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⑪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물론 나는 알베르틴에게 그토록 밉살스럽게 구는 데 얼마간 자책을 느끼며 혼자 이렇게 되뇌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나에게 더 고마워하겠지, 내가 그녀에게 짓궂게 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야, 결국은 마찬가지일 거야, 그만큼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변명하려고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사랑의 고백은, 알베르틴에게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어쩌면 사랑만이 유일한 변명이 되어 주던 그 모짊과 기만보다도 그녀를 나에게 더 쌀쌀맞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모질고 거짓되게 구는 것은 어찌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 그들에게 친절히 굴고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그 관심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낯선 이는 우리를 무심하게 내버려 두고, 무심함은 우리를 매정한 행동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저녁이 지나갔다. 알베르틴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가 화해하고 다시 서로를 껴안으려 한다면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 둘 다 아직 먼저 나서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가 이미 나에게 화가 나 있음을 느낀 나는, 그 화를 틈타 에스테르 레비 이야기를 꺼냈다. “블로크가 그러던데,” (이건 거짓말이었다) “네가 자기 사촌 에스테르랑 아주 친하다더군.” “그 사람은 봐도 못 알아볼걸요.” 알베르틴이 아리송한 낯빛으로 말했다. “난 그 여자 사진을 봤어.” 나는 화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알베르틴을 쳐다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그 표정이야말로 그녀의 유일한 대답이 되었을 텐데도.

이런 저녁 알베르틴과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던 것은 이제 콩브레에서 받던 어머니의 입맞춤이 주던 평온이 아니라, 도리어 어머니가 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조차 겨우 건네던, 혹은 나에게 골이 났거나 손님들에게 붙들려 아래층에 남는 바람에 내 방에 아예 올라오지도 않던 그런 저녁들의 번민이었다. 이 번민은, 그것을 사랑의 언어로 옮겨 놓은 것에 그치지 않고, 아니, 한때 사랑에 국한되어 있던, 격정들의 분할과 배분이 이루어지던 무렵 오직 사랑에만 할당되었던 바로 그 번민 자체가, 이제 다시 그 모든 격정으로 뻗어 나가, 나의 어린 시절처럼 다시금 나눌 수 없는 것이 되어 가는 듯했다. 마치 알베르틴을, 연인이자 누이이자 딸로서, 또한 그 어김없는 잘 자라는 입맞춤이 다시금 어린애처럼 그리워지기 시작하던 어머니로서 내 머리맡에 붙들어 둘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떨던 나의 온갖 감정이, 겨울날처럼 짧을 운명인 듯한 내 삶의 때 이른 저녁 속에서 하나로 엉기고 뭉치기 시작한 것처럼. 그러나 설령 내가 어린 시절의 번민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것을 느끼게 한 상대가 달라졌다는 점, 그것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감정이 달라졌다는 점, 내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 때문에, 나는 옛날 어머니에게 그러했듯 알베르틴에게 그 번민을 달래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는 괴로워”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가슴에 죽음을 품은 채, 행복한 해결로 한 발짝도 나아가게 해 주지 못하는 하찮은 일들을 말하는 데 그쳤다. 나는 괴로운 상투어들 속을 무릎까지 잠긴 채 헤쳐 나갔다. 그리고 어떤 하찮은 사실이 우리의 사랑과 관련만 있으면, 나중에 들어맞은 사소한 일을 미리 알아맞힌 점쟁이만큼이나 어쩌면 우연히 그것을 알아낸 사람에게 우리로 하여금 크나큰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그 지적 이기심 탓에, 나는 발베크에서 “저 아가씨는 도련님을 곤란하게만 할 거예요”라고 나에게 말했던 프랑수아즈를 베르고트나 엘스티르보다 더 영감 어린 사람으로 여길 뻔했다.

매 순간이 나를 알베르틴의 잘 자라는 인사에 가까이 데려갔고, 마침내 그녀가 그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이날 저녁, 그녀 자신은 담겨 있지 않고 나와도 맞닿지 않던 그녀의 입맞춤은 나를 어찌나 불안하게 했던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를 다시 불러 세우고, 여기 붙들고, 화해할 구실을 찾으려면 서둘러야 해. 몇 걸음이면 그녀는 방을 나가 버릴 거야, 이제 두 걸음, 이제 한 걸음, 그녀가 손잡이를 돌린다. 문을 연다. 너무 늦었어, 그녀가 등 뒤로 문을 닫아 버렸어!” 그래도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콩브레에서 옛날 어머니가 입맞춤으로 나를 달래 주지 않은 채 떠나 버렸을 때처럼, 나는 알베르틴을 뒤쫓아 달려가고 싶었고, 그녀를 다시 보기 전에는 나에게 평온이란 없으리라는 것, 이 다음번 만남이 여태껏 어떤 만남도 그러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무엇이 되리라는 것, 그리고 내 힘으로 이 우수를 떨쳐 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알베르틴에게 구걸하러 가는 부끄러운 습관을 들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미 제 방에 들어가 있을 때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가 제 방에서 나와 나를 불러 주기를 바라며 복도를 서성거렸다. 나는 어떤 희미한 부름이라도 놓칠까 두려워 그녀의 방문 밖에서 숨을 죽이고 서 있었고, 혹시 요행히도 그녀가 손수건이나 가방 같은 것을, 밤사이 그녀에게 필요할까 봐 내가 염려하는 척할 수 있고 그녀의 방에 갈 구실이 되어 줄 무언가를 두고 가지는 않았나 보려고 잠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녀의 방문 밖 내 자리로 되돌아갔지만, 문 밑 틈에는 이제 아무 불빛도 비치지 않았다. 알베르틴은 불을 껐고,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나는 어떤 요행이라도 바라며 꼼짝 않고 거기 서 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얼어붙은 몸으로 나는 내 이불 속으로 돌아가 몸을 뉘고는 밤새도록 울었다.

그러나 어떤 저녁이면 나는 알베르틴의 입맞춤을 얻어 내는 한 가지 꾀에 기대기도 했다. 그녀가 눕기가 무섭게 얼마나 빨리 잠이 드는지(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아서, 눕기 전이면 본능적으로, 제 방에서 잠자리에 들 때처럼, 내가 준 실내화를 벗고 반지를 빼어 머리맡에 놓아두곤 했다), 그녀의 잠이 얼마나 깊은지, 그 잠에서 깨어날 때가 얼마나 다정한지를 알던 나는,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척 핑계를 대고 그녀를 내 침대에 눕히곤 했다. 내가 방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잠들어 있었고, 나는 눈앞에서, 정면으로 볼 때면 그녀가 되곤 하던 그 다른 여인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 정체를 바꾸었으니, 내가 그녀 곁에 누워 그녀의 옆얼굴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손을 그녀의 손 안에, 그녀의 어깨 위에, 그녀의 뺨 위에 얹을 수 있었다. 알베르틴은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내가 그녀의 머리를 잡아 돌려 내 입술에 갖다 대고, 그녀의 두 팔로 내 목을 감아도, 그녀는 멎지 않는 시계처럼, 어떤 자세를 취하게 하든 계속 살아가는 짐승처럼, 어떤 버팀대를 주든 계속 덩굴손을 뻗어 내는 덩굴식물, 곧 메꽃처럼 계속 잠들어 있었다. 오직 그녀의 숨결만이 내 손가락의 손길 하나하나에 흔들렸는데, 마치 그녀가 내가 연주하는 악기여서, 그 줄을 하나 또 하나 켜서 저마다 다른 음을 끌어내어 내가 선율의 변주를 자아내기라도 하는 듯했다. 나의 질투는 잔잔해졌다. 알베르틴이 숨 쉬는 존재, 그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 고른 숨결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숨결 속에는, 온통 유동적이어서 말이 지닌 단단함도 침묵이 지닌 단단함도 없는 저 순수한 생리적 기능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온갖 악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숨결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속을 파낸 갈대에서 나오는 듯한 그 숨결은, 참으로 천국의 것이었고, 이 순간이면 알베르틴이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에서 물러나 있다고 느끼던 나에게는 천사들의 순수한 노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숨결 속에서, 어쩌면 기억의 물결에 실린 숱한 사람들의 이름이 어른거리고 있으리라고 문득 혼자 되뇌었다. 정말이지 이따금 그 음악에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지기도 했다. 알베르틴이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나는 그 뜻을 알아채고 싶어 얼마나 안달했던가! 우리가 이야기하던, 그리고 내 질투를 돋우던 어떤 사람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 오르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것이 함께 데려오는 기억이라곤 그 일을 두고 그녀가 나와 나눈 대화의 기억뿐인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저녁, 그녀는 아직 눈을 감은 채 반쯤 깨어나서는,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앙드레.” 나는 동요를 감추었다. “꿈꾸고 있구나, 난 앙드레가 아니야.” 나는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미소 지었다. “물론 아니죠, 앙드레가 당신한테 뭐라고 했는지 물어보려던 거예요.” “난 네가 이렇게 그 애 곁에 눕는 데 익숙한 줄 알았지.” “아, 아니에요, 한 번도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다만, 이렇게 대답하기 전에 그녀는 잠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니 그녀의 침묵은 한낱 가림막에 지나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난 다정함은 그저 그 이면에 내 가슴을 찢어 놓았을 수천 가지 기억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으며, 그녀의 삶은, 별것 아닌 사람들을 도마에 올려 그 조롱 섞인 이야기와 우스꽝스러운 사연으로 우리의 나날의 잡담거리를 이루는 그런 사건들로 가득했지만, 어떤 사람이 우리 마음속 어두운 숲에 잠겨 있는 한, 그 사건들은 우리에게 그녀의 삶에 관한 더없이 값진 계시처럼 여겨져, 그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특권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의 삶을 바치기라도 할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의 잠은 나에게 어떤 놀랍고 마법 같은 세계로 보였는데, 그 세계에서는 어떤 순간이면 겨우 반투명한 원소의 깊은 데서 우리로서는 알아듣지 못할 어떤 비밀의 고백이 떠올랐다. 그러나 대개, 알베르틴이 잠들어 있을 때면 그녀는 제 순결을 되찾은 듯했다. 내가 그녀에게 지워 준, 그러나 잠결에 그녀가 이내 제 것으로 삼은 그 자세로, 그녀는 마치 나에게 제 몸을 내맡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교활하거나 천박한 기색이라곤 사라졌고, 나를 향해 팔을 들어 올리고 그 손을 나에게 얹은 그녀와 나 사이에는, 온전한 헌신이, 풀 수 없는 결속이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녀의 잠은 그녀를 나에게서 떼어 놓지 않았고, 우리 애정에 대한 의식을 그녀가 간직하게 해 주었다. 그 잠이 한 일이라곤 오히려 그밖의 모든 것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껴안고 밖에 잠깐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눈을 반쯤 뜨고는, 사실 시각이 늦기도 했으므로, 놀란 낯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 어딜 가려고요, 내 사랑…” 하고 내 세례명으로 나를 부르고는, 이내 다시 잠들어 버렸다. 그녀의 잠은 그저 그녀의 나머지 삶을 지워 없애는 무엇, 다정한 애정의 말들이 이따금 날갯짓하며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이어진 침묵이었다. 이 말들을 이어 맞추면, 티 없는 대화에, 순수한 사랑의 은밀한 친밀함에 다다랐으리라. 이 고요한 잠은, 어머니가 제 아이의 곤한 잠을 그 아이의 미덕 가운데 하나로 쳐 주며 기뻐하듯, 나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잠은 정말이지 아이의 잠이었다. 그녀의 깨어남 또한 그러했으니, 제가 어디 있는지 알기도 전에 어찌나 자연스럽고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나는 이따금 그녀가 나와 함께 살기 전에는 혼자 자지 않고 눈을 뜨면 곁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섬뜩해지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애 같은 매력이 더 두드러졌다. 다시금 어머니처럼, 나는 그녀가 늘 그토록 좋은 기분으로 깨어나는 것에 경탄했다. 몇 순간이 지나면 그녀는 의식을 되찾고, 서로 이어지지 않는, 그저 새의 지저귐 같은 사랑스러운 말들을 내뱉었다. 일종의 “자리바꿈 놀이”에 의해, 여느 때는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던 그녀의 목은 이제 놀랄 만큼 아름다워져서, 잠 속에 감김으로써 그녀의 눈이 잃어버린 그 엄청난 중요성을 얻었다. 눈꺼풀이 그 위를 덮어 버린 뒤로는 내가 더 이상 말을 건넬 수 없게 된, 나의 한결같은 정보통이던 그 눈이 말이다. 감긴 눈꺼풀이, 눈이 지나치도록 또렷이 드러내는 온갖 것을 눌러 없앰으로써 얼굴에 순결하고 엄숙한 아름다움을 부여하듯, 알베르틴이 깨어나며 내뱉는, 뜻이 없지는 않으나 침묵의 순간들로 끊기던 그 말들 속에는, 대화가 그러하듯 순간순간 말버릇이며 상투어며 흠결의 자국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어쨌든 내가 알베르틴을 깨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두려움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으니, 그녀의 깨어남이 우리가 함께 보낸 저녁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밤에서 아침이 돋아나듯 그녀의 잠에서 돋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소와 함께 눈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입술을 내밀었고, 그녀가 한마디 말을 내뱉기도 전에 나는 그 싱그러운 맛을, 동트기 전 아직 고요한 정원의 그것처럼 마음을 달래 주는 그 맛을 맛보았다.

알베르틴이 어쩌면 베르뒤랭 댁에 갈지도 모른다고, 그러다 가지 않겠다고 나에게 말하던 그 저녁의 이튿날, 나는 일찍 잠에서 깼고, 아직 반쯤 잠든 채로, 나의 기쁨이 나에게, 겨울 사이에 봄날 하루가 끼어들었음을 알려 주었다. 밖에서는, 사기그릇 땜장이의 뿔피리며 의자 고치는 사람의 나팔에서, 화창한 아침이면 시칠리아의 염소지기처럼 보이던 염소몰이의 피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악기에 맞춰 능란하게 옮겨진 대중의 가락들이, “공휴일을 위한 서곡”으로 아침 공기를 가볍게 관현악처럼 울리고 있었다. 저 감미로운 감각인 우리의 청각은 거리의 벗을 우리에게 데려다주는데, 그 거리의 온갖 윤곽을 우리에게 그려 주고, 그 위를 지나가는 온갖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그들의 빛깔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지난밤 온갖 여성적 행복의 가능성 위로 내려져 있던 빵집과 우유 가게의 철제 덧문이, 이제 돛을 올리고 막 나아가려는 배의 돛폭처럼 들어 올려지며, 투명한 바다를 가로질러 젊은 여점원들의 환영 위로 미끄러져 갔다. 이 철제 커튼이 올라가는 소리는, 이 도시의 다른 구역에서라면 어쩌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으리라. 이 구역에서는 다른 백 가지 소리가 내 기쁨에 한몫했으니, 너무 오래 잠들어 있느라 그중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귀족 구역의 마법 같은 매력은 그곳이 동시에 서민적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이따금 대성당들이 그 정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그런 것들을 두었듯이(그 정문들은 이름까지 간직하고 있으니, 이를테면 루앙의 정문은 ‘서적상의 문’이라 불렸는데, 서적상들이 그 벽에 기대어 노천에서 물건을 늘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자잘한 장사치들이, 다만 떠돌아다니는 장사치들이, 고귀한 게르망트 저택 앞을 지나가며, 때로 아득한 옛날의 성직자들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들이 양편의 자그마한 집들을 향해 내지르던 외침은, 드문 예외를 빼고는 노래라 할 만한 데가 조금도 없었다. 그것은, 알아챌 수 없는 변조로 겨우 빛깔이 입혀진 보리스 고두노프펠레아스의 대사창(臺詞唱)만큼이나 노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경본을 읊는 사제의 성가풍 영창을 떠올리게 했으니, 이 거리의 풍경이야말로 그 영창의, 짐짓 흥겹고 세속적이면서도 반쯤은 전례적인 대응물이었다.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살게 된 뒤로만큼 내가 그 소리들을 즐긴 적은 없었다. 그 소리들은 나에게 그녀가 깨어난다는 즐거운 신호처럼 여겨졌고, 바깥세상의 삶에 나의 흥미를 돋움으로써, 내가 바라는 만큼이나 한결같은, 사랑하는 이의 존재가 지닌 마음을 달래는 힘을 나로 하여금 한층 더 의식하게 했다. 거리에서 외쳐 파는 먹을거리 가운데 몇 가지는, 나 개인으로는 질색이었지만 알베르틴의 입맛에는 무척이나 맞아서, 프랑수아즈가 자기 젊은 하인을 시켜 그것들을 사 오게 하곤 했는데, 그 하인은 서민들 틈에 섞이는 제 처지가 어쩌면 조금은 창피했을 것이다. 이 고요한 구역에서(여기서는 소음이 이제 프랑수아즈에게 한탄거리가 아니라 나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어 있었다), 저마다 다른 변조를 띤 채, 그 소박한 사람들이 읊어 대는 서창(敍唱)이 아주 또렷하게 나에게 들려왔는데, 그것은 온통 서민적인 보리스의 음악에서 그러하듯, 첫머리의 억양이 다른 음에 기대는 한 음의 굴절로 겨우 바뀌는, 음악이라기보다 언어에 가까운 군중의 음악이었다. 그것은 “ah! le bigorneau, deux sous le bigorneau”였으니, 사람들이 그 끔찍한 작은 조개를 담아 파는 고깔 봉지로 달려들게 하는 외침이었다. 알베르틴이 곁에 없었더라면 그 조개는 나를 넌더리 나게 했으리라, 같은 시각에 팔라고 외쳐 대는 소리가 들리던 달팽이가 나를 넌더리 나게 했듯이. 여기서도 그 장수는 나에게 무소륵스키의 거의 서정적이라 할 수 없는 대사창을 떠올리게 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의 “말하다시피” “Les escargots, ils sont frais, ils sont beaux”라고 한 다음, 그 달팽이 장수는, 드뷔시가 음악으로 옮긴 마테를링크의 아련한 우수를 띠고, 펠레아스의 작곡가가 라모와의 혈연을 드러내 보이는 저 애처로운 종결부의 하나에서처럼, “내가 패해야 한다면, 나를 이기는 것이 그대여야 하겠는가?” 하듯, 흥얼거리는 우수를 실어 이렇게 덧붙였다. “On les vend six sous la douzaine.…

나는 이 더없이 단순한 말들이 어째서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어조로, 멜리장드가 끝내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한 그 오래된 궁전에서 모든 이를 슬퍼 보이게 하는 비밀처럼 신비롭게, 그리고 더없이 소박한 말로 지혜와 운명의 온 이치를 말하려 애쓰는 늙은 아르켈의 사념 하나처럼 심오하게 한숨에 실려 나오는지, 늘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몽드의 늙은 왕의 목소리, 혹은 골로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감미로워지며 솟아올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어쩌면 일어나는 일 가운데 헛된 것은 없으리”라거나, 또는 “여기 놀랄 까닭은 없다, 그저 온 세상이 다 그러하듯 가엾고 자그마한 신비로운 것이었을 뿐”이라 말하던 바로 그 음들이, 달팽이 장수가 끝없는 카덴차로 “On les vend six sous la douzaine.…”를 다시 잇는 데에 쓰였다. 그러나 이 형이상학적 비탄은 무한의 기슭에서 스러질 겨를도 없이, 날카로운 나팔 소리에 끊겼다. 이번에는 먹을거리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그 대본의 가사는 이러했다. “Tond les chiens, coupe les chats, les queues et les oreilles.

정말이지 저마다의 남녀 장수들의 변덕과 재기가, 내가 침대에서 듣곤 하던 이 모든 외침의 노랫말에 곧잘 변주를 끌어들이곤 했다. 그런데도 낱말 한복판에 침묵을 끼워 넣는 어떤 의례적인 멈춤은, 특히 그것이 두 번째로 되풀이될 때면, 끊임없이 나에게 어느 오래된 성당을 떠올리게 했다. 암나귀가 끄는 작은 수레를 안뜰에 들어서기 전 집집마다 앞에 세워 두고, 그 헌옷 장수는 채찍을 휘두르며 이렇게 읊조렸다. “Habits, marchand d’habits, ha… bits” 하고, 마지막 음절들 사이에 꼭 같은 멈춤을 두었으니, 마치 그가 단선율 성가로 “Per omnia saecula saeculo… rum”이라거나 “requiescat in pa… ce”라고 영창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제 옷가지의 불멸을 믿을 까닭이라곤 없었고, 그것들을 평화로운 지극한 안식을 위한 수의로 내놓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이른 시각에도 벌써 선율의 동기들이 뒤섞이기 시작하던 참에, 작은 손수레를 밀던 채소 파는 여자가 제 연도(連禱)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분절을 쓰고 있었다.

A la tendresse, à la verduresse,
Artichauts tendres et beaux,
Arti… chauts.

비록 그녀는 교창 성가집이라든가, 넷은 콰드리비움의 학문을, 셋은 트리비움의 학문을 상징하는 일곱 선법에 대해서는 필시 들어 본 적도 없었겠지만.

싸구려 호루라기로, 백파이프로, 이 화창한 날들과 잘 어울리는 햇살을 품은 제 고향 남쪽 지방의 가락을 뽑아내며, 작업복 차림에 손에는 황소 힘줄 채찍을 들고 머리에는 바스크식 베레모를 쓴 사내가 집집마다 차례로 걸음을 멈추었다.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염소 떼를 앞세워 모는 염소치기였다. 먼 데서 오는 터라 우리 동네에는 제법 늦게 이르렀고, 여인들은 제 아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줄 젖을 받으려고 대접을 들고 달려 나왔다. 그러나 이 선량한 목자의 피레네 가락에는 이제 칼갈이의 종소리가 뒤섞였으니, 그는 이렇게 외쳤다. “Couteaux, ciseaux, rasoirs.” 톱니갈이는 그와 겨룰 수 없었는데, 악기가 없는 탓에 그저 이렇게 외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Avez-vous des scies à repasser, v’la le repasseur,” 한편 더 흥겨운 기분의 땜장이는 자기가 고치는 냄비며 팬이며 온갖 것을 죽 늘어놓고 나서 이런 후렴을 읊조렸다.

Tam, tam, tam,
C’est moi qui rétame
Même le macadam,
C’est moi qui mets des fonds partout,
Qui bouche tous les trous, trou, trou;

그리고 붉게 칠한 커다란 철제 상자를, 그 위에 딴 숫자와 잃은 숫자가 적힌 상자를 지고 다니는 젊은 이탈리아 사내들이 딸랑이를 흔들며 이렇게 권했다. “Amusez-vous, mesdames, v’là le plaisir.

프랑수아즈가 피가로를 들고 왔다.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내 기사가 아직 실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수아즈는 알베르틴이 내 방에 들어와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베르뒤랭네를 찾아가려던 생각은 아주 접었으며 내가 권한 대로 앙드레와 함께하기로 약속한 짧은 승마를 마친 뒤 트로카데로의 “특별” 낮공연에, 곧 요즘 말로 하자면 훨씬 덜 대단한 뜻으로 “특별 자선” 낮공연이라 부를 만한 것에 가기로 정했다고 전해 왔다고 일러 주었다. 이제 그녀가 어쩌면 사악했을지도 모를, 베르뒤랭 부인을 만나러 가려던 욕망을 단념했음을 알았으므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그러고는 그녀가 어디로 가든 내겐 매한가지라고 스스로에게 일렀다. 오후가 저물어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나는 아마 딴사람이 되어, 울적해진 채, 날씨가 이토록 좋은 이 아침나절에는 지니지 못한 중요성을 알베르틴의 일거수일투족에 부여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무관심에는 그 원인에 대한 또렷한 자각이 따랐으나, 그렇다고 무관심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가 당신이 깨어 있다고,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던걸요.” 방에 들어서며 알베르틴이 말했다. 그리고 엉뚱한 때에 창을 열어 나를 감기 들게 하는 것 다음으로 알베르틴이 가장 두려워한 일은 내가 잠든 사이 방에 들어오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제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저한테 이렇게 말할까 봐 겁이 났어요. 어떤 무엄한 인간이 제 죽음을 맞으러 여기 오는가?” 그러고는 내가 늘 그토록 심란하게 느끼던 그 웃음을 웃었다. 나도 같은 농담조로 대꾸했다. “이 준엄한 칙령이 그대를 위해 내려진 것이던가?” 그리고 그녀가 행여 그것을 깨뜨리려 들까 봐 덧붙였다. “하기야 네가 나를 깨운다면 나는 몹시 화가 나겠지만.” “알아요, 알아, 겁내지 마세요.” 알베르틴이 말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나는 그녀와 함께 여전히 에스테르의 한 장면을 연기하며 말을 이었는데, 그동안 아래 거리에서는 우리 대화에 파묻힌 외침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대에게서만 나는 어떤 우아함을 보나니, 나를 매혹하고 결코 물리지 않는 우아함을.”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그녀는 나를 아주 자주 물리게 하지.”) 그리고 간밤에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베르뒤랭네를 단념한 것을 지나치리만치 고마워하면서, 다음번에도 그녀가 다른 일에 대해 마찬가지로 내 말을 따르도록, 나는 말했다. “알베르틴, 너는 너를 사랑하는 나를 못 믿으면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믿는구나” (마치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또 우리를 가로막으려고 우리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있는 오직 그들을 못 믿는 것이 당연하지 않기라도 한 듯이). 그러고는 이런 거짓말을 덧붙였다.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정말로는 믿지 않는데, 그게 우습단 말이지. 사실 나는 너를 흠모하지는 않아.” 그녀도 이번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거짓말을 했고, 이어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고 장담할 때는 진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 단언이 곧 나를 거짓말쟁이요 밀정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그런 결점을 강렬한 정념의 고통스러운 소산으로 보았거나, 혹은 스스로도 자기가 그다지 선하지 못하다고 느끼기라도 한 듯 나를 용서하는 것 같았다. “제발 부탁이야, 내 사랑, 요전 날 하던 그 haute voltige는 이제 그만둬. 생각해 봐, 알베르틴, 네가 사고라도 당하면!” 물론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제 말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마음 내키는 곳 어디로든 훌쩍 떠나 다시는 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녀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 준다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모든 것이 얼마나 단순해질 것인가. “오! 나는 알아요, 당신은 나를 잃고는 하루도 더 못 살 거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겠죠.”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