지, 내가 흉내와 기억의 연상으로 그것들을 불러냈든, 아니면 유전이라는 저 섬세하고 신비로운 마력이, 마치 식물의 잎사귀에 새기듯,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나를 낳은 사람들이 지녔던 것과 똑같은 억양, 똑같은 몸짓, 똑같은 태도를 새겨 넣었든 간에 그러했다. 이따금 알베르틴과 이야기하면서 현명한 조언자 노릇을 할 때면, 나는 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문을 두드리는 내 소리가 아버지의 그것과 어찌나 비슷했던지, 문간에 온 것이 아버지라고 상상한 적까지 있지 않았던가. 하도 많은 어둡고 무의식적인 흐름들이 내 안의 모든 것을, 심지어 손가락의 아주 자잘한 움직임까지도 굽이지게 하여 부모의 것과 똑같은 주기를 따르게 했으니 말이다.

한편 상반된 요소들의 결합은 생명의 법칙이자 수정의 원리이며, 앞으로 보게 되듯 숱한 재앙의 원인이기도 하다. 대개 우리는 저를 닮은 것을 몹시 싫어하고, 제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서 보면 격분한다. 하물며, 그런 결점을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나이를 이미 지난 사내, 이를테면 가장 불타오르는 순간들을 얼음장 같은 얼굴로 넘겨 온 사내라면, 더 젊거나 더 단순하거나 더 어리석은 딴 사내가 바로 그 결점을 드러낼 때 얼마나 그것을 저주하겠는가. 예민한 사람들 가운데는, 남의 눈에 어린 눈물, 저 자신은 억눌러 온 그 눈물을 보기만 해도 격분하는 이들이 있다. 가족의 정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더욱 가족이 갈라서는 것은, 바로 그 닮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도, 내가 되어 버린 두 번째 사내는 그저 첫 번째 사내의 또 다른 면모, 곧 제 일에는 흥분 잘하고 예민하면서도 남에게는 현명한 스승 노릇을 하는 그런 면모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부모도, 그분들을 나와의 관계에서 보느냐 그분들 자체로 보느냐에 따라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경우, 나를 향한 그 엄격함이 두 분 나름의 의도된 것이었고 실은 적잖은 노력을 치른 것이었음은 대낮처럼 분명했지만, 아버지의 경우에는 어쩌면 그 냉담함이 감수성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생활의 면과 사회적 관계의 면, 이 이중의 면모가 지닌 인간적 진실이야말로, 그 무렵 나에게는 형식이 진부한 만큼이나 내용도 거짓되게만 여겨지던 한 문장 속에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 얼음장 같은 냉기 밑에, 저이는 유별난 감수성을 감추고 있지요. 정작 저이의 탈은 제 감정을 부끄러워한다는 데 있어요.”

결국, 아버지의 것이었으되 이제 나 역시 모든 이와의 관계에서 꾸며 내고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벗어 놓지 않던 그 평정, 필요하면 격언 같은 성찰이며 서투른 감수성의 표출에 대한 빈정거림이 군데군데 섞이던 그 평정은, 끊임없는 은밀한 폭풍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날 정말이지 그녀와 헤어지고 베네치아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힐 뻔했다고 믿는다. 나를 다시금 사슬에 옭아맨 것은 노르망디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녀가 내가 그녀를 두고 질투했던 그 고장으로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여서가 아니라(그녀의 계획이 내 기억의 아픈 자리를 결코 건드리지 않은 것은 내게 다행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그건 마치 내가 앵프르빌에 살던 네 이모의 친구 이야기를 너에게 꺼내는 것과 똑같아”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화를 내며, 논쟁 중인 사람이면 누구나 제 편에 가능한 한 많은 논거를 그러모으고 싶어 하듯, 내가 틀렸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되어 신이 나서 이렇게 대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이모는 앵프르빌에서 아무도 알고 지낸 적이 없고, 나도 그 근처엔 가 본 적조차 없어요.”

그녀는 어느 날 오후, 자기가 꼭 차를 마시러 가야 한다던 어떤 다감한 부인에 관해 나에게 했던 거짓말을, 그 부인을 찾아감으로써 내 우정을 잃고 제 목숨을 줄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던 그 거짓말을 잊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 거짓말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우리의 결별을 다른 날로 미루었다.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사람에게는 진실함도, 심지어 거짓말하는 재간조차도 필요치 않다. 나는 여기서 서로를 괴롭히는 고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나는 이날 저녁, 완벽함의 거울이던 할머니가 나에게 말하던 투로 그녀에게 말하는 데에도, 또 내가 베르뒤랭 댁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의 그 무뚝뚝한 태도를 취한 데에도 나무랄 만한 구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떤 결정이든, 그 결정 자체와는 전혀 걸맞지 않게 우리에게 최대한의 동요를 일으키도록 계산된 방식으로가 아니고서는 결코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토록 사소한 일에 그토록 괴로워하는 낯을 한다고 우리를 터무니없다 나무라기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 우리의 괴로움은 실은 그가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 동요에 걸맞은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할머니의 굽힐 줄 모르는 지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 제멋대로인 기분이 나에게로 물려져, 오랫동안 그것과는 인연이 없던, 그리고 나의 온 어린 시절 내내 그토록 많은 괴로움을 안겨 주던 그 예민한 천성을 완성했으므로, 바로 그 예민한 천성이 그 기분들에게 어느 지점을 정확히 겨누어야 하는지를 아주 소상히 일러 주었다. 개심한 도둑이나 우리가 맞서 싸우는 나라의 백성보다 더 나은 밀고자는 없는 법이다. 어떤 거짓 많은 집안에서는, 겉보기에 아무 까닭 없이 형제를 찾아온 한 형제가 떠나려는 참에 문간에서 아주 무심한 척, 귀담아듣는 기색조차 없이 어떤 정보를 넌지시 묻는데,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 정보야말로 방문의 주된 목적이었음을 상대 형제에게 알린다. 상대 형제도 그 초연한 척하는 태도며, 마치 괄호 속에 넣듯 마지막 순간에 내뱉는 그런 말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데, 자기도 그런 수법을 곧잘 써먹어 온 터라 그렇다. 그런데 병적인 집안, 서로 닮은 감수성, 형제 같은 기질이라는 것도 있어서, 이들은 집안 식구끼리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듣게 해 주는 그 무언의 언어에 통달해 있다. 그러니 신경증 환자보다 더 사람 애를 태우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경우 내 행동에는 더 일반적이고 더 깊은 원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몹시 미워하게 되는 그 짧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들, 사랑하지 않는 이의 경우에는 때로 평생 이어지는 그 순간들에, 우리는 연민을 사지 않으려고 착해 보이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되도록 사악하면서도 되도록 행복해 보이기를 바란다. 우리의 행복이 참으로 얄밉게 비쳐, 한때의 적이든 영원한 적이든 그 영혼을 짓무르게 하도록 말이다. 나의 “성공”이 그들 눈에 부도덕하게 비쳐 그들을 한층 더 노엽게 만들려는 오직 그 까닭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 앞에서 거짓으로 나 자신을 헐뜯었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 반대의 길을 가는 것, 곧 너그러운 감정을 애써 감추는 대신 오만하지 않게 그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가 결코 미워하지 않고 늘 사랑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남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말만을 기꺼이 하게 될 테니까.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