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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알베르틴의 도주 ⑦

5권 제2부 · 제3장: 알베르틴의 도주

이윽고 밤은 더욱 짧아졌고, 예전 같으면 동틀 무렵이었을 시각보다 앞서, 나는 어느새 내 창의 커튼 위로 날마다 더해 가는 새벽의 흰빛이 슬며시 스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베르틴이 이 삶을, 곧 그 자신은 부인했으나 내 느낌에는 갇힌 몸이라는 인상을 그가 품고 있던 이 삶을 계속 이어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오로지 내가 이튿날이면 일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 우리가 사들일 어느 영지로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니, 그곳에서라면 알베르틴은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시골이나 바닷가의 삶, 뱃놀이나 사냥의 삶을 나 때문에 불안해할 것 없이 더 자유로이 누릴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이튿날이면, 내가 알베르틴에게서 번갈아 사랑하고 미워하던 그 과거가, (마치 그것이 현재일 때는 저마다 타산이나 예의나 연민에서 자기와 우리 사이에 거짓의 장막을 짜 내고 우리는 그것을 진실로 잘못 아는 것처럼) 되돌아보건대, 그것을 이루던 시간들 가운데 하나가, 심지어 내가 안다고 여겼던 시간들조차, 이제는 누군가가 더는 내게서 감추려 들지 않는 어떤 모습을, 그전에 내게 보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문득 내게 내밀곤 했다. 그의 눈 속 어떤 눈길 뒤에는, 전에는 거기서 읽어 낼 수 있으리라 여겼던 정직한 생각 대신, 그때껏 짐작조차 못 한 욕망이 있어 제 모습을 드러냈으니, 내 것에 동화되었으리라 믿었던 알베르틴의 마음의 한 새로운 영역을 나에게서 떼어 냈다. 이를테면 앙드레가 7월에 발베크를 떠났을 때, 알베르틴은 그를 곧 다시 만나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내게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가 예상보다도 더 일찍 그를 만났으리라 여겼는데, 9월 14일 그 밤, 발베크에서 내가 느낀 그 큰 슬픔을 헤아려, 그는 거기 남지 않고 즉시 나와 함께 파리로 돌아오는 희생을 내게 치러 주었기 때문이다. 15일에 그가 거기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앙드레를 찾아가 보라고 청하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 애가 널 다시 봐서 반가워하던?” 그런데 하루는 봉탕 부인이 알베르틴에게 줄 것을 가지고 찾아왔다. 나는 잠시 그를 만나, 알베르틴이 앙드레와 함께 나갔다고 일러 주었다. “둘이서 시골로 드라이브 갔답니다.” “그래요.” 하고 봉탕 부인이 대꾸했다. “알베르틴은 늘 시골 갈 채비가 되어 있죠. 이를테면 3년 전엔 날마다 뷔트쇼몽에 안 가면 못 배겼거든요.” 알베르틴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고 내게 말했던 곳, 뷔트쇼몽이라는 이름에, 나는 한순간 숨이 멎었다. 진실이야말로 가장 교활한 적이다. 진실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해 아무 방비도 해 두지 않은 우리 마음의 지점을 골라 공격을 퍼붓는다. 그렇다면 알베르틴은, 날마다 뷔트쇼몽에 간다고 이모에게 말했을 때 거짓말을 한 것인가, 아니면 더 최근에 그곳을 모른다고 내게 말했을 때 거짓말을 한 것인가? “다행히.” 하고 봉탕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 가엾은 앙드레도 곧 더 상쾌한 고장으로, 진짜 시골로 떠난답니다. 그 애한테는 그게 몹시 필요해요, 안색이 영 안 좋거든요. 하기야 올여름엔 필요한 맑은 공기를 쐴 기회가 없긴 했지요. 생각해 보세요, 그 애가 7월 말에 발베크를 떠나며 9월에 다시 오려 했는데, 그때 그 애 오빠가 무릎을 삐끗해서 되돌아갈 수가 없었지 뭡니까.” 그러니까 알베르틴은 발베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그것을 내게 감춘 것이었다. 하기야 그렇다면 나와 함께 파리로 돌아오겠다고 한 것이 더욱 갸륵한 셈이었다. 다만…… “네, 알베르틴이 그 이야기를 저한테 하던 게 기억나네요.”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고가 언제 일어났다고 하셨더라? 제가 잘 모르겠어서요.” “아니, 제 생각엔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때에 일어난 셈이죠, 하루만 늦었어도 별장 임대차가 시작돼서 앙드레 할머니가 아무 까닭 없이 한 달 치 세를 물어야 했을 테니까요. 그 애 오빠가 9월 14일에 다리를 다쳤고, 앙드레는 15일 아침에 자기는 안 온다고 때맞춰 알베르틴에게 전보를 쳤고, 알베르틴은 때맞춰 중개인에게 알렸지요. 하루만 늦었어도 임대차가 10월 중순까지 이어질 뻔했답니다.” 그러니 아마도, 알베르틴이 마음을 바꾸어 내게 “오늘 저녁에 떠나요.” 하고 말했을 때 그의 마음의 눈에 보이던 것은 앙드레 할머니의 그 아파트였으니, 우리가 돌아가는 대로 그가, 내가 눈치채지 못한 채, 며칠 뒤면 발베크에서 만나리라 여겼던 그 벗을 만날 수 있을 곳이었다. 파리로 나와 함께 돌아오겠노라 하며 그가 썼던, 조금 전의 고집스러운 거절과는 딴판이던 그 다정한 말들을, 나는 그의 착한 천성이 되살아난 덕으로 돌리려 애썼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상황에 일어난 변화의 결과일 뿐이었으니, 바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들의 처신이 변덕을 부리는 온갖 비밀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이튿날 만나자는 약속을 한사코 거절한다, 피곤하다는 둥, 할아버지가 함께 저녁을 들자고 우긴다는 둥. “그럼 이따가 나와요.” 하고 우리가 조른다. “할아버지가 저를 아주 늦게까지 붙드셔서요. 집까지 바래다주려 하실지도 모르고요.” 온전한 진실인즉, 그들이 좋아하는 어떤 사내와 만날 약속을 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 사내가 더는 짬이 나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를 실망시켜 몹시 미안하다고, 할아버지야 목을 매든 말든 상관없다고,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막을 것이라곤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러 온다. 나는 발베크를 떠나던 날 알베르틴이 내게 하던 말에서 이런 구절들을 알아보았어야 했건만, 그 말을 풀이하자면 그때 알베르틴의 성격에서 두 가지 특별한 면을 떠올려야 했을 텐데, 그것이 이제야 내 마음속에 되살아났으니, 하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온갖 것을 조금씩 다 찾아내는 법이니, 그것은 일종의 약국이요 화학 실험실이어서, 더듬거리는 우리 손이 어느 때는 진정제에, 어느 때는 위험한 독약에 가닿는다. 첫 번째, 위로가 되는 면은, 하나의 행동을 여러 사람의 즐거움에 봉사하도록 부리는 그 버릇, 곧 무엇을 하든 그것을 여러 갈래로 써먹는 그 재주였으니, 알베르틴다운 것이었다. 그가 파리로 돌아온 것은 (앙드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발베크에 남아 있기 거북하게 만들었을 뿐, 그가 앙드레 없이는 못 산다는 뜻은 조금도 아니었다) 그 한 번의 여정에서, 저마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 곧 나와 앙드레를 함께 매만질 기회를 끌어내는 것이었으니, 그의 성격에 아주 걸맞았다. 곧 나에게는,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내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를 향한 헌신에서 오는 거라고 믿게 하고, 앙드레에게는, 그가 발베크에 올 일이 이제 없어진 이상 자기도 한순간도 더 거기 남고 싶지 않으며, 앙드레를 만날 희망에서만 체류를 늘렸던 것인데 이제 그와 합류하려 서둘러 돌아간다고 믿게 함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떠난 것은, 한편으로는 내 슬픔과 파리로 돌아가려는 내 욕망에, 다른 한편으로는 앙드레의 전보에 곧바로 이어진 일이었으므로, 서로에게, 곧 앙드레는 내 슬픔을, 나는 그의 전보를 알지 못한 채, 우리 둘 다 알베르틴이 발베크를 떠난 것이 저마다 아는 그 하나의 원인의 결과라고 여긴 것도 지극히 당연했으니, 실제로 그 떠남이 그 원인에 뒤이어 그토록 짧은 간격을 두고 그토록 뜻밖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라면, 나는 그래도, 나와 벗해 주려는 생각이 알베르틴의 진짜 목적이었으며, 다만 그가 그로써 앙드레의 고마움을 얻을 기회를 놓치려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거의 대번에 알베르틴의 또 다른 특징을 떠올렸으니, 곧 어떤 쾌락의 거스를 수 없는 유혹에 사로잡히면 보이던 그 격렬함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떠올렸다, 그가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찌나 조바심을 내며 트램에 닿으려 했던가, 우리를 붙들려던 지배인을 어찌나 밀치고 지나갔던가, 그러다 우리가 승합마차를 놓칠 뻔했던가를, 그리고 굼벵이 열차 안에서 캉브르메르 씨가 우리에게 “일주일만 미루면 안 되겠소?” 하고 물었을 때 그가 내게 보낸, 나를 그토록 뭉클하게 했던 그 공모의 어깻짓을. 그렇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어른거리던 것, 그를 그토록 열병 앓듯 떠나고 싶어 안달하게 하던 것, 그가 그토록 다시 보고 싶어 조바심 내던 것은, 내가 한때 가 본 적 있는 그 텅 빈 아파트, 곧 늙은 하인 하나에게 맡겨진 앙드레 할머니의 그 집이었으니, 남향의 호사스러운 아파트이건만 하도 비어 있고 하도 고요해서, 햇살이 소파와 안락의자에 먼지 덮개를 씌워 놓은 듯한 그 방에서 알베르틴과 앙드레는,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쩌면 한통속인 그 깍듯한 관리인에게 잠시 쉬어 가게 해 달라고 청하곤 했으리라. 이제 나는 그 방을, 침대 하나나 소파 하나가 놓인 그 텅 빈 방을 늘 눈앞에 그릴 수 있었으니, 알베르틴이 시간에 쫓기며 심각해 보일 때면 언제나 그리로 제 벗을 만나러 떠났고, 그 벗은 시간이 더 제 마음대로였던 만큼 필시 먼저 거기 와 있었으리라. 나는 그전에는 그 아파트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건만, 이제 그것은 나에게 소름 끼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었다. 남들의 삶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은 자연 속의 알 수 없는 부분과 같아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저마다 그것을 줄일 뿐, 없애지는 못한다. 질투하는 연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하잘것없는 수천 가지 즐거움을 빼앗아 그를 격분케 하지만, 그의 삶의 요체가 되는 그 즐거움들만은 그가 어떤 곳에 감추어 두니, 연인이 스스로 가장 영리한 통찰을 보이고 있다고, 제삼자들이 가장 촘촘히 소식을 전해 준다고 여기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는 거기를 들여다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어쨌든 앙드레는 적어도 파리를 떠날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베르틴이, 제 자신과 앙드레에게 놀아난 얼간이라며 나를 업신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조만간 나는 그에게 말하리라. 그리하여 그가 내게 감추는 것들을 그래도 내가 알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어쩌면 그가 나에게 더 솔직히 털어놓도록 몰아붙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당장은 그 이야기를 그에게 꺼내고 싶지 않았으니, 무엇보다 이모가 다녀간 지 얼마 안 되어서라 그가 내 정보의 출처를 알아채고 그 출처를 막아 버리는 한편, 다른 미지의 출처는 두려워하지 않게 될 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알베르틴을 내가 원하는 만큼 곁에 붙들어 둘 수 있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한, 그를 너무 잦게 성나게 하여 자칫 그가 나를 떠나기로 마음먹게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따져 보고, 진실을 찾고, 늘 내 온갖 계획을 옳게 여기며 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은둔이 그에게서 앗아 가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나에게 다짐하던 그의 말을 근거로 앞날을 점친다면, 나는 그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실로 그 생각에 몹시 짜증이 나서, 내가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삶을, 우주를, 이제 더는 새로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한 여인과 맞바꾼 채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베네치아조차 갈 수 없었으니, 거기 가면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곤돌라 사공이며 호텔 사람들이며 베네치아 여인들이 그에게 수작을 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무나 매섭게 시달릴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알베르틴의 말이 아니라 침묵과, 눈길과, 홍조와, 부루퉁함과, 심지어 터지는 화에 근거를 둔 또 다른 가설을 따져 본다면, 그런 것들이야 내가 얼마든지 쉽사리 근거 없음을 그에게 보일 수 있었으되 나로선 못 본 척하는 편을 택했건만, 그러면 나는, 그가 이 삶을 견딜 수 없어 하고, 내내 제가 사랑하는 것을 빼앗긴 처지에 있으며, 언젠가는 필연코 나를 떠나고야 말리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만약 그가 그런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곤, 나에게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 순간을 내가 고를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이 그가 내가 상상하는 그 방탕의 장소 어느 곳으로도, 곧 암스테르담으로도, 사실 몇 달 뒤면 다시 만나게 될 앙드레에게로도 갈 수 없는 어느 철이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나는 마음이 가라앉을 테고, 그들의 만남도 나를 흔들어 놓지 못하리라. 어쨌든 나는 그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알베르틴이 몇 시간 간격을 두고 발베크를 떠나지 않기로, 그런 다음 곧장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그 까닭을 알아냄으로써 도진 그 가벼운 재발이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무것도 새로 알지 못한다면 다만 줄어들 뿐일 그 증상들이 사라지도록 시간을 두어야 했으나, 그것들은 아직 너무 격심하여, 이제는 피할 수 없다고 인정되되 결코 급하지는 않은, 그리고 “냉정한 마음으로” 치르는 편이 나을 결별의 수술을 한결 고통스럽고 한결 어렵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알맞은 순간의 선택에 있어서는 내가 주인이었으니, 설령 내가 마음을 정하기 전에 그가 나를 떠나기로 한다 해도, 그가 이 삶에 물렸다고 내게 알리는 그 순간에, 나로선 언제라도 그의 논거에 맞설 궁리를, 더 큰 자유를 그에게 내줄 궁리를, 그 자신이 애타게 기다릴 어떤 큰 즐거움을 가까운 앞날에 약속할 궁리를, 최악의 경우 그의 마음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면 내 슬픔을 그에게 다짐할 궁리를 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이 점에서는 나도 아주 마음이 놓였으나, 다만 나 자신과의 앞뒤가 그리 맞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말과 예고를 셈에서 빼놓은 그 가설들에서는, 그가 나를 떠나는 문제가 되면 그가 미리 그 까닭을 내게 대 주어 내가 맞서 싸워 그것들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리라고 넘겨짚었기 때문이다. 나는 알베르틴과의 내 삶이, 한편으로 내가 질투하지 않을 때는 한낱 권태였고, 다른 한편으로 내가 질투할 때는 끊임없는 고통이었음을 느꼈다. 설령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다 한들, 그것은 오래갈 수 없었다. 나에게는 발베크에서 나를 이끌던 것과 똑같은 지혜의 정신이 있었으니, 캉브르메르 부인의 방문 뒤에 우리가 함께 행복하던 그 저녁에, 나는 우리의 친밀을 늘려 봤자 얻을 것이 없음을 알았기에 그를 단념하기로 마음먹었었다. 다만, 지금조차도, 내가 그에 대해 간직하게 될 기억은 우리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부터 페달로 길게 끌어낸 일종의 여운 같으리라고 나는 상상했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순간을 고르려 했으니, 내 안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것이 바로 그 순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어려워서는 안 되고, 너무 오래 기다려서도 안 되며, 신중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오래 기다린 마당에, 며칠만 더, 받아들일 만한 순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도리어 예전에 엄마가 잘 자라는 인사 없이 내 머리맡을 떠날 때, 또는 역에서 내게 작별을 고할 때 내가 느끼던 그 똑같은 반항의 심정으로 그가 떠나 버리는 것을 보는 위험을 무릅쓴다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리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그에게 베풀 수 있는 온갖 은혜를 늘려 갔다. 포르튀니 가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마침내 분홍 안감을 댄 파랑과 금빛의 것 하나로 정했는데, 마침 완성된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이것을 더 좋아하느라 그가 아쉬워하며 포기했던 나머지 다섯 벌도 주문해 두었다. 그런데 봄이 옴과 더불어, 이모가 나와 이야기를 나눈 지 두 달 뒤에, 어느 날 저녁 나는 화에 휩쓸리고 말았다. 바로 알베르틴이 처음으로 포르튀니의 금빛과 파랑의 실내복을 입은 그 저녁이었으니, 그 옷은 내게 베네치아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나에게 그에 걸맞은 고마움이라곤 조금도 느끼지 않는 그를 위해 내가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를 한결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나는 베네치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나, 아직 소년이던 시절 거기서 보내기로 되어 있던 그 부활절 휴가 때부터, 그리고 그보다도 더 앞서, 오래전 콩브레에서 스완이 내게 준 티치아노 판화와 조토 사진 이래로, 나는 그곳을 쉼 없이 꿈꾸어 왔다. 그날 저녁 알베르틴이 걸친 포르튀니 가운은 나에게 그 보이지 않는 베네치아의 유혹하는 환영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라비아풍 장식으로 우글거렸으니, 뚫린 돌 병풍 뒤에 술탄의 후궁들처럼 숨겨진 베네치아의 궁전들 같았고, 암브로시아 도서관의 장정들 같았으며, 삶과 죽음을 번갈아 상징하는 동방의 새들이 천의 거울 위로 되풀이되는 기둥들 같았으니, 그 강렬한 파랑은 내 시선이 그 위로 뻗어 나가자, 앞으로 나아가는 곤돌라들 앞에서 대운하의 하늘빛을 타오르는 금속으로 바꾸어 놓는 그 똑같은 변용에 의해, 나긋나긋한 금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매에는 어찌나 유독 베네치아다워서 티에폴로 분홍이라 불리는, 그 앵두 같은 분홍 안감이 대어져 있었다.

그날 낮에 프랑수아즈는, 내가 들으라는 듯이, 알베르틴이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내가 그와 함께 나가겠다고, 또는 나가지 않겠다고, 자동차가 그를 데리러 올 거라고, 또는 오지 않을 거라고 전갈을 보내면 그가 거의 어깨를 으쓱하고는 겨우 마지못한 대답이나 할 뿐이라고 넌지시 흘렸다. 그가 언짢은 기색이라고 느껴지고, 첫 여름 더위가 내 신경을 곤두세운 이 저녁, 나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의 배은망덕을 나무랐다. “그래, 아무한테나 물어봐.” 하고 나는 제정신이 아닌 채 목청껏 소리쳤다. “프랑수아즈한테 물어봐도 돼, 다들 아는 일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내, 알베르틴이 언젠가 내게, 내가 화를 낼 때면 얼마나 무섭던지 모른다고 했던 말을, 그리고 나에게 에스테르의 대사를 빗대었던 일을 떠올렸다.

Jugez combien ce front irrité contre moi
Dans mon âme troublée a dû jeter d’émoi.
Hélas sans frissonner quel coeur audacieux
Soutiendrait les éclairs qui partent de ses yeux.

나는 내 격한 태도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일을 만회하되, 그렇다고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으려고, 그리하여 내 평화가 무장한, 위압적인 평화가 되도록, 동시에 그녀가 나와 결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파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말했다. “미안해, 내 귀여운 알베르틴, 내 격한 태도가 부끄러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함께 잘 지낼 수 없다면, 헤어져야만 한다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돼, 그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 헤어져야 한다면 헤어지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나는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겸허히 네게 용서를 빌고 싶어.” 나는 내 무례를 속죄하기 위해서, 또한 그녀가 얼마간, 적어도 앙드레가 파리를 떠날 삼 주 뒤까지는 내 곁에 머물 마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튿날 그녀가 지금껏 누린 어떤 것보다 크고 이루어지기까지 꽤 더딘 어떤 즐거움을 궁리하는 편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내가 그녀에게 준 상처를 지워 없앨 참이었으니, 이 순간을 이용해 내가 그녀의 생활을 그녀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도 좋으리라 싶었다. 그녀가 느낄 원망은 이튿날 내 다정함으로 가시겠지만, 그 경고만은 그녀의 마음에 남으리라. “그래, 내 귀여운 알베르틴, 내가 격했다면 용서해 줘. 나도 네가 생각하는 만큼 다 잘못한 건 아니야. 세상에는 우리를 다투게 만들려는 못된 사람들이 있어. 나는 너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늘 이 이야기를 삼가 왔어. 하지만 이따금 어떤 고발들 때문에 나는 정신이 나가 버려. 이를테면,”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요즘 그것들이 나를 괴롭혀,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앙드레와 어떤 사이라는 소문으로 나를 못살게 굴어.” “앙드레와?” 그녀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그리고 놀라움이, 혹은 놀란 척하고 싶은 마음이 그녀의 두 눈을 크게 벌어지게 했다. “참 근사하네! 그런 예쁜 이야기를 누가 당신한테 들려줬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그들이 무얼 근거로 그런 험담을 하는지 들어 봐도 될까?” “내 귀여운 알베르틴, 나도 몰라, 편지가 익명이거든, 하지만 아마 네가 어렵지 않게 찾아낼 만한 사람들일 거야” (이건 내가 그녀가 정말 찾아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려는 말이었다) “그들은 너를 꽤 잘 아는 게 틀림없으니까. 마지막 편지는, 솔직히 말하면 (사소한 걸 다루고 있고, 조금도 불쾌한 내용은 없어서 말하는 건데) 그래도 나를 분통 터지게 했어. 우리가 발베크를 떠나던 날, 네가 처음에는 거기 남고 싶어 했다가 이내 떠나기로 마음을 바꿨다면, 그건 그사이 앙드레가 오지 않겠다는 편지를 네게 보냈기 때문이라는 거야.” “앙드레가 오지 않겠다고 편지한 건 나도 잘 알아, 사실은 전보를 쳤지. 그 전보는 안 갖고 있어서 보여 줄 수 없지만, 그날이 아니었어. 앙드레가 오든 안 오든 나한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 “앙드레가 오든 안 오든 나한테 무슨 상관이 있다고”라는 말은 분노의 증거이자 ‘상관이 있었다’는 증거였지만, 알베르틴이 오로지 앙드레를 보고 싶어서 파리로 돌아왔다는 증거인 것은 아니었다. 알베르틴은 자기 행동의 실제 동기든 표면상 내세운 동기든, 그중 하나가 자기가 다른 동기를 둘러댄 상대에게 들통나는 것을 볼 때마다, 설령 그 상대가 바로 그녀가 진정 그를 위해 그 행동을 한 사람이라 해도 화를 냈다. 알베르틴이 자기가 해 온 일에 관한 이 정보가 내 뜻과 무관하게 익명 편지로 내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안달하며 캐낸 것이라 여겼다는 사실은, 그녀가 이어서 내뱉은 말들, 즉 겉으로는 익명 편지라는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듯한 그 말들에서는 결코 짐작할 수 없었고, 오히려 나를 향한 그녀의 분노 어린 태도에서 드러났는데, 그 분노는 앞서의 언짢은 기분이 그저 터져 나온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이 가정대로라면 그녀가 내가 해 왔으리라 여길 그 염탐 역시, 오래전부터 그녀가 조금도 의심치 않았던, 자기 모든 행동에 대한 감시가 극에 달한 것에 불과했으리라. 그녀의 분노는 앙드레 자신에게까지 미쳤고, 이제부터는 그녀가 앙드레와 외출하더라도 내가 결코 마음 편할 리 없으리라 짐작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앙드레는 정말 지긋지긋해. 어찌나 따분한지 몰라. 다시는 그 애랑 어디도 같이 가고 싶지 않아. 내가 앙드레 때문에 파리로 돌아왔다고 당신한테 일러바친 사람들한테 그렇게 전해도 돼. 내가 앙드레를 알고 지낸 그 오랜 세월에도, 그 애 얼굴 하나 당신한테 제대로 그려 보일 수 없다고 하면 믿겠어? 거의 쳐다본 적도 없거든!” 그런데 발베크에서, 그 첫해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앙드레는 사랑스러워.” 물론 이 말이 그녀가 앙드레와 연애 관계였다는 뜻은 아니었고, 실제로 나는 그 무렵 그녀가 그런 종류의 관계라면 어떤 것이든 분개하며 말하는 것밖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변한 줄도 모른 채, 어떤 여자친구와의 장난이 자기가 다른 여자들에게서 단죄하던, 그녀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뚜렷이 규정되지 않은 그 부도덕한 관계와 같은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변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또한 이와 똑같은 변화가, 그리고 변화에 대한 이와 똑같은 무자각이, 나와의 관계에서도 일어났을 수 있지 않은가? 발베크에서 그토록 분개하며 내 입맞춤을 밀어냈으면서, 그 뒤로는 매일 제 쪽에서 내게 내주게 된,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내주려니와 이제 곧 내줄 그 입맞춤을 말이다. “하지만 내 사랑, 내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말하란 말이야?” 이 대답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알베르틴의 눈동자 속에 응결된 것을 내가 본 이의와 의심을 녹여 없앴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 나는 잠자코 있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아직 말을 다 끝내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가 보내는 그 집요한 주의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내게 용서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무척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슬프고 불안한 얼굴빛 아래로, 어떤 비밀이 형체를 잡아 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내게 알리지 않고서는 나를 떠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게다가 그녀는 떠나고 싶어 할 수도 없었으며 (새 포르튀니 가운을 입어 보기로 한 것이 일주일 뒤였다), 점잖게 그럴 수도 없었으니, 어머니가 주말께 파리로 돌아오고 그녀의 이모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도, 나는 어째서 이튿날 함께 나가 내가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베네치아 유리 세공품을 보러 가자고 그녀에게 몇 번이나 되풀이했으며,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는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어째서 마음이 놓였을까? 그녀가 내게 밤 인사를 하고 내가 입 맞출 시간이 되자, 그녀는 여느 때와 달리 몸을 옆으로 돌렸다. 발베크에서 내게 거부하던 것을 이제 저녁마다 내주니 얼마나 기꺼운 일인가 하고 내가 생각한 지 채 일이 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는 내 입맞춤에 답하지 않았다. 마치 나와 다투었으니, 나중에 내게 그 다툼에 대한 배신적 부인처럼 비칠 애정의 표시를 내줄 마음이 없다는 듯했다. 마치 그녀가 자기 행동을 그 다툼에 맞추어 조율하되,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나와의 육체적 관계는 끊으면서도 여전히 내 친구로는 남고 싶어서인지, 절제를 두고 그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두 번째로 껴안으며, 죽음과 부활의 상징인 대운하의, 거울처럼 비치고 금빛으로 물든 쪽빛과 짝짓는 새들을 내 가슴에 끌어당겼다. 그러나 두 번째에도 그녀는 물러났고, 내 입맞춤에 답하는 대신, 죽음의 손길을 느끼는 짐승들의 본능적이고 숙명적인 완고함 같은 것으로 몸을 빼냈다. 그녀가 드러내는 듯한 이 예감은 나까지 사로잡아, 어찌나 불안한 경악으로 나를 채웠던지, 그녀가 문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녀를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불러 세웠다. “알베르틴,”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난 조금도 졸리지 않아. 너도 자고 싶지 않다면, 괜찮다면 여기 좀 더 있어도 돼, 하지만 꼭 그러라는 건 아니야, 널 지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니까.” 나는 만약 그녀를 옷 벗게 해서, 흰 잠옷 차림으로, 그 옷을 입으면 더 발그레하고 더 따뜻해 보이며 내 감각을 더 예리하게 자극하는 그 모습으로 곁에 둘 수 있었다면, 화해가 더 온전했으리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잠시 망설였는데, 그녀 가운의 푸른 가장자리가 그녀 얼굴에 아름다움을, 광채를, 하나의 하늘을 더해 주어, 그것이 없으면 그녀가 내게 더 매정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천천히 되돌아와, 여전히 그 풀 죽고 슬픈 표정으로, 아주 다정하게 내게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있을게, 졸리지 않으니까.” 그녀의 대답은 나를 진정시켰으니, 그녀가 방 안에 있는 한 나는 미래를 궁리할 수 있다고 느꼈고, 또 그것이 우정을, 순종을 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종류의 순종이어서, 그녀의 슬픈 눈길과, 반쯤은 자기도 모르게, 반쯤은 필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 미리 맞추려고 달라진 그 태도 뒤에 있다고 내가 느낀 그 비밀에 그 순종이 갇혀 있는 듯했다. 나는 그럼에도, 발베크에서 침대에 누운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그녀를 온통 흰옷 차림으로, 목을 드러낸 채 내 앞에 두기만 하면, 그녀가 몸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용기를 얻으리라 느꼈다. “이렇게 친절히 잠깐 여기 남아 날 위로해 주니, 가운을 벗는 게 좋겠어, 너무 덥고 너무 뻣뻣하잖아, 그 고운 천을 구길까 봐 다가가지도 못하겠고, 우리 사이엔 저 상징적인 새들이 있잖아. 옷을 벗어, 내 사랑.” “안 돼, 여기서 이 옷을 벗을 순 없어. 이따 내 방에서 벗을게.” “그럼 내 침대에 와서 앉지도 않을 거야?” “왜, 그야 앉지.” 그래도 그녀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채, 내 발치에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때 마치 알베르틴이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음을 안다. 사건이란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보다 더 커서 그 안에 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사건은 우리가 간직하는 기억을 통해 미래로 흘러넘치지만, 그에 앞선 시간 속에도 자리를 요구한다. 우리가 그때는 사건을 장차 될 모습대로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기억 속에서도 그것은 변형되는 것이 아닐까?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