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는 너무 앞질러 내다보았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중간에 멈춰 둔 베르뒤랭가의 야회가 끝난 뒤에야 벌어졌으니, 이제 우리가 멈춘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저는 도무지 의심조차 못 했습니다.” 모렐이 베르뒤랭 부인에게 대답하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당연히 사람들이야 당신 면전에 대고 말하지 않지요, 그렇다고 당신이 음악원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베르뒤랭 부인은 심술궂게 말을 이으며, 비난받는 것이 샤를뤼스 씨만이 아니라 모렐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에게 분명히 알려 주려 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나도 얼마든지 믿어요,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아주 거리낌 없이 말하지요. 요전에 슈비야르 음악회에서, 당신이 내 특별석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 코앞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지 스키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손가락질한단 말이에요. 나로 말하자면 조금도 개의치 않지만, 내가 느끼는 건 그런 게 사내를 더없이 우스운 꼴로 만들고, 평생토록 뭇사람의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는 거예요.”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샤를리는, 우리가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방금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준 치과 의사에게, 혹은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두고 “그런 말을 참고 넘길 수야 없지” 하며 기어이 우리를 결투로 몰아넣은, 지나치게 피에 굶주린 결투 입회인에게 쓰는 그런 어조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기개가 넘치는 사람, 사내다운 사내예요.” 베르뒤랭 부인이 대답했다.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비록 그자는 당신이 감히 그러지 못할 거라고, 당신을 제 손아귀에 단단히 쥐고 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떠벌리고 다니지만 말이에요.” 제 너덜너덜해진 위엄을 가릴 빌려 온 위엄을 찾던 샤를리는, 언젠가 읽었거나 아니면 십중팔구 누가 인용하는 걸 들었던 한마디를 기억 속에서 떠올려 대뜸 선언했다. “저는 그따위 빵을 먹도록 자라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 당장 샤를뤼스 씨와 절교하겠습니다. 나폴리 왕비는 떠나셨지요, 그렇죠? 안 그랬다면, 절교하기 전에 그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그와 아주 절교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작은 핵심이 깨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여기, 당신이 인정받고 아무도 당신을 험담하지 않는 우리 작은 모임 안에서 그를 만나는 거야 나쁠 게 없지요. 다만 당신의 자유만은 굽히지 말고, 면전에서만 다정한 척하는 그 양 떼 사이로 그가 당신을 끌고 다니게 두지 말아요. 당신 등 뒤에서 그들이 뭐라고 하던지 당신이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당신은 조금도 아쉬워할 게 없어요, 평생 당신에게 남았을 오점을 지우는 것만도 아니에요.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설령 샤를뤼스의 그 망신스러운 소개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런 사이비 사교계에서 이렇게 자신을 허비하다가는 사람들이 당신을 진지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고, 응접실이나 전전하는 하찮은 연주자라는 아마추어 딱지를 붙이게 될 거예요, 서슴없이 말하지만 그건 당신 나이에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요. 그 잘난 부인네들이야 당신을 불러다 거저 연주시키는 것으로 제 친구들에게 받은 대접을 되갚을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노릇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셈을 치르는 건 예술가로서 당신의 앞날이라고요. 그런 데 한두 군데쯤 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당신이 나폴리 왕비 이야기를 했지요, 다른 야회에 또 가 봐야 해서 떠나셨지만, 그분이야말로 훌륭한 여인이에요. 서슴없이 말하는데, 내 생각에 그분은 샤를뤼스를 대수롭잖게 보시고, 여기 오신 것도 주로 나를 봐서예요. 그래요, 그래, 그분이 우리를, 그러니까 베르뒤랭 씨와 나를 몹시 만나고 싶어 했다는 걸 나는 알아요. 그런 댁이야말로 당신이 연주할 만한 곳이지요. 그리고 이 말도 해 두는데,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는 거라면, 그야 예술가들이 다들 나를 알거든요, 아시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내게 더없이 살가웠고, 나를 거의 저희 동류로, 저희 마님으로 여긴답니다, 그러니 그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뒤라스 부인 곁에는 절대 가선 안 돼요! 그런 어리석은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요! 여기 와서 그 여자 이야기를 죄다 내게 들려준 예술가를 나는 여럿 알아요. 그들은 나를 믿어도 된다는 걸 알거든요.” 그녀는 순식간에 지어 보일 줄 아는 그 상냥하고 꾸밈없는 어조로, 얼굴에는 알맞은 겸손의 기색을, 두 눈에는 알맞은 매력을 실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여기로 찾아와 제 사소한 근심거리를 죄다 털어놓지요. 세상에서 가장 말수가 적다는 이들도 때로는 몇 시간이고 내내 내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들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가엾은 샤브리에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입을 열게 하는 데는 베르뒤랭 부인만 한 사람이 없지.’ 자, 그러니 아시겠어요, 그들 하나하나가,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뒤라스 부인 댁에 연주하러 갔다가 눈물을 흘리는 걸 나는 보았어요. 그 여자가 하인들을 시켜 그들을 모욕하는 걸 즐긴다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그들은 다시는 어디서도 연주 자리를 얻지 못하게 되지요. 흥행주들은 이렇게들 말하거든요. ‘아, 그래, 뒤라스 부인 댁에서 연주하는 그 친구 말이지.’ 그 한마디로 끝장이에요. 사내의 앞날을 망치는 데 그만한 게 없지요. 사교계 사람들이 어떤지 당신도 알잖아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단 말이에요, 세상 모든 재능을 다 가졌다 해도 소용없어요, 이런 말 하기가 참 끔찍하지만, 뒤라스 부인 하나면 당신에게 아마추어라는 평판을 씌우기에 충분하답니다. 그리고 예술가들 사이에서라면, 아시겠지만, 글쎄 내가, 내가 그들을 아는지 어떤지야 당신 스스로 물어보면 돼요, 사십 년을 그들 틈에서 지내며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그들에게 마음을 써 왔으니까요. 자, 그러니 그들이 누구를 두고 아마추어라 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그 말을 하기 시작했더랬어요. 정말이지 때로는 내가 나서서, 당신이 그런 얼토당토않은 응접실에서는 연주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에게 장담해 줘야 했다니까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뭔지 아세요? ‘하지만 저 친구는 억지로라도 가게 될걸, 샤를뤼스는 저 친구한테 의논조차 안 하고, 의견을 물어보는 법이 없으니까.’ 누군가는 그에게 칭찬이랍시고 이렇게 말했대요. ‘우리는 당신 친구 모렐을 무척 흠모합니다.’ 그런데 그가, 당신도 아는 그 오만한 낯빛으로 뭐라고 대꾸했는지 짐작이 가세요? ‘아니, 그를 내 친구라 부르다니 무슨 소리요, 우리는 같은 계급이 아니오, 차라리 그는 내 피조물, 내 비호를 받는 자라고 하시오.’” 바로 이 순간, 음악의 여신의 불룩한 이마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제 안에만 담아 두지 못하는 그 한 가지가 꿈틀거렸으니, 그것은 옮겨 되뇌기가 비루할 뿐 아니라 경솔하기까지 한 어떤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되뇌고픈 욕구는 명예보다도, 신중함보다도 강한 법이다. 둥그렇고 서글픈 두 눈썹을 몇 번 경련하듯 씰룩인 끝에, 마님은 바로 그 욕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실은 누군가 내 남편한테 그러던데, 그자가 ‘내 하인’이라고까지 말했다지 뭐예요, 하지만 그 말만은 내가 장담은 못 하겠어요.” 그녀가 덧붙였다. 샤를뤼스 씨로 하여금, 모렐에게 그의 출생 내력은 아무도 결코 알지 못하리라 맹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뒤랭 부인에게 “그자의 아비는 하인배였소”라고 말하게 한 것도 바로 그와 비슷한 욕구였다. 그리고 이야기가 일단 시작된 이상, 그 비슷한 욕구는 다시 그것을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퍼뜨릴 터였으니, 저마다 비밀을 지키겠다는 다짐 아래 그것을 털어놓겠지만, 그 다짐은 이야기를 전한 자와 마찬가지로 듣는 자 또한 지키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골무 찾기라는 놀이에서처럼 결국 그 출처가 베르뒤랭 부인에게로 거슬러 밝혀지고 말 터였고, 마침내 진상을 알게 된 당사자의 노여움을 그녀에게 불러들일 것이었다. 그녀도 이를 알았으나, 혀를 태우는 그 말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쨌든 ‘하인’이라는 말은 모렐의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하인’이라고 말했고, 그 말만은 장담 못 하겠다고 덧붙인 것은, 그 미심쩍다는 기색 덕분에 나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는 듯 보이는 동시에 제 공정함을 내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내보인 이 공정함을 스스로도 어찌나 감동스럽게 여겼던지, 그녀는 샤를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시겠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그가 당신을 제 심연 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자신이 그 속에서 뒹굴고 있으니까요, 그 자신이 그 속에서 뒹굴고 있으니까.” 그녀는 한결 높은 목소리로 되뇌었으니, 어찌나 빨리 떠올랐는지 이제야 그녀의 주의가 겨우 따라잡아 부각시키려 애쓰던 그 비유의 적절함에 스스로 감탄한 까닭이었다. “아니에요, 내가 정말로 그에게서 흠으로 여기는 건,” 그녀는 제 성공에 도취한 여자처럼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에 대한 세심함의 결여예요. 세상에는 남들 앞에서 입에 올리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요. 글쎄, 오늘 저녁 그자는 당신을 기쁨으로 얼굴 붉히게 만들겠다며, 당신이 레지옹 도뇌르 십자 훈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해 주겠노라 내기를 걸었다지 뭐예요(물론 다 터무니없는 소리지요, 그자의 추천이야말로 당신이 그걸 받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할 테니까요). 그것쯤이야 나도 눈감아 줄 수 있어요, 남이 제 친구들을 우롱하는 걸 듣는 게 여태 그리 달갑진 않았지만요.” 그녀는 섬세하고 기품 있는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시겠어요, 아무래도 참기 힘든 자잘한 일들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요. 이를테면 그자가 자지러지게 웃어 대며 우리에게, 당신이 그 훈장을 바라는 건 당신 삼촌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거고 그 삼촌이 하인이었다고 말했을 때처럼요.” “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샤를리는 이 교묘하게 끼워 넣은 인용에 힘입어, 베르뒤랭 부인이 한 말 전부를 진실로 믿고서 외쳤다! 베르뒤랭 부인은, 제 젊은 애인이 막 자기를 버리려는 찰나에 용케 그의 혼사를 깨뜨린 늙은 정부의 그런 기쁨에 젖어 들었으니, 어쩌면 그녀는 제 거짓말을 미리 헤아려 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스스로 의식하며 거짓말을 한 것조차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일종의 감상적 논리가, 어쩌면 그보다 더 원초적인 무엇이, 제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제 행복을 지키려 작은 패거리 안에 분란을 일으키라고 그녀를 부추기던 일종의 신경 반사가, 그 진위를 따져 볼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엄밀히 정확하지는 않을지언정 악마처럼 잘 먹혀드는 이 단언들을 충동적으로 그녀의 입가에 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자가 그저 우리한테만 그 말을 되뇌었다면야 대수롭지 않았을 거예요.” 마님이 말을 이었다. “우리야 그자가 하는 말에 곧이곧대로 귀 기울일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사람의 출신이 무슨 대수예요, 당신에겐 당신 나름의 값어치가 있고, 사람은 제가 만들어 가는 대로의 존재인걸요. 하지만 그자가 그걸 써먹어 포르트팽 부인을 웃겼다는 것,” (베르뒤랭 부인이 이 부인을 일부러 이름까지 대며 언급한 것은 샤를리가 그녀를 흠모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우리로선 분한 거예요. 내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내게 이러더군요. ‘차라리 그자가 내 뺨을 후려쳤더라면 나았겠소.’ 그이도 나만큼이나 당신을 아끼거든요, 아시겠어요, 우리 귀스타브 말이에요.” (이로써 우리는 베르뒤랭 씨의 이름이 귀스타브임을 알게 된다.) “그이는 정말이지 무척 여린 사람이랍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한테 저 친구를 아낀다고 말한 적 없소.” 베르뒤랭 씨가 마음씨 좋은 무뚝뚝한 노인네 흉내를 내며 중얼거렸다. “저 친구를 아끼는 건 샤를뤼스지.” “오, 아닙니다! 이제야 그 차이를 알겠어요, 저는 파렴치한에게 배신당했고, 두 분은, 두 분은 선량하십니다.” 샤를리가 진심을 다해 외쳤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베르뒤랭 부인은, 제 수요회가 무사하다고 느껴 승리를 지키려 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남용하지는 않으려 애쓰며 나직이 말했다. “파렴치한이라는 말은 너무 심해요, 그자는 해를 끼치긴 하지요, 그것도 아주 큰 해를, 자기도 모르게 말이에요. 알잖아요, 그 레지옹 도뇌르 이야기야 한순간의 일이었어요. 그리고 그자가 당신 집안에 대해 지껄인 걸 죄다 옮기는 건 내겐 괴로운 일이에요.” 베르뒤랭 부인은 이렇게 말했으나, 정작 그렇게 해 달라는 청을 받았더라면 몹시 난처했을 것이다. “오, 설령 그게 한순간의 일이었다 해도, 그건 그자가 배신자라는 증거예요.” 모렐이 외쳤다. 우리가 응접실로 되돌아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아!” 샤를뤼스 씨는 모렐이 방 안에 있는 것을 보자 소리치며 그에게로 다가갔는데, 그 다가서는 몸짓이란 한 여인과의 밀회를 노려 저녁 내내의 흥겨운 자리를 능란하게 꾸며 놓고서는, 들뜬 나머지 제 손으로 덫을 놓았음을, 이제 곧 그 덫에 걸려 그 여인의 남편이 미리 세워 둔 불한당들에게 뭇사람 앞에서 흠씬 두들겨 맞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짐작 못 하는 사내의 그 재빠름 그대로였다. “자, 그러고 보니 마침맞은 때로군, 만족스러운가, 젊은 영광이여, 그리고 머지않아 레지옹 도뇌르의 젊은 기사가 될 사람이여? 아주 곧 자네도 그 십자 훈장을 달 수 있을 테니.” 샤를뤼스 씨는 다정하고 의기양양한 낯빛으로 모렐에게 말했으나, 바로 그 훈장을 입에 올림으로써 베르뒤랭 부인의 거짓말을 뒷받침해 준 셈이었고, 모렐에게는 그것이 반박할 여지 없는 진실로 비쳤다. “날 좀 내버려 둬요, 내게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요.” 모렐이 남작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말인지 잘 알잖아요, 좋아요, 당신이 타락시키려 든 젊은이가 내가 처음도 아니고!” 나의 유일한 위안은 이제 곧 모렐과 베르뒤랭 부부가 샤를뤼스 씨에게 가루가 되도록 짓뭉개지는 꼴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에 있었다. 이보다 천 배는 가벼운 잘못에도 나는 그의 광포한 노여움을 뒤집어쓴 적이 있었으니, 그 앞에서 안전한 이는 아무도 없었고, 왕이라 한들 그를 주눅 들게 하지 못했으리라.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샤를뤼스 씨가 벙어리가 된 듯, 얼이 빠진 듯, 제 비참함의 깊이를 가늠하면서도 그 까닭은 헤아리지 못한 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눈을 들어 좌중을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노려보는 것을 보았으니, 그 캐묻는 듯, 분개한 듯, 애원하는 듯한 낯빛은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기보다 자기가 어떤 대꾸를 해야 하느냐고 그들에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샤를뤼스 씨는, 오래도록 누군가를 향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에 사로잡히면, 웅변뿐 아니라 대담함의 온갖 밑천을 지닌 사람이어서, 누구도 그렇게까지 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 채 아연실색한 좌중 앞에서, 더없이 무엄한 언사로 상대를 절망의 구렁으로 몰아넣곤 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샤를뤼스 씨는 활활 타올랐고, 일종의 간질 발작 같은 것에 경련하듯 몸을 떨었으며, 그 서슬에 온 좌중이 벌벌 떨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그는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니, 그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엇이든 내뱉었다(마치 블로크가 유대인을 조롱할 수는 있으면서도 제 앞에서 누가 ‘유대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얼굴을 붉히던 것과 꼭 같이). 어쩌면 그를 말문 막히게 한 것은, 베르뒤랭 씨와 부인이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아무도 그를 구하러 나서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순간의 고뇌,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앞으로 닥칠 더 큰 고뇌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리 상상 속에서 성을 내어 제 벼락을 벼려 두지 못한 탓에, 무기처럼 손에 분노를 쥐고 있지 못한 탓에, 무방비 상태인 바로 그 순간에 붙들려 치명타를 얻어맞은 것인지도 모른다(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히스테릭한 그의 격정은 진짜였으나 그의 용기는 가짜였으니, 참으로 내가 늘 생각해 온 바요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인데, 그의 악의 또한 가짜였다. 그가 미워한 사람들을 미워한 것은 그들이 자기를 깔본다고 여겼기 때문이라, 만약 그들이 그에게 정중하게 굴었더라면 그는 그들에게 벌컥 화를 내기는커녕 그들을 제 품에 끌어안았을 것이며, 모욕당한 명예로운 사내라면 으레 보일 법한 반응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자기 세계가 아닌 영역에 있었던 탓에, 포부르에서였다면 그러했을 것보다 스스로 덜 편안하고 덜 용감하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자기가 경멸하던 이 응접실에서, 이 위대한 귀족이(중간 계급에 대한 그의 우월감은 혁명재판소의 피고석에 섰던 그 어느 조상에게 못지않게 본질적으로 그의 몸에 배어 있던 것이었다) 혀를 포함한 온몸이 마비된 채, 자기에게 가해진 폭거에 분개하여, 캐묻는 듯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애원하는 듯한 공포의 눈길을 사방으로 던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잔인하게 뜻밖인 상황에서, 이 대단한 달변가는 그저 “이게 다 무슨 소린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하고 더듬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의 물음은 아예 귀에 담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황의 공포가 빚어내는 그 영원한 무언극은 어찌나 변함이 없는지, 파리의 어느 응접실에서 방금 불쾌한 사달을 겪은 이 나이 지긋한 신사는, 아득한 옛날의 그리스 조각가들이 대신(大神) 판에게 쫓기는 요정들의 공포를 형상화할 때 취하게 한 그 갖가지 정형화된 자세를 저도 모르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소환당한 대사, 느닷없이 퇴직자 명단에 오른 차관, 사람들이 슬슬 따돌리기 시작한 사교계의 한량, 문전박대당한 연인, 이들은 이따금 몇 달이고 내내 제 희망을 산산조각 낸 그 사건을 곱씹는다. 그들은 그것을, 어디서 누구 손에 발사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자기에게 날아든 발사체처럼, 거의 운석이라도 되는 양 이리저리 뒤집어 본다. 그들은 제 머리 위로 터진 이 기묘한 장치를 이루는 성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고, 그 속에서 어떤 적의를 읽어 낼 수 있을지 알아내고 싶어 한다. 화학자에게는 적어도 분석하는 힘이 있고, 제 병의 근원을 모르는 채 앓는 환자는 의사를 부를 수 있으며, 범죄의 수수께끼는 예심판사가 그럭저럭 풀어낸다. 그러나 우리 이웃들의 당혹스러운 행동에 이르면, 우리는 좀처럼 그 동기를 알아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샤를뤼스 씨는, 곧 다시 돌아가게 될 이 야회 뒤에 이어진 나날을 미리 앞당겨 말하자면, 샤를리의 태도에서 오직 한 가지 자명한 것만을 볼 수 있었다. 자기가 남작에게 불러일으킨 그 열정을 사람들에게 폭로하겠노라고 곧잘 남작을 위협하던 샤를리가, 이제 제 힘만으로 날아오를 만큼 충분히 ‘출세했다’고 여긴 순간에 그리할 기회를 잡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순전한 배은망덕에서 베르뒤랭 부인에게 죄다 일러바쳤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쩌다 그렇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단 말인가(왜냐하면 남작은 그 이야기를 부인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자기가 비난받는 그 감정이란 지어낸 것이라고 이미 스스로를 설득해 둔 참이었으니)? 어쩌면 저희들 스스로 샤를리에게 열정을 품고 있었을 베르뒤랭 부인의 친구들 몇몇이 미리 판을 깔아 놓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샤를뤼스 씨는 그 뒤 며칠 동안 단골들 여럿에게 무시무시한 편지를 써 보냈는데, 아무 죄도 없던 그들은 그가 필시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그는 길고도 애절한 사연을 들고 베르뒤랭 부인을 찾아갔으나, 그것은 그가 바라던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선 베르뒤랭 부인은 남작에게 이렇게 되뇌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할 일이라곤 그자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경멸로 대하는 것뿐이에요, 그자는 한낱 애송이인걸요.” 그런데 남작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화해뿐이었다. 다음으로, 그 화해를 이루려고, 샤를리가 제 것으로 확신하던 모든 것을 그에게서 앗아 버리고자, 그는 베르뒤랭 부인에게 다시는 그를 초대하지 말아 달라고 청했는데, 그녀가 그 청을 거절로 맞받자 그 일로 샤를뤼스 씨에게서 노엽고 빈정대는 편지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이 짐작에서 저 짐작으로 팔랑팔랑 옮겨 다니면서도, 남작은 끝내 진실에, 곧 그 일격이 모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 이르지 못했다. 물론 그는 모렐에게 몇 분만 이야기하자고 청했더라면 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면 제 위엄이 상하고 제 사랑의 이해에도 어긋나리라 느꼈다. 그는 모욕을 당했으니, 해명을 기다렸다. 하기야 오해를 풀어 줄지도 모를 대화라는 생각에는, 거의 예외 없이, 그 까닭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 대화에 응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또 다른 생각이 늘 달라붙어 있는 법이다. 스무 번이나 제 몸을 낮추고 제 약함을 드러낸 사내가, 정작 스물한 번째에 이르러서는 오만의 증거를 내보이니, 그때야말로 고집스럽고 거만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 반박이 없으면 상대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말 오해를 씻어 없애는 편이 그에게 이로웠을 유일한 경우인데도 말이다. 이 사건의 사교적 측면으로 말하자면, 샤를뤼스 씨가 젊은 음악가를 겁탈하려던 순간에 베르뒤랭가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온 사방에 퍼졌다. 이 소문이 미친 결과, 샤를뤼스 씨가 다시는 베르뒤랭가에 나타나지 않아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그가 어쩌다 다른 어딘가에서 자기가 의심하고 모욕했던 단골 가운데 하나와 마주칠 때면, 그 사람은 남작에게 앙심을 품고 있고 남작 또한 그에게 인사하기를 삼갔던 터라, 사람들은 작은 패거리의 그 누구도 두 번 다시 남작과는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놀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