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뤼스 씨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가 자신의 금지 목록에 올린 것이 몰레 백작부인과 봉탕 부인뿐이었다면 베르뒤랭 부인도 그리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봉탕 부인으로 말하자면, 베르뒤랭 부인이 오데트의 살롱에서 미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눈여겨보아 둔 사람으로, 드레퓌스 사건 동안 이따금 남편을 데리고 만찬에 왔는데, 베르뒤랭 부인은 그 남편을 “미적지근하다”고 불렀으니, 재심을 위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영리하고 어느 진영에나 관계를 맺어 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라보리와 같은 식탁에 앉아 만찬을 드는 것으로 자신의 독립성을 보이기를 기뻐했으며, 자기 처지를 위태롭게 할 만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어느 진영에서나 인정하는 조레스의 충직함에 대한 찬사만은 적절한 순간에 슬쩍 끼워 넣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남작은 그와 마찬가지로 몇몇 귀족 부인들도 금지했는데, 그들은 베르뒤랭 부인이 어떤 음악회나 자선 모금 자리를 계기로 최근에 알게 된 이들이었고, 샤를뤼스 씨가 그들을 어떻게 여기든, 이번에는 귀족적인, 베르뒤랭 부인의 새로운 핵심을 이루는 데에는 그 자신보다 훨씬 더 요긴한 존재들이었다. 베르뒤랭 부인은 실로 이 야회에 기대를 걸고 있었으니, 샤를뤼스 씨가 같은 계층의 여인들을 데려오면 거기에 자기의 새 친구들을 섞고, 그 새 친구들이 콩티 강변로에서 남작에게 초대받아 온 자기네 벗이나 친척을 마주치고 느낄 놀라움을 미리 음미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남작의 거부로 그녀는 실망하고 격분했다. 이런 조건에서 그 저녁이 그녀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샤를뤼스 씨의 손님들이 베르뒤랭 부인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와서 앞으로 그녀의 벗이 되어 준다면, 손실이 그리 크지는 않을 터였다. 그 경우 해악은 절반에 그칠 것이고, 남작이 한사코 갈라놓으려 한 사교계의 이 두 집단은 훗날, 물론 때가 되면 그 자신은 배제된 채, 하나로 합쳐질 것이었다. 그리하여 베르뒤랭 부인은 일말의 설렘을 안고 남작의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녀는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는지, 자신이 어느 정도의 친밀함까지 바랄 수 있을지 머지않아 알아차릴 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베르뒤랭 부인은 단골들과 의논을 했으나, 샤를뤼스 씨가 브리쇼와 나를 데리고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말을 뚝 그쳤다. 우리로서는 몹시 놀랍게도, 브리쇼가 그녀의 소중한 친구가 그토록 위독하다는 소식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베르뒤랭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들어 보세요, 실은 저는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고백해야겠어요. 느끼지도 않는 것을 느끼는 척해 봐야 소용없지요.” 필시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은 기력이 없어서였으니, 야회 내내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을 생각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고, 자존심 때문이었으니, 초대를 취소하지 않은 데 대한 변명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었으며, 또한 자기 존중과 사교적 수완 때문이었으니, 그녀가 드러내 보인 슬픔의 부재는 그것이 보편적인 무감각 탓이 아니라 문득 드러난, 대공비에 대한 특유의 반감 탓으로 돌려질 수 있다면 한결 명예로웠기 때문이고, 또 듣는 이들로서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는 진솔함 앞에서 무장을 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베르뒤랭 부인이 대공비의 죽음에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무거운 잘못을 스스로 뒤집어쓰면서까지 야회를 여는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잊기 쉬웠지만, 그렇게 슬픔을 고백했더라면 베르뒤랭 부인은 즐거움 하나를 단념할 만한 마음의 힘조차 없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벗에 대한 무관심은 더 충격적이고 더 부도덕하되 덜 굴욕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안주인의 경박함보다 고백하기가 쉬웠다. 범죄에서는 죄인이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고백을 부추기는 것은 그의 물질적 이해관계다. 잘못에 아무런 벌이 따르지 않는 경우, 고백을 부추기는 것은 자존심이다. 필시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였으리라. 상을 당했다고 해서 자기네 향락의 삶을 멈추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는 느끼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무익하게 여겨진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구실이 너무 진부하게 느껴진 나머지, 베르뒤랭 부인은 오히려 저 영리한 죄인들을 흉내 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죄인들은 결백의 상투적 문구에 반발하며, 자기도 모르게 부분적인 자백이 되고 마는 그들의 변론이란, 자신이 저질렀다고 지목받는 일을 하는 데에 아무 잘못될 것이 없다고 보지만 마침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데에 있다. 아니면, 자기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무관심의 이론을 채택하고 나자, 그 부자연스러운 감정의 내리막길에 일단 접어든 뒤로,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자못 독창적이며, 스스로 제 증상을 진단해 낼 만큼 드문 통찰력을 보였고, 또 그것을 공언하는 데에 어떤 “배짱”이 있다고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베르뒤랭 부인은 역설을 즐기는 심리학자이자 대담한 극작가라도 되는 양, 어떤 자랑스러운 만족감이 없지 않은 채로 자신의 슬픔 없음을 거듭 되뇌었다. “네, 참 이상하죠.” 그녀가 말했다.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물론 그분이 아직 살아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나쁜 사람 맞았지.” 베르뒤랭 씨가 끼어들었다. “아! 저이는 내가 그분을 여기 오게 해서 스스로 해를 끼친다고 여겨서 그분을 못마땅해하는데, 그 점에 대해선 어지간히 고집불통이에요.” “하나만 바로 인정해 주구려.”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 여자를 들이는 걸 한 번도 찬성한 적이 없소. 그 여자 평판이 나쁘다고 늘 말했잖소.” “하지만 저는 그분에 대해 나쁜 얘기라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 사니에트가 항변했다. “무슨 소리예요!” 베르뒤랭 부인이 외쳤다. “다들 알고 있었어요. 나쁜 정도가 아니라 추문거리에 소름 끼치는 일이었죠. 아니, 그것과는 상관없어요. 내가 뭘 느꼈는지는 나 자신도 설명을 못 하겠어요. 그분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하도 관심이 없어서, 그분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편조차 꽤 놀라며 이러더군요.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구려.’ 아니, 오늘 저녁만 해도 저이가 야회를 미루자고 했는데, 내가 기어이 열자고 했어요. 느끼지도 않는 슬픔을 내보이는 건 우스운 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 말에 “독립 극장”을 연상케 하는 묘한 데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난히 편리했기 때문이다. 인정된 무감각이나 부도덕은 헤픈 미덕만큼이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니, 더는 아무 변명도 찾을 필요 없는 비난받을 행동들을 진솔함이 부과하는 의무로 바꿔 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골들은 깊은 관찰을 담은 어떤 잔혹하리만치 사실적인 연극이 한때 불러일으키곤 하던, 감탄과 불안이 뒤섞인 심정으로 베르뒤랭 부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하는 마님이 자신의 올곧음과 독립성의 새로운 면모를 내보이는 것에 경탄하면서도, 그들 중 한 사람 이상이, 어차피 자기 경우는 사정이 다를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제 죽음을 떠올리고는, 자기에게 죽음이 찾아오는 날 사람들이 덧창을 내릴지 아니면 콩티 강변로에서 야회를 열지 자문했다. “제 손님들을 생각하면 야회가 미뤄지지 않아 참으로 기쁩니다.” 샤를뤼스 씨가 말했는데, 그렇게 말함으로써 베르뒤랭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한편 나는, 그날 저녁 베르뒤랭 부인에게 다가간 누구나 그러했듯, 결코 유쾌하다 할 수 없는 리노고메놀 냄새에 코를 찔렸다. 그 까닭은 이러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르뒤랭 부인은 자신의 예술적 감흥을 결코 정신적인 방식이 아니라 언제나 육체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으니, 그래야 그 감흥이 한결 불가피하고 심오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그녀에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뱅퇴유의 음악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는 거기서 아무 감동도 얻지 못하리라 예상하기라도 한 듯 무덤덤한 채로 있었다. 그러나 몇 분 동안 붙박인 듯 거의 넋 나간 시선을 보내고 나서,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며 거의 무례하다 할 어조로(마치 이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어조로. “담배 피우시는 건 조금도 상관없어요, 다만 양탄자 때문이에요. 아주 좋은 물건이라서, 하기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 워낙 불이 잘 붙거든요. 저는 불이 끔찍이 무서워서, 누가 부주의하게 담배꽁초라도 떨어뜨리는 바람에 여러분이 다 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뱅퇴유에게는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어요. 제 생각엔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작곡가예요. 다만 저는 그런 곡을 들으면 도무지 내내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답니다.”(그녀는 “운다”는 말에 아무런 비장함도 싣지 않았으니, “잔다”는 말에도 꼭 같은 어조를 썼을 것이다. 실은 몇몇 험담꾼들은 뒤쪽 낱말이 더 걸맞았으리라 우겨 댔지만, 누구도 확언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음악을 들었기에, 어떤 코 고는 소리가 결국은 흐느낌이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는 건 조금도 개의치 않아요. 다만 그러고 나면 지독한 감기에 걸린단 말이죠. 점막이 다 막혀서 이튿날엔 사람 몰골이 아니에요. 며칠씩 흡입 치료를 해야 겨우 목소리가 나온다니까요. 그런데 코타르의 제자 중 하나가, 아주 상냥한 사람인데, 그걸 치료해 주고 있어요. 그이는 꽤 독창적인 원칙을 따르죠. ‘치료보다 예방이 낫다.’ 그래서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제 코에 연고를 발라 준답니다. 아주 근본적인 방법이에요. 이제 저는 자식 잃은 온 세상 어머니들처럼 울어도 감기 기운 하나 없어요. 이따금 결막염이 좀 오는 정도, 그게 다예요. 정말이지 효험이 확실해요. 안 그랬으면 저는 도저히 뱅퇴유를 계속 들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야말로 이 기관지염에서 저 기관지염으로 옮겨 다니던 참이었으니까요.” 나는 뱅퇴유 양의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곡가의 따님도 여기 오지 않나요,” 나는 베르뒤랭 부인에게 물었다, “그분 여자친구 한 사람과 함께요?” “아니요, 방금 전보를 받았어요.” 베르뒤랭 부인이 얼버무리듯 말했다. “그분들은 시골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게 됐대요.” 나는 애초에 그들이 시골을 떠난다는 이야기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베르뒤랭 부인이 작곡가를 대표하는 이 사람들이 온다고 알린 것은 그저 연주자들과 청중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순간의 희망을 품었다. “아니, 그럼 오늘 오후 예행연습에도 안 왔단 말입니까?” 하고 남작이 짐짓 궁금한 척 물었으니, 그는 자기가 샤를리를 만나지 않은 것처럼 꾸미고 싶어 안달이었다. 샤를리가 내게 인사하러 다가왔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뱅퇴유 양에 관해 나직이 물었으나, 그는 그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라고 눈짓하고는,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일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얼마든지 나를 위해 마음대로 부려 달라며 기꺼워했다. 나는 그가 예전보다 훨씬 더 공손하고 정중해졌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어쩌면 내 의혹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를 그를 두고 샤를뤼스 씨에게 따뜻하게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저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점잖은 사람들 틈에 살면서 예의범절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럴 이유가 없지 않겠소.” 샤를뤼스 씨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영국식 무뚝뚝함에 물들지 않은 프랑스의 옛 예법이었다. 그래서 샤를리가 지방이나 외국 순회 연주에서 돌아와 여행복 차림으로 남작의 집에 이르면, 남작은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 경우 격식 없이 그의 두 뺨에 입을 맞추곤 했는데, 어쩌면 그토록 과시적으로 애정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범죄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뜻이 조금은 있었을 테고, 어쩌면 자신에게 그런 즐거움을 금할 수 없어서였겠지만, 필시 그보다는 문학적 감각에서, 프랑스의 전통적 예법을 옹호하고 예시하는 뜻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뮌헨풍이나 현대풍 가구에 맞서 증조모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안락의자들을 방에 간직하듯, 그는 영국식 냉담함에 맞서 18세기의 다정한 아버지가 지녔을 애정으로 응수하며, 아들을 다시 보게 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부성애에 정말로 근친상간의 흔적이 있었을까? 그보다는, 샤를뤼스 씨가 자신의 사악한 욕정을 습관적으로 달래던 방식이, 그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우리도 얼마간 알게 되겠지만, 아내가 죽은 뒤로 채워지지 못한 채 남아 있던 애정의 갈망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고 보는 편이 더 그럴듯하다. 아무튼 그가 재혼을 한두 번 생각해 본 끝에, 이제는 후계자를 입양하고 싶다는 병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가 모렐을 입양하려 한다고 말했고, 거기에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을 위해 쓰인 문학으로밖에 제 열정을 살찌울 수 없었던 성도착자, 뮈세의 밤을 읽으며 남자들을 떠올리곤 하던 성도착자도, 그럼에도 성도착자가 아닌 남자의 온갖 사교 활동에 끼어들고 싶은 욕구, 오페라 극장의 오랜 단골이 발레 소녀들을 거느리듯 애인을 두고 싶은 욕구, 자리를 잡고 결혼하거나 영속적인 관계를 맺어 아버지가 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샤를뤼스 씨는 무엇이 연주될지 말하게 한다는 구실로 모렐을 한쪽으로 데려갔지만, 무엇보다 샤를리가 그에게 악보를 보여 주는 동안 그렇게 두 사람의 은밀한 친밀함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데에서 큰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 자신도 어떤 매혹을 느꼈다. 작은 패거리에는 처녀가 몇 없었지만, 반대로 큰 야회에는 처녀들이 넉넉히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처녀들이 여럿 와 있었고, 그것도 아주 예쁜 처녀들이었다. 그들은 방 저편에서 나를 향해 인사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공기는 순간순간 어느 처녀의 매혹적인 미소로 장식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낮이 그러하듯 저녁 야회의 갖가지 우연한 장식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처녀들이 미소 짓고 있었기에 어떤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야회에서 샤를뤼스 씨가 여러 중요한 신사들과 은밀히 주고받은 말들을 엿들었다면 많은 이들이 몹시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두 공작과 이름난 장군 한 사람, 위대한 작가 한 사람, 위대한 의사 한 사람, 위대한 변호사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 말들이란 이러했다. “그런데 말이오, 그 하인 보셨소, 마차에 태우고 다니는 그 젊은 녀석 말이오? 우리 사촌 게르망트네에는 누구 아는 사람 없소?” “지금으로선 없소이다.” “그런데 말이오, 문밖 마차가 서는 자리에, 반바지 차림의 자그마한 금발내기가 하나 있었는데, 내 눈엔 여간 매력적이지 않더군. 어찌나 사랑스럽게 내 마차를 불러 주던지, 나는 기꺼이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소.” “그렇긴 한데, 내가 알기로 그쪽은 전혀 마음이 없고, 게다가 어찌나 도도한지. 당신은 단번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니 그쪽을 질색할 거요. 아무튼 소용없다는 걸 내가 아오, 내 친구 하나가 시도해 봤거든.” “그거 안됐군, 옆얼굴이 아주 곱고 머리카락도 근사하다 싶었는데.” “저런, 그 정도였소? 조금만 더 겪어 봤으면 환멸을 느꼈을 거요. 아니, 그보다 야식실에서 말이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진짜 절품을 볼 수 있었지, 키가 여섯 자 여섯 치나 되는 훤칠한 녀석에 살결도 완벽하고, 게다가 그 짓을 즐기기까지 하는 녀석 말이오. 그런데 폴란드로 가 버렸다오.” “아, 거기는 꽤 먼 곳이군.” “알 수 없지,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르오. 사람이란 어디서든 다시 만나는 법이니까.” 어떤 성대한 사교 모임이든, 그 한 단면을 도려내되 충분히 깊이 베어 낼 줄만 안다면, 의사들이 자기 환자들을 초대하는 저 모임을 닮지 않은 것이 없다. 그 환자들은 더없이 지적인 말을 늘어놓고 나무랄 데 없는 예의를 갖추고 있어서, 지나가는 어느 노신사를 가리키며 우리 귀에 대고 “저 사람이 잔 다르크요.”라고 속삭이지만 않는다면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 도리라고 봐요.” 베르뒤랭 부인이 브리쇼에게 말했다. “샤를뤼스에게 무슨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천만에요. 그는 유쾌한 사람이고, 평판으로 말하자면 나한테 해가 될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건 서슴없이 말할 수 있어요! 나로서는, 우리 작은 패거리 안에서, 우리 식탁의 담소에서, 나는 바람둥이들을, 흥미로운 화제를 논하는 대신 구석에서 여자한테 시답잖은 소리나 늘어놓는 남자들을 질색하는데, 샤를뤼스에게는 스완이나 엘스티르, 그 밖의 숱한 이들에게서 겪었던 일을 걱정할 필요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와 함께라면 아주 안심이었죠. 그가 내 만찬에 오면, 세상 여자들이 다 와 있어도 전체 대화가 시시덕거림이나 소곤거림으로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으니까요. 샤를뤼스는 그야말로 별종이라 걱정할 게 없어요, 신부님이라 해도 될 정도죠. 다만 그가 제멋대로 집에 오는 젊은이들을 이래라저래라 부려 먹고 우리 작은 핵심 안에서 성가시게 구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안 그러면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남자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베르뒤랭 부인은 이렇게 샤를뤼스주의에 대한 관용을 표방하면서 진심이었다. 모든 교회 권력이 그러하듯 그녀는 인간의 나약함을, 권위의 원칙을 무너뜨리거나 정통을 훼손하거나 자기 작은 교회의 오랜 교리를 변질시킬 만한 그 무엇보다 덜 위험한 것으로 여겼다. “만약 그가 그런다면 나는 이빨을 드러낼 거예요. 자기가 초대받지 못했다고 샤를리가 예행연습에 오는 것까지 막으려 든 양반을 어떻게 보세요? 그러니 그이는 따끔한 맛을 좀 봐야 해요, 그걸로 정신을 차리면 좋으련만, 안 그러면 그냥 모자 챙겨 들고 나가면 그만이죠. 정말이지 그이는 그 아이를 자물쇠로 채워 가둬 놓다시피 한다니까요.” 그리고 거의 누구라도 썼을 법한 바로 그 표현들을 쓰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흔히 쓰이지는 않으나 어떤 특정한 화제, 어떤 주어진 상황이 되면 말하는 이의 머릿속에 거의 어김없이 떠오르는 표현들이 있어서, 그는 그저 만인의 판박이 문구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면서도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는 법이다. “요즘엔 그 덩치 큰 부랑배가 무장 호위병처럼 옆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모렐을 볼 수가 없다니까요.” 베르뒤랭 씨는 샤를리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있다는 구실로, 잠깐 그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정을 설명해 주겠다고 나섰다. 베르뒤랭 부인은 이 일로 그가 심란해져서 그 결과 연주를 망칠까 봐 겁이 났다. 이 일은 연주가 끝난 뒤로 미루는 편이 나을 터였다. 어쩌면 다음 기회로까지 미루는 편이. 남편이 옆방에서 샤를리를 깨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느낄 그 감미로운 흥분을 베르뒤랭 부인이 아무리 고대한다 해도, 만일 그 한 방이 빗나가면 그가 성을 내며 16일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날 저녁 샤를뤼스 씨를 파멸시킨 것은, 그들 계급에 그토록 흔한 무례함, 곧 그가 초대했고 이제 막 도착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무례함이었다. 한편으로는 샤를뤼스 씨에 대한 우정에서, 또 한편으로는 이 색다른 환경을 둘러보려는 호기심에서 온 공작부인들은, 저마다 마치 야회를 여는 사람이 남작이라도 되는 양 그에게 곧장 다가가서는, 한마디 한마디를 다 들을 수 있는 베르뒤랭 부부에게서 채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쪽이 베르뒤랭 아주머니인지 좀 가르쳐 주세요. 정말 내가 그 여자한테 말을 걸어야 할까요? 적어도 내일 신문에 내 이름을 싣지나 말았으면 좋겠네요, 그랬다간 아무도 다신 나한테 말을 안 걸 테니까요. 어머! 저 백발 여자요? 그런데 제법 봐 줄 만하게 생겼네요.” 방에 있지도 않은 뱅퇴유 양의 이야기가 언뜻 나오는 것을 듣고 그들 중 한 사람 이상이 이렇게 말했다. “어머! 그 소나타 작곡가의 딸 말이에요? 어디 좀 보여 주세요.” 그러고는 저마다 자기 친구를 여럿 찾아내어 자기들끼리 무리를 이루고는, 빈정대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단골들이 도착하는 광경을 지켜보았고, 기껏해야 그들은 어떤 여자가 머리를 이상하게 매만진 것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 뿐이었는데, 정작 그 여자는 몇 해 뒤 바로 그 머리 모양을 최상류 사교계에서 유행시킬 사람이었다. 요컨대 그들은 이 집이 자기네가 아는 집들과, 기대했던 만큼 다르지 않다는 데에 아쉬워했으니, 이는 브뤼앙의 카바레에 가면서 그 가수가 자기들을 놀림감으로 삼아 주기를 바랐다가, 막상 도착해 보니 기대했던 다음의 노랫가락 대신 정중한 인사를 받는 사교계 사람들이 느끼는 실망과 같은 것이었다.
Ah! voyez c’te gueule, c’te binette.
Ah! voyez c’te gueule qu’elle a.
샤를뤼스 씨는 발베크에서 내게 보구베르 부인에 대한 예리한 비평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지성을 지녔음에도, 남편이 뜻밖의 영달을 누린 뒤에 도리어 그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끈 여인이었다. 보구베르 씨가 대사로 파견되어 있던 궁정의 군주들, 곧 테오도시우스 왕과 에우독시아 왕비가 파리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오래 머물 참이었으므로 그들을 기리는 축연이 날마다 열렸다. 그 자리에서 왕비는, 지난 십 년 동안 자기 나라 수도에서 보아 온 보구베르 부인과 더없이 다정한 사이였던 데다 공화국 대통령의 부인도 그 각료들의 부인들도 알지 못했으므로, 이 부인들을 소홀히 대하고 오로지 대사 부인하고만 완전히 동떨어져 지냈다. 이 부인은, 보구베르 씨가 테오도시우스 왕과 프랑스 사이의 동맹을 성사시킨 장본인이었으므로 자기 지위가 난공불락이라 믿고서, 왕비가 자신과의 교제를 각별히 여기는 데에서 자랑스러운 만족을 얻었을 뿐 자신을 위협하는 위험에는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그 위험은 몇 달 뒤,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던 부부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잘못 여겼던 것, 곧 보구베르 씨가 관직에서 무참히 파면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샤를뤼스 씨는 “굼벵이” 열차 안에서 자신의 오랜 벗의 몰락을 두고 이야기하며, 영리한 여자가 그런 상황에서 왕과 왕비에게 미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총동원하여, 도리어 자기에게는 아무 영향력도 없어 보이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대통령과 각료들의 부인들에게 예우를 옮겨 베풀게 하지 않았다는 데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 부인들로서는 그런 예우를 한결 우쭐하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다시 말해 그 예우가 보구베르 부부의 지시가 아니라 저절로 우러난 것이라 여겼을 터이므로, 만족한 나머지 오히려 보구베르 부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커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남의 실수를 볼 줄 아는 사람도, 상황에 들뜨기만 하면 스스로 똑같은 실수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샤를뤼스 씨는, 손님들이 마치 그가 집주인이라도 되는 양 그에게 축하하고 감사를 표하려 앞다투어 몰려드는 동안, 그들에게 베르뒤랭 부인에게도 몇 마디 건네 달라고 청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오직 나폴리 왕비만이, 그녀의 자매인 엘리자베트 황후와 알랑송 공작부인의 핏줄에 흐르던 것과 같은 고귀한 피가 여전히 살아 있는 그 왕비만이, 마치 음악이나 샤를뤼스 씨 때문이 아니라 베르뒤랭 부인을 만나는 기쁨을 위해 왔다는 듯 애써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안주인에게 끝없이 고운 말을 건넸으며, 진작부터 얼마나 그녀와 알고 지내고 싶었는지 이야기하기를 그치지 못했고, 집에 대한 감탄을 늘어놓으며 마치 방문 인사라도 온 듯 온갖 화제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조카 엘리자베트를(머지않아 벨기에의 알베르 대공과 결혼하게 될 그 조카를) 데려오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노라고, 그 아이가 무척 아쉬워할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연주자들이 단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이야기를 멈추고, 그들 중 누가 모렐이냐고 물었다. 샤를뤼스 씨가 그 젊은 명연주자를 그토록 영광으로 에워싸이게 하려는 동기에 대해, 그녀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었을 리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고귀하고, 경험과 회의와 긍지가 가장 풍부한 가문 중 하나의 피가 혈관에 흐르는 군주로서의 그 존엄한 지혜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이들, 이를테면 사촌 샤를뤼스(그의 어머니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바이에른의 공작부인’이었다)의 어쩔 수 없는 결점들을 그저 불행으로 여기게 했을 뿐이니, 그 불행은 그들이 그녀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지지를 한결 소중한 것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그 지지를 베푸는 일을 그녀에게 더욱 즐거운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수고를 마다않고 와 준 것에 샤를뤼스 씨가 갑절로 감동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오래전에 스스로 용맹함을 보였던 만큼이나 선량한 이 여걸은, 병사와도 같은 여왕으로서 몸소 가에타의 성벽 위에서 총을 쏘았고 언제나 기사도적으로 약한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던 이 여인은, 베르뒤랭 부인이 홀로 버림받은 듯 있는 것을 보고, 게다가 그녀가 왕비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 나폴리 왕비인 자기로서는 이 야회의 중심이자 자기를 오게 한 자석이 다름 아닌 베르뒤랭 부인인 척하려 애썼다. 그녀는 끝까지 머물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라고 밝혔으니, 그녀는 어디에도 다니지 않는 처지이면서도 다른 야회에 마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떠나야 할 때 결코 자기를 위해 아무런 소란도 피우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여, 베르뒤랭 부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줄도 모르던 예우로부터 그녀를 면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