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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베르뒤랭 부부가 샤를뤼스 씨와 반목하다

5권 제1부 · 제2장: 베르뒤랭 부부가 샤를뤼스 씨와 반목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알베르틴에게, 이왕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이 기회를 틈타 몇몇 지인을, 곧 빌파리지 부인이며 게르망트 부인이며 캉브르메르가 사람들이며, 요컨대 집에 있을 법한 누구든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정작 내가 만날 작정이던 사람들, 곧 베르뒤랭 부부만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게다가 머리 꼴이 말이 아니에요. 정말로 내가 계속 이런 식으로 머리를 하길 바라세요?” 그러고는 작별 인사랍시고, 팔을 쭉 뻗고 어깨를 뒤로 젖힌 그 불쑥한 몸짓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발베크의 바닷가에서 곧잘 짓다가 그 뒤로는 아주 버린 몸짓이었다. 이 잊혔던 몸짓은 그것이 생기를 불어넣은 몸을 다시금, 아직 나를 거의 알지 못하던 그 시절 알베르틴의 몸으로 되돌려 놓았다. 무례해 보이는 태도 아래 오히려 격식을 차리던 알베르틴에게, 그 몸짓은 처음의 새로움과 낯섦을, 나아가 그녀를 감싸던 배경마저 되살려 주었다. 바닷가를 떠난 뒤로는 이런 식으로 나와 악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 처녀의 등 뒤로, 나는 바다를 보았다. “이모는 이렇게 하면 내가 더 나이 들어 보인대요.” 그녀가 뾰로통한 낯빛으로 덧붙였다. ‘아, 그 이모 말이 맞았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알베르틴이 어린애처럼 보여서 봉탕 부인이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이모가 바라는 전부이며, 또한 알베르틴이 나와 결혼함으로써 그동안 자기에게 들인 비용을 갚아 줄 그날까지 이모에게 한 푼도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알베르틴이 덜 젊어 보이고, 덜 예뻐 보이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끄는 것, 그것이야말로 도리어 내가 바라는 바였다. 질투에 사로잡힌 연인에게는, 감시역 노부인의 나이보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 어린 나이가 한결 더 마음을 놓게 해 주는 법이니 말이다. 다만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머리를 매만지라고 청한 그 방식이, 알베르틴에게는 제 감옥 문에 덧걸린 또 하나의 빗장처럼 비치리라는 것만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바로 이 새로운 가정적 감정이, 알베르틴과 떨어져 있을 때조차 끊임없이 나를 그녀에게 붙들어 매는 끈이 되었다.

나는, 게르망트가나 캉브르메르가에 함께 갈 만한 차림이 아니라던,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다던 알베르틴에게, 어디로 갈지 확실치 않다고 말해 두고는 베르뒤랭가로 떠났다. 내가 들으러 가는 연주회 생각이 그날 오후의 장면을, 곧 “Grand pied de grue, grand pied de grue” 하던 장면을 되살려 놓던 바로 그때, 그것은 실연의, 어쩌면 질투에 찬 사랑의 장면이었으되, 그렇다 한들 이를테면 한 여자에게 반한,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한 마리 오랑우탄이 그 여자에게 가할 법한 장면만큼이나 짐승 같은 것이었는데, 거리로 나서서 막 삯마차를 부르려던 바로 그때, 나는 길가 연석에 앉은 한 사내가 억누르려 애쓰는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그 사내는 아주 젊어 보였고, 나는 그의 외투 앞섶으로 언뜻 드러난 흰빛을 보고서 그가 야회복 차림에 흰 넥타이를 매고 있음을 알고 놀랐다. 내 발소리를 듣자 그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드러냈으나, 곧 나를 알아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모렐이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알아본 것을 눈치채고, 애써 눈물을 삼키며, 너무나 괴로워 잠시 쉬려고 멈춰 섰노라고 말했다. “바로 오늘,” 그가 말했다, “제가 더없이 우러러보던 사람을 심하게 모욕하고 말았어요. 비겁한 짓이었죠, 그 사람은 저를 사랑하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으나,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가 그날 오후의 장면을 엿들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제 슬픔에 어찌나 골몰해 있었던지, 내가 그 일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잊겠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얼마나 비열해졌는지 너무나 잘 알겠고, 제 자신이 역겹습니다! 어쨌든 이미 내뱉은 말은 내뱉은 것이고, 그 무엇으로도 주워 담을 수 없어요. 누가 저를 화나게 만들면, 저는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건 저한테 아주 해롭거든요,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어서요.” 다른 모든 신경쇠약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제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후에 내가 격분한 짐승의 정욕 어린 광란을 목격했다면, 이 저녁에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몇 세기가 흘러, 수치와 후회와 슬픔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장차 인간으로 탈바꿈할 운명을 지닌 그 짐승의 진화에서 커다란 한 단계가 지나갔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grand pied de grue”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고 있었고, 나는 그가 당장이라도 야만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기야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주 어렴풋하게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는 당연한 노릇이었다. 샤를뤼스 자신조차, 지난 며칠 동안, 특히 그날, 저 바이올리니스트의 상태에서 곧바로 비롯된 것도 아닌 그 수치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부터 모렐이 신경쇠약의 재발로 시달려 왔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실은 그는 지난달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서둘러, 그러나 바라던 것보다는 한참 더디게, 쥐피앙의 조카딸을 유혹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해 온 터였는데, 이제 둘이 약혼한 사이라 마음 내킬 때면 언제든 그녀와 함께 나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겁탈을 시도하다 조금이라도 도가 지나칠 때면, 특히 약혼녀에게 다른 처녀들과 사귀어 두었다가 그 처녀들을 제게 끌어다 달라고 넌지시 권할 때면, 그는 번번이 저를 격분케 하는 반항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다 별안간 (그녀가 너무 정숙했던 탓이든, 아니면 도리어 몸을 내맡겼을 탓이든) 그의 욕망은 가라앉아 버렸다. 그는 그녀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으나, 남작이 아무리 타락했다 한들 저보다는 훨씬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만약 파혼하면 샤를뤼스 가 자기를 집에서 내쫓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 그리하여 그는 두 주 전에, 다시는 그 처녀를 만나지 않기로, 이 난장판은 샤를뤼스 와 쥐피앙이 자기들끼리 치우도록 (그는 더 노골적인 말을 썼다) 내버려 두기로, 그리고 파혼을 알리기 전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꺼⸺져’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쥐피앙의 조카딸을 향한 그의 처신이, 생마르르베튀에서 남작과 함께 저녁을 들며 남작에게 늘어놓았던 행동 계획과 아무리 세세한 대목까지 고스란히 맞아떨어졌다 하더라도, 그의 본심은 아마 전혀 딴것이었을 터이며, 그가 제 행동 이론 속에서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그보다 덜 잔혹한 감정들이 실제에서는 그 처신을 누그러뜨리고 감정으로 물들여 놓았으리라. 반대로 실제가 이론보다 못했던 유일한 점은 이것이니, 곧 이론상으로는 그런 배신을 저지른 뒤에도 파리에 머무를 수 있으리라고는 그에게 도무지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도리어, 그처럼 사소한 일로 실제로 “‘꺼⸺져’” 버린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주 쓸데없는 짓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필시 격노할 남작을 저버리고 제 지위마저 내던지는 일을 뜻했다. 그러면 지금 남작이 대 주는 돈을 몽땅 잃게 될 터였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의 신경은 아주 무너져 내렸고, 그는 몇 시간이고 내리 울었으며, 더는 그 일을 곱씹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모르핀을 제게 투여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필시 얼마 전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차츰 꼴을 갖추고 힘을 키워 왔을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으니, 그 처녀와 갈라선다고 해서 반드시 샤를뤼스 와 아주 절연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남작의 돈을 죄다 잃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일이었다. 갈피를 못 잡은 채 모렐은 며칠 동안, 블로크를 볼 때면 떠오르곤 하던 것과 같은 음울한 상념의 먹이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그는, 쥐피앙과 그 조카딸이 자기에게 덫을 놓으려 했던 것이며, 그처럼 헐값에 자기를 떼어 낸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마땅하다고 단정 지었다. 요컨대 그는, 그 처녀가 그토록 서툴렀던 것이, 관능의 매력으로 자기를 붙들어 매어 두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겼다. 샤를뤼스 곁에서 누리던 제 지위를 희생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였을 뿐 아니라, 그는 약혼한 뒤로 그 처녀에게 대접한 값비싼 만찬들까지 아까워했으니, 그 정확한 비용을 그는 죄다 외고 있었던바, 다달이 제 “장부”를 내 삼촌의 검사에 올리던 그 하인의 영락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단수형의 “책”이라는 낱말은, 세상 사람들 일반에게는 인쇄된 한 권의 책을 뜻하지만, 왕족과 하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뜻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후자, 곧 하인들에게 그것은 살림 장부를 뜻하고, 전자, 곧 왕족에게는 우리가 이름을 적어 넣는 방명록을 뜻한다. (언젠가 발베크에서 뤽상부르 대공비가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Le Pêcheur d’IslandeTartarîn de Tarascon을 건네려던 참이었는데, 이내 그녀가 뜻한 바는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를 방문하기가 더 까다로워지리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제 행동이 빚을 결과를 두고 모렐의 관점이 달라졌음에도, 비록 그 행동이 두 달 전, 그러니까 그가 쥐피앙의 조카딸에게 열렬히 빠져 있던 무렵이었다면 그에게 몹시 끔찍하게 여겨졌을 테고, 반대로 지난 두 주 동안에는 그 똑같은 행동이 자연스럽고 칭찬받을 만하다고 스스로에게 쉼 없이 다짐해 왔음에도, 그 행동은 신경의 동요를 계속 부추겼으며, 마침내 그 동요 속에서 그는 그날 오후에 파혼을 선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제 분노를 터뜨릴 채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그 처녀에게라면 (한순간의 격발을 빼고는) 아니었으니, 그녀에게는 아직도 사랑의 마지막 자취인 그 가시지 않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요, 어쨌든 남작에게만은 분풀이를 할 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저녁 식사 전에는 남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했으니, 무엇보다 제 직업적 기량을 소중히 여기던 그는, 까다로운 곡을 연주해야 할 때면 (오늘 저녁 베르뒤랭가에서처럼) 손목의 유연함을 해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되도록이면, 게다가 그날 오후의 소동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으므로) 피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몰기를 즐기는 외과 의사가 수술을 앞두고는 운전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으로 나는, 그가 나에게 말을 하는 동안 손가락을 하나씩 차례로 지그시 굽혀 보며 그것들이 다시 부드러워졌는지 살피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가벼운 찡그림은 아직 신경성 뻣뻣함이 조금 남아 있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을 키우지 않으려고 그는 표정을 풀었으니, 마치 우리가 잠들지 못하거나 한 여인을 뜻대로 하지 못할 때, 우리의 분노 자체가 잠이나 만족의 순간을 늦출까 두려워 짜증을 내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늘 하던 대로 베르뒤랭가에서 연주할 곡에 온통 몰입할 수 있도록 평정을 되찾고 싶은 마음과, 내가 지켜보는 동안만큼은 제가 얼마나 불행한지를 나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타서, 가장 손쉬운 길은 당장 자기를 혼자 두고 가 달라고 나에게 청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의 청은 사족이었으니, 나로서는 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했다. 우리가 몇 분 뒤면 같은 집에 당도할 참이었던 만큼, 그가 자기를 태워 달라 청하지나 않을까 나는 마음을 졸였으니, 그날 오후의 장면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모렐을 곁에 둔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얼마간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모렐이 쥐피앙의 조카딸에게 품었던 사랑이, 그리고 뒤이은 무관심이나 증오가 진심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안타깝게도 그가 이런 식으로 처신한 것은, 죽도록 사랑하겠노라 맹세한 처녀를, 심지어 장전한 권총을 꺼내 들고서 만약 자기가 그녀를 저버릴 만큼 비열해진다면 제 머리통을 쏘아 버리겠다고 말하기까지 한 처녀를 별안간 “차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윽고 그녀를 저버렸으며, 뉘우침 대신 그녀에 대한 일종의 앙심을 느꼈다. 이렇게 처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터였으니, 그 결과로 수많은 처녀의 머릿속이, 곧 그가 그녀들을 잊는 것보다 그를 덜 잊던 처녀들의 머릿속이 괴로워했다. 쥐피앙의 조카딸의 머릿속이, 모렐을 경멸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한 채 그 뒤로도 오래도록 괴로워했듯이 말이다. 그 머릿속들은 안으로 치미는 통증에 금세라도 터질 듯 괴로워했으니, 그녀들 하나하나의 머릿속에, 마치 그리스 조각의 파편처럼, 대리석같이 단단하고 고대 조각처럼 아름다운 모렐의 얼굴 한 면이, 흐드러진 머리채와 고운 두 눈과 오뚝한 코와 더불어 박혀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생기지 않은 두개골 속에 혹처럼 도드라져, 어떤 수술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무르익으면 이 돌 같은 파편들도 마침내, 이렇다 할 거북함을 주지 않는 자리로 미끄러져 들어가 다시는 꿈쩍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망각, 또는 무심해진 기억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날 하루 동안 두 가지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알베르틴의 고분고분함이 내 안에 자아낸 평온 덕분에, 나는 그녀와 헤어지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따라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를 기다리며 피아노 앞에서 보낸 그 짬 동안 내가 곱씹은 사색의 열매가 있었으니, 곧 내가 되찾은 자유를 바치려 하던 예술이란, 무언가를 희생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도, 삶을 넘어서 그 위에 있는 것도, 삶의 어리석음과 덧없음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예술 작품에서 얻어지는 참된 개성의 겉모습이란 그저 예술가의 기교가 빚어낸 착각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가 어쩌면 더 깊은 다른 앙금들을 남겨 놓았다 한들, 그것들은 훨씬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저울질할 수 있었던 그 두 가지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오래갈 것이 못 되었다. 바로 이날 저녁부터 예술에 대한 내 생각은 오후에 짓눌려 있던 침울함을 딛고 다시 솟아오를 참이었고, 반면에 내 평온은, 따라서 예술에 나를 바칠 수 있게 해 줄 그 자유는, 또다시 나에게서 거두어질 참이었으니 말이다.

강변길을 따라 달리던 내 삯마차가 베르뒤랭가의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나는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게 했다. 마침 나는 브리쇼가 보나파르트 거리 어귀에서 전차에서 내려, 낡은 신문지로 구두를 털고 나서 진줏빛 회색 장갑을 끼는 모습을 본 참이었다. 나는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얼마 전부터 시력이 자꾸만 나빠지자, 그는 마치 천문대에나 어울릴 만큼 넉넉하게, 도수 높고 복잡한 새 안경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안경은 천체 관측 기구처럼 그의 두 눈에 나사로 박아 넣은 듯싶었다. 그는 그 지나치게 번쩍이는 빛을 나에게 맞추고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것들은, 곧 안경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너머로 나는, 자그맣고 파리하며 경련하듯 떨리고 꺼져 가는, 이 강력한 장치 아래 놓인 아득한 눈길을 볼 수 있었으니, 마치 거기서 하는 일에 견주어 터무니없이 잘 갖춰진 실험실에서, 최신의 더없이 완벽한 현미경으로 하잘것없는 미소동물의 마지막 발버둥을 들여다볼 때와도 같았다. 나는 그가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려고 그에게 팔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큰 셰르부르 곁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가 나에게 말했다, “작은 됭케르크 곁에서 만나는 것이로군.”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나는 그 말이 몹시 성가셨으나, 그렇다고 브리쇼에게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으니, 그의 비웃음보다도 그의 장광설 같은 해설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스완이 저녁마다 오데트를 만나곤 하던 그 방을 몹시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허, 그러니까 자네가 그 옛날이야기를 안단 말이지?” 그가 말했다. “하기야 그 시절부터 스완이 죽기까지는, 시인이 참으로 옳게도 이른 대로 ‘Grande spatium mortalis aevi.’라네.”

스완의 죽음은 그 무렵 나에게 짓눌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스완의 죽음이라니! 이 말에서 스완은 한낱 소유격 명사 이상의 무엇이다. 내가 그 말로 뜻하는 바는 그만의 고유한 죽음, 곧 운명이 스완을 섬기라고 배정해 둔 그 죽음이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죽음”을 뭉뚱그려 말하지만, 실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서로 다른 죽음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온갖 속도로 온갖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 죽음들, 곧 운명이 이 사람 저 사람을 겨누어 보내는 그 활동하는 죽음들을 볼 수 있게 해 줄 감각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흔히, 두 해, 심지어 세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제 임무에서 온전히 놓여나는 죽음들도 있다. 그것들은 부랴부랴 달려와 어느 스완의 옆구리에 종양을 심어 놓고는, 제 다른 임무를 보러 떠났다가, 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끝내 그 자리에 다시 종양을 심어야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되돌아온다. 그러다 우리가 골루아지에서, 스완의 건강이 걱정을 자아내 왔으나 이제는 아주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 숨이 우리 몸을 떠나기 몇 분 전, 죽음은, 우리를 파멸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간호하러 온 자비의 수녀처럼,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주관하러 들어와, 심장이 멎어 차갑게 굳어 가는 그 피조물의 머리에 더없이 거룩한 후광을 씌워 준다. 그리고 신문에서 이런 한 문단을 그토록 인상 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죽음들 사이의 이 다양함이며, 그것들이 도는 경로의 신비이며, 그것들이 단 그 숙명의 표장이 띤 빛깔이다.

“삼가 아뢰건대, 샤를 스완 가 오랜 고통스러운 병환 끝에 어제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하셨다. 지적 재능이 널리 인정받던 파리 사람이요, 안목 높으면서도 한결같이 의리 있는 벗이던 그는, 그 취향의 건실함과 세련됨으로 기꺼이 반겨 맞아지던 문단과 예술계에서는 물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존경받는 회원의 한 사람이던 자키 클럽에서도 두루 애석해할 것이다. 그는 또한 위니옹 클럽과 아그리콜 클럽에도 속해 있었다. 근래에는 루아얄 거리 클럽의 회원 자격을 내려놓았다. 그의 풍채와 유달리 기품 있는 몸가짐은 음악과 예술의 계절을 수놓는 온갖 큰 행사에서, 특히 그가 단골로 드나들던 비공개 전람회에서 늘 대중의 관심을 자아냈으나, 만년에 이르러 그는 거의 온전히 집에만 틀어박히게 되었다. 장례식은 운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름난 “인물”이 아닌 경우, 널리 알려진 칭호가 없다는 사실은 그 해체의 과정을 한층 더 빠르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 여전히 위제스 공작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물론 얼마간 익명으로, 아무런 개인적 정체성도 없이 그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작의 관(冠)은 한동안 그 요소들을 한데 붙들어 두니, 마치 틀이 알베르틴이 감탄하던 그 정교하게 빚은 얼음과자들을 한데 붙들어 두는 것과 같은데, 반면에 더없이 세련된 평민들의 이름은 그들이 죽기가 무섭게 녹아내려 제 꼴을 잃고 만다. 우리는 브레오테 가 카르티에를 두고, 라 트레무이유 공작의 더없이 절친한 벗이자 귀족 사회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바 있다. 다음 세대에 이르러 카르티에는 어찌나 형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던지, 그를 보석상 카르티에와 친척뻘로 만들어 준다면 도리어 그의 격을 올려 주는 셈이 될 지경인데, 정작 그 자신은 누군가 자기를 그 보석상과 혼동할 만큼 무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반대로 스완은 지적 세계에서나 예술적 세계에서나 두드러진 인물이었고, 비록 아무것도 “내놓은”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친애하는 샤를 ⸻, 내가 아직 그토록 어리고 그대는 무덤에 다가가고 있던 시절에 내가 알던 그대여, 사람들이 다시 그대를 입에 올리기 시작하고 그대의 이름이 어쩌면 살아남으리라는 것은, 그대가 필시 얼치기쯤으로 여겼을 그 사람이 그대를 제 책 가운데 한 권의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루아얄 거리 클럽의 발코니를 그린 티소의 그림, 그대가 갈리페며 에드몽 드 폴리냐크며 생모리스와 함께 등장하는 그 그림에서 사람들이 늘 그대에게 눈길을 쏠리게 하는 것은, 스완이라는 인물 속에 그대의 자취가 얼마간 남아 있음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좀 더 일반적인 실상으로 돌아가자면, 예고되었으면서도 뜻밖이던 이 스완의 죽음에 관해, 나는 그 사촌의 야회가 열리던 저녁에 그가 몸소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바 있었다. 그것은, 어느 날 저녁 신문을 훑어 내려가던 내 눈길이, 마치 엉뚱한 자리에 끼워 넣어진 신비로운 몇 줄로 새겨진 듯한 그 부고에 문득 붙들렸을 때, 그 도드라지고 유별난 낯섦이 내게 되살아나던 바로 그 죽음이었다. 그 몇 줄만으로도, 살아 있던 한 사람은 이제 우리가 건네는 말에 다시는 응답할 수 없는 누군가가 되고, 한낱 이름, 곧 씌어진 이름으로, 순식간에 현실의 세계에서 침묵의 나라로 넘어가 버린 이름으로 오그라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내가 베르뒤랭 부부가 살던 그 집, 곧 그 무렵만 해도 신문에 찍힌 다섯 글자의 나열에 지나지 않던 스완이 오데트와 그토록 자주 저녁을 들던 그 집을 눈에 익혀 두고 싶어 안달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몇 줄이었다. 또한 이 점을 덧붙여야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비록 이 까닭들이 그의 죽음이 지닌 개별적 낯섦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음에도, 오랫동안 스완의 죽음을 다른 어떤 죽음보다 더 아프게 만든 것이었다.) 곧, 나는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 그에게 약속했던 대로 질베르트를 끝내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 그가 그날 저녁 나를 대공과의 대화 상대로 고른 데에 있었다던 그 “또 다른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끝내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연못 바닥에서 거품이 떠오르듯) 온갖 가지각색의 주제, 곧 페르메이르며, 무시 며, 스완 자신이며, 어느 부셰 태피스트리며, 콩브레며 하는 것들에 관해 그에게 묻고 싶어 못 견디던 수천 가지 물음이 내게 떠올랐다는 것을 말이다. 그 물음들은 내가 날마다 미루고 미룬 것을 보면 필시 그리 절실한 것은 아니었으련만, 이제 그의 입술이 봉인되어 그 어떤 대답도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지금에 와서는 더없이 중대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니,” 브리쇼가 말을 이었다, “스완이 장차 아내가 될 여인을 만난 것은 여기가 아니라네, 아니 그보다는, 여기서 만난 것은 아주 나중 시기, 곧 베르뒤랭 부인의 옛집을 일부 허물어 버린 그 참사가 있고 난 뒤의 일이었지.”

안타깝게도, 교수는 그 호사를 함께 누리지도 못하는 처지였던 만큼 내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사치를 브리쇼의 눈앞에 드러내 보이기가 두려웠던 나머지, 나는 너무 서둘러 마차에서 내렸고, 브리쇼가 나를 알아채기 전에 마차에서 멀찍이 벗어나려고 어깨 너머로 마부에게 던진 말을 마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바람에 마부는 우리를 뒤따라와 나중에 다시 모시러 올까요 하고 물었고, 나는 황급히 그러라고 대답했으며, 승합마차를 타고 온 교수는 부쩍 더 큰 존경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니까 자네가 삯마차를 타고 왔군그래.” 그가 자못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순전히 어쩌다 그리된 것뿐입니다. 저는 웬만해선 삯마차를 타지 않아요. 늘 승합마차나 걸어서 다니지요. 그렇더라도, 선생님께서 저 덜컹거리는 마차에 기꺼이 올라 주신다면, 오늘 밤 선생님을 댁까지 모셔다드리는 크나큰 영광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좀 비좁게 끼어 앉으셔야겠지만요. 하기야 선생님은 늘 저에게 이토록 너그러우시니까요.” 아아,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알베르틴 때문에라도 집에 돌아가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도 그녀를 찾아올 수 없는 시각에 그녀가 내 집에 있다는 사실은, 그날 오후에 그러했듯 내 시간을 마음껏 부릴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때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가 트로카데로에서 돌아오는 길임을, 그리고 내가 서둘러 그녀를 다시 볼 마음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오후에도 그러했듯, 나는 집에 한 여인을 두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집에 돌아가더라도 고독이 주는 그 기운을 북돋우는 전율을 맛보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네.” 브리쇼가 대답했다. “자네가 말하는 그 시절에, 우리 벗들은 몽탈리베 거리에서, 위층 층계참이 딸리고 뒤편에 정원이 있는 으리으리한 일층 아파트를 쓰고 있었지, 물론 지금만큼 호사스럽지는 않았네만, 내 보기에는 옛 베네치아 대사관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네.” 브리쇼는, 오늘 저녁 “콩티 강변로”에서 (베르뒤랭가의 응접실이 그 주소로 옮겨 간 뒤로 단골들은 응접실을 이렇게 불렀다) 샤를뤼스 가 마련한 성대한 음악 “잔치판”이 벌어질 것이라고 나에게 일러 주었다. 그는 이어서, 내가 말한 그 옛 시절에는 작은 핵심이 지금과 달랐고 그 분위기도 사뭇 같지 않았으며, 그것이 비단 그때는 단골들이 더 젊었던 탓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엘스티르가 부린 공들인 장난들 (그가 “순전한 익살”이라 부르던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으니, 이를테면 어느 날 그 화가는 마지막 순간에 못 오게 된 척하고는, 임시 하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접시를 돌리면서, 몹시 점잔을 빼던 퓌트뷔스 남작부인의 귀에 대고 은근한 수작을 속삭여 그녀를 분노와 놀라움으로 새빨갛게 물들여 놓았다. 그러고는 저녁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졌다가, 응접실로 좌욕통 하나를 나르게 해 두고서, 사람들이 식탁을 떠날 무렵 그 통에서 발가벗은 알몸으로 나타나 무시무시한 욕설을 내뱉었다는 것이다. 또 손님들이 종이옷을 입고 오던 밤참 모임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엘스티르가 손수 도안하고 오려 내어 색을 입힌 그 옷들은 그 자체로 걸작이었으니, 브리쇼는 언젠가 샤를 7세 궁정의 대귀족 옷을 걸치고서 구두코를 길게 위로 말아 올렸는가 하면, 또 언젠가는 나폴레옹 1세 옷을 입었는데, 그 옷을 위해 엘스티르는 봉랍으로 레지옹 도뇌르 대수(大綬)를 지어 붙였더란다. 요컨대 브리쇼는, 높다란 창들과, 한낮의 햇살에 삭아 갈아 치워야 했던 나지막한 소파들이 있던 그 시절의 응접실을 기억의 눈으로 다시 그려 보며, 오늘날의 응접실보다 그 시절 것을 더 좋아한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나는, 브리쇼가 “응접실”이라는 말로 뜻하는 바가, 마치 교회라는 낱말이 종교 건물만이 아니라 예배하는 신도들의 무리까지 아우르듯, 단지 그 아파트가 아니라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그들이 거기서 누리러 오던 특별한 즐거움임을 잘 알아들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 소파들은 바로 그 즐거움에 제 형태를 새겨 주었으니, 오후에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뵈면 그녀가 채비를 마칠 때까지 우리는 그 소파에 앉아 기다렸고, 그동안 바깥의 마로니에 꽃송이며 벽난로 위 꽃병에 꽂힌 카네이션들은, 발그레한 그 빛깔의 미소 어린 환대로써 손님을 향한 정답고 살가운 마음을 드러내며,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안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 응접실이 그에게 지금 것보다 더 나아 보였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이 어떤 한 형체에도 매인 노예로 머물러 있지 못하는 저 옛 프로테우스와 같아서, 사교의 세계에서마저 더디고 힘겹게 완성의 경지에 오른 집을 문득 저버리고 덜 눈부신 다른 집을 더 좋아하게 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마치 오데트가 오토 사진관에서 찍어, “공주” 드레스를 걸치고 랭테릭이 물결지게 매만진 머리로 여왕인 양 굴던 그 “손질한” 사진들보다, 니스에서 찍은 자그마한 “캐비닛 사진” 한 장이 스완의 마음에 더 들었던 것과 같으니, 그 사진 속에서 그녀는 천 망토를 두르고, 팬지꽃과 검은 리본 매듭으로 장식한 밀짚모자 아래로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머리채를 삐져나오게 한 채, 스무 살 젊어 보이기는커녕 (대개 여자란 사진이 오래된 것일수록 더 늙어 보이는 법이므로) 지금보다 스무 살은 더 나이 든 하녀 아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또한, 나로서는 한 번도 알지 못한 것을 나에게 추어올리는 데서, 내가 결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을 자기는 맛보았노라 내보이는 데서 얼마간 흡족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었으니, 그저 이제는 세상에 없는 두세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고, 그들을 입에 올리는 그 말투로써 그들 하나하나에게, 그 감미로운 친밀함에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입혀 놓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시절이 대체 어떠했을까 나 스스로 되묻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베르뒤랭 부부에 관해 그동안 내가 들어 온 이야기가 죄다 너무나 조잡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실로, 내가 알고 지내던 스완의 경우, 이제 그가 지난날의 더없이 빼어난 이야기꾼들 축에 들 만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지금, 나는 그에게 충분히 마음을 쏟지 못한 것을, 충분히 사심 없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지 못한 것을, 그가 아내가 점심을 들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를 즐겁게 해 주며 제 보물들을 보여 줄 때 그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우리가 막 베르뒤랭 부인 댁 문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샤를뤼스 가 그 거구를 우리 쪽으로 몰고 오는 것을 언뜻 보았는데, 그는 요즈음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겉보기에는 더없이 인적 없는 구석에서조차 어김없이 불쑥 솟아나던 그 협박꾼 내지 걸인들 가운데 하나를 마지못해 뒤에 달고 있었으니, 이 힘센 괴물은 제 뜻과는 어긋나는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상어가 길잡이 물고기를 거느리듯, 얼마쯤 거리를 둔 채 언제나 그런 자를 데리고 다녔다. 요컨대 그 모습은, 내가 발베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그 매서운 낯빛과 짐짓 꾸민 사내다움을 지녔던 그 오만한 낯선 이와 어찌나 두드러지게 대비되던지, 나는 마치 제 위성을 거느린 채, 궤도를 도는 아주 다른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온전히 차오르기 시작한 어느 행성을, 또는 몇 해 전만 해도 쉬이 감출 수 있고 그 심각함을 아무도 짐작 못 하던 자그마한 반점에 지나지 않던 병에 이제는 온통 좀먹힌 어느 병자를 발견하는 듯싶었다. 브리쇼가 받은 수술이 그가 영영 잃었다고 여기던 시력의 아주 작은 일부를 되돌려 주기는 했으나, 그가 남작의 뒤를 따르던 그 불량배를 알아보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기야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으니, 라 라스플리에르 이래로, 그리고 교수가 샤를뤼스 에게 우호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음에도, 그를 보기만 하면 브리쇼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다른 모든 이의 삶은 그가 짐작조차 못 하는 어둑한 길들을 따라 뻗어 있으리라. 그러나 모든 대화의 바탕에 깔린, 그토록 자주 사람을 배신하는 거짓이라 할지라도, 적의라든가, 추잡한 잇속이라든가, 우리가 하지 않은 척 보이고 싶어 하는 어떤 방문이라든가, 아내에게 숨기려 애쓰는 하룻밤 정부와의 외도 같은 것을 감추는 솜씨는, 좋은 평판이 그 존재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악습을 덮어 가리는 솜씨만큼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 악습들은 한평생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밤에 부둣가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일이 그것들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때조차 이 우연한 발견은 흔히 오해되기 마련이어서, 우리에게는 그 비밀을 아는 제삼자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 상상 밖의 실마리를 건네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것들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것들의 부도덕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쪽으로 광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기에 섬뜩해진다. 쉬르지 부인은 이렇다 할 도덕적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제 아들들에 관한 것이라면 물질적 잇속으로 깎아내리고 설명할 수 있는 일, 곧 온 인류가 이해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인정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샤를뤼스 가 마치 몸속에 든 어떤 태엽 장치에라도 이끌리듯, 아들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김없이 그들의 턱을 꼬집고 또 형제끼리 서로의 턱을 꼬집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서는, 아들들이 더는 그를 찾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녀는, 여태 사이좋게 지내 온 이웃이 혹여 식인 습성에 물든 것은 아닐까 스스로 묻게 만드는, 육체의 어떤 신비 앞에서의 그 불안한 감각을 느꼈고, “언제쯤 자네 아들들을 다시 볼 수 있겠나?” 하는 남작의 거듭된 물음에, 제 무방비한 머리 위로 벼락을 끌어들이고 있음을 의식하면서도, 아이들이 시험 준비로 몹시 바쁘다느니, 외국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둘러대곤 했다. 누가 뭐라 하든, 무책임함은 허물을, 나아가 죄악마저 더욱 무겁게 만든다. 랑드뤼가 (그가 정말로 제 아내들을 죽였다고 치자면) 만약 돈이라는, 능히 뿌리칠 수 있는 동기에서 그리한 것이라면 용서받을 수도 있겠으나, 그의 범행이 뿌리칠 수 없는 사디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렇지 못하리라.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