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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⑭

5권 제1부 · 제1장: 알베르틴과의 생활

어머니는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에는 손대지 않은 채, 내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도대체 네 돈이 다 어디로 가는 거니? 샤를 드 세비녜처럼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한꺼번에 두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딱한 노릇인데, 돈 쓰는 일에서만큼은 부디 그를 닮지 말아 다오. 내가 너를 두고 ‘그 애는 쓰고도 보여 줄 것 하나 없이 쓰는 법을, 걸지도 않고 잃는 법을, 빚은 갚지도 못하면서 치르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내가 막 엄마의 편지를 다 읽었을 때, 프랑수아즈가 돌아와, 전에 내게 말했던 바로 그 좀 당돌한 젊은 우유 가게 처녀가 지금 집에 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도련님 쪽지를 얼마든지 가져다 드리고 답장도 받아 올 수 있답니다, 너무 멀지만 않으면요. 도련님이 보시면 아실 거예요, 꼭 빨간 모자 같은 애예요.” 프랑수아즈는 그 애를 데리러 물러갔고, 나는 그녀가 앞장서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 어서 오렴, 복도가 있다고 무서워하다니, 별소릴 다 하는구나, 네가 이렇게 겁쟁이일 줄은 몰랐다. 내가 손이라도 잡고 데려가 줘야겠니?” 그리고 프랑수아즈는, 제가 주인을 우러르듯 남들도 제 주인을 우러르게 하려는 착하고 정직한 하인답게, 옛 거장의 그림 속에서 중매인을 고귀하게 만드는 그 위엄을 몸에 두르고 있었으니, 그 그림에서는 그녀에 견주면 연인과 그 애인이 하찮게 스러져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엘스티르가 그것들을 바라볼 때, 그는 제비꽃이 무얼 하고 있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젊은 우유 가게 처녀가 들어서자 이내 나의 관조적 평온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애가 전할 편지라는 꾸며 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 궁리밖에 할 수 없었고, 그 애를 뜯어보려고 방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감히 슬쩍 훔쳐보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쓰기 시작했다. 그 애는 나에게, 사람들이 만나러 오는 그런 집에서 찾아낸 예쁜 처녀에게서는 결코 발견하지 못할, 미지의 것이 지닌 매력을 두르고 있었다. 그 애는 벌거벗지도 변장을 하지도 않은, 진짜 우유 가게 처녀였으니, 우리가 다가갈 겨를이 없을 때면 그토록 예쁘리라 상상하게 되는 그런 부류였다. 그 애는 삶의 영원한 욕망, 영원한 아쉬움을 이루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고, 그 이중의 흐름이 마침내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향해 오는 것이었다. 이중이라 한 것은, 한편으로 그것이 미지의 것, 곧 그 키며 몸매며 무심한 눈길이며 도도한 침착함으로 미루어 필시 신성하리라 짐작되는 사람에 관한 문제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여자를 제 직업에 완전히 특화된 사람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다른 옷차림이 우리로 하여금 낭만적으로 딴 세상이라 믿게 만드는 그 세계로,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달아나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연애적 호기심의 법칙을 하나의 공식에 담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뜻 본 여자와 다가가 어루만진 여자 사이의 차이가 최대에 이르는 데서 찾아야 하리라. 한때 폐쇄된 집이라 부르던 곳의 여자들이, 창녀 그 자신이(우리가 그들을 창녀로 안다는 전제하에) 우리를 그토록 조금밖에 끌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다른 여자들보다 덜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으려 애쓰는 바로 그것을 그들은 이미 내주고 있으니, 그들은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그 차이가 최소에 이른다. 창녀는 거리에서부터, 우리 방에 있을 때 지을 그 미소를 벌써 우리에게 지어 보인다. 우리는 조각가다. 우리는 어떤 여자에게서, 그녀가 우리에게 내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조각상을 얻어 내고 싶어 안달한다. 우리는 바닷가를 무심히, 건방지게 거니는 처녀를 보았고, 계산대 뒤에서 진지하고 바지런하게 일하다가, 동무들의 빈정거림을 피하려는 것뿐이더라도 우리에게 딱딱하게 대꾸하는 점원 처녀를 보았고, 우리에게 대꾸조차 거의 하지 않는 과일 장수 처녀를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닷가의 도도한 처녀, “남들이 뭐라 하겠어?”라는 높은 콧대에 올라앉은 점원 처녀, 딴생각에 잠긴 과일 장수 처녀를, 우리의 능란한 솜씨로 그 뻣뻣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과일을 잔뜩 인 팔로 우리 목을 끌어안게 하고, 여태 얼어붙었거나 딴 데 가 있던 눈길을 승낙의 미소와 함께 우리 입술로 향하게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몸소 겪어 알아내기 전까지는 도무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아, 그 매서운 눈의 아름다움이여. 일하는 시간, 그 여자가 동무들의 입방아를 그토록 두려워하던 때에 우리의 에워싸는 시선을 피하던 그 눈이, 이제 우리가 단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사랑을 이야기하자, 햇살처럼 쏟아지는 웃음의 무게 아래 그 눈동자를 내맡기게 되는지를 말이다. 한편에는 점원 처녀, 다리미질에 여념 없는 세탁부, 과일 장수, 우유 가게 처녀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막 우리의 애인이 되려는 바로 그 처녀가 있으니, 그 사이에서 차이는 최대에 이르러, 참으로 그 극한까지 늘어나며, 제 직업의 몸에 밴 몸짓들로 하여 갖가지로 변주된다. 그 몸짓들은 고된 노동의 시간 동안 한 쌍의 팔을(아라베스크 무늬로 여긴다면)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무언가로, 곧 저녁마다 벌써 우리 목에 감기고 그 입은 입맞춤을 위해 오므라드는 그 나긋한 매듭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제 생업이 우리와 갈라놓은 듯한 정숙한 처녀들에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불안한 접근으로 한평생을 보낸다. 그들이 일단 우리 품에 안기고 나면, 그들은 이제 본디 그러했던 것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우리가 건너기를 꿈꾸던 그 심연에는 다리가 놓여 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여자들과 다시 시작하고, 이 일들에 우리의 온 시간과 온 돈과 온 힘을 바치며, 어쩌면 첫 밀회를 놓치게 할지도 모를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마부에게 피가 끓어오르고, 스스로를 열병에 빠뜨린다. 그 첫 만남이 어떤 환상의 소멸을 뜻하리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우리는 잘 안다. 환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지 보고 싶어 하고, 그러다 우리가 그 차가움을 눈여겨보았던 세탁부를 떠올린다. 연애의 호기심은 지명들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그것과 같아서, 끝없이 실망하면서도 되살아나고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아! 그 애가 내 앞에 서자마자, 골이 진 머리 타래를 늘어뜨린 그 살결 흰 우유 가게 처녀는, 내가 상상했던 온갖 것과 내 안에 일었던 욕망을 죄다 벗겨 낸 채, 제 본디 크기로 오그라들었다. 두근거리던 나의 억측의 구름은 더는 그 애를 어른거리는 안개로 감싸지 않았다. 그 애는 거의 초라하다 할 기색을 띠게 되었으니, (내가 하나도 기억에 붙들어 두지 못한 채 차례로 떠올렸던 열 개, 스무 개의 코 대신) 코가 딱 하나뿐이었고, 그것도 내 생각보다 둥글어서 그 애를 어딘가 얼뜨기처럼 보이게 했으며, 어쨌든 스스로를 여럿으로 불려 낼 능력은 잃어버린 뒤였다. 날아가다 붙들린 이 덧없는 것은, 축 늘어지고 짓뭉개진 채, 제 보잘것없는 겉모습에 무엇 하나 보탤 수 없었고, 이제 함께 손잡아 줄 나의 상상력도 없었다. 현실의 무기력 속으로 떨어진 나는 다시 튀어 오르려 애썼다. 가게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애의 두 뺨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나는 덜컥 겁이 났고, 겉으로나마 태연한 척하려고 젊은 우유 가게 처녀에게 말했다. “저기 놓인 피가로 좀 건네주겠니, 너를 어디로 보낼지 주소를 확인해야 해서 말이야.” 그러자 그 애는 신문을 집어 들면서 팔꿈치까지 제 저지의 붉은 소매를 드러냈고, 그 보수 신문을 단정하고 정중한 몸짓으로 내게 건넸는데, 그 몸짓의 은근한 재빠름과 나긋한 곡선과 새빨간 빛깔이 나를 흐뭇하게 했다. 피가로를 펼치면서, 무슨 말이든 하려고, 눈은 들지 않은 채 나는 그 애에게 물었다. “네가 입은 그 빨간 뜨개옷은 뭐라고 부르니? 참 잘 어울리는구나.” 그 애가 대답했다. “제 골프예요.” 모든 유행에 흔한, 아래로 내려가는 완만한 경향에 따라, 몇 해 전만 해도 제법 세련된 세계, 곧 알베르틴의 벗들에게나 어울릴 성싶던 옷가지와 맵시가, 이제는 일하는 처녀들의 몫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너한테 너무 폐가 되지 않겠니,” 나는 피가로의 지면을 뒤지는 척하며 말했다, “제법 먼 데로 널 보내도 말이야?” 나 스스로가, 그 애가 내 심부름을 맡음으로써 하게 될 그 수고를 조금이라도 힘든 일로 여기는 티를 내자마자, 그 애도 그것이 제게 성가신 일이 되리라 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제가 이따가 자전거 타고 나가야 해서요. 아유, 그게, 일요일밖에 쉬는 날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맨머리로 다니면 감기 들지 않겠니?” “아유, 맨머리로 안 다녀요, 폴로를 쓸 거예요, 하기야 머리숱이 이렇게 많으니 그것 없이도 괜찮지만요.” 나는 곱슬거리는 머리 타래의 불길로 눈을 들었고, 그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아름다움이 일으킨 회오리의 번갯불과 돌풍 한가운데로 휩쓸려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계속 신문을 들여다보았는데, 그것이 그저 태연한 척하며 시간을 벌기 위함이고, 읽는 척만 하고 있었을 뿐인데도, 그럼에도 눈앞에 놓인 글자들의 뜻이 머리에 들어왔고,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내 눈길을 붙들었다. “오늘 오후 트로카데로 대강당에서 이미 예고된 순서에, Les Fourberies de Nérine에 출연하기로 승낙한 레아 의 이름을 덧붙여야 한다. 물론 그녀는 네린 역을 맡을 터인데, 그 역에서 그녀는 놀라운 기지와 사람을 홀리는 쾌활함을 뽐낸다.” 그것은 마치 어떤 손이, 발베크에서 돌아온 뒤로 아물기 시작하던 상처를 덮고 있던 붕대를, 내 가슴에서 난폭하게 뜯어낸 것만 같았다. 내 고뇌의 홍수가 거센 물살로 터져 나왔다. 레아, 그 여자는 발베크의 그 두 처녀와 벗이던 여배우로, 알베르틴이 어느 날 오후 카지노에서 보는 티도 내지 않은 채 거울로 지켜보던 바로 그 처녀들의 친구였다. 과연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은 레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런 미덕의 본보기를 누가 의심할 수 있느냐는 듯 거의 충격받은 기색으로, 짐짓 뉘우치는 듯한 특별한 어조를 지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 아니에요, 그분은 결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아니에요, 아주 반듯한 사람이라고요.”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알베르틴이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단언할 때면, 그것은 언제나 다른, 어긋나는 진술들로 나아가는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첫 번째 말이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두 번째 말이 뒤따랐다. “그 여자, 저는 몰라요.”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알베르틴이 “의심할 여지 없는” 사람이라며 (게다가) 자기는 모른다던 누군가에 대해, 우선 자기가 그 여자를 모른다고 했던 것을 잊어버리고는, 저도 모르게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가운데 실은 그 여자를 안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이 첫 번째 망각이 끝나고 새로운 진술이 나오고 나면, 두 번째 망각이 시작되었으니, 곧 그 사람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던 말을 잊는 것이었다. “아무개는,” 하고 내가 물으면, “그런 여자들 중 하나 아니야?” “아유, 그럼요, 그건 다들 아는걸요!” 그러면 곧바로 뉘우치는 듯한 어조가 다시 울려, 맨 처음의 그 진술을 흐릿하게, 잔뜩 줄여 되울리는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분이 제게는 늘 나무랄 데 없이 처신했다는 건 말해 둬야겠어요. 물론, 그분도 제게 수작을 부렸다간 제가 당장 내쫓으리라는 걸 알지요. 그래도 그건 상관없어요. 그분이 제게 늘 보여 준 진심 어린 존중만큼은 인정해 줘야 하니까요. 자기가 상대해야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분이 잘 알았던 게 분명해요.” 우리는 진실을 기억하니, 그것은 이름을 지녔고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시변통의 거짓말은 이내 잊힌다. 알베르틴은 이 마지막 거짓말, 그 네 번째 거짓말을 잊었고, 어느 날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아 내 신뢰를 얻고 싶던 나머지, 처음에는 그토록 반듯하다던, 게다가 자기는 모른다던 바로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했다. “그분이 한때 저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어요. 서너 번이나 저더러 같이 집에 가서 방으로 올라오라고 했지요. 저야 다들 볼 수 있는 데서, 환한 대낮에, 탁 트인 데서 그분 집까지 같이 가는 거야 나쁠 게 없다 싶었어요. 하지만 대문 앞에 이르면 저는 늘 무슨 핑계를 대고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어요.” 이 말을 하고 얼마 뒤, 알베르틴은 이 부인이 제 방에 두고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넌지시 입에 올렸다. 한 가지 어림짐작에서 또 한 가지 어림짐작으로 나아갔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녀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만들었을 터인데, 그 진실은 어쩌면 내가 믿게 된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녀는 여자들에게 무를지는 몰라도 남자 연인을 더 좋아했고, 이제 나를 곁에 둔 마당에 레아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사람에 관해서라면, 나는 아직 폭로의 첫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알베르틴이 그녀를 아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했다. 하기야 이미 적어도 많은 여자의 경우, 내 애인의 서로 모순되는 진술들을 그러모아 하나로 엮어 그녀 앞에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잘못을 밝혀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그 잘못이란, 천문 법칙이 그러하듯, 현장에서 관찰하거나 덮치기보다 추론으로 이끌어 내기가 훨씬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그녀는, 처음부터 내게 한 말이 죄다 한낱 거짓의 그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제 진술들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이었다고, 그것을 물러 버리면 내 증거 체계 전체가 무너지고 마는 그런 하나가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천일야화에도 그와 비슷한 그물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매혹적이라 여긴다. 그것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때 우리를 아프게 하고, 그로써 우리로 하여금 표면에서 노니는 데 만족하는 대신 인간 본성에 대한 앎 속으로 조금 더 깊이 파고들게 한다. 슬픔은 우리 안으로 파고들어, 괴로운 호기심에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서 여러 진실이 솟아나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숨겨 둘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고 느끼며, 그리하여 그것들을 발견한 어느 죽어 가는 무신론자는, 제 소멸을 확신하고 명성 따위엔 무심하면서도,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그 진실들을 알리려는 시도에 바칠 것이다.

물론 나는 레아에 관해서는 아직 앎의 첫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알베르틴이 그녀를 아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가, 트로카데로에서, 이 안면을 되살리거나 이 낯선 여자와 새로 안면을 트는 일을 막아야 했다. 알베르틴이 레아를 아는지 모른다고 나는 말했지만, 사실 발베크에서 알베르틴 본인에게서 그것을 알아 두었어야 했다. 부실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도, 알베르틴의 머릿속에서도, 그녀가 내게 했던 숱한 말들을 지워 버린 탓이다. 기억이란 우리 삶의 갖가지 사건을 눈앞에 늘 펼쳐 보이는 복제본이라기보다, 어쩌다 우연한 닮음 덕에 이따금 죽은 인상들을 되살려 길어 올리게 해 주는 심연에 가깝다. 그러나 그때조차, 그 잠재적 기억의 저수지로 떨어지지 않아 영영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남는 자잘한 세부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제 삶과 이어져 있다고 미처 알지 못하는 것에는 우리는 그저 스치는 관심밖에 기울이지 않으며, 그녀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관해 한 말도, 그 말을 할 때의 표정도 이내 잊어버린다. 그리하여 이윽고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 질투가 깨어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 애인이 서둘러 집을 나서게 만든 것도, 우리가 평소보다 일찍 돌아와 외출을 막았을 때 그녀가 짜증을 낸 것도 그들 탓임을 확인하려 들 때, 실마리를 찾아 과거를 뒤지는 우리 질투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늘 지난 일만 돌아보는 질투는, 사료 한 장 없는 시대의 역사를 써야 하는 역사가와 같다. 언제나 때를 놓친 질투는, 성난 황소처럼 그곳으로 내달리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화살로 약 올리는, 그리고 그 화려함과 교활함을 군중이 찬탄하는 도도하고 눈부신 존재를 끝내 찾지 못한다. 질투는 허공을 상대로 싸운다. 마치 꿈속에서 우리가, 살아생전 잘 알던 사람을 그의 텅 빈 집에서 찾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여기 있는 이가 실은 딴사람이며 그저 우리 벗의 얼굴만 빌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여겨 갈피를 못 잡듯, 그리고 잠에서 깬 뒤 그 꿈의 이런저런 세부를 짚어 내려 할 때 더욱 갈피를 못 잡듯,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그 말을 할 때 우리 애인의 표정은 어떠했던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가, 실은 휘파람을 불고 있지 않았던가, 마음속에 어떤 연정이라도 품지 않고서는 결코 하지 않던 그 짓을. 우리 사랑의 시절에, 우리 존재가 그녀를 성가시게 하고 조금 짜증 나게 했을 때, 그녀는 지금 내세우는 말과 어긋나는 무언가를, 이러이러한 사람을 안다거나 모른다거나 하는 말을 우리에게 한 적이 있지 않던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결코 알아내지 못하리라. 우리는 한낱 꿈의 덧없는 조각들을 붙들려 애쓰고, 그러는 내내 애인과의 우리 삶은 이어진다.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미처 알지 못하는 것에는 무심하고,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는 마음을 쏟으며, 우리와 아무 실제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기억의 누락과 빈틈과 부질없는 불안으로 가득한, 꿈처럼 허황한 우리 삶은.

나는 젊은 우유 배달 아가씨가 아직 방에 남아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녀에게 그곳이 꽤 먼 데다 이제 그녀가 필요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 역시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 여겼다. “멋진 경기가 곧 열리는데,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그녀가 이미 운동 경기에 빠져 있으며 몇 해 뒤면 “제 삶을 산다”는 말을 하리라 느꼈다. 나는 이제 정말로 그녀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5프랑을 주었다. 이런 후한 돈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아무것도 안 하고 5프랑을 벌었으니 심부름을 하면 훨씬 더 많이 받겠거니 생각한 그녀는, 이내 자기 경기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심부름쯤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어요. 시간이야 언제든 나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방에서 내몰았다. 혼자 있어야 했으니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서 레아의 여자친구들과 마주칠 위험을 막아야 했다. 애써야 했고, 또 해내야 했다. 솔직히 아직 어떻게 할지는 알지 못했고, 그 첫 순간들 동안 나는 두 손을 펴 들여다보고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구하는 바를 찾지 못하는 정신이 게으름에 못 이겨, 열차가 허허벌판에 멈춰 섰을 때 객차 창 너머로 보이는 둑 위의 풀잎들이 바람에 떨리는 광경처럼, 더없이 하찮은 것들이 또렷이 보이는 지점에 한순간 멎도록 스스로를 내버려 두어서였는지 (그것은 두려움에 얼어붙거나 홀린 채 근육 하나 까딱없이 바라보는, 붙잡힌 짐승의 부동만큼도 결실 없는 정지였다), 아니면 내가 내 몸을, 그 안에서 정신이 작동하고 그 정신 속에 이 사람 저 사람을 겨눈 행동 수단이 든 채로, 마치 알베르틴을 레아와 그 두 친구에게서 떼어 놓을 총알이 발사될 무기라도 되는 양 만반의 준비 태세로 두려 해서였는지 모른다. 과연 그날 아침 일찍, 프랑수아즈가 들어와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 간다고 일러 주었을 때, 나는 속으로 “알베르틴은 제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지” 하고 되뇌었고, 저녁이 오기까지 이 눈부신 날씨 속에서 그녀의 행동이 내게 이렇다 할 중요성 없이 흘러가리라 여겼었다. 그러나 나를 그토록 무심하게 만든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침 햇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베르틴이 베르뒤랭가에서 벌써 시작했거나 어쩌면 이미 마쳤을지도 모를 계획을 접게 하고, 내가 손수 고른 공연에 가도록 그녀를 묶어 두어 그녀가 아무런 사전 채비도 할 수 없게 만들었으므로, 그녀가 무엇을 하든 필연코 무해하리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조금 뒤 알베르틴이 “내가 죽어 버린들 나야 아무래도 좋아” 하고 말했다면, 그것은 그녀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처럼. 그날 아침 나와 알베르틴을 에워싸고 있던 것은 (공기 중의 햇빛보다 훨씬 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투명하고 변하는 매질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그 대기, 곧 나는 그녀의 행동을, 그녀는 제 삶의 중요성을 보게 하는 그 대기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각하지는 못하되, 우리를 에워싼 공기가 그렇듯 순전한 진공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그 믿음들 말이다. 우리 둘레에 가변적인 대기를, 때로는 더없이 상쾌하고 흔히는 숨 막히는 대기를 이루는 그 믿음들은, 기온이나 기압이나 날씨만큼 세심하게 연구되고 기록될 자격이 있다. 우리 하루하루에는 저마다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고유함이 있으니까. 그날 아침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되 그럼에도 내가 피가로를 두 번째로 들여다본 순간까지 즐거이 감싸여 있던 나의 믿음, 곧 알베르틴이 무해하지 않은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그 믿음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 화창한 햇살의 하루가 아니라, 알베르틴이 레아와, 그리고 더더욱 손쉽게 그 두 처녀와 다시 안면을 틀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 하루에서 도려내어 만든 또 다른 하루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내게는 그럴 법해 보였듯 그들이 트로카데로로 그 여배우에게 갈채를 보내러 간다면, 막간 어느 한때에 알베르틴과 마주치기란 그들에게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이제 나는 뱅퇴유 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레아라는 이름이, 나를 질투에 빠뜨리려고, 카지노에서 그 두 처녀를 지켜보던 알베르틴의 모습을 내 마음에 되불러 왔던 것이다. 내 기억 속에는 서로 동떨어진, 불완전한, 윤곽뿐인, 스냅 사진 같은 알베르틴들의 연속밖에 없었기에, 내 질투는 한순간의, 덧없으면서도 붙박인 어떤 표정에, 그리고 그 표정을 알베르틴의 얼굴에 떠오르게 한 사람들에게로만 좁혀져 있었다. 나는 발베크에서 그녀가 그 두 처녀나 그런 부류의 여자들에게서 지나친 눈길을 받던 때를 떠올렸다.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려는 듯한, 그런 능동적인 눈길에 그녀의 얼굴이 온통 뒤덮여, 필경 내가 곁에 있는 탓에 못 알아차린 척, 어쩌면 남몰래 관능적인 그 수동성으로 그 접촉을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내가 느끼곤 하던 괴로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차려 내게 말을 걸기 전, 알베르틴이 꼼짝 않고, 허공을 향해 미소 지으며, 누군가 사진을 찍어 주기라도 하는 양 짐짓 꾸민 천진함과 감춘 쾌감을 띠고 있던 한순간이 있었다. 아니, 카메라 앞에서 한결 늠름한 자세를 지어 보이려는 듯도 했다. 동시에르에서 우리가 생루와 함께 거닐 적에 그녀가 취하던, 웃으며 혀로 입술을 훑고 개를 놀리는 시늉을 하던 그 자세 말이다. 분명 그런 순간의 그녀는, 우리 곁을 지나가는 어린 처녀들에게 그녀 쪽이 관심을 두던 때와는 조금도 같지 않았다. 그럴 때는 도리어, 그녀의 좁고 벨벳 같은 눈길이 지나가는 이에게 들러붙어 찰싹 달라붙었는데, 어찌나 밀착되고 어찌나 파고드는지, 그 눈길을 거둘 때면 상대의 살갗까지 벗겨 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 다른 표정은, 적어도 그녀에게 자못 진지한, 거의 고통스러운 듯한 기색을 주었기에, 두 처녀 앞에서 그녀가 짓던 무표정하고 황홀한 표정 뒤에 오는 흐뭇한 위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따금 어쩌면 실제로 느꼈을 욕망이 자아내는 그 침울한 표정을, 그녀가 불러일으킨 욕망이 자아내는 그 웃는 표정보다 차라리 더 바랐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척하려 해도, 그것은 그녀를 적시고, 감싸고, 아련하고 관능적으로 그녀의 온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알베르틴이 제 안에 그렇게 매달아 두고 있던 것, 그녀 둘레로 퍼져 나와 나를 그토록 아프게 쑤시던 것, 그것을 그녀가 내가 등을 돌리고 나면 계속 제 안에만 간직할지, 아니면 이제 내가 곁에 없으니 두 처녀의 수작에 대담한 응수를 하지나 않을지, 내가 어찌 알 수 있었으랴. 과연 이 기억들은 내게 격심한 비탄을 안겼다. 그것들은 알베르틴의 허물을 낱낱이 인정하는 것과도, 그녀의 부정을 통틀어 고백하는 것과도 같았고, 그녀가 내게 맹세하고 나 또한 믿고 싶던 갖가지 서약도, 내 불완전한 탐색이 내놓은 부정적인 결과들도, 어쩌면 그녀와 짜고 한 것일 앙드레의 장담도 그 앞에서는 무력했다. 알베르틴은 어느 특정한 배신을 부인할 수 있었으나, 그녀가 무심코 흘린 말로, 아니라는 그 어떤 단언보다 더 힘 있는 말로, 오직 그 파고드는 눈길 하나만으로, 그녀는 감추고 싶어 했을 것을, 어떤 특정한 사건보다 훨씬 더한 것을,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인정하지 않았을 것을 고백해 버렸다. 그녀의 타고난 성향을 말이다. 제 영혼을 순순히 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 기억들이 내게 안기는 비탄에도 불구하고, 트로카데로 낮 공연 프로그램이 알베르틴을 향한 내 갈망을 되살려 놓았음을 내 어찌 부인할 수 있었으랴. 그녀는, 그 허물이 아쉬운 대로 없는 매력을 대신할 수 있는 부류의 여자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 허물 못지않게, 그 허물 뒤에 따라오는 다정함이, 그녀 곁에서 우리가, 이틀을 내리 성한 날이 없는 병자처럼 끊임없이 되찾아야만 하는 그 안온함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었다. 게다가, 우리가 그녀들을 사랑하는 동안의 허물보다 더한 것은, 우리가 그녀들과 알기 전의 허물이며, 무엇보다 먼저 그녀들의 본성이다. 이런 종류의 사랑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실은 여자의 일종의 원죄가 선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그녀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 죄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잊으면 그녀들이 덜 필요해지고,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려면 다시 괴로워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 순간, 그녀가 두 처녀를 다시 만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그녀가 레아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물음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특정한 사실들에는 오직 그 일반적 의미와 관련해서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또 여행을 갈망하거나 여자들과 사귀기를 갈망하는 것만큼이나 유치한 짓, 곧 우리 마음속에 어쩌다 결정(結晶)되어 굳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알 수 없이 남을 그 고통스러운 현실들의 보이지 않는 격류의 조각들에 우리 호기심을 부딪쳐 부수는 짓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설령 우리가 그 결정을 부수는 데 성공한들, 그것은 이내 또 다른 결정으로 대체되고 말 터였다. 어제 나는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부인을 보러 갈까 봐 두려웠다. 이제 내 생각은 오로지 레아뿐이었다. 눈에 붕대를 두른 질투는, 자신을 뒤덮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뿐 아니라, 다나이데스나 익시온의 형벌처럼 그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야만 하는 고통의 하나이기도 하다. 설령 그 친구들이 거기 없다 한들, 무대 의상으로 아름다워지고 성공의 후광에 감싸인 레아가 알베르틴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 알베르틴의 마음에 어떤 생각들을, 설령 그녀가 억눌러도 내 집에서는 채울 길 없어 그 삶을 넌더리 나게 만들 어떤 욕망들을 남길지 누가 알겠는가.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