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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알베르틴의 도주 ③

5권 제2부 · 제3장: 알베르틴의 도주

알베르틴이 어쩌면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정해진 시간에 혼자 나갈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 하룻밤쯤 밖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요컨대 그런 종류의 어떤 요구, 나는 그것을 뚜렷이 규정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불안케 하던 그 요구를 할까 하는 두려움이, 베르뒤랭 댁 모임 직전과 그동안 잠시 내 마음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사라졌고, 게다가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끊임없이 다짐하던 기억에 의해 부정되었다. 나를 떠나려는 뜻이, 만약 알베르틴 안에 있었다 해도, 그것은 오직 어렴풋한 방식으로만, 어떤 서글픈 눈길이나 어떤 조바심 어린 몸짓, 그리고 겉으로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지만 뜯어보면(뜯어볼 것도 없었으니, 우리는 정념의 언어를 즉시 알아채고, 하층민조차도 오직 허영이나 원한, 질투로만 설명되는, 마침 입 밖에 내지 않았으되 데카르트가 말한 “양식”처럼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직관의 능력으로 듣는 이에게 곧바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말들을 이해한다), 그녀가 감추고 있으며 나와 떨어져 다른 삶을 꾸릴 계획으로 이끌지도 모를 어떤 감정이 그녀 안에 있음을 드러내는, 그런 말들로만 나타났다. 이 뜻이 그녀의 말 속에서 논리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밤 내가 느낀 이 뜻의 예감 또한 내 안에서 그만큼 어렴풋한 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알베르틴이 내게 한 모든 말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가설에 따라 계속 살아갔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기 내 안에서는, 내가 생각하기를 거부하던 정반대의 가설이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베르뒤랭 댁에 다녀왔다고 알베르틴에게 말하는 데 아무 망설임도 느끼지 않았을 테고, 실제로 그녀의 분노에 내가 놀라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을 테니, 이는 더욱 그럴법하다. 그러니 아마도 내 안에는, 내 이성이 그려 낸 알베르틴, 또 그녀 자신의 말이 그려 낸 알베르틴과는 정반대인 알베르틴의 관념이 자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이 알베르틴이 온전히 지어낸 것만은 아니었으니, 그녀는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충동들, 이를테면 내가 베르뒤랭 댁에 다녀온 것에 대한 언짢음 같은 것을 미리 비추는 예언의 거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내가 알베르틴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던 잦은 번민, 그 모든 것이 또 다른 가설과 맞아떨어졌는데, 그 가설은 그 밖에도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고, 또 이런 점도 덧붙일 수 있으니, 곧 첫째 가설을 받아들이면 둘째 가설이 더 그럴법해진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베르틴을 향한 넘치는 다정함에 나를 내맡기면, 그녀에게서 얻는 것이라고는 짜증뿐이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녀는 그 짜증에 다른 원인을 갖다 붙였다).

이 가설로, 곧 내가 느끼던 것과 정반대되는 것을 표현하는 그 변함없는 응수의 체계로 내 감정을 분석해 보면, 나는 이렇게 확신할 수 있다. 만약 오늘 밤 내가 그녀를 내보내겠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아주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자기 자유를 바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나를 떨게 한 그 자유가 무엇이었는지 말하기는 난감했겠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그녀가 나를 속일 수 있었을, 아니 적어도 그녀가 나를 속이지 않는다고 내가 더는 확신할 수 없었을 어떤 자유의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발베크에서 그녀가 나를 좋게 봐 주기를 바라던 때, 그리고 나중에 그녀가 나에게 싫증 낼 겨를이 없기를 바라던 때 이미 그랬듯이, 자존심에서, 또 꾀에서, 그런 것을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었다. 요컨대, 이 둘째 가설에 대해 제기될 법한 반론, 곧 내가 정식으로 세우지는 않았던 반론, 즉 알베르틴이 내게 한 모든 말은 오히려 그녀가 더 좋아하는 삶이 내 집에서의 삶, 쉬고, 읽고, 홀로 있고, 사포적 사랑을 혐오하는 따위의 삶임을 가리킨다는 반론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알베르틴이 자기 나름대로 내가 한 말에서 내 감정을 헤아리려 했다면, 그녀는 진실과 정반대되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까. 나는 그녀 없이는 지낼 수 없을 때에만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고, 발베크에서는 질투가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을 되살린 그 두 번, 다른 여자를, 처음에는 앙드레를, 다음에는 알 수 없는 낯선 여인을 사랑한다고 그녀에게 고백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내 말은 내 감정을 조금도 비추지 않았다. 독자가 이 감정을 어렴풋이밖에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화자로서 내 말을 되풀이하는 동시에 내 감정을 그에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전자를 감추고 그가 후자만을 알았다면, 내 말과 그토록 어긋나는 내 행동이 그에게 이상한 감정의 급변이라는 인상을 하도 자주 주어, 그는 나를 거의 미친 사람으로 여겼으리라. 하기야 그런 방식이 내가 택한 방식보다 훨씬 더 그릇된 것은 아니겠지만. 나를 행동으로 이끈 심상들은, 내 말 속에 그려진 것들과 그토록 반대되는데, 그 순간에는 몹시 어렴풋했으니, 나는 내 행동을 이끄는 그 본성을 어렴풋이밖에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 주관적 진실을 또렷이 알고 있다. 그 객관적 진실에 관해서는, 곧 그 본성의 성향이 내 이성보다 알베르틴의 참된 의도를 더 정확히 붙들었는지, 내가 그 본성을 믿은 것이 옳았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것이 알베르틴의 의도를 또렷이 드러내기는커녕 왜곡한 것은 아닌지에 관해서는, 나로선 말하기 어렵다. 알베르틴이 나를 떠날지 모른다고 베르뒤랭 댁에서 느꼈던 그 어렴풋한 두려움은 곧바로 사라졌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집 안에서 갇힌 여자를 발견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갇힌 몸이라는 느낌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사라졌던 그 두려움은, 내가 베르뒤랭 댁에 다녀왔다고 알베르틴에게 알리던 순간, 그녀의 얼굴이 알 수 없는 언짢음의 빛으로 뒤덮이는 것을, 게다가 그것이 처음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보았을 때, 한층 더 격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것이, 이치를 따진 불평들의, 그 불평을 품되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또렷한 관념들의, 살로 굳어진 결정(結晶)일 뿐임을, 눈에 보이게 되었으되 그렇다고 이치에 닿는 것은 아닌 어떤 종합임을, 그 귀한 잔여물을 연인의 얼굴에서 거두는 사내가, 그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려고, 이번에는 제 나름대로 분석을 통해 그 지적 요소들로 환원하려 애쓰는 어떤 종합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알베르틴의 생각이 내게 던지는 그 미지수의 어림 방정식은 내게 대략 이런 답을 내주었다. “그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았어, 그가 그걸 확인하려 들 게 뻔했지, 그래서 내가 그걸 막지 못하도록 그가 몰래 제 잔꾀를 부린 거야.” 그러나 만약 이것이 알베르틴이 살아가던 마음 상태였다면(그리고 그녀는 이를 내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몸서리치며 바라보고, 이대로 견딜 힘이 다하고, 언제라도 그런 삶을 끝내기로 마음먹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삶 속에서 그녀는, 적어도 욕망에서만큼은 죄가 있다면, 스스로 훤히 드러나고, 쫓기고, 결코 제 본능에 몸을 내맡기지 못하도록 가로막힌 채, 그러면서도 내 질투는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며, 만약 뜻으로나 행실로나 결백했다면, 얼마 전부터 낙담할 온갖 이유가 있었을 테니, 발베크에서, 앙드레와 단둘이 남겨질 위험을 피하려 그토록 끈질기게 애쓰던 때부터, 베르뒤랭 댁에 가지 않고 트로카데로에 머물지 않기로 응한 바로 오늘까지,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신뢰를 되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나로서는 그녀의 처신이 나무랄 데 없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발베크에서는, 누가 몸가짐이 좋지 못한 처녀들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는 곧잘 그들의 웃음과 몸놀림, 온갖 태도를 흉내 내곤 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여자친구들에게 무엇을 뜻할지 내가 짐작하는 바 때문에 내게는 고문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알게 된 그녀는, 누가 그런 종류의 일을 넌지시 비치기만 해도, 말로만이 아니라 얼굴 표정으로도, 대화에 끼어들기를 그쳤다. 어떤 여자에 대해 떠도는 험담에 제 몫을 보태지 않으려는 것이었든, 아니면 아주 다른 이유에서였든, 그때 그 지극히 움직임 많은 얼굴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그 화제가 나오는 순간부터 그 얼굴이, 조금 전과 똑같은 표정을 그대로 지킨 채, 무심함을 드러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가벼운 표정 하나의 이 미동 없음은 침묵만큼이나 무거웠다. 그녀가 이런 일들을 나무라는지, 편드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말하기란 불가능했으리라. 그녀의 이목구비 어느 하나도 다른 이목구비 말고는 아무것과도 관계 맺지 않았다. 그녀의 코, 입, 눈은 다른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는 파스텔화처럼 보였고, 방금 오간 말을, 마치 라투르의 초상화 앞에서 오간 말이기라도 한 듯, 그 이상으로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마부에게 브리쇼의 주소를 일러 주다가 그녀 방 창의 불빛을 언뜻 보았을 때 이미 의식했던 나의 예속은, 조금 뒤 알베르틴이 제 예속을 그토록 뼈아프게 의식하고 있음을 보았을 때, 내 어깨를 짓누르기를 그쳤다. 그리고 그 예속이 그녀에게 덜 무겁게 여겨지도록, 그녀가 스스로 제 사슬을 끊기로 마음먹지 않도록, 나는 그 예속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인상, 그리고 나 자신도 그 끝을 고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그녀에게 심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책이라고 느꼈다. 내 시늉이 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나는 스스로를 다행이라 여길 만도 했다. 우선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것, 곧 (내 짐작으로는) 나를 떠나겠다는 알베르틴의 결심이 실은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내가 애초에 노렸던 목적과는 별개로, 내 시늉이 성공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가 알베르틴에게 한낱 멸시받는 연인, 곧 그 질투가 조롱당하고 온갖 술책이 미리 간파당하는 연인 이상의 무엇임을 증명함으로써, 우리 사랑에 일종의 순결함을 새로이 부여했고, 발베크에서 그녀가 아직도 내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그토록 쉽게 믿을 수 있던 그 나날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 더는 그것을 믿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와 지금 영원히 헤어지겠다는 내 거짓 결심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 이별의 원인이 베르뒤랭 댁에서 일어난 무슨 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듯했다. 내가 결별을 가장하느라 빠져든 불안을 달랠 필요를 느껴,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알베르틴, 넌 나한테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다고 맹세할 수 있어?” 그녀는 대답에 앞서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응, 그러니까, 아니. 앙드레가 블로크한테 홀딱 반했다고 너한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우린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없거든.” “그럼 왜 그런 말을 했어?” “네가 그 애에 대해 다른 이야기들을 믿었을까 봐 겁이 나서, 그게 다야.” 나는 라셸과 아주 친한 어느 극작가를 만났는데, 라셸이 그에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가 블로크의 사촌의 친구에 대해 입 밖에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그녀가 짐작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허공을 응시하더니 말했다. “아까 너한테 라셸 이야기를 할 때, 언젠가 그 여자랑 삼 주 동안 여행을 다녀온 걸 숨기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그땐 널 잘 알지도 못했잖아!” “발베크 이전이었어?” “두 번째 발베크 이전이야, 응.” 그런데 바로 그날 아침 그녀는 내게 라셸을 모른다고 했고, 겨우 조금 전에는 그 여자를 딱 한 번, 분장실에서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한 줄기 불길이 삽시간에 그 소설을, 내가 수백만 분(分)을 들여 써 온 그 소설을 붙들어 삼켜 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물론 나는 알베르틴이 이 사실들을 내게 털어놓은 것이, 내가 그것들을 라셸에게서 넌지시 알아냈다고 그녀가 여겼기 때문임을,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실이 백 가지라도 없으란 법이 없음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나는 깨달았다. 알베르틴의 말은, 누가 그녀를 캐물을 때, 결코 티끌만큼의 진실도 담고 있지 않으며, 진실이란 오직 그녀 자신도 어쩌지 못한 채, 마치 이전에는 한사코 감추기로 작정했던 사실들이 내가 그것을 이미 안다는 믿음과 그녀의 마음속에서 문득 결합함으로써만 새어 나온다는 것을. “하지만 두 가지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알베르틴에게 말했다, “네 가지쯤으로 해 두자, 그래야 네가 나한테 너에 대한 추억이라도 좀 남겨 줄 테니. 나한테 또 무슨 털어놓을 게 있어?” 그녀는 다시 한번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는 대체 어떤 내세의 믿음에 자기 거짓말을 맞추고 있었으며,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변덕스러운 어떤 신들과 손잡으려 했던 걸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녀의 침묵과 응시의 고정됨이 한동안 이어졌다. “아니, 더는 없어,”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끈질기게 물어도, 그녀는 이제 손쉽게 “더는 없어”를 고수했다. 그런데 이 무슨 거짓말인가! 그녀가 그런 취향을 갖게 된 순간부터 내 집에 갇히게 된 날까지,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여러 곳에서, 얼마나 여러 나들이에서 그녀는 그 취향을 채웠을 것인가! 고모라의 딸들은 더없이 드물면서도 더없이 흔해서, 어떤 무리의 사람들 속에서도 하나가 다른 하나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만남은 손쉬워진다.

나는 그 무렵에는 그저 터무니없게만 여겨졌던 어느 저녁을 소름 끼치는 심정으로 떠올렸다. 친구 하나가 나를 어느 식당의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그는 제 정부와, 역시 제 정부를 데려온 또 다른 친구를 함께 데려왔다. 두 여자는 오래지 않아 서로 뜻이 통했으나, 어찌나 서로를 즐기고 싶어 조바심을 냈던지, 수프가 나올 무렵 그들의 발이 서로를 더듬다가 종종 내 발까지 찾아냈다. 이내 그들의 다리가 뒤엉켰다. 두 친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더는 참지 못한 여자 하나가, 무엇을 떨어뜨렸다면서 식탁 밑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더니 그중 하나가 머리가 아프다며 위층 화장실에 다녀오게 해 달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극장에서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두 친구와만 남게 되었다. 머리가 아프다던 여자가 다시 나타났으나, 진통제를 한 알 먹으려고 애인의 집에서 그를 기다릴 수 있게 혼자 돌아가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들은 아주 친해져서 늘 함께 어울려 다녔고, 그중 하나는 남장을 하고 어린 소녀들을 꾀어 다른 하나에게 데려가 물을 들였다. 하나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애가 말썽을 부린다는 핑계로 벌을 주라며 제 친구에게 넘겼고, 친구는 억센 팔로 그 일에 나섰다. 아무리 사람 눈에 훤히 드러난 곳이라도 그들이 가장 은밀한 짓을 하지 않은 데는 없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라셸은 나한테 시종 아주 반듯하게 굴었어,” 알베르틴이 내게 말했다. “사실 웬만한 사교계 여자들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는걸.” “너한테 조심성 없이 군 사교계 여자들이 있었어, 알베르틴?” “한 번도 없었어.” “그럼 무슨 뜻이야?” “아, 그게, 그 여자는 말이 좀 덜 헤펐다는 거지.” “예를 들면?” “네가 만나는 여자들 중 많은 이들처럼 ‘썩어 빠졌다’는 말을 쓰거나 ‘난 아무한테도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야.” 불길이 여태 살려 둔 소설의 한 부분이 마침내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내 낙담은 오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알베르틴의 말은, 되새겨 보니, 그 낙담을 격렬한 분노에 자리를 내주게 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일종의 애틋한 감정에 굴복했다. 나 또한, 집에 돌아와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끈질기게 가장했던 이 이별의 욕망은, 내가 정말로 알베르틴과 헤어지기를 바랐더라면 느꼈을 그 비참함의 얼마간을 차츰 내게 옮겨 왔다.

게다가, 알베르틴이 나를 만나기 전에 살았던 그 방탕한 삶을, 다른 육체의 아픔을 두고 말하듯 발작처럼, 쿡쿡 쑤시듯 떠올릴 때조차도, 나는 내 갇힌 여인의 고분고분함을 그만큼 더 감탄하며 바라보았고, 어떤 원한도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그런 삶이 십중팔구 한때의 것일 뿐이라고 알베르틴에게 알려 주기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으니, 그래야 알베르틴이 그 삶에서 얼마간의 매력을 계속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는데, 이별에 대한 어렴풋한 위협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위협은, 알베르틴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향한 나의 강렬하고 질투 어린 사랑이라는 그녀의 관념에 의해 틀림없이 부정되었을 테고, 그 사랑이야말로, 그녀가 넌지시 내비치는 바로는, 나로 하여금 베르뒤랭 댁으로 정보를 캐러 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 밤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야 겨우 깨달으면서, 갑작스레 이 결별의 장면을 연출하기로 마음먹게 만든 여러 이유 가운데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곧, 아버지가 곧잘 빠지곤 하던 그런 충동에 사로잡혀 내가 어떤 사람의 안전을 위협할 때, 나는 아버지처럼 위협을 실제로 밀어붙일 용기가 없었으므로, 그것이 한낱 빈말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겨지지 않게 하려고, 위협을 실행하는 척하는 데 상당한 데까지 나아갔다가, 상대가 내 진심을 정말로 착각하고 진지하게 떨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물러서곤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거짓말 속에는 정말로 한 톨의 진실이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삶이 우리의 사랑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면, 그 변화를 스스로 불러오거나 꾸며내려 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진실, 모든 사랑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이 빠르게 이별을 향해 나아간다고 우리가 그토록 절실히 느낀다는 진실이. 우리는 이별이 가져올 눈물을, 그것이 닥치기 훨씬 전부터 미리 흘리고 싶어 한다. 물론 이번 경우, 내가 연출한 장면에는 실질적인 가치가 있었다. 나는 알베르틴이 내가 그녀를 막을 수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뉘어 있다고 느꼈기에 그녀를 붙들어 두기로 문득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나를 위해 그들 모두를 마침내 단념했다면, 나는 그녀를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고 더욱 굳게 결심했을 것이다. 헤어짐이란 질투에 의해서는 잔인해지지만, 감사에 의해서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겨야만 하거나 쓰러져야만 하는 결정적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한 시간 안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알베르틴에게 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 전투에 달려 있다고 스스로 되뇌었으므로. 그러나 이런 전투는 몇 시간이면 끝나던 옛날의 전투보다는, 이튿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주에도 끝나지 않는 오늘날의 전투를 더 닮았다. 우리는 온 힘을 쏟아붓는다. 다시는 어떤 힘도 필요치 않으리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 년이 넘도록 '결정적'인 승리는 오지 않는다. 어쩌면 알베르틴이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을 때 내가 함께 있던 M. 드 샤를뤼스가 연출하던 거짓 장면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이 나머지에 더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어떤 말을 들었고, 그 말은 내가 이 장면의 모든 요소를 내 안에서, 곧 알코올이나 커피 같은 약물이 우리가 저장해 둔 힘의 잔여물에 작용하듯 어떤 감정들이 이 점에서 작용하여 우리 손이 닿는 곳에 놓아 주는, 저 유전의 어두운 저장고 속에서 찾아냈으리라고 믿게 만든다. 레오니 고모는, 이제 안주인이 다시는 집을 나서지 않으리라 확신한 프랑수아즈가 고모 몰래 어떤 외출을 은밀히 꾸미고 있다는 것을 욀라리에게서 알게 되면, 그 전날 이튿날 나들이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은 척했다. 미심쩍어하는 프랑수아즈는 고모의 옷을 미리 준비하고, 너무 오래 넣어 두었던 옷들을 바람에 쐬어 두라는 명령뿐 아니라, 마차를 부르고 그날의 모든 세부를 십오 분 단위까지 짜 두라는 명령까지 받았다. 프랑수아즈가 납득하거나 적어도 마음이 흔들려 자기가 세운 계획을 고모에게 실토할 수밖에 없게 되어서야, 고모는 프랑수아즈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자기 계획을 공공연히 접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알베르틴이 내가 과장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도록, 또 우리가 정말 헤어질 것이라는 생각 속으로 그녀를 되도록 멀리까지 밀어 넣으려고, 내가 내놓은 제안에서 나오는 뻔한 결론들을 스스로 끌어내면서, 이튿날부터 시작되어 영원히 이어질 시간, 곧 우리가 헤어져 있게 될 시간을 미리 앞질러 그려 보기 시작했고, 마치 우리가 곧바로 화해할 사이가 아닌 듯이 알베르틴에게 이러저러한 부탁을 건넸다. 적을 속이려는 위장 공격이 성공하려면 극단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여기는 장군처럼, 나는 이 위장에 마치 그것이 진짜인 양 내 감수성의 재고를 거의 다 쏟아부었다. 이 꾸며 낸 결별의 장면은 결국 실제였을 때와 거의 다름없는 슬픔을 내게 안기고 말았다. 어쩌면 배우 가운데 하나인 알베르틴이 그것을 진짜라고 믿음으로써 상대의 착각을 한층 부추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날이, 비록 괴로울지언정 그래도 견딜 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습관이라는 밑짐과 이튿날이 설령 고통스러운 날일지라도 온 세상과 같은 그 사람의 존재를 담고 있으리라는 확신에 붙들려 땅에 매여 있었건만, 나는 어리석게도 그 짓누르는 삶 전부를 부수고 있었다. 그것을 부수고 있다고는 해도 물론 꾸며 낸 방식으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서 내뱉는 슬픈 말들이 그 자체로 슬픔을 품고 있어 그것을 우리 안 깊숙이 주입하기 때문이거나, 어쩌면 우리가 이별을 흉내 내면서 훗날 반드시 오고야 말 시간을 미리 불러들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우리는 그 시간을 울리게 할 태엽을 우리가 풀어 놓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엄포에는, 아무리 작을지언정, 우리가 속이려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함의 요소가 있다. 이 결별의 시늉이 정말로 결별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럴 법하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 가능성을 가슴이 죄어들지 않고서는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두 배로 불안하다. 그렇게 되면 결별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에, 곧 우리를 떠날 여자가 아직 우리를 낫게 하지도, 적어도 달래 주지도 않은 채 우리에게 고통을 안긴 그 순간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슬픔 속에서조차 몸을 기대던 습관이라는 단단한 땅을 이제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그 땅을 저버렸고, 오늘 하루에 예외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앞뒤의 날들에서 떼어 냈다. 그 하루는 떠나는 날처럼 뿌리 없이 떠돈다. 습관에 마비되어 있던 우리의 상상력은 깨어났고, 우리는 문득 일상의 사랑에다 그것을 엄청나게 부풀리는 감상적인 몽상을 더하여, 실은 이제 더는 기댈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없는 한 존재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바로 그 존재를 앞날에도 확보하려고 우리는 그것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시늉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늉에, 우리 자신이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는 새롭고 낯선 무언가를 만들어 냈기에 다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가 앓는 병을 결국에는 낫게 해 줄 운명이면서도 첫 효과는 병을 악화시키는 저 치료들을 닮았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침실에 홀로 있으면서, 종잡을 수 없는 명상의 흐름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려 보다가, 자신이 느끼게 될 슬픔을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 낸 나머지 끝내 그것을 실제로 느끼고 마는 사람들처럼. 그래서 우리가 헤어진 뒤 알베르틴이 나를 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관한 충고를 거듭 늘어놓으면서, 나는 우리가 화해를 코앞에 두고 있지 않기라도 한 듯이 거의 못지않게 날카로운 고통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내가 이 화해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알베르틴을 나와 함께하는 삶의 생각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그리고 설령 당장은 성공한다 해도 이 장면이 몰아낸 그녀의 마음 상태가 되살아나지 않을지, 내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가? 나는 스스로 미래의 주인이라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믿지는 않았다. 이 느낌이 그저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그리하여 내가 그 불가피함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진실을 내 말 속에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방금 그 한 가지 예를 보였다. 알베르틴에게 곧 그녀를 잊게 되리라고 말했을 때 말이다. 이것은 질베르트의 경우에 실제로 내게 일어났던 일이었다. 나는 슬픔을 피하려고가 아니라 성가신 의무를 피하려고 이제는 그녀를 보러 가지 않았다. 물론 질베르트에게 더는 찾아가지 않겠다고 편지를 썼을 때 나는 슬펐고,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만 그녀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알베르틴의 시간은 온통 내 것이었고, 사랑에서는 감정을 버리기가 습관을 잃기보다 더 쉬운 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별에 관한 이 모든 고통스러운 말들이, 그것을 거짓임을 내가 알았기에 내뱉을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면, 반대로 알베르틴의 입술에서 나올 때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들었을 때 말이다. "아! 약속해요,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우는 걸 보느니 무엇이든 하겠어요, 내 사랑. 당신에게 어떤 슬픔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야만 한다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그 말들은 진심이었으니, 내게서 나왔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우선 알베르틴은 나에게 우정보다 강한 무엇도 느끼지 않았으므로, 그 말이 약속하는 단념이 그녀에게는 대가가 덜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별의 장면에서 다정한 말을 하는 쪽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니, 사랑은 스스로를 직접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큰 사랑 속에서라면 그토록 하찮았을 내 눈물이, 그녀에게는 거의 예사롭지 않게 보여 그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은 그녀가 머무는 저 우정의 영역으로 옮겨져, 방금 그녀가 한 말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그녀를 향한 내 우정보다 더 큰 우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판단은 어쩌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으니, 사랑의 천 가지 다정함이, 그것을 느끼지는 못한 채 불러일으킨 사람의 마음속에, 그것을 자아낸 감정보다 덜 이기적인 애정과 감사를 끝내 일깨울 수 있고, 그 애정은 어쩌면 여러 해의 헤어짐 뒤에, 옛 연인에게는 그 감정이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을 때에도, 사랑받던 이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