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1장: 슬픔과 망각 ⑦

6권 · 제1장: 슬픔과 망각

그대에게, 앙드레를 곁에 두려는 그대의 계획을 내게 일러 줌으로써 보여 준 그 신뢰의 증거에 나는 고마움을 전해야겠어요. 그녀는 분명 기꺼이 응할 테고, 나는 그것이 그녀에게 아주 좋은 일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재능이라면, 그대 같은 사람과의 벗함을, 또 그대가 다른 이들에게 용케 확보해 내는 그 감탄스러운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살릴 수 있을지 알 거예요. 나는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못지않게 그녀에게도 그만큼 좋은 것이 샘솟을 수 있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느껴요. 그러니 혹시 그녀가 조금이라도 난색을 보인다면(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게 전보를 쳐 줘요, 내가 그녀를 다그치는 일을 맡을게요.”

두 번째 편지에는 그 이튿날 날짜가 적혀 있었다.(실은 그녀는 두 편지를 몇 분 간격으로, 어쩌면 아무 간격도 없이 썼고, 첫 번째 편지에는 날짜를 앞당겨 적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내내 그녀의 속셈에 대해 터무니없는 생각을 품어 왔는데, 그 속셈이란 오직 이것, 곧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었으며, 이 일에 아무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 상상력이 모자란 사람, 강화 조약의 전권 대사, 거래를 따져 보아야 하는 상인이라면 나보다 더 정확히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편지에는 오직 이런 말만 적혀 있었다.

“제가 당신께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었나요? 아직 앙드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셨다면, 저를 다시 받아 주실 마음이 있으신가요? 당신의 결정에 따르겠지만, 부디 오래 끌지 말고 알려 주세요. 제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릴지 짐작하실 거예요. 돌아오라는 뜻이라면, 당장 기차를 타겠어요. 온 마음을 담아, 당신의 알베르틴.”

알베르틴의 죽음이 내 고통을 잠재울 수 있으려면, 그 낙마의 충격이 투렌에서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그녀를 죽였어야 했다. 내 안에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타인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려면, 먼저 어떤 형상을 취하고 그 순간의 환경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순간순간의 섬광이 잇따르는 형태로만 나타나므로, 그는 한 번에 자기 자신의 한 면모밖에, 자기 자신의 사진 한 장밖에 우리에게 건네지 못한다. 한 사람이 한낱 순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약점이다. 그러나 커다란 강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억에 의존하는데, 어떤 순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새겨 둔 그 순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와 더불어 그 안에 형상이 그려진 사람도 살아 있다. 게다가 이 분해는 죽은 이를 살릴 뿐 아니라, 그를 여럿으로 늘려 놓는다. 위안을 얻으려면 내가 먼저 잊어야 할 것은 한 명의 알베르틴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베르틴이었다. 이 알베르틴을 잃은 슬픔을 견디는 단계에 이르고 나면, 나는 또 다른 알베르틴을, 백 명의 다른 알베르틴을 상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리하여 내 삶은 온통 달라졌다. 내 삶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알베르틴 덕분이 아니라 그녀와 나란히, 내가 혼자 있을 때, 다름 아닌 똑같은 순간들의 부름에 응해 과거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일이었다. 빗소리에서 나는 콩브레 라일락 향기를 되찾았고, 발코니에 비치는 햇살의 움직임에서 샹젤리제의 비둘기를, 아침나절 열기 속에 온갖 소음이 잦아드는 데서 서늘한 버찌 맛을, 바람 소리와 부활절의 돌아옴에서 브르타뉴나 베네치아를 향한 그리움을 되찾았다. 여름이 가까웠고, 낮은 길었으며, 날씨는 따뜻했다. 그 계절은, 이른 아침 학생들과 교사들이 나무 아래에서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려고 공원으로 나와, 한낮의 열기만큼 뜨겁지는 않으나 이미 그만큼이나 메마르게 맑은 하늘이 떨어뜨려 주는 단 한 방울의 서늘함이라도 짜내려 애쓰는 때였다. 어두운 방에서, 지난날과 다름없는 환기의 힘을 지녔으나 이제는 고통밖에 불러내지 못하는 그 힘으로, 나는 바깥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대기 속에서, 지는 해가 집들과 성당들의 수직 벽면에 황갈색 도료를 바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가 들어오면서 무심코 안쪽 커튼을 젖히기라도 하면, 오래전 그 햇살, 알베르틴이 나에게 “복원된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내 눈에 마르쿠빌로르괴외즈의 현대식 정면을 아름답게 보이게 했던 그 햇살이 내 가슴에 그어 놓는 상처에, 나는 아프다는 외침을 삼켰다. 내 신음을 프랑수아즈에게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몰라, 나는 그녀에게 “아, 목이 너무 마르구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방을 나갔다가 돌아왔지만, 나는 사방의 어둠 속에서 시시각각 눈앞에 터져 나오는 그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기억 가운데 하나가 고통스럽게 쏟아지는 데 쓰라려하며 홱 몸을 돌렸다. 그녀가 사과주 한 병과 버찌 한 접시를 들여온 것을 나는 알아챘던 것이다. 발베크에서 어느 농장 소년이 마차에 있던 우리에게 내다 준 것들, 그 시절 무더운 날 덧문 닫힌 식당의 프리즘 같은 어스름한 빛 속에서라면 내가 더없이 완전한 성찬으로 나누었을 그런 “먹을거리”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레제코르라는 농장을 떠올렸고,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이 나에게 시간을 낼 수 없다고, 이모와 함께 어딘가에 가야 한다고 말하던 날들에, 그녀는 어쩌면 내가 좀처럼 가지 않는 줄 아는 어느 농장에서 여자 친구들 가운데 누군가와 함께 있었으리라고, 그리고 내가 마리앙투아네트에서 “아뇨, 오늘은 못 봤는데요”라는 말을 들으며 애타게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친구에게, 우리가 함께 외출할 때 나에게 하곤 하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이는 여기서 우리를 찾을 생각은 절대 못 할 테니, 방해받을 걱정은 없어.” 나는 그 햇살을 보지 않으려고 프랑수아즈에게 커튼을 마저 치라고 일렀다. 그러나 햇살은 여전히, 똑같이 부식시키듯, 내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난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복원된 거잖아요, 그래도 내일은 생마르르베튀에 가고, 모레는…” 내일, 모레, 그것은 어쩌면 영원히, 함께 나눌 삶의 전망이 열리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그리로 뛰어들었으나, 그것은 이미 거기 없었고, 알베르틴은 죽어 있었다.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여섯 시였다. 이제야, 다행히, 지난날 내가 알베르틴에게 투덜대곤 했으나 우리가 그토록 즐기던 그 숨 막히는 더위가 걷힐 참이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서늘한 저녁 공기가 들어왔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내 기억 속에서 지는 해, 그녀와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던 어느 길의 끝에서 지는 해였다. 가장 먼 마을보다도 더 아득한 그 해는, 그날 저녁 안에는 닿을 수 없는 어느 먼 도시 같았고, 그 저녁을 우리는 여전히 함께 발베크에서 보내곤 했다. 그때는 함께였다. 이제 나는 바로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우뚝 멈춰 서야 했다. 그녀는 죽었으니까. 이제 커튼을 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서쪽 하늘의 그 주황빛 띠를 보지 않으려고, 그때 이제는 죽은 그녀에게 그토록 다정하게 안겨 있던 내 양옆에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화답하는 그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내 기억의 눈과 귀를 막으려 애썼다. 나는 저녁 공기 속 잎사귀의 축축함이, 노새가 다니는 길의 가파른 오르내림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그 감각들을 피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감각들은 어느새 나를 새삼 사로잡았고, 알베르틴이 죽었다는 그 생각을 현재의 순간에서 충분히 멀리 뒤로 물려, 나를 다시금 후려치는 데 필요한 온갖 반동과 탄력을 그 생각이 그러모으게 했다. 아! 나는 다시는 숲에 들지 못하리라, 넓게 우거진 나무들 아래를 더는 거닐지 못하리라. 그러나 드넓은 평원이라고 내게 덜 잔인할까? 알베르틴을 찾아 나서며 나는 크리크빌의 그 드넓은 평원을 몇 번이나 가로질렀던가, 그녀와 함께 돌아오며 몇 번이나 그리로 들어섰던가. 어떤 때는 안개 낀 날씨에 자욱한 물안개가 우리를 드넓은 호수가 에워싼 듯한 착각에 빠뜨렸고, 또 어떤 때는 맑은 저녁에 달빛이 대지를 비물질화하여, 낮에는 오직 먼 지평선에서나 그렇게 보이는 천상의 빛을 한 걸음 앞의 대지에까지 띠게 하고는, 들판과 숲을, 자신이 하나로 녹여 낸 창공과 더불어, 온 세상에 감도는 푸른빛의 이끼마노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프랑수아즈로서는 알베르틴의 죽음을 반기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그녀를 위해 공정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눈치 빠른 관례에 따라 그녀는 슬픈 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득한 규범이 정한 불문율과, 기사도 이야기에서처럼 우는 중세 농사꾼 아낙의 전통은, 알베르틴을 향한, 나아가 욀라리를 향한 그녀의 증오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런 늦은 오후 어느 날, 내가 미처 재빨리 슬픔을 감추지 못하자, 그녀는 내 눈물을 알아보았다. 한때 그녀로 하여금 짐승을 붙잡아 괴롭히게 하고, 닭의 목을 비틀며 가재를 산 채로 삶으며 오직 재미만을 느끼게 하고, 내가 아플 때면 마치 올빼미에게 입힌 상처라도 살피듯 내 괴로운 표정을 뜯어보게 하던, 늙수그레한 시골 아낙 특유의 본능이 그녀를 부린 것이었다. 그 표정을 그녀는 나중에 무덤 속 같은 음성으로, 닥쳐올 재앙의 전조인 양 떠벌리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콩브레식 “관습법”은 눈물이며 슬픔을 가벼이 다루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녀가 보기에 그것들은 봄에 플란넬 속옷을 벗어 버리거나 “입맛”이 없는데도 억지로 먹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인 일이었다. “아이고, 안 됩니다, 도련님. 그렇게 우시면 못써요, 몸에 해로워요.” 그러고는 내 눈물을 막으려 애쓰며, 그녀는 그것이 마치 피가 콸콸 쏟아지기라도 하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쌀쌀한 태도를 취해, 그녀가 실컷 쏟아 놓고 싶어 하던, 게다가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를 그 넋두리를 끊어 버렸다. 알베르틴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어쩌면 욀라리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는데, 이제 내 연인이 나에게서 아무 이득도 취할 수 없게 되자 프랑수아즈는 그녀를 미워하기를 그쳤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우리 집안이 보여 준 한심한 본을 따라 그것을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가 훤히 안다는 티를 나에게 내지 않고는 못 배겼다. “우시면 안 됩니다, 도련님.” 이번에는 한결 차분한 어조로, 나를 딱하게 여겨서라기보다 자신의 눈썰미를 증명하려는 심산으로 그녀가 나를 타일렀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 될 일이었어요. 그 아가씨는 너무 행복했지요, 가엾게도,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도 몰랐고요.”

이 끝없는 여름 저녁이면 낮은 얼마나 더디게 스러지는가. 맞은편 집의 창백한 유령은 하염없이 하늘에 제 끈질긴 흰빛을 그려 내고 있었다. 마침내 실내가 어두워졌다. 나는 현관에서 가구에 부딪혔지만, 계단으로 통하는 문에서는, 완전한 줄로만 알았던 어둠 한가운데서, 유리 낀 창이 반투명하게 푸르렀다. 꽃의 푸른빛, 곤충 날개의 푸른빛, 만약 내가 그것을 마지막 반영으로, 강철 칼날처럼 예리한, 낮이 지칠 줄 모르는 잔인함으로 여전히 나에게 내리치는 최후의 일격으로 느끼지만 않았더라면 아름답게 보였을 그런 푸른빛이었다. 그러나 끝내 어둠이 완전해지자, 이번에는 안뜰 나무 하나 뒤로 언뜻 보이는 별 하나만으로도, 저녁 식사 뒤 우리가 마차를 타고 달빛이 카펫처럼 깔린 샹트피 숲으로 떠나곤 하던 일이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거리에서조차, 이따금 나는 벤치 등받이 위에 한 줄기 달빛의 자연스러운 순수함을 따로 떼어 그러모을 수 있었으니, 파리의 인공 불빛 한가운데서, 그 달빛이 도시를 잠시 내 상상 속에서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며, 어렴풋이 떠오르는 들판의 끝없는 침묵과 더불어, 알베르틴과 함께 그 들판을 거닐던 가슴 미어지는 기억을 그 파리 위에 왕좌처럼 올려놓았던 것이다. 아! 밤은 언제나 끝나려는가? 그러나 새벽의 첫 서늘한 숨결에 나는 몸을 떨었으니, 그것이 내 안에 그 여름의 기쁨을, 발베크에서 앵카르빌로, 앵카르빌에서 발베크로, 동이 틀 때까지 우리가 몇 번이고 서로를 집까지 바래다주던 그 여름의 기쁨을 되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에 대해 내게 남은 희망은 오직 하나, 어떤 두려움보다도 훨씬 더 가슴 미어지는 희망, 곧 내가 알베르틴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를 잊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질베르트를, 게르망트 부인을 까맣게 잊었고, 할머니마저 까맣게 잊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더는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떼어 낼 때 쓰는, 무덤의 망각만큼이나 고요한 그토록 완전한 망각에 대해, 우리가 받는 가장 마땅하고도 가장 잔인한 벌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의 경우에도 바로 그 같은 망각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내다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 무관심의 상태임을 안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 언젠가 될 나를 동시에 떠올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애무와 입맞춤과 다정한 잠으로 이루어진, 나를 감싸던 그 모든 외투를, 이윽고 영영 벗어 던지도록 내맡겨야 할 그것을 절망 속에서 떠올렸다. 이 다정한 기억들이 밀려와 알베르틴이 죽었다는 앎에 부딪혀 부서지며, 그 좌절한 물결들이 끊임없이 부딪는 통에 나는 짓눌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그러나 별안간 나는 아연실색하여 멈춰 섰다. 그녀의 입맞춤으로 아직 환하고 따스한 채 막 알베르틴 곁을 떠나던 순간 내가 보곤 하던 바로 그 희미한 여명이, 방 안으로 들어와 커튼 위로 그 칼날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제는 불길한 전조가 된 그 칼날의 흰빛은, 차갑고 냉혹하고 야무진 채, 내 심장에 꽂히는 단검처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거리의 소리들이 시작되어, 나는 그 울림의 질적인 눈금으로부터, 그 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꾸준히 더해 가는 더위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면 버찌 향기에 흠뻑 젖어들 그 더위 속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 (성분 하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만 해도 자극제요 강장제이던 것이 쇠약케 하는 약으로 뒤바뀌는 약처럼) 더는 여자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알베르틴이 떠나 버렸다는 괴로움이었다. 게다가 내 모든 욕망의 기억은, 내 쾌락의 기억이 그러하듯, 그녀로, 그리고 고통으로 흠뻑 배어 있었다. 그녀가 동행하면 성가시리라고 여겼던 그 베네치아를 (틀림없이 그녀의 동행이 내게 꼭 필요하리라고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알베르틴이 없고 보니, 나는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알베르틴은 나에게, 나와 그 밖의 모든 것 사이에 끼어든 장애물처럼 보였는데, 나에게 그녀는 모든 것을 담은 그릇이었고, 마치 항아리에서 받아 내듯 내가 온갖 것들을 받아 낼 수 있는 대상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 항아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보니, 나는 온갖 것들을 붙잡을 용기가 더는 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넋을 잃은 채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이, 맛보지 않는 편을 택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와의 이별은, 그녀의 존재 때문에 내게 닫혀 있다고 여겼던 온갖 가능한 쾌락의 벌판을 조금도 열어 주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면 정말로 내 여행과 삶의 향유를 가로막았을 그녀의 존재라는 장애물은 (늘 그러하듯) 다른 장애물들을 가린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그 첫 번째 장애물이 치워지자 다른 장애물들은 고스란히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지난날 어떤 친구가 나를 찾아와 내 작업을 방해했을 때, 이튿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남겨진들 내가 조금도 더 잘 일하지는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병이든 결투든 날뛰는 말이든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한다고 하면, 이제 막 우리에게서 빼앗기려는 그 쾌락의 삶을,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을 우리는 얼마나 흠뻑 누렸을 것인가. 그러나 위험이 지나가기가 무섭게, 우리 앞에 다시 놓이는 것은 그 어떤 기쁨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던 바로 그 지루한 삶이다.

이토록 짧은 이 밤들도 물론 한철 잠깐 이어질 뿐이다. 머지않아 겨울이 다시 돌아오면, 너무 이른 새벽까지 이어지던 그녀와의 마차 나들이의 기억을 나는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러나 첫서리는, 제 냉장고 속에 고이 간직해 둔, 내 첫 욕망의 씨앗을 나에게 도로 가져다주지 않을까. 한밤중에 내가 그녀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고, 그녀가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시간이 그토록 길게만 느껴지던 그때의 씨앗을. 이제는 부질없이 영영 기다리기만 할 그 소리를. 그것들은, 두 번씩이나 그녀가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내 첫 불안의 씨앗을 나에게 도로 가져다주지 않을까? 그 무렵 나는 그녀를 좀처럼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의 방문과 방문 사이에 놓인, 여러 주가 지난 뒤에야 내가 굳이 손에 넣으려 애쓰지 않는 미지의 삶 한가운데서 그녀를 불쑥 나타나게 하던 그 간격들조차, 끊임없이 가로막혀 있던 내 질투의 첫 낌새가 응고하여 내 가슴속에 단단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을 막아 줌으로써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 주었다. 그 이른 시절에 그것들이 마음을 달래 주었던 만큼, 돌이켜 보면 그것들에는 그만큼 고통의 낙인이 찍혀 있었으니, 그 간격이 이어지는 동안 그녀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온갖 알 수 없는 일들이 이제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기를 그쳤기 때문이고, 더구나 이제는 그녀의 방문이 두 번 다시 내 몫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찾아오곤 하던, 바로 그 까닭에 그토록 소중했던 그 1월의 저녁들은, 이제 그 살을 에는 바람과 더불어 그때는 내가 알지 못하던 불안을 내 안에 불어넣을 것이며, (그러나 이제는 해로운 것이 되어 버린) 내 사랑의 첫 씨앗을 나에게 도로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리고 질베르트와 함께하던 시절과 샹젤리제에서 놀던 시간 이래로 늘 그토록 울적하게만 보이던 그 추운 계절을 머지않아 다시 맞이하리라는 것을 헤아릴 때, 밤이 깊도록 부질없이 알베르틴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눈 내리던 저녁 같은 저녁들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할 때, 그러면 폐병 환자가 제 폐를 위해 신체적 관점에서 가장 좋은 곳을 고르듯, 다만 내 경우에는 정신적인 선택을 하며, 그런 순간에 내 슬픔을 위해, 내 가슴을 위해 내가 여전히 가장 두려워한 것은 그 혹독한 추위의 귀환이었고, 견뎌 내기 가장 힘든 것은 어쩌면 겨울이리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알베르틴의 기억은 계절마다 얽혀 있었으므로, 그것을 떨쳐 내려면 나는 먼저 그 계절들을 모조리 잊고서, 중풍을 앓은 노인이 다시 글 읽기를 배우듯, 그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알아 가기를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온 우주를 단념해야 했을 것이다. 나 자신의 실제 소멸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으리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자기 자신의 죽음이 불가능한 것도 유별난 것도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우리 뜻과 어긋나게, 우리 삶의 나날마다 이루어지며, 나는 자연뿐 아니라 우연한 사정이며 순전히 관습적인 질서가 한 계절 속에 끌어들이는 온갖 날들이 되풀이되는 것을 견뎌 내야 할 터였다. 머지않아, 내가 그 이전 여름에 발베크로 갔던 그날이 돌아올 터였다. 그때 내 사랑은 아직 질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니었고, 알베르틴이 온종일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도 않았으며, 가장 최근 시기의 그토록 특수한 사랑이 되기까지 아직 그토록 많은 변전을 거쳐야 했으니, 알베르틴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여 종지부를 찍은 이 마지막 한 해가 나에게는 온 한 세기처럼 가득하고 다채롭고 광대하게 보였다. 그다음에는, 되살아나는 데 더 더디지만 훨씬 더 이른 해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날들의 기억이 찾아올 터였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출한 비 오는 일요일이면, 텅 빈 오후에, 지난날 같으면 바람과 빗소리가 나에게 집에 남아 “다락방에서 사색에나 잠기라”고 이르곤 하던 그때, 나는 얼마나 마음 졸이며 그 시각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던가. 그토록 뜻밖에 알베르틴이 나를 찾아와 처음으로 나를 어루만지다가, 프랑수아즈가 등불을 들여오는 바람에 그만두던 그 시각을. 알베르틴이 나에게 관심을 두던, 그녀를 향한 내 애정이 그토록 강한 희망을 정당하게 키울 수 있던, 이제는 갑절로 죽어 버린 그 시절의 그 시각을. 철이 더 깊어진 뒤에도, 부엌과 여학교의 창문들이 길가 사당처럼 훤히 열려, 우리 바로 곁에서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저 신화적 존재 속으로 파고들고 싶은 열띤 갈망을 우리에게 불어넣는 그 반신(半神)의 처녀들로 거리가 스스로 왕관을 두르게 하던 그 눈부신 저녁들도, 이제는 나에게 알베르틴의 애정밖에는, 그녀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던 그 애정밖에는 떠올려 주지 않았다.

게다가, 순전히 자연스러운 시간들의 기억에조차, 그 하나하나를 저마다 별개의 것으로 만드는 정신적 배경이 어쩔 수 없이 덧붙곤 했다. 훗날, 거의 이탈리아 같은 첫 화창한 아침에 염소치기의 뿔피리 소리를 듣게 되면, 뒤이은 하루는 그 햇살에다 잇따라,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 어쩌면 레아와 그 두 처녀와 함께 있음을 아는 불안을, 그다음에는 그때는 나에게 거추장스럽게만 여겨졌으되 프랑수아즈가 집으로 데려오던, 거의 아내와도 같던 그녀의 상냥하고 가정적인 다정함을 뒤섞곤 했다. 프랑수아즈와 함께 돌아오고 있는 알베르틴의 고분고분한 경의를 나에게 전해 준 프랑수아즈의 그 전화 전갈을, 나는 그때 그것이 나를 자부심으로 우쭐하게 한다고 여겼다. 나는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것이 나를 들뜨게 했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정말로 내 것이며, 오직 나를 위해 살고, 멀리 떨어져서도, 내가 굳이 그녀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나를 제 주인이자 임자로 여겨 내 신호 한 번에 집으로 돌아온다고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전화 전갈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온 한 조각 감미로움이었으니, 나를 향해 위안의 분자들을, 치유의 향유를 보내오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있음이 증명된 그 트로카데로 쪽에서 보내온 것이었고, 마침내 나에게 그토록 값진 마음의 자유를 돌려주어, 나는 단 하나의 근심에도 매이지 않은 채 바그너의 음악에 나를 내맡기고서, 알베르틴이 틀림없이 도착하기를, 열도 없이, 조바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 조바심 없음 속에서 나는 참된 행복을 알아볼 눈썰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온다는, 그녀가 나에게 순종하며 내 것이 된다는 이 행복, 그 까닭은 자부심이 아니라 사랑에 있었다. 내 명령 한마디에 쉰 명의 여자가, 내 신호에 트로카데로가 아니라 인도에서 돌아온다 한들, 이제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내가 방에 홀로 앉아 음악을 틀어 놓은 사이 알베르틴이 고분고분 나에게로 오고 있음을 의식하며, 나는 햇살 속 티끌처럼 흩어져 있던, 다른 것들이 몸에 이롭듯 영혼에 이로운 그런 물질 가운데 하나를 들이마셨던 것이다. 그러고는 삼십 분 뒤 알베르틴이 돌아왔고, 뒤이어 돌아온 알베르틴과의 마차 나들이가 있었으니, 그 나들이는 나에게 확실함이 함께했기에 지루하게 여겨졌으되, 바로 그 확실함 덕분에, 프랑수아즈가 알베르틴을 집으로 데려온다고 나에게 전화한 그 순간부터, 뒤따른 시간들 위로 황금빛 고요를 흐르게 했고, 그 시간들을 말하자면 첫날과는 사뭇 다른 둘째 날로 만들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정신적 토대를 지녔기 때문인데, 그 정신적 토대가 그 하루를, 내가 전에 알던 갖가지 날들에 새로이 더해지는 독창적인 하루로 만들었으니,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나날의 달력에 그런 날이 없다면 여름날의 그 달콤한 나른함을 상상할 수 없듯)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하루였고, 내가 그것을 기억한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는 하루였다. 왜냐하면 이제 그 고요에 나는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괴로움을 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훨씬 나중에, 내가 알베르틴을 그토록 사랑하기 전에 지나온 시간들을 거꾸로 하나씩 되짚어 갈 때, 흉터 진 내 가슴이 죽은 알베르틴에게서 고통 없이 떨어져 나올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 그대로 있지 않고 프랑수아즈와 함께 물건을 사러 갔던 그날을 고통 없이 마음껏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그날을, 그때까지 알지 못하던 정신적 계절에 속한 날로서 즐겁게 떠올렸다. 나는 그날을, 이제는 아무 고통도 더하지 않고, 마음껏 있는 그대로 떠올렸으니, 도리어, 한창일 때는 너무 덥다고 여겼다가 다 지나간 뒤에야 순금의 순도와 스러지지 않는 창공을 그로부터 뽑아내는 여름의 어떤 날들을 떠올리듯 그리했다.

그리하여 이 여러 해는 내 알베르틴의 기억 위에, 바로 그것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잇따른 채색을, 갖가지 변조를 덧입혔다. 그것은 6월의 늦은 오후에서 겨울 저녁에 이르기까지, 달빛 어린 바다에서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밝아 오던 새벽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눈에서 생클루의 낙엽에 이르기까지, 그 계절이나 시간의 변조만이 아니라, 내가 잇따라 품었던 알베르틴에 대한 저마다의 관념의, 그 순간순간 내가 그녀를 그려 보던 외양의 변조이기도 했고, 그 계절 동안 내가 그녀를 만난 빈도의 변조이기도 했으니, 그 빈도에 따라 그 계절 자체가 다소간 흩어져 보이기도 촘촘해 보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나를 기다리게 하여 안겼을지 모를 불안, 어느 순간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욕망, 품었다가 이내 부서진 희망의 변조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그것에 결부된 빛이나 향기의 인상 못지않게 나의 회고적 슬픔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고, 내가 살아온 태양의 해들을 하나하나 채워 주었다. 그 해들은, 저마다의 봄과 나무와 산들바람만으로도, 그녀에 대한 떼어 낼 수 없는 기억 때문에 이미 그토록 서글펐는데, 그 하나하나에, 시간이 태양의 위치가 아니라 밀회를 기다리는 긴장으로 정해지고, 낮의 길이며 기온의 변화가 계절이 아니라 내 희망의 치솟는 비상으로, 우리 사이가 친밀해져 가는 진전으로, 그녀 얼굴이 서서히 변모해 가는 것으로, 그녀가 떠났던 나들이로, 그녀가 부재중에 나에게 써 보낸 편지의 잦기와 문체로, 돌아왔을 때 나를 보고 싶어 하던 다소간의 애타는 마음으로 정해지던, 일종의 감정의 해를 곁들여 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 계절의 변화가, 이 서로 다른 날들이 저마다 나에게 새로운 알베르틴을 안겨 주었다면, 그것은 비슷한 순간들을 나에게 떠올려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내가 사랑에 빠지기 전에도 늘, 하루하루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다른 지각을 지녔기에 다른 욕망에 이끌리는 사람으로, 간밤에는 절벽과 폭풍만을 꿈꾸었으되, 경솔한 봄 새벽이 잠의 집의 벌어진 문틈으로 장미 향기를 스며들게 하면, 눈을 뜨자마자 이탈리아로 떠날 채비로 들뜨는 사람으로 말이다. 내 사랑 속에서조차, 내 정신적 대기의 변해 가는 상태가, 내 믿음의 들쭉날쭉한 압력이, 어느 날은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가시성을 줄여 놓고, 또 어느 날은 그것을 끝없이 늘려 놓으며, 어느 날은 그것을 미소로 누그러뜨리고, 또 어느 날은 그것을 폭풍으로 응축시키지 않았던가? 우리는 오직 우리가 지닌 것 덕분에만 존재하고, 오직 우리에게 실제로 현전하는 것만을 지니는데, 우리의 그 숱한 기억과 기분과 관념은 우리에게서 멀리 항해를 떠나,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인격이라는 총합의 셈에 더는 넣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에게로 되돌아올 은밀한 길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밤에는, 알베르틴을 거의 더는 아쉬워하지 않은 채 잠들었다가 (우리는 오직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을 아쉬워할 수 있으므로), 깨어나 보면 나는 내 가장 또렷한 의식의 표면 위로 순항해 온, 놀랍도록 선명해 보이는 기억의 함대를 온통 마주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토록 또렷이 보이는 것을, 간밤만 해도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두고 울었다. 삽시간에, 알베르틴의 이름이, 그녀의 죽음이 그 의미를 바꾸어 놓았고, 그녀의 배신은 별안간 예전의 무게를 되찾았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