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잃어버린 나라를 작곡가들은 실제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마다 평생 어떤 식으로든 그 나라에 가락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제 고향의 노래를 부를 때면 미칠 듯이 기뻐하다가도, 이따금 명성에 목말라 그 나라를 저버리며, 그러나 명성을 좇는 그 순간 그 나라에 등을 돌리고, 그 나라를 업신여길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되찾으니, 그가 어떤 주제를 다루든 저 독특한 가락을 뽑아낼 때가 그러하다. 그 가락의 단조로움은(주제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 늘 한결같기에) 그의 영혼을 이루는 요소들이 변함없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사실 아닐까? 우리 각자가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간직할 수밖에 없는 온갖 진정한 잔여물, 벗이 벗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연인이 연인에게조차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그것, 우리 각자가 느낀 바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되면서도 아무 흥밋거리도 못 되는 외적인 지점들에만 자신을 국한해야만 비로소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 말들의 문턱에 어쩔 수 없이 남겨 두고 오는 바, 이 둘 사이에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저 형언할 수 없는 무엇, 이 모든 것을 저 요소들로부터, 예술이, 곧 엘스티르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뱅퇴유의 예술이, 인간 그 자신을 드러내어, 우리가 개별적 인간이라 부르고 예술의 도움 없이는 결코 알 수 없을 저 세계들의 은밀한 짜임새를 스펙트럼의 빛깔들로 바깥에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 무한한 공간을 가로지를 수 있게 해 줄 한 쌍의 날개, 다른 방식의 호흡법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리라. 지금과 같은 감각을 지닌 채 화성이나 금성을 찾아간다면, 그 감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지구의 사물과 똑같은 모습으로 뒤덮어 버릴 테니까. 유일하게 참된 발견의 항해, 유일한 젊음의 샘은 낯선 땅을 찾아가는 데 있지 않고 다른 눈을 지니는 데, 타인의 눈으로, 백 명의 타인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데, 그들 각자가 바라보는, 아니 그들 각자가 곧 그것인 백 개의 우주를 바라보는 데 있으리라. 그리고 이 일을 우리는 엘스티르와 더불어, 뱅퇴유와 더불어 이룰 수 있으니,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정말로 별에서 별로 날아다니는 것이다. 안단테는 내가 온전히 몸을 내맡긴 어떤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악구 위에서 막 끝난 참이었다. 다음 악장에 앞서 짧은 막간이 이어졌고, 그동안 연주자들은 악기를 내려놓았으며 청중은 서로 감상을 주고받았다. 어느 공작은 자기가 뭘 좀 안다는 것을 보이려고 이렇게 단언했다. “이건 잘 연주하기가 어려운 곡이지요.” 좀 더 재미난 다른 이들은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인간의 온갖 외적인 말이 다 그렇듯 나를 그토록 무심하게 내버려 두는 그들의 말이, 방금까지 내가 마음을 쏟던 저 천상의 음악 악구에 비하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참으로 낙원의 취할 듯한 지복(至福)에서 떨어져 나와 더없이 진부한 현실 속으로 가라앉는 천사와도 같았다. 그리고 어떤 생물들이 자연이 버린 어떤 생명 형태의 마지막 남은 증거이듯, 나는 자문해 보았다. 음악이야말로, 만약 언어의 발명과 낱말의 형성과 관념의 분석이 없었더라면 하나의 정신과 다른 정신 사이의 소통 수단이 되었을 법한 것의 유일한 실례가 아닐까 하고. 그것은 아무 결실 없이 끝나 버린 하나의 가능성과도 같다. 인류는 다른 길, 곧 말하고 쓰는 언어의 길을 따라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나 분석되지 않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이 회귀는 어찌나 취하게 하던지, 그 낙원에서 빠져나오자 그럭저럭 총명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내게는 유별나게 하찮게만 여겨졌다. 사람들이라면, 음악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들을 떠올려 음악에 뒤섞을 수 있었다. 아니, 실은 내가 음악에 뒤섞은 것은 오직 한 사람의 기억, 곧 알베르틴의 기억이나 다름없었다. 안단테를 끝맺던 그 악구가 내게는 어찌나 숭고해 보이던지, 나는 혼잣말을 했다. 알베르틴이 이 곡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설령 알았다 한들 우리를 하나로 맺어 주고 그녀가 그 애처로운 목소리를 빌려 온 듯한 이 악구처럼 위대한 무엇에 뒤섞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으리라고. 그러나 음악이 일단 멎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기 없어 보였다. 다과가 돌려졌다. 샤를뤼스 씨는 이따금 하인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나? 내 쪽지는 받았고? 와 줄 수 있겠나?” 이런 말투에는 필경, 듣는 이의 비위를 맞춰 준다고 여기며 스스로 중산층 사내보다 더 서민에 가깝다고 믿는 대귀족의 스스럼없음이 있었다. 또한 자기가 스스로 나서서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그 덕에 결백하게 여겨지리라 상상하는 범죄자의 교활함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빌파리지 부인의 게르망트풍 어조로 덧붙였다. “착실한 젊은이지요, 아주 싹싹한 친구라, 우리 집에서도 자주 부린답니다.” 그러나 그의 능란함은 도리어 남작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으니, 사람들은 그가 하인들과 나누는 은밀한 대화며 편지 왕래를 괴이쩍게 여겼던 것이다. 하인들 자신도 우쭐하다기보다는, 제 동료들 앞에서 오히려 난처해했다. 그러는 사이 7중주곡이 다시 시작되어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소나타의 이런저런 악구가 거듭거듭 되돌아왔으나 늘 달라진 채였으니, 리듬과 화성이 다르고, 같으면서도 다른 무엇이었다. 삶 속에서 온갖 것이 되돌아오듯이. 또 그것들은, 어떤 친연성이 왜 하필 어느 작곡가의 지난 삶을 그것들의 유일하고 필연적인 보금자리로 정해 주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으면서도, 오직 그의 작품에서만 발견되고 그 안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그런 부류의 악구였다. 거기서 그것들은 요정이요, 나무의 정령이요, 집안의 수호신이었다. 나는 처음에 7중주곡에서 소나타를 떠올리게 하는 악구를 두셋 알아보았다. 이윽고, 뱅퇴유의 후기 작품에서 유독 피어오르던 보랏빛 안개에 잠긴 채(그 안개가 어찌나 짙던지 그가 춤곡의 박자를 끌어들일 때조차 그것은 오팔의 심장 속에 갇힌 듯했다), 나는 소나타의 또 다른 악구 소리를 붙잡았는데, 그것은 아직 아득히 멀리 떠돌고 있어 나는 그것을 겨우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머뭇거리며 다가오다가 놀란 듯 사라졌다가, 이내 되돌아와 다른 악구들과 손을 맞잡았으니, 나중에 알게 되었듯 다른 작품들에서 온 그 악구들은 또 다른 악구들을 불러냈고, 그것들은 길이 들자마자 저마다 매혹적이고 설득력 있게 변하여 둥근 원 속에 제자리를 잡았다. 신성하되 청중의 대다수에게는 영영 보이지 않는 원이었으니, 그들은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두꺼운 장막만을 둔 채, 점점 견디기 힘들어져 가는 끝없는 지루함에 감탄의 탄성으로 되는대로 마디를 찍고 있었다. 그러다 그것들은 물러갔고, 다만 하나만은 내가 대여섯 번쯤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았으되 그 이목구비를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나 어루만지는 듯하고, 어찌나(스완의 소나타 속 작은 악절이 그러했듯) 여태 어떤 여인이 내게 불러일으킨 어떤 욕망과도 다르던지, 그토록 감미로운 목소리로 정말 애써 얻을 만한 값어치가 있는 행복을 내게 내밀던 이 악구는, 그 말을 나는 알지 못하면서도 그토록 잘 이해하던 이 보이지 않는 존재는, 어쩌면 내가 여태 만나는 행운을 누린 유일한 이방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이 악구는 소나타 속 작은 악절처럼 부서지고 변형되어, 처음의 그 신비로운 부름이 되었다. 애처로운 종류의 어떤 악구가 그것에 맞서 솟아올랐는데, 어찌나 심오하고 어찌나 아련하며 어찌나 내밀하고, 거의 유기적이고 내장에서 우러나는 듯하던지, 그것이 되풀이될 때마다 그것이 하나의 주제인지 신경통의 발작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내 이 두 동기는 맞붙어 씨름을 벌였으니, 어느 순간에는 하나가 온전히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에는 듣는 이가 다른 하나의 파편만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순전히 에너지들의 씨름 시합이었다. 이 존재들이 서로를 공격했다 해도, 그것은 육체와 겉모습과 이름을 벗어던진 채였으며, 내 안에서 하나의 내면의 관객을 찾아냈으니, 그 관객 역시 그것들의 이름이며 온갖 세부에는 무심한 채 오직 그것들의 비물질적이고 역동적인 싸움에만 관심을 두고 그 소리의 변화를 열정적으로 좇고 있었다. 끝내 기쁨에 찬 동기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이제 텅 빈 하늘을 향해 던지는 거의 불안에 찬 부름이 아니라, 낙원에서 온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으니, 소나타의 기쁨과는, 테오르보를 연주하는 벨리니의 근엄하고 온화한 천사와 나팔을 부는 만테냐의 어떤 대천사가 다른 만큼이나 다른 기쁨이었다. 이 새로운 기쁨의 어조, 이 지상을 넘어선 기쁨을 향한 부름을 내가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것을 언젠가 실현해 낼 수 있을까? 이 물음이 내게는 더더욱 중요해 보였으니, 이 악구야말로, 내 나머지 온 삶과, 눈에 보이는 세계와의 날카로운 대비를 통해, 내가 삶 속에서 아득한 간격을 두고 되찾곤 하던 저 인상들, 곧 참된 삶을 지어 올릴 출발점이자 주춧돌이 되는 인상들을 가장 뚜렷이 특징짓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르탱빌의 종탑들을 보았을 때, 또는 발베크 근처 늘어선 나무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런 인상 말이다. 어쨌든 이 악구의 독특한 어조로 돌아가 보자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지상의 삶이 우리에게 정해 주는 것과 가장 동떨어진 예감, 저 너머 세계의 지복에 가장 대담하게 다가선 그 근접이, 하필이면 콩브레의 성모 성월에 우리가 만나곤 하던 저 우울하고 점잖은 작은 노인 안에서 형상을 얻었다니. 그러나 더욱 기이한 것은, 내가 여태 받은 것 가운데 가장 기이한 이 계시, 곧 알려지지 않은 유형의 기쁨에 대한 계시가 어떻게 그에게서 내게로 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알려진 대로라면 그는 죽으면서 소나타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나머지는 죄다 판독할 수 없는 갈겨쓴 글씨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판독할 수 없었을지언정, 그것들은 그럼에도 끝내 판독되었으니, 인내와 지성과 경의를 다한 끝에, 뱅퇴유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고 그의 관현악 지시를 풀이할 만큼 그와 충분히 오래 함께 지낸 유일한 사람, 곧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에 의해서였다. 그 위대한 작곡가가 살아 있을 적부터 이미 그녀는, 딸이 제 아버지에게 품은 경의를 그 딸에게서 물려받았다. 바로 이 경의 때문에, 사람들이 제 타고난 성향을 거스르는 그런 순간에, 두 처녀는 앞서 이야기한 저 모독 행위에서 광기 어린 쾌락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딸이 제 아버지를 흠모한 것이야말로 그 딸의 신성모독의 으뜸가는 조건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 모독의 쾌락을 단념했어야 마땅했으나, 그 쾌락이 그들 본성의 전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모독 행위는 점점 뜸해지다가 아예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들의 병적인 육체적 관계, 곧 저 어지럽고 이글대는 불길이 순수하고 드높은 우정의 불꽃에 자리를 내준 만큼 그러했다.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는 이따금, 자기가 어쩌면 뱅퇴유의 죽음을 앞당겼을지도 모른다는 집요한 생각에 시달렸다. 어쨌든 그가 남긴 알쏭달쏭한 두루마리를 여러 해 동안 들여다보며 그 판독 불가능한 상형문자의 올바른 읽기를 확정한 끝에,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는, 자기가 슬픔 속에 백발이 되어 무덤으로 떠나보낸 그 작곡가에게 불멸의, 그리고 그 죄를 갚아 주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는 위안을 얻었다. 법률이 신성하게 인정해 주지 않는 관계도, 결혼에서 비롯되는 유대만큼이나 여러 갈래로, 그만큼 복잡하게, 아니 그보다 더 굳건하게 혈연의 유대를 맺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토록 특수한 성질의 관계를 굳이 따져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날마다 이런 것을 목격하지 않는가. 간통이, 진정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일 때는, 가족의 정이며 혈연의 의무를 어지럽히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되살려 낸다는 것을. 간통은, 결혼이라면 흔히 죽은 문자로 내버려 두었을 것에 정신을 불어넣는다. 순전히 관습에 따라 제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을 위해 상복을 입을 마음씨 착한 처녀도, 제 어머니가 온 세상에서 골라 연인으로 삼은 사내를 위해서라면 흘릴 눈물이 모자랄 지경이다. 어쨌든 뱅퇴유 양은 오직 사디즘의 정신에서 그리 행동했을 뿐이니, 그것이 그녀에게 변명이 되지는 못했으나, 훗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게 얼마간 위안이 되었다. 그녀와 그녀의 여자친구가 아버지의 사진을 모독하던 그 순간, 그녀는 분명, 자기들이 하는 짓이 한낱 병적인 짓, 어리석은 짓일 뿐, 자기가 느끼고 싶어 하던 참되고 기쁨에 찬 악의는 아님을 깨달았으리라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것이 한낱 악의를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 생각이 그녀의 쾌락을 망쳐 놓았다. 그러나 이 생각이 훗날 그녀의 마음에 다시 떠올랐다면, 그것이 그녀의 쾌락을 망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그녀의 슬픔을 덜어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녀는 필경 이렇게 혼잣말을 했으리라.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나야말로 여전히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의 용서를 단념하지 않으려는 사람인걸.” 다만, 그녀의 쾌락 속에서는 분명 떠올랐던 이 생각이 그녀의 슬픔 속에서는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마음속에 넣어 줄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리하면 그녀에게 이로운 일을 했으리라고, 그녀와 그녀 아버지의 기억 사이에 정다운 소통의 물길을 다시 트일 수 있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줄도 모르는 어느 천재 화학자가, 어쩌면 영영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을 발견들을 적어 넣는 판독 불가능한 공책에서처럼,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는, 쐐기문자가 촘촘히 박힌, 파피루스 조각보다 더 판독하기 어려운 종이들로부터, 이 알려지지 않은 기쁨의, 영원히 참되고 영원히 풍요로운 공식, 곧 새벽의 진홍빛 천사가 품은 신비로운 희망을 풀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어쩌면 뱅퇴유에게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녀는 내게도 하나의 원인이었고, 바로 오늘 저녁에도 알베르틴을 향한 내 질투를 새삼 되살려 놓으며 또 한 번 그러했으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그토록 숱한 괴로움의 원인이 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보상으로, 내 귀에 저 기이한 부름이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 덕분이었으니, 나는 그 부름을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들으리라. 그것은, 내 온갖 쾌락과 사랑 그 자체에서 내가 발견한 허무 말고도, 필경 예술로써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는, 그리고 내 삶이 내게 그토록 공허해 보일지라도 적어도 아직 탐험하지 못한 영역들이 남아 있다는 약속이자 증거였다.
그녀가 제 노고 덕분에 우리로 하여금 뱅퇴유에 대해 알게 해 준 것은, 실은 뱅퇴유 작품의 전부였다. 이 7중주곡에 견주면, 대중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던 소나타의 어떤 악구들은 어찌나 평범해 보이던지, 그것들이 어떻게 그토록 큰 감탄을 자아낼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런 데 놀란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녁별’이나 ‘엘리자베트의 기도’처럼 하찮은 곡들이, 트리스탄과 라인의 황금과 마이스터징거를 아는 우리에게는 결국 빈약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고 앙코르를 외치느라 기진맥진하는 광적인 숭배자들을 음악회장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데. 우리로서는 이렇게 짐작할밖에 없다. 그 밋밋한 선율들도 그럼에도 이미, 지극히 미미하되 바로 그 때문에 어쩌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량으로,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그러나 바로 그 완벽함 탓에 어쩌면 이해되지 못했을 저 걸작들의 독창성을 얼마간 품고 있었으리라고.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그 걸작들이 들어설 길을 미리 닦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것만은 사실이니, 그것들이 앞으로 올 아름다움에 대한 어렴풋한 예감을 주었다 해도, 그 아름다움 자체는 온전히 어둠 속에 남겨 두었다. 뱅퇴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가 죽으면서 (소나타의 어떤 부분을 빼고는) 자기가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것만을 남겼더라면, 우리가 그에 대해 알았을 바는 그의 참된 위대함에 비추어, 이를테면 빅토르 위고가 ‘장 왕의 창시합’과 ‘팀발 연주자의 약혼녀’와 ‘목욕하는 사라’를 쓴 뒤 『세기의 전설』이나 『정관 시집』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죽었을 경우만큼이나 보잘것없었으리라. 우리에게 그의 참된 작품인 것은 순전히 잠재적인 상태로 남았을 터이니, 우리의 지각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가 결코 어떤 관념도 그려 낼 수 없을 저 우주들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어쨌든 겉으로 드러나는 대비, 곧 천재성(재능도, 심지어 미덕까지도)과, 뱅퇴유의 경우가 그러했듯 그것이 그토록 흔히 담기고 간직되는 악덕의 껍질 사이의 저 깊은 결합은, 음악이 끝났을 때 다시금 그 한복판에 놓인 나 자신을 발견한 손님들의 모임 그 자체에서, 마치 통속적인 우의화에서처럼 읽어 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베르뒤랭 부인의 응접실에 국한되었을망정, 이 모임은 다른 여러 모임과 닮아 있었다. 그 구성 요소를 일반 대중은 알지 못하며, 철학적인 기자들은 그나마 사정에 밝다면 그것을 파리풍이라거나 파나마파라거나 드레퓌스파라 부르되, 그것이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베를린에서도, 마드리드에서도,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똑같이 발견될 수 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다. 만약 실제로 오늘 저녁 베르뒤랭 부인의 집에, 손끝까지 예술가인 데다 교양 있고 세련된 예술부 정무차관과, 여러 공작부인과, 아내를 동반한 세 명의 대사가 참석했다면, 그들이 온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원인은 샤를뤼스 씨와 모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 관계 탓에 남작은 자기가 떠받드는 젊은 우상의 예술적 개가를 되도록 널리 알리고,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얻어 주고 싶어 안달이었던 것이다. 이 모임을 가능케 한 더 먼 원인은, 남작이 샤를리와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뱅퇴유 양과 함께 살던 한 처녀가, 일련의 천재적 작품 전체를 세상에 드러냈다는 데 있었다. 그 작품들은 어찌나 큰 계시였던지, 머지않아 교육부 장관의 후원 아래 뱅퇴유의 동상을 세울 목적으로 모금이 시작될 참이었다. 게다가 이 작품들은, 뱅퇴유 양과 그 여자친구의 관계 못지않게 남작과 샤를리의 관계에서도 도움을 받았으니, 그것은 일종의 교차로요 지름길이어서, 그 덕분에 세상은, 오래도록 이어졌을 몰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여러 해는 계속되었을 완전한 무지라는 예비적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도 이 작품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훈계조 기자의 저속한 머리가 미칠 만한 사건이, 대개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 훈계조 기자들은 프랑스에 무슨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우리가 다시는 그런 야회를 보지 못하리라고, 누구도 다시는 입센이나 르낭이나 도스토옙스키나 단눈치오나 톨스토이나 바그너나 슈트라우스를 흠모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훈계조 기자들은 이런 공식적인 행사의 애매한 저류에서 논거를 끌어와, 거기서 기리는 예술 속에서 무언가 퇴폐적인 것을 찾아내려 하는데, 정작 그 예술은 흔히 다른 어떤 예술보다 더 준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훈계조 기자들이 가장 떠받드는 이름들 가운데, 이와 같은 어떤 기이한 모임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낳지 않은 이름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 기이함이 덜 노골적이고 더 잘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다. 이 모임의 경우, 거기에 결부된 불순한 요소들은 내게 또 다른 측면에서 다가왔다. 물론 나는 그 요소들을 따로따로 알게 된 터라 누구 못지않게 그것들을 갈라놓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 가운데 몇몇, 곧 뱅퇴유 양과 그 여자친구에 관한 요소들은, 내게 콩브레를 이야기하면서 알베르틴을, 다시 말해 발베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오래전 내가 몽주뱅에서 뱅퇴유 양을 보았고 그 여자친구가 알베르틴과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된 까닭에, 이따가 집에 돌아가면 고독 대신 나를 기다리는 알베르틴을 발견하게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요소들, 곧 모렐과 샤를뤼스 씨에 관한 요소들은, 내가 동시에르의 승강장에서 그들의 친밀함이 싹트는 것을 본 발베크를 내게 이야기하면서, 콩브레와 그 두 ‘쪽’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샤를뤼스 씨야말로, 콩브레에 거처 하나 두지 않으면서도 콩브레에 사는,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스테인드글라스 창 속 ‘악인 질베르’와도 같은 저 게르망트가, 곧 콩브레 백작가의 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모렐로 말하자면, 결국 그는 내게 ‘분홍빛 옷을 입은 여인’을 알게 해 주었고, 여러 해 뒤 그 여인을 스완 부인과 동일 인물로 알아보게 해 준 저 늙은 시종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