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알베르틴," 나는 대답했다. "내게 그런 약속을 해 주다니 참 고마워. 어쨌든 적어도 처음 몇 년 동안은 너와 마주칠 만한 곳들을 피하도록 할게. 올해 발베크에 갈지 아직 모르지? 만약 간다면 나는 그리로 가지 않도록 하겠어." 그러나 이제 내가 이렇게 거짓의 지어냄 속에서 앞날을 앞질러 나아가기를 계속했다면, 그것은 알베르틴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려는 것 못지않게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려는 것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화낼 만한 진지한 이유가 없던 사람이 제 목소리에 스스로 완전히 취해, 불만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자꾸만 커지는 노여움에서 생겨난 격정에 실려 가듯이, 나도 점점 더 빠르게 비참함의 비탈을 굴러 내려가, 점점 더 깊은 절망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추위가 몸을 옥죄는 것을 느끼면서도 저항하려 애쓰지 않고 심지어 떨림 속에서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는 사람의 무기력으로 그러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마침내, 스스로 충분히 짐작한 대로, 자제하고 반응을 돌이켜 엔진을 역회전시킬 힘을 얻었다면, 그것은 내가 돌아왔을 때 알베르틴이 그토록 쌀쌀맞게 맞이하여 안긴 슬픔에서라기보다는 훨씬 더, 지어낸 이별의 절차를 윤곽 잡는 척 상상하면서, 그 결과를 내다보면서 느낀 슬픔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녀가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넬 때가 되었을 때의 알베르틴의 입맞춤이 나를 위로해 주어야 했다. 어쨌든 그 잘 자라는 인사를 그녀가 스스로 먼저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내가 그녀에게 헤어질 생각을 접자고 제안하려는 그 돌이킴이 더 어려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시간이 이미 오래전에 지났음을 계속 그녀에게 상기시켰는데, 이 방법은 주도권을 내게 남겨 둠으로써 그것을 조금 더 미룰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시간이 늦었다는, 우리가 지쳤다는 이야기를 곁들여 가며 알베르틴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졌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그 마지막 물음에 근심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어쩌면 투렌의 이모 댁으로 갈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녀가 내놓은 이 첫 계획은, 마치 우리의 마지막 이별을 확실히 실현시키기 시작하기라도 하는 듯 나를 얼어붙게 했다. 그녀는 방 안을, 자동 피아노를, 파란 새틴 안락의자들을 둘러보았다. "내일도, 모레도, 다시는 이 모든 걸 못 본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가엾은 나의 작은 방.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머릿속에 넣을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넌 여기서 불행했잖아." "아니에요, 정말로, 난 불행하지 않았어요. 불행해지는 건 이제부터예요." "아니야, 정말이지, 너한테는 이게 더 나아." "당신한테는 그렇겠죠!" 나는 극도의 망설임에 괴로워하며 마음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을 곱씹기라도 하는 듯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들어 봐, 알베르틴, 넌 여기가 더 행복하다고, 이제 불행해질 거라고 말하지." "그야 물론이죠." "그건 나를 겁나게 해. 우리 몇 주만 더 지내 보려고 해 볼까? 누가 알아, 한 주 한 주 그러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어질지도. 너도 알잖아, 임시로 해 둔 일이 결국 영영 굳어지는 수도 있다는 걸." "오, 당신은 정말 다정해요!" "다만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몇 시간이나 이렇게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건 우스운 짓이지. 긴 여행 채비를 다 해 놓고는 집에 눌러앉는 꼴이니까. 난 슬픔에 무너져 버렸어." 나는 그녀를 내 무릎에 앉히고, 그녀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베르고트의 원고를 집어 표지에 이렇게 썼다. "나의 어린 알베르틴에게, 새 삶의 기약을 기념하며." "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가서 내일까지 자거라, 내 사랑, 넌 틀림없이 녹초가 되었을 테니." "그래도 난 정말 기뻐요." "날 조금은 사랑하니?" "그 어느 때보다 백배는 더요."
이 자그마한 연극놀음에 내가 흡족해했다면 잘못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무대 위의 진짜 장면의 경지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우리가 그저 아주 단순히 이별을 논하는 데 그쳤더라도, 그조차 심상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대화에서 우리는 진심 없이, 이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자유로이 말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우리가 알지 못한 채, 대개 우리 뜻과 어긋나게 웅얼거려지는 것이니, 우리가 짐작조차 못 하는 폭풍의 첫 웅얼거림이다. 실은 그런 순간에 우리가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바람(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 사는 것)과는 정반대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함께 사는 일의 불가능함도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겪는 고통의 원인이며, 우리가 이별의 고통보다 차라리 택한 고통이건만, 그 이별은 우리 뜻과 상관없이 끝내 우리를 갈라놓고야 말 것이다. 대체로 말하자면, 다만 곧바로는 아니다. 흔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믿지 않던 그 말들이 오간 얼마 뒤, 우리는 고의적인 이별의 어렴풋한 시도를, 고통스럽지 않은, 일시적인 시도를 실행에 옮긴다. 앞으로는 그녀가 우리 곁에서 더 행복하도록, 또 우리 쪽에서는 끊임없는 근심과 피로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며칠 동안 우리 없이 어딘가로 가라거나, 아니면 그녀 없이 우리가 가게 해 달라고 여자에게 청한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어 보였을 만큼, 그녀에게서 떨어져 보내는 며칠을. 이윽고 그녀는 이내 우리의 난롯가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다만 이 이별은, 짧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라, 그리 제멋대로 결정된 것도, 우리가 마음에 둔 유일한 이별인 것도 아니다. 똑같은 슬픔이 다시 시작되고, 함께 사는 일의 똑같은 어려움이 더 도드라지지만, 이제 이별은 예전만큼 어렵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 다정한 방식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으니까. 그러나 이것들은 그저 그 본질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예비 시도일 뿐이다. 머지않아 순간적이고 미소 띤 이별에 이어, 우리가 알지 못한 채 길을 닦아 온 저 무섭고 최종적인 이별이 뒤따를 것이다.
"오 분 뒤에 내 방으로 와서 잠깐 얼굴 좀 보여 줘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이. 당신은 다정함으로 가득해요. 하지만 그다음엔 곧바로 잠들어 버릴 거예요, 난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윽고 내가 그녀의 방에 들어섰을 때 내가 본 것은 정말이지 죽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눕자마자 곧장 잠들어 있었고, 수의처럼 그녀의 몸을 감싼 시트는 그 장엄한 주름과 더불어 돌 같은 뻣뻣함을 띠고 있었다. 마치 중세의 어떤 최후의 심판 그림에서처럼, 그녀의 머리만이 무덤에서 솟아 나와 잠결에 대천사의 나팔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할 법했다. 이 머리는 거의 뒤로 젖혀진 채, 머리카락을 곤두세운 채 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표정 없이 뻗어 있는 그 몸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몸이 어떤 로그표를 이루기에, 팔꿈치로 슬쩍 스치는 일에서 치맛자락이 스치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 몸이 관여했을 법한 모든 행위가, 그 몸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차지했던 온갖 지점의 무한대로까지 늘어난 나에게, 그리고 이따금 내 기억 속에서 날카롭게 되살아난 나에게, 그토록 격렬한 고뇌를 안길 수 있었는지를. 비록 나는 그 행위들이 그녀 안에서 충동과 욕망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다른 사람에게서라면, 다섯 해 전이나 다섯 해 뒤의 그녀 자신에게서라면 나를 아주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을 그 충동과 욕망에 의한 것임을 알았건만.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나, 나로서는 내 자신의 죽음 말고는 다른 어떤 해결책도 찾을 용기가 없는 거짓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베르뒤랭가에서 돌아온 뒤로 벗지 않은 모피 외투를 걸친 채, 그 구부러진 몸 앞에, 무엇을 우의적으로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그 형상 앞에 머물러 있었다. 나의 죽음을? 나의 사랑을? 이윽고 나는 그녀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나는 신선한 공기와 관조라는 그 마음 달래는 치유를 취하려고 그녀의 침대 가장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아주 살며시 물러났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아침에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알베르틴 방문 앞을 지날 때 아주 조용히 발을 디디라고 일렀다. 그래서 프랑수아즈는 우리가 밤을 그녀 말마따나 난장판을 벌이며 보냈다고 확신하고는, 다른 하인들에게 "공주님을 깨우지" 말라고 비꼬듯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던 일 가운데 하나였으니, 프랑수아즈가 언젠가 더는 참지 못하고 알베르틴을 무례하게 대할지도, 그리하여 우리 삶에 성가신 일이 끼어들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프랑수아즈는 이제, 고모가 욀라리를 후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속상해하던 그 시절과는 달리, 자신의 질투를 용기 있게 견딜 나이가 아니었다. 질투는 우리 늙은 하녀의 얼굴을 어찌나 일그러뜨리고 마비시켜 놓는지, 나는 때때로 그녀가 어떤 격노의 발작 끝에 가벼운 뇌졸중이라도 일으킨 게 아닐까 자문하곤 했다. 그렇게 알베르틴의 잠을 존중해 달라고 부탁해 놓고, 나 자신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알베르틴의 진짜 마음 상태를 헤아려 보려 애썼다. 내가 연기한 저 가련한 익살극으로 내가 정말 실재하는 위험을 막아 낸 것인지,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것이 그토록 행복하다는 그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어떤 순간에는 정말로 자유를 갈망했던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이 두 가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인가? 어떤 정치적 사건을 이해하려 할 때, 내 지난 삶의 한 사건을 역사의 규모로까지 늘리는 일이 내게 곧잘 일어났고, 특별한 경우에는 반드시 그러하게 되어 있었다면, 거꾸로 이 아침에는 나는 그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 그 함의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로, 지난밤 우리의 장면을 방금 일어난 어떤 외교적 사건과 견주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추론할 권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에, 내가 그토록 자주 그런 위엄으로 연출하는 것을 보아 온 M. 드 샤를뤼스의 본보기가 저 거짓 장면에서 나를 이끌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그에게 있어, 간계에서 나온 도발이자 필요할 때는 자존심에서 나온 호전성인 게르만 혈통의 타고난 성향을, 자신의 사생활 영역으로 무의식적으로 들여온 것에 지나지 않지 않았던가. 어떤 사람들이, 그 가운데 모나코 대공이 프랑스 정부에 만약 M. 델카세를 내치지 않으면 위협적인 독일이 정말로 전쟁을 선포하리라는 생각을 불어넣자, 외무장관은 사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리하여 프랑스 정부는 우리가 양보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전쟁을 걸려는 의도가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인 셈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 모든 것이 한낱 '엄포'일 뿐이며, 만약 프랑스가 꿋꿋이 버텼다면 독일은 칼을 뽑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각본은 단지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의 정반대였으니, 결별의 위협을 내민 쪽은 알베르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련의 인상은,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그렇게 믿게 되었듯이, 그녀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믿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 만약 독일이 평화를 바랐다면, 프랑스 정부에게 독일이 전쟁을 갈망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미심쩍고 위험한 술책이었다. 확실히 내 처신은 제법 능란했으니, 만약 내가 결코 그녀와 갈라설 결심을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알베르틴 안에 문득 독립의 갈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그런 갈망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기가, 자신의 악덕을 채우는 데로 향한 은밀한 삶 전체에 눈감기가 어렵지 않았던가. 내가 베르뒤랭가에 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드러낸 노여움만 떠올려도,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외치고는 "거기 Mlle. 뱅퇴유가 있지 않았나요?"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실토했으니. 이 모든 것은 앙드레가 내게 알려 준, 알베르틴이 Mme. 베르뒤랭과 만났다는 사실로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럼에도, 이 문득 이는 독립의 갈망은(내가 나 자신의 본능에 거스르려 애쓸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정반대의 이론에서 비롯되었거나, 결국 그 이론에서 비롯될 것이었다. 곧 내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애초에 전혀 없었다는 것, 마치 본의 아닌 듯 우리의 다가오는 이별을 넌지시 비출 때 내가 진실을 말한 것이라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언젠가 그녀와 헤어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난밤 내가 벌인 장면은 그 믿음을 굳히기만 했을 뿐이며 끝내 그녀 안에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면, 차라리 지금 당장 모든 걸 끝내는 게 낫다"는 결심을 낳고야 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온갖 속담 가운데 가장 그릇된 그 속담이 평화의 승리를 이루는 최선의 길이라 일러 주는 전쟁 준비란, 우선 두 적수 각각에게 상대가 결별을 바란다는 믿음을 심고, 그 믿음이 결별을 불러오며, 결별이 일어나고 나면 다시 저마다에게 그것을 원한 쪽은 상대라는 믿음을 심는다. 설령 그 위협이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그 성공은 되풀이를 부추긴다. 그러나 엄포가 성공할 수 있는 정확한 지점은 가늠하기 어렵다. 한쪽이 너무 멀리 나아가면, 앞서 양보했던 다른 쪽이 이번에는 앞으로 나선다. 처음의 쪽은 이제 방식을 바꿀 수 없고, 결별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 결별을 피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졌으며(이것이 지난밤 내가 알베르틴에게 한 일이었다), 게다가 자존심에서 양보하느니 쓰러지기를 택하도록 내몰려, 어느 쪽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까지 위협을 밀어붙인다. 엄포는 또한 진심과 뒤섞일 수도, 진심과 번갈아 나타날 수도 있으며, 어제는 놀이였던 것이 내일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끝으로 두 적수 가운데 하나가 정말로 전쟁을 굳게 마음먹는 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알베르틴이 조만간 이 삶을 더는 이어 가지 않을 작정이었을 수도, 아니면 반대로 그런 생각이 그녀 머릿속에 들어온 적조차 없어 내 상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어낸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가 그날 아침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곱씹은 갖가지 가설이 이러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가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뒤로 이어진 기간 동안, 그녀가 내게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어떤 알 수 없는 불만이, 어떤 말이, 어떤 몸짓이 넌지시 내비치는 듯한, 그 생각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이면서도 그녀가 다른 어떤 설명도 해 주기를 거부하던, 그녀 쪽의 어떤 사악한 자유에 대한 생각에 대한 응답으로가 아니고서는, 결코 알베르틴을 결별로 위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때조차 꽤 자주 나는 있을지 모를 이별을 넌지시 비추지 않은 채 그것들을 눈여겨보았으니, 그것이 그날 안으로 가라앉을 언짢은 기분의 발작 탓이기를 바라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몇 주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동안 알베르틴은 마치 그때 어딘가 다소 먼 지역에, 그녀가 알고 있으며 내 집에 갇혀 지내는 탓에 빼앗기고 있는, 그리고 끝날 때까지 계속 그녀에게 영향을 미칠 어떤 쾌락들이 있기라도 한 듯이 갈등을 부추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 자신의 난롯가에서조차, 멀리 발레아레스 제도만큼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에도 우리 신경을 건드리는 저 대기의 변화처럼.
이날 아침, 알베르틴이 잠들어 있고 내가 그녀 안에 감춰진 것을 헤아려 보려 애쓰는 동안, 나는 어머니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는 우리가 정한 바에 대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한 데 대한 근심을 Mme. 드 세비녜의 이런 구절로 나타냈다. "내 마음속으로는 그 애가 결혼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결코 결혼하지도 않을 이 처녀를 어째서 성가시게 하는 것이냐? 그 애가 다시는 경멸 어린 눈으로밖에 보지 않을 구혼자들을 그 처녀가 물리치게 만드는 위험을 어째서 무릅쓰는 것이냐? 피하기가 그토록 쉬울 사람의 마음을 어째서 어지럽히는 것이냐?" 어머니의 이 편지는 나를 다시 땅으로 데려왔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신비로운 영혼을 찾으며, 얼굴 하나를 해석하며, 감히 파헤치지도 못하는 예감에 스스로 주눅 들어 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어, 일은 아주 단순한데. 나는 결심을 못 하는 젊은이일 뿐이고, 이건 성사될지 아닐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그런 혼사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여기에는 알베르틴에게만 유별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이 생각은 내게 크지만 짧은 안도를 주었다. 이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흔해 빠진 신문 가십거리로 줄여 버릴 수 있어. 바깥에서 보면 어쩌면 나도 이렇게 볼 테지. 그러나 참된 것은, 적어도 또한 참인 것은, 내가 생각해 온 모든 것이라는 걸, 내가 알베르틴의 눈에서 읽어 낸 것이라는 걸,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이라는 걸, 알베르틴을 두고 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내미는 문제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어. 망설이는 신랑과 깨진 약혼 이야기가 여기에 대응할 수야 있겠지, 마치 영리한 기자가 쓴 연극 공연평이 우리에게 입센 희곡 하나의 줄거리를 알려 줄 수 있듯이. 그러나 보도되는 그 사실들 너머에는 무언가가 있어. 그 다른 무언가는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모든 망설이는 신랑에게, 질질 끄는 모든 약혼에 존재할지도 모르지, 우리 일상 속에 어쩌면 신비의 요소가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는 지나칠 수 있었지만, 알베르틴의 삶과 나 자신의 삶은 안에서부터 살아 내고 있었다.
알베르틴은 이 한밤중의 장면 뒤에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당신이 날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당신의 의심을 풀어 드리도록 해 볼게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결코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이 생각은, 그녀의 가장 사소한 행동조차 설명해 줄 수 있었으리라. 그녀는 잠시도 혼자 있지 않도록, 그리하여 내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경우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내게 부족하지 않도록 조심했을 뿐 아니라, 앙드레에게든, 차고에든, 마차 대여점에든, 그 밖의 어디에든 전화를 걸어야 할 때조차, 교환수 아가씨들이 번호를 대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 탓에 혼자 서서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나 따분한지 모르겠다고 둘러대며, 그럴 때 내가, 나 없이는 프랑수아즈가 곁에 있도록 조심했다. 마치 내가 그녀가 전화로 비난받을 만한 대화를 나누며 은밀한 밀회를 잡으리라 상상할까 봐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아, 이 모든 것도 내 마음을 놓아 주지는 못했다. 나는 낙담의 하루를 보냈다. 에메가 에스테르의 사진을 그 사람이 아니라는 전갈과 함께 돌려보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알베르틴에게는, 내가 아주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셈이었건만 그녀가 내 말을 오해한 탓에 그녀가 자기 사진을 준 것을 알게 된 이 처녀 말고도 다른 가까운 여자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블로크에게 돌려보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알베르틴이 에스테르에게 준 사진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어떤 차림이었을까? 어쩌면 가슴을 드러낸 채였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것을 알베르틴에게 입에 올릴 수 없었고(그러면 내가 사진을 보지 못했다는 게 드러났을 테니), 블로크에게도 그럴 수 없었으니, 내가 알베르틴에게 관심이 있다고 그가 여기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의심과 그녀의 속박을 아는 이라면 누구든 나에게도 알베르틴에게도 괴로운 삶임을 알아보았을 이 삶을, 프랑수아즈는 바깥에서, 저 "사기꾼 계집"이(프랑수아즈는 여자를 더 시샘했으므로 남성형보다 여성형을 훨씬 자주 썼는데) 교묘히 실컷 누리는, 분에 넘치는 쾌락의 삶으로 여겼고, 그녀를 "charlatante."라고 불렀다. 실로 프랑수아즈는 나와 접하면서 새 낱말들로 어휘를 불렸으나 그것들을 자기 식으로 뜯어고쳤으니, 알베르틴을 두고 그토록 "간교함"을 지닌 사람은, 연극놀음으로 "내 돈을 우려내는" 데 그토록 능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프랑수아즈는 개별을 일반으로 오인하기를 일반을 개별로 오인하기만큼이나 잘했고 갖가지 극예술에 대해 아주 어렴풋한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이를 "무언극을 한다"고 불렀다). 알베르틴과 나의 삶의 참된 본질에 대한 이 오해에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얼마간 책임이 있었으니, 프랑수아즈와 이야기할 때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서든, 사랑받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행복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든, 그것을 어렴풋이 뒷받침하는 말을 교묘히 흘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프랑수아즈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무엇이든 내주었을 내 질투, 내가 알베르틴을 감시하는 것을, 그녀는 오래지 않아 알아차렸다. 내게 고통스러울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짚어 내는, 그녀가 지닌 그 직감에 이끌려서였다. 눈을 가린 채 더듬어 감춰진 물건을 찾아내는 독심술사처럼, 그 직감은 내가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는 바람에서 늘어놓았을 거짓말에도 빗나가려 하지 않았고, 또한 저 형형한 증오에도 이끌렸으니, 그 증오는 그녀로 하여금 자기 적들이 실제보다 더 형통하고 더 능란한 위선자라고 믿게 부추기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파멸시킬 비밀을 찾아내어 그들의 몰락을 앞당기도록 그녀를 몰아세웠다. 프랑수아즈는 분명 알베르틴과 결코 소란을 벌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프랑수아즈의 은근히 찌르는 재주를, 의미심장한 상황에서 그녀가 끌어낼 줄 아는 이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알베르틴에게 이 집에서 그녀가 얼마나 비천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날마다 알려 주고, 내 정부가 갇혀 지내는 처지를 교묘히 부풀려 묘사하여 그녀를 미치게 만들려는 유혹을 뿌리쳤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한번은 프랑수아즈가 커다란 안경으로 무장한 채 내 서류를 뒤지다가, 스완과 그가 오데트 없이는 도무지 지낼 수 없었던 일에 관해 내가 적어 둔 한 장의 종이를 그 사이에 도로 끼워 넣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심술궂게 그것을 알베르틴의 방에 흘려 두었던 것일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저음부에서 그저 웅얼거리는 음흉한 관현악이었을 뿐인 프랑수아즈의 넌지시 찌르는 말들 위로, 더 높고 더 또렷하고 더 다급하게, 알베르틴이 본의 아니게 나를 붙들어 두고 있고 내가 일부러 그녀를 작은 패거리에게서 떼어 놓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 베르뒤랭 부부의, 고발하고 중상하는 목소리가 솟아올랐음에 틀림없다. 내가 알베르틴에게 쓰는 돈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프랑수아즈에게 감추기란 거의 불가능했으니, 나는 내 어떤 지출도 그녀에게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에게는 결점이 별로 없었으나, 그 결점들은 그것을 부리기 위한 확실한 재능을 그녀 안에 만들어 냈으니, 그녀는 그 결점을 부리는 일이 아니고서는 곧잘 그 재능이 없곤 했다. 그녀의 주된 결점은 우리가 그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쓰는 모든 돈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내가 갚아야 할 셈이 있거나 팁을 줘야 할 때면, 구석으로 가 봐야 소용없었다. 그녀는 제자리에 놓아야 할 접시나 주워야 할 냅킨을 찾아내어 다가올 구실로 삼았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짧은 틈만 허락하고 화를 내며 그녀를 물려도, 눈이 거의 멀다시피 하고 숫자 한 줄을 겨우 더할 만한 이 여자는,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 외투의 옷감 값을 본능적으로 셈하면서도 그것을 만지작거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재단사를 만들어 내고, 화가를 색채 효과에 민감하게 만드는 그 노련한 감각에 이끌려, 프랑수아즈는 슬그머니 보아 내가 주고 있는 액수를 즉각 셈해 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운전기사를 매수하고 있다고 알베르틴에게 이르지 못하도록 선수를 쳐, 팁에 대해 변명하며 "운전기사한테 후하게 해 주고 싶어서 십 프랑 줬어"라고 말하자, 무자비한 프랑수아즈는 늙고 거의 멀다시피 한 독수리의 것과 같은 한 번의 눈길로 족했던지라 이렇게 대꾸했다. "천만에요, 나리께서는 사십삼 프랑을 팁으로 주셨는데요. 그자가 나리께 삯이 사십오 프랑이라고 했고, 나리께서는 백 프랑을 주셨는데, 그자는 열두 프랑밖에 거슬러 주지 않았죠." 그녀는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한 팁의 액수를 보고 셈할 겨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감시받고 있음을 느낀 알베르틴이, 내가 그녀를 위협하던 그 이별을 스스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까 하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삶은 우리의 지어낸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 버리니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임종의 순간 내가 벨을 울릴 때마다 몸서리치던 것처럼 몸서리쳤다. 나는 그녀가 내게 알리지 않고 집을 나서리라고는 믿지 않았으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의 무의식적 자아였다. 할머니가 더는 의식이 없을 때 벨 소리에 두근거리던 것이 할머니의 무의식적 자아였듯이. 정말이지 어느 아침에는, 그녀가 집을 나섰을 뿐 아니라 영영 떠나 버렸다는 갑작스러운 불안에 사로잡혔다. 방금 그녀 방의 문소리 같은 문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는 발끝으로 그 방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 문을 열고 문지방에 섰다. 어스름한 빛 속에서 이불이 반원을 그리며 부풀어 있었으니, 저것은 몸을 구부린 채 발과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잠든 알베르틴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침대 밖으로 흘러넘친, 그 머리 위의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이, 그것이 그녀임을, 그녀가 문을 열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음을 내게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그 안에 온전한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는, 내가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었던 이 미동 없이 살아 있는 반원이, 저기, 나의 전제적인 소유 아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