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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슬픔과 망각 ⑩

6권 · 제1장: 슬픔과 망각

어쨌든 나는 그녀가 죽기 전에 그 편지를 써 보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살아 있었다면 돌아왔으리라는 것을 내게 입증해 준 그 마지막 전언을 보냈다는 것이 기뻤다. 그것은 한결 마음을 달래 줄 뿐 아니라 한결 아름답기도 하다고 여겨졌으니, 만일 이 몇 마디가 없었다면 그 사건은 미완인 채로 남아 예술과 운명의 형태를 그토록 뚜렷이 띠지 못했을 것이다. 실은 그것이 달랐더라도 마찬가지로 뚜렷했을 터인데, 어떤 사건이든 저마다 특정한 모양의 거푸집과 같아서,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가로막고 종결지은 듯한 일련의 사건들 위에, 우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라 믿는 하나의 무늬를 새겨 놓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대신할 수 있었을 다른 무늬를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믿는 것이다. 나는 되뇌었다. “어째서 그녀는 내게 ‘나는 그런 취향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양보하여 그녀가 그것을 채우도록 허락했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에게 입 맞추고 있을 텐데.” 그녀가 나를 떠나기 사흘 전, 뱅퇴유 의 여자친구와 그런 관계를 맺은 적이 결코 없다고 내게 맹세했건만, 알베르틴이 그렇게 맹세하던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홍조가 이미 그 관계를 실토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나를 속였음을 스스로 되새겨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슬픔인가. 가엾은 아이, 그래도 그녀는 그날 베르뒤랭네에 가고 싶어 한 데에 뱅퇴유 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고 맹세하기를 거부할 만큼의 정직함은 지니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고백을 온전히 마치지 않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지어냈던 것일까?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그녀의 부인 앞에서 무력했던 나의 온갖 간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게 “나는 그런 취향이 있어요”라고 말하려 하지 않은 데에는 나의 잘못도 얼마간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얼마간 나의 잘못이었을지 모르는 까닭은, 발베크에서 캉브르메르 부인의 방문이 있은 뒤 알베르틴과 처음으로 속내를 터놓았던 그날, 그녀가 앙드레와 지나치게 열렬한 우정 이상의 무엇을 가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하던 그때, 내가 그런 종류의 도덕적 일탈에 대한 혐오를 지나치게 격하게 드러내고 너무나 단정적으로 그것을 단죄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 뜻 없이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을 때 알베르틴이 얼굴을 붉혔는지 어땠는지 나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기억해 낼 수 없었으니,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순간에 어떤 사람이 취한 태도를, 훗날 그 대화를 다시 떠올릴 때 가슴 저린 난제를 밝혀 줄 그 태도를 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마음이 드는 것은 흔히 한참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는 빈자리가 있을 뿐,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정작 그 순간에는, 그때조차 중요해 보였을 법한 것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일이 아주 흔하다. 한 문장을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한 몸짓을 알아채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훗날, 어떤 진실을 밝혀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마치 한 뭉치의 서면 증거를 뒤적이듯 기억을 되짚으며 추론에서 추론으로 거슬러 올라가,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그 문장, 그 몸짓에 이르면, 우리는 같은 과정을 스무 번이고 되풀이하지만 헛일이다. 길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가 얼굴을 붉혔던가? 붉혔는지 어땠는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녀가 듣지 못했을 리는 없었고, 어쩌면 내게 막 고백하려던 참에 내 말에 대한 기억이 훗날 그녀를 멈춰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 땅끝에서 저 땅끝까지 뒤진들 알베르틴을 찾을 수는 없으리라. 그녀 위로 닫혀 버린 현실은 다시 이음매 하나 없이 온전해져, 그 깊이 속으로 가라앉은 존재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렸다. 이제 그녀는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녀를 알던 사람들이 무심하게 “매력적인 분이었지”라고 말하던 그 샤를뤼스 부인처럼. 그러나 나는 알베르틴이 알지 못하는 이 현실의 존재를 한순간 이상 떠올릴 수가 없었으니, 내 안에서는 나의 연인이 너무도 생생히 살아 있었고, 내 안에서는 모든 감정, 모든 생각이 그녀의 삶과 얼마간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가 알았더라면, 제 삶이 이미 끝난 지금 연인이 자신을 잊지 않았음을 보고 감동했을 것이고, 지난날 무심히 넘기던 것들에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은밀한 것일지라도 배신을 삼가려 하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것을 삼가지 않을까 그토록 두려워하기 때문이거니와, 나는 만일 죽은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의 할머니가 나의 망각을 알고 있는 것이 알베르틴이 나의 기억을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또렷하리라는 생각에 섬뜩해졌다. 그리고 결국, 단 한 사람의 죽은 이를 두고서라도, 그녀가 어떤 것들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가 느낄 기쁨이, 그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이는 두려움을 상쇄해 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희생이 아무리 괴로울지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을 죽은 뒤에도 벗으로 붙들어 두기를, 그들을 심판자로까지 두게 될까 두려워 이따금 삼가게 되지 않을까?

알베르틴이 무슨 짓을 했을지에 대한 나의 질투 어린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나는 숱한 여자들을 매수했으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 호기심이 그토록 날카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단번에 죽지는 않기 때문이니, 그들은 일종의 삶의 기운에 잠긴 채로 남아 있어, 거기에 참된 불멸이란 없으되 그들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여전히 우리의 생각을 차지한다는 뜻이 된다. 마치 그들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만 같다. 이것은 철저히 이교적인 잔존이다. 반대로, 우리가 그녀를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이 불러일으키던 호기심은 그녀가 죽기도 전에 사그라든다. 그리하여 나는 질베르트가 어느 저녁 샹젤리제에서 누구와 거닐고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더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이런 호기심들이 서로 완전히 똑같고,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 덧없는 호기심의 잔혹한 충족을 위해 모든 것을 계속 바쳤다. 알베르틴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그녀와의 강요된 이별이, 내가 스스로 질베르트와 갈라섰을 때 뒤따랐던 것과 똑같은 무관심으로 나를 이끌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만일 그녀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 수 있었다면 그녀는 내 곁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단 제가 죽은 몸임을 알게 되면 그녀가 내 곁에서 살아 있기를 택했으리라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내포한 모순만으로도 그러한 가정은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해하지 않았으니, 알베르틴이 만일 알 수 있다면,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다면 내게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는 가운데 나는 그녀를 눈앞에 보았고 입 맞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아, 그것은 불가능했으니, 그녀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죽었다. 나의 상상은 우리가 함께 있던 시절 밤마다 바라보던 하늘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사랑하던 저 달빛 너머로, 나는 그녀가 더는 살아 있지 않은 데 대한 위로가 되도록 나의 애정을 그녀에게 들어 올리려 했고, 이토록 아득한 존재를 향한 이 사랑은 하나의 종교와도 같아 나의 생각은 기도처럼 그녀를 향해 솟아올랐다. 욕망은 대단히 강한 것이어서 믿음을 낳는다. 나는 알베르틴이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기에 그녀가 떠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바랐기에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믿기 시작했다. 나는 탁자 돌리기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영혼 불멸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이 죽은 뒤에, 마치 영원이 삶과 같기라도 한 듯, 그녀를 그 육신째로 다시 만나기를 요구했다. 삶이라니! 나는 그보다 더한 것을 요구했다. 나는 죽음이 앗아 가는 것이 죽음만이 아닌 그 즐거움들을 죽음으로 인해 영영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이 없었더라도 그 즐거움들은 끝내 희미해졌을 것이고, 오래 굳어진 습관과 새로운 호기심의 작용으로 이미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녀가 살아 있었더라도 알베르틴은 육체적으로조차 차츰 변해 갔을 것이고, 나는 날마다 그 변화에 스스로를 맞추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 동떨어진 순간들만을 불러내는 나의 기억은,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이미 그러하기를 그쳤을 모습으로 그녀를 다시 보기를 청했다. 그것이 요구한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의 자연스럽고도 자의적인 한계를 채워 줄 하나의 기적이었다. 옛 신학자들의 순진함으로, 나는 그녀가 어쩌면 내게 주었을 법한 그 설명이 아니라, 마지막 모순으로써, 살아생전 언제나 내게 거부했던 그 설명을 내게 건네주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죽음이 일종의 꿈과도 같았으므로 나의 사랑은 그녀에게 뜻밖의 행복으로 비칠 듯했고, 나는 죽음에서 오직, 모든 것을 단순하게 하고 모든 것을 정돈해 주는 어떤 해결책의 편리함과 낙관만을 보았다. 때로 그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으니, 내가 우리의 재회를 그려 본 곳은 다른 세상이 아니었다. 지난날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서 함께 놀던 사이로만 알던 시절, 저녁이면 집에서 그녀가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오리라고,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리라고 상상하곤 했듯이, 그와 비슷한 욕망의 힘이, 지난날 질베르트의 경우에 그러했던 것 못지않게 자신을 거스르는 자연의 법칙에도 아랑곳없이, 게다가 그때의 욕망은 마지막에 뜻을 이루었으니 결국 틀린 것도 아니었거니와, 이제 나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곧 알베르틴에게서, 그녀가 실은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하기는 했으나 낭만적인 이유로 (그리고 결국, 오래 죽은 줄로만 믿었던 사람들에게 이따금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신이 회복했다는 소식을 내가 듣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이제 뉘우치며 영영 나와 함께 살러 오게 해 달라고 청한다는 전언이 오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여느 때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있는 어떤 무해한 광증의 본질을 스스로 또렷이 헤아리면서,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확신과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희망이 내 안에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에메에게서는 아직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으나, 그는 지금쯤 발베크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의 조사는 부차적이고 아주 자의적으로 골라낸 한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알베르틴의 삶이 정말로 떳떳지 못한 것이었다면 거기에는 훨씬 더 중대한 다른 일들이 무수히 담겨 있었을 텐데, 우연은 내가 알베르틴의 홍조 덕분에 실내복에 관한 그 대화를 붙들도록 해 준 것과 달리 그런 일들에는 손대게 해 주지 않았다. 여러 해 뒤에 내가 되살려 보려 애쓰던 그 특정한 하루가 내게 주어진 것은 지극히 자의적인 일이었다. 알베르틴이 여자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삶에는 그녀가 어떻게 보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알아내는 일이 내게 그만큼 흥미로울 수도 있었을 다른 수천 날이 있었으니, 나는 발베크의 다른 여러 곳으로, 발베크 아닌 다른 여러 고장으로 에메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른 날들은, 바로 그녀가 그날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내가 알지 못했기에 나의 상상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나의 상상 속에서 하나의 개별적 존재를 얻기 전에는 내게 존재하기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수천 개나 있었다 해도, 그것들은 내게 나머지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알베르틴에 대한 나의 의심에서 목욕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래도록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여자들에 대한 나의 욕망에서, 그 욕망을 채워 줄 수 있고 우연이 그만큼 쉽게 그 이름을 내 귀에 들려줄 수도 있었을 처녀나 하녀가 얼마든지 있음을 알면서도, 생루가 내게 이야기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에 매음굴을 드나든다는 그 처녀와 퓌트뷔스 부인의 하녀를 알고 싶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나의 건강, 나의 우유부단, 샤를뤼스 가 나의 “미루는 버릇”이라 부르던 것이 어떤 계획의 실행에도 가로놓아 두는 온갖 어려움 탓에, 나는 어떤 의심들의 해명도, 또 어떤 욕망들의 성취도 하루하루, 다달이, 해마다 미루어 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진실을 알아내기를 잊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하며 기억 속에 간직해 두었으니, 오직 그것들만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며 (다른 것들은 내 눈에 형체가 없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또한 그것들을 주위의 현실에서 골라낸 바로 그 우연이, 내가 참으로 그것들 속에서 현실의, 그 참되고 갈망하던 삶의 흔적과 맞닿게 되리라는 보증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 하나의 사실에서, 그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실험하는 과학자처럼 온갖 부류의 유사한 사실들에 관한 진실을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잘 골라낸 단 하나의 작은 사실이면, 실험자로 하여금 수천 가지 유사한 사실에 관한 진실을 알게 해 줄 일반 법칙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알베르틴은 참으로, 그녀가 살아가는 동안 내게 잇달아 나타났던 그 상태로만, 다시 말해 일련의 시간 조각들로 잘게 나뉜 채로만 나의 기억 속에 존재했을지 모르나, 나의 정신은 그녀 안에 통일성을 다시 세워 그녀를 하나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내가 전반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한 것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해서였다.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했는지, 그녀가 여자들을 사랑했는지, 그들과 자유로이 어울리기 위해 나를 떠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목욕탕의 그 여자가 할 이야기가 어쩌면 알베르틴의 품행에 관한 나의 의심을 영영 끝내 줄지도 몰랐다.

나의 의심이라니! 아아, 나는 알베르틴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내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심지어 유쾌한 일이리라 여겼건만, 그녀의 떠남이 나의 착각을 드러내 주고서야 알았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죽음은, 내가 때때로 그녀의 죽음을 바랐다고 믿고 그것이 나의 해방이 되리라 여겼을 때 얼마나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에메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깨달았으니, 내가 그때까지 알베르틴의 정숙함에 관한 의심으로 그다지 고통스럽게 시달리지 않았던 것은 실은 그것이 전혀 의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행복, 나의 삶은 알베르틴이 정숙할 것을 요구했고, 그녀가 정숙하다고 단번에 영영 못 박아 두고 있었다. 이 지켜 주는 믿음으로 무장한 채, 나는 위험 없이 나의 정신이 이런저런 가정을 슬프게 가지고 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으니, 정신은 그 가정들에 형태만 부여할 뿐 믿음은 조금도 더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녀는 어쩌면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도 몰라”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리가 “나는 오늘 밤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으며, 이튿날의 계획을 세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알베르틴이 여자들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잘못 믿고, 따라서 알베르틴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내가 이미 헤아려 두지 않은 무엇을 주지는 못하리라 믿고 있었던 까닭에, 나는 에메의 편지가 내게 불러낸, 남에게는 하찮을 그 광경들 앞에서 뜻밖의 고뇌를, 내가 그때까지 느낀 어떤 것보다도 가장 고통스러운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광경들과, 아아, 알베르틴 자신의 모습과 더불어, 화학자들의 말마따나 일종의 침전물을 이루었으니, 그 전체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내가 순전히 관습적인 방식으로 따로 떼어 내 옮기는 에메의 편지글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그 편지를 이루는 낱말 하나하나가 그것이 불러일으킨 고통으로 곧바로 뒤바뀌어 영영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리,

“나리께 진작 글월 올리지 못한 점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리께서 만나 보라 이르신 사람이 며칠 자리를 비웠던 데다, 나리께서 제게 두신 믿음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마음에 저는 빈손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방금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이는 (A. )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교양을 갖춘 에메는 A. 을 인용부호로 묶어 이탤릭체로 강조할 셈이었다. 그런데 그는 인용부호를 치려 할 때는 괄호를 쳤고, 괄호에 넣으려 할 때는 인용부호 사이에 넣었다. 그것은 프랑수아즈가, 어떤 사람이 우리 동네에 지낸다고, 실은 거기 산다는 뜻으로 말하고, 또 잠깐 거처할 수 있다고, 실은 잠시 머문다는 뜻으로 말하던 것과 같았으니, 민중의 말에서 생기는 잘못이란, 흔히 그러하듯, 여러 세기에 걸쳐 서로 자리를 바꿔 온 낱말들을 뒤바꾸는 데에 지나지 않으며, 프랑스어 자체도 실은 그렇게 해 온 것이다.

“그이 말로는 나리께서 짐작하신 바가 틀림없다고 합니다. 우선, (A. )이 목욕탕에 올 때마다 그이가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A. )은 자기보다 나이 많고 늘 회색 옷을 입은 키 큰 여자와 함께 아주 자주 목욕을 하러 왔는데, 목욕탕 여인은 그 여자의 이름은 몰라도 처녀들 뒤를 쫓아다니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A. )을 만난 뒤로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이와 (A. )은 늘 탈의실에 틀어박혀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고, 회색 옷을 입은 부인은 제가 이야기 나눈 그 사람에게 팁으로 적어도 10프랑은 주곤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그저 구슬이나 꿰고 있었다면 10프랑씩이나 팁을 주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A. )은 이따금 살갗이 몹시 거무스름하고 손잡이 달린 안경을 낀 여자와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A. )이 가장 자주 함께 온 것은 자기보다 어린 처녀들, 특히 혈색이 발그레한 한 처녀였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부인 말고, (A. )이 늘 데려오던 사람들은 발베크 사람이 아니었고, 실제로 꽤 먼 데서 온 일이 많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함께 들어오는 법이 없었고, (A. )이 먼저 들어와, 친구를 기다린다며 자기 방문을 잠그지 말아 달라고 청했는데, 제가 이야기 나눈 사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자세한 내용은 말해 주지 못했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이니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으니, 워낙 입이 무거운 데다 (A. )이 돈을 두둑이 안겨 준 터라 그러는 편이 자기에게 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에 참으로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습니다. 하기야 그토록 젊은 나이이니 그이에게나 그 벗들에게나 큰 참화이지요. 저는 발베크를 떠나도 될지 나리의 분부를 기다리겠습니다. 여기서는 더 알아낼 것이 없을 듯합니다. 나리께서 베풀어 주신 이 짧은 휴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더욱 즐거웠습니다. 올해는 철이 잘 들 것 같습니다. 나리께서도 오셔서 잠시 얼굴을 비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리께서 흥미로워하실 만한 다른 이야기는 더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말들이 나의 존재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이해하려면, 독자는 내가 알베르틴을 두고 스스로에게 던지던 물음이 부차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물음, 사소한 물음, 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아닌 그 누구에 대해서든 던지는 유일한 종류의 물음,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뚫을 수 없는 생각에 감싸인 채 고통과 거짓과 악덕과 죽음의 한복판을 지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물음이 아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아니, 알베르틴의 경우 그것은 본질적인 물음이었다. “그녀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그녀는 무엇이었나? 그녀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 그녀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나?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했나? 그녀와 함께한 나의 삶은 오데트와 함께한 스완의 삶만큼이나 한심한 것이었나?” 그리하여 에메의 답장이 다다른 지점은, 그것이 전반적인 답이 아니었음에도, 아니 바로 그 때문에, 참으로 알베르틴 안의, 나 자신 안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마침내 나는, 회색 옷을 입은 부인과 함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목욕탕에 이르는 알베르틴의 그 모습에서, 내가 그 과거를 알베르틴의 기억 속에, 그 얼굴 표정 속에 갇힌 것으로 상상했을 때 두려워하던 것 못지않게 신비롭고 불안한 과거의 한 조각을 눈앞에 보았다. 물론 나 아닌 다른 누구라면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찮게 여겨 흘려버렸을지 모르나, 이제 알베르틴이 죽어 그녀 자신에게서 그것들에 대한 부인을 받아 낼 수 없게 된 나의 처지가 그것들에 일종의 개연성 같은 것을 부여했다. 실로 알베르틴에게는, 설령 그것들이 사실이었다 해도, 제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더라면, 그녀의 양심이 그것을 무구하게 여겼든 나무랄 만하게 여겼든, 그녀의 관능이 그것을 더없이 감미롭게 느꼈든 그저 심드렁하게 느꼈든, 그녀 자신의 잘못은 내가 그것에서 떼어 낼 수 없었던 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의 감정을 동반하지는 않았으리라. 나 자신은 여자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에 힘입어, 비록 그것이 알베르틴에게는 같은 것일 수 없었겠으나, 그녀가 무엇을 느꼈을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내가 그토록 자주 욕망했듯 욕망하고, 내가 그토록 자주 그녀에게 거짓말했듯 내게 거짓말하며, 이런저런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내가 스테르마리아 이나 그 밖의 수많은 여자에게, 시골길에서 마주친 시골 처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했듯 그녀를 위해 애쓰는 그녀의 모습을 그저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첫 단계의 고뇌였다. 그렇다, 나 자신의 온갖 욕망이 그녀의 욕망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 나를 도왔으니, 그것은 이미 하나의 격렬한 고뇌였고, 그 속에서 나의 온갖 욕망은, 그것이 날카로웠던 만큼 더욱더 잔혹한 고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이 감수성의 대수(代數)에서 그것들이 같은 계수를 지닌 채 다만 더하기 대신 빼기 부호를 달고 다시 나타나기라도 한 듯이. 알베르틴에게는, 내가 나 자신의 잣대로 그녀를 헤아릴 수 있는 한, 그녀의 잘못은, 그녀가 아무리 그것을 내게 감추려 애썼다 해도, 그리고 그 점이 그녀가 자기 죄를 의식하고 있거나 나를 슬프게 할까 두려워하고 있었으리라 짐작하게 했지만, 그녀의 잘못은, 그녀가 욕망이 노니는 상상의 환한 빛 속에서 제 취향에 맞추어 그것들을 꾸며 낸 것이었기에,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삶의 나머지와 같은 성질의 것으로, 곧 스스로 마다할 용기가 없었던 자신의 즐거움으로, 감춤으로써 내게 끼치지 않으려 애쓴 나의 슬픔으로 비쳤을 것이나, 그것은 삶의 여느 즐거움과 슬픔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질 만한 즐거움과 슬픔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미리 아무런 경고도 없이, 나 스스로 그것들을 빚어낼 겨를도 없이, 목욕탕에 이르러 팁을 마련하는 알베르틴의 환영이 밖으로부터, 에메의 편지로부터 찾아든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회색 옷을 입은 여자와 함께 말없이 짐짓 태연히 이르는 알베르틴의 그 모습 속에서, 그들이 맺어 둔 밀회를, 탈의실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로 한 그 약속을 내가 읽어 냈기 때문이었으니, 그것은 타락의 경험을, 은밀히 짜인 이중생활의 조직을 뜻하는 것이었고, 이 영상들이 알베르틴의 죄에 관한 끔찍한 소식을 내게 전해 왔기에 그것들은 곧바로 내게, 두고두고 결코 떼어지지 않을 육체적 고통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나의 고통은 그 영상들에 되작용을 미쳤으니, 하나의 영상 같은 객관적 사실도 우리가 그것을 대하는 내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그리고 고통은 취기 못지않게 현실을 뒤바꾸는 힘이 있다. 이 영상들과 결합하여, 괴로움은 그것들을 대뜸, 남에게라면 그저 회색 옷을 입은 부인이요, 팁이요, 목욕탕이요, 회색 옷을 입은 부인과 함께 짐짓 태연히 이르는 알베르틴의 모습을 지켜본 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모든 영상은, 내가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거짓과 방탕의 삶에서 흘러나온 것이었기에, 나의 괴로움이 곧바로 그 바탕째로 뒤바꿔 놓았으니, 나는 그것들을 지상의 광경을 비추는 빛 속에서 바라보지 않았고, 그것들은 다른 세계의, 미지의 저주받은 행성의 한 조각이요, 지옥을 언뜻 들여다본 것이었다. 나의 지옥은 저 발베크 전부였고, 에메의 편지에 따르면 그녀가 자기보다 어린 처녀들을 자주 그러모아 목욕탕에 데려가곤 하던 저 이웃 마을들 전부였다. 오래전 발베크 근방의 시골에서 상상하다가 그곳에 머문 뒤로는 흩어져 버렸던, 그리고 알베르틴을 알게 되면 다시 붙들 수 있으리라 바라던 저 신비, 해변에서 그녀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가 정숙하지 않기를 바랄 만큼 내가 미쳐 있던 그때, 그녀야말로 그 신비의 화신임에 틀림없다고 여기던 그 신비가, 이제 발베크와 관련된 모든 것에 얼마나 무섭도록 짙게 배어 있었던가. 밤에 베르뒤랭네에서 돌아오며 그 이름들이 외쳐 불리는 것을 들을 때면 그토록 낯익고 그토록 마음을 달래 주던 저 정거장들의 이름, 투탱빌, 에프르빌, 파르빌이, 이제 알베르틴이 마지막 곳에 머물다가 거기서 두 번째 곳으로 갔고 필시 첫 번째 곳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자주 달렸으리라 생각하니, 아직 알지 못하던 발베크에 이르기도 전에 그 고장들을 그토록 미덥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던 처음의 그때보다도 더 잔혹한 불안을 내 안에 불러일으켰다. 외부 사실의 실체와 마음의 감정이 온갖 억측에 자신을 내맡기는 미지의 요소임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 것, 그것이 질투가 지닌 능력의 하나다. 우리는 사물이 무엇이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여기는데, 그저 그것들에 관심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질투하는 자가 느끼는 그 알고 싶은 욕망을 일단 느끼게 되면, 그것은 아무것도 더는 분간할 수 없는 어지러운 만화경이 된다. 알베르틴이 내게 부정을 저질렀던가? 누구와? 어느 집에서? 어느 날에? 그녀가 내게 이런저런 말을 하던 그날에? 그러던 중에 내가 이런저런 말을 했다고 기억나는 그날에?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나에 대해 품은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그것이 금전적 이해에서 나온 것인지 애정에서 나온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하찮은 일이 떠올랐으니, 이를테면 알베르틴이 그 이름이 흥미롭다며, 그리고 어쩌면 그저 거기 사는 어떤 시골 처녀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생마르르베튀에 가고 싶어 했던 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에메가 목욕탕 여자에게서 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알아냈다 한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알베르틴은 그가 내게 알렸다는 것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었고, 알베르틴을 향한 나의 사랑에서는 알고 싶은 욕구가 언제나 내가 안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은 욕구에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사이에서 서로 다른 환상의 칸막이를 허물어 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적은 결코 없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죽고 나자, 이 두 번째 욕구가 첫 번째 욕구의 작용과 뒤섞였다. 나는 내가 알아낸 것을 그녀에게 알려 주는 대화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해 달라 청하는 대화만큼이나 생생히 그려 보려 애썼다. 다시 말해 그녀를 내 곁에 두고, 그녀가 다정하게 대답하는 소리를 듣고, 그녀의 뺨이 다시 도톰해지고, 그 눈이 심술을 버리고 우수 어린 빛을 띠는 것을 보려 했다. 다시 말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며, 나의 외로움의 절망 속에서 나의 질투의 광기를 잊으려 했다. 내가 알아낸 것을 결코 그녀에게 알릴 수 없고, 내가 이제 막 발견한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발견하지 못했을) 진실 위에 우리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이 불가능함의 고통스러운 신비가, 그녀의 행실이라는 더욱 고통스러운 신비를 대신해 그 슬픔을 들여앉혔다. 무엇이라고?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알베르틴에게, 내가 목욕탕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알베르틴이 알아주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다니! 이것 또한, 우리가 죽음을 헤아려야 할 때 삶 말고는 아무것도 그려 내지 못하는 우리의 지독한 무능이 낳은 결과의 하나였다. 알베르틴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그녀는, 발베크에서 여자들과 밀회를 가졌다는 것을 내게 감춘 사람, 그것을 내가 모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여기던 사람이었다. 우리 자신의 죽음 뒤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헤아리려 할 때, 우리가 착각으로 우리 앞에 내세우는 것은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결국,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가 우리가 육 년 전에 그녀가 하던 일을 알아냈다는 것을 모른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장차 죽을 우리 자신을 두고 세상이 한 세기 뒤에도 여전히 칭송하며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일일까? 뒤엣것에 앞엣것보다 더 실질적인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나의 회고적 질투가 자아내는 아쉬움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후의 명성을 바라는 욕망과 똑같은 시각적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알베르틴과의 이별에 담긴 그 모든 엄숙한 종국성의 인상은, 그것이 한순간 그녀의 잘못에 대한 나의 생각을 대신했을 때, 그저 그 잘못에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더 무겁게 할 뿐이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