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가니 또 다른 처녀 하나가 자전거 옆에 무릎을 꿇고 그것을 손보고 있었다. 수리를 마치자 그 젊은 경주자는 자기 자전거에 올라탔는데, 남자라면 그러했을 것처럼 걸터앉지는 않았다. 잠시 자전거가 비틀거리자, 그 젊은 몸은 제게 돛 하나, 거대한 날개 하나를 덧붙인 듯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우리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날개 달린 그 젊은 존재가, 천사인지 페리인지 모를 그것이, 제 길을 좇아 전속력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알베르틴과의 삶이 나로 하여금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막았다고 내가 말했던가?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삶이 내 즐거움을 위해 마련해 준 것이라고.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자유로웠더라면, 나는 여자란 여자는 모두 그녀의 욕망의, 그녀의 쾌락의 있을 법한, 아니 십중팔구인 대상이라고, 그것도 근거를 가지고 상상했으리라. 그들은 내게, 어떤 악마적 발레에서 한 사람에게는 유혹을 연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심장에는 제 화살을 꽂는 저 무희들처럼 보였으리라. 미디네트든 여학생이든 여배우든, 나는 그들 모두를 얼마나 미워했을 것인가! 공포의 대상으로서, 나는 그들을 우주의 아름다움에서 예외로 쳐 내었으리라. 알베르틴에게 매인 내 예속은, 그들 때문에 내가 더는 괴로워하지 않게 해 줌으로써, 그들을 세계의 아름다움에 되돌려 주었다. 이제 해롭지 않게 되어, 질투로 심장을 찌르는 바늘을 잃어버린 나는, 그들을 찬미할 수 있었고, 눈으로 어루만질 수 있었으며, 어느 날엔가는 어쩌면 더 은밀히 그리할 수도 있었다. 알베르틴을 가두어 둠으로써, 나는 동시에, 공원과 무도회장과 극장에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저 무지갯빛 날개들을 모두 우주에 되돌려 주었으니, 그 날개들은 그녀가 더는 그 유혹에 굴복할 수 없게 되었기에 내게 다시금 유혹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들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이루었다. 그것들은 한때 알베르틴의 아름다움을 이루었었다. 내가 그녀를 신비로운 새로, 이어 해변의 위대한 여배우로, 뭇사람이 욕망하고 어쩌면 손에 넣기까지 한 존재로 바라보았기에, 나는 그녀를 경이롭게 여겼던 것이다. 그녀가 내 집에 갇힌 몸이 되자마자, 어느 오후 내가 보았던 그 새,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갈매기들처럼 몰려든 다른 처녀들 무리에 둘러싸여 해안 산책로를 따라 또박또박 걸어오던 그 새,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제 것으로 차지할 온갖 가능성과 더불어, 제 빛깔을 죄다 잃어버렸다. 차츰 그녀는 아름다움을 잃어 갔다. 내가 곁에 있지만 않았다면 어떤 여자에게, 혹은 어떤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걸렸으리라 그녀를 상상하게 되는 이런 나들이가 있어야, 나는 비로소 해변의 광휘 한가운데 있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하기야 내 질투는 내 상상의 즐거움이 쇠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망받아 그녀가 내 눈에 다시금 아름다워지는 이 느닷없는 되돌아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내게 머문 기간을 두 시기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었다. 앞선 시기에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덜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해변의 반짝이는 여배우였고, 뒤이은 시기에는 잿빛 포로가 되어 음울한 제 모습으로 오그라든 그녀를, 나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 섬광들이 있어야만 다시 빛깔 속에서 볼 수 있었다.
이따금, 그녀에게 가장 무심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아득한 한순간의 기억이 내게 되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해변에서, 내가 아직 그녀와 사귀기 전, 나와 사이가 나빴고 이제는 그녀가 관계를 맺었으리라 거의 확신하게 된 어떤 부인이 그녀 곁에 있을 때, 그녀가 무례한 태도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이었다. 그녀 주위로는 온통 푸르고 매끄러운 바다가 쉭쉭 소리를 냈다. 해변의 햇빛 속에서, 벗들 한가운데 있던 알베르틴은 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는 눈부신 처녀였으니, 가없는 바닷물이라는 낯익은 배경 속에서, 그녀를 흠모하던 그 부인의 눈에는 소중한 존재이면서, 내게는 이 용서할 수 없는 모욕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 부인은 어쩌면 발베크로 돌아가, 빛나고 메아리치는 해변에서 알베르틴이 없다는 것을 어쩌면 알아차릴 터였다. 그러나 그 부인은 그 처녀가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내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리라. 드넓게 펼쳐진 푸른 물, 그리고 이 특별한 처녀에게 품었다가 다른 이들에게로 돌리게 될 그 애정을 그녀가 잊어버린 일은, 알베르틴이 내게 저지른 그 능욕 위로 닫혀 덮이며, 그것을 반짝이는, 깨뜨릴 수 없는 함(函)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러자 그 여자에 대한 증오가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알베르틴에 대한 증오도 마찬가지였으나, 그것은 아름답고 뭇사람의 구애를 받던, 놀라운 머릿결을 지닌, 해변에서의 그 웃음이 하나의 모욕이었던 그 처녀에 대한 찬탄이 뒤섞인 증오였다. 수치심, 질투, 내 가장 이른 욕망들과 그 눈부신 배경의 기억은, 알베르틴에게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그 본연의 가치를 되돌려 주었다. 그리하여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느끼던 다소 짓누르는 듯한 권태와 번갈아, 눈부신 폭풍과 회한으로 가득한 두근거리는 욕망이 찾아들었다. 그녀가 내 침실에서 내 곁에 있느냐, 아니면 내가 기억 속에서 그녀를 해안 산책로 위로, 화사한 바닷가 옷차림으로, 바다라는 악기들의 소리에 맞추어 풀어 놓느냐에 따라, 알베르틴은, 어느 때는 그 환경에서 뽑혀 나와 소유되고 별 값어치도 없는 존재였다가, 어느 때는 다시 그 속으로 잠겨 들어, 내가 결코 알 수 없을 과거 속으로 나에게서 달아나며, 벗이 곁에 있는 가운데 물결의 철썩임이나 햇볕의 뜨거움만큼이나 나를 아프게 했으니, 이렇듯 해변으로 되돌려지거나 다시 내 방으로 데려와진 알베르틴은, 일종의 물뭍 양서(兩棲)의 사랑 속에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여럿이 무리를 이루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처녀들은 모두 햇빛을 한껏 누리려고 나온 것이었으니, 2월의 이런 날들은, 아무리 눈부시다 해도 오래가지 않고, 그 빛의 광휘도 저물 시각을 미루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각이 가까워지기 전, 우리는 얼마 동안 어스름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센 강까지 차를 몰고 간 뒤, 그곳에서 알베르틴은, 겨울다운 푸른 물 위에 비친 붉은 돛들의 그림자를, 맑은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 송이 붉은 개양귀비처럼 멀리 외따로 선 집 한 채를,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 생클루가 그 집의 부서지고 허물어진 울퉁불퉁한 화석인 양 보이던 그 광경을 찬미했고, 곁에 있음으로써 내가 그것을 찬미하는 것은 가로막았는데, 그러고 나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함께 먼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실로 얼마 동안 나는 그녀에게 내 팔을 내주었고, 그녀의 팔이 내 팔을 둘러 이룬 고리가 우리 두 사람을 하나의 자아로 묶고 우리의 서로 다른 운명을 하나로 이어 주는 듯 보였다.
우리 발치에서, 나란히 뻗은 두 그림자는 서로 다가가 하나로 겹치는 자리마다 더없이 아름다운 무늬를 그렸다. 물론 집 안에서도 이미,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내 침대로 와서 눕는 이가 바로 그녀라는 것이 내게는 경이로운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말하자면 그 경이가 문밖으로, 자연의 한복판으로 옮겨진 것이었으니,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불로뉴 숲 그 호숫가에서, 나무들 아래에서, 오솔길 자갈 위에 내 그림자 곁으로 태양이 단색으로 그려 놓아야 했던 것이 다름 아닌 그녀의 그림자, 오직 그녀만의 그림자, 그녀의 다리와 상반신의 순수하고 단순화된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 몸이 서로 가까워지고 하나로 녹아드는 데에서 느끼는 것보다 분명 더 비물질적이면서도 조금도 덜 은밀하지 않은 매혹을, 우리 그림자들의 그러한 융합에서 발견했다. 이윽고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담쟁이덩굴과 가시덤불을 폐허처럼 두른 겨울나무들이 늘어서서 마치 어느 마법사의 거처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듯한, 구불구불한 작은 오솔길들을 잇달아 골랐다. 그 어스레한 그늘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불로뉴 숲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아직 대낮의 빛이 어찌나 환한지 저녁 식사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시간이 남아 있으리라 여겼는데, 겨우 몇 분 뒤 차가 개선문에 가까워지는 순간, 나는 파리 위에 때 이르게 둥글어진 달이, 마치 멈춰 서서 우리가 약속에 늦었구나 착각하게 만드는 시곗바늘 얼굴처럼 떠 있는 것을 보고 별안간 놀라움과 낭패감에 흠칫했다. 우리는 운전사에게 집으로 가자고 일러 두었다. 알베르틴에게 그것은 곧 내 집으로 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여자라 해도, 우리를 떠나 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여자들과 함께 있는 것은, 내 곁 차 안에 앉은 알베르틴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느끼던 그 평화를 주지 못했으니, 그 함께 있음은 우리를 연인들이 헤어져야 하는 공허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집이기도 한 내 집에서의 한결 더 굳건하고 더 안온한 결합으로, 내가 그녀를 소유하고 있다는 물질적 상징으로 우리를 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유하려면 먼저 욕망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선도, 면도, 부피도, 그것이 우리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한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드라이브 동안 알베르틴은 내게, 지난날 라셸이 그러했던 것처럼 살과 옷의 부질없는 티끌이 아니었다. 내 눈과 입술과 손의 상상력은 발베크에서 그녀의 몸을 어찌나 단단히 빚어내고 어찌나 부드럽게 다듬어 놓았던지, 이제 이 차 안에서 그 몸에 닿기 위해, 그 몸을 품기 위해, 나는 내 몸을 알베르틴에게 밀착시킬 필요도, 심지어 그녀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녀가 잠자코 있으면 그녀가 내 곁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서로 얽힌 내 감각들이 그녀를 온통 감쌌으니, 우리가 대문에 이르러 그녀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운전사에게 이따가 다시 오라 일렀지만, 그녀가 아치 밑을 지나 내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내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그렇게 그녀가, 단단하고 발그레하며 풍만하고 사로잡힌 채, 내 소유물인 여자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그리고 담장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 집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여전히 그 무기력하고 가정적인 고요함이었다. 불행히도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을 갇힌 사람으로 느끼는 듯했고, 리앙쿠르처럼 아름다운 집에 사니 기쁘지 않으냐는 물음에 “아름다운 감옥이란 없는 법이지요”라고 대답했다는 저 라 로슈푸코 부인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했다. 적어도 그날 저녁 내 방에서 함께 식사할 때 그녀가 짓던 비참하고 지친 표정으로 판단하자면 그러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비참해진 쪽은 나였으니, 알베르틴만 아니었더라면 (그녀와 함께라면 온종일 낯선 사람들 무리와 접촉하게 될 호텔에서 나는 질투로 너무나 예리하게 괴로워했으리라) 나는 지금 이 순간 베네치아에서, 배의 선창처럼 반원형 궁륭으로 된 그 작은 식당들 가운데 하나에서, 무어풍 몰딩으로 테를 두른 아치형 창 너머로 대운하를 내다보며 식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알베르틴은 내 방에 있던 바르브디엔의 커다란 청동상을 몹시 감탄하며 보았는데, 블로크는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고 그것을 지독히 흉하다고 여겼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간직해 온 데 대해 그가 놀랄 이유는 그보다 적었을 것이다. 나는 그처럼 예술적 효과를 위해 가구를 들이거나 내 주위를 꾸며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나는 너무 게을렀고, 날마다 보는 데 익숙해진 것들에 너무 무관심했다. 내 취향이 걸린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내 실내를 조화롭게 꾸미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가 없었더라도 나는 그 청동상을 치워 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흉하고 값비싼 물건은 크게 쓸모가 있으니,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와 취향이 다르며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는 어떤 도도한 물건이라면 누리지 못할 위세를 그런 물건은 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우월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우리의 지성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돋보이게 해 주는 그 위세를, 정작 부려 봄 직한 상대는 바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뿐이다. 알베르틴이 비록 안목을 갖추기 시작했다고는 해도, 그녀는 여전히 그 청동상에 어느 정도 경의를 품고 있었고, 그 경의는 나에 대한 존중으로 되비쳐졌는데, 알베르틴에게서 나오는 그 존중은, 내가 알베르틴을 사랑하고 있었던 만큼, 다소 품격을 떨어뜨리는 청동상을 간직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 내게는 비할 데 없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내 속박에 대한 생각이 별안간 나를 짓누르기를 멈추었고, 나는 그것을 더욱더 오래 끌고 가기를 바라게 되었으니, 알베르틴이 자기 자신의 속박을 괴롭게 의식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기야 내 집에서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이보다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신경질적인 피로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색으로 종종 뒤집히곤 했다.
분명, 만일 그녀가 내가 그녀에게 있으리라 여긴 그런 성향을 지녔다면, 그것을 결코 채우지 못하게 하는 이 억제는 내게 마음을 놓게 해 준 만큼이나 그녀에게는 애를 태우게 하는 것이었으리라. 어찌나 마음이 놓였던지, 알베르틴이 결코 혼자 있지 않으려, 결코 남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지 않으려, 집에 들어올 때 대문 밖에서 잠시도 멈추지 않으려, 전화를 걸러 갈 때면 언제나 자기가 한 말을 내게 그대로 옮겨 줄 수 있는 사람을, 곧 프랑수아즈나 앙드레를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하려, 앙드레와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온 뒤에는 (일부러 그러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늘 나를 앙드레와 단둘이 있게 해 그들의 나들이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내가 얻을 수 있게 하려 기울이던 그 유별난 애씀을 이 가설에 끼워 맞추기가 그토록 어렵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그녀를 부당하게 몰아세웠다는 가설이 가장 그럴법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놀라운 고분고분함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얼른 억눌리곤 하던 어떤 초조한 몸짓들이었으니, 그것들은 알베르틴이 제 사슬을 벗어던지려 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 자신에게 묻게 만들었다. 어떤 부수적인 사건들이 내 추측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어느 날 내가 혼자 파시 쪽으로 나갔다가 지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그럴 수 있다는 데 적잖은 자부심을 느끼며, 알베르틴을 늘 만나고 있다고 그녀에게 알렸다. 지젤은 알베르틴에게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어디로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 애의 어떤 젊은 친구들에 관한 일이야.” “무슨 친구들? 어쩌면 내가 알려 줄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그렇다고 네가 그 애를 만나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아, 그 애가 몇 해 전에 알던 여자애들인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지젤은 얼버무리며 대답하고는 슬며시 물러났다. 그녀는, 자기가 아주 신중하게 말한 터라 그 이야기 전체가 내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게 들렸으리라 여기며 내 곁을 떠났다. 그러나 거짓이란 어찌나 까다롭지 않은지, 제 정체를 드러내는 데 그토록 적은 도움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일 이름조차 더는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의 친구들에 관한 일이었다면, 어째서 그녀는 그들에 대해 알베르틴에게 꼭 말해야 한단 말인가? 코타르 부인이 즐겨 쓰던 표현인 “때마침”과 비슷한 이 “꼭”이라는 말은, 특정한 사람들과 관련된, 어떤 특별하고 시의적절한, 어쩌면 급박한 일에만 들어맞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마치 대화의 이 대목에서 엔진을 역회전시키기라도 하듯 몸을 거의 뒤로 물리면서) 막연한 표정으로 하품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벌리며 “아, 몰라, 이름이 기억 안 나”라고 내게 말할 때의 그 입놀림에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그에 어우러진 그녀의 목소리를, 앞서의 “꼭”이 띠던 긴장되고 흥분한, 전혀 다른 기색이 진실의 뚜렷한 그림이었던 것만큼이나 거짓의 뚜렷한 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지젤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래 봤자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분명 그녀는 알베르틴과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분명 알베르틴의 거짓말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 둘에는 분명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곧 거짓말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고, 이는 어떤 경우에는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다. 거짓말이 감추고 있는 진실의 증거는 아니면서 말이다. 우리는 어느 살인자든 하나같이, 자기가 붙잡히지 않도록 모든 것을 어찌나 교묘히 꾸며 놓았다고 상상하는지 알고 있거니와, 거짓말쟁이도,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녀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녀가 말하는 순간,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을 그 아래 감춘 채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거짓말은 즉각 감지되고, 우리의 질투는 커지는데, 우리가 그 거짓말을 의식하면서도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의 경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상은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여러 특징들에서 전해졌지만, 특히 다음의 것에서 전해졌으니, 곧 그녀가 거짓말을 할 때면 그녀의 이야기가 미흡함이나 누락이나 개연성 없음 때문에, 아니면 반대로 그럴듯해 보이게 하려는 사소한 세부의 과잉 때문에 무너져 버린다는 점이었다. 개연성이란, 거짓말쟁이가 그것에 대해 품은 관념에도 불구하고, 결코 진실과 같은 것이 아니다. 진실인 것을 듣고 있는 동안, 그저 그럴듯할 뿐인 것, 어쩌면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것, 어쩌면 지나치게 그럴듯한 것이 귀에 들릴 때면, 조금이라도 예민한 귀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마치 운율이 맞지 않는 시행이나 다른 낱말로 잘못 소리 내어 읽은 낱말에서처럼 느낀다. 우리 귀가 이것을 느끼며, 우리가 사랑에 빠져 있다면 우리 마음이 경계 태세를 취한다. 어떤 여자가 베리 거리로 갔는지 워싱턴 거리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삶의 방향 전체를 바꿔 버릴 때, 어째서 우리는 그 순간에 생각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몇 해 동안 그 여자를 보지 않고 지낼 지혜만 있다면, 이 몇백 야드의 차이도, 그 여자 자신도, 제 크기의 일억분의 일로 (다시 말해 우리 지각에 한참 못 미치는 크기로) 줄어들리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눈에 걸리버보다 더 걸리버 같던 그 여자가, 어떤 현미경으로도, 적어도 마음의 현미경으로는 (사심 없는 기억의 현미경이라면 그래도 더 강력하고 덜 부서지기 쉽지만 말이다) 다시는 알아볼 수 없는 릴리퍼트 소인으로 오그라들리라는 것을 우리는 어째서 생각하지 못하는가! 어쨌거나, 알베르틴의 거짓말과 지젤의 거짓말 사이에 하나의 공통점이, 곧 거짓말 자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해도, 지젤은 여전히 알베르틴과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하지 않았고, 앙드레와 같은 방식으로도 거짓말하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거짓말은 실로 다채로우면서도 서로 어찌나 매끄럽게 맞물리는지, 그 작은 무리는 어떤 상점들이, 이를테면 서점이나 인쇄소가 지닌, 뚫고 들 수 없는 견고함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런 곳에서는 딱한 저자가 그곳에 고용된 사람들이 제아무리 각양각색이라 해도 자기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끝내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의 편집장은, 자기가 다른 편집장들이나 극장 지배인들, 다른 출판업자들을 규탄하며 성실이라는 깃발을 내걸어 그들에게 맞서 싸움의 구호로 삼았던 바로 그 짓을 자신도 똑같이 하고 있고 똑같은 장삿속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자주 감추어야 하는 만큼 더욱더 엄숙한 성실의 태도로 거짓말을 한다. 어떤 사람이 (정당의 지도자로서든 그 밖의 어떤 자격으로든) 거짓말은 사악한 짓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은, 대체로 그로 하여금 남들보다 더 많이 거짓말하게 만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그 엄숙한 가면을 벗거나 성실이라는 존엄한 관을 내려놓게 하지는 않는다. 그 “성실한” 신사의 동업자는 다르고 더 천진한 방식으로 거짓말한다. 그는 보드빌 무대에서나 볼 법한 수법으로, 아내를 속이듯 자기 저자를 속인다. 그 회사의 총무는, 무뚝뚝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아주 소박하게 거짓말하니, 착공조차 되지 않았을 날짜에 댁의 집이 완공되리라 약속하는 건축가와 같다. 천사 같은 마음씨의 편집주간은 이 세 사람 사이를 팔랑팔랑 오가며,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형제 같은 양심에서 또 다정한 결속에서, 의심할 여지 없는 한마디의 소중한 지지를 그들에게 보태 준다. 이 네 사람은 끝없는 불화 속에 살아가지만, 저자가 나타나면 그 불화는 멎는다. 저마다의 사사로운 다툼을 넘어, 그들 각자는 위협받는 “부대”를 지원하러 결집해야 한다는 지상의 군사적 의무를 상기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오래도록 그 작은 무리 사이에서 이 저자의 역할을 맡아 오고 있었던 셈이다. 만일 지젤이 “꼭”이라는 말을 썼을 때, 내 애인이 나를 떠날 이런저런 구실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녀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하던 알베르틴의 어떤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고, 그때가 이제 왔다거나 곧 닥치리라고 알베르틴에게 일러 주려던 것이었다면, 지젤 그녀는 내게 그것을 말하느니 차라리 갈가리 찢기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에게 이것저것 캐물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지젤과의 이런 만남만이 내 의혹을 돋운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는 알베르틴의 소묘를 감탄하며 보았다. 갇힌 여인의 애처로운 소일거리인 알베르틴의 소묘는 나를 어찌나 감동시켰던지 나는 그것을 두고 그녀를 칭찬했다. “아니에요, 형편없는걸요, 하지만 저는 평생 그림 수업이라곤 받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발베크에서 어느 날 저녁, 당신은 그림 수업을 받으려고 집에 남아 있었다고 내게 전갈을 보냈잖소.” 나는 그날을 그녀에게 상기시키며, 저녁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그림 수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알베르틴은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림 수업을 받고 있던 게 아니었어요, 처음엔 당신에게 거짓말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건 인정해요. 하지만 이제는 결코 당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가 처음에 내게 했던 그 숱한 거짓말이 무엇이었는지 그토록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대답이 또 다른 거짓말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추는 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그 거짓말들 가운데 단 하나만이라도 말해 달라고 그녀에게 청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 그럼요, 이를테면 바닷바람이 제게 좋지 않다고 말했을 때요.” 이렇게 털어놓기를 꺼리는 앞에서 나는 더 조르기를 그만두었다.
그녀의 사슬을 더 가벼워 보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내 쪽에서 그 사슬을 끊으려 한다고 그녀가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순간에 나는 이 거짓 계획을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으니, 그날 오후 트로카데로에서 돌아온 그녀가 너무나 다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별의 위협으로 그녀를 괴롭히기는커녕, 고작해야 감사에 찬 내 마음이 끊임없이 지어내던 영원히 함께하는 삶에 대한 그 꿈들을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꿈들을 그녀에게 쏟아 놓고 싶은 것을 억누르기가 어려웠고, 어쩌면 그녀도 이것을 눈치챘을지 모른다. 불행히도 그런 꿈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남에게 옮아 가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 늘 건장한 젊은이만을 그려 보는 통에 자기 자신이 건장한 젊은이가 되었다고 여기는, 게다가 젠체하고 우스꽝스러워질수록 더욱 그렇게 여기는 샤를뤼스 씨 같은 젠체하는 노파의 경우는 더 일반적인 것이니, 열정에 사로잡힌 연인의 비극이란, 자기 앞에 아름다운 얼굴이 보이는 동안 자기 애인은, 아름다움을 봄으로써 그 안에 일깨워진 쾌락으로 일그러질 때 조금도 더 아름다워지지 않는, 오히려 그와는 거리가 먼 자기 얼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셈에 넣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실은 사랑만이 이 경우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남들은 보는 우리 자신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 눈앞에 있는 대상인 우리 자신의 생각을 “좇는다”. 이 대상을 예술가는 이따금 자신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을 흠모하는 이들이 그 작가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기니, 그 작가의 얼굴에는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 불완전하게밖에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