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까닭에서인지, 여태까지 음악의 기억들 사이를 헤매던 내 몽상의 흐름이 이제는 우리 시대에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해 온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는데, 나는 그의 재능을 조금 과장하여 그들 가운데 모렐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대번에 내 생각은 급격히 방향을 틀었고, 내가 곰곰이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모렐의 성격, 그의 본성에 깃든 어떤 기벽들이었다. 마침, 그리고 이것은 그가 시달리던 신경쇠약과 연관될 수는 있어도 혼동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모렐은 자기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으나, 언제나 그것을 어찌나 흐릿하게 그려 보이던지 도무지 무엇 하나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를테면 그는 저녁 시간만은 비워 두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자신을 온전히 샤를뤼스 씨의 뜻에 맡겼는데, 저녁 식사 뒤에 대수학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샤를뤼스 씨는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강의가 끝난 뒤에는 그를 만나야겠다고 고집했다. “안 됩니다, 그건 오래된 이탈리아 그림이라서요”(이 익살은 이렇게 글로 옮겨 적으면 아무 뜻도 없다. 그러나 샤를뤼스 씨가 모렐에게 l’Éducation sentimentale을 읽게 했는데, 그 끝에서 두 번째 장에서 프레데릭 모로가 이 표현을 쓰는 터라,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하고 나면 반드시 ‘그건 오래된 이탈리아 그림이라서요’를 덧붙이는 것이 모렐 나름의 농담이었다) “강의가 아주 늦게까지 이어지는데, 저는 이미 강사님을 어지간히 성가시게 해 드려서, 제가 중간에 나와 버리면 당연히 언짢아하실 겁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네, 대수학은 수영 같은 것도, 심지어 영어 같은 것도 아니어서, 책으로도 얼마든지 잘 배울 수 있으니까” 하고 샤를뤼스 씨는 대꾸했으니, 그는 이 대수학 강의라는 것이 도무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임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떤 여자와의 정사(情事)였거나, 혹은 모렐이 떳떳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비밀경찰에 붙어 있었다면 형사들과 함께 나선 야간 원정이었거나, 아니면 더욱 고약하게도, 매음굴에서 그 시중이 필요할지 모를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로 나서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으로가 훨씬 쉽습니다” 하고 모렐은 샤를뤼스 씨에게 장담했다, “강의는 도무지 앞뒤를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그럼 어째서 내 집에서 공부하지 않나, 거기가 훨씬 편할 텐데?” 하고 샤를뤼스 씨는 대꾸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도록 조심했으니, 저녁 시간만은 따로 떼어 두어야 한다는 그 본질적인 요소 하나만 그대로 남긴 채, 그 가상의 대수학 강의가 대번에 의무적인 무용 수업이나 그림 수업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샤를뤼스 씨는 자기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잘못 짚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모렐은 남작의 집에서 실제로 방정식을 푸는 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샤를뤼스 씨는 대수학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별 쓸모가 없으리라는 이의를 제기하기는 했다. 모렐은 그것이 시간을 보내고 신경쇠약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되는 기분 전환거리라고 대답했다. 필시 샤를뤼스 씨는 알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오직 밤에만 열린다는 이 신비롭고 피할 수 없는 대수학 강의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밝혀내려 애써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를뤼스 씨는 모렐의 소일거리가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처지가 못 되었으니, 그 자신이 사교 생활의 그물에 너무 깊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거나 하러 다니던 방문, 클럽에서 보내는 시간, 만찬, 극장에서의 저녁 나절은, 그로 하여금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게 했고, 또한 모렐이 (소문에 따르면) 자기 삶이 흘러간 여러 환경에서, 여러 도시에서 품으면서 동시에 감추려 들었다는 그 격렬하고 앙심 어린 반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곳들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몸서리를 치며, 목소리를 죽여, 그에 대해 결코 무엇 하나 확실히 말하려 들지 못한 채 그를 입에 올렸다.
불행히도 내가 그날 듣게 된 것은 바로 이 신경증적 짜증의 발작 가운데 하나였으니, 나는 피아노에서 일어나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알베르틴을 맞으러 안뜰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쥐피앙의 가게 앞을 지나는데, 그 안에는 모렐과, 머잖아 그의 아내가 되리라 내가 짐작하던 처녀만이 단둘이 있었고, 모렐은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여태 그의 말투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억양이, 평소에는 억눌려 있던 촌스러운 어조가, 참으로 기이한 어조가 드러나는 것을 들었다. 그의 말 또한 못지않게 기이해서, 프랑스어의 관점에서는 틀린 것이었지만, 하기야 그는 무엇에 대해서든 앎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안 나가, grand pied de grue, grand pied de grue, grand pied de grue” 하고 그는, 처음에는 그 말뜻을 분명 알아듣지 못했다가 이제는 부들부들 떨며 분개하여 그 앞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가엾은 처녀에게 되풀이했다. “여기서 나가라고 했잖아, grand pied de grue, grand pied de grue. 가서 네 삼촌이나 불러와, 네가 어떤 년인지 내가 일러바치게, 이 갈보야.” 바로 그 순간 친구 하나와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쥐피앙의 목소리가 안뜰에서 들려왔다. 나는 모렐이 지독한 겁쟁이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곧 가게로 들어설 쥐피앙과 그 친구의 힘에 내 힘까지 보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모렐을 피하려고 다시 위층으로 물러났다. 모렐은 그토록 쥐피앙을 불러오라 안달하는 척했으면서도(아마 그 처녀를 겁주어 굴복시키려는 것이었을 텐데, 필시 아무 근거도 없는 협박이었으리라), 안뜰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내가 여기 적어 둔 말들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내 심장이 어째서 그리 두근거렸는지는 설명해 주지 못하리라. 우리가 실제 삶에서 목격하는 이런 장면들은, 군인들이 군사 공세를 두고 기습의 이점이라 부르는 것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힘의 요소를 얻는다. 그래서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 머무르는 대신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리 기분 좋게 마음이 놓였다 한들, 나는 열 번이나 되풀이되던 그 말의 억양이, 나를 그토록 질겁하게 했던 “Grand pied de grue, grand pied de grue”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
차츰 내 동요는 가라앉았다. 알베르틴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이제 곧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를 듣게 될 터였다. 나는 내 삶이 더는 그것이 될 수도 있었을 그런 것이 아니게 되었음을, 그리고 이렇게 집 안에 여자 하나를 두어, 그녀가 돌아오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외출해야 하고, 내 본성의 힘과 활력이 갈수록 더욱더 그녀의 몸을 치장하는 데로 돌려지게 되는 이 처지가, 나를 이를테면 꽃을 활짝 피웠으나 제 온 힘의 비축을 옮겨 담은 풍성한 열매에 짓눌린 나뭇가지처럼 만들었음을 느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느끼던 불안과는 대조적으로, 알베르틴이 돌아오리라는 전망에 이제 내가 느끼는 평온은 아침에 그녀가 집을 나서기 전에 느꼈던 것보다 한결 넉넉했다. 내 애인의 고분고분함 덕분에 내가 실상 지배자가 된 미래를 앞질러 내다보며 느끼는, 임박하고 성가시고 피할 수 없으며 부드러운 그 존재로 채워지고 안정된 듯 한결 견고한 이 평온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의무를 면제해 주는) 가정적 정과 가정의 안락에서 태어나는 평온이었다. 가정적이고 가정에 깃든 것, 알베르틴을 기다리는 동안 내게 그토록 큰 안식을 안겨 준 그 감정 못지않게, 나중에 그녀와 함께 차를 타고 나갔을 때 내가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잠깐 장갑을 벗었는데, 내 손을 만지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봉탕 부인이 준 반지 옆으로 또 다른 반지 하나가, 맑은 루비의 크고 매끄러운 표면을 드러낸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보여 나를 눈부시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뭐! 반지가 또 있네, 알베르틴. 네 이모는 참 후하기도 하지!” “아니, 이건 이모한테 받은 게 아니야” 하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산 거야, 이제 당신 덕분에 돈을 아주 많이 모을 수 있게 됐으니까. 이게 예전에 누구 거였는지도 몰라. 돈이 궁했던 어떤 손님이 르망에서 내가 묵던 호텔 주인한테 맡기고 간 거래. 주인은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값어치보다 훨씬 싸게라도 넘기려던 참이었어. 그래도 나한테는 여전히 너무 비쌌지. 그런데 이제 당신 덕분에 내가 세련된 숙녀가 되고 나니까, 그 사람한테 아직 그게 있는지 편지로 물어봤어. 그랬더니 여기 있잖아.” “그럼 반지가 아주 많아지겠는걸, 알베르틴. 내가 줄 반지는 어디에 끼려고? 아무튼 아름다운 반지야, 루비 둘레에 새겨진 게 뭔지 잘 모르겠네, 씩 웃는 남자 머리 같아 보여. 하지만 내 눈이 그리 좋지가 않아서.” “당신 눈이 아무리 좋아도 별수 없을걸. 나도 뭔지 모르겠으니까.” 예전에는, 어떤 이의 회고록이나, 남자가 늘 여자와 함께 마차를 몰고 나가고 함께 차를 마시는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따금 나는 그것을 이루었다고 여기기도 했으니, 이를테면 생루의 정부를 데리고 나가거나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소설에서 부러워하던 인물을 실제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도움 삼아 불러 봐야 헛일이었으니, 그 생각은 내게 라셸과 함께 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다짐해 주었을 뿐, 어떤 즐거움도 안겨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제로 존재했던 무언가를 흉내 내려 할 때마다, 우리는 그 무언가가 흉내 내려는 욕망이 아니라 그 자체 또한 실재하는 어떤 무의식적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셸과 함께 나가면서 섬세한 즐거움을 맛보려던 온갖 욕망으로도 끌어내지 못했던 바로 이 특별한 인상을, 보라, 나는 이제 그것을 얻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채, 그러나 전혀 다른 이유들로, 진실하고 깊은 이유들로 맛보고 있었다. 한 가지만 예로 들자면, 내 질투가 알베르틴을 내 시야 밖으로 나가게 두지 못하게 하고, 집을 나설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는 그녀를 나 없이 어디로도 가게 두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것을 이제야 맛본 것은, 우리의 앎이 우리가 관찰하려 애쓰는 외부의 대상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 감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며, 예전에는 한 여자가 나와 같은 마차에 앉아 있을 수 있었어도, 내가 알베르틴에 대해 느끼던 것과 같은 그녀에 대한 욕구로 매 순간 그녀가 그 자리에 새로이 창조되지 않는 한, 내 시선의 끊임없는 애무가 늘 새로 되살려야 하는 그 색조들을 그녀에게 쉼 없이 되돌려 주지 않는 한, 가라앉았을지언정 여전히 기억을 지닌 내 감각들이 그 빛깔들 아래 맛과 실체를 놓아 주지 않는 한, 그리고 감각들 및 그것들을 드높이는 상상력과 결합한 질투가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강력한 보상된 이끌림으로 그 여자를 내 곁에 균형 잡아 두지 않는 한, 그녀는 진정으로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자동차는 큰길을, 대로를 빠르게 달렸는데, 그 줄지어 늘어선 집들은, 햇빛과 추위가 장밋빛으로 엉겨 붙은 그 모습은, 등불을 밝히라 이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에 국화꽃의 부드러운 빛 속에서 스완 부인을 찾아뵙던 일을 내게 떠올려 주었다.
내 침실 창유리로 갈라져 있을 때 못지않게 자동차 유리로 그들과 갈라져 있던 나는, 가게 문간에 서서 햇빛을 받아 빛나던, 내 욕망만으로도 정묘한 모험 속으로 띄워 보내기에 충분한 어떤 여주인공처럼,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어떤 로맨스의 문턱에 선 젊은 과일 장수 처녀 하나를, 우유 파는 처녀 하나를 겨우 알아볼 겨를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알베르틴에게 차를 세워 달라 청할 수 없었고, 내 눈이 그 이목구비를 겨우 분간하고 그들이 잠긴 황금빛 안개 속에서 그 싱그러운 얼굴빛을 겨우 어루만졌던 그 젊은 여자들은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산대 앞의 포도주 상점 처녀나 거리에서 수다를 떠는 세탁부 처녀를 언뜻 보았을 때 나를 사로잡던 감정은, 우리가 여신을 알아볼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제 올림포스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 주민들은 땅 위에 산다. 그리고 화가들이 신화적 장면을 구성하면서, 가장 천한 일에 종사하는 미천한 태생의 젊은 여자들에게 베누스나 케레스 역을 맡겨 자세를 취하게 했을 때, 그것은 신성모독을 저지르기는커녕, 그저 그 여자들이 잃어버렸던 자질을, 갖가지 속성을 더해 주고 되돌려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트로카데로는 어땠니, 이 말괄량이 아가씨야?” “거기서 빠져나와 당신이랑 나온 게 아주 기뻐. 건축으로 보면 꽤 볼품없지 않아? 다비우가 지은 거지, 아마.” “우리 알베르틴이 어쩜 이렇게 유식해지는지! 그야 그걸 지은 게 다비우인 건 맞지만, 나라면 대뜸 대지는 못했을 거야.” “당신이 자는 동안 내가 당신 책을 읽거든, 이 게으름뱅이 영감아.” “얘야, 들어 봐, 너는 어찌나 빨리 변하고 어찌나 총명해지는지”(이것은 사실이었으나, 설령 사실이 아니었다 해도, 그녀가 다른 무엇으로도 얻지 못할 만족을, 적어도 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헛되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다고 스스로 되뇌는 만족을 누린다 한들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흔히 거짓으로 여겨질 법한 것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내가 찾고 있는 어떤 진리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것들을 너한테 얼마든지 말해 줄 마음이 든다. 너 인상주의가 무슨 뜻인지 아니?” “그럼!” “좋아, 그럼 내 말은 이런 거야. 엘스티르가 새 건물이라고 싫어하던 마르쿠빌로르괴이외즈의 성당을 너도 기억하지. 그가 그런 건물들을, 그것들이 담겨 있는 전체적 인상에서 떼어 내어, 그것들이 녹아드는 빛 밖으로 끄집어내고는 고고학자처럼 그 본연의 가치를 따져 볼 때, 그거야말로 오히려 자기 자신의 인상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붓을 들기 시작할 때, 병원 하나, 학교 하나, 광고판에 붙은 벽보 하나가, 그 곁에 서 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대성당과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똑같은 값어치를 지니는 게 아닐까? 그 정면이 햇볕에 얼마나 뜨겁게 달구어졌는지, 성인들을 새긴 그 띠 장식이 빛의 바다 위에서 어떻게 헤엄쳤는지 떠올려 봐. 건물이 새것인들 무슨 상관이겠니, 그것이 오래되어 보인다면, 아니 설령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말이야. 낡은 동네가 품은 시정(詩情)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어졌지. 하지만 새로 생긴 구역에서, 돌이 죄다 갓 다듬어져 아직 새하얀 그곳에서, 근래 부유한 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집들 몇 채를 바라보면, 상점 주인들이 교외의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각, 7월 정오의 이글거리는 대기를, 어두침침한 식당에서 식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버찌 냄새만큼이나 매서운 외침으로 찢어 놓는 것 같지 않니, 그 식당에서는 프리즘 모양의 유리 나이프 받침들이 샤르트르의 창유리만큼이나 아름다운 오색의 불꽃을 던지고 있는데?” “당신은 어쩜 이렇게 멋질까! 내가 언젠가 정말로 똑똑해진다면, 그건 온전히 당신 덕분일 거야.” “날씨 좋은 날에 어째서 트로카데로에서 눈을 떼겠니, 그 기린 목 같은 탑들이 파비아 수도원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렇게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게, 당신이 가진 만테냐 그림도 떠오르게 했어,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거였던 것 같은데, 배경에 원형극장 같은 도시가 있어서, 영락없이 트로카데로를 보고 있다고 맹세라도 할 만한 그거 말이야.”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런데 내 만테냐 그림은 어떻게 봤어? 너 정말 놀랍구나!” 우리는 이제 한결 서민적인 동네에 이르렀는데, 계산대마다 뒤에 자리 잡은 시녀 같은 베누스가 그곳을 이를테면 교외의 제단으로 만들어, 나는 그 발치에서 남은 평생을 기꺼이 보내고 싶었다.
이른 죽음을 앞둔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알베르틴이 내 자유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내가 빼앗긴 즐거움들의 목록을 마음속으로 작성했다. 파시에서는, 인도가 어찌나 붐볐던지, 서로의 허리를 팔로 감은 처녀들 한 무리가 트인 거리 한복판에서 그 미소로 나를 경탄케 했다. 그것을 또렷이 볼 겨를은 없었으나, 내가 그것을 과장했을 성싶지는 않다. 어떤 군중 속에서든, 요컨대 젊은이들의 어떤 무리 속에서든, 고귀한 옆모습의 형상과 마주치는 일은 드물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공휴일에 모여든 이 무리는, 파 들어가면 옛 메달들이 드러날 땅뙈기의 빽빽한 상태가 고고학자에게 그러하듯, 쾌락을 좇는 자에게 소중하다. 우리는 불로뉴 숲에 이르렀다. 나는 생각했다, 만일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샹젤리제의 울타리 안에서, 바그너풍의 폭풍이 관현악의 온갖 삭구(索具)를 비명 지르게 하고, 방금 내가 혼자 연주하던 목동의 피리 가락을 가벼운 물보라처럼 제게로 끌어당겨, 날려 보내고, 빚어내고, 일그러뜨리고, 나누고, 갈수록 거세지는 회오리 속으로 쓸어 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어쨌든 나는 우리 드라이브를 짧게 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알베르틴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그날 저녁 베르뒤랭가에 가기로 작정한 터였다. 그들은 얼마 전 내게 초대장을 보냈는데, 나는 그것을 나머지 것들과 함께 휴지통에 던져 버렸었다. 그러나 나는 이날 저녁만은 마음을 바꾸었으니, 알베르틴이 오후에 그곳에서 만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내 보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고 일이 여느 때처럼 흘러간다면, 한 여자가 다른 여자로 향하는 출발점으로서 말고는 더 이상 우리에게 쓸모없어지는 그런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지만, 아주 작은 구석일 뿐이다. 우리는 저녁마다 알지 못하는 여자들을, 특히 그녀가 아는 사이여서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미지의 여자들을 찾아 서둘러 나선다. 그녀 자신은, 결국 우리가 소유해 버렸고, 그녀가 스스로 우리에게 내주기로 응한 모든 것을 다 써 버렸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그녀 자신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그 부분, 우리가 헛되이 캐물었던 것들, 그리고 새로운 입술들에서 주워 모을 수 있을 그것들이다.
알베르틴과의 삶이 나로 하여금 베네치아에 가는 것을, 여행하는 것을 가로막게 될 것이라면, 적어도 그동안 나는, 혼자였더라면, 이 화창한 일요일의 햇빛 속에 흩어져 있는 젊은 midinettes와 사귈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그 아름다움의 총합에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미지의 삶에 적지 않은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눈은, 어떤 이미지와 기억과 기대와 경멸을 담고 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시선이, 그 눈과 떼어 낼 수 없는 어떤 시선이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은, 그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저 찌푸린 눈썹에, 저 벌름거리는 콧방울에 저마다 다른 값어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알베르틴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들을 욕망하기를 그만두는 것마저 가로막았다. 계속 살아가려는 욕망을, 그리고 일상의 것들보다 더 감미로운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제 안에 간직하려는 사람은 마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거리에도 대로에도 여신들이 가득하니까. 그러나 여신들은 우리가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나무들 사이, 어느 카페 입구에서는 여급 하나가 신성한 숲가의 님프처럼 지켜보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세 처녀가 곁에 세워 둔 자전거들의 크게 휜 곡선 옆에 앉아 있었으니, 마치 구름에 기댄 세 불사의 여신, 혹은 그들이 신화 속 여행을 펼치는 저 놀라운 준마들 같았다. 나는 알베르틴이 이 처녀들을 깊은 주의를 기울여 잠시 바라볼 때마다, 곧바로 몸을 돌려 나를 응시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는 이 응시의 강렬함에도, 또 그 강렬함이 벌충해 주는 그 짧음에도 지나치게 마음이 어지럽지는 않았다. 뒤엣것으로 말하자면, 알베르틴은 피곤해서였는지, 아니면 그것이 강렬한 사람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이어서였는지, 이따금 이렇게 일종의 골똘한 상념에 잠긴 채 이를테면 내 아버지를, 혹은 프랑수아즈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보려고 몸을 돌리던 그 재빠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내 의심을 아는 알베르틴이, 설령 그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어떤 빌미도 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알베르틴 쪽에서 그랬다면 내게 죄스럽게 보였을 이 주의를(그것이 젊은 남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해도 꼭 그만큼 죄스러웠으리라), 나 자신은 한순간도 나무랄 데 있다고 여기지 않은 채, 아니 오히려 알베르틴이 곁에 있음으로써 내가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았으니 그녀야말로 나무랄 만하다고 거의 단정하다시피 하면서, 나는 그 모든 midinettes에게 쏟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죄 없는 일로 여기면서, 상대편이 그것을 욕망하는 것은 끔찍한 일로 여긴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 자신에 관한 것과,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것 사이의 이 대조는, 욕망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짓말에까지 뻗친다. 거짓말보다 더 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강하다고 여겨지고 싶은 체질의 일상적 허약함을 가리는 일이든, 어떤 악덕을 숨기는 일이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더 좋아하는 쪽으로 빠져나가는 일이든 말이다. 그것은 대화에서 가장 필요한 도구이며,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의 삶에서 몰아내려 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노리고, 냄새 맡고, 어디서든 몹시 싫어한다. 그것은 우리를 질겁하게 하고, 파국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며, 가장 중대한 잘못들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그 잘못들을 어찌나 감쪽같이 감추는지 우리가 그 존재조차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만 빼면. 참으로 기이한 상태다, 우리가 어떤 병원체에 이토록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이 상태는. 그 병원체는 도처에 우글거리는 탓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않으면서도, 이제 더는 거기에 면역이 없음을 깨닫는 가엾은 자에게는 그토록 위중한 것이다.
이 어여쁜 처녀들의 삶은(오랜 칩거 탓에 나는 그런 처녀를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 실현의 손쉬움이 상상의 능력을 망가뜨리지 않은 모든 이에게 그러하듯, 내게는 내가 아는 그 무엇과도 다른 것으로, 여행이 우리에게 마련해 둔 가장 경이로운 도시들만큼이나 갈망할 만한 것으로 보였다.
내가 알던 여자들에게서, 내가 찾아갔던 도시들에서 느꼈던 실망도, 내가 다른 여자들의 매력에 사로잡히거나 그들의 실재를 믿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봄 날씨 또한 나를 그리움으로 가득 채웠고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나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만들 그 베네치아를, 스키라면 아마 실제 장소보다 색조가 더 아름답다고 단언했을 파노라마 속에서 보는 것이, 내게는 베네치아로의 여행을, 나와는 아무 상관 없이 정해졌으면서도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예비 절차로 여겨지던 그 긴 노정을 대신해 주지 못했을 것과 꼭 마찬가지로, 아무리 예쁘다 한들, 뚜쟁이가 인위적으로 내게 대 준 그 미디네트는, 지금 이 순간 어색한 몸매로 나무 아래를 거닐며 친구와 웃고 있는 그 처녀를 결코 대신할 수 없었다. 밀회의 집에서 내가 만날 수 있을 처녀는, 설령 이 처녀보다 더 어여쁘다 한들, 같은 것일 수 없었으니, 우리는 알지 못하는 처녀의 눈을 오팔이나 마노로 된 작은 원반 한 쌍처럼 바라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눈에 빛깔을 입히는 작은 빛줄기나 그 눈을 반짝이게 하는 금강석 가루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정생활과 우리가 부러워하는 가까운 벗들을 품고 있는 어떤 마음, 어떤 의지, 어떤 기억에 대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전부임을 안다. 이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시도는, 그토록 어렵고 그토록 완강한 이 시도야말로, 한낱 육체적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그 시선에 값어치를 부여하는 것이다(이것은 어째서, 누군가에게 그가 웨일스 공이라는 말을 들은 여자의 상상 속에서는 같은 젊은이가 온전한 로맨스 하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반면, 자기가 잘못 안 것임을 깨닫고 나서는 그 여자가 그에게 더는 눈길도 주지 않는지를 설명해 줄 만하다). 밀회의 집에서 그 미디네트를 만난다는 것은, 그녀에게 스며들어 있고 우리가 그녀와 더불어 소유하기를 열망하는 그 미지의 삶이 텅 비워진 그녀를 만나는 것이며, 참으로 한낱 보석이 되어 버린 눈 한 쌍, 그 떨림이 꽃의 떨림만큼이나 아무 의미도 없는 코 하나에 다가가는 것이다. 아니, 그 순간 지나가던 그 미지의 미디네트로 말하자면, 내가 그녀의 실재를 계속 믿고자 한다면, 나로서는 다음의 일들이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졌다. 내 행동을 그녀의 저항에 맞추어 그 저항을 시험해 보고, 퇴짜를 무릅쓰고, 다시 밀어붙이고, 만날 약속을 얻어 내고, 그녀가 일터에서 나올 때 기다리고, 그 처녀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알아 가고, 그녀에게 있어 내가 좇던 쾌락을 감싸고 있는 그 공간을, 그리고 그녀의 다른 습관들과 그녀만의 독특한 생활 방식이 나와, 내가 다다라 붙잡고 싶던 그 관심과 호의 사이에 놓아 둔 그 거리를 가로지르는 일. 그것은 마치, 내가 장차 보게 될, 만국박람회의 파노라마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을 베네치아의 실재를 믿고자 한다면 기차로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욕망과 여행 사이의 바로 이 견줌은, 언젠가 이 힘의 본질을 조금 더 가까이 붙잡아 보리라 스스로 다짐하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어떤 믿음만큼이나, 혹은 물리의 세계에서 대기압만큼이나 강력한 그 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는 도시와 여자들을 그토록 높이 드높였다가, 내가 다가가기가 무섭게 그 밑에서 슬며시 빠져나가, 그것들을 대번에 무너뜨려 가장 진부한 현실의 밋밋한 평면 위로 납작하게 떨어뜨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