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없는 해변에서처럼 삶 속에서 길 잃은 나 자신을 보았으니, 거기서 나는 홀로였고 어느 쪽으로 돌아선들 결코 그녀를 만나지 못하리라. 다행히도 나는 나의 기억 속에서 더없이 알맞게, 낱낱의 인상이 하나씩만 떠오르는 그 더미 속에는 해로운 것도 이로운 것도 온갖 것이 늘 들어 있게 마련이거니와, 장인이 자기가 만들려는 것에 쓸 만한 재료를 찾아내듯, 할머니가 하셨던 한마디 말을 찾아냈다. 목욕탕 여인이 빌파리지 부인에게 들려준 어떤 있음직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저 여자는 거짓말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게 틀림없구나.” 이 기억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여자가 에메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더욱이 결국 그 여자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지 않은가. 처녀가 아무런 나쁜 뜻 없이도 벗들과 함께 목욕을 하러 올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여자는 제 낯을 세우려고 팁의 액수를 부풀렸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언젠가 프랑수아즈가, 레오니 고모가 자기 앞에서 “한 달에 백만 프랑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고 우기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또 언젠가는 레오니 고모가 욀라리에게 천 프랑짜리 지폐 넉 장을 주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오십 프랑짜리 지폐를 넷으로 접은 것조차 있음직하지 않아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알고 싶은 욕망과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사이를 여전히 오가면서도, 그토록 애써 얻은 그 고통스러운 확신에서 벗어나려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그렇게 해냈다. 그러면 나의 애정이 새로이 되살아나곤 했으나, 그와 동시에 알베르틴과 헤어졌다는 슬픔도 되살아났으니, 그 슬픔에 잠긴 동안 나는 어쩌면 질투가 나를 괴롭히던 얼마 전의 시간보다도 더 비참했다. 그러나 발베크를 떠올릴 때면 나의 질투가 문득 되살아났으니, 그때까지는 한 번도 나를 괴롭힌 적 없고 실로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무해한 것 가운데 하나로 보이던 하나의 환영이 대뜸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녁의 발베크 식당, 그 유리창 건너편에는 온 무리가 어스름 속에 빽빽이 몰려 있어 마치 환하게 빛나는 수족관 유리 앞에 선 듯했고, 그 무리가 뒤엉킨 가운데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하나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곧 어부들과 하층 계급의 처녀들, 그리고 발베크에 갓 등장한 그 화려함을 시샘하는 처녀들 사이의 접촉이었다. 그 화려함으로 말하자면, 재력은 몰라도 적어도 인색함과 인습이 그들의 부모를 거기서 밀어내고 있었거니와, 그 처녀들 가운데에는 그때 내가 알지 못하던 알베르틴이 거의 저녁마다 틀림없이 끼여 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필시 어떤 어린 소녀에게 수작을 걸어, 몇 분 뒤 어둠 속에서, 모래밭에서, 아니면 절벽 아래 인적 없는 해수욕 오두막에서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곤 했으리라. 그러자 이번에는 나의 슬픔이 되살아났으니, 나는 방금, 내 층에 멈추지 않고 더 높이 올라가는 승강기 소리를 추방 선고처럼 들은 참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찾아오기를 바랄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이었으니, 그녀는 죽었다. 그럼에도 승강기가 내 층에 멈추면 나의 심장은 두근거렸고, 한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혹시 이 모든 게 한낱 꿈이었다면! 어쩌면 그녀일지도 몰라, 그녀가 초인종을 울리려 하는 거야, 그녀가 돌아온 거야, 프랑수아즈가 들어와 노여움보다 놀라움이 더한 얼굴로 말하겠지, 그녀는 앙심보다 미신이 더 깊어 살아 있는 처녀보다 어쩌면 유령으로 여길지 모를 것을 더 무서워할 테니까, ‘나리께서는 누가 오셨는지 짐작도 못 하실 겁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신문을 집어 들려 했다. 그러나 참된 슬픔이라고는 느껴 본 적 없는 자들이 쓴 기사를 나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떤 하찮은 노래를 두고 그중 한 사람은 “눈물이 날 만큼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했는데, 정작 나라면 알베르틴이 살아 있었다면 기쁘게 들었을 노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대작가이면서도, 기차에서 내릴 때 환호로 맞이받았다는 이유로 “잊을 수 없는 환영”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라면 그런 환영을 받았다 한들 한순간도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그 지긋지긋한 정치만 아니라면 파리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우리라”고 독자들에게 장담했는데, 나는 정치가 없더라도 그 삶이 내게는 참혹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알베르틴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정치가 있더라도 즐겁게 여겨졌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포츠 담당 기자는 (때는 5월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한 해의 이 철은 참된 스포츠맨에게 그야말로 괴로운, 아니 차라리 재앙과 같은 시기이니, 사냥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 평론가는 살롱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전시를 꾸며 놓은 것을 마주하니 우리는 한없는 낙담에, 끝없는 아쉬움에 짓눌리고 만다…” 내가 느끼던 아쉬움의 힘이 제 삶에 참된 행복도 슬픔도 없는 자들의 표현을 거짓되고 빛바랜 것으로 여기게 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멀게나마 노르망디에, 투렌에, 수치료 요양소에, 레아에, 게르망트 대공비에, 사랑에, 부재에, 배신에 이어질 수 있는 지극히 하찮은 구절조차도, 내가 눈을 돌릴 겨를도 없이 알베르틴의 모습을 대뜸 눈앞에 세워 놓았고, 나의 눈물은 새로이 솟구쳤다. 게다가 여느 때 같으면 나는 이 신문들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으니, 그중 하나를 펼치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알베르틴이 살아 있을 때 그것들을 펼치곤 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이제는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이 대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지면을 펼칠 기운도 없이 신문을 떨어뜨렸다. 저마다의 인상은 똑같으면서도 훼손된 인상을 불러냈으니, 거기서 알베르틴의 존재가 도려내진 탓이었고, 그리하여 나는 이 잘려 나간 순간들을 끝까지 살아 낼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실로, 알베르틴이 조금씩 나의 생각 속에 자리하기를 그치고 나의 마음을 온통 지배하기를 그쳤을 때에도, 그녀가 있던 시절처럼 그녀의 방에 들어가거나, 더듬어 불을 켜거나, 자동피아노 곁에 앉게 될 일이 있으면 나는 대뜸 가슴을 찔렸다. 여러 작은 가신(家神)들에게 나뉘어, 그녀는 오래도록 촛불의 불꽃 속에, 초인종 속에, 의자 등받이 속에, 그리고 불면의 밤이나 내 마음을 끈 어떤 여자의 첫 방문이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한결 형체 없는 영역들 속에 깃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 동안 내가 읽은, 또는 읽었노라고 나의 정신이 되새긴 몇 마디 문장은 흔히 내 안에 잔혹한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기 위해 그 문장들에 필요했던 것은, 여자들의 부도덕함을 뒷받침할 그럴듯한 논거를 내게 대 주는 일이라기보다, 알베르틴의 삶과 이어진 어떤 옛 인상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을 늘 떠올리던 습관으로도 그 힘이 무디어지지 않은, 그리고 알베르틴이 아직 살아 있던 어떤 잊힌 순간으로 옮겨지면, 그녀의 잘못은 한결 생생하고, 한결 고통스럽고, 한결 견디기 힘든 것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목욕탕 여인의 폭로가 거짓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진실을 알아내는 좋은 방법은 에메를 투렌으로 보내, 봉탕 부인의 별장 근처에서 며칠을 지내게 하는 것이리라. 만일 알베르틴이 한 여자가 다른 여자들과 나누는 그런 즐거움을 누렸다면, 그리고 그것을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를 떠난 것이라면, 그녀는 자유로워지자마자 그것에 빠져들려 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했을 것이니, 그것도 그녀가 잘 아는 고장, 우리 집에서보다 더 나은 편의를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물러가 지내기로 택하지 않았을 그런 고장에서였을 것이다. 물론 알베르틴의 죽음이 나의 근심을 그토록 조금밖에 바꿔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별날 것은 없었다. 우리의 연인이 살아 있을 때에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을 이루는 생각의 큰 부분은 그녀가 우리 곁에 없는 시간에 우리에게 찾아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곁에 없는 사람을, 단 몇 시간만 자리를 비운다 해도 그 시간 동안은 하나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 사람을 사색의 대상으로 삼는 버릇을 들이게 된다. 그러니 죽음이라고 해서 큰 차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에메가 돌아오자 나는 그에게 샤텔로로 내려가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나의 생각으로, 나의 슬픔으로, 아무리 멀게나마 어떤 사람과 이어진 이름이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으로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나의 온갖 행동으로, 내가 벌인 조사로, 내가 쓴 돈으로, 그 모든 것이 알베르틴의 행실을 밝혀내는 데 바쳐졌으니, 나는 이 한 해 내내 나의 삶이 사랑으로, 참된 애정의 유대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었던 여자는 하나의 주검이었다. 우리는 이따금, 어떤 사람이 예술가였고 자기 작업에 얼마간 공을 들였다면 그가 죽은 뒤에도 무언가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에게서 떼어 내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접붙인 일종의 꺾꽂이 가지가, 그것이 떨어져 나온 그 사람이 스러진 뒤에도 계속 제 존재를 이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메는 봉탕 부인의 별장 가까운 곳에 거처를 잡았다. 그는 하녀 한 사람과, 알베르틴이 자주 하루씩 마차를 빌리던 마차 대여업자 한 사람과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번째 편지에서 에메는, 그 고장의 젊은 세탁부에게서, 알베르틴이 깨끗한 빨래를 가져다줄 때면 유별난 방식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곤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내게 전했다. “하지만” 그 세탁부는 말했다. “아가씨는 그 이상은 결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에메에게 그의 여비를, 그리고 그의 편지가 내게 끼친 해악의 값을 치를 돈을 부쳐 주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것은 어떤 못된 욕망도 증명하지 못하는 친밀함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이르며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때 에메에게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 알아냄 충분한 증거 확보 편지 뒤따름.
이튿날 편지 한 통이 왔는데, 그 봉투만으로도 나를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것이 에메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차렸으니, 누구나, 우리 가운데 가장 미천한 자조차도,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종이 위에 일종의 최면에 든 듯 누워 있는 저 작고 낯익은 정령들을, 오직 자기만이 지닌 제 필적의 글자들을 제 뜻대로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젊은 세탁부는 제게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고, 알베르틴 양은 그저 자기 팔을 꼬집었을 뿐 그 이상은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그러나 그 입을 열게 하려고 저는 그 여자를 저녁 식사에 데려가 술을 먹였지요. 그러자 그 여자가 털어놓기를, 알베르틴 양은 목욕하러 갈 때면 곧잘 루아르 강가에서 자기를 만나곤 했고, 아주 일찍 일어나 멱을 감는 버릇이 있던 알베르틴 양은 나무가 어찌나 우거졌는지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물가의 한 자리, 게다가 그 이른 아침 시각에는 지켜보는 이라곤 아무도 없는 그 자리에서 늘 자기를 만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세탁부는 친구들을 데려왔고 다 같이 멱을 감았으며, 이 아래쪽은 벌써부터 몹시 더워 나무 그늘을 뚫고도 볕이 살을 태울 지경이라, 그들은 풀밭에 드러누워 몸을 말리며 장난치고 서로를 어루만지곤 했다지요. 그 세탁부는 자기가 어린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기를 좋아했다고, 그리고 알베르틴 양이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늘 자기 몸에 배배 꼬며 파고드는 걸 보고는 그 가운을 벗기게 하고 목덜미와 팔을 따라, 심지어 알베르틴 양이 내밀어 준 발바닥까지 혀로 어루만지곤 했다고 제게 고백했습니다. 세탁부도 옷을 벗었고, 둘은 서로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장난을 쳤다는데, 그다음 이야기는 더 해 주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오로지 나리의 분부를 받드는 몸이요 나리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라면 세상에 못 할 것이 없는지라, 그 젊은 세탁부를 잠자리로 데려갔습니다. 그 여자는 알베르틴 양이 목욕옷을 벗었을 때 자기가 해 주던 것을 저에게도 해 주면 좋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가씨가 어떻게 떨었는지 나리께서 보셨더라면. 저한테 이러셨어요.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 그러고는 어찌나 흥분하셨는지 저를 깨물지 않고는 못 배기셨답니다.’ 그 여자의 팔에 남은 자국을 저는 지금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베르틴 양의 그 쾌락을 저는 이해할 수 있으니, 그 여자는 정말이지 아주 솜씨 좋은 상대였거든요.”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이 뱅퇴유 양과의 우정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정말이지 괴로웠다. 그러나 그때는 알베르틴이 곁에 있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뒤 그녀의 행실에 대한 나의 지나친 호기심 탓에 기어이 알베르틴을 내게서 떠나게 만들었을 때, 프랑수아즈가 그녀는 이제 이 집에 없다고 알려 와 내가 홀로 남겨졌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한층 더 사무치게 괴로웠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는 내가 사랑했던 그 알베르틴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에는, 내가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죽음조차 끝맺지 못한 그 호기심을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간 것을 벌하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아가씨가 들어앉아 있었다. 거짓과 기만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그 아가씨는, 예전의 알베르틴이 그런 쾌락은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노라 맹세하며 그토록 다정하게 나를 안심시켜 주던 바로 그 자리에서, 되찾은 자유에 취한 나머지 실신할 지경에 이르도록, 해 뜰 무렵 루아르 강가에서 만나던 그 젊은 세탁부를 깨물 지경에 이르도록 그 쾌락을 마음껏 누리러 내려갔던 것이며, 그 세탁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 전혀 다른 알베르틴, 그것도 우리가 남을 두고 ‘다르다’는 말을 쓸 때 이해하는 그런 의미에서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우리가 짐작했던 바와 다를 때, 그 차이가 우리를 깊이 뒤흔들 수는 없으므로, 직관의 진자가 안으로 흔들리는 폭보다 더 크게 밖으로 흔들릴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그 차이를 그 사람들 자신의 피상적인 영역에나 놓아둘 뿐이다. 예전에는, 어떤 여자가 다른 여자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가 나에게 남다른 본질을 지닌 다른 여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가 문제일 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느끼는 슬픔을 떨쳐 버리려고, 우리는 그 여자가 무엇을 했는지뿐 아니라 그 짓을 하는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자기가 하는 그 일을 마음속으로 어떻게 여겼는지까지 알아내려 든다. 그리하여 점점 더 깊이, 점점 더 멀리 내려가고 나아가면서, 우리는 그 슬픔의 깊이로써 신비에, 본질에 다다르는 것이다. 나는 내 지성과 잠재의식의 온 힘이 함께 가담한 이 호기심 때문에, 내 안에서, 내 몸에서, 내 마음에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안겨 줄 고통보다 훨씬 더 깊이 아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제 나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된 모든 것을 알베르틴이라는 존재의 한가운데로 투영해 넣었다. 그리하여 알베르틴의 악덕이라는 사실을 내 존재의 그토록 깊은 데까지 스며들게 한 그 슬픔은, 훗날 나에게 마지막 봉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끼친 해악처럼, 알베르틴이 내게 끼친 해악은 그녀와 나 사이의 마지막 끈이었으니, 그것은 기억마저 넘어서 살아남았다. 무릇 물질적인 모든 것에 속하는 에너지 보존의 이치에 따라, 괴로움은 기억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숲에서 달빛 아래 보낸 그 매혹적인 밤을 잊어버린 사람도, 그때 얻은 류머티즘으로는 여전히 앓는 법이다. 그녀가 부인했으나 실은 그녀의 것이던 그 취향, 차디찬 추론의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라는 말을 읽으며 느낀 타는 듯한 고뇌 속에서 내게 발견된 그 취향, 그 특유의 성질을 그것들에 부여한 하나의 괴로움이던 그 취향은, 소라게가 끌고 다니는 새 껍데기가 소라게에 덧붙듯 알베르틴의 이미지에 그저 덧붙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소금이 다른 소금과 맞닿아 그 빛깔을, 나아가 그 본성마저 바꾸어 놓듯 그렇게 작용했다. 그 젊은 세탁부가 자기 어린 친구들에게 “어머 세상에, 나는 도무지 믿지 못했을 거야, 글쎄 저 아가씨도 우리와 한통속이라니까!” 하고 말했을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그것은 그들이 여태 알베르틴이라는 사람에게서 의심조차 못 하던 악덕 하나를 그녀에게 덧붙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또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 그들과 같은 부류이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발견이었고, 이 발견은 그녀를 다른 여자들의 동포로 만듦으로써 도리어 나에게는 더욱 낯선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내가 그녀에게서 소유했던 것, 내 마음에 품고 다니던 것이 실은 그녀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나머지는, 그토록 신비롭게 중요한 그 무엇, 곧 한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들과 나누어 가진 것이었기에 그토록 광대해진 그 나머지는, 그녀가 늘 나에게 숨겨 온 것이며 나를 거기서 멀찍이 떼어 놓았던 것임을 입증해 주었다. 마치 어떤 여자가 자기가 적국 태생이며 첩자라는 사실을 내게 숨겼을 법하듯이 말이다. 아니, 그녀는 첩자보다도 더 배신에 가까운 짓을 한 셈이었으니, 첩자는 오직 제 국적에 관해서만 우리를 속이지만, 알베르틴은 자신의 가장 깊은 인간됨에 관하여, 곧 그녀가 보통의 인간 종족에 속하지 않고, 그 속을 누비며 그 속에 몸을 숨기되 결코 그것과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종족에 속한다는 사실에 관하여 나를 속였던 것이다. 마침 나는 엘스티르의 그림 두 점을 본 적이 있었는데, 잎이 무성한 배경을 뒤로 벌거벗은 여인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중 한 점에서는, 한 처녀가 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으니, 알베르틴이 세탁부에게 발을 내밀 때 들어 올렸을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른 발로는 또 한 처녀를 물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는데, 그 처녀는 허리를 굽힌 채 즐겁게 버티며, 발끝만 겨우 푸른 물에 잠기고 있었다. 이제 나는 떠올렸다. 그 들어 올린 허벅지가 무릎의 각과 어우러져 그려 내는 백조 목의 곡선이, 알베르틴이 침대에서 내 곁에 누웠을 때 늘어뜨린 허벅지가 그려 내던 바로 그 곡선과 똑같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저 그림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려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마음속에 벌거벗은 여인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일깨우지 않으려고 그 말을 삼갔었다. 이제 나는 그녀가 세탁부와 그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내가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의 친구들 틈에 앉아 그토록 감탄하며 바라보던 그 무리를 다시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만일 내가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민감한 애호가였다면, 나는 알베르틴이 그 무리를 천 배는 더 아름답게 다시 이루어 냈음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제 그 무리를 이루는 것들은, 대가의 조각가들이 베르사유의 숲속에 흩뿌려 놓거나 분수에 담가 그 소용돌이의 애무로 씻기고 다듬게 한 그런 여신들의 벌거벗은 조각상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나는 그녀를 세탁부 곁에서 보았다. 물가에 선 처녀들, 초목의 숲 한가운데 선 대리석 아가씨들의 벌거벗음과, 물에 몸을 담근 물의 요정 나이아스의 얕은 돋을새김 같은 벌거벗음, 그 이중의 나신을 두른 처녀들을. 알베르틴이 내 침대에 누웠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 굽은 허리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실제로 보았으니, 그것은 백조의 목이었고, 또 한 처녀의 입술을 찾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이제 다리가 아니라 백조의 담대한 목을 보았으니, 마치 어느 광란의 소묘 속에서 레다의 입술을 찾는 백조의 목과도 같았다. 그 그림 속 레다를 우리는 여성의 쾌락 특유의 온갖 떨림에 잠긴 모습으로 보게 되는데, 이는 거기에 백조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녀가 한결 더 홀로인 듯 보이기 때문이니, 마치 전화기 너머로 우리가 어떤 목소리의 억양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 목소리가 우리가 그 표정을 구체화해 보는 얼굴에서 떼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억양을 분간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소묘에서 쾌락은, 그것을 불러일으키되 자리에 없는, 움직이지 않는 백조로 대체된 그 얼굴을 찾아가는 대신, 그것을 느끼는 여인 자신에게로 집중된다. 어떤 순간에는 내 마음과 내 기억 사이의 소통이 끊겼다. 알베르틴이 세탁부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제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거의 대수학의 약호 같은 것으로만 표시될 뿐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에도 백 번씩 끊겼던 전류가 되살아났고, 나의 질투로 되살아나 정말로 살아 있는 알베르틴이, 그 젊은 세탁부의 애무 아래 몸을 굳히며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면, 내 마음은 지옥의 불길에 가차 없이 그을렸다. 그녀가 그 못된 짓을 저지르던 순간, 다시 말해 바로 나 자신이 처해 있던 그 순간에 그녀가 살아 있었던 만큼, 그 못된 짓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으니, 나는 내가 안다는 것을 그녀도 알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그 순간들에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쉬워하며 생각했을 때, 그 아쉬움은 내 질투의 낙인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던 순간의 가슴을 에는 아쉬움과는 사뭇 달라서,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데 대한 아쉬움일 뿐이었다. “너는 네가 나를 떠난 뒤에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결코 알지 못하리라 여겼겠지. 그런데 나는 다 알아, 루아르 강가의 그 세탁부, 너는 그 여자에게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라고 말했지, 나는 그 깨문 자국도 봤어.” 물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째서 나 자신을 괴롭히는가? 그 세탁부와 쾌락을 나누던 그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행실이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그녀는 내가 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도 않는데, 그녀는 스스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은, 그녀가 그 쾌락을 맛보던 순간으로 나를 도로 데려가는 그 쾌락의 시각적 이미지만큼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과거로, 미래로 투영하되, 죽음이라는 허구의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그녀가 죽었다는 데 대한 나의 아쉬움이 그런 순간에 내 질투의 영향을 받아 이토록 기이한 형태를 띠었다면, 그 영향은 강신술과 불멸에 대한 나의 몽상에까지 뻗쳤으니, 그 몽상이란 내가 갈망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런 순간에, 만일 내가 베르고트가 한때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처럼 탁자를 돌려 그녀를 불러낼 수 있었다면, 또는 X 신부가 생각한 것처럼 저세상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면, 나는 오직 그녀에게 이 말을 되풀이하려고 그러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그 세탁부 일을 알아. 너는 그 여자에게 ‘아, 이건 그냥 천국이야’라고 말했지, 나는 그 깨문 자국도 봤어.” 이 세탁부의 이미지에 맞서 나를 구해 준 것은, 물론 그것이 얼마쯤 지속되고 난 뒤였지만, 바로 그 이미지 자체였다.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것, 우리의 감수성에 우리를 사로잡는 어조의 변화를 돌연 들여오는 것, 습관이 아직 그 무색의 모조품으로 대체하지 못한 것만을 진정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알베르틴을 여러 조각으로, 여러 알베르틴으로 갈라놓는 이 세분이야말로 내 안에서 그녀가 존재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녀가 그저 착하기만 했던, 또는 총명하거나 진지했던, 심지어 오로지 운동에만 빠져 있던 순간들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리고 이 세분이 나를 달래 주는 것도 결국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재가 아니라 해도, 그것이 나에게 나타나던 시간들의 잇따르는 형태에, 곧 환등기가 비추는 영상의 곡선이 색색의 슬라이드의 곡선에 달려 있듯 내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던 그 형태에 달려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진리를, 그것도 지극히 객관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곧 우리 각자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 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여러 사람을 품고 있으며, 악덕에 물든 알베르틴이 있었다 해서 다른 알베르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진리 말이다. 제 방에서 나에게 생시몽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던 그녀,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고 내가 말하던 그 밤에 그토록 서글피 “저 자동피아노, 이 방, 이 모든 걸 다시는 못 본다니” 하고 말하던 그녀, 그리고 내 거짓말이 끝내 나 자신에게까지 옮겨 놓은 감정을 알아차리고는 진심 어린 연민으로 “아, 아니에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느니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요, 다시는 당신을 만나려 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하고 외치던 그녀. 그러면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를 갈라놓던 벽이 사라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착한 알베르틴이 돌아온 그 순간, 나는 알베르틴이 나에게 안기던 고통의 해독제를 청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 세탁부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이제 잔인한 승리의 방식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심술궂게 내보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알베르틴이 살아 있었다면 그리했을 법하게, 나는 그 세탁부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에메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내가 준 돈값을 한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오기가 싫어서, 세탁부에게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 나에게 맹세했다. 아마도 알베르틴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거짓말을 해 온 것이리라. 그런데도 그녀의 모순이 밀려들고 밀려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어떤 진행이 있었음을 느꼈다. 그녀가 처음에 나에게 어떤 고백을 하지 않았다고, (하기야 어쩌면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온 한마디 속의 뜻하지 않은 고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어떤 것들을 어찌나 야릇한 방식으로 이름 붙이던지, 그 말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풀이될 수 있었지만, 내 질투를 감지한 그녀는 그 뒤로 처음에는 태연히 인정했던 것을 소스라치며 철회하곤 했다. 어쨌든 알베르틴이 나에게 이 말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결백을 확신하는 데는 그녀를 껴안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이제 우리를 갈라놓던 벽이, 다툼 뒤에 두 연인 사이에 솟아올라 입맞춤조차 부서지고 마는 그 만질 수 없으면서도 완강한 벽이 무너졌으니, 나는 그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든, 무엇을 하고자 했든, 가엾은 아이, 우리를 갈라놓는 장벽을 넘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고, 알베르틴이 자기 취향을 나에게 숨겼다면, 그것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알베르틴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기쁨을 누렸다. 게다가 내가 다른 알베르틴을 알기나 했던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오류를 낳는 두 가지 주된 원인은, 우리 자신이 착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 아니면 그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눈길, 드러난 어깨 하나에 사랑에 빠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고 나서 희망 혹은 슬픔의 긴 시간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을 지어내고, 한 성격을 빚어낸다. 그리고 훗날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되어도, 우리 앞에 어떤 잔혹한 현실이 들이닥치든, 그 눈길을 보내고 그 어깨를 드러내는 사람에게서 그 착한 성격을, 우리를 사랑하는 여인의 그 천성을 벗겨 낼 수 없으니, 이는 소녀 시절부터 알아 온 사람이 늙었다 해서 그 사람에게서 젊은 날의 얼굴을 지워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 알베르틴의 고귀한 눈길을, 다정하고 가여워하던 그 눈길을, 통통한 두 볼을, 목덜미의 거친 살결을 떠올렸다. 그것은 죽은 여인의 이미지였으나, 이 죽은 여인이 살아 있었기에, 그녀가 산 몸으로 내 곁에 있었다면 내가 어쩔 수 없이 했을 일을 (저세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할 일을) 나는 곧바로 해낼 수 있었으니, 나는 그녀를 용서했다.