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틴이 나가자마자, 나는 이 끊임없는 존재가, 움직임과 삶에 물릴 줄 모르는 이 존재가 내게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절감했다. 그 존재는 제 움직임으로 내 잠을 어지럽혔고, 문을 열어 두는 그 버릇으로 나를 늘 한기 속에 살게 했으며, 그녀를 따라나서지 않는 것을 정당화해 줄 구실을, 그러면서도 너무 아파 보이지는 않을 구실을 찾아내는 동시에 그녀가 동행 없이 다니지 않도록 살피느라, 날마다 셰에라자드보다 더한 꾀를 부리도록 나를 몰아붙였다. 불행히도, 페르시아의 이야기꾼은 그런 비슷한 꾀로 제 죽음을 미루었건만, 나는 내 죽음을 앞당기고 있었다. 이렇듯 삶에는, 이 경우처럼 모두가 사랑의 질투와, 젊고 활동적인 사람의 삶을 함께 나누도록 허락하지 않는 위태로운 건강 상태로 말미암아 빚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럼에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지난날의 따로 떨어진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거의 의학적인 표현으로 제기되는 어떤 상황들이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안식 가운데 어느 쪽에 (날마다의 긴장을 이어 감으로써, 아니면 이별의 고통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하는가, 머리의 안식인가 아니면 마음의 안식인가?
어쨌든 나는 앙드레가 알베르틴을 따라 트로카데로에 가기로 한 것이 무척 기뻤다. 최근에 일어난, 게다가 지극히 사소한 몇몇 일들 때문에, 운전사의 정직함에 대한 믿음이야 물론 여전했지만, 그의 경계심, 적어도 그 경계심의 예리함만은 예전 같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은 얼마 전, 나는 알베르틴을 그에게만 맡겨 혼자 베르사유에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레제르부아에서 점심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전사는 바텔 식당을 입에 올렸으므로, 이 모순을 알아챈 날 나는 핑계를 만들어 아래층으로 내려가, 알베르틴이 옷을 차려입는 사이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발베크에서 알게 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자네는 바텔에서 점심을 들었다고 했잖나. 알베르틴 양은 레제르부아라고 하던데. 어찌 된 영문인가?” 운전사가 대답했다. “아, 제가 바텔에서 점심을 들었다고는 했습니다만, 아가씨가 어디서 드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베르사유에 닿자마자 저를 떠나 삯마차를 잡으셨거든요. 시간이 촉박하지 않을 때면 아가씨는 그편을 더 좋아하시지요.” 그녀가 혼자였다는 생각에 벌써 화가 치밀었다. 하기야 점심을 드는 동안뿐이긴 했지만. “자네도 얼마든지,” 나는 부드럽게 넌지시 말했다(알베르틴을 실제로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 치욕스러운 일이었고, 게다가 그녀가 제 행동을 내게 숨긴다는 뜻이 되니 이중으로 그러했다), “그 애 자리는 아니라도,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들 수는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가씨는 여섯 시에 플라스 다름으로 모시러 오라고만 하셨습니다. 점심 뒤에 모시러 가라는 분부는 없었고요.” “아!” 나는 낭패한 마음을 감추려 애쓰며 말했다. 그러고는 위층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알베르틴은 일곱 시간 넘게 내리, 아무런 구속 없이 혼자 지낸 셈이었다. 물론 나는, 그 삯마차가 운전사의 감시를 벗어나려는 한낱 구실은 아니었으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시내에서 알베르틴은 삯마차 타는 편을 더 좋아했으니, 전망이 더 좋고 공기도 더 상쾌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녀는 일곱 시간을 보냈고, 그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그녀가 어떻게 썼을지, 나는 감히 떠올려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운전사가 지독히 서툴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그에 대한 내 믿음은 완전했다.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알베르틴과 한통속이었다면,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그녀를 지키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 결코 실토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사의 실토에는 달리 단 하나의 설명이 있을 수 있었으나, 그것은 터무니없었다. 곧, 알베르틴과 그 사이에 무슨 다툼이 있어, 그가 내게 사소한 폭로를 함으로써 내 애인에게 자기는 입막음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 했고, 이 첫 번째 점잖은 경고 뒤에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제 손으로 일을 처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터무니없었다. 우선 그와 알베르틴 사이에 있지도 않은 다툼을 가정해야 했고, 그다음엔 늘 그토록 상냥하고 친절하게 굴던 이 잘생긴 운전사를 완벽한 협박꾼으로 몰아세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침 이틀 뒤, 나는 그가 의심의 광기에 사로잡혀 잠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유능하게, 알베르틴을 은밀하고도 멀리 내다보는 눈으로 지켜볼 줄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그를 따로 불러내 베르사유에 관해 그가 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 자네가 말해 준 그 베르사유 나들이는 나무랄 데가 없었네. 자네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처신했지. 다만, 한마디 귀띔을 하자면, 봉탕 부인이 조카를 내게 맡긴 지금 나로선 책임이 워낙 무겁고, 사고가 날까 봐 몹시 두렵고, 함께 가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하도 원망스러워서, 이토록 미덥고 놀랍도록 솜씨 좋은, 결코 사고 한 번 낼 리 없는 자네가 알베르틴 양을 어디든 모시고 다녀 주었으면 하네.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을 테니까.” 사도 같은 이 매력적인 운전사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성별(聖別)의 십자가와도 같은 제 운전대에 손을 얹었다. 이윽고 그는 이런 말을 내뱉었는데, 그 말은(내 마음에서 온갖 불안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곧바로 기쁨으로 채우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싶게 만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가 내게 말했다. “아가씨께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제 운전대가 아가씨를 모시지 않을 때에도, 제 눈이 어디서나 아가씨를 좇으니까요. 베르사유에서도 저는 슬그머니 뒤따라, 말하자면 아가씨와 함께 시내를 구경한 셈입니다. 레제르부아에서 궁전으로, 궁전에서 트리아농으로 아가씨가 옮겨 다니시는 동안, 저는 내내 보는 티도 내지 않고 뒤를 밟았지요. 놀라운 건 아가씨가 저를 전혀 못 알아보셨다는 겁니다. 아이고, 만약 아가씨가 저를 보셨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뻔했지요. 온종일 할 일도 없이 시간이 났으니, 저도 궁전을 둘러보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도 책깨나 읽었고 그런 옛 골동거리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아가씨도 분명 눈치채셨을 테고요”(이는 사실이었으니, 만일 그가 모렐의 벗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취향은 저 바이올리니스트의 것보다 훨씬 세련되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가씨는 저를 못 보셨습니다.” “그야 아는 벗들을 좀 만나기도 했겠지. 베르사유에 아는 부인네가 많으니 말일세.” “아니요, 아가씨는 내내 혼자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 애를 빤히 쳐다봤겠군, 그토록 눈에 띄는 처녀가 홀로 있었으니.” “아무렴요, 다들 쳐다봤지요. 하지만 아가씨는 통 모르셨습니다. 내내 안내서에 눈을 박거나 그림을 올려다보며 다니셨거든요.” 운전사의 이야기는 한결 정확하게 느껴졌으니, 실제로 알베르틴이 그날 내게 보낸 것은 궁전 사진이 든 “그림엽서” 한 장과 트리아농 사진이 든 또 한 장이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운전사가 그녀의 걸음걸음을 하나하나 뒤쫓아 준 그 정성이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이틀 전에 한 이야기를 이렇게 바로잡은 것이, 그것도 너그러이 부풀리는 형태로 바로잡은 것이, 실은 그 이틀 사이에 알베르틴이 운전사가 내게 말을 흘렸다는 데 겁을 먹고 그에게 굴복해 화해했기 때문이라고, 내가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런 의심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운전사의 이 이야기가, 알베르틴이 나를 속였을지 모른다는 온갖 두려움을 씻어 준 만큼, 자연스레 내 애인에 대한 마음을 식히고 그녀가 베르사유에서 보낸 하루에 대한 관심을 줄어들게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알베르틴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그녀를 전보다 한층 시들하게 만든 그 운전사의 해명만으로는, 아마 나를 그토록 빨리 진정시키기에 충분치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며칠 전부터 내 애인의 이마에 돋아 있던 작은 여드름 두 개가, 어쩌면 내 마음의 감정을 바꾸는 데 그보다 더 효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감정은, 우연히 마주친 질베르트의 하녀가 제 입으로 털어놓은 기이한 고백 탓에, 그녀에게서 한층 더 멀리 돌려졌다(어찌나 멀어졌던지, 나는 그녀를 눈으로 볼 때에만 그 존재를 의식할 정도였다). 나는, 내가 날마다 질베르트를 보러 다니던 그 무렵, 그녀가 나보다 훨씬 자주 만나던 어떤 젊은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도 한순간 어렴풋이 낌새를 챈 적이 있어, 실은 바로 이 하녀에게 캐물어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던 그녀는, 스완 양은 그 젊은이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맹세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내 사랑이 오래전에 죽었고 여러 해 동안 내가 질베르트의 편지에 하나도 답하지 않았음을 아는 데다, 어쩌면 그녀가 더는 질베르트의 시중을 들지 않게 된 까닭도 있어, 하녀는 내가 전혀 몰랐던 그 연애 사건을 스스로 나서서 낱낱이 들려주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보였다. 그 무렵의 맹세를 떠올리며, 나는 그녀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몰랐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천만에, 스완 부인의 분부에 따라, 내 사랑의 대상이 혼자 있을 때마다 그 젊은이에게 알리러 가던 사람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내 사랑의 대상이라니…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나를 아프게 했으므로, 나는 그 시절의 내 사랑이 정말 내 생각만큼 죽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질투가 죽은 사랑을 되살릴 수 있다고는 믿지 않으므로, 나는 이 괴로운 느낌이 적어도 얼마간은 자존심의 상처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여겼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그리고 그 무렵과 그 뒤 한동안까지도 나를 깔보는 태도를 짐짓 꾸며 보이던(그들의 태도는 그 뒤로 달라졌다) 여러 사람이, 내가 질베르트를 사랑하는 동안 내가 그녀에게 감쪽같이 속고 있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질베르트를 향한 내 사랑에 자기애의 요소가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묻게 만들었다.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 주던 그 다정한 교제의 시간이 모두, 내 애인과 내가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를 짐짓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지금, 그 사실이 이토록 나를 아프게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사랑이든 자기애든, 질베르트는 내 안에서 거의 죽었으나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이 언짢음이 낳은 결과라면, 내 마음에서 그토록 작은 자리밖에 차지하지 못하던 알베르틴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도록 나를 막아 준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토록 긴 여담 끝에) 그녀에게로, 그리고 그녀의 베르사유 나들이로 돌아오자면, 베르사유 그림엽서들은(그렇다면 서로 다른 사람이 각각 불러일으킨 두 질투가 동시에 얽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올가미에 옭아맬 수도 있는 것일까?) 서류를 정리하다가 눈길이 닿을 때마다 나에게 어딘가 언짢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만일 그 운전사가 그토록 미더운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의 두 번째 이야기가 알베르틴의 “엽서”와 들어맞는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베르사유에서 맨 먼저 보내는 것이 궁전과 트리아농 말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어떤 조각상을 흠모하는 세련된 취향의 인물이 고른 엽서이거나, 아니면 베르사유의 “풍경”으로 마차 궤도의 정거장이나 화물 창고를 골라 대는 어떤 얼간이가 고른 엽서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나마도 얼간이라 말한 건 내 잘못이니, 그런 그림엽서를 늘 그런 부류가 아무렇게나, 베르사유에서 온 것이라는 흥미만으로 사들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꼬박 두 해 동안 지성인들이며 예술가들은 시에나, 베네치아, 그라나다를 “따분하다”고 여기면서, 아무리 초라한 승합마차나 어떤 철도 객차를 두고도 “저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 이 변덕도 다른 것들처럼 지나갔다. 실제로 사람들이 “과거의 고귀한 유물을 파괴하는 신성모독”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고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어쨌든 일등칸 철도 객차가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보다 a priori 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일은 그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여기에 진짜 삶이 있고, 과거로의 회귀는 인위적이다”라고 말했지만, 어떤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확실을 기하기 위해, 운전사에 대한 내 믿음은 조금도 저버리지 않으면서, 알베르틴이 운전사를 돌려보내려 할 때 밀정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그가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그 뒤로 앙드레라는 지원 없이는 그녀를 결코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사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는데도 말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에게(지금이라면 결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운전사와 단둘이 꼬박 사흘을 떠나 발베크 가까이까지 다녀오도록 허락하기까지 했으니, 뚜껑 없는 차로 빠르게 달리고 싶어 하는 그녀의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 사흘 동안 내 마음은 아주 평온했으니, 그녀가 내게 퍼부어 보낸 빗발 같은 그림엽서가, 브르타뉴 우편 사정이 형편없던 탓에(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필시 엉망이 되는), 알베르틴과 운전사가 그토록 원기 왕성하게 돌아오고 나서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게 닿았는데도 그러했다. 그들은 어찌나 정정했던지, 돌아온 바로 그날 아침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마다의 나들이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알베르틴이 오늘 오후 트로카데로에, 그 “특별” 낮 공연에 가는 것이 기뻤지만, 그보다도 그곳에 앙드레라는 길동무가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런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이제 알베르틴이 나갔으므로, 나는 잠시 창가로 가서 섰다. 처음에는 고요가 있었고, 그 속에서 내장 장수의 호루라기 소리와 전차의 경적이 서로 다른 옥타브로 허공을 울렸으니, 마치 눈먼 조율사 같았다. 이윽고 서로 얽힌 선율들이 차차 또렷해지더니, 거기에 또 다른 것들이 어우러졌다. 또 하나 새로운 호루라기 소리도 있었으니, 무엇을 파는지 나로선 끝내 알아내지 못한 어느 장수의 외침이었다. 그 소리는 그 자체로 전차의 비명과 똑같았는데, 제 속도에 실려 귀 밖으로 멀어지지 않는 까닭에, 움직이는 힘을 얻지 못했거나 고장 나 멈춰 선 전차 한 대가 죽어 가는 짐승처럼 짧은 간격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만일 언젠가 이 귀족 동네를 떠나야 한다면, 아주 서민적인 동네로 옮기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파리 도심의 거리와 대로가(그곳에서는 과일이며 생선이며 그 밖의 장사가 커다란 상점에 자리 잡은 터라, 어차피 제 목소리를 남에게 들리게 할 수도 없을 거리 행상들의 외침이 쓸모없어져 버렸다) 나에게는 몹시 스산하고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으로, 이 온갖 자잘한 장사와 떠돌이 먹을거리의 연도(連禱)를 죄다 벗겨 내고 말려 버린, 아침마다 돌아와 나를 홀리던 그 관현악을 앗아 간 곳으로 보이리라 느꼈다. 보도 위로, 멋 부릴 생각이라곤 없는(아니면 흉한 유행을 고분고분 따르는) 한 여자가, 염소 가죽 자루 외투를 너무 요란하게 걸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자가 아니라 운전사였으니, 조랑말 가죽을 뒤집어쓴 채 걸어서 제 차고로 가고 있었다. 큰 호텔들에서 빠져나온, 알록달록한 빛깔의 날개 돋친 사환들이, 아침 기차로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으러 핸들 위로 몸을 숙인 채 종착역을 향해 내달렸다. 바이올린의 떨림 같은 소리는 어느 때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탓이었고, 어느 때는 내가 전기 주전자에 물을 넉넉히 붓지 않은 탓이었다. 이 교향곡 한복판에서 낡은 “가락” 하나가 울려 퍼졌다. 대개 딸랑이로 제 노래에 장단을 맞추던 사탕 장수 대신, 피리에 사방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꼭두각시 인형을 매단 장난감 장수가 비슷한 인형들을 늘어놓고 팔면서, 대(大)그레고리우스의 예법에 맞춘 영창도, 팔레스트리나의 개혁된 영창도, 근대 작곡가들의 서정적 영창도 아랑곳없이, 순수한 선율의 뒤늦은 신봉자답게 목청껏 가락을 뽑았다. “Allons les papas, allons les mamans, contentez vos petits enfants, c’est moi qui les fais, c’est moi qui les vends, et c’est moi qui boulotte l’argent. Tra la la la. Tra la la la laire, tra la la la la la la. Allons les petits!” 펠트 베레모를 쓴 이탈리아 소년들은 이 활기찬 아리아와 겨뤄 볼 생각조차 없이, 말 한마디 없이 제 작은 조각상들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내 젊은 피리 부는 이가 나타나, 장난감 장수로 하여금 자리를 옮기게 하고, 빠른 박자로나마 한결 알아듣기 힘들게 가락을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Allons les papas, allons les mamans.” 이 젊은 피리꾼은, 내가 동시에르에서 아침마다 듣곤 하던 용기병 가운데 하나였을까? 아니었다, 뒤이어 들려온 것은 이러했으니. “Voilà le réparateur de faïence et de porcelaine. Je répare le verre, le marbre, le cristal, l’os, l’ivoire et objets d’antiquité. Voilà le réparateur.” 어느 푸줏간에서는, 왼쪽의 햇살 후광과 오른쪽 갈고리에 통째로 매달린 소 사이에서, 키가 무척 크고 호리호리하며 금발에 하늘빛 옷깃 위로 목이 드러난 점원 하나가, 번개 같은 손놀림과 경건한 정성으로 한쪽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안심을, 다른 한쪽에는 가장 질긴 우둔살을 갈라 놓고, 그것들을 십자가가 얹히고 아름다운 사슬 여럿이 늘어진 번쩍이는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는 콩팥이며 스테이크며 갈비를 진열창에 벌여 놓는 일밖에 하지 않았지만, 실은 최후의 심판 날 하느님을 위해 질에 따라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갈라놓고 영혼의 무게를 달아 드릴 잘생긴 천사를 훨씬 더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또다시 피리의 가늘고 기어드는 가락이 허공으로 피어올랐으니, 이제는 기병 연대가 줄지어 지나갈 때마다 프랑수아즈가 두려워하던 파괴의 전조가 아니라, 얼간이든 사기꾼이든 간에 어느 쪽이라 해도 대단히 절충적이어서, 한 가지에 매이는 대신 온갖 잡다한 재료에 제 솜씨를 부리는 어느 “골동상”이 약속하는 “수선”의 전조였다. 젊은 빵 배달꾼들은 어느 오찬 모임에 주문받은 긴 빵을 서둘러 바구니에 쑤셔 넣었고, 우유 배달 처녀들은 우유병을 멜대에 매달았다. 이 젊은 처녀들을 눈으로 좇으며 느낀 그 그리움을, 나는 과연 온당한 것으로 여겨야 할까? 내 창의 높다란 자리에서 가게 안이나 움직이는 모습으로만 보던 그 처녀들 가운데 하나를, 몇 순간이나마 가까이 붙들어 둘 수 있었다면, 그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두문불출로 잃은 것, 다시 말해 그날이 나를 위해 간직해 두었던 풍요를 가늠하려면, 저 살아 움직이는 부조가 길게 펼쳐지는 가운데서 빨랫감이나 우유를 나르는 처녀 하나를 낚아채, 움직이는 무대 장식의 실루엣처럼 잠깐 무대 옆에서 무대로, 내 침실 문의 앞무대 안으로 지나가게 하고, 그 애를 내 눈 아래 붙들어 두되, 언젠가 다시 찾아낼 수 있도록 그 애에 관한 정보를 얼마쯤 얻어 내야 했으리라. 마치 조류학자나 어류학자가 이동 경로를 좇으려는 새나 물고기의 다리며 배에, 놓아주기 전에 새겨 넣은 고리를 채워 두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마침 전하고 싶은 심부름말이 있던 터라, 프랑수아즈에게, 더러운 빨래를 걷어 가거나 깨끗한 빨래를 도로 가져오거나, 빵이나 우유병을 들고 늘 드나들던, 그녀 자신도 곧잘 심부름을 시키던 그 처녀들 가운데 누구라도 오거든 하나 골라 내 방으로 올려 보내 달라고 청했다. 그렇게 하는 나는 엘스티르와 같았으니, 화실에 틀어박혀 지내야 하던 그는, 봄날 어느 하루, 숲이 제비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것들을 바라보고 싶은 허기가 일어, 문지기의 아내를 내보내 한 다발 사 오게 하곤 했다. 그러면 엘스티르는 자기가 그 자그마한 식물 모델을 올려놓은 탁자가 아니라, 예년에 수천 송이씩 보았던, 푸른 부리의 무게에 짓눌려 굽은 구불구불한 줄기들이 온통 깔린 덤불 바닥이 눈앞에 펼쳐진 듯 여기곤 했으니, 그 다정하고 낯익은 꽃의 맑은 향내가 화실 안에 그려 낸 어떤 상상의 지대와도 같았다.
일요일이라 빨래하는 처녀는 올 가망이 조금도 없었다. 빵을 가져오는 처녀로 말하자면, 운 나쁘게도 프랑수아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초인종을 눌러, 빵을 바구니째 층계참에 놓아두고는 가 버렸다. 과일 파는 처녀는 한참 뒤에야 올 터였다. 언젠가 나는 우유 가게에 치즈를 주문하러 갔다가, 여러 젊은 점원 가운데 유난히 살결이 흰,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으면서도 키가 큰 처녀 하나가, 다른 심부름 처녀들 틈에서 뚜렷이 도도한 태도로 몽상에 잠겨 있는 것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멀리서, 그것도 아주 짧은 한순간 보았을 뿐이어서 그 생김새를 이렇다 할 수 없었으니, 다만 너무 빨리 자란 게 틀림없고, 그 머리에는 한 무더기 숱이 얹혀 있는데, 그것이 머리카락 하나하나의 세밀함보다는 조각가가 빙하 위에 나란히 쌓인 눈더미의 갈래갈래를 상투적으로 새겨 놓은 모양을 훨씬 더 떠올리게 했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새끼 독수리의 부리를 떠올리게 하는 갸름한 얼굴 위로 또렷이 윤곽 잡힌 코(어린애에게는 드문 일이다) 말고는 이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애를 또렷이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동무들이 그 애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첫눈에, 또 그 뒤에 내가 그 애에게 불러일으킬지 모를 감정이 상한 자존심일지, 빈정거림일지, 아니면 나중에 벗들 앞에서 드러낼 경멸일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점도 있었다. 그 애를 두고 한순간에 지어낸 이 여러 갈래의 억측들이, 그 애를 에워싸고 어수선한 대기를 응결시켰고, 그 애는 그 속으로, 천둥에 흔들리는 구름 속 여신처럼 사라져 버렸다. 정신적인 불확실이야말로 어떤 시력의 결함보다도 정확한 시각적 지각을 더 크게 가로막는 법이니까. 지나치게 여윈 데다 쓸데없이 눈길을 끄는 이 젊은 처녀에게서, 남들 같으면 매력이라 불렀을 법한 것의 과함이야말로 나를 밀어내기에 꼭 알맞은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다른 젊은 우유 가게 처녀들을 알아보기는커녕 그들에 관해 무엇 하나 기억조차 못 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 처녀의 매부리코와 그 눈길, 얼마나 매력 없던지, 사색에 잠긴 듯 저 혼자만의, 남을 재단하는 기색이 도는 그 눈길이, 한 줄기 흰 번개가 그 양편 풍경을 어둠에 묻어 버리듯, 그 처녀들을 영원한 밤 속에 잠기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유 가게에 치즈를 주문하러 갔던 그 걸음에서 내가 기억한 것은(하도 무심히 본 얼굴이라 그 얼굴의 공허함에 열 가지 코를 잇달아 갖다 붙이는 판인데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를 끌지도 않았던 이 처녀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사랑이 싹트기에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유난히 흰 처녀를 잊고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수아즈가 나에게, 그 애가 어린데도 어지간히 약아빠져서, 너무 헤프게 굴다가 이웃들에게 빚까지 진 탓에 곧 주인집을 떠나게 될 거라고 말해 주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라는 말이 있다. 거꾸로, 쾌락의 가능성이 아름다움의 시작일 수도 있다.
나는 엄마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세비녜 부인에게서 따온 인용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콩브레에서 내 생각이 온통 새까맣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짙은 잿빛이란다. 나는 매 순간 너를 생각한다. 네가 그립구나. 네 건강, 네 일, 네가 곁에 없다는 것, 그것들이 내 하늘에 어떤 구름을 드리우고 있을지 짐작이나 하겠니?”
나는 어머니가, 알베르틴이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아직 애인에게 알리지는 않았어도 결혼하려는 내 뜻이 굳어진 것을 알고 언짢아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머니가 그 언짢음을 더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것은, 내가 편지를 아무 데나 흘려 둘까 봐 걱정해서였다. 그렇게 에둘러 쓴 편지 속에서도 어머니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곧바로 잘 받았다고 알리지 않는다고 나를 나무랐다.
“너도 세비녜 부인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겠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네 편지 받았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두고 더는 웃지 않게 되는 법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