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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이어서) ③

5권 제2부 · 제2장 (이어서)

그러는 동안 베르뒤랭 부인은 코타르와 스키를 상대하느라 분주했다. 모렐은 방금, (샤를뤼스 가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인이 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약속해 두었던 부인의 몇몇 벗들의 초대를 거절한 참이었다. 베르뒤랭가의 벗들이 여는 야회에서 연주하기를 모렐이 거부한 까닭은, 곧 우리가 이제 곧 훨씬 더 심각한 다른 이유들로 뒷받침되는 것을 보게 될 그 까닭은, 유한계급 일반에 흔하되 특히 이 작은 핵심 무리에게서 두드러진 어떤 습성에서 그 명분을 찾았을 법하다. 정말이지, 베르뒤랭 부인이 새로 온 손님과 단골들 가운데 하나 사이에 오가는, 그들이 이미 아는 사이이거나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함을 짐작하게 하는 어떤 속삭임을 (‘그럼 금요일에, 아무개 씨 댁에서요’라거나 ‘아무 날이나 화실로 오세요, 저는 다섯 시까지는 늘 거기 있으니,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엿듣기라도 하면, 그리고 그 새 손님이 작은 패거리에 눈부신 새 인물이 되어 줄 만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짐작되면, 부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코카인을 들이마시는 버릇보다도 드뷔시를 듣는 버릇으로 더 짙게 그늘진 그 아름다운 두 눈에, 오직 음악의 도취에서만 비롯된 그 나른한 표정을 간직한 채로도, 그 온갖 사중주와 그로 인한 두통으로 부풀어 오른 제 눈부신 이마 뒤에서는 다성음악과는 거리가 먼 생각들을 굴리다가, 더는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주사를 한순간도 더 미루지 못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떼어 놓고는, ‘단골’인 쪽을 가리키며 새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 토요일쯤, 아니 편하신 날 아무 날에나, 정말 좋은 분들과 함께, 여기 이분과 만나 뵙게 저녁을 드시러 오지 않으시겠어요? 너무 큰 소리로 말씀하진 마세요, 이 패거리를 다 부르고 싶진 않으니까요.” (이 ‘패거리’라는 말은, 그토록 많은 기대를 걸게 된 새 손님을 위해 그 순간만은 뒷전으로 밀려난 저 작은 핵심 무리를 오 분 동안 가리키는 데 쓰인 말이었다.)

그러나 이 도취된 충동, 이 다정한 손짓을 건네고 싶은 욕구에는 그 이면이 있었다. 수요회에 부지런히 드나드는 일은 베르뒤랭 부부의 마음속에 정반대의 경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다투고, 등을 돌리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다 함께 지내던 라 라스플리에르에서의 몇 달 동안 더욱 굳어져 거의 광기의 지경에 이르렀다. 베르뒤랭 는 애써 손님 하나를 그르다고 몰아세우고, 죄 없는 파리 한 마리를 제 동무 거미에게 넘겨줄 거미줄을 치곤 했다. 트집 잡을 거리가 없으면 어떤 터무니없는 구실이라도 지어냈다. 단골 가운데 하나가 집을 나선 지 반 시간만 지나도, 그들은 남들 앞에서 그를 놀림감으로 삼아, 그 사람 이가 도무지 깨끗한 적이 없다든가, 아니 도리어 하루에 스무 번씩 이를 닦아 대는 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을 손님들이 알아채지 못했다며 짐짓 놀라는 척했다. 누군가 감히 창문을 열기라도 하면, 이 무례함은 주인 내외 사이에 혐오의 눈길이 오가게 했다. 잠시 뒤 베르뒤랭 부인이 숄을 청하면, 베르뒤랭 는 그것을 구실 삼아, 낯이 뿌리까지 붉어진 그 죄인이 다 듣는 데서 분노에 찬 어조로 “아니, 내가 창문을 닫겠소, 대체 누가 이걸 열어 대는 뻔뻔한 짓을 했나 모르겠군” 하고 말할 수 있었다. 당신이 마신 포도주의 양을 두고도 에둘러 핀잔을 들었다. “해로울 것도 없지. 막일꾼들은 그걸로 기운을 차리니까!” 단골 둘이 마님의 허락을 먼저 얻지 않고 함께 나가기라도 하면, 그 나들이가 아무리 죄 없는 것이었다 한들 끝없는 뒷말을 낳았다. 샤를뤼스 가 모렐과 함께한 나들이는 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샤를뤼스 가 (모렐이 제 병영 근처에 살아야 했던 까닭에) 라 라스플리에르에 묵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가, 포만과 혐오와 구역질의 시각을 늦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각은 이제 곧 닥치려 하고 있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격노하여, 샤를뤼스 가 모렐에게 시키고 있는 그 우스꽝스럽고 가증스러운 노릇에 관해 그를 ‘깨우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인은 말을 이었다(베르뒤랭 부인은,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감사의 빚이 부담스럽게 여겨지는데 그를 죽여 그 빚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때면, 그에게서 어떤 심각한 결점을 찾아내어 그 덕에 떳떳이 감사를 표하지 않아도 되게 하곤 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 사람은 내 집에서 내가 도무지 마뜩잖은 잘난 체를 부린다니까요.” 사실인즉, 베르뒤랭 부인에게는 샤를뤼스 와 시비를 벌일, 모렐이 제 벗들의 야회에서 연주하기를 거절한 것 말고도 더 심각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샤를뤼스 는, 어차피 부인을 위해서라면 결코 오지 않았을 사람들을 콩티 강변로로 데려옴으로써 마님에게 베푸는 그 영광에 도취되어, 부인이 초대해야 마땅한 이들이라며 처음 몇몇 이름을 대자, 예술의 대가다운 독단에다 성마른 귀족의 앙심 어린 자존심을 뒤섞은 단호한 어조로 그들에 대해 더없이 단호한 거부령을 내렸으니, 이는 접대의 문제에서, 제가 보기에 전체의 성공을 위태롭게 할 양보에 동의하느니 차라리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협력을 거두어들일, 그런 전문가다운 태도였다. 샤를뤼스 는 오직 생틴 한 사람에게만, 그것도 갖가지 단서를 달아 가며 승낙을 내주었다. 게르망트 부인은 그의 아내를 상대하지 않으려고, 생틴과의 날마다의 친밀함에서 관계의 완전한 단절로 옮겨 갔으나, 샤를뤼스 는 그를 총명하다 여겨 계속 만나 오던 터였다. 하기야 한때 게르망트 사교계의 꽃이던 생틴이 제 출세와,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교적 발판을 찾아 나선 곳은, 하급 귀족과 뒤섞인 중산층 무리, 그저 매우 부유할 뿐이며 진짜 귀족은 알지도 못하는 어떤 귀족 나부랭이와 연이 닿은 그런 무리였다. 그러나 베르뒤랭 부인은, 그 아내 쪽 사람들의 푸른 피에 대한 허세는 알면서도 남편의 처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우리에게 높이의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것이지, 구름 속에 파묻혀 우리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생틴을 초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면 그가 아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점을 내세워야겠다고 여겨, “⸻ 과 결혼했으니 말이에요” 하고 말했다. 진실과는 정반대인 이 단언이 베르뒤랭 부인의 무지를 드러내자, 남작의 화장한 입술이 너그러운 경멸과 훤한 이해가 담긴 미소로 벌어졌다. 그는 곧이곧대로 답하기를 삼갔으나, 늘 그렇듯 제 정신의 비옥함과 자존심의 오만함을, 대대로 물려받은 제 소일거리 특유의 경박함과 더불어 드러내는 이론들을 사교적 실례를 들어 펼쳐 보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생틴은 결혼하기 전에 나를 찾아왔어야 했소.” 그가 말했다. “생리적 우생학뿐 아니라 사교적 우생학이라는 것도 있는데, 아마 이 방면의 전문가는 세상에 나 하나뿐일 거요. 생틴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소, 그가 한 그 결혼을 함으로써 제 목에 돌을 매달고, 제 등불을 됫박 아래 감춘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오. 그의 사교적 앞길은 그것으로 끝장났소. 내가 그에게 이것을 설명해 주었더라면 그는 나를 이해했을 거요, 워낙 총명한 사람이니까. 반대로, 제 지위를 드높고 우뚝하고 세계에 뻗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죄다 갖추었으되, 다만 무시무시한 밧줄 하나가 그를 땅에 붙들어 매고 있던 사람이 있었소. 나는 반은 압력으로, 반은 힘으로 그가 그 사슬을 끊도록 도왔고, 이제 그는 승리의 기쁨과 더불어, 오로지 나에게 힘입은 그 자유와 전능을 거머쥐었소. 그 자신에게도 얼마간의 결단이 필요했겠지만, 그 대가가 어떠하오! 이렇듯 사람은, 내 말에 귀 기울일 분별만 있다면, 스스로 제 운명의 산파가 될 수 있는 것이오.” 샤를뤼스 가 정작 제 운명에는 그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노릇이었다. 행동이란 말과는, 그것이 아무리 능란한 말이라 해도, 또 생각과는, 그것이 아무리 천재의 생각이라 해도, 별개의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내가 예언해 둔 사회적 반응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거기에 손은 대지 않는, 그런 철학자의 삶을 살고 있소. 그래서 나는 생틴을 계속 찾아가는데, 그는 언제나 나에게 마땅한 그 진심 어린 경의로 나를 맞아 준다오. 나는 그의 새 거처에서 그와 함께 저녁을 든 적도 있는데, 그곳은 더없이 호사스러운 화려함 한복판에서 지독히도 따분한 곳이라오, 지난날 그가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도 초라한 다락방에 최고의 인사들을 불러 모으던 시절에는 그토록 흥겨웠던 것과는 딴판이지. 그러니 그 사람이라면 초대해도 좋소, 내 허락하리다, 하지만 당신이 댄 다른 이름들은 죄다 거부권을 행사해 물리치겠소. 그리고 당신은 그 일로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 거요, 내가 결혼을 주선하는 데 전문가라면 야회를 꾸리는 데도 못지않은 전문가이니 말이오. 나는 어떤 모임에 격조를 더하고 그것을 살려 내는, 떠오르는 인물들을 알고, 또 그것을 땅바닥에 처박아 판을 깨뜨리고 마는 이름들도 알고 있소.” 이런 배제가 늘 남작의 개인적 앙심이나 예술적 세련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고, 그의 배우다운 솜씨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나 무언가를 밑천 삼아 완벽하게 성공한 경구 하나를 다듬어 내면, 그는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으나, 그 새로움이 실은 새롭지 않다고 증언할 수 있을 첫 공연의 청중을 두 번째 공연에는 들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는다는 오직 그 까닭에서 응접실을 새로 꾸리곤 했고, 대화에서 성공을 거두면 필요할 경우 순회공연이라도 꾸려 지방에서 흥행을 펼쳤을 것이다. 이런 배제의 갖가지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안주인으로서 제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느낀 베르뒤랭 부인을 성가시게 했을 뿐 아니라, 두 가지 이유에서 사교적으로도 그녀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 첫째는, 샤를뤼스 가, 쥐피앙보다도 더 민감한 사람이라,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채로, 제 벗이 되기에 더없이 알맞은 이들과 다투곤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가 그들에게 내릴 수 있는 첫 벌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베르뒤랭가에서 여는 야회에 그들이 초대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따돌림당한 이들은, 흔히 말하듯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샤를뤼스 가 그들과 다툰 날부터는 그의 눈에 더 이상 좌중을 주무르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의 상상력은, 다투기 위해 남에게서 허물을 찾아내는 데뿐 아니라, 그들이 제 벗이기를 그친 순간 그들에게서 온갖 중요성을 벗겨 내는 데에도 못지않게 재주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그 죄인이, 그렇지만 그 공작 작위는 십구 세기에나 생긴, 몽테스키외가(家) 같은 아주 오래된 집안 출신이라면, 그 순간부터 샤를뤼스 에게 값진 것은 오직 그 공작 작위의 연대뿐이요, 집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그자들은 공작 축에도 못 끼오.” 그는 이렇게 외치곤 했다. “그건 몽테스키외 신부의 칭호가, 팔십 년도 채 안 되는 옛날에 지극히 변칙적으로 방계로 넘어간 것이오. 지금의 공작은, 공작이라 부를 수나 있다면, 겨우 삼 대째요. 위제스가나 라 트레무아유가나 뤼인가처럼 십 대나 십사 대째 공작인 이들, 아니면 십이 대째 게르망트 공작이자 십칠 대째 코르도바 대공인 내 형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하시구려. 몽테스키외가가 오래된 집안의 후예라면, 설령 그것이 증명된다 한들, 그게 무엇을 증명하겠소? 그들은 어찌나 밑으로 내려갔는지 지하 십사 층에까지 이르렀단 말이오.” 반대로 그가, 유서 깊은 공작 작위를 지녔고 더없이 화려한 인척을 자랑하며 군림하는 대공들과 연이 닿았으나, 그 가문에는 이런 영예가 긴 혈통도 없이 별안간 굴러들어 온, 이를테면 뤼인가 같은 어떤 귀족과 다툰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져서 오직 혈통만이 값어치를 지녔다. “원, 나 참, 알베르티 라니, 루이 13세에 가서야 겨우 진창에서 기어 나온 자들 아니오. 궁정의 총애 덕에 그자들이 아무 권리도 없는 공작 작위를 주워 얻었기로서니, 그게 우리에게 무슨 대수란 말이오?” 게다가 샤를뤼스 의 경우, 대화나 우정에서 그것들이 도무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게르망트가 특유의 그 성향과, 험담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하는 그 병적인 겁 때문에, 추락은 언제나 격찬 바로 뒤에 잇따랐다. 그리고 격찬이 높았던 만큼 추락도 그만큼 더 컸다. 그런데 몰레 백작부인만큼 남작의 총애를 받은 이는 일찍이 없었으니, 그가 그녀에게 보인 호의는 유난했다. 그녀는 대체 어느 날 어떤 무심함의 기색으로, 자기가 그 총애를 받을 자격이 없었음을 드러냈던 것일까? 백작부인은 그 수수께끼를 끝내 풀지 못했노라고 언제나 말하곤 했다. 아무튼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만 해도 남작의 마음속에는 더없이 격렬한 분노가 일고, 더없이 능란하면서도 더없이 무시무시한 탄핵의 언사가 터져 나왔다. 베르뒤랭 부인은, 몰레 부인이 자기에게 무척 친절했던 데다, 앞으로 보게 되듯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고, 마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랑스와 나바르 전체’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들을 그 백작부인이 제 집에서 모조리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에 미리부터 흐뭇해하던 터라, 대뜸 ‘몰레 부인’을 초대하자고 제안했다. “원, 세상에! 사람마다 제 취향이 있는 법이지요.” 샤를뤼스 가 대꾸했다. “그리고 부인, 당신이 피플레 부인이나 지부 부인이나 조제프 프뤼돔 부인과 담소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나야 더 바랄 게 없소만, 다만 내가 없는 저녁에 하시구려. 당신이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우리가 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소, 나는 귀족의 이름들을 대는데 당신은 장사치와 전문직의, 지지리도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로, 더러운 험담이나 늘어놓는 벼락출세한 것들, 제가 마치 예술의 후원자라도 되는 양 우쭐대는 계집들의 이름으로 되받으니 말이오, 그것들은 그저, 공작새를 흉내 내는 줄 아는 어치처럼, 내 게르망트 형수의 몸가짐을 한 옥타브 낮춰 되풀이할 따름인데도 말이오. 한마디 덧붙이자면, 내가 기꺼이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 여는 야회에, 내가 온당한 이유로 내 사교계에서 물리친 사람을, 태생도 절개도 지성도 없는 양 한 마리를,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게르망트 대공비를 함께 흉내 낼 수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여자를 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꼴사나운 일이 될 거요, 그런 짝짓기 자체가 어리석은 노릇이니,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게르망트 대공비는 극과 극으로 다르기 때문이오. 그건 마치 어떤 사람이 라이헨베르크이면서 동시에 사라 베르나르인 척하는 것과 같소.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해도, 지독히 우스꽝스러운 노릇일 거요. 나 자신도 이따금 한쪽의 과장에 실소하고 다른 쪽의 옹졸함을 아쉬워하기는 하나, 그건 내 권리요. 하지만 저 벼락출세한 조무래기 개구리가 몸을 부풀려, 적어도 언제나 견줄 데 없는 혈통의 기품을 드러내는 두 위대한 부인의 크기에 이르려 한다니, 흔히들 말하듯, 고양이가 다 웃을 노릇이오. 그 몰레라니! 그건 내가 듣는 데서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이름이오, 그러지 않으면 나는 그저 물러날밖에.” 그는 미소를 띠고, 제 환자의 이익을 그 환자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헤아리는 의사가, 동종요법 의사와의 협진만은 용납하지 않겠노라 넌지시 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다른 한편, 샤를뤼스 가 하잘것없다고 여기는 어떤 이들은 그에게는 정말 하잘것없었을지 몰라도 베르뒤랭 부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샤를뤼스 는 그 드높은 태생 덕에, 한창 유행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 그들을 그러모으기만 하면 베르뒤랭 부인의 응접실을 파리에서 손꼽히는 살롱으로 만들어 줄 그런 이들 없이도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부인은 그 무렵,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놓쳤음을, 게다가 드레퓌스 사건에서의 사교적 실책이 그녀에게 안긴 그 엄청난 지체(遲滯)까지 있었음을 절감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하기야 그 지체가 결국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앞서 언급했는지 어떤지 잊었으나,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제 세계의 어떤 이들이, 모든 것을 그 사건에 종속시켜, 유행하는 여자들을 제 응접실에서 몰아내고 유행하지 않는 다른 이들을 들이는 것을, 그들이 재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았고, 그러다 이번에는 바로 그 같은 부인들에게서, 미적지근하다느니, 소신이 미덥지 못하다느니, 국익보다 사교적 구별을 앞세우는 죄를 지었다느니 하는 비난을 받았던 터다. 대화가 끝날 무렵, 내가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그에게 하기를 기억했는지, 아니 그럴 기회나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그런 벗을 대하듯, 나는 독자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까? 내가 그 이야기를 했든 안 했든,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태도야 쉽사리 짐작할 수 있고, 실로 훗날의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사교적 관점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옳게 보일지도 모른다. 캉브르메르 는 드레퓌스 사건을, 정보국을 무너뜨리고 규율을 흔들고 군대를 약화시키고 프랑스 국민을 분열시켜 침략의 길을 닦으려는 외국의 음모로 여겼다. 라 퐁텐의 우화 몇 편을 빼면 문학이 후작에게는 봉인된 책이었던지라, 그는 오늘날의 그 잔혹하리만치 내성적인 작가들이 불경(不敬)의 기풍을 지어냄으로써 나란한 경로를 밟아 비슷한 결과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일은 제 아내에게 맡겨 두었다. “레나크 와 에르비외 가 그 음모에 가담해 있어요.” 부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무도 드레퓌스 사건이 사회를 겨냥해 그토록 음험한 술책을 미리 꾸몄다고 탓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그 사건이 울타리를 허물어뜨린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를 사교계에 끌어들이기를 마다하는 사교계의 지도자들은, 정치가 군대에 스며드는 것을 마다하는 군인들만큼이나 앞을 내다보는 이들이다. 사교계란 성적 욕구와 같아서, 한번 우리 선택을 미적 고려에 맡기고 나면, 그것이 어떤 도착의 형태에까지 이를지 알 수 없는 법이다. 자기들이 국민주의자라는 이유로 포부르 생제르맹은 다른 계급의 부인들을 접대하는 버릇을 들였고, 국민주의가 사라지자 그 이유는 없어졌으나 버릇은 남았다. 베르뒤랭 부인은 드레퓌스주의라는 끈으로, 당장은 사교적으로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 몇몇 뛰어난 작가들을, 그들이 드레퓌스파라는 바로 그 까닭에 제 집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정치적 열정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여서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새 세대가 일어난다. 그것을 느꼈던 세대조차 변하여, 앞선 세대를 그대로 본뜨지 않은 정치적 열정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배제의 이유가 바뀌었으므로, 내쳐졌던 이들 가운데 몇몇을 복권시킨다. 왕당파는 드레퓌스 사건 무렵, 어떤 사람이 반유대주의자이자 국민주의자이기만 하다면, 그가 공화파, 곧 급진파, 곧 반교권주의자였는지 어떤지는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전쟁이 일어난다면, 애국심은 또 다른 형태를 띠게 되어, 어떤 작가가 국수주의자이기만 하다면 그가 일찍이 드레퓌스파였는지 아닌지 아무도 따져 보려 하지 않으리라. 이렇듯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예술적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베르뒤랭 부인은, 마치 둥지를 짓는 새처럼, 언젠가 제 살롱을 이룰, 당장은 쓸모없는 그 여러 재료를 하나하나 그러모았던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지나갔으나, 아나톨 프랑스는 남았다. 베르뒤랭 부인의 힘은 예술에 대한 그녀의 진실한 사랑에, 제 단골들을 위해 마다않던 수고에, 그들만을 위해, 유행하는 세계의 누구도 부르지 않고 베풀던 그 놀라운 만찬에 있었다. 단골 저마다는 그녀의 식탁에서, 베르고트가 스완 부인 댁에서 대접받던 것과 똑같이 대접받았다. 이런 술벗 하나가 누구나 만나 보고 싶어 안달하는 저명인사로 변해도,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의 그의 존재는, 포텔이나 샤보가 요리한, 공식 만찬이나 송별연의 어느 요리처럼 인위적이고 잡다한 느낌을 조금도 풍기지 않았고, 그저 아무런 야회도 없는 날에도 거기서 똑같이 완벽한 모습으로 맛보았을, 더없이 맛깔스러운 ‘일상’일 따름이었다. 베르뒤랭 부인 댁에서는 배역들이 완벽하게 조련되어 있었고, 상연 목록도 더없이 정선되어 있었으며, 모자란 것이라곤 오직 관객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대중의 취향이 베르고트 같은 이의 이지적이고 프랑스다운 예술에서 등을 돌려, 무엇보다 이국적인 형태의 음악으로 쏠리기 시작하자, 파리에 있는 모든 외국 예술가들의 일종의 공식 대변인 격이던 베르뒤랭 부인은, 오래지 않아, 저 우아한 유르블레티에프 대공비 곁에서, 저 러시아 무용수들에게는 준엄하나 전능한 늙은 요정 대모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직 더없이 아둔한 비평가들만이 그 매혹에 항의하던 이 매력적인 침공은, 익히 알려졌듯, 드레퓌스 사건이 불러일으킨 것보다는 덜 뜨겁고 더 순수하게 미적이면서도 어쩌면 그에 못지않게 격렬한 호기심의 열병으로 파리를 물들였다. 여기서도 베르뒤랭 부인은, 그러나 사교적으로는 사뭇 다른 결과와 더불어, 맨 앞줄에 자리 잡게 되어 있었다. 중죄재판소에서의 재판 동안 졸라 부인 곁에, 바로 그 좌석 아래에 앉은 그녀의 모습이 목격되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러시아 발레에 열광한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이, 최신 유행의 새 깃털 장식으로 머리를 꾸미고 오페라 극장으로 몰려들었을 때, 그들은 어김없이 어느 무대 옆 특별석에서 유르블레티에프 대공비 곁에 앉은 베르뒤랭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법정의 격정이 지나간 뒤 사람들이 저녁이면 베르뒤랭 부인 댁으로, 피카르나 라보리를 직접 만나고 게다가 사건의 최신 소식을 들으러, 쥐를랭당이나 루베나 주오스트 대령이나 군법에 어떤 희망을 걸 수 있을지 알아보러 가곤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 그들은 셰에라자드이고르 공이 불러일으킨 열광 뒤에 좀처럼 잠들 마음이 나지 않아, 베르뒤랭 부인 댁으로 몰려갔으니, 그곳에서는 유르블레티에프 대공비와 그 안주인의 주선 아래, 정교하게 차려진 밤참이 밤마다, 더 날렵하려고 저녁을 거른 무용수들 자신과, 그들의 감독, 그들의 무대미술가, 그리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곧 하나의 붙박이 작은 핵심 무리를 한자리에 모았고, 그 둘레로는, 엘베시우스 와 그 부인의 밤참 식탁 둘레로 그러했듯, 파리의 더없이 지체 높은 부인들과 외국의 왕족들조차 기꺼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스스로 안목을 갖추었노라 자부하며 여러 러시아 발레 사이에 부질없는 구별을 지어, ‘레 실피드’의 무대장치를, 자기들이 거의 흑인의 영감에서 나온 것으로 돌리려던 셰에라자드의 그것보다 어쩐지 더 ‘순수하다’고 여기던 사교계 인사들조차, 화폭의 예술보다 어쩌면 조금 더 인위적인 예술에서 인상주의 그 자체만큼이나 깊은 혁명을 일으킨, 저 연극적 취향의 위대한 혁신가들을 코앞에서 만나 보고는 넋을 잃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